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치카와 에비조

 

1. 개요
1.1. 역대 이치카와 에비조
2. 11대 이치카와 에비조
2.1. 개요
2.2. 11대 이치카와 에비조 폭행 사건[1]
2.3. 여담
3. 둘러보기

'''市川海老蔵'''[2]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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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카와 가문의 문장 미마스(三升)
가부키 업계에서 대를 이어 내려오는 배우의 예명의 하나. 가부키 명문 가문인 이치카와(市川) 가문 종가의 후계자이자 당주인 이치카와 단쥬로가 될 남성에게 주어지는 습명(襲名)으로, 본명이 아니다. 이치카와라는 성도 마찬가지로 배우로서의 예명이고, 본성은 초대부터 현재까지 호리코시(堀越)이다.
이치카와 종가의 야고(屋号)[3]는 나리타야(成田屋).
일반적으로 이치카와 종가의 경우, 가장 처음 전업 가부키 배우의 업을 물려받기로 하면 이치카와 신노스케(市川新之助) 등의 이름을 습명하고, 몇년간 활동하고 나면 비로소 이치카와 에비조라는 이름을 습명한다. 이후 본인이 종가의 당주가 되면 정식으로 이치카와 단쥬로(市川團十郎)라는 이름을 물려받을 수 있다. 현재 계승자는 아래 문단에서 소개하는 '''11대 이치카와 에비조'''이며, 본래는 이치카와가의 전통을 따라 7대 이치카와 신노스케로 활동했다가 2004년에 에비조라는 이름을 습명했다.

1.1. 역대 이치카와 에비조


인물명 뒤의 연도는 생몰년이 아니고 이치카와 에비조라는 이름을 사용한 기간이다.
  • 초대 이치카와 에비조 (1673 - 1675): 1693년에 초대 이치카와 단쥬로가 되었으며, 가부키 계의 슈퍼히어로물인 아라고토(荒事)를 성립한, 가부키 역사에서 대단히 중요한 인물이다.
  • 2대 이치카와 에비조 (1735 - 1758): 초대의 장남. 후에 아버지를 이어 2대 이치카와 단쥬로가 되었다.
  • 3대 이치카와 에비조 (1772 - 1778): 2대의 수양아들. 마찬가지로 후에 3대 이치카와 단쥬로가 되었다.
  • 4대 이치카와 에비조 (1782 - 1791): 3대의 손자이자 5대 이치카와 단쥬로의 아들. 후에 6대 이치카와 단쥬로가 되었다.
  • 5대 이치카와 에비조 (1797 - 1800, 1832 - 1859): 5대 이치카와 단쥬로의 손자. 에비조를 물려받기 전 이치카와 신노스케라는 이름을 처음 사용한 인물이며 잘 알려진 가부키 18번(歌舞伎十八番)을 정리했다. 1800년에서 1832년까지 7대 이치카와 단쥬로라는 이름을 사용했다가, 당시 9세이던 아들(6대 에비조)에게 단쥬로(8대)를 물려주고 다시 5대 이치카와 에비조라는 이름을 평생 사용했다. 생전 생활이 매우 방탕했으며 자녀도 매우 많았다. 실제로 6대부터 8대까지가 다 그의 자식들이다.
  • 6대 이치카와 에비조 (1825 - 1832): 5대의 장남. 아기 때는 2대 이치카와 신노스케라는 이름을 썼으며 2세에 6대 이치카와 에비조를 습명했다. 상술했듯이 그로부터 7년 후 9세에 아버지에게 단쥬로를 습명받아 8대 이치카와 단쥬로가 되었다.1854년에 아버지랑 같이 오사카에 공연을 하러 방문했는데, 현지 여관에서 손목을 그어 30세라는 젊은 나이에 자살했다. 아버지와 함께 생전 생활이 매우 방탕했던 것으로 유명했다.
  • 7대 이치카와 에비조 (1874): 5대의 삼남. 3대 이치카와 신노스케로 활동했으며 후에는 7대 이치카와 코마조(市川髙麗藏), 초대 이치카와 신쇼(市川新升), 이치카와 하쿠엔(市川白猿)으로 활동하다가 1874년에 비로소 7대 에비조를 물려받았는데... 7대 이치카와 에비조로서 활동할 틈도 없이 물려받자마자 사망했다.
  • 8대 이치카와 에비조 (1881 - 1886): 5대의 칠남. 메이지 시대의 명인이었던 9대 이치카와 단쥬로(5대 에비조 = 7대 단쥬로의 5남)의 동생이기도 하다. 에비조를 물려받기 전에는 4대 이치카와 신노스케 등의 이름으로 활동했었다.
  • 9대 이치카와 에비조 (1940 - 1962): 10대 이치카와 단쥬로의 수양아들. 친아버지는 9대 단쥬로의 수양아들이자 양아버지와 함께 메이지 시대의 명인이었던 마츠모토 종가 코오라이야[4]의 7대 마츠모토 코시로(松本幸四郎). 후에 11대 이치카와 단쥬로가 되었다.
  • 10대 이치카와 에비조 (1969 - 1985): 9대의 장남. 에비조를 물려받기 전에는 6대 이치카와 신노스케로 활동했으며, 후에 12대 이치카와 단쥬로를 물려받아 2013년 사망할 때까지 이치카와 단쥬로로 활동했다. 아들인 11대가 2020년 현재 정식으로 단쥬로를 물려받기 전이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마지막으로 이치카와 단쥬로라는 이름을 사용한 인물.

