최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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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배우. 1962년생으로 4형제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동국대학교 연극영화과 출신이다.[7]
연극인 출신 영화배우로서 엄청난 에너지와 캐릭터 몰입력, 그리고 누구보다 뜨거운 연기를 보여주는 '''대한민국 최정상 배우.'''
2000년대 한국 영화계 최고 네임밸류라는 '''충무로 트로이카[8] '''의 '''1인'''이다.
《쉬리》,《취화선》이나 《올드보이》, 《악마를 보았다》, 《루시》등 그의 작품들을 보면 그 뜨거운 에너지가 스크린 밖으로 뚫고 나와 마치 그 누구도 나처럼 연기할 수 없다고 포효하는 듯한 느낌이다.
2. 상세
대일고 시절부터 배우를 꿈꿨다고 한다. 원래는 연출에 뜻이 있었다고 한다. 대일고 재학 시절 큰 싸움에 휘말려[10] 얼굴에 상처를 입은 적이 있는데, 이거 때문에 성형외과를 미친 듯이 찾아다녔다고 한다. 그 바람대로 동국대학교 연극영화과에 들어갔다. 이미 대학 시절 때부터 연기력으로 후배들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았었다."...이번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에 참석하면서, 부산에서 어제 새벽에 서울로 올라오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20대, 더 거슬러 올라가서 고등학교 때 영화를 하고 싶다, 연극을 하고 싶다, 그렇게 꿈을 키웠던 시절의 최민식과 지금의 최민식이 과연 어느 정도 맞닿아있는지를..정말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너무 많이 변했고, 너무 많이 물들었고, 좋은 작품을 이야기하기보다는 이 영화가 흥행이 될 것이냐, 안될 것이냐 이런것부터 많이 이야기하게 되었습니다. 조금이나마 남아있는 그 여백을 끈질기게 붙잡고 늘어져서 지켜보겠습니다. 세상 살면서 자연스럽게, 변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항상 느끼고, 그렇게 자기위안삼아보지만 그래도 끝까지 그 여백을 지켜보도록 노력하고, 더 좋은 작품으로 여러분들 앞에 부끄럽지 않은 배우가 될 수 있도록 더욱 더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영화나 TV 쪽에서는 낯선 얼굴이었지만 연극계에서는 유망주였다.[11] 젊은 배우들이 자신의 재능을 한껏 살리는 작품으로 유명한 연극 《에쿠우스》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이후 1989년 KBS 드라마 《야망의 세월》에서 이휘향의 아들(극중 별명인 '꾸숑'으로 통함) 역으로 데뷔했다(윤다훈의 대타였다).[12] 작중 보인 잘 생긴 얼굴임에도 거친 이미지는 한동안 최민식의 아이덴티티가 될 것이라 여겨졌으나 이후 연기 변신을 시도해 '거칠기는 한데 덜 떨어진' 즉, 동네 날건달 아저씨로의 이미지 변신을 시도하고, 심지어 폐인스러운 몰골까지도 넘나들면서 점차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반항적인 꾸숑의 이미지를 지워버리는 데 성공했다. 대표적인 작품이 반듯한 이미지의 한석규와 이미지 체인지를 했던 서울의 달.
1999년, 쉬리의 개봉부터 '''어마어마한 연기력'''으로 사람들에게 각인된다.
영화계 인사들과의 친분 관계가 좋은 편으로 같이 몇편을 찍었던 한석규, 송강호와도 좋은 동료 관계를 갖고 있어서 서로 상대방의 연기에 조언을 해주는 관계라고 한다. 공형진의 경우 강심장에 출연해 파이란 촬영 당시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했는데, 12월 31일에 선술집 씬을 촬영하고 (해를 넘겨서) 최민식이 단독으로 촬영하는 현장을 찾았는데, 촬영이 끝나자마자 최민식이 공형진의 인사도 받지 않고 획 가버리더니, 바로 전화를 해서는 득달같이 12월 31일 공형진과 찍었던 선술집 씬에 대한 비난과 욕설을 퍼부으며 "'''나 보겠다고 여기 올 시간에 네 캐릭터에 대한 연구나 더 해라. 네가 최선을 다 하지 않으면 영화에 피해가 된다'''"고 하는 바람에, 공형진은 감독에게 사정해서 선술집 씬을 '''다시 찍었고''', 영화 촬영이 끝나갈 무렵 최민식은 공형진을 불러 "'''지금의 너와 다시 처음부터 파이란이라는 영화를 찍으면 좋은 영화가 나올 것 같다'''"고 공형진을 인정했고, 그 때 공형진은 이런게 바로 연기 대가구나 싶었다고.
