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이언트 곤잘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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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ant Gonzalez '''
1. 개요
2. 활동
2.1. 출생, 농구선수
2.3. WWF 이적
2.3.1. 형편없는 경기력, 그 이유
2.3.2. 의외의 성격
2.3.3. 은퇴
3. 은퇴 이후
3.1. 건강 악화
3.2. 사망
4. 그 외
4.1. 오해
5. 둘러보기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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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Jorge González'''[1]
출생일 ~ 사망일
1966년 1월 31일 ~ 2010년 9월 22일
신장
'''234cm'''[2]
체중
'''200kg'''[3]
출생지
아르헨티나[4] 포르모사
피니쉬 무브
초크슬램[5]
클로 홀드 [6]
데뷔 / 은퇴
1990년 / 1995년

아르헨티나의 前 농구선수 및 프로레슬러이며 '''프로레슬링 역사상 최장신 프로레슬러'''이다.

2. 활동



2.1. 출생, 농구선수


아르헨티나 포르모사의 농가에서 태어났다.
그도 역시나 앙드레 더 자이언트와 마찬가지로 거인병으로 인해 14살때 키가 193cm나 되었고 그 거대한 체격을 이용해 농구를 시작하게 되었다.
16살에는 키가 216cm까지 자라게되어, 이때부터 아르헨티나의 유명스포츠클럽에서 국가대표가 되기위해 아르헨티나 국가대표 농구코치인 '레옹 나즈누델(León Najnudel)'에게 지도를 받게 된다. 그로부터 1986년에 아르헨티나 국가대표1군으로 지명되고 그해에 우수한 기량발전으로 주목받았지만, 고관절 부상으로 인해 9개월을 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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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국가대표 시절
하지만 꾸준한 재활을 통해 다시 1987년 여름에 복귀, 1988 서울 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을 착실히 준비한다.
1988년에는 국가대표팀으로 선발, 1988 서울 올림픽에 출전하게되었고[7]같은해에 남미 농구 토너먼트에서 동메달 획득, 전미 토너먼트에서 5위에 등극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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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틀랜타 호크스 시절
이에 힘입어 같은해 NBA에 진출, 신인 드래프트 3라운드 54번째로 지명받고 애틀랜타 호크스의 센터로 계약하게 되었지만, 압도적인 몸싸움과 힘을 제외하고는 전반적인 피지컬, 볼 핸들링, 특히 체력이 너무 좋지않아 프랙티스 스쿼드 멤버로만 있다가 엎친데 덮쳐 무릎 부상까지 당해 방출위기에 놓여있게된다. 그는 사상 최초로 NBA에서 지명된 아르헨티나인이었지만 결국 NBA에서는 전혀 뛰지 못했다.
사실 농구선수들은 키가 220cm를 넘어가면 무릎부상 위험이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진다. 저 정도로 크면 위에서 하중이 내리꽂히는 수준인데 농구를 하면 점프를 계속 해야하기 때문. 곤잘레스보다 키가 살짝 작은 게오르그 뮤레산은 몸무게가 147kg에 불과 (?) 했고, 그보다도 약간 더 작은 228cm인 야오밍은 140kg인데도 둘 다 무릎과 발목 문제로 고생했다. 228cm 숀 브래들리는 몸무게를 110~120kg 사이로 매우 슬림하게 유지하고 출장시간 조절을 받았기 때문에 10년 넘게 뛸 수 있었다. 즉, 230cm를 넘는 초장신은 300파운드(136kg)만 넘어가도 무릎에 거대한 리스크를 안게 된다. 저 정도 크면 딱히 무겁지 않아도 키만으로도 관절에 부담이 온다. 브래들리는 데뷔 당시 104kg으로 전혀 부담이 될 몸무게가 아니었고, 224cm에 불과(?)했던 랄프 샘슨은 103kg로 매우 가벼웠음에도 둘 다 부상에 시달렸다.
그런데 곤잘레스는 드래프트 당시부터 이미 402파운드였다. 234cm 초장신이 300도 아니고 400파운드가 넘는다면 페이스가 빠르고 격렬하기로 악명높은 NBA에서 뛰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다.

2.2. 프로레슬러 데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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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당시 애틀랜타 호크스의 구단주이자 WCW의 오너인 미국 재벌가인 테드 터너에게 프로레슬러가 되어보라는 오퍼를 받고 프로레슬링 커리어를 시작하게 되었고, WCW 파워플랜트에서 6개월간 트레이닝후 1990년 정식으로 3년간 계약을 맺게 되었다. 사진을 보면 알 수 있지만, WCW 데뷔 당시 이렇게 말끔한 외모의 청년이 WWF에서 사스콰치 기믹으로 괴물처럼 인식되기도 했으니 기믹의 중요성을 새삼 느끼게 해준다.