2. 11대 이치카와 에비조


'''11대 이치카와 에비조의 출연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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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대 이치카와 신노스케
'''제11대 이치카와 에비조'''
제13대 이치카와 단쥬로(예정. 2020년 5월 계승…할 예정이었으나 코로나 때문에 보류)

2.1. 개요


1977년 12월 6일생(46세). 본명은 호리코시 타카토시(堀越 寶世). 인간문화재로 등재될 만큼 천재적인 소질을 가진 가부키 배우이자 TV 드라마, 영화에서도 어떤 배역을 맡든 훌륭한 연기를 보여준다. 모델이던 모 여성 슬하 사생아인 장녀를,[5] 명문 조치대학을 졸업한 미녀 아나운서로 일본 내에서 깨끗하고 참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던 코바야시 마오와 결혼해 슬하 장남이자 후계자인 호리코시 칸겐, 차녀[6]이자 4대 이치카와 보탄인 호리코시 레이카를 두고 있다.
일본의 유명 가부키 배우이자 인간문화재로 등재된 인물이며 탤런트 & 영화 배우 등 TV에서까지도 왕성하게 활동하는 배우. 가부키 가문들 중에서도 고신케(御四家)[7]에 속하고 ‘문화계의 천황가’ 라고 불리는 이치카와 종가 나리타야의 장자로, 가부키계의 전설이자 간판급 이름인 ‘이치카와 단주로’를 습명받을 하나뿐인 후계자이자 차기당주여서 태어날때부터 주목을 받았다. 에비조의 어린시절 영상.[8]
잘생긴 외모와 어마어마한 집안배경, 뛰어난 실력과 재능까지 겸비한 에비조는 어린시절부터 집안어른들과 일본 가부키계의 기대를 한몸에 받으며 ‘가부키 왕자’라고 일컬어졌으며,[9] ‘에비사마’라는 별명으로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어마어마한 인기를 끌어모았다.
하지만 그에 반비례하여 어린시절부터 떠받들려자라 그런지 개차반스럽고 막장스러운 데다 거만한 인성에 더러운 술버릇으로 여기저기 나대고 다니다가, 사고도 여러 번 치고 물의를 많이 일으킨 인물. 거기에 코바야시 마오[10]와의 결혼 이전에도 연예계나 방송계의 유명 여성들 여럿과 염문설이 나오는 등 여성편력도 끓임없이 나오곤 했다.
어찌보면 나카무라 시도와 비슷한 길을 걸은 셈.[11] 에비조의 항목이 생긴 가장 큰 이유는 바로 후술할 사건 때문이다.

2.2. 11대 이치카와 에비조 폭행 사건[12]