고액 개런티를 받는 배우라는 점에서 영화계의 말단 스태프 대우가 관심을 받을 때 한국 영화계를 걱정한다면서 스태프는 안중에도 없냐며 까였었다. 특히 이 문제를 제기한 강우석 감독과는 이후 껄끄러운 관계가 되었다고 한다.[13] 또한 이런 일로 인해 최민식은 42회 대종상 시상식에서 홍보대사로 선정되었는데 이 일로 인해 대종상 시상식에 참석하지 않았으며 최민식와 함께 홍보대사로 선정 된 문소리가 최민식의 빈 자리까지 대신 맡았다.
이런 이유에선지 2005년 이래 근 5년간 저 《히말라야 바람이 머무는 곳》을 제외하고는 영화 출연이 없었다. 올드보이라는 작품에서 최고의 연기를 선보이며 국내에서나 외국에서나 최민식이라는 배우의 행보에 대해 많은 관심을 보였기 때문에 팬들에게는 그저 아쉬운 행보였다. 위에 소개된 대로 자기가 먼저 거절한 건지, 영화계와 껄끄러운 관계가 되어 출연 제의가 끊긴 건지는 불명. 그런데 후자인 경우에 무게가 쏠리는게 사채광고 출연으로 인한 영화배우 이미지 실추로 한동안 충무로에서 거의 제의가 끊긴 적도 있었고, 강우석 감독이 '충무로 1인자'다 보니 대놓고 강우석 감독을 깐게 되어 강우석 감독 라인이 주요요직을 차지하는 충무로에서 왕따였다는건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2010년 개봉한 영화 《악마를 보았다》로 복귀, 살인마 장경철 역을 제대로 소화하며 몰입도 높은 엄청난 연기로 호평을 받았다. 영화가 워낙 잔인해서 흥행에 실패할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지만 잔인성에 비해 높은 성적을 기록한 데에는 최민식의 연기도 꽤나 한 몫 했을 것이고, 최민식도 성공적으로 영화계에 다시 안착했다.
2.1. 연기력
메소드 연기를 기반으로 한 강렬한 감정표출과 특유의 카리스마나 분위기 조성능력으로 느와르, 스릴러 장르의 무게감있는 캐릭터 뿐 아니라 싸이코패스, 힘없는 소시민, 찌질하고 비열한 범죄자, 바보스러운 코믹 캐릭터, 정치인, 장군 등 밑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알겠지만 사실상 모든 배역을 소화 가능한 연기력이며, 심지어 해당 영화가 흥행이나 비평에 실패해도 최민식이 연기한 캐릭터는 살아남을 정도로 연기에 있어선 경지에 도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민식은 동국대 연극영화과-> 연극-> 방송 드라마-> 영화 테크트리를 탔다. 배우로서 웬만한 메이저무대는 전부 경험해봤다는 이야기이다. 아닌게 아니라 최민식은 정극은 물론 가벼운 코미디물까지 모두 소화가능한 연기의 폭이 매우 넓다. 배우로서 이만한 입체적인 커리어를 가진 엘리트 코스의 배우는 정말 찾기 힘들다.
