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 무열왕/대중매체

 





1. 개요


삼국기, 연개소문, 선덕여왕계백에도 나온다. 그나마 삼국기와 연개소문에서의 김춘추는 정사랑 비슷하게 표현했으며 정사와의 차이점은 선덕여왕, 계백, 대왕의 꿈 등에서 나왔다.
재미있게도, 자세히 보면 같은 방송사라 그런지 선덕여왕과 계백 두 드라마에선 김춘추가 입는 의상이 서로 같다.[1]

2. 목록



2.1. 삼국기


사극에서 가장 먼저 등장한 드라마로, 송영창씨가 맡았다. 매우 침착한 성품이며, 외교의 달인으로 등장한다. 화랑 시절 외에는 갑옷을 입은 모습이 나오지 않는다[2]. 김유신과는 생사고락을 같이 하는 지기라서 왕위등극 이후에도 사석에서는 서로 편하게 대화를 하는 장면도 가끔 등장한다. 모든 사극 중에서도 가장 사서의 모습과 일치하는, 스탠다드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최후는 모든 드라마 중에서도 가장 독특하게 각색이 되었는데, 익산 지방에 전해내려오는 전설을 차용하여 백제장수 윤충에게 암살당하는 것으로 퇴장한다.

2.2. 드라마 연개소문


김병세가 연기했다. 연개소문에서는 후사가 없는 선덕여왕 다음의 후계자로 주목받고 있으며 김유신과도 각별한 사이이다. 김유신의 딸인 보희를 좋아하고 있었으나 보희는 첫사랑인 연개소문을 잊지 못하여 그를 기피하였고 이에 문희가 김춘추의 유망함을 염두에 두고 보희의 꿈을 사고 술취한 김춘추를 유혹하여 그와 하룻밤을 지내게 된다. 김춘추는 보희와 동침한 줄 알고 있다가 놀라서 문희를 기피하게 되나 이를 안 김유신이 딸을 화형시키는 퍼포먼스(...)를 절로 행차하는 선덕여왕 일행에게 보여줌으로서 결국 김춘추는 문희와 맺어지게 된다.
원래는 고구려를 배척하고 당나라를 끌어들이자는 중신들에게 당나라는 멀고 고구려는 가까운데 어떻게 당나라가 자신들을 돕겠냐며 중신들의 주장이 비현실적임을 지적하기도 하고 자신의 사위의 어리석음을 걱정하는 개념인(?)이었으나 대야성 전투로 딸이 죽게 되자 복수심에 눈이 멀어 당태종에게 직접 사신으로가 머리를 조아리며 신하가 될 것을 청하는 등 친당파로 완전히 흑화하였다.[3] 백제가 멸망한 뒤 소정방에게 항복의 예를 행한 의자왕에게 김유신과 신라 장군들이 김춘추에게도 항복의 예를 갖추라고 하자 소정방이 이미 했는데 뭘 또하냐고 해서 신라 장군들이 반발하였으나 그냥 넘어가고, 백제 왕궁에 묻혀있던 고타소의 머리를 수습하고 눈물을 흘린다. 소정방과 같이 잔치를 벌인 자리에서 소정방이 의자왕을 술따르게 하고 당나라 장군들이 은고를 능멸하자 김유신을 비롯한 신라 장군들이 예의가 없다며 반발하고 이에 당나라 장군과 신라 장군들이 일촉즉발의 상황에 놓이자 먼저 신라 장군들을 진정시키며 소정방에게 굽히고 들어간다.[4]
백제 멸망 이후엔 거의 골골대며 죽어가는 모습으로 등장하는데 백제부흥운동을 진압하느라고 신라군 대부분이 투입된 그 와중에서도 우리 신라는 당나라에게 계속 협조해야한다며 친당적인 노선을 고수하려고 하여 이에 김유신과 태자가 반발하게 된다.