2010년 11월 25일 이치카와 에비조는 미나토구의 고급 바에서 독한 술을 부어라 마시고 인사불성 상태에서 또 다른 술집에 비틀거리면서 들르고는, 다른 자리가 비어 있는데도 일반인 일행들이 앉은 남의 술자리에 멋대로 가서 사람을 밀치고 앉고는 주사를 부리기 시작했는데.. 그날따라 참으로 운수가 좋게도 그 남의 술자리는 바로 일본의 폭주족 중 유명했던 관동연합[13] 한구레 일당들이었다. 게다가 그 애들이 진상 중이었던 것도 아니고 얌전히 술마시고 있었는데 쳐들어간 건 이치카와 에비조.. 이때 마침 그 테이블 손님 중 한 명인 이시모토 타이치(石元太一)[14]에게 갑자기 머리통을 농구공처럼 손으로 여러 번 치고 허허 웃더니 재떨이에다 위스키를 따라서 들이미는 상또라이 짓을 했다. 이런 짓을 하고 관동연합한테 살아남은 게 운이 좋기는 하다[15]
그러면서 이시모토의 머리채를 잡고 '''"나는 인간문화재다! 너는 연봉이 얼마냐! 인간문화재가 주는 술을 안 받아?"''' 하면서 머리를 잡고 흔들며 마실 것을 계속 강요하며 역대급 진상질을 부렸다. 이런 행동을 한 연유야 자신이 명문 가부키 집안 사람이고 본인도 인간문화재에 정계에 아는 사람도 많고 하니 자신의 지위를 믿고 나댄것도 있고 영화나 드라마에서 강한 무술가나 사무라이를 맡은 적도 많아서 그 배역과 자신을 동일시 하며 실제로도 자신이 강하다고 착각해서 호기를 부린 걸로 보이지만...
이시모토 타이치라는 사람은 자기 일행들 10여 명과 같이 과거 아무런 잘못이 없는 일반 미성년자 학생을 적 조직원으로 오인하고 때려 죽여 소년원까지 갔던 사람이었다. 이 당시 사건이 바로 도요볼 사건(トーヨーボール殺人事件)으로 위키백과에도 올라있는 그 사건이다. 그리고 에비조가 연봉 운운하며 비하를 하던 당시 이시모토도 합법과 불법을 오가며 사업으로 재산을 상당히 긁어모은 터라 연봉걱정이나 받을 상황이 아니었다.
그 이후 에비조의 개념 밥 말아먹는 짓을 보다 못한 이시모토의 일행 이토 리온(伊藤リオン)이[16] 참다 못해 폭발해서 에비조에게 무자비한 강펀치를 여러 번 날려서 얼굴을 곤죽으로 만든 뒤 쓰러진 에비조를 계속해서 발길질과 주먹을 풀스윙으로 날리고 같은 일행들도 가담하면서 에비조는 자신의 지위를 믿고 나댄 댓가를 철저하게 치렀다. 이 와중에 이시모토 타이치는 그걸 끝까지 참으면서 대응을 하지 않고 일행을 말리는 침착함을 보여주었다. 안 그랬다면 에비조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들은 사람을 죽여본 적이 있는 사람들이다.
실제 맞은 정도를 살피면 에비조가 일방적으로 맞고 안면 복합 골절에 심각한 부상을 입었음에도 결국 에비조가 기자들 앞에서 도게자까지 하며 사과를 해야 했을 정도로 이 사건은 에비조의 잘못이 크다는 걸로 결론이 났고 일본의 네티즌들도 '자기가 드라마나 영화에서 무적의 사무라이를 맡아 진짜로 센 줄 알고 나대더니 꼴좋다' 는 반응을 보였다.[17] 더군다나 이때 에비조는 "나는 가만히 있었는데 일방적으로 맞았다"고 거짓말까지 하다 들통나서 그야말로 재기불능의 이미지 타격을 입었다. 이것 때문에 죄없이 마음고생하며 여기저기 사과하고 다니던 아나운서 출신 아내 코바야시 마오(小林麻央, 1982년 7월 21일 ~ 2017년 6월 22일)만 심한 고생을 했다. 아내는 못난 남편과는 달리 인성도 좋고 사생활도 깨끗한 인물이라, 저런 남편을 둔 코바야시 마오를 안쓰러워 하는 분위기가 많았다.[18] [19]
