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사자(아이돌)
1. 개요
[image]
1997년 10월 20일에 데뷔한 대한민국의 4인조 보이그룹이다.'''Ah-Yeah~ 태사자 in the House! Uh!'''
'''가요계의 신사, 귀공자, 댄디보이'''라고 불리던 한국의 90년대 1세대 아이돌 그룹.
1997년 10월 20일 SBS <충전 100%쇼>에 데뷔곡 '도'로 데뷔했다.[2][3] '도'의 인기에 힘입어 후속곡 'Time'이라는 명곡으로 1998년 4월 18일 첫 1위를 거머쥐었다.[4] 소속사의 경영 악화로 완전체 활동은 2000년 발표한 정규 4집 도약(跳躍)을 마지막으로 2001년 자연스럽게 해체 수순을 밟았다.
2. 멤버
3. 상세
김희선이 소속되었던 회사 (주)매스컴에서 제작된 팀으로 알려져 화제를 모았으며 이후 같은 시기(8일 차이)에 데뷔한 NRG와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며 2000년대 초반까지 1.5군 아이돌로 활약했다.[6][7] 작곡가 장용진과 음악 프로듀서 박재완, 김현량 스타일리스트 등 1집 <太四子>에 투입된 인력은 업계에서 손꼽히는 인물들로만 구성되어 화려한 데뷔를 하였고, 이듬해 음악방송 1위를 차지하는 등 치열한 90년대 가요계에서 입지를 다졌으나, 점차 소속사의 내부 사정으로 인해 전작과 같은 투자가 이루어지지 못했고, 겨우 활동을 이어가다 4집 <도약(跳躍)>을 마지막으로 해체를 하게 되었다.
김형준(20) 박준석(19) 이동윤(19) 김영민(18)의 청춘 4인조는 젊음이 최고 무기다. 스피드와 박력 그리고 테크닉에서 이들은 어느 누구보다 낫다는 자부심으로 지난 3월 뭉쳤다. (...) 데뷔 시절 검도복으로 시선을 모으더니 어느새 빨강교복의 아이비룩으로 패션을 바꿔, 젊음을 전면에 내세웠다. 지난 가을 결성된 팬클럽 `천우운풍'의 멤버가 600여명을 헤아린다는 사실도 이들의 기세가 욱일승천함을 알리는 부분.
그룹명은 삼국지에서의 오나라 태사자에서 유래했다. 같은 소속사이자 <도> 뮤직비디오에 출연한 김희선이 삼국지 게임을 하다가 태사자가 좋아서 지었다는 이야기로 알려졌으나 사실은 홍보를 위해 합의하에 김희선의 이름을 빌린 것이며, 실제로는 김희선이 아닌 소속사 사장이 삼국지 게임을 좋아해서 지었다고 한다.[8] 삼국지의 태사자와는 발음만 같고 한자 이름을 새로 만들어 太四子라고 지었다. 팬클럽명은 천우운풍(天.雨.雲.風.)으로 1집 활동 당시 각 멤버들의 닉네임으로 사용했다. 상징색은 하늘색으로 리더 김형준의 닉네임에서 비롯된 듯 하다.노래, 춤, 이미지 등 삼박자에 모범생적인 매너와 귀여운 이미지가 추가되면서 팬들의 사랑을 받는다는 것이 중론이다. 태사자의 뮤직프로듀서인 박재완씨 스스로도 "귀여운 이미지 파워에 순응적이고 모범생적인 이미지가 성공의 비결"이라고 꼽고 있다. 특히 태사자가 다른 하이틴그룹에게서 찾아보기 힘든 라이브 실력을 갖춘 점도 강점이라고 덧붙였다. 사실 깔끔한 외모에 방송계가 인정할 정도의 예의바른 몸가짐으로 환하게 웃으며 몸을 움직이는 태사자 는 누구에게나 부담없고 즐겁게 다가오고 있다.
