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알제리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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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알제리'''
1. 개요
2. 역사적 관계
2.1. 고대
2.2. 19세기
2.3. 20세기
2.4. 21세기
2.4.1. 반프랑스 감정
3. 관련 문서


1. 개요


프랑스알제리의 관계 대한 문서이다. 알제리는 19세기에 프랑스의 지배를 받아서 프랑스와의 관계는 갈등이 매우 심하다.

2. 역사적 관계



2.1. 고대


예전에 프랑스와 알제리는 로마 제국의 영토였다. 그리고 로마 제국이 동로마 제국, 서로마 제국으로 분리되었을 때는 서로마 제국에 속했었다. 하지만 서로마 제국의 멸망이후, 프랑스는 로마 문화가 보존되면서 언어도 라틴어에서 갈라진 프랑스어가 되었지만, 알제리는 잠시동안 동로마 제국의 일부였다가 우마이야 제국의 정복하에 아랍화가 되면서 언어, 문화, 종교에서 달라지게 되었다.

2.2. 19세기


19세기에 프랑스는 바르바리 해적을 소탕한다는 명목으로 알제리 지역을 침략했고 프랑스령 알제리를 설치했다. 프랑스의 지배하에 알제리 현지인들은 프랑스의 우민화 정책 등 탄압을 받았다. 그리고 프랑스인들이 알제리 해안도시에 많이 거주하며 살게 되었는데, 이렇게 알제리에 정착한 프랑스인들은 “피에 누아르”(검은 발)이라고 칭해졌다. 프랑스의 식민지배동안 알제리는 프랑스 본토의 일부로 취급되었다.

2.3. 20세기


제2차 세계 대전이후에 프랑스령 알제리에서 독립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하지만 당시 프랑스는 알제리 지역의 독립을 탄압했고 결국 알제리 전쟁이 일어났다. 알제리 전쟁에서 알제리가 승리한 이후 프랑스는 물러나게 되었다. 하지만 알제리 전쟁 당시에 프랑스군에 의한 학살이 일어났다. 심지어 프랑스 본토에서도 알제리인들을 탄압하기까지 했다. 1966년까지도 알제리 지역에서 프랑스는 핵실험(!)을 진행한 적이 있었다.
알제리가 독립한 이후에는 알제리에 거주하던 프랑스인들의 대부분이 떠났고 일부 하르키(Harki)들도 프랑스인들과 함께 알제리를 떠났다.
프랑스의 여배우 이자벨 아자니의 아버지는 카빌리족 계통 알제리인이다. 전엔 그녀의 아버지가 터키계로 알려져 있었는데 그녀의 어머니가 자신의 남편이 알제리계라는 혈통이 부끄러워서 그렇게 알렸다고 인터뷰에서 밝혔다고 한다. 또 어머니는 독일인이다. 아이러니한 건, 프랑스를 대표하는 여배우이면서 동시에 프랑스와 역사적으로 불편한 관계에 있는 나라의 피를 물려받아, 이 때문에 종종 프랑스의 극우파 정치인들과 긴장관계에 있기도 하다. 알제리계지만 가톨릭이 다수이던 카빌리족 후손이다보니 반이슬람주의자인데 이슬람이라면 아주 치를 떠는 수준으로 특히 히잡 반대 시위를 주동하기까지 했다.
지네딘 지단도 이 알제리계다. 알제리에서 태어난 것은 아니고 마르세유 태생. 그래서 지단이 남아공 월드컵 때 이 나라 경기를 관전했던 것. 그런데 알제리에서도 영웅으로 알아주는 지단은 사실 한국으로 치자면 친일파의 후손과 마찬가지이다. 지단의 아버지는 무슬림이지만 하르키(Harki)라는 조직에 속했었다. 덕분에 알제리 극우단체인 알제리 민족전선에선 이 점으로 지네딘 지단 찬양을 다시 생각해보자고 주장한다.
하르키는 알제리 독립전쟁 와중에 프랑스군을 편들어 싸웠기에, 알제리 독립이 이뤄지자 전국적으로 하르키들은 길거리에 끌려나가 맞아죽거나, 아니면 알제리군에게 교수형을 당해야 했다. 이 때 20만명의 하르키(가족까지 160만명) 중에서 살아서 프랑스로 도주한 자는 3만 명에 불과했다고한다. 그런데 2012년 기준으로 프랑스에 사는 하르키의 추정치가 50만에서 80만이다. 프랑스 법이 민족별 데이터를 내는 걸 불법으로 치기에 정확히 계수가 되지는 않지만 숫자가 꽤 되는데 프랑스로 도망온 단 3만 명의 후손이 이 정도로 불지는 않을 것이다.
하르키들은 프랑스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고 프랑스를 위해 싸웠지만, 이미 알제리를 잃은 프랑스에게 있어서 하르키란 귀찮은 불청객일 뿐이었다. 당연히 이들에게 돌아오는 것이라곤 차별 뿐이었다. 직장을 다니다가도 하르키 출신이라는 것이 밝혀지면 동료들의 눈치에 그만둬야 했다. 지금도 실직자의 35%가 하르키 및 알제리 출신의 후손이라고한다.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3D업종 뿐이었다. 지단의 아버지도 항만에서 짐꾼으로 일했다. 그래서 많은 하르키의 자식들은 사회적 냉대에 결국 나쁜 길로 빠진 경우가 많았다.
그나마 현재 알제리에선 감정이 희석된 건지, 다시 알제리로 돌아가서 사는 하르키들도 늘고 있다고 한다. 알제리 대통령도 하르키 문제를 "우리가 할 일은 심판하는 게 아니라 이해하는 것"이라며 지단을 위로하기도 했다. '''어떻게 보면 견부호자라고도 볼 수 있다.''' 다만 지단은 세계가 다 아는 유명인이니 박대해서 좋을 게 없으므로 지단의 사례를 다른 사람들에게 적용할 수는 없다.