최민식의 대단한 점은 배우 지망생이었던 대학 시절부터 지금까지 연기자로서 정석 테크트리를 탐과 동시에, 무명도 겪지 않은채 꾸준히 무리의 중심에 위치하며 주목을 받아온 배우라는 점이다. 실제로 동국대 시절, 연영과 내에서 가장 연기 잘하는 에이스로 손꼽혔으며 한창 연극에 몰두하던 1980년대에 이미 '에쿠우스'라는 작품을 통해 한국 연극계의 괴물신인으로 인정받았다. 드라마에서도 서울의 달을 비롯한 당대 최고의 히트작을 만들었고 영화판에서는 말할 것도 없이 본좌로 등극했다. 중간에 개인적인 부침은 있었을지언정 최민식이란 인물은 꾸준히 연기 괴물 혹은 경지에 오른 배우로 인정받아온 셈이다. 실례로 최민식 못지않은 대배우로 손꼽는 전도연, 이병헌의 경우, 연극영화과와 연극 무대를 거치지 않고 바로 방송무대에 데뷔하여 한동안 '실력은 없고 비주얼만 좋은 청춘스타' 인식을 벗지 못했으며 송강호는 드라마에는 한 번도 출연한 적이 없고 영화계에서 씬스틸러로 뜨기 전까지 무명 연극배우로 배고픈 시절을 겪었어야 했다. 무명도 겪지 않으면서 꾸준히 주목을 받고 정석 테크트리를 전부 경험해본 배우는 이처럼 드문 셈이다.
같은 정통 메소드 연기를 하는 이병헌 역시 엄청난 메소드 연기를 보여주지만, 영화사에 남긴 굵직한 캐릭터들이나 임팩트에선 아직 최민식의 위상에 도달했다고 보기는 무리가 있다. 라이벌이라고 할 수 있는 송강호는 메소드 연기와는 거리가 좀 있는 생활연기법으로 승부하기에 '''단순 메소드 연기로는 최민식이 국내 최고다'''. 사실 이게 최민식과 송강호가 라이벌인 이유이기도 하다. 둘 모두 역대급 연기력과 필모그래피를 갖고 있으면서 서로 완전히 다른 스타일의 연기를 하기 때문에 우열을 가릴 수가 없는 것이다. 최민식이 끝없이 불타오르는 뜨거운 연기에 강점이 있다면 송강호는 완벽히 절제되고 정확한 연기에 있어서 따라올 자가 없다. 반대로, 송강호가 자연스러운 감정 전달과 생활 연기에 일가견이 있다면 최민식은 다양한 종류의 캐릭터를 소화해내는 데 굉장히 훌륭하다. 해외로 치면 톰 행크스와 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송강호와 최민식의 관계 정도 되겠다. 사실 관객이 느끼는 연기 스타일로 보자면 더 예전 배우인 알 파치노와 로버트 드 니로의 관계가 더 비슷하다. 이 경우 배우의 커리어가 진행되는 과정도 어느정도 맞아 떨어진다. 박찬욱감독은 이렇게 평가했다. 고전주의자 최민식과 자연주의자 송강호가 한국 영화계의 굳건한 두개의 축이라고...
정통 연기를 전공하고 메소드 기법에 바탕을 둔 연기를 한다. 영화 《파이란》 이강재 역을 맡았을 때는 실생활에서도 어느 순간 3류 깡패로 둔갑했었다는 주위의 전언이 있다. 40대 이후로는 이런 방식의 연기에 어느 정도 거리를 두는 듯 하다. 결정적인 계기는 《악마를 보았다》에서 살인마 역을 맡았을 때였는데, 본인 입으로 "너무 몰입하면 난 지금 구치소에 있어야 한다"고 했고[14] 이 말을 들은 주위 스태프들은 추임새로 "그럼 저희가 사식으로 군만두를 넣어드리겠다고 했다."
'악마를 보았다' 촬영 이후 후유증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보는 이들도 그랬거니와 연기를 하는 최민식 역시 쉽지 않았다. 최민식은 영화 개봉을 앞두고 가진 인터뷰에서 “살인마의 ‘살’자도 다신 안하고 싶다”며 손사레를 쳤다.