MBC 음악프로그램이었던 '생방송 젊은 그대'[9] 에서 1998년 4월 18일자로 1위를 차지했으나, 위키백과 등지에서 쿨의 애상이 1위했다고 오기되어 있어 태사자의 1위 공로가 오랜 시간 묻혀져 왔으며 현재까지도 잘못 기록.[10]
응답하라 1997에서는 H.O.T.나 젝스키스에 비해 엄청 초라한 인기인 것처럼 묘사했으나 앞의 두 아이돌 그룹과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초라한 것처럼 보일 뿐이지 실제 우후죽순처럼 생기다가 사라진 수많은 1세대 그룹들 중 앨범을 3집 이상 발표하면서 5년 가까이 장기 활동한 아이돌 그룹은 흔치 않았다. 때문에 이들은 그 나름대로 많은 수의 고정팬들을 보유하고 무시 못할 인기를 누렸다고 할 수 있다.
활동 당시 태사자는 의상부터가 수트를 위주로 한 '''모델 같고 남자다운 댄디한 콘셉트'''였으며 이런 점에서 아기자기하거나 또는 헐렁한 힙합 패션 위주였던 당시 다른 보이그룹의 콘셉트와는 차별화되어 있었고, 오히려 10대보단 20대 층에서 큰 지지를 받았다.[11] 특히 10대 중후반, 20대 초반 남자들 사이에서 복고패션과 세미정장을 유행시킬 정도로 파급력이 컸다. [12]
[image]
[image]
[image]
비록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그룹은 아니였으나 뛰어난 비주얼 하나만은 팬 아닌 사람들에게도 매우 유명했다. 나 혼자 산다에 나온 신화의 김동완이 원조 꽃미남 그룹은 태사자였다며 지나가며 잠깐 언급했다.[13] 연예인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많았는지 태사자의 코디를 담당했던 김우리 스타일리스트가 여자연예인들이 엄청 소개를 받고 싶어했다며 회상하기도.[14] 작사가 김이나도 슈가맨 3 방송에서 태사자의 비주얼을 언급했다. 또한 이휘재는 2013년 한 방송에서 태사자의 비주얼을 맡았던 박준석에 대해서 "걸그룹 사이에서 서로 박준석이 내 것이라고 싸우고 그랬다"고 밝혔다.#
4. 활동
4.1. 활동 상세
- 정규 1집 태사자 (1997년 11월)
데뷔 앨범의 타이틀곡 <도>는 아~예~ 태사자 인 더 하우스![15] 이라는 도입부가 인상적인 댄스곡이며 가요톱텐 기준으로 6위까지 가면서 선전했다. 당시 1세대 아이돌의 전성기 시절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꽤 선전한 것이며 라이브 무대도 종종 선보였다. 후속곡은 <Time>으로 1998년 4월 18일 MBC <젊은 그대>에서 1위를 하면서 성공적으로 데뷔 활동을 마쳤다.[16]
- 정규 2집 태사자 二 (1998년 8월)
리드 싱글 <애심>으로 상승세를 이어갔으며 1998년 SBS 가요대전에서 신인상을 받았다. 가장 활동 기간이 길었던 2집의 후속곡인 <아그작>은 태사자의 유일한 밝은 분위기의 댄스곡으로 이 곡을 후속곡으로 활동해주길 바랬던 팬들의 의견을 반영했다고 한다. 마무리 활동곡으로 발라드 를 선보였었다.
- 정규 3집 2000-1 (1999년 7월)
3집 앨범 <회심가>는 소속사 내부 문제 등으로 인해 활동이 원활하지 않았으며 그래도 가요차트에선 중위권을 기록하면서 선전했다. 후속곡으로는 <시>라는 발라드곡으로 짤막하게 활동했다.