에비조를 심하게 폭행한 시민[20]들이 과하게 대응한 건 맞지만 이 사건은 명백히 에비조의 잘못이 맞다. 에비조의 아버지인 가부키 배우 이치카와 단쥬로(市川團十郎 (12代目), 1946년 8월 6일 ~ 2013년 2월 3일)도 이 사실을 인정했으며 자신의 지위를 믿고 나대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준 좋은 반면교사로 기록되었다. 거기다가 이 사건이 터지기 이틀 전에 바로 폭행사건이 일어난 날 예정된 가부키 공연을 몸이 너무 안 좋다고 취소해 놓고는 술집들을 돌며 부어라 마셔대다 그 사단을 낸 것이 추가로 밝혀져서 더더욱 파렴치한 인간 취급을 받은건 덤. 이것 때문에 에비조가 출연했던 광고들이 전부 짤리고 출연하기로 했던 드라마와 영화에서의 주역 캐스팅들이 다 취소당한데다, 관련 대기업들이 에비조에게 줄소송까지 거는 등, 이 사태의 후폭풍은 엄청났다.
이 사건 이후 엉뚱한 쪽으로 영향이 미쳤는데.. 난데없이 어떤 배우가 자기에게 난동을 부리는데도 꾹 참은 [21] 이시모토 타이치는 이 사건으로 인해 몰려드는 기자들을 거부하지 않고 일일이 인터뷰를 해주면서 지명도를 올리고, 그 지명도를 바탕으로 자서전까지 내며 그 자서전이 영화화되어 그 영화에 본인이 본인역으로 출연하는 방식으로 연예계에 진출하면서 과거를 참회하고 자기과 같은 문제아를 갱생하는 데 힘쓰겠다.. 고 했으나 개뿔. 살인 포함 각종 범죄에 연루되어 본색을 드러냈다. 정확히 말하면 이 사건은 내막이 상당히 복잡한데 이시모토가 연예계 데뷔 얘기가 나오기 전 관동연합 산하 찌마인 '신주쿠 젝스'의 리더였던 카네무라 타케히로(김강홍)가 부친의 일을 돕고 새벽에 퇴근하다 적대 한구레 조직(기무라 형제 일파로 추정) 히트맨 다수의 배트습격에 끔찍한 살해를 당했는데 관동연합의 실질적 수장인 '미타테 신이치'가 보복을 지시하고 오랜 준비 끝에 2012년 9월 기무라 형제를 조지라고 시켰는데 이시모토가 이때 가담을 했다. 헌데 문제는 또 사람을 오인하고 레스토랑 주인을 잔인한 배트습격으로 죽였다는 것. 무슨 안면인식장애 환자도 아니고...단 그 레스토랑 주인도 평범한 사장은 아니고 기무라 형제와 어느 정도 연관이 되었었다는 설도 있다. 어쨌든 이시모토가 이 살인만 안 했어도 연예계 데뷔는 현실화되었을지도 모른다. 이후 이시모토 타이치는 2016년 6월 15일 최고재판소가 상고를 기각함으로써 징역 15년 형이 확정되었다.
또한 이 사건을 주제로 하여 마케팅 하는 술집도 생겨나서 재떨이 모양 잔에 따르는 술을 파는 케이스가 생겨나기도 했다.
어쨌든 이런 복잡한 과정을 거쳐 이토 리온이 총대메고 1년 남짓한 징역을 살고 합의금 물어주고 관동연합 쪽에서 절대 에비조의 가족들과 지인에게 접근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변호사 입회하에 함으로써 마무리. 그나마 에비조의 집안이 명문 가부키 집안이고 정재계와 연줄이 두터워서 이 정도로 끝난 거지, 어중간한 사람이었으면 재기불능으로 보복당했을지도 모른다.