첫 데뷔는 1990년 PPV인 NWA-WCW 캐피탈 컴뱃(1990)에 '엘 기간테'[8]라는 닉네임으로 데뷔를 하였으며, 사이코 시드릭 플레어, 스팅같은 당대 유명 슈퍼스타들과도 대립하는 등 제법 푸쉬가 있었고, 1991년 배틀로얄에서 참가자 전원을 탈락시키고 우승을 거머쥐었고, 추후에는 릭 플레어WCW 헤비웨이트 챔피언 타이틀전까지 펼치게 된다.
1992년 신일본 프로레슬링과 교류 이벤트 투어에서 베이더와 괴수 대 괴수 대결을 펼치며 관중들의 관심을 사게 되었다. 경기후 베이더가 말하길 "지구상에서 가장 악력이 강한 사람이 분명하다"라고 할 정도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관중들에게 제법 인기가 높았고, 관련 상품과 만화[9]가 나올정도였다.

2.3. WWF 이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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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그의 옆에 서있는 매니저인 하비 위플먼[10]미국 남성의 평균신장 보다는 조금 작지만 그래도 176cm이다. TV시청자들이 처음에 곤잘레스의 키를 몰랐기 때문에 그가 왜소증 환자인줄 착각하였는데 실제 관중들이 위플먼의 평범한 키를 보고 더욱 놀랐다고.
1993년 WCW와 계약만료 당시, WWF로얄럼블을 몇 주 앞둔 시점으로 다가올 레슬매니아에서 언더테이커의 연승기록을 저지할 각본에 걸맞는 괴물같은 선수를 찾고 있었다.
이미 파파 샹고카말라의 각본이 흥행 실패로 끝나버리고 말았기에 더욱더 주목을 끌 강력한 빅맨을 찾고있던 빈스 맥맨이였는데, 당시 헐크 호건이 자신의 주연인 '썬더 인 파라다이스'비디오판 영화의 악역을 맡을 레슬러를 찾던중 곤잘레스를 만나 캐스팅을 하게 되고, 영화촬영을 하게되면서 호건이 WWF 활동 제의와 동시에 빈스 맥맨 역시 가세하여 WWF와 계약을 맺게 된다.
'''안데스 산맥[11]에서 온 설인[12]''' 컨셉으로 무장하여 WWF 로얄럼블(1993)에 시합중인 언더테이커에게 갑자기 난입하여 초크슬램을 먹이고 탈락시켜버리며 관중들에게 어마무시한 광경을 보이며 경악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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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필상 신장이 208cm인 언더테이커보다 머리하나가 더 있다.[13] 앙드레 더 자이언트 이후 빅맨으로 활약하던 그를 올려다 보게하다니, 충격 그 자체였다.

로얄럼블 난입을 계기로 레슬매니아 9에서 경기를 치뤘다. 하지만 이 경기는 언더테이커의 커리어에 흑역사를 남길 막장 시합으로 기록됐는데, 곤잘레스의 기술 시전, 특히 초크슬램이나 접수능력, 연기력이 너무 형편없었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언더테이커가 테크니션으로 보인다란 말까지 나왔다. 그리고 언더테이커의 레슬매니아 경기 중 유일하게 싱거운 DQ승을 거둔 경기이기도 했다. 일단 곤잘레스가 기술 접수력이 너무나도 절망적이라 훗날 킹 콩 번디와 대결했을 때보다 더 졸전이었다는 평도 있다.(...)
다만, 경기력이나 결말 면에선 안좋을지 몰라도 '''둘이 마주 선 그림만으로도 명장면'''으로 회상될 정도로 언더테이커의 강력함을 어필하는데 크게 한몫 했다. 실제 언더테이커가 꼬맹이로 보였던 충격적인 경기란 사실만으로 지금도 회자될 정도다. 자이언트 곤잘레스는 자버 3명과 붙어서 압도하는 등 그야말로 절정의 괴물 캐릭터였는데(놀란 어린이들의 표정이 압권), 어린아이들의 우상인 언더테이커가 그렇게 거대한 괴물과 마주 서서 대항한다는 것만으로 굉장해 보였으며 원래 언더테이커가 엄청난 장신이라 자신보다 작은 레슬러들에게 초크 슬램을 구사했었는데, 이젠 반대로 자이언트 곤잘레스에게 목을 잡히니까 코너에 올라가서 목을 잡는 등 상당히 충격적인 장면들이 많이 나와서 인상 깊은 장면이 많이 나왔다.
프로레슬러로서의 자이언트 곤잘레스의 가치는 '''그 어마무시한 덩치'''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 2m가 넘어도 꼬꼬마 취급을 당하게 만드는 그의 거대한 덩치는 그 체격 하나만으로도 화제거리가 되기엔 충분했기 때문이다.
사실 매니아들은 경기력을 중요시하는데, 레슬매니아 3의 전설적인 경기인 헐크 호건 vs 앙드레 더 자이언트도 사실 경기력 측면에선 그다지 좋지 않았다. 하지만 둘이 마주 선 장면만으로도 상당한 그림이 되었으며, 특히 헐크 호건이 앙드레에게 바디슬램 하는 장면 하나만으로도 잊을 수 없는 장면이 되지 않았던가. 마찬가지로 언더테이커가 자이언트 곤잘레스와 나란히 서서 마주보고 있는 장면 하나만으로도 사실 레슬매니아 스런 명장면이긴 하다. 항상 상대 레슬러보다 키가 컸던 언더테이커가 꼬맹이로 보일 정도로 충격적인 장면에다가, 특히 곤잘레스에게 맞으면서도 물러나지 않고 더 때려보란 식으로 계속 얼굴을 들이대는 장면만으로도 상당한 카리스마를 느끼게 해준다. 사실 자이언트 곤잘레스 자체가 애초에 그 덩치 하나만으로 발탁되었던 거고 저 덩치에 대단한 경기력을 기대하기도 힘든 만큼, 그래도 최대한 비주얼을 강조하여 자신의 몫은 다하긴 했다.
그래도 WWF는 나름 이 거인의 강력함을 계속 강조하기 위해 계속해서 체구가 작은(?) 자버 레슬러들과 자주 시합을 붙이고, 간간히 랜디 새비지타탕카 등등 당시 유명 톱스타들과도 대결을 붙였음에도 관중들에게 좋은 반응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3대1 핸디캡 매치.

