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기 터빈
1. 개요
영어: Steam Turbine
일본어: 蒸気タービン
독일어: Dampfturbine
고온 고압의 증기의 열에너지를 회전운동으로 변환하는 외연기관으로, 기존의 피스톤식 증기기관을 밀어내고 21세기 현재에도 발전 및 선박추진기 등으로 널리 쓰이고 있다.
2. 역사
증기의 힘으로 터빈날개를 돌리는 기본 원리상으로는 피스톤식 증기기관에 비해 매우 단순하며, 역사는 고대 그리스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다만 제대로 된 동력기관으로 제작하기 위해서는 그 터빈 날개와 거기에 딱 들어맞는 밀폐형 기관의 제작이 어려운 편이었고, 소형화도 어려웠기 때문에 그 당시 기술력으로 비교적 제작이 용이하였던 피스톤식의 증기기관이 대세였고, 원시적인 증기터빈은 상류층의 장난감 정도로밖에 쓰이지 않았다. 이후 증기기관이 작고 가볍고 열효율이 높은 내연기관에 밀려 쇠퇴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다시 대세를 차지하게 되었지만.
현대식 증기터빈은, 발명자인 찰스 파슨스 경(Sir Charles Parsons, 1854-1931)이 1894년에 만든 실험선인 터비니아(Turbinia)에 가장 먼저 적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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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슨스는 1893년에 동업자들과 함께 파슨스 해운증기터빈회사(Parsons Marine Steam Turbine Company)라는 기업을 설립하고, 길이 32m, 배수량 44.5톤의 작은 실험선박인 터비니아를 건조하였다. 그는 공동현상(cavitation)을 발견하고 대처방법을 마련하는 등 개발과정에서 많은 시행착오를 극복하였고, 최고속도 34.5노트를 기록하였다. 이 선박의 정체는 일단 1897년까지는 비공개 상태였다.
1897년 6월 26일, 파슨스는 대형 사건을 하나 일으키고 말았다. 그날 영국 남부의 스핏헤드 앞바다에서는 빅토리아 여왕의 즉위 60주년을 기념하는 관함식이 열려 왕족, 귀족, 해군제독, 각국 외교사절 등의 고관대작들이 몰려 있었는데, 파슨스는 그 배를 몰고 관함식장을 헤집어 놓았다. 터비니아는 2열로 늘어선 대형 군함들 사이를 질주하는가 하면 급가감속을 반복하는 등의 성능 과시를 하였고, 영국 해군의 경비정이 서둘러 터비니아를 제지하려 했지만 터비니아가 압도적으로 빨랐기 때문에 결국 놓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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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7년 당시의 터비니아 사진(관함식 사건 이후 촬영됨)
영국 왕실과 해군 측은 뜻하지 않은 사태에 경악하면서도, 이전의 선박에서 전혀 볼 수 없었던 고속성능에 크게 감명을 받았고, 그 괴선박의 정체를 조사하여 파슨스의 소행임을 알아냈다. 결국 파슨스는 1899년에는 영국 해군으로부터 신형 구축함 바이퍼(HMS Viper)와 코브라(HMS Cobra)의 수주를 따내게 되었고, 1905년에는 영국 해군이 앞으로 도입할 군함은 터빈 추진식이 될 것임을 천명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경향은 1906년, 최초의 증기터빈 추진방식을 채택한 전함인 드레드노트(HMS Dreadnought)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상선에서는 20세기의 첫 해인 1901년에 진수한 562총톤급의 킹 에드워드(TS King Edward)에 처음으로 적용되었고, 여기에도 파슨스의 증기터빈이 탑재되었다. 킹 에드워드는 대성공을 거두며 상선의 추진기관으로서도 증기터빈이 적합함을 증명하여 반 세기 넘게 운용되다가 1952년에 퇴역했다.
파슨스의 회사는 이후 수차례의 인수합병을 거쳐 롤스로이스로 흡수되었다가, 1997년 롤스로이스가 증기터빈 사업부를 독일의 중공업 회사인 지멘스에 매각한 이후, 지멘스의 사업부로서 존속해 있다.