2.3. 여담


  • 특유의 민머리 헤어스타일[22]이 유명해, 일본에서는 민머리를 "에비조 머리"라고 부르기도 한다.
  • 명문 가부키 가문의 후계자이자 인간문화재인 그가 영화배우, 탤런트까지 가리지 않는 이유가 있는데, 그건 바로 19억엔(한화 약 200억)이나 되는 가문의 어마어마한 빚 때문이다. 버블 경제 시절, 부동산업의 일종인 주식회사 대표이사였던 그의 외조부가 부동산에 거액의 투자를 한 것이 버블 붕괴 이후 막대한 빚으로 돌아왔는데, 친족으로써 재무 보증인이였던 12대 이치카와 단주로(에비조의 아버지)가 떠맏게 되어버려 가부키 공연만으로는 감당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12대 단주로의 말년 투병생활과 앞서 상술한 이치카와 에비조 폭행사건 때문에 빛은 늘어났다 줄어들기를 반복했다. 그렇다고 에비조가 경제적으로 궁핍하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에비조의 연 수입은 한화 약 25억 정도에 달하며, 여기다 스폰서, 영화, 드라마, CM 등등 다른 활동들 까지 모두 다 더한다면 30억원은 훌쩍 넘는 수준이다. 에비조는 이렇게 벌어들이는 수입에서 약 1억엔 정도만 변제금으로 제출하고 나머지는 모두 개인 자산으로 가져갔다. 2017년 기준으로 빚은 벌써 5억엔 정도밖에 남지 않은 것으로 추정되었다.
  • 자가용으로 벤틀리 벤테이가를 타고 다니며, 자동차를 꽤나 좋아하는 편이다. 우핸들 차량이 일반적인 일본이지만 특이하게도 좌핸들 차량을 고집하는 것으로 보인다.
  • 아내 코바야시 마오의 사망 후 5일 만에 두 자녀들을 데리고 도쿄 디즈니랜드에 간 사실이 기자들에게 걸려서 또 한번 큰 비난을 받았다. 사실 상심한 두 자녀들을 위해서 그렇게 했을 수도 있고, 일본 언론들도 은근히 기레기 기질이 있는지라 성급한 판단은 금물이지만 워낙 에비조가 사생활 측면에서 구설수를 많이 만들고[23] 어그로를 끈 탓에 그런 탓도 있다.
  • 현재 아내가 사망한 후 두 자녀들을 혼자 키우고 있는데, 과거에 비해 이미지가 상당히 좋아진 편이다. 사실 결혼 후 아이들이 태어나면서 이미지가 좋아졌다가 상술된 폭행사건으로 다시 추락, 후에 아내와 사별하면서 다시 이미지가 좋아졌다.[24] 폭행 사건 이후로는 자중하는 편이고, 아내가 투병 생활하면서 간병한데다 사별후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였던게[25] 이미지 회복에 도움이 된 모양.
  • 2010년대 중반부터 머리가 세기 시작해서 2019년도 사진을 보면, 민머리 상태에서도 머리가 거의 백발에 가깝다는 게 티가 날 정도.
  • 폭행 사건의 여파로 몇몇 매체에서 언급되기도 하였다. 특히 재떨이에 술을 따라준 것이 제일 인상이 강했는지 원피스의 독자 코너 SBS에서는 프랑키의 성우 야오 카즈키가 '미나토구에서 재떨이에 테킬라'를 언급했다가 작가에게 제지당했고 은혼에서는 그 해 있었던 큰일을 회상하는 에피소드에서 재떨이에 술을 따르는 장면이 나오고 등장인물들이 그걸 언급하는건 위험하다며 제지했다.

