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씨 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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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국어: 東寧國 (Dōngníng guó)
대만 민남어: 東寧國 (Tang-lîng-kok)
정성공이 1661년 네덜란드인을 몰아내고 타이완 섬을 통치하게 된 시기를 말한다.
2. 설명
'''정씨왕국(鄭氏王國)''', '''동녕왕국'''(東寧王國), '''연평(延平)왕국''', '''명정시기'''(明鄭時期)라고도 한다. 조선에서는 대번국(大樊國)[4] 이라고 현종실록에 언급되었다. 1661년부터 1683년까지 존속하였다.
정성공은 평생을 명나라 부흥운동에 바쳤고 명나라의 옛 도읍 난징을 거의 되찾을 뻔 하기도 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그 후 교두보 확보를 위해 당시 네덜란드가 지배하던 대만 섬을 노렸다. 결국 네덜란드령 대만을 공격해 타이난[5] 을 점령하고 인도네시아에서 보낸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의 지원군도 격파하여 대만 남서부를 차지했다.
정성공이 죽고 아들 정경이 즉위한 뒤에도 반청복명 정책은 유지되었다. 삼번의 난 때도 군대를 보내 푸젠 성 일부를 장악하기도 했다. 3대 정극상까지 이어졌지만, 결국 중국 대륙을 완전히 평정한 청나라의 침략으로 1683년에 멸망했다. 그나마 청나라에서 정성공과 그 후예들의 명예를 인정해줬기 때문에 항복 후 정씨 왕족들은 청나라 본토에서 그럭저럭 대우를 받으며 살았다. 이후 타이완 섬의 역사는 청나라 치하 타이완 섬 문서 참고.
3. 외교
3.1. 청나라
건국 목적 자체가 반청복명인 만큼 청나라와는 내내 적대하였다.
그러나 반청복명 의지가 비교적 확고했던 정성공이 죽은 이후 그의 자리를 이어받은 정경은 청나라에서 사신이 파견되어 복종, 명나라의 옥새, 변발 등을 요구하면서 사면과 함께 높은 벼슬을 내리겠다고 하자 그 조건으로 독립국으로서의 조공국 지위[6] 설정을 요청했다가 거절당한 바 있다.
3.2. 조선
당시 조선은 현종과 숙종이 즉위하고 있던 시기였으며, 대만 섬에 있는 정씨 왕국을 대번국(大樊國)이라고 표기하는 등 그 존재는 알고 있었다. 삼번의 난 당시에 북벌을 위해서 정씨 왕국과 손을 잡아야된다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거리가 너무 멀기도 하고 청나라가 삼번의 난을 결국 진압하고 기반을 탄탄히 다지는 바람에 결국 흐지부지되었다. 현종 11년(1670년)에 중국 옷, 오랑캐 옷, 일본인 옷을 입고 있는 무리들 90여 명이 제주도에 표류한 바 있는데 이들이 당시 제주목사 노정에게 정씨 왕국과 중국 남부의 사정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이들은 청나라가 중국 남부를 석권하자 만주족의 탄압을 피해 나가사키로 도망가던 중에 풍랑을 만나 제주도에 표류했으며, 이에 제주목사는 그들을 나가사키로 보냈다고 한다.(출처: 현종실록, 현종개수실록)
그러나 중국이나 대만 쪽 학자들 중에서는 조선이 이들을 청나라에 송환하였고 결국 청나라에 살해당했다는 주장도 있는 듯하다.
3.3. 일본
에도 막부와는 활발하게 교역을 전개했다. 일본에 쌀, 사슴의 가죽, 설탕 등을 수출하고 은, 구리, 납, 면포 등을 수입하는 교역 관계가 멸망 당시까지 지속되었다.
3.4. 서양
정씨 왕국 자체가 타이완 섬의 서양 세력을 몰아내고 세운 국가라 대체로 서양 국가와의 사이는 그리 원만하지 못했다. 그의 공격으로 거점을 뺏긴 네덜란드는 말할 것도 없고, 근처 필리핀을 영유하고 있었던 스페인과도 불편한 관계를 지속했다.
한편 영국 동인도 회사와는 1675년에 통상 조약을 체결한 바 있다.
4. 의의
외세(네덜란드)를 물리치고 대만 섬에 건국된 첫 번째 독립국 혹은 첫 한족 정권이라 할 수 있기에 현대 대만인들이 중요하게 배우는 시대이다. 정씨 왕국은 다두 왕국 등 원주민들의 부족국가보다 좀 더 체계적인 정부를 세웠고, 영국과 국가 대 국가의 관계로써 통상조약을 체결하는 등 독립국으로써의 입지를 다졌다.
한편 본토 수복이 기치인 것부터 시작해서, 지금 대만의 중화민국과 비슷한 점이 매우 많은 정권이었다.
5. 역대 군주
[1] 출처:위키미디어 공용[2] 출처:위키미디어 공용[3] 북극성의 신인 현천상제(玄天上帝)를 대만의 수호신으로 숭배[4] '대번'은 '타이완'의 음차 중 하나로, 대만어로는 Tāi-hoân이라고 읽는다. 타이완은 중국어 유래 명칭이 아니어서 청나라 통치 이전에는 여러 한자 가차 표기가 보이는데, 그 중 하나이다. 오늘날 타이완을 한자로 표기할 때 쓰는 臺灣은 대만어로 Tâi-oân이라 읽는다.[5] 프로빈티아 요새, 제일란디아 요새[6] 이를테면 당시 조선과 같은 국제적 지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