3. 구조 및 작동원리
기본적인 원리는 가스터빈의 그것과 같다. 즉 고온고압의 기체를 축에 연결된 수많은 회전날개에 부딪쳐서 축을 돌리게 하여 그 기체의 열에너지를 운동에너지로 전환하는 것이다. 운동 자체가 단순하여, 왕복엔진에서처럼 왕복운동을 회전운동으로 전환하기 위한 장치, 밸브 개폐기구 등이 필요하지 않아 구조 또한 간단하다.
그러나 내연기관인 가스터빈이 흡기, 배기를 위해 바깥 공기와 접촉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달리 밀폐되어 있으며, 구동에 쓰고 남아 식은 증기를 다시 보일러로 보내서 재가열하여 사용하는 식으로 효율을 높이고 있다.
증기터빈에는 스웨덴의 구스타프 드 라발(Gustaf de Laval, 1845-1913)이 발명한 충동식터빈(impulse turbine)과 찰스 파슨스 경이 발명한 반동식터빈(reaction turbine)이 있으며, 용도에 맞게 이 두 가지의 다른 터빈이 조합되어 효율을 높인다.
4. 타 기관과의 비교
4.1. 디젤엔진과의 비교
- 구조가 간단하다.
- 기관에 걸리는 압력 및 온도가 낮다.
- 열효율은 증기터빈이 35~40%, 디젤엔진이 40~50% 정도로 디젤엔진이 근소하게 높다.
- 왕복운동을 회전운동으로 바꾸는 과정이 없으므로 디젤엔진 특유의 소음 및 진동이 상당부분 해소된다.
- 기관의 대형화에 유리하다. 축당 30,000마력을 넘는 경우에는 증기터빈이 경제성, 신뢰성 측면에 모두 유리하다. 반대로 축당 20,000마력 미만의 경우 디젤엔진의 경제성이 뛰어나기 때문에 보통은 요구되는 출력에 따라 기관을 선택하게 된다.
4.2. 가스터빈과의 비교
- 보일러가 필요하기 때문에 부피가 크다. 단 가스터빈은 기관 자체는 작지만 흡기 및 냉각계통의 크기는 더 커진다.
- 가스터빈과는 달리 흡기계통의 저항이 적다.
- 가스터빈의 열효율인 22~38%에 비해서 열효율이 높아 경제성이 좋다.
- 가스터빈보다 기관에 걸리는 압력 및 온도가 낮다. 사실 선박의 세 추진방식 중에서는 가장 저온, 저압이다. 물론 그래도 수백 도는 가뿐히 넘어가지만.
- 가스터빈에 비해 구조적으로 단순한 편이라 신뢰성이 더 높다.
- 보일러를 가동하여 증기의 온도와 압력을 적정수준으로 만드는 데에 상당히 긴 시간이 필요하므로 가스터빈에 비해 신속대응이 어렵다.
5. 적용분야
5.1. 발전
화력발전소나 원자력 발전소, 일부 태양열 발전 등에 이용된다. 열로 가압된 물을 끓여서 고온 고압의 증기를 만든 후, 이 증기로 터빈을 돌려 연동된 발전기를 돌리는 구조에는 차이가 없다. 대체로 50Hz 교류발전에는 3000rpm, 60Hz 교류발전에는 3600rpm의 회전속도를 낸다.[1] 발전용 증기터빈의 경우는 고속회전이 중요하기 때문에 많은 경우 감속기어를 탑재하지 않고 발전기와 직결된 경우가 많다.
증기터빈은 기력발전이라고 한다. 이 터빈 제조 기술은 선진국들만 독점하고 있으며, 국내에서 발전용으로 만들 수 있는 곳은 두산 중공업뿐이고 이마저도 체코의 스코다 파워를 인수하면서 얻어낸 기술이다.
5.2. 선박
강한 힘을 낼 수 있기 때문에 선박 추진기에 사용되는 경우가 많았으나, 현재는 디젤 엔진 및 가스터빈에 시장을 많이 잠식당한 상태이다. 특히 과거의 전함이나 순양함처럼 몇 만 톤 단위의 거대 함선들이 구식화되면서, 만 톤 이하의 비교적 경량 함선들이 주류를 이루는 현대 군함들은 기동성을 위해 가스터빈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다만 항공모함은 여전히 크고, 기동성보단 출력, 작전기간, 항속거리가 중요하기 때문에 증기터빈을 사용한다.