3. 둘러보기



[1] 한자로는 '11代目市川海老蔵暴行事件'[2] 과거에는 市川蝦蔵, 市川び蔵 등의 표기법도 사용했었다.[3] 가부키 배우로서 가지는 집안 이름. 가부키 배우는 본명, 예명, 야고 세 가지로 불리며 각 이름들은 서로 관계가 없다. 특히 가부키에서 배우가 등장 시 관객들이 해당 배우의 야고를 연호하며 배우를 응원한다. 실제로 현재에도 가부키를 관람하러 가면, 현(11대) 이치카와 에비조가 무대에 등장할 때 관객들이 앞다투어 "나리타야!"하고 소리지르는 것을 감상할 수 있다.[4] 가부키 명문가 막내딸로 유명한 유명 여배우 마츠 다카코의 가문이 바로 이 가문이다.[5] 2002년생. 에비조가 달마다 100만엔의 양육비를 보낸다고 하며, 발레를 배웠다고 한다. 에비조의 인기가 절정에 이르고 본격적으로 세계무대에 발을 뻗기 직전에 태어난데다 생모는 에비조가 고등학생일때부터 교제했던, 가부키 가문에 시집오기엔 다소 격에 안맞는 인물이였기 때문에 가부키 협회의 반대도 그렇고 입적을 못 한것으로 보인다. 본래부터 가부키 명문가들은 같은 가부키 가문이나 전통업에 종사하는 명문가의 여식, 깨끗하고 참한 이미지에다 스캔들 같은 건 당연히 없어야 하는 여배우, 아나운서, 설령 일반인이라 하더라도 연애 경험이 거의 없고 적어도 중산층 이상의 가정에서 별 탈 없이 곱게 자란 여자들만 아내로 맞이할 정도로 엄격하게 안주인을 고른다. 그 예로 나카무라 시도의 전 연인이던 시노하라 토모에가 있는데, 토모에는 2000년대 초반 당시 시대를 풍미한 아이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미지 때문에 나카무라 시도 집안측의 반대로 헤어졌다. 물론 급이 낮은 집안은 이렇게까지 엄격하게 신붓감을 고르지 않는다. 그러나 에비조의 집안인 나리타야는 일본 가부키 가문들 중에서도 고신케(御四家). 일명 4대 명문가로 일컬어지는 4개의 가문 중에서도 가장 높은 집안이고, 나카무라 가문이긴 하지만 사촌 정도 되는 분가 출신인 나카무라 시도보다 훨씬 급이 높았기 때문에 더욱 더 심사숙고해 아내를 맞이해야 할 입장이였다.[6] 먼저 태어난 사생아 딸이 있기 때문에 에비조에겐 둘째이자 차녀다. 다만 본처의 딸이고 이치카와 종가의 영애를 상징하는 4대 이치카와 보탄이기 때문에 언론 등에선 레이카를 장녀라고 칭한다.[7] 4대 명문가. 이치카와 종가 나리타야, 오노에 종가 오토와야, 나카무라 종가 나카무라야, 마츠모토 종가 코오라이야[8] 푸른색 줄무늬가 있는 기모노를 입은 소년이 에비조. 이때는 7대 이치카와 신노스케로 불렸다. 현재 에비조의 장남인 칸겐이 습명 예정인 이름이기도 하다. 참고로 또다른 소년은 5대 오노에 키쿠노스케. 에비조와 마찬가지로 고신케 중 하나이자 4가문 중에서도 나리타야와 투탑으로 여겨지는 오노에 종가 오토와야의 후계자. 이때는 오노에 우시노스케로 불렸다. 에비조와 동년배로, 같은 학교에 다니는 친구사이였다. 이쪽은 에비조가 아나운서와 혼인한것과 다르게 가부키 가문인 하리마야의 영애와 혼인해 슬하 2남 1녀를 두었다. 참고로 오노에 키쿠노스케의 친누나는 여배우 테라지마 시노부로, 고신케인 코오라이야의 후계자와 혼담이 오갔으나 남자쪽 가문의 급이 더 낮다고 물려지기도 했다.[9] 현재 이 별칭은 세대교체로 마츠모토 종가 코오라이야의 후계자 8대 이치카와 소메고로, 후지마 이츠키에게 넘어갔다.[10] 1982-2017. 프리랜서 아나운서 코바야시 마야의 여동생. 사망했을 때 일본에서는 꽤 뉴스가 되었다.[11] 나카무라 시도 이 양반도 같은 가부키 종사자이자 에비조와 함께 전통극뿐만 아니라 탤런트 & 영화배우 & 애니메이션 성우까지 다양하게 활동하는 점도 비슷하고 역시 뛰어난 재능을 가진 연기자이지만, 국민 여배우였던 다케우치 유코와의 이혼과 숱한 여성편력, 그리고 인성논란과 더러운 술버릇으로 이래저래 사고를 치고 다닌 점이 에비조와 여러모로 비슷하다.[12] 한자로는 '11代目市川海老蔵暴行事件'[13] 배우 우카지 타카시가 바로 관동연합의 조상인 폭주족 블랙 엠퍼러의 총장이었다. 지금은 갱생하고 드라마에서 조연을 하고 있다. 단, 지금의 관동연합과 80~90년대 블랙 엠퍼러와는 엄연히 연결관계 따위 없이 연예계에 들어설 때 깨끗하게 관계를 정리했으며 오히려 과거를 반면교사 삼아 비행청소년 계도 활동 등에 힘쓰고 있다.[14] 관동연합 내에서도 가장 또라이 팀으로 유명했던 블랙엠페러의 후신격인 팀의 총장을 맡았던 인물이다. 폭주족 생활에서 은퇴한 이후에는 폭력단관계자로 추정되는 인물로부터 자금을 출자받아 Soulmate라는 이름의 짐과 격투가팀을 만들어 운영했는데, 사실 이는 한구레조직의 프론트사업으로 추정되고 있다.