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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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극동 러시아에 위치한 축치 반도에 살아가는 북극권 민족 중 하나로 주로 추코트카[4] 에 거주하고 있으며 일부는 마가단[5] , 저멀리 우크라이나[6] 에도 살고 있다.[7]
근대 시절에 케레크처럼 하나의 독자적인 민족이 아닌 러시아인, 축치인, 유카기르 등으로 분류되곤 했다. 별개의 민족으로 인정받게 된건 '''1989년''' 이후이다.
2. 역사
러시아에서 추반인에 대해 처음으로 알려지게 된 것은 17세기 중엽으로 당시 이들을 유카기르 부족 중의 하나에 속했었다. 이들은 셀락스키 곶(Шелагский мыс), 팔랴밤 강(река Паляваам) 중하류 지역, 암구에마(Амгуэма), 차운(Чаун), 볼쇼이 아뉴이(Большой Анюй)[8] , 말르이 아뉴이(Малый Анюй)[9] 강 상류 지역에 주로 거주하고 있었다고 한다.[10]
이후 러시아인들이 해당 지역으로 진출하면서 원주민들에게 야삭을 요구했는데, 추반인은 가장 먼저 러시아에 야삭을 바쳤던 민족 중 하나였다. 17세기 말부터 18세기 초까지 이들은 러시아편에 서서 원정에 참여하여 코랴크인, 축치인과 싸웠다. 이러한 일들이 있은 후로 러시아와 사이가 더욱 가까워졌는데, 17세기 말 추반인 여성 중 약 10%가 러시아측 카자크와 사업가, 또는 상인의 부인이나 첩으로 살아감을 통해 알 수가 있다.
러시아에게 아주 끈질기게 저항했던 축치인들은 보복의 일환인지 18세기 중엽부터 추반인, 유카기르인 마을들을 집중적으로 공격하기 시작했고, 이를 계기로 많은 이들이 러시아 수비대의 보호 아래 있었던 아나디르 요새와 콜리마 강 하류, 그리고 야쿠티야로 이주해야했다.
1771년 아나디르 요새가 없어지자 남서쪽에 위치한 기지가(Гижига)로 다시 옮겨갔으며, 이 지역으로 이주한 추반인은 코랴크인에 의해 많은 문화적, 언어적 영향을 받았다. 19세기 초에 이르러 축치인과 러시아 간의 전투가 끝나게 되면서 다시 아나디르 지역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다.
19세기에 들면서 추반인들은 정착민 집단과 유목민 집단으로 나뉘게 되었다.
우선 정착민 쪽은 주로 마르코보와 아나디르 강 연안을 따라 형성된 작은 정착촌에 거주했다. 그래서 이들을 거주지 이름에 따라 마르코베츠(Марковцы), 아나디르츠(Анадырцы), 아나디르시크(Анадырщики)라 불리었다. 또한 러시아의 영향을 짙게 받아서 축치어보다는 해당 지역 방언이 섞인 러시아어를 주로 사용했으며 추코트카로 이주한 카자크와 원주민 여성들 사이에서 생긴 혼혈들로 이루어져 있었다.[11]
그리고 유목민 쪽은 아나디르 강 상류의 툰드라를 오가며 순록들을 사육하며 생활했다. 이들은 문화적, 언어적으로 축치인이나 코랴크인과 유사했다.
오늘날 이들은 아나디리 지역의 여러 마을[12] 에 주로 거주하고 있다. 그러나 추반인이 해당 마을들에서 다수를 차지하진 않는다.
3. 언어
원래는 유카기르어족에 속해있던 추반어를 썼으나 해당 언어는 이미 18세기쯤에 완전히 사멸된 것으로 추정된다.[13] 현재는 축치어 및 러시아어를 쓰고 있다.[14]
정착생활을 하는 추반인이 많이 사는 곳인 마르코보 마을에선 과거 가정이나 친구들 사이에서는 러시아어의 마르코보 방언을 쓰고, 학교에서는 표준어에 가까운 러시아어로 말한다고 알려져 있었다.[15]
4. 문화 및 의식주
러시아의 영향으로 러시아 정교회를 믿지만 유목하는 이들일수록 애니미즘을 바탕으로 둔 토속신앙을 믿는다고 한다.[16]
유목하는 이들은 절기에 따른 축제와 명절을 즐기는데, 이는 대개 순록사냥 주기와 연관되어있다. 이러한 축제가 되면 순록을 잡아 제물로 바치고, 제물로 바친 고기는 모인 사람 모두가 나눠먹는 식으로 이루어졌다.
보통은 생선을 즐겨먹으며, 유목을 하는 이들은 순록고기도 먹는다. 축치인이나 코랴크인처럼 광대버섯을 우려서 술처럼 마시기도 했다.
정착민들은 평평한 지붕을 지닌 통나무집에서 생활하지만은 유목민들은 수많은 순록들을 유목하기 때문에 야란가에서 생활한다.
전통의상 또한 축치인들하고 비슷하다고 한다.
5. 관련 문서
[1] 이름의 유래는 두가지 설이 있는데 유카기르어로 ‘연안에 사는 사람들’ 혹은 ‘해안에 사는 사람들’이라는 뜻의 ‘차운지’(Чаунджи)에서 유래했다는 설과 ‘차운’(Чаун)이라는 이름의 강에서 나온 러시아어 단어라는 것이다.[2] 에텔. 후에 추반인들이 자신들을 지칭하는 명칭이 되었다.[3] 에틸릴구[4] 2010년 기준 897명. 뒤에 서술하는 타지역 인구수도 전부 2010년 기준이다.[5] 57명.[6] 226명.[7] 총합 1,002명. 하지만 현재는 러시아인 및 축치인과 통혼하면서 그 수가 감소했을 가능성이 있다.[8] 큰 아뉴이.[9] 작은 아뉴이.[10] 이 당시 추반인들은 오호츠크 해 연안의 사는 민족들과 축치인 간의 물물교환에 있어서 일종의 중계자 역할을 담당했다고 한다. 주로 사냥한 동물에게서 얻은 모피를 금속으로 된 화살촉, 창, 도끼, 칼, 솥 등과 바꿨다.[11] 이 때문에 1920년대 마르코보 마을에 사는 추반인들은 자신을 유럽 러시아에서 이주해온 러시아인과 토착민 사이에서 형성된 캄차달인으로 부르기 시작했다.[12] 우스티-벨라야, 스네즈노예, 추반스코예, 마르코보, 아나디르 마을.[13] 1781년에 번역된 22개의 문장, 표도르 마트유슈킨이 기록한 210여개의 단어들이 기록으로 남아있다.[14] 유목민들은 축치어, 정착민들은 러시아어를 주로 사용한다고 한다.[15] 마르코보 방언은 현재 거의 사라졌으며 해당 마을의 추반인들은 억양이나 발음 면에서 표준어와 큰 차이가 없는 러시아어를 구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오늘날 일부 단어에서만 마르코보 방언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16] 다만 추반인들이 믿는 정교회는 토속신앙 및 전통 풍습의 흔적이 남아있다고 한다. 예를 들면 이들이 장례식을 치를 때 대부분 정교회 절차를 따르지만, 전통 방식대로 남성의 관에는 담배를 놓고, 여성의 관에는 실, 바늘과 같은 가사 도구를 넣는다. 또한 얼음이 녹기 시작하는 봄이 되면 아나디르 강에다가 제물을 갖다바친 뒤에 차, 고기, 기름 등을 던지며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