- 정규 4집 도약(跳躍) (2000년 6월)
4집 앨범 '도약'의 타이틀곡으로 내정했던 <Episode>가 가사중 '뻑이가 뻑가'라는 구절이 있다는 이유로 방송 금지를 먹는 바람에[17] 후속곡으로 내정됐던 <Again>과 <체념>이라는 곡으로 타이틀곡을 바꿔 활동했지만 20위권 안팎의 순위를 기록하면서 예전과 같은 인기는 얻지 못했다.
- 베스트 앨범 Forever History (2001년 11월)
이후 소속사의 내부 사정까지 겹치게 되면서 2001년 베스트 앨범격이었던 4.5집을 마지막으로 그룹은 공중분해 수순을 밟았다. 사실 4.5집은 멤버들과 별다른 논의 없이 발매된 앨범이라 멤버들(김형준, 이동윤, 박준석)도 출시 이후에야 알았다고 전해진다. 그 뒤 베스트 앨범의 타이틀곡이었던 <영원히>를 메인보컬 김영민 혼자 방송 활동을 했다. 음악캠프 영상
4.2. NRG와의 라이벌 구도
태사자와 관련해서 자꾸 NRG가 거론되는 이유는 최근까지 활동하고 있는 NRG 멤버들의 계속되는 언급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태사자는 1997년 10월 20일, NRG는 1997년 10월 28일, 단 8일 차이로 데뷔했기 때문에[18] 라이벌로 불릴 수밖에 없었다. 오랜 시간 동안 NRG 멤버 중 일부는 “저희는 라이벌이 H.O.T.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갑자기 태사자라는 그룹이 나오더니 저희 발목을 잡았다. 저희는 H.O.T.를 따라잡기 바빴는데 갑자기 태사자의 강제 라이벌이 됐다”라고 이야기하여 논란이 되곤 했다. 굳이 따지자면 태사자가 먼저 데뷔했기 때문에 태사자가 갑자기 나와 NRG의 발목을 잡은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할 수 있겠다.
사실 NRG가 태사자의 라이벌이라고 할 수 있는 기간은 1집과 2집뿐이다. 1집은 데뷔 시기가 거의 같았고, 2집은 같은 시기에 컴백했기 때문이다. 3집은 태사자가 1999년 7월에, NRG는 1999년 11월에 활동했으며, 4집은 태사자가 2000년 6월, 엔알지가 2001년 6월에 활동했으므로 활동 시기가 1년이나 차이가 난다.[19] 참고로 두 앨범 모두 가요 프로그램 성적으로는 태사자가 앞섰다. 두 그룹 다 10위 안쪽에서 크게 차이 날 것 없는 성적을 기록했으나 태사자가 근소한 차이로 앞섰음은 당시의 가요 프로그램 순위 영상을 보면 알 수 있다.
참고로 NRG는 5집 <Hit Song>으로 1위를 차지했을 때가 2003년 3월 22일이었으므로 태사자는 이미 해체된 후였고 NRG는 활동을 계속하면서 승승장구했다.[20]
위와 같은 이유로 태사자 멤버들과 팬들은 NRG 멤버들이 방송에 출연하여 아직까지도 "개인적으로 팬덤으로 보나 순위로 보나 태사자는 저희에게 안 됐었다"며 "객관적인 지표가 있다"라고 이야기하는 데에 있어서 의문점을 가지고 있다.
두 그룹의 팬덤 또한 차이가 확연했는데, 태사자는 수트 위주의 댄디한 콘셉트로 성숙한 이미지를 풍기면서 20대와 30대 여성들에게 많은 지지를 얻었다. 10대에서도 중학생보다는 고등학생 팬이 많았고, 말끔한 이미지로 아이돌로서는 보기 드물게 10대 후반, 20대의 남성들에게도 많은 지지를 얻었다.[21] 반면 NRG는 발랄한 콘셉트로 태사자보다는 조금 어린 연령층의 소녀팬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사실 데뷔 시기가 비슷하다는 거 이외에는 추구하는 음악적 노선도 전혀 달랐고, 태사자 멤버들은 댄디하고 미소년인 콘셉트를 유지했던 반면 NRG는 이성진, 천명훈이라는 독보적인 입담꾼들이 있었기에 주로 예능에서 맹활약했다. 즉 카테고리 자체가 아예 다른 셈.