2.3.1. 형편없는 경기력, 그 이유



지역 레슬러를 상대하는 자이언트 곤잘레스.
앞서 말했듯 선수로서의 경기력은 초 거구에다 초짜 신인이라는 점을 놓고 보더라도 정말 형편 없었다. 그레이트 칼리의 펀자비 플레이보이 시절이나, 앙드레 더 자이언트의 커리어 말년기보다 더 심각한 수준의 경기력을 보여주었다.

주요 기술이라고 해 봐야, 오버헤드 찹, 헤드 벗, 빅 붓, 클로스라인 같은 매우 간단한 기술들이 대부분이었고, 피니쉬 무브의 경우, 초크슬램이나 아이언 클로 계열인 클로 홀드를 사용했는데, 사실 초크슬램은 접수자의 안전을 위해 살짝만 들어올렸다가 곧바로 내려주는 수준이었으며, 클로 홀드 역시 직접적으로 핀을 따내기보단 상대방의 얼굴과 목을 같이 움켜잡고 흔들면서 괴롭히는 용도로 더 자주 사용했다. 따라서 기술 구사가 전체적으로 굉장히 어설프고 느릿느릿했다.
하지만 그게 다 이유가 있었는데 어마어마한 괴력의 소유자라서 조금만 힘을 줘도 받아내는 사람은 정말 생명이 위험할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서브컬쳐에는 거구의 레슬러가 너무 강해서, 선수들이 두려워 한 나머지 협회에서 왕따시킨다는 클리셰가 있는데,[14] 자이언트 곤잘레스의 기술 하나 하나에 사람의 목숨이 왔다갔다 했기 때문이었던 것.
자이언트 곤잘레스의 경우, 만화에서나 나올 법한 과장된 덩치와 과장된 괴력을 현실에서 보여주고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힘이 지나치게 세서 동전을 종이 접듯이 반으로 접어버리는 괴력을 갖고 있었고, 이걸 시합에 그대로 적용하면 상대 선수는 자칫 잘못하면 불구가 되거나,[15] 사망에 이를 수도 있었기 때문에 자기 역량을 최대한 축소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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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그레이트 칼리의 오버헤드 찹을 맞은 선수들이 하나같이 입을 모아 '''마치 벽돌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다'''는 소감을 남겼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지만, 그도 마음 먹고 힘을 조금이라도 주면 상대 선수를 자칫하면 불구로 만들거나 죽일 수가 있었기에, 전력을 다하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었던 것.
게다가 WCW 파워 플랜트 수련생 시절에 엄청난 괴력으로 인해 상대방이 그와 훈련 상대를 하면 무조건 구급차[16]가 달려올 정도라서, 당시 트레이닝을 총괄하던 매니저인 폴 온돌프가 '어차피 자네의 덩치 자체가 볼거리니까 기술 따윈 상관없네. 그러니까 절대로 힘을 쓰지 말라구!'라고 언제나 주의를 주었고,[17], WWF와 계약했을 때 초크슬램피니쉬 무브로 책정되어 본인 나름대로 언더테이커에 뒤지지 않는 파워풀한 초크슬램을 구사하고 싶어서, 초크슬램의 창시자이자 자이언트 곤잘레스 만큼은 아니여도 2m가 넘는 큰 덩치에 괴력의 소유자였던 사이코 시드에게 조언을 구하려 찾아갔는데, 시드가 "애들도 보는데서 살인 쇼를 보여주려고 그러냐!"라고 된통 야단을 맞고 돌아온 적도 있었다.[18]
역시나 주요 메인 이벤터들에게 부상을 입히자, 빈스 맥맨도 길길이 날뛰며 강력히 제재를 가할 정도였다. 일례로 곤잘레스가 브렛 하트와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쉽 대결을 빈스에게 요구한 적이 있었는데, 빈스 맥맨은 곤잘레스의 괴력을 우려하여 그의 요구를 철회했다. [19]