[15] 일본에는 이치카와 에비조나 나카무라 시도처럼 대를 이어서 가부키 배우를 업으로 삼는 명문가들이 많은데, 절대다수가 황실이나 재벌, 구 화족(귀족)들과 두루두루 연줄이 깊은 엄연한 상류층이다. 가문의 경조사에 총리수상, 장관 등이 직접 참석할 정도로 정제계에서도 대접받는다. 제아무리 잔악무도한 관동연합이라고 해도 일개 폭력조직에 불과하므로, 상류층 잘못 건드리면 그날로 조직이 풍비박산 날 것이다. 그래서 살인 전과도 있던 이시모토 타이치가 조직원들로 하여금 에비조를 두들겨 패게 놔두기만 했을 뿐, 죽일 수는 없었던 거다.[16] 이름에 가타가나가 포함되어 있는 것은 파나마 국적 흑인 혼혈이기 때문이다. 이시모토와 함께 살인을 해서 사이좋게 소년원에 수감된 전적이 있고, 무엇보다도 운동능력이 좋아서 도쿄 베르디 축구단 유소년팀에서 우월한 피지컬로 활동하다 폭력단에 들어가서 이름을 날릴 정도로 잘 패고 다녔다는 사람인데.. 결과적으로 이치카와 에비조가 안 죽은 것이 오히려 의외일 정도라고. 추가로 한구레 조직 간 적대관계에 있을 경우 일본의 법 헛점을 이용해 날붙이가 아닌 둔기나 방망이를 이용해 단체로 적대 한구레나 찌마 조직원 한 명을 타깃으로 무자비하게 패 죽이는 테러가 성행하는데 죽어도 살인죄가 성립이 안 되고 잘 해야 폭행치사에 변호사만 잘 쓰면 죽일 의도가 없었다고 둘러댈 수 있기 때문이다. 관동연합도 그 수법을 많이 썼지만 적대 한구레 조직에게 역으로 그 배트 습격을 당하기도 했는데 여기에 살해당한 관동연합 조직원이 '카네무라 타케히로(김강홍)' 하지만 관동연합 내에서 이 배트습격을 이겨내고 역으로 상대 여럿을 방망이 뺏어서 역으로 조진 케이스가 두 명 있는데 그 한 명이 '이토 리온' 또 한 명이 '무라이 유스케'...폭주족 항쟁 시절 이 둘의 무력은 엄청나서 적대조직들이 몹시도 두려워했는데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이토 리온이 무라이 유스케보다 강하다고 생각할 정도. 물론 이 둘보다 윗급의 주먹꾼도 두 명 있었는데 한 명은 같은 관동연합 계열의 타니야마 히데유키. 또 한 명은 다른 한구레 조직 극악의 테라다 코우지.[17] 이 사건 이전에도 에비조는 행실문제로 구설수와 논란을 많이 일으켜 일본 내에서도 안티가 꽤 많았긴 했다. 그 안티들도 에비조의 실력만큼은 인정했건만...[18] 다만 앞서 서술했듯 가부키 가문은 일본 예능(藝能)의 주축이자 엄연한 상류층의 일원인 만큼 가부키 가문의 안주인이라는 위치가 그만한 부와 명예가 따라오고 상류 사회의 일원이 되는것이기 때문에 에비조의 이런 면을 감수하고 결혼했을 것이라는 반응도 심심찮게 나왔었다. 더군다나 가부키 가문중에서도 으뜸인 이치카와 종가에 시집가면 본인이 낳은 자녀들까지 일본 상류사회의 정점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은 당연지사이기 때문에..[19] 안타깝게도 고바야시 마오는 34세라는 젊은 나이에 유방암으로 사망했다. 죽기 전까지 자신의 투병기를 블로그에 공개해 다른 암환자들의 용기를 북돋기 위해 힘썼다. 특히 마지막 블로그 글도 "어머니가 짜준 오렌지 주스를 마시며 고통과 싸운다"는 삶의 의지가 가득한 내용이어서, 지켜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만들었다.[20] 뭐. 폭주족은 예비 야쿠자라고까지 불릴 말큼 품행제로이긴 하지만 따지고 보면 연예인도 아니니 시민이 맞긴 하다.[21] 헌데 당시 도요볼 사건 때 가담한 멤버 중 한 명인 이토 리온은 에비조 폭행에 가장 적극적이었는데 이 점이 의문. 일본 연예계나 사회 전반에 관동연합 인맥과 사법거래가 있었던 듯[22] 가부키에 출연할 때 여러가지 가발을 착용해야 하기 때문에 민머리를 유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것도 케바케인지 같은 가부키 종사자인 나카무라 시도는 민머리를 하고 다니지 않는다. 매번 머리정리하기 번거로워서 그런듯. [23] 고바야시 마오와 결혼하기 전 이미 사생아 딸이 있어 양육비까지 대고 있던 상황이었다.[24] 최근에는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여, 아이들과의 일상을 공개하고 있다.[25] 사별후 재혼 루머가 떴는데, 어처구니 없어 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애처가 이미지가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