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아메리칸 야구 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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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 American Baseball Confederation(영어)
Confederación Panamericana de Béisbol(스페인어)
Confederação Pan-Americana de Beisebol(포르투갈어)
'''
'''한국어명칭'''
팬아메리칸 야구 연맹(COPABE)
'''설립연도'''
1985년 1월 1일 (39주년)
'''본부'''
멕시코 멕시코 시티
'''가입국'''
31개국
'''공용어'''
영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회장'''
네메시오 포라스
공식 홈페이지
1. 개요
2. 소속국가
3. 대회참여
4. 현황
4.1. 중앙아메리카
4.2. 남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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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세계야구소프트볼 총연맹 가입연맹중 하나로 아메리카 대륙의 야구를 총괄하는 기구이다. 총 31개국이 참가중.

2. 소속국가




3. 대회참여


모든 야구선수들의 꿈이라고 선전하는 최강의 야구리그인 MLB가 있지만 아마추어 국제대회에는 큰 관심이 없는 미국과 그 주변의 팜으로서의 국가들(도미니카 공화국이라든가 푸에르토리코, 멕시코, 베네수엘라 같은.), 그리고 아마추어 최강자인 쿠바가 있는 연맹이다.
이 동네만으로의 대회로는 팬아메리칸 게임(소위 '팬암대회')의 야구종목[1], 중미 카리브해 경기대회의 야구종목 등이 있다.
100%의 전력으로 붙었을 때 세계최강자는 미국이지만, IBAF랭킹에서도 나오듯이 대회에서 많이 우승하는 건 쿠바다. MLB에서 많은 선수들이 미국국적이 아닌 다른 나라 출신이기도 하지만, 국제대회가 중요하지 않아 왔던 문화로 인해 프로선수들의 출전이 이뤄지지 않아왔다. 로이 오스왈트벤 시츠가 시드니 올림픽 우승의 주역으로 나왔던것은 마이너리그 시절 이야기. 그나마 차출을 했을 때도 2008년 올림픽때 맷 라포타[2]나 2009년 추신수처럼 소속팀의 입김이 엄청나게 들어갈 정도로 쉽지 않다. 00년 시드니때는 토미 라소다가 감독이었기에 가능했던 거고.. 10년 대륙간컵에는 대표단조차 보내지 않았다. 사실 안보낸 게 아니라 못보낸거 긴 하다. 올림픽에서 야구가 빠지면서 미국야구협회에대한 지원금이 줄어서 돈이 없는지라. 미국의 역대 국제대회 성적은 올림픽 금1 동 2 / 야구월드컵 1위 4번, 2위 7번, 3위 4번 / 대륙간컵 1위 2번, 2위 4번, 3위 2번.
쿠바는 아마추어 최강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프로리그가 없기에[3] 모든 쿠바 국적 선수가 아마추어 선수이기 때문.. 쿠바 리그[4]와 슈퍼시리즈[5]를 통해 국가대표 선수들을 선발한다. 일단 성적부터 써보면 WBC 2위 1번 / 올림픽 금3 은2 / 월드컵 1위 25번, 2위 3번, 3위 2번 / 대륙간컵 1위 10번, 2위 3번.. 으로 화려한 성적을 자랑하고 있다. 한때 쿠바 국가대표의 빨간셔츠 빨간바지 유니폼은 무적의 불패유니폼으로 유명했다. 1987년부터 1997년까지 국제대회 ''134연승''을 거두었는데 무슨 말을 더하리오?
하지만 이러한 불패 쿠바의 명성도 점차 저물어가고 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한국에게 금메달을 내주었고, 2009년 WBC에서는 일본에게 2연패함으로서 6위로 쳐졌다. 2009 월드컵에서도 미국에게 패하면서 두대회 연속으로 우승을 하지 못하였다. 아직 강국이긴 하지만 절대강국으로의 명성은 분명 줄었다. 이러한 쇠퇴의 원인에는 일차적으로는 정치적 이유로 인한 폐쇄성으로 인해 야구가 정체되어 온 것이 꼽힌다. 프로야구 초창기의 박철순의 팜볼이나 재일동포들에게 맥을 못추던 것과 비슷한 상황. 허나 이보다도 큰 이유는 선수들의 '''망명''' 때문이다. 호세 콘트레라스, 엘 듀케, 리반 에르난데스, 아롤디스 채프먼, 알렉세이 라미레즈, 요에니스 세스페데스, 레오니스 마틴과 같은 쿠바 최고의 선수들이 줄줄이 돈을 위해 외국으로 망명[6][7]하면서 구멍들이 생기기 시작한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쿠바는 2017 WBC에서 호주를 겨우 따돌리고 8강에 올랐으나 네덜란드에게 1-14 콜드게임패를 당하고 이스라엘에게도 패하며 8강에 어찌 운좋게 간 수준을 입증했다. [8]