방송에서 NRG 멤버들의 이러한 발언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태사자 멤버들은 이에 대해 보살급 대처를 하고 있다. 2014년 7월, KBS 2채널의 ‘가족의 품격 풀하우스’라는 NRG의 멤버 천명훈이 패널로 출연하고 있는 프로그램에서 연예부 기자 홍종선 씨가 엔알지에 대해 “H.O.T.의 대항마로 키워졌던 NRG가 태사자를 압승하였다.”라고 평가하여 태사자 팬들이 매우 분개한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에 대한 팬들의 불만 표출에도 태사자의 멤버들은 지금 열심히 활동하는 그분을 위해 좋게 말해준 것이니 너무 속상해하지 말라고 다독이는 등 대인군자다운 모습을 보여주기도.
2015년 1월 24일, MBC의 세바퀴라는 프로그램이 토토가 시즌 2라는 주제로 방송을 진행하면서 패널로 출연했던 엔알지의 멤버 노유민이 태사자의 김형준과 통화를 희망해서 전화 연결을 했다. 후에 김형준은 팬과의 만남에서 “많은 사람들 중에서도 유민이가 연락을 해주어 더 좋았다.”라고 이야기했고, 이 일을 전해 들은 이동윤은 팬들에게 “NRG의 문성훈, 노유민, 김환성을 참 좋아했다.”라고 추억했다.
4.3. 그 후, 개인 활동
입술 옆의 점이 포인트였던 리더 김형준은 2001년부터 1년간 Mnet의 VJ로 활동한 바 있으며 이후 클레오의 박예은과 쇼핑몰을 운영한 적이 있다. 이후 슈가맨 3에서는 현재 쿠팡에서 택배 업무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관련 기사
중학교 졸업 후 미국으로 온 가족이 이민갔던 이동윤은 2001년 4월 이후 결국 팀이 해체되자 8월 초 미국으로 돌아갔고, 현재는 LA에서 요식업에 종사하고 있다.
박준석은 예능인, 모델, 배우로 전향해 KBS2 드라마 구미호 외전과 SBS 시트콤 귀엽거나 미치거나 등에 출연했으며, 영화 <두뇌유희프로젝트 퍼즐>에 주연으로 출연했다. 당시 박준석이 출연했던 여러 CF 중 SKY 뮤직폰 광고는 큰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해당 CF 동영상 예능에선 태사자 활동기간 동안 미처 보여주지 못한 끼를 발산한적이 많았는데 주로 선보였던 개인기가 맹구와 라이벌이었던 NRG의 이성진 성대모사였다. 나중에는 이걸로 롯데리아 CF까지 찍었다.
메인보컬이자 막내인 김영민은 2013년경의 인터뷰에서 재결합 가능성은 부정적인 편이라 답했고 태사자 활동 당시 가수를 큰 꿈 없이 시작하여 성의없는 활동을 했던 것 같다며 후회의 뉘앙스를 전했다.
2017년 4월 17일에 박준석의 결혼 기사가 나왔다. 그의 예비 신부는 4세 연하의 영화계 엔터사 대표로[22] , 두 사람은 한 영화제에서 만나 연인관계로 발전했다. 그는 상견례를 마친 뒤 결혼 준비에 전념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예식은 반포한강공원에 위치한 세빛섬에서 진행되었으며, 멤버인 김영민이 축가를, 김형준이 디제잉을 해주었다고 한다. 결혼식 이후인 동년 9월에 자기야 - 백년손님에도 출연했다.
