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인하
1. 개요
대한민국의 작사가, 작곡가, 가수, 라디오 DJ, 연기자, 쇼 프로그램 진행자, 실용음악과 교수[4] , 기획사 대표, 사업가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해왔다.[A]
2. 활동기
1959년, 충청북도 청주시 출생. 배재고등학교(93회)와 경희대학교 환경보호학과[5] 를 졸업하였다.[6] 1984년 12월 가수 이광조의 '사랑을 잃어버린 나'[7] 라는 곡을 작사 및 작곡하여 작곡가로 첫 데뷔했다. 그 뒤 1986년 록 밴드 "WE"의 보컬리스트로 활동하면서 가수 활동을 시작하였고 1987년 솔로 가수로 전향한 뒤 '슬픈 추억' (1988), '계절이 음악처럼 흐를 때' (1990), '나의 꿈을 찾아서' (1991) 등으로 인기를 얻었다.[A]
1989년에 마로니에라는 그룹을 결성하여 김선민, 신윤미와 함께 부른 '동숭로에서'라는 히트곡을 냈다. 1989년 영화 《비 오는 날 수채화》의 OST 음반에 참여하였고, 김현식, 강인원과 함께한 동명의 노래였던 ''''비 오는 날 수채화#s-2''''로 큰 인기를 얻었다.
권인하는 김현식, 이광조 등과 함께 소극장에서의 콘서트 중심으로 활동하며 라이브 무대에서 강점을 보인 '언더그라운드 스타'로 대표되는 가수였다.[8] 그러다가 1992년 8월, 자신의 음악적 소신(록 음악의 홍보 차원)을 확산시키기 위해 본격적인 방송출연을 선언했다. 1992년 12월에는 과거 그룹 시절부터 솔로 활동에 이르기까지 발표한 히트곡들을 모아 베스트 앨범(컴필레이션 앨범)을 발표했는데, 특히 이광조의 히트곡이자 자신의 작품인 `사랑을 잃어버린 나`라는 곡을 리메이크해서 불렀다.#
2000년 수요예술무대, 콘서트 초대, 가요 빅뱅, 사랑의 리퀘스트, 성인가요 베스트 30, 2001년 열린음악회, 이소라의 프로포즈, 김도향의 굿나잇 쇼에 출연하여 자신의 음악성을 텔레비전을 통해 알렸다. 그리고 그 외에도 배우로서는 1992년 MBC 미니시리즈 〈창 밖에는 태양이 빛났다〉에서 주연을 맡았고 2001년 MBC TV 드라마 《가을에 만난 남자》에 준조연급으로 출연한 바 있다. 현재 신촌 인터내셔널 사장이며 소속사는 WE Music이다.
2011년에는 이치현, 강인원, 민해경과 함께 프로젝트 보컬 음악 그룹 컬러스(the Colors)를 결성하기도 하였다.
열린음악회 1073회에서 가수 나비와 함께 임재범, 박정현의 〈사랑보다 깊은 상처〉를 선보였는데[9] , 자신의 파트에서 키를 낮추지 않고 원곡 그대로의 키로 잡아 음이 상당히 높았음에도 불구하고 가성처리를 하지 않고 진성처리를 하며 관객과 시청자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원곡자인 임재범이 가성으로 부른 부분들을 권인하는 진성처리를 하느라 곡을 상당히 힘겹게 불렀다. 나비의 화음을 잘 따라가며 진성만으로 완곡에 성공하며 나이가 무색할 정도의 파워를 보여주었다는 평가.
가수로서는 흔히 말하는 인기가수의 정점에 선 적은 없으나,[10][11] 싱어로서 기술적인 측면에선 발음, 발성 그 무엇 하나 부족함 없는 본좌급 보컬리스트. 록과 블루스를 베이스로 한 보컬리스트다보니 폭발적인 성량은 물론 전매특허의 거친 샤우팅으로 청자를 압도하곤 하는데, 60대에 접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전성기 시절과 비교해도 큰 기복없이 최정상급 기량을 선보이고 있다는 점에서도 본좌 소리가 아깝지 않은 몇 안 되는 싱어 중의 싱어. 천둥호랑이 창법으로 이름을 알리며 폭넓은 연령대의 팬층이 모이는 추세다.