2.3. 드라마 선덕여왕




2.4. 드라마 대왕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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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근초고왕광개토태왕에 이은 KBS 대하드라마 영웅 군주 3부작의 마지막 시리즈 대왕의 꿈의 주인공으로 2012년에 또 등장하게 된다. 게다가 주인공은 또(...) 최수종이 캐스팅되었다.[5] 아역 배우는 뿌리깊은 나무(드라마)강채윤 아역과 드라마 인수대비단종과 관상의 단종 역을 맡는 채상우.
이 드라마에서 김유신과 함께 양대 주인공이며 어린 시절 만난 김유신을 형처럼 따른다. 극중에서 총명한 것으로 묘사하며 알천 등 개혁파 신료들에게, 왕자가 없는 진평왕의 후계자로 지지받는다. 그러나 폐왕(진지왕)의 손자로서 진골 신분이라는 약점이 있다. 또한 총명한 것을 넘어 이상주의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 사도태후 앞에서 진지왕의 폐위는 옳지 못하다고 말하는 등 목숨이 위태로운 발언을 서슴치 않아 후덜덜하다.
덕만과 국반 갈문왕의 국혼 문제를 두고 반발했다가, 갈문왕과 사도태후의 눈밖에 나서 서라벌을 떠나 10년을 서라벌 밖에서 지내고 다시 돌아와 진평왕이 사정부의 관리로 임명했다. 소금 밀매로 이익을 챙기는 집단을 적발해 내고 위기를 맞지만 김유신과 귀문의 도움으로 무사히 구출.
보라궁주라는 부인(추소영 분)이 있는데, 대야성에서 죽는 딸 고타소가 이 부인의 소생으로 설정한 듯하다. 그러나 이는 《화랑세기》의 기록이고, 《삼국사기》에서 고타소는 분명히 김유신의 여동생인 문명왕후의 소생이다.
국왕 즉위 이후로는 거의 악역이 따로 없다. 실제로 김유신을 비롯한 주요 등장 인물 대부분에게 까인다. 대의를 외치며 사사건건 당나라를 옹호하고, 다른 사람들이 뭐라 하던 눈만 굴릴 뿐 전혀 굽힐 줄 모르며, 기어이 당군을 지키러 자기 백성들의 떼죽음까지 외면하는 등 완전히 타락독재자다. 선덕여왕은 애교로 보일 정도.
마지막엔 과거의 자신과 만나는데, 여기서도 "당신은 옛날의 대의를 잊고 삼한 땅을 당나라에게 팔아넘기고 있다"라 극딜을 겪는다. 그래도 굽히지 않자 태종 무열왕을 눈물 서린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대왕의 높은 대의가 백성들을 구제할 것입니다"라 하고 사라지는데, 끝내 한반도 위가 당나라의 영토로 바뀜을 생각하면 아무리 봐도 비꼬기다.(...)

2.5. 삼국지조조전 Onl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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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흥태왕의 패라는 계보의 미등장 데이터로 남았다. 병과는 군주계. 장수 이름은 본명인 김춘추로 나온다. 능력치는 무력 81, 지력 88, 통솔 86, 민첩 85, 행운 92. 본래 플레이어블로 등장할 예정이었다가 제작진이 한국사 고대무장이 출시되면 능력치 논란이 일어날 것을 우려해 결국 일부러 등장시키지 않았다.
데이터상의 장수 특성은 반격강화/주위견고로 별로 좋지 않았다. 이렇게 나와봤자 주위기합과 주위견고를 동시에 갖춘 손권이나, 손권 너프 후에는 진시황 영정에 밀려서 섬멸전이나 경쟁전 등 여러 콘텐츠에서 고인 확정이었을 것이다. 다만 이건 극초창기에 이득규 개발자가 임의로 부여한 것이고 만약 정식 등장했다면 항우 때 그랬던 것처럼[6] 좋은 전용 특성으로 바뀌어 나왔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2.6. 기타