4.4. 슈가맨 3
'슈가맨2에서 보고 싶은 가수들'에는 태사자가 선정되었을 정도로, 슈가맨에서 태사자를 보고싶어하는 사람이 많았다. 결혼 후 예능에 간간이 출연했던 박준석 외에 나머지 멤버들의 근황은 잘 알려져있지 않아, 그외의 멤버들의 소식을 듣기 어렵다는 점에서 진정한 슈가맨으로 부를 만하다는 점에서였다.#
김형준의 인스타그램 게시물로 나중에서야 알려진 사실이지만, 투유 프로젝트 - 슈가맨이 파일럿 프로그램일 때부터 계속 섭외 요청을 받았다고. 하지만 활동을 할 생각도 없었고, 대중들의 추억 속 태사자 모습이 아니라서 계속 거절을 했었다고 한다.
2019년 11월 29일, 투유 프로젝트 - 슈가맨 제작진이 시즌 1부터 계속해서 이들을 섭외한 끝에 슈가맨 3에서 첫 번째 재석팀 슈가맨으로 출연하여 최연제와 함께 시즌 3의 시작을 화려하게 장식하게 되었다. 슈가송인 도를 비롯하여 애심, 타임, 회심가를 불렀다. 도, Time, 회심가, 애심
[image]
18년이라는 세월이 무색하게, 현직 아이돌이였던 시절 선보였던 무대를 그대로 재현하는 데 성공해 그 시절 태사자를 기억하던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심지어 예전보다 라이브 실력이 더 늘은 것 같다는 반응이 나오기도. 이 날 무대를 위해 많은 준비를 했다는데, 박준석은 11kg, 김형준은 15kg, 김영민은 19kg까지 뺐다고 한다.[23] 또한 제작진이 직접 전하길, '''역대 슈가맨 중 제일 연습을 많이 했다고'''. 이에 대해 리더 김형준은 이런 말을 남겼다.
방송이 나가는 사이 네이버와 다음 실시간검색어 1위를 차지했으며 이 날 무대 영상들은 방송이 끝난 후 네이버 TV 순위권에 머물러 있다.'''첫사랑을 20년 후에 보면 좋을 수도 있지만, 약간 실망하는 경우도 있잖아요. 저희도 다시 18년 만에 나왔는데 사람들이 '역시 옛날 추억으로 묻어 둘걸', 그런 느낌 안 나게 하려고 저희도 최선을 다했던 것 같습니다.'''
방송이 끝난 후 김형준의 인스타그램에 4명의 단체사진과 슈가맨 무대를 꾸미기 위해 도움을 준 스텝 한명한명에게 고마움을 전하는 게시물이 올라와 진한 감동을 주었다.#
전에도 나 혼자 산다에서 태사자를 몇 번 언급한 적 있는 이시언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보면서 울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슈가맨. 감사합니다 태사자. 첵엔투더백엔투더백"라며 글을 올렸다.#
4.5. 슈가맨 3 이후
태사자는 비록 현역 시절에는 가장 대중적인 그룹에 밀려 엄청난 인기까지는 얻지 못한 그룹이었지만 차별화된 컨셉과 호불호가 크게 갈리지 않는 좋은 곡들로 대중에게 호감의 인상으로 남았던 그룹이였다.
멤버들이 각자만의 사정으로 인해 연예계를 떠나고 사건 사고 없이 성실히 일반인으로 살다가 20년만에 슈가맨 3에 출연해 보여줬던 무대는 과거 열렬한 팬들이였던 이들 뿐만 아니라 이름만 알 정도였던 사람들에게도 큰 감동을 안겨주었다. 이러한 탓인지 방송이 나가기 전 200명이 채 안됐던 소규모의 팬카페는 방송이 나간 후 두 달이 된 현재 6000명 정도를 향하는 중.
이러한 뜨거운 반응의 이유는 과거 1세대 아이돌의 멤버 몇몇이 각종 크고 작은 사건에 연루되어 이미지가 굉장히 나빠진 반면, 태사자는 해체 이후 멤버 전원이 어떠한 사건 없이 조용하게 본인들의 생활을 살았기에 모범적인 이미지가 더욱 부각되어서이지 않을까 싶다. 또한 리더인 김형준은 화려했던 아이돌의 삶을 뒤로하고 택배기사 일을 하고 있었고, 이에 대해 굉장히 긍정적이고 개념적인 발언으로 인성이 재평가되어서 그 당시에 태사자의 팬이 아니었지만 뒤늦게 팬이 되는 현상도 일어나고 있다.