3. 가창력
'''그가 부르면 원곡'''이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대단하다. 덕분에 생긴 별명이 '''천둥호랑이'''. 들국화의 '그것만이 내 세상'을 커버할 때, 전인권이 판소리의 '창'을 쓰기 때문에 원곡의 느낌을 살리기 어려워 아예 다른 느낌으로 편곡이 되는게 보통인데, 권인하는 그거와 상관없이 그냥 부른다. 아래 영상 참조.
타고난 압도적인 성량과 도저히 여기서 더 안 올라갈것 같아 보이는 음역도 그냥 진성으로 계속 뽑아 올라가 버리는 강력함으로, 그레이엄 보넷을 연상케 하는 파워 보컬리스트다. 과거 아마추어 밴드 보컬리스트들 중에 얼핏 어렵지 않게 부르는 것 같이 들리는 권인하의 창법을 따라하다 피똥싸고 쓰러졌다는 경험담이 있다. 어정쩡한 폐활량과 음역으로는 아예 부를 엄두도 못낸다. 전성기 시절에는 이 괴물같은 창법으로 She's gone을 완창했다고 한다.[12][13]
들국화의 <그것만이 내 세상>.
태연의 <만약에>. 태연이 부른 원곡과는 다른 감성과 애절함으로 극찬을 받았다.
박효신과 함께 부른 <그것만이 내 세상>.
4.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첫 경연에서 날아라 태권소년라는 가명으로 참가하였다. 심금을 울리는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면서 많은 감동을 주었으며, 복면가왕 녹화가 마무리 된 뒤에 EBS 스페이스 공감에서 복면가왕에서 불렀던 노래를 다시 한 번 불렀는데, 저작권 문제 때문에 미방영분으로 페이스북과 유튜브에 업로드 되면서 큰 화제가 되었다. 의외로 10대 청소년 및 20대 청년들로부터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었으며, 유튜브 동영상 조회수는 20만회를 가뿐히 뛰어넘었으며, 2019년 10월에 와서는 무려 300만회를 돌파하였다.[14]
그 이후 한참 뒤에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109차 경연에서 부를까~ 말까~ 가왕석 영구집권! 영구라는 가명으로 다시 참가해서 가왕석으로 산책가요~ 노래하는 땡칠이, 냉탕 온탕 만능 목소리 목욕탕, 항아리에서 가왕석으로! 우렁각시을 차례대로 꺽고 해당 경연에서 우승하면서 가왕와 9표 차이의 초접전을 벌이는 등 맹활약을 펼쳤으며, 남성 최고령 우승자가 되었다.[15] 그 이후 종종 판정단으로 참여하여 괜찮은 추리력을 보여줬다.
5. 작품
5.1. 앨범
5.2. OST
5.3. 참여
5.4. 방송
5.5. 커버곡
- 50만뷰 이상
6. 사건/사고
- 2006년에 혈중 알코올 농도 0.168% 상태로 음주운전 사고를 일으켰다. 변명없이 곧바로 음주 혐의를 시인하고 20분만에 귀가 조치 됐으나, 면허 취소 조치를 받았다고. 이후 인터뷰에서도 "한번 실수로 엄청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실도 다시 한번 배웠다."고 밝혔다. 다행히 반성한 이후에는 음주운전이라는 동종 전과는 없는 모양(...).
- 연말/연시의 빼놓을 수 없는 사고인 '주취폭행' 사건에도 휘말려 곤혹을 치른 바 있다. 당시 사업의 저조한 실적으로 괴로워하던 와중 주량 이상의 술을 마시다가 만취 상태가 된 권인하는, 주위를 식별할 수 없는 상황에서 주변이 자신을 해친다고 생각하여 폭력을 행사했다고 한다. 택시 기사의 머리를 때리고, 경찰서에서 경찰관들과 실랑이를 벌이다가 머리로 들이받는 등 경미한 폭행을 가했다고 한다. 이후 권인하는 폭행 혐의와 공무집행방해 혐의[23] 를 받았지만, 비교적 경미한 사안이고 피해자와도 합의가 된만큼 '기소유예' 처분으로 조용히 넘어갔다. 섹션TV연예통신에서 피해자인 택시기사와 합의를 한 문자를 공개했고, 소동을 빚은 경찰서에 직접 찾아와 고개 숙여 사과하는 훈훈한 모습도 보였다(...). 사건/사고 항목 두 개 모두 음주에 관한 사고들이고, 실제로 상당한 애주가였던 지라 이런저런 사건에 휘말린 모양이다. 다행히도 2014년 여유만만에서 당뇨병으로 인해 금주를 시작했다고 밝혀 많은 이들의 응원을 받았다.