2.3.2. 의외의 성격


괴물같이 거대하고, 무시무시한 외모에 엄청난 괴력의 소유자이지만, 성격은 전혀 반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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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슬매니아 경기장에 등장할 때부터 그의 테마곡이 묻힐 정도로 야유가 장난 아니였고, 표정이 연기가 아니라 굉장히 심기가 불편해 보인다.
백스테이지에서도 처음엔 그의 위압적인 외모에 두려움을 품고 경계하는 동료 레슬러들도 있었지만, 그는 사실 굉장히 자상하고 배려심이 많았다. 마음이 굉장히 여린 편이었는데 레슬매니아 9에서 언더테이커와 시합에서 입장할 때 특히나 어린이들이 매우 야유를 심하게 했고[20] 어떤 어린이들은 그가 지나갈 때 무서워서 큰 소리로 울었는데, 이에 큰 상처를 받았다고 한다. 당장은 경기를 치루어야 했기에 내색은 안 했지만, 경기가 끝난 직후 백스테이지에서 너무 서러워서 펑펑 울었다고. 이때 믹 폴리언더테이커가 그럴 수도 있다고 자주 위로해 주었다고 한다.
사실 WWE에서 자이언트 곤잘레스를 접했던 팬들은 모두 '괴물' 이미지로 기억하고 있으나, 그 이전 WCW시절 시드 비셔스와 붙었을 당시에는 순박하고 깔끔한 젊은 시골 청년 같은 이미지였다. 키만 클 뿐이지, 수수한 청년의 이미지였는데, 저렇게 징그러운 털 장식과 근육들이 그려진 우스꽝스런 타이즈를 입고, 덥수룩한 수염을 기르고, 사스콰치 기믹으로서 괴물처럼 행동하고 아이들이 비명을 지르고 우는 모습을 봤다면 충분히 마음의 상처를 받았을테고, 단기 계약 종료된 뒤 선역 전환시켜 준다고 해도 거부하고 그대로 떠나버렸던 심정이 이해는 간다.
WWE 시절의 괴물 이미지만 기억하는 팬들은 그가 의외로 많은 레슬러들과 사석에서 친분을 쌓고 있었다는 것을 알면 놀라워하는데, 저 위의 시드 비셔스 경기에서 모습을 보면 서글서글하고 쾌활한 이미지임을 알 수 있으며, 이 모습이 원래 성격과 흡사할 것이다. 오히려 WCW에서 이런 순박하고 착한 청년 이미지로 기억하고 있던 팬들이 WWE에서 저런 기믹을 봤다면 기절초풍했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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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모와는 달리 실제 성격은 배려심 깊고 사교성도 좋아서 백스테이지에서도 관계자들이나 동료 레슬러들이 그의 인간성을 칭찬하고 좋아했으며, 역시나 그를 데려온 헐크 호건과 굉장히 친하게 지냈고, 사석에서도 그와 식사와 술 한잔도 같이 하고, 함께 운동도 하는 사이였다.
사실 WCW와도 왕래가 잦았던 헐크 호건이 계약 만료 당시의 곤잘레스에게 먼저 관심을 보였고, 빈스 맥맨에게 소개를 한 것이였다. 이는 비단 곤잘레스 뿐만 아니라 당시 최고 주가를 달리는 호건의 WWF내의 영향력이 빈스 못지 않았기 때문인데, 실제로 호건에게 잘 보이거나 호건의 눈에 띄어서 레슬러로 데뷔한 남녀 프로레슬러들이 꽤 많다. 그 중 한명이 빅 쇼이기도 했고. 게다가 호건도 빈스와 마찬가지로 '빅 맨', '머슬 마초' 타입을 좋아하는 성향마저 똑같아서, 곤잘레스는 별도의 실력 검증 없이 곧바로 스토리 라인에 들어가게 된 것.
호건 외에도 그의 매니저였던 하비 위플먼과도 친했는데, 위플먼과는 WWF를 떠나고 나서도 연락을 주고받을 만큼 친하게 지냈다고 한다. 그 외에 믹 폴리, 사이코 시드, 비록 두 차례 밖에 대결을 하진 않았으나 유일한 그의 대립 상대인 언더테이커역시 그가 WWF를 떠날때 아쉬움을 표했으며, '그에게 좋은 기믹을 주었다면 훌륭한 레슬러가 됐을 것이다'라며 곤잘레스 사후에 언급하였다.
하지만 그를 싫어하는 선수도 있었는데 알려진 바로는 케빈 내시얼티밋 워리어, 랜디 새비지가 있다.
케빈 내시는 자기 키와 덩치에 자부심[21]이 있었는데, 자기보다 키가 훨씬 크고 거대한 곤잘레스에게 자신이 작다는 느낌을 관중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싫어서 라이벌 의식이 있었다고 하며,[22]
얼티밋 워리어도 자신의 파워가 통하지 않는 모습을 팬들에게 보여주기 싫다며 그를 철저히 외면했다.
랜디 새비지는 곤잘레스가 너무 커서 경기하는 자체가 고역이였다는 이유로 싫어했는데, 그가 초크를 너무 세게 걸어서 진짜 죽을 뻔 했다고 욕을 했을 정도였다.