뿐만 아니라 최민식은 “영화 촬영을 하면서 엘리베이터에서 친근감을 표시하던 아저씨가 반말을 하자 ‘이새끼 왜 반말을 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나에게 섬뜩함을 느꼈다”며 살인마 연기에 따른 후유증을 털어놨다.
- 인터뷰 기사
2.2. 작품별 상세
1994년 MBC 드라마 《서울의 달》에서는 상경해 생활하는 순박한 시골총각 박춘섭 역할을 맡아 사기꾼인 김홍식(한석규)과 함께 2류를 꿈꾸는 3류 인생 연기를 선보였다. 이때 찍은 전설적인 광고가 바로 운지천. 덕분에 뒤의 장승업과 함께 필수요소 2연타를 올린다. 1년 후 1995년에도 MBC 에서 방영한 정치드라마 《제4공화국》에 김대중 의원 역할을 맡아 연기하였다.
1996년 드라마 《그들의 포옹》 촬영중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인하여 한동안 연기를 쉬고,[15] 부상 후유증으로 인한 슬럼프로 한동안 방황했다고 한다.[16] 이후 1997년 영화 《넘버 3》의 깡패보다 더 깡패같은 3류 검사 마동팔 역으로 돌아오고, 그 다음해인 1998년에는 김지운 감독의 《조용한 가족》에서 어수룩한 삼촌 역을 맡는다.
1999년 히트 포인트가 되는, 강제규 감독의 《쉬리》에 최종보스(?)인 북한 특수 8군단 박무영 소좌 역할로 등장해 사람들을 충격과 공포에 몰아넣는다. 《서울의 달》에서 맡은 순박하고 부지런한 청년의 느낌이었던 최민식은 이 영화로 그동안 주목을 받아온 주연 한석규를 넘어선 관심을 받게 되고, 그 해 대종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한다. 당초 캐릭터는 조연급 캐릭터였지만 주연을 넘어서는 압도적인 연기력으로 주연상을 받게 된다. 1995년 《태백산맥》으로 대종상 남우주연상을 받은 김갑수에 이은 2회 수상이고, 이후 2018년에는《공작》으로 역시 대종상 남우주연상 받은 이성민도 있었다.[17] 그리고, 같은해에 개봉한 《해피엔드》에서는 무력한 중년남자로 등장해 사람들을 혼란에 몰아넣었다. 뭐야 이거 무서워.
2002년 《취화선》에서는 오원 장승업 역할을 맡아 약간 혼란스러운 자기 세계를 갖는 화가로 등장해 "야! 이 개자식들아!"라는 명대사를 남겼으며, 2000년대 초반에 필수요소로 강림해 많은 인기를 누렸었다. 물론 필수요소라는 파워 때문에 작중 최민식의 연기가 가물거리기도 하지만, 최민식의 연기는 "최민식이 아니면 표현할 수 없었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의 몰입도를 보여줬다. 그리고, 바로 전 해에 개봉한 《파이란》에서는 지방 조폭 똘마니인 이강재 역을 맡아 웃음과 눈물을 자아내는 연기를 보여줬다. 영화는 흥행에 실패했지만 최민식은 그 해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을 탔다.
2003년 《올드보이》에서 오대수 역을 맡아 범인은 소화하기 힘들 스타일과 복수에 굶주린 짐승같은 연기[18] 를 보여 남우주연상으로 그랜드 슬램에 올랐다.[19] 최민식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쟁쟁한 작품이 워낙 많지만 최민식의 연기 정점에 있는 작품은 누가 뭐래도 《올드보이》다.
그 외에도 스크린 쿼터제 축소에 대한 극렬 반대의 입장에 서서 1인 시위 등을 했으며 '''옥관 문화훈장'''을 반납하는 항의를 보여 국민들의 관심을 이끌어냈고, 미국의 2차 이라크 침공당시 한국군의 파병에 대한 반대 시위 및 FTA 반대 입장에 섰다. 스크린 쿼터 유지 입장과 같은 맥락에서인지 충무로의 영화 제작자들이 높은 개런티로 모셔오려고 해도 거절하다가 독립영화에 가까운 《히말라야 바람이 머무는 곳》에 출연하게 된다.