7. 여담
- 한때 MC도 본 적 있는데 1992년 MBC의 쇼 프로그램인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를 진행했고 1994년 KBS 2FM '권인하쇼'를 진행한 바 있다.
- 박효신과 박화요비의 데뷔전 모습을 본 사람이다. 박효신의 1~3집 발매 당시의 소속사가 신촌 뮤직이었는데, 당시 음반사였던 신촌 뮤직의 대표이사가 바로 권인하였다고 한다. 박효신이 처음 녹음에 들어갔을 때 이를 보고 '아니 고3이 왜 이리 노래를 잘해?' 라며 감탄했다고, 실제로도 박효신을 굉장히 아꼈던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
- 권인하가 박효신을 가르친 선생님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조언은 해줬을지언정 가르친 적이 없다고 못을 박았다. 이미 알아서 다 잘하는 천재였기 때문에 가르칠 필요가 없었다고... #
- 박효신의 데뷔 초기, 특유의 소몰이창법을 교정해줄까하는 생각을 했었다고 한다. 녹음할 당시에 가사를 잘 못 알아 들을 정도로 창법의 발성이 굉장히 심했다고, 안에서 발음을 먹는 식의 창법을, 밖으로 내뱉는 식의 창법으로 바꿔서 데뷔시킬까하는 생각을 하다가 당시 대표이사였던 그 보다 더 높은 위치에 있던 인물로 인해 결국 무산이 되었다고 한다.
- 들국화 헌정 앨범 A Tribute To 들국화에 <그것만이 내 세상> 을 리메이크 했었는데, 이 때 아끼던 후배인 박효신과 함께 무대에 올라 레전드 무대를 만들었다. 권인하가 특유의 가창력과 포스로 당시 어린 박효신을 완전히 압도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박효신도 이에 못지않는 뛰어난 가창을 보여줬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화제가 되고 있다. 유튜브 영상에서 "PPT 발표하는 전국수석 신입생과 즉석 첨삭하시는 전공 교수님"이라는 댓글이 크게 호응을 얻었다.
- 박효신의 <바보>를 유희열의 스케치북을 통해서 불렀는데, 역시나 권인하 특유의 창법과 애절함으로 잘 소화해내 원곡을 뛰어넘는 최고의 무대라는 평을 받고 있다. 후에 인터뷰에서 당시, 어린 나이였던 박효신이 이렇게 처절한 사랑 노래를 하는 모습을 보고서 '조금 더 나이 들어서 불렀으면 좋았을텐데' 하고 아쉬워했다고, 영상은 권인하의 유튜브 공식 계정을 통해 시청할 수 있다.
- 젊은층들의 열광적인 반응에 감동을 받았는지, 공식 유튜브 채널을 만들어 출연한 방송 영상과 콘서트 실황 영상, 라이브 영상 등을 올리고 있다. 또한 멜로망스의 <선물> 이라는 곡을 새롭게 재해석하는 영상을 올려 젊은층들과 소통하려 하는 모습을 보여줘 큰 반응을 얻고 있다. 굉장한 고음을 요구하는 곡임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노련미로 끝까지 잘 소화해내는 모습을 보여주며 다시한번 강한 인상을 남겼다. 태연의 <만약에> 커버 영상에도 '세월이 흘러도 세대가 달라도 이렇게 공감해 줘서 감사하다', '제 2의 전성기인 마냥 힘이 솟아오른다' 등의 댓글을 남겨 감사함을 표하기도 했다.
- 2017년 12월 26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유튜브 채널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밝히기도 했는데, 공연 영상을 찍은 지인의 제안으로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또 직장인 초년생인 아들의 추천으로 '보고싶다', '선물' 등의 노래를 찍어 올리기도 했는데 역시나 반응은 폭발적, 이러한 젊은층들의 뜨거운 호응에 감사함을 전하기도 했다.
- 콘서트명이 다름 아닌 '포효'인데, 그와 잘 어울린다는 평이 대부분.
- 유튜브 보컬밸런스 방송에 출연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는데 음악계에서 대선배로 자리잡은 기라성같은 가수들을 편한 호칭으로 부르면서 당시 생방을 보던 사람들을 경악하게 했다. 임재범이나 이승철을 '임재범 저 친구', '승철이'라고 부르는 부분이 백미. 또한 최재훈을 가수로 만드는데 공헌을 했다는 사실도 이때 밝혀졌다. 자기 사무실에서 일하던 사람이 데모 테이프를 들어보래서 들어봤는데 그 데모에서 드럼과 노래를 담당한 최재훈의 노래를 듣고 드럼을 치지 말고 노래하라고 했다고. 해당 영상
- 묘하게 홍준표를 많이 닮았다. 그래서 권인하 관련 영상에 홍준표가 음악계로 진출했다는 개드립도 종종 나오는 편이다.