2.3.3. 은퇴


원래 WWF와 장기 근속이 아니라, 일정 횟수를 정해놓고 출연하는 단기 계약을 맺었다. 사실 WCW를 끝으로 레슬러로써 커리어를 끝내고 고국행을 택하려던 찰나, 당대 최고 인기스타인 호건의 제의를 차마 거절 못하여 빈스 맥마흔과 짧게 계약을 맺었던 것이다.
테이커와 섬머슬램 경기이후 실수한 하비 위플먼에게 초크슬램을 먹이고, 그뒤 위플먼이 '애덤 밤'이라는 신예 선수의 매니저로 배신하고 선역전환 직후 계약이 만료직전이라 WWF는 그에게 선역전환으로 본인이 하고싶은 기믹으로 신예인 애덤 밤과 하비 위플먼과의 대립 각본에 푸쉬를 줄것을 제의했지만, 곤잘레스는 이를 거절한다. 이미 곤잘레스는 자신의 기믹에 대해 회의감을 느껴 섬머슬램도 치루기 싫었었다고 회자했다.
계약만료후 1994년 한해는 헐크 호건의 영화 썬더 인 파라다이스 TV시리즈[23], 미국의 인기 해상 구조요원 드라마인 베이워치 에피소드[24]에도 출연했으며, 헤라클레스의 전기(Hercules in the Underworld)를 그린 TV 드라마에도 악역으로 2회 출연하여 대중들에게 크게 어필한적 있으며 그해에 가장 많은 수입을 벌게되어 94년 겨울에 결혼을 하게 된다.

그의 생애 마지막 시합.

1995년. 신일본 프로레슬링에 WCW 링네임 '엘 기간테'로 등장하여 전 요코즈나 출신의 키타오 코지와 태그팀 경기를, 그해 12월 센다이에서 그레이트 무타와 대결하여 패배하였는데, 그 경기를 끝으로 프로레슬러로써의 공식적인 은퇴를 발표한뒤 고국으로 돌아간다.

3. 은퇴 이후



3.1. 건강 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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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아내와의 모습.[25]
사실 프로레슬러로 데뷔하던 시절부터 건강상에 문제가 있었다. 애틀랜타 호크스에서 나온뒤 140kg정도였던 체중을 단 6개월만에 200kg에 육박할만큼 단기간에 증량해버린탓에 부상당했던 무릎에 문제가 생겼고, 뒤이어 좌골신경통까지도 생겼다고 한다. 체중을 늘려야 했기에 상당한 양의 고탄수화물 식사가 이루어졌을것이고, 실제로 앙드레 더 자이언트 못지않은 엄청난 대식가로 육식과 맥주를 무척 좋아했으니[26] 아마도 이로 인해 당뇨가 와서 합병증들을 더 부추긴 셈이다.
1995년도에는 신일본과 좋은 계약조건에 계약을 맺었음에도 심장에 무리가 오기 시작했기에 결국 아내를 비롯한 가족들과 상의 끝에 은퇴를 결심하고 고국으로 돌아와 치료를 병행하기로 마음먹었지만, 은퇴 직후 고국으로 돌아가자 그의 병세는 서서히 본격적으로 악화되가고 있었다.
은퇴 후에는 고향인 포르모사로 돌아와서 가업[27]을 이어가고 있었으며, 종종 고국의 프로레슬링 이벤트나 TV, 라디오에도 출연하였지만, 2005년부터 지팡이를 짚고다녀야할만큼 병세가 심해졌고, 심지어는 추후에 이것조차 심장에 더욱 무리가 가게되어 휠체어 생활을 시작하게 될만큼 건강이 악화되었다. 게다가 선수시절부터 잠재해왔던 당뇨로 인한 합병증으로 암까지 걸렸고, 추가적으로 신부전증으로 인한 신장투석까지도 해야될만큼 심각한 수준으로 질병이 늘어나게 되자 그동안 딱히 문제가 없었던 재정난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전직 국가대표로 활약했던 그를 돕고자 아르헨티나 농구 연맹이 그를 치료비를 후원[28]하기로 했고, 그의 팬들과 모국의 레슬러들도 자선행사로 후원을 해주었으며, 과거 자이언트 곤잘레스 기믹으로 활동하던 시기에 그의 매니저였던 하비 위플먼이 이 소식을 듣고 그를 위해 자신의 인맥들과 레슬링 관계자들이랑 함께 모금행사를 열어 그를 후원해주기도 했다고 한다.