2011년 《마당을 나온 암탉》에선 청둥오리 '나그네'의 성우를 맡았다. 연예인 더빙으로 전체적인 더빙 퀄리티[20] 에 큰 비판을 받았던 작품이지만 박철민과 함께 거의 유일하게 더빙 실력을 호평받았다.
2012년 2월 개봉한 《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에선 비리 세관 공무원 최익현 역을 맡았다. 이 작품에서도 인상깊은 연기를 보여주었고, 《악마를 보았다》보다 대중적인 작품이었기 때문에 최민식을 잘 모르던 사람들에게도 잘 알려졌다. 이것으로 2012년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하였다.
2013년에는 명량 해전을 다룬 영화 《명량》에서 충무공 이순신 역으로 캐스팅되었는데, 개봉 전에는 최민식의 필모그래피와 정반대인 이순신 역을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으나[21] 2014년 개봉 후에는 명량 해전 당시 충무공의 절박한 심정을 잘 표현했다는 호평이 쏟아지고 있다. 《올드보이》등에서 보여준, 미친 것처럼 보일 것만큼의 엄청난 연기를 보여주기 보다는 이순신이라는 이름의 무게감 때문인지 조금은 절제된 연기를 보여주었지만 이것도 먹혔다.《명량》은 총 3부작으로 예정되어 있어서 특별한 일이 없는 이상 이순신 연기를 두번 더 할 것으로 '''보이지만...'''
김한민 감독이 명량 후속작을 미루고 봉오동 전투를 소재로 한 영화를 준비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봉오동 전투 영화가 끝난 후에 명량 후속작을 기획할 수도 있지만, 그러려면 꽤 오랜 시간이 지나야 하고[22] 최민식의 나이가 나이인지라 액션 연기에 무리가 오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사람들도 많다. '''사실 명량 상영 당시 언론 인터뷰에서 이순신 장군 연기에 부담감이 엄청났다고 말했으며, 더는 안한다고 감독에게 단단히 얘기해뒀다고 밝혀서 가능성이 희박해졌다.'''
2013년 2월에 개봉한 영화 《신세계》에서 강과장 역으로 등장해 호평받고 있다. 박훈정에 따르면 대사를 현장 와서 외운다고 한다.
2014년 초에는 뤽 베송 감독의 미국 영화 《루시》에 스칼렛 요한슨, 모건 프리먼과 함께 주연으로 캐스팅되었다. 마약조직의 보스 역으로 공개된 예고편 상에서 가히 《악마를 보았다》 수준의 극악한 카리스마를 보여줘 기대를 모으고 있다. 참고로 원래는 더 중요한 역할이었으나 영어를 못해서 상당부분 짤렸다고 한다.
2014년 8월 10일을 기점으로 《명량》이 역대 최단 기간으로 천만을 돌파함으로써 최민식도 그동안 연이 없었던 천만 관객 배우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이로서 한 시대를 풍미한, 충무로의 트로이카라 불린 송강호, 설경구, 최민식 모두가 천만 관객 배우가 되었다.
그러나 2015년 무려 손익분기 600만인 대호가 135만을 기록하는 대실패를 기록하였다. 2017년에 개봉한 특별시민과 침묵 역시 크게 실패했는데 특별시민은 손익분기의 절반, 침묵의 경우 손익분기 1/4도 미치지 못한 뼈아픈 실패를 겪었다. 또 2019년 하반기 천문: 하늘에 묻는다 역시 손익분기점 돌파에 실패하며 흥행에 실패했다 이에 따라 2000년대의 긴 활동 휴지기를 넘어서는 대단한 위기상황이라는 평가이다. 손익분기점에 살짝 못 미친 최근작 천문을 제외하면 세 작품이 모두 손익분기점에 살짝 못미치는 정도가 아닌 말 그대로 폭망했으며 통상 이 정도로 흥행에 실패하면 배우로서 다음 작품에서 주연을 맡기 어렵다. 물론 최민식의 경우 연기력으로 보나 화제성으로 보나 여전히 주연급 탑 배우의 위치에 있으니 두고 봐야할 일이다.