나름대로 큰 반응 덕분인지 각자의 생활로 돌아가려고 했던 태사자 멤버들도 당황스러운 상태라고 한다. 특히 보컬 이동윤은 현재 미국에서 식당을 운영 중이라 하루하루가 워낙 바쁜데, 한국에서 찾는 팬들이 갑자기 늘어나다보니 당황스럽다고. 비록 다른 1세대 그룹들처럼 재결합을 하고 본격적인 활동은 못하더라도, 기회가 생기면 방송을 나오거나 해서 팬들 앞에 나설 의향은 있다고 한다. 김형준은 멤버 박준석의 1인 기획사식으로 운영되던 소속사와 계약을 맺기도 했다.
5. 디스코그래피
6. 노래방 수록 목록
7. 수상 경력
7.1. 시상식
7.2. 가요 프로그램 1위
8. 여담
- 태사자는 데뷔 전 원래 혼성 그룹으로 준비 중이었으며, 당시 함께 연습했던 여자 멤버로는 가수 채연이 있다. 연습하던 도중 H.O.T.가 잘 되는 것을 보고 급히 남성 그룹으로 전향하면서 데뷔조가 꾸려졌기 때문에 태사자의 멤버들은 당시 여자 멤버들에게 매우 미안한 마음을 가졌지만, 후에 채연이 잘 되었을 때 매우 기뻐했다고 한다.
- 1집 데뷔곡 '도'의 뮤직비디오를 당시 건설중이던 인천국제공항의 영종도 부지에서 촬영했다고 한다. 태사자 '도' 뮤직비디오
[image]
- 호기심 천국이 방영될 당시 게스트로 출연하여 실전화기 실험을 하다 개사자가 된 적이 있다.
- 2001 베이징 하계 유니버시아드 개최를 기념하는 공연에 태사자와 베이비복스가 함께 참가하였는데, 태사자가 베이징 공항에 도착하자 수많은 중국 팬들은 공항에서부터 따라붙었으며 태사자와 베이비복스가 묵은 호텔 앞에는 며칠간 중국 청소년들이 떠나지 않았다고. 해외진출은 한 적이 없지만 아시아의 다른 나라에서도 꽤나 인지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 삼국지 디펜스에서는 동명의 장수 태사자가 퇴각대사로 이 그룹의 히트곡 도의 랩가사인 '아 예 태사자 인더 하우스!'를 외친다.
- 응답하라 1997 10화에서 클럽 H.O.T 들이 젝스키스 팬들을 도발할 때 옆에 태사자 팬들을 가리키며 쟤들이랑 놀라고 하는데 이때 태사자 팬들은 두 팬덤들과 비교해서 엄청 초라하게 나온다.
- 2017년 5월 보이그룹 EXO의 팬들이 걸그룹 트와이스가 자신들이 한국아이돌 최초로 시도한 초능력 컨셉을 표절했다고 주장하는 와중에 태사자가 초능력 콘셉트를 먼저 시도했다는 반론이 있었다. 그런데 사실 90년대 언론 기사에서는 태사자와 초능력을 같이 언급한 기사를 찾을 수 없으며, 뮤직비디오에서도 초능력 콘셉트가 드러나지 않는다. 실제로도 태사자는 초능력 콘셉트로 활동한 적이 없고 천, 우, 운, 풍은 단순 닉네임일 뿐이다.
- 슈가맨 3에서 밝히길, 세간에 널리 알려진대로 당시 (주)매스컴 소속 선배였던 김희선이 매우 잘해주었으며, 심지어 같이 홍대에서 새벽에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하고 논적도 있다고 한다.