LNG운반선의 경우엔 근 10년 내에 건조된 경우를 제외하면 외연기관을 사용한다. LNG 운송 시 기화하는 걸 완전히 막을 순 없으므로 기화하는 가스를 태워 보일러를 작동시키는 방식이다. 또한, 화물(LNG) 선적 하루 전에는 주기관이 외연기관이든 디젤엔진이든 화물창 내에 약간 남겨둔 LNG를 소모해 운항한다. 선적 전 화물창을 냉각시키는데 이만큼 효율적인 게 없기 때문이다.
고압터빈에서는 5000~7000rpm, 저압터빈에서는 3000~5000rpm 정도의 회전속도를 내며, 2단기어 감속기나, 유성기어를 채택한 3단기어 감속기 등을 탑재하여 적정 회전수를 낸다. 상선에서의 스크루 프로펠러의 적정 회전수는 80~150rpm이다.
5.2.1. 증기터빈을 채용한 선박
국가별, 초도함의 취역연도별로 기재한다.
국가별 순서는 미국-소련/러시아-기타 국가 가나다순으로 정리한다.
- 재래식 중유보일러 탑재
- 2차대전기의 거의 모든 군용 함선
- 미국
- 에식스급 항공모함 (퇴역)
- 아이오와급 전함 (퇴역)
- 기어링급 구축함 - 강원도 안인진리에 있는 강릉통일공원에 전시된 전북함과 같은 기어링급에 4개의 보일러와 4개의 증기터빈 설치되어있다.
- 미드웨이급 항공모함 (퇴역)
- SS 유나이티드 스테이츠 대서양 정기 여객선 (퇴역)
- 포레스탈급 항공모함 (퇴역)
- 키티호크급 항공모함 (퇴역)
- 타라와급 강습상륙함 (퇴역)
- 와스프급 강습상륙함 - 1~7번함 해당. 8번함 매킨 아일랜드는 가스터빈과 디젤발전기를 조합한 CODLAG 방식이기 때문에 제외.
- 새크라멘토급 군수지원함 (퇴역) - 후계함선인 서플라이급은 가스터빈으로 대체
- 러시아
- 영국
- RMS 루시타니아 대서양 정기 여객선 (퇴역)
- RMS 모리타니아 대서양 정기 여객선 (퇴역)
- RMS 퀸 메리 대서양 정기 여객선 (퇴역)
- RMS 퀸 엘리자베스 대서양 정기 여객선 (퇴역)
- RMS 퀸 엘리자베스 2 대서양 정기 여객선 (퇴역) - 1986년에 대개장을 거치면서 주기관을 증기 터빈에서 디젤 엔진으로 교체하게 된다.
- 프랑스
- 클레망소급 항공모함 (퇴역)
- 원자력추진
- 미국
- 러시아
- 키로프급 핵추진 순양함 - 정확히는 원자로와 중유보일러를 모두 갖춘 결합추진방식. 약칭 CONAS.
- 프랑스
- 가스터빈과의 결합전기추진(COGAS)
- 밀레니엄급 크루즈여객선
5.3. 그 외의 분야
기관차 등에서도 실험적으로 적용된 적이 있으나 상업적으로 활용되지는 못했다. 또한 자동차나 항공기에서는 외연기관이 무겁고 부피가 커서 이용상 난점이 있기 때문에 쓰이지 않는다. 비행선에서 쓰이기도 했다.
6. 관련 문서
[1] 전자기 유도에 따라, 교류 발전기의 전압의 위상은 회전하고 있는 터빈에 연결된 도선의 각도와 일치한다. 50Hz는 초당 50번이니 1분 간 회전수가 3000회이므로 3000rpm, 60Hz 또한 같은 계산 방식에 따라 3600rpm이 된다.[2] 증기 터빈으로 발전 후 모터를 이용해 추진하는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