2020년 드라마로 복귀 검토중이라는 기사가 나왔다.# 영화 범죄도시 강윤성감독의 신작 카지노(가제)를 긍정 검토중이라 하며, 2021년 방영예정이라고 한다. 출연확정시 97년에 방영된 MBC 사랑과 이별이후 24년만에 복귀인 셈이다.
3. 명대사
최상급 연기력과 화려한 필모그래피, 그동안 연기해 온 독특한 인간군상들이 맞물려서, 엄청난 명대사들을 보유하고 있다. 명량 개봉 전에는 네이버 영화의 명량 명대사 항목이 죄다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 패러디들로 가득했을 정도.
-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영화)
- >"너희들은 당연한 너희몫을 뺏기고도 분한줄 몰랐고 불의앞에 굴복하고도 부끄러운줄 몰랐어. 그런 너희들이 앞으로 어른이 되서 만들세상은 상상만해도 끔찍해. 너희들도 다똑같은 놈들이야 이놈들아!''
- 넘버 3
- >"내가 세상에서 가장 좆같아하는 말이 뭔지 아니?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야. 정말 좆같은 말장난이지. 솔직히 죄가 무슨 죄가 있어? 그 죄를 저지르는 좆같은 새끼들이 나쁜 거지."
- 취화선
- >"야! 이 개자식들아!"
- 올드보이
- 악마를 보았다
-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
- 신세계
- 명량
- 천문: 하늘에 묻는다
4.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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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가끔 까이는 흑역사라면 대부업체인 리드코프의 광고모델을 맡은 일 [27] 로 이 때 한참 까였다. (리드코프 최) 본인이 인터뷰에서 밝히길 분명히 잘못한 일이며 CF에 대해 나름대로 고심하게 되었다고 한다.
10살 무렵에 결핵에 걸려 의사도 포기하고 죽음을 준비하라고 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절에 들어가 휴양을 하고 간호사 출신 어머니의 극진한 간호로 기적적으로 건강을 되찾았다고 한다.
권투하면 또 최민식을 빼놓을 수 없다. 15년간 감금된 방에서 권투 특훈으로 다져진 올드보이의 오대수가 그러했다면 영화 주먹이 운다에서는 퇴역 은메달리스트 강태식의 몰입 연기를 위해 실제로 강도높은 웨이트 트레이닝과 조깅운동을 병행하고 정오무렵부터 하루 4시간 이상 꾸준히 훈련하여 몸을 만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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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면 합필갤의 전설이다. 취화선으로 아햏햏의 소재를 만들어주기도 했으며 운지천으로 다시 전설이 되었다. 하지만 디시인사이드와 일베저장소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상대로 운지천과 엮어서 장난질을 하는 바람에 운지천의 이미지가 나쁘게 변하기도 했다.
충무로의 소문난 애연가이자 담배예찬론자다. 술보다 담배를 더 좋아한다고 하며 돈이 없던 연극배우 시절 전철과 개비담배 중 하나를 골라야 하는 상황에서 개비담배를 샀다고 한다. 실제로 영화 상에서도 맛깔나게 피우는 배우 중 한 명.
최민식의 동생 최광일도 배우다.[28] 다만 영화보다 연극에서 주로 활동하는지라 대중적인 인지도는 낮았지만 2017년에 김윤석, 하정우 주연의 영화 1987에서 유해진의 직속상관이자 교도관 역할로 나왔다.
이른바 '발연기 배우, 정확히는 연기력이 부족한 아이돌 출신 배우들이 등장하는 문제에 대해 쓴소리를 한 적이 있다. 요약하면 아이돌의 연기력이 부족하다고 비난만 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며, 아이돌 연예인들에게 제대로 연기력을 향상시키려 하지 않고 무작정 '꽂아 넣기'를 하는 기획사를 비롯한 시스템의 문제가 더 큰 점을 보자는 것.