게임 천년의 신화에서는 신라의 영웅으로 나온다. 다른 국왕인 광개토대왕이나 근초고왕과 비슷한데 현혹으로 적의 캐릭터를 아군으로 만들 수 있으며, 확장 현혹술을 연구하면 건물도 현혹할 수 있다. 천년의 신화에서 현혹술을 가진 영웅 유닛은 종족당 한 명씩만 있는데, 고구려는 장수왕, 백제는 근초고왕, 신라는 무열왕이다. 헌데 무열왕만 시작시 mp가 타 군주들보다 50% 많아 현혹술을 1렙부터 2회 연속 사용할 수 있어서 좋다. 격려를 사용하면 주변 아군 병사들의 공격력과 방어력을 올려준다. 실제 무열왕은 외교형 군주였는데 여기서는 말 탄 검 영웅이라서인지 무장형 군주로 보인다.
영화 황산벌에서는 비교적 희화화되어서 등장한다. 배우는 이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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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에선 연개소문한테 '반쪽짜리 왕주제에~'라고 까이는데 이는 성골이 아닌 진골 출신 왕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김유신도 무열왕을 막 대하는데, 이에 무열왕이 "우리 신라는 다 좋은데 이 위 아래없는 말투는 싹 고쳐야 한다"고 하지만 김유신은 "이기 우리 전통 아이가? 얼마나 살갑고 좋노!"라며 일축. 그리고 김유신을 겉으로는 반기면서도 견제하고 있다. 김유신이 나가자마자 협상단을 불러서 김유신 같은 꼰대는 못 믿는다면서 협상단이 신라의 미래를 짊어진다며 격려한다. 그리고 의자왕에게는 개인적인 원한이 더 큰 모습을 보인다. 영화 초반 4자 대면에서도 의자왕에게 딸의 원수라고 단단히 복수에 목 마른 모습을 보이며 마지막에 기껏 백제를 멸망시켰는데 백제 영토는 물론이고 의자왕의 신원마저 당나라에게 귀속되자 크게 상심한 모습을 보이며 둘째 아들이자 당의 관료 김인문을 원망한다. 영화 첫 장면에서도 당고종에게 빌붙는 인물로 묘사되며 마지막에는 아들 법민에게도 '고구려는 대장군하고 내가 맡을 테니 아버지는 빠지라'는 말을 듣는다. 무열왕에 대한 현대인들의 부정적 평가가 많이 반영된 캐릭터라고 볼 수 있다. 후속작 평양성에서 아들인 문무왕이 당에 굽신대면서도 챙길 것은 챙기고 당에 할 말도 하는 왕으로 등장하는 것과 많이 비교되는 묘사. 후속작인 평양성에서는 이미 고인이라 등장하지 않는다. [7]
영걸전 시리즈의 외전작인 삼국지 조조전 온라인에서는 고대 무장으로 존재하였으나 출시되지 않은 상태이다. 병종은 군주계로, 무지통민행 합계가 432로, '''손견(429)'''을 딱 '''3''' 차이로 제쳤다.
점프 시리즈에서도 등장. 문희 편과 김유신 편에서 총 2번 등장하였다. 다만, 문희 편으로 고아 아이들을 돌보면서 문희와의 사랑을 약속한 인물로 나왔다면 김유신 편에서는 김유신을 열폭시키게 만든 인물로 등장하였다.
일본만화에도 등장한 적이 있다. 덴지와 덴무-신설 일본서기-(天智と天武-新説・日本書紀-)에서 등장하는데 김유신과 함께 일본에 사신으로 가서 왜 조정에서 앵무새공작새를 선보이며 왜 조정의 인물들을 놀래키기도 하고, 왕위에 오르기 전의 덴무 덴노와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작중에서 부여풍과 동일인물로 묘사되는 후지와라노 카마타리의 입을 빌어 "행동력과 외교력이 대단한 인물"로 평가되며 이후 백제를 멸망시키고 의자왕에게 굴욕을 주는 장면도 묘사된다.
[1] 사실 이게 당연한거다. 우리나라의 경우 워낙에 드라마 별 개성적인 발 고증 덕분에 같은 시대를 다른 드라마라도 방송사별로 복장이나 갑옷이 다 다르며 심한 경우엔 아예 외주 제작사별로, 혹은 같은 방송사나 외주 제작사 내에서도 PD 등 제작진에 따라 그런 차이가 생겨나기도 한다.[2] 단, 백제정벌전에는 황금갑주를 입고 친정을 하늗 모습이 나온다. 딱 그정도만.[3] 당연하지만 일국의 왕이 직접 사신으로 가서 고개를 조아리는 일 따위는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물론 아직 이때는 김춘추가 왕이 되기 전 시점이었지만. 여담으로 연개소문이 이를 막기 위해 검모잠뇌음신을 보내 해상에서 김춘추가 탄 배를 나포해 죽이려고 들었으나 김춘추의 집사가 자신이 김춘추라고 해서 대신 죽고 김춘추는 일반 선원으로 변장해 살아남았다.[4] 이 역시 당연히 말도 안 되는 일로, 당연하지만 제아무리 소정방이 당의 장군이라 해도 일국의 국왕인 김춘추보다 높을 수는 없다. 그리고 김춘추 역시 당의 속내를 어느정도 꿰뚫고 있는 상황이었다.[5] 여담으로 삼국 각각의 전성기를 다룰 거라면 질리게 극화된 삼국 말기나 도 생각보다 많고 여러번 드라마에 나왔던 태종 무열왕보다는, 선덕여왕에 카메오 출연 외에는 한번도 드라마 출연이 없었던 진흥왕을 맡아야 한다는 의견이 당시 사극팬들 사이에 꽤 있었다.[6] 항우는 정식출시 이전 원래 데이터에서는 기마공격 강화 무시, 일기당천이었다.[7] 연개소문은 666년에 사망했고 평양성 전투는 668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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