- 2019년 10월 31일에 신곡 '어떤 날엔'을 발표했으며 작사 및 작곡은 작곡가 그룹 '이뮨'이 맡았다.
- 2020년 2월 14일 슈가맨 3에서 신윤미와 함께 재석팀 슈가맨 마로니에 멤버로 출연해서 '칵테일 사랑', '동숭로에서', '비오는 날 수채화&흔들리는 꽃들 속에서'를 불렀다.
[1] 항렬자를 쓰지 않았으나, 추밀공파(樞密公派) 대경일계(大經一系) 34세손이다.[2] 졸업 기준이다. 입학 당시는 자연보호학과 79학번[3] 천둥호랑이 권인하 공식 네이버 팬카페[4] 여주 대학, 숭실대 사회교육원 등에서 실용음악을 지도했다.#[A] A B 멜론 - 권인하[5] 자연보호학과 79학번인데, 1980년에 환경보호학과로 바뀌었다. 현재는 환경학 및 환경공학과(2009년 개칭)이다.[6] 1979년 청주대학교 밴드 샐레맨더스 명의로 MBC 대학가요제에 출전한 이력이 있다.[7] 권인하는 EBS TV 「스페이스 공감」에 출연했을 때 진행한 인터뷰에서, 이 곡의 창작 배경에 대해 “우연히 보았던 카페 속 연인의 모습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밝혔다. “새벽 1시에 길을 걷다가 우연히 지나치던 카페에 커튼 사이로 한 쌍의 연인이 앉아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두 사람의 모습을 보니 영락없이 이별을 앞둔 분위기였어요. 정말 우연히 본 상황으로 만든 노래인데, 내게는 작사‧작곡자로 가요계에 나오게 해준 곡이라 더욱 의미가 큽니다.” (네이버 지식백과)[8] 콘서트 중심 「언더그라운드 가수」 김현식등 4명 옴니버스音盤(음반) 내(1989. 12. 09.) / 「언더그라운드」스타 잇단 콘서트(1992. 02. 22.)[9] 해당영상 10분 40초경[10] 1992년부터 2002년까지 10년간 작성된 '한국 DJ클럽 가요차트 100'을 분석한 결과, 이승철이 4백 45주간 차트에 올라 1위를 차지했다. 이어 신승훈(3백 64주), 김건모(2백 84주), 김종서(2백 83주), 김성호(2백 75주), 최용준(2백 63주), 김현철(2백 51주), 소리새(2백 42주), '''권인하(2백 41주)''' 등의 순이었다. (2002년 기사)[11] 당시 나름대로 공정한 음악 순위지로 인정받던 뮤직박스 차트(음반판매량으로 집계)에서 '계절이 음악처럼 흐를때'로 1위를 차지한 적이 있긴 하다. 1991년 1월 18일 기사에서 뮤직박스 차트 2위에 오른 기록이 있다. "① 넋두리(고 김현식) '''② 계절이 음악처럼 흐를때(권인하)''' ③ 안녕(신해철) ④ 시청앞 지하철역에서(동물원) ⑤ 그대가 나에게(이승철) ⑥ 당신은 어디있나요(양수경) ⑦ 추억의 책장을 넘기면(이선희) ⑧ 그녀를 만나는 곳 1백m전(이상우) ⑨ 텅빈 거리에서(공일오비) ⑩ 자꾸 서성이게돼(박학기)."[12] 다만 아쉽게도 현재 해당 무대는 영상은 물론 녹음본조차 남아있지 않다.[13] 현재도 3옥타브 레(D5)까지 가능하다.[14] 링크[15] 그 이후 그가 썼던 가면은 마이 리틀 텔레비전 V2 복면가숲에서 각설이 타령 가면으로 재활용 되었으며 그도 복면가수(?)로 출연하였다.[16] 370회[17] 1149회[18] 1073회[19] 161027[20] 579회[21] 644회[22] 190130 439회[23] 법조계 전문가들에 따르면, '공무집행방해'는 다소 과하게 적용된 것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