5. 개인사
군대를 제대한 후에 본격적으로 연극무대에 오르게 되고 그러다 '실비명'이라는 작품에 동반 출연하고 있던 연극배우 이화영을 만나게 된다. 연극 작품을 하면서 두 사람은 연인 사이로 발전을 했고, 1990년 결혼식을 올리게 된다. 최민식은 드라마 야망의 세월로 큰 인기를 얻고 있을 당시 결혼을 했는데, 최민식과 이화영 사이에는 자녀가 없었다. 그런데 최민식은 결혼 6년 만에 1996년 이혼을 했는데 이혼사유는 성격차이로 알려져 있다.[29]
이혼 후 3년 가까이 혼자 살다가 동국대 후배이자 소속사 대표인 전영민씨의 소개로 김활란을 만나 1년 6개월의 열애 끝에 1999년 9월 재혼을 했다. 영화 올드보이로 칸 영화제에 진출했을때 아내인 김활란과 함께 레드카펫에 서기도했다.#[30] 현재 둘 사이에도 자녀가 없다.
6. 필모그래피
6.1. 영화 및 애니메이션
6.2. 드라마
6.3. 연극
6.4. CF
6.5. 기타
"100인의 배우, 우리 문학을 읽다" 라는 오디오북에서 '오발탄'을 읽었다. 위 동영상에서 샘플을 들을 수 있는데 원본은 총 93분이다.
7. 수상
8. 관련 문서
[1] 음력 4월 27일[2] 전주 최씨 문열공파(文烈公派) 26세손 '植' 항렬로 추정되나 확실하지 않다. 문충공파(文忠公派) 26세손에도 '植' 항렬이 있어서 그렇다.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의 최익현이 영화 초반에서 "경주 최씨 충렬공파"라고 밝혀서 최민식도 진짜 그쪽 집안이 아닌지 착각한 사람들이 은근히 많았다. 그러나 인터뷰에서 "전주 최씨"라고 확실히 밝혔다.[3] 이휘향의 아들 일명 '꾸숑' 역.[4] 당연히 그 친일반민족행위자 김활란이 아니다. 최민식은 전처와 이혼 후 1999년 9월에 김활란과 재혼했다.[5] 셋째이다. 참고로 본인은 4형제 중 차남.[6] '''경이로운 소문'''의 '''진 최종보스'''인 '''신명휘'''로 유명해진 배우다. 다른 작들도 있지만 잘 알려진 건 경이로운 소문이다. [7] 이경규의 3년 후배로, 서로 친하다. 이경규 특유의 손 입에 대고 나불대는 제스처도 똑같이 재연.[8] '''송강호, 설경구, 최민식''' [9] 래퍼 노엘의 EP 18 S/S 의 4번 트랙 '연기대상'에서 중간에 삽입되는 수상소감이 바로 이거다.[10] 대일고는 당시 정릉에 있었는데, 성북구와 도봉구를 나누는 능선의 산꼭대기, 우범 지대와 부촌의 경계에 있었기 때문에 통학하는 학생과 삥을 뜯으려는(=노상강도) 동네 양아치들 사이에 싸움이 종종 일어났다.[11] 그 당시 연극계에선 천재소리 듣던 다크호스였다.[12] 엄마 역 이휘향과는 고작 2살 차이다.[13] 이후 강 감독은 당시 고액 개런티 배우라고 깐 배우들에 대한 사과를 하긴 했었다.[14] 실제로 영화에 나온 범죄(강간 및 토막살인(3건), 살인 및 사체유기(2건), 주거침입 및 살인, 미성년자 납치 및 강간, 준강간(협박에 따른 간음)만 해도 기본이 무기징역이고 사형도 충분히 가능하다.[15] 《악마를 보았다》 인터뷰 때 영화에서 내용처럼 데뷔 후 실제로 아킬레스건이 끊어지는 부상을 당한 적이 있었다고 했는데 그때가 이 때인듯...[16] 인터뷰에서 일수 찍듯 방송국에 출근해 그냥저냥 지내다가 이래서는 안되겠다 싶어 한석규에게 영화일을 부탁했다고 밝힌 적이 있다. 90년대 초중반까지 최민식은 브라운관에서 정말 많이나왔다. 드라마는 물론 예능프로까지 정말 많이나온 배우였다. 