[image]
- 활동 당시 김형준과 김영민이 제일 인기가 많아서 팬레터를 많이 받았던 반면 이동윤 앞으로 온 편지는 상대적으로 적어 상처를 많이 받았는데, 활동을 해 가면서 4명에게 오는 팬레터의 양이 비슷해져서 뿌듯했다고 한다. 그러나 사실은 매니저가 이동윤과 박준석을 배려해서 아예 김형준과 김영민의 팬레터박스를 따로 챙겨 둔 것이었다고... 이동윤은 18년만에 진실을 알게 되었고, 김형준이 이동윤을 생각해서 감춰왔었다고 털어놓자 "아예 말해주지 말든가!"라며 허탈해 했다.
- 도전 1000곡의 첫 우승자며, 무려 1차와 2차 패자부활전을 통과하고 결승을 진출했다. 방송을 보면 사실 제대로 부른 노래는 없다.
- 아무래도 2001년 지방행사를 마지막으로 태사자의 완전체 무대가 18년이라는 긴 시간이 흐른 이후 이루어졌다보니, 슈가맨 컴백 후 방송이나 라디오에서 한창 활동할때 당시의 질문이 많은데, 이는 자칫하면 꼰대 같은 답을 하기 쉬운 질문인데도 태사자 멤버들은 재밌고 재치있는 답변을 하는 편이다. 또한 노예계약과 다름없던 당시 소속사와의 문제도 과한 사연팔이처럼 들리지 않게 담백하게 설명한다.
- 직장 생활을 그만둔 사람을 퇴사자라고 부른다. 태사자의 /ㅐ/ 발음 및 퇴사자의 /ㅚ/ 발음이 다르지만, 전반적으로 퇴사자와 태사자의 발음이 비슷하여 연상 작용이 일어난다.
[1] 4집에 동명의 팬송이 수록되어 있으며 팬송임에 반해 분위기는 어두운 편. 이후 SBS 인기가요 2000년 11월 12일 방송에서 이 곡을 통해 4집의 마지막 무대를 장식했다.[2] 데뷔곡 '도'는 UP의 뿌요뿌요, H.O.T.의 캔디, 행복 등을 작곡했으며 당시 고등학생 작곡가로 유명했던 장용진이 작곡했다.[3] 여담으로 이때 무대 바닥이 무너져내리고 있었다. 김희철이 아는 형님 젝스키스 편에서도 언급했다.[4] 1998년 4월 18일 MBC 젊은그대 1위 영상, 관련 잡지[5] 호적상 생일. 원래는 1979년 7월 3일생이다.[6] 1세대 쩜오(1.5군) 남자 아이돌 중 원탑이라는 평을 받기도(...) 영상 참조[7] 확실하게 2집 타이틀곡까지는 순위가 비슷하면서도 태사자가 살짝 우위에 있었다.관련 동영상 최근 1990년대 가요의 인기로 MBC 음악캠프 VOD영상이 다수 풀렸는데 이 영상들 속에서도 순위는 앞서 설명한 것과 같은 양상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3집 활동 이후로 태사자가 주춤한 반면, NRG는 이후 예능 등으로 더 오랜 기간 활동했기 때문에 오늘날에는 NRG가 더 많이 기억되는 편이다. 관련 내용은 아래 NRG와의 관계 탭에서 확인.[8] 훗날 슈가맨 출연시 밝히기를, 김영민은 당시 데뷔 그룹명을 전달받고 '''죽고 싶었다'''고 한다(...). H.O.T. 같은 세련된 영어 이름이 주를 이루던 시절이라 '태사자'같은 한자 이름으로는 망할 것 같다는 느낌도 들었다고 한다.[9] 92년부터 98년 1월까지 방영된 MBC 인기가요BEST50의 후속 프로그램이자 98년 하반기부터 2005년까지 방영됐던 MBC 음악캠프의 전신 프로그램.[10] 몇몇 커뮤니티에서도 목격담이 많지만 해당 프로그램 방영 기간도 짧았어서 영상이 희귀해 웹상에서 거의 돌지 않는다. 