4. 현황



4.1. 중앙아메리카


중앙아메리카 쪽에서는 야구가 인지도가 높다. 쿠바에서 야구가 사랑받는 이유는, 쿠바 옆의 카리브 연안을 끼고 있는 많은 중남미 국가들에서 야구인기가 많기도 하고, 게다가 수장 피델 카스트로도 젊은 시절에 미국 뉴욕 양키즈팀의 입단 테스트까지 받은 적도 있기 때문이다.게다가 미국 식민지를 50여년동안 겪으면서 야구가 크게 자리를 잡은 점도 한몫을 했다. 과거 메이저리그에서 겨울철에 쿠바로 와서 윈터리그를 하며 야구장비를 많이 남기기도 했었다. 보통 쿠바가 지독한 반미국가라고 하니 야구가 인기를 얻는 게 이상하다고 여기는데 터무니없다. 그런 논리라면 냉전 시절, 반미 최고봉이라고 해야할 소련이나 유고슬라비아같은 공산권 나라들이 미국에서 나온 농구배구 인기가 엄청나던 걸 이상하게 여겨야 한다. 어디까지나 정치적으로 미국에 맞서는 것이지(피델 카스트로 항목을 봐도 알겠지만 그는 미국이 처음부터 무조건 싫다는 인물도 아니었다) 미국에 대한 모든 걸 싫어하던 게 아니었다. 마찬가지로 쿠바도 야구와 마찬가지로 농구나 배구도 인기가 있고 꽤 수준급 강호이다.
도미니카 공화국은 야구 잘하면 출세하는 곳으로 경제력 없으면 야구 못한다는 인식을 깨부순 곳이다. CNN이나 미국 방송에서 현지 취재를 가서 열악한 환경에서도 야구를 하며 자라나는 아이들을 취재하며 감격할 정도이다. 그냥 나무막대기와 쓰레기를 뒤져 만든 글러브와 공을 던지며 야구를 하는 아이들이 나왔으며 이런 아이들 속에서 새미 소사나 앨버트 푸홀스같은 선수들이 나왔다.[9]
미국과 바로 이웃인 멕시코도 세계에서 3번째로 프로리그가 생겨날만큼 제법 실력을 갖추고 있다.[10] 윈터리그로 메이저리거들이 겨울에 와서 경기를 하는 미국령 푸에르토리코, 니카라과, 파나마에도 프로리그가 있고 엘살바도르 같은 중미나라들도 야구가 꽤 인기가 있다.
도미니카 공화국(LIDOM, 1951~), 푸에르토리코(LBPRC, 1938~), 멕시코(LMP, 1945~), 베네수엘라(LVBP, 1945~), 쿠바(SNC, ~2014)의 북중미 및 남미(베네수엘라 하나뿐이지만) 5개 국가들은 자기들끼리 "캐리비언 시리즈"라는 대회를 열어 리그 우승팀끼리 국가대항전을 펼치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 나라의 경제 사정이 안 좋아서 여기 야구선수들은 미국 아니면 하다못해 한국이나 일본, 대만, 호주에 가면 대박이고 심지어 이탈리아나 네덜란드같이 프로리그라고 하기엔 벅찬 해외라도 좋으니 해외로 나가는 게 꿈이라고 할 정도이다. 펠릭스 호세도 한국에서 인터뷰로 조국인 도미니카 공화국에서도 한국이라도 가면 대단히 출세한 수준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네덜란드나 이탈리아 리그 수준에선 야구만으로 벌어먹기 어렵지만 거기서라도 돈을 벌면 중미 나라에선 그래도 꽤 돈이 되고 그 유럽리그에서 잘해서 다른 상위리그 도전을 노리는 점도 많다.