3.2.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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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하기 한달전의 모습.
우리나라에는 이 레슬러에 대해 알려진바가 없지만 고국인 아르헨티나에서는 레슬러로 활동당시 우리나라로 치면 김일선수만큼의 톱스타였으며[29], 북미 프로레슬링 WCW 올드팬들에겐 '엘 기간테'시절은 누구나 기억에 있을만큼 인지도를 남겼다.
건강이상으로 고국행을 택했음에도 자선 기부행사와 고국의 프로레슬러들을 찾아가서 조언을 아끼지 않았고, 고향의 포르모사의 발전을 위해 기부금을 내놓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런 활동은 오래갈 수 없었는데, 신장투석과 항암치료로 인해 얼굴색이 흙빛으로 변했고 200kg에 달했던 체중이 무려 100kg대로 떨어진데다가 이로 인한 심장발작이 자주 일어나서 사망하기 한 달전엔 스스로의 힘으로는 방 밖으로 나가지도 못할 정도까지 이르렀다.
많은 사람들이 후원과 응원을 받으며, 그 역시 반드시 나아서 건강해지겠다는 의지를 불태웠으나, 2010년 9월 22일 갑작스러운 심장마비 증세로 산마르틴의 병원에 긴급후송되었지만 결국 사망하고 말았다.
사후 10년이 지났지만, 현재까지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프로레슬러로써 부동의 1위를 그 누구에게도 내주지 않고 있다. 생전에 그보다 키가 크다고 언급된 레슬러는 레슬러이자 영화배우이기도 했던 맥스 파머가 무려 8피트 2인치(250cm)로 소개되었으나, 공식적으로 그는 신장을 인증하지도 않았고 그를 실제 본 레슬러들이나 관객들도 8피트 2인치라 하기엔 역부족이였다. 그외에 존 해리스도 7피트8인치(238cm)로 소개되었지만 실제 신장은 7피트 5인치로 탄로났다. 그의 실제 신장은 88올림픽 프로필 당시 7피트 7인치였고 후일 한 방송에서도 실제로 7피트7인치임을 유일하게 인증해보였다.

4. 그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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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엄청난 장신이지만, 여기서 근육량을 늘리면 가뜩이나 힘 조절이 안되는 판에 자칫 잘못하면 큰 인명사고를 일으킬까 봐 일부러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지 않아 근육질의 체형은 아니었는데, 관객들에게 강한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서 빈스 맥마흔에 의해 반 강제적으로 전신 근육 타이즈를 입었다고 한다. 이 때 그의 의상 제작에만 당시에 2000달러가 넘었는데, 230cm도 넘는 키에다가 200kg에 육박하는 거구라서 자주 찢어지는 바람에 빈스 맥마흔의 눈밖에 나기 시작했다고.
  • 자이언트 곤잘레스의 진정한 가치는 그 상상을 초월하는 덩치였다. 마치 북두의권이나 원피스에서나 볼법한, 어마무지하게 큰, 인간이 아니라 대형 포유류같은 거대한 체격 자체가 그의 진정한 가치였다. 당장 프로필상 신장이 208cm인 언더테이커를 꼬꼬마로 만들어버릴 정도로 엄청난 체격을 지닌 자이언트 곤잘레스는 그 체격만으로도 충분히 핫이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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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언트 실바와는 실제로도 친분이 어느정도 있었다. 서울 올림픽때 만남으로 친해지게 됐는데, 자이언트 실바가 WWF에 데뷔하기전 그에게 자기 꼴 나지말라며 충고해준적이 있다는데 현실은...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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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3년 헐크 호건과 친하게 지낼당시. 사실은 타이즈속 몸이 생각보다 그렇게 나쁘지 않았던 시기였다. WCW 시절엔 힘이 더세지면 곤란하여 웨이트 트레이닝을 거의 하지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WWF로 이적하여, 키는 큰데 몸매가 위압적이지 않아 강제적으로 근육타이즈 옷을 입어야했다고한다. 본인 역시 굴욕의 순간으로 늘 회상하고 있었으며, 타이즈를 입지않기위해 이때부터 호건과 웨이트 트레이닝을 시작했지만 끝끝내 타이즈를 벗을순 없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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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36cm의 중국 농구선수인 선밍밍이 WWE를 관람하고 더 락과 사진을 찍게 됐는데 WWE에 출연해보고싶은 생각이 있냐고 묻자, '자이언트 곤잘레스'같은 기믹을 해보고 싶다고 한적이 있다.

  • 브렛 하트와도 태그팀 경기를 한적이 있었다. WWF가 아니라 USWA라는 제프 제럿의 아버지인 제리 제럿이 만든 멤피스에 위치한, 당시 WWF와 교류를 하며 레슬러들의 연습 경기와 기량발전을 위한 단체다.