가족오락관에서도 엄청나게 많이 출연을 했었다. [17] 이로 인해 최민식에게 붙은 별명이 한국의 게리 올드먼이다. 실제로 외모도 닮았다.[18] 메쏘드 연기를 했을 거라 생각하나, 배우 본인은 캐릭터와 거리를 두면서 연기했다고 한다. 최후반에 이우진에게 울부짖고, 말 그대로 개처럼 구는 유명한 씬도 세트장에서 푹 자다 일어나 한 연기라고.[19] 대종상, 청룡영화상, 대한민국 영화대상 등 국내 남우주연상은 다 싹쓸이 했다. 로저 이버트는 최민식의 연기를 보고 마라톤 맨에서 나치 치과의사를 연기한 로렌스 올리비에를 평범한 치과의사로 만들 정도의 광기를 지녔다고 대호평했다.무슨 말인가하면 사람 이를 그냥 뽑아버리는 장면이 두 영화에서 똑같이 나오기 때문.[20] 작품성 평가는 좋다.[21] 김명민의 이순신 캐릭터가 대중의 기억에 또렷하게 남아있다는 점을 들어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다. 다만, 이순신 캐릭터를 열연한 게 김명민이 최초인 것도 아니고 또한 김명민이 유독 뛰어났다고만 하기도 힘들기에(나이든 사람들에게 김무생 의 이순신 캐릭터와 비교당한 적이 있던 걸 상기하면...) 차후를 지켜봐야 할 부분이다.[22] 영화 한 편 제작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몇 년이 기본이다. 특히 대규모의 제작비가 드는 블록버스터 액션사극같은 경우에는 고증 답사 등 세세한 것까지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명량같은 경우에는 4년이 걸렸다.[23] 혹은 10년이 아닌 15년. 10년은 불량배 패거리들에게 시비를 걸었을 때, 15년은 미도에게 강간을 시도했다가 실패했을 때.[24] 여중생을 강간하면서 한다는 말이 저거다.[25] 넷상에서는 "제가 당신을 사랑해서는 안되겠지요?"라는 정중하고 로맨틱한 대사로 왜곡된 버전으로도 유명하다(...) [26] 영화에서는 "신에게는"과 "아직"의 순서가 바뀌어서 나온다.[27] 빅스타급 인사로는 최초수준이었다. 시기만으로는 한채영이 약간 빠른데, 임팩트는 최민식이 더 컸다. 더구나 그 내용이 대출을 상당히 가벼운 일로 간주하게 만드는 내용이라서 파장이 엄청났다. 대부업 광고 모델들이 최민식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할 정도로 차이가 크다. 더구나 이 때는 스크린 쿼터제 폐지와 외제차 논쟁이 한참 불이 붙은 뒤였다. 스크린쿼터제 폐지 반대 운동 벌이던 사람이 외제차는 상관없다고 하더니 이제는 한국 사채업체를 살리나 하는 비판도 있었다. 리드코프가 유일한 한국자본출신 대부업체라는 것을 활용한 이야기.[28] 1971년생[29] 전부인 이화영은 이혼 후 미국으로 건너가 살다가 2014년 드라마 순금의 땅, 황금거탑 등으로 복귀를 한다. 꾸준히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을 하고 있다.[30] 경기도 일산에서 용역회사를 운영하는 김갑우씨의 1남3녀 중 둘째딸로, 대원예고에서 발레를 전공한 발레리나였다. 결혼 전까지 집에서 가사를 도우며 신부수업을 받아왔었다.[31] 국내 흥행으로는 손익분기를 넘지 못 했으나, 해외판권으로 손해 만회[32] 국산 애니메이션 최초로 100만 및 200만을 돌파해 손익분기점을 넘은 작품.[33] 역대 관객 수 1위[34] JTBC뉴스룸 시작전 광고로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