하지만 최근 멤버 박준석이 출연한 비디오 스타에서 태사자의 첫 1위 장면이 자료화면으로 등장해 억울함을 호소하던 팬들의 갈증이 해소되었다. 58초부터 관련 동영상 최근 팬들이 애타게 찾던 1998년 4월 18일 영상이 발굴 되었다.[11] 당시 H.O.T.를 비롯한 아이돌은 대부분 청소년 스트릿 패션을 대표하는 큰 힙합바지, 운동화나 워커를 신고 나온 반면, 태사자는 컨셉이 청소년 풍이라기보다 댄디하고 세련된 대학생 컨셉으로 주로 세미정장과 구두를 신고 나왔다. 헤어 또한 화려한 염색머리가 아닌 흑발을 고수한 편이다.[12] 당시 젊은 층의 패션 유행은 두 부류로 갈렸다. 주로 10대 청소년들은 힙합 캐주얼 스타일, 20대는 복고풍의 세미정장이 유행하고 있었다.[13] [image][14] 영상 김우리의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영상 2분 15초 참조.[15] 이걸 자이언트 펭TV에서 펭수의 퇴사한 매니저 전원배가 나올 때 퇴사자 인 더 하우스로 써먹었다...[16] 케이블에서 '사랑, 눈물, 기쁨, 상처'라는 곡으로도 짤막하게 활동했다.[17] 10년 뒤, GD&TOP의 '뻑이가요'라는 곡도 같은 이유로 방송금지를 먹었다. 영어 욕설과 비슷하게 들린다는 점을 염두에 둔 듯 하지만 제제가 과도하다는 비판이 크다.[18] NRG는 전신인 하모하모 시절까지 합치면 훨씬 먼저 데뷔했다고 볼 수 있지만 태사자와는 관계없는 이야기이다.[19] 물론 NRG의 경우 중간중간 캐럴 앨범 등을 내긴 했으나 3집부터는 태사자와 활동 시기가 겹친 적은 없다. 이는 NRG가 3집 당시 이성진과 천명훈이 탈퇴한 상황이었고 이듬해에 팀의 막내였던 김환성이 상세불명의 질환으로 세상을 떠나는 등의 위기를 맞았던 시기였다.[20] 태사자는 2000년 6월의 4집 활동 이후로 2001년 4월 21일 서울 창동에서의 마지막 완전체 무대를 가졌고, (지역 행사였기에 멤버들과 팬들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지만) 2018년 기준으로 완전체 무대는 전혀 없었다.[21] 태사자 데뷔 이후로 남자가 네 명 모이면 태사자라고 자칭하던 현상이 그 연령대의 남성들에게 아직까지도 나타나고 있다.[22] 이쪽으로 인연이 있어서인지 훗날 박성웅이 슈가맨에 태사자를 소개할때 아는 동생의 남편이 태사자의 멤버라고 간접적으로 언급했다. 또 박준석은 이 회사 소속이기도 하다.[23] 이동윤 역시 구체적인 감량 수치를 말을 하지 않았지만 살을 많이 감량한 듯 보인다. 멤버들 다 합해도 최소 '''45kg'''를 감량한 거다![24] 한국 음반산업협회 기준[25] '''Time으로 음악방송 첫 1위 수상'''[26] 김영민 혼자 활동[27] S.E.S.와 핑클과 동반 수상[28] NRG와 동반 수상[29] 박지윤, 이지훈, 신화, 젝스키스와 동반 수상 관련 기사[30] 한국어 위키백과 등지에 쿨의 애상이 이날 1위였다고 잘못 기재되어 있었다. 그런데 쿨은 당시 생방송 젊은 그대 방송에 아예 출연을 안 했었다. 2020년대 들어 방송사 측에서 당시 방영분을 직접 유튜브에 업로드하고 난 후에야 이 사실이 바로잡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