4.1. 오해


국내 기준으로 그의 바이오그라피 중 몇 가지 잘못 전달된 것들에 대해 서술한다.
  • 태권도와 유도 등 무술 유단자이다?
그는 농구프로레슬링 빼고는 해본 운동이 없다.
아무리 곤잘레스가 힘이 세다 해도 땅 아래 깊숙이 뿌리내린 나무는 인간의 힘으로는 절대 뽑을 수 없다. 아마도 레슬러 수련 시절의 괴력 때문에 팬들이 쓴 상상일 것으로 추정.
  • 마스크 오브 조로에 거인 기마병으로 출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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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하게 닮았지만 아니다. 하필 배우 이름도 '오스카 제라핀 곤잘레스(Óscar Zerafín González)'로 이름 때문에 잘못 전해진 것이다. 해당 배우는 멕시코 출신의 배우이고 키도 218cm로 자이언트 곤잘레스보다 훨씬 작다.
  • ECW에서 활동한 적이 있다?
1995년 신일본에서 활동한 뒤로 공식적으로 은퇴했으며, 고향으로 돌아가서도 고국인 아르헨티나 단체에서도 이벤트에 모습만 비췄을 뿐 은퇴 후엔 단 한번도 비공식적으로도 시합을 가진 적이 없다.
마누트 볼이 그에게 무식하고 괴물같다며 먼저 시비를 걸어 죽도록 팼다는 얘기가 있다는데, 그런 사건은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아니 그걸 떠나서 애초부터 그 둘은 생전에 서로 만나본 적도 없었다. 곤잘레스 본인의 성격도 폭력을 휘두를만한 성격이 전혀 아닌데다가 마누트 볼 역시 경기장에서나 밖에서나 신사다운 행동을 하는 예의바른 선수로 유명했고, 선수 시절에도 단 한번도 몸싸움으로 인한 트러블조차 없는 매너 좋기로 소문난 선수였다. 비슷하게 WCW 시절에 원맨갱이라는 선수가 곤잘레스가 힘 조절 실패로 날린 크로스라인을 맞고 경기도중 실신한 적이 있기는 했다. 그마저도 곤잘레스가 무척이나 미안해하며 경기 후 거듭 사과했다고.
  • 손가락을 잘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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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시피 잘 붙어있다. 당뇨가 있긴했지만 손발이 썩어갈만큼의 중증은 결코 아니었다. 아마 당뇨로 시작된 여러가지 합병증으로 병세가 깊어져 생겨난 루머.

5. 둘러보기


[image] '''레슬링 옵저버 선정 올해 최악의 대립'''
얼티밋 워리어 vs 파파 샹고
(1992)


'''언더테이커 vs 자이언트 곤잘레스
(1993)
'''

제리 롤러 vs 도잉크 더 클라운
(1994)