4.2. 남미


남미에선 베네수엘라가 엄청나다. 유일하게 남미에서 야구가 인기있는 나라이며 미국이 반미 독재자로 오명을 씌워가며 비난하는 우고 차베스도 야구광이었다. 그외에 콜롬비아에도 리그가 있고 야구가 꽤 인기 있어 메이저리그로도 선수를 배출하고 있다. 그 외의 남미지역의 야구는 잘 미비하고 조잡한 수준으로 명목상 세미프로지만 사실상 아마추어에 가까운 상태로 유지되고 있다.
위에 언급된 중남미 국가들에는 야구사관학교도 있다. KBS의 교양프로그램 세계는 지금에서도 취재하러 간 적이 있는데, 사실 야구선수를 전문적으로 육성하는 스쿨은 미국, 일본 등에도 많지만 이 곳은 '사관학교'라는 명칭을 붙일 정도로 정말 야구 하나만 바라보고 산다. 중부 아프리카 소년들이 축구로 인생역전을 꿈꾸는 것과 비슷하다. 훨씬 더 체계적이지만... 재미있는 건 개발도상국들 대부분이 그렇듯이 영어만 알아도 어느정도 수입원이 생기기 때문에 야구 뿐만 아니라 미국 생활 적응을 위한 교육을 시키느라 근처 학부모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다고 한다.

[1] 야구하는 나라들이 많다보니 첫해부터 쭉 있었다.[2] 그래도 이 당시의 미국 올림픽 대표팀의 주전들 중 많은 선수들이 2010년대 초반 메이저리거로 발돋움한 케이스들이 많다. 브렛 앤더슨, 트레버 케이힐, 네이트 쉬어홀츠가 대표적.[3] 사실 쿠바 프로리그가 있었다. 쿠바혁명으로 해체되고 아마추어 리그로 바뀌어서 그렇지..[4] 1961년부터 시작되어 현재 16개팀, 양대리그로 구성되어있으며, 상위 8개팀의 플레이오프를 통해 우승팀을 가린다. 11월부터 3월까지.[5] 3월부터 7월까지 5개 지역팀으로 나눠서 28경기를 치른다.[6] 특이한 점이, 미국이나 캐나다로 망명하지 않고 주로 유럽이나 멕시코, 도미니카로 망명한다. 드래프트 대상자에서 제외되어 국제 자유계약선수 신분을 얻기 위함이다. 아롤디스 채프먼의 경우에도 월드포트토너먼트에 참가했다가 그대로 대표팀 선수단에서 탈출해서 망명한 경우.[7] 심지어 2011년에는 쿠바리그 신인왕 투수가 스무살의 젊은 나이에 망명을 하기도 했다. 그 당사자인 헤라르도 콘셉시온은 2012년 시카고 컵스와 계약했다.[8] 저 둘 외에도 라이델 마르티네스, 프레데릭 세페다, 로엘 산토스도 일본에 갔는데 라이델 마르티네스는 육성선수 계약으로 별 기대 없이 들어가서 입단 2년차에 겨우 정식선수가 됐고 세페다는 쿠바 리그에서는 OPS 10할은 밥먹듯이 찍던 최강 슬러거였으나 일본에서는 1할 타율에 72경기에서 겨우 6홈런밖에 치지 못하면서 2년만에 방출. 그나마 첫 시즌때는 타율은 1할 대였어도 선구안은 일본에서도 살아남을 수준으로 좋았고 파워도 중심타선감이었기 때문에 한 번 더 기회를 주었으나 두번째 시즌에서 28타석 무안타를 기록하면서... 마지막으로 로엘 산토스는 쿠바 리그에서는 정교한 선구안과 많은 도루를 무기로 하던 최고급 리드오프였으나 일본에서는 걍 도루자 많은 LG 말년의 이대형(...) 결국 반 시즌만에 방출.[9] 사실 축구도 공이 없으면 쓰레기로 대충 축구공을 만들어 축구를 하면서 세계적 선수가 된 경우도 허다하다. 축구계의 전설 펠레마라도나를 비롯하여 차범근도 이런 환경에서 축구공 구경도 못하고 축구를 하면서도 세계적 축구선수가 되었듯이 열악한 환경에서도 그래도 아프리카 최강 농구국가인 앙골라인도에서도 농구크리켓도 장비를 대충 쓰레기를 뒤져 만들어놓고 하면서도 커가면서 프로선수가 된 경우가 허다하다.[10] 단, 3번째로 생겼다는 이 리그(LMB)는 메이저리그 하부리그로 포함되며 트리플A 취급을 받는다. 독자적인 프로리그가 아니다. 독자적인 프로리그(LMP)도 있기는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