[1] 호르헤 곤살레스[2] 링에서는 8피트, 즉 244cm로 소개되었는데, 실제 키는 정확히 10cm 더 작은 7'7''(234cm)이다. 이는 기네스북에 가장 큰 프로레슬러로 등재됐을 때의 신장이다.[3] 440파운드이며 (1파운드=0.45359237kg) WCW시절엔 체중이 180kg중 후반대 정도였으나 추후 WWF데뷔하던 무렵 증량을 해서 체중이 200kg에 육박하게 된다. 그래도 사진에서 보이듯이 다른 거인이나 빅맨레슬러보다는 어마무시한 신장 덕에 비율도 좋고 비교적 슬림한 편이었다.[4] 각본상 출생지는 안데스 산맥이라고 소개됐다.[5] 빅 쇼의 무릎을 꿇는 쇼 스타퍼 쵸크슬램과 유사한 형태이나, 접수자의 안전을 고려해서 매우 낮게 들어가는 식이었다. 그냥 살짝 들어서 바로 눕혀주는 수준.[6] 아이언 클로와 동일하나 상대를 눕혀 핀 폴.[7] 하지만 정작 경기에는 참가하지 못했다. 경기내내 한번도 투입되지 못해서 끝끝내 자리만 지켰다고한다. 이때 자이언트 실바도 브라질 국가대표로 참가.[8] 스페인어 발음은 '엘 히간떼'이고 영어의 the giant와 같은 뜻[9] [image]
당시 인기 프로레슬링 만화로 사기캐릭터로 표현됨. 근데 자이언트 곤잘레스는 이게 만화상의 과장이 아니라 '''실제로 체격이 이랬다.'''
[10] 1979년 프로레슬러로 데뷔하여 1980년대 중반까지 주니어 헤비급선수로 활동하다 부상 이후 WWF에서 본격적으로 선수 매니저를 전담해왔다. 매니저로써 능력이 뛰어나 수많은 스타급 선수들의 병맛 악역매니저 역할연기도 상당히 잘했고, 상황 대처능력도 뛰어났다. 특이한경력으로는 여장을 하고 우먼스타이틀 챔피온을 획득한적이 있는데 이는추후 박탈되기도 했다. 에이전트로써의 능력이 뛰어나 WWF에서 로드 에이전트로도 활동하다 은퇴하였고, 2018년 최근에 RAW 25주년을 맞이한 행사에 백스테이지에서 모습을 비추었다.[11] 여담으로 비슷한 컨셉의 베이더로키 산맥에서 온 괴인 캐릭터로 활동했다.[12] 사스콰치 기믹[13] 참고로 곤잘레스의 머리 크기는 일반인보다 훨씬 크다. 그런데 머리 하나 차이일 정도면(.....)[14] 이타가키 케이스케의 그래플러 바키 1부 21권에서 곤잘레스의 모티브 캐릭터인 '안드레아스 리건'이 등장하는데, 바키를 깔보다가 두들겨 맞고 정신차린 리건의 대사가 "어릴 적부터 늘 주의를 받았지. 전력을 다해 싸우면 안된다고. 복싱도, 프로레슬링도, 다른 그 어떤 것도 내 힘을 표현할 순 없었어."라는 대목이 나오는 것도 다 그의 압도적인 괴력을 비유한 것이다. 또, 만화 '수라의 각'에서도 스모 선수 라이덴에게 스승이 손바닥치기를 봉인하라고 한다. 그 기술은 사람을 죽이기 때문이라고. 작중 실제로 라이덴은 상대 스모 선수를 손바닥치기로 죽인 적이 있고 이로 인해 진심을 낼 수 없어서 약해진다. 다만 그 약해진 모습으로도 190연승을 거두지만.[15] 앙드레 더 자이언트그레이트 칼리도 오버 파워로 인해 상대 선수를 의도치 않게 죽이거나 불구로 만든 적이 있는데 저 둘보다 훨씬 크고 강했던 자이언트 곤잘레스는 말할 것도 없다.[16] 이때 '맨 카인드'와 '캑터스 잭'이라는 링네임으로 활동하던 인기스타 믹 폴리도 다쳐서 결장을 했을 정도.[17] 앙드레 더 자이언트도 전성기일 때 트레이너로부터 "최선을 다해서 싸우면 안된다."고 지도 받았다.[18] 참고로 시드 역시, 베이더 같은 초중량급 선수들도 휙휙 메다꽂을 정도로 엄청난 괴력의 소유자였는데, 그 역시 업계에서 '동업자 정신'이 부족하다 소릴 들을 만큼 상대 선수에게 고통을 선사하기로 유명했다. 파워 밤으로 숀 마이클스의 고질적인 허리 부상을 입게 만든 전력이 있을 정도.[19] 브렛 하트 같은 슈퍼스타 메인 이벤터가 부상으로 결장하면, 시청률 하락과 티켓 판매 하락은 불을 보듯 뻔했을 것이다.[20] 이 때 한 아이가 굉장히 못되게 곤잘레스의 팔을 툭 하고 치자 곤잘레스가 화가 나서 쏘아보았다.[21] 체구가 작은 선수들을 '바닐라 난쟁이'라고 조롱하고 다녔다.[22] 실제 다크매치에서 곤잘레스와의 경기를 제안하자 기피했던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도 같은 빅맨인 언더테이커,케인은 진심으로 인정하고 존경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후배인 빅 쇼도 처음엔 애송이 주제에 나보다 커서 내 자릴 위협할것 같아 경쟁의식이 들었다고 했으나 추후에 그의 실력을 인정하고 최근에도 그와 원만하게 식사와 술자리를 종종 가지며, 빅 쇼 역시 WCW시절엔 케빈 내쉬와의 관계를 얘기하자면 학을 뗄 정도로 경멸했었으나, 세월이 지나고서는 케빈 내쉬의 '빅 섹시' 캐릭터와 그의 마이크웤을 존경한다고 말했다.[23] 국내에도 방영된적 있다. 국내 방영제목은 ' '로 곤잘레스는 93년 비디오판, 1994년작에는 TV시리즈와 비디오판에서 고정 악역으로 캐스팅 되었다.[24] 이 에피소드는 곤잘레스의 실제 심경이 매우 많이 반영되있다. 극중 곤잘레스는 거인에다가 무서운 이미지로 사람들에게 경계를 받지만 그저 해변가에서 조용히 나무공예품을 만드는 조각가였고, 어린이들을 좋아하는 마음따스한 청년임에도 동네 사내들에게 오해를 사게되어 바다에 빠져 위험에 처하게 된다. [25] 여담으로 여기에 슬하에 딸이 하나 있다고 하는데, 딸 역시 아버지의 유전자 덕분인지 체구가 어마어마하다고 하는데 신장이 자그만치 193cm라고 한다.[26] 특히 닭고기를 굉장히 좋아했다.[27] 그의 부모가 경영하던 농장을 물려받았는데, 이게 어느 순간 농업에 종사하여 아르헨티나의 5대 갑부가 되었다는 루머가 퍼졌었다. 병이 악화되기전엔 여러 대외적인 활동과 가업으로 재정적인 문제가 전혀 없었을 뿐, 대부호가 된건 절대 아니다.[28] [image]
정확히는 아르헨티나 농구팀의 스폰서인 Visa카드 회사가 그를 지원함.
[29] 그레이트 칼리가 말년엔 병맛 기믹을 맡아도 현재 고국인 인도에서 안토니오 이노키급으로 레전드로 추앙받듯, 그도 아르헨티나에서는 고국을 빛낸 위대한 프로레슬러 중 한명이다.[30] 실바도 결국 곤잘레스와 크게 다를바없는 기믹과 대우를 받고 저질 기량으로 인해 '해고'당했다. 다행히 일본으로 가서 나름 고액 연봉자가 되긴했지만 나이도 많은데 격투기까지 나와서 돈을 벌어야할만큼 그도 지독한 생계형 레슬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