2.4. 21세기


현재에도 알제리는 프랑스의 식민 지배로 인해 프랑스와는 갈등이 매우 심하다. 알제리는 프랑스의 지배의 영향으로 프랑스어가 널리 쓰이고 있고 프랑스 문화도 널리 퍼져 있지만, 프랑스에 대한 반감으로 프랑코포니에 가입하지 않았다. 대신 2000년대 이후부터 영연방 가입을 시도하고 있다. 프랑코포니는 프랑스와의 감정 문제가 심각하고, 가입 시 얻을 수 있는 실익이 그에 비해 적기 때문에 가입을 안 하고 있다. 반면 영연방은 감정 문제도 별로 없을 뿐더러, 영연방에 가입하면 나이지리아, 남아공, 케냐 등 기존 영연방 아프리카 국가들과의 협력을 강화할 수 있음과 동시에, 영국, 호주, 캐나다, 싱가포르 등 영연방 선진국들로부터 원조를 받음과 동시에, 알제리인들이 해당 국가로의 이민과 유학에서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 있기 때문에 가입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프랑스를 견제하기 위해 러시아, 중국과 교류가 많고 소련제무기를 많이 수입했다.
프랑스내에는 알제리계 프랑스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 이자벨 아자니, 지네딘 지단 등. 이들 모두 사실상 노예로 팔려온 자들의 후손이며, 아직 프랑스 내에서 인종차별을 심하게 당하고 있다.
2010년 2월, 프랑스 일간 르 파리지앵 보도에 의하면, 프랑스 정부는 알제리가 독립한 뒤인 1966년까지도 알제리의 사막 핵실험장에서 알제리인 150명을 대상으로 핵무기가 인간에게 미치는 생리적, 심리적 효과를 연구하는 생체실험을 했다는 게 알려지면서 알제리에서 반발이 더욱 거세졌다. 이 때에도 프랑스는 사실을 부인하면서 양국간에 갈등이 있었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2018년 9월 13일에 알제리 독립 전쟁당시 프랑스군의 고문, 살해사실을 처음으로 인정했다.#
2020년에 프랑스가 과거 알제리를 식민통치할 때 자국을 상대로 무장투쟁을 벌였던 알제리 독립투사 24명의 유해를 전격 반환했다.# 7월 4일에 압델마지드 테분 대통령은 프랑스가 알제리를 식민지배한 것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고 밝혔다.#
2021년 1월 14일에 프랑스에서 알제리 남성이 코셔음식배달을 거부한 일로 알제리로 추방됐다.#

2.4.1. 반프랑스 감정


식민지배를 132년이나 받기도 하였고 처절한 전쟁 끝에 독립했으니 프랑스에 대한 증오가 장난아니다. 마찬가지로 프랑스 극우들의 헛소리라든지 1998년 프랑스 자크 시라크 대통령이 보여준 행동은 알제리에서 프랑스를 용서할 수가 없었던 계기이기도 하다. 더불어 1961년 모리스 파퐁(훗날 친나치파인 게 발각되어서 전범 재판을 받게 되었는데 받기 전에 사망) 당시 파리 경찰청장은 치안 문제로 야간 통행을 금지했는데 죄다 알제리계 이민자들에게만 요구하여 이를 비난하는 시위가 벌어졌는데, 경찰이 시위자들에게 발포하여 40여명이 죽었다. 그런데 이 사건을 당시 프랑스는 무슬림끼리 싸워서 3명이 죽었다는 투로 발표했다. 그리고 1998년에서야 시라크는 진실을 발표했으나 파퐁은 나치 부역죄로 처벌받아 수감 중(2002년에 교도소에서 사망.)이었기에 처벌받을 이가 없다고 후다닥 덮어버렸다. 그래서 2005년 알제리로 방문한 시라크에게 알제리 극우들이 돌을 던지고 비난했다.
프랑스 국대 축구팀이 2001년에 생드니 경기장에서 알제리와 축구 A매치를 한 적이 있는데, 경기장에 대거 입장한 알제리 팬들이 마치 홈경기를 방불케 하듯 자국의 국가를 부른 다음에 프랑스의 국가 라 마르세예즈에 야유를 퍼붓고, 프랑스가 압도적으로(4:1) 이기고 있자 거의 폭동 수준의 난동을 일으켰었다. 결국 경기가 중단되고, 경찰의 호위 속에 경기장을 나가는 선수들에 대한 오물투척은 계속됐다. 이 때 유독 지단만은 무사했을 뿐만 아니라 알제리 선수들은 지단과 친근하게 어울리고 알제리 팬들은 지단에게 사인까지 받았는데, 여기서 알제리에서의 그의 인기를 알 수 있다.
반면 알제리 출신 프랑스인들을 프랑스에서는 피에 누아르(검은발)라고 부른다. 이들은 대부분이 알제리 아랍계나 토착계가 아니라 식민지배가 시작되면서 알제리로 건너온 유럽인들의 후손이다. 철학자 알튀세르, 디자이너 입생 로랑 등 알제리에서 태어난 프랑스계 지식인, 유명인사도 제법 있었으나 이들은 대개 식민통치를 긍정하고 알제리 사회의 특권층으로 군림했다.
그 덕에 노벨문학상을 받은 알제리 출신 소설가 알베르 카뮈(아버진 프랑스인, 어머니는 스페인계)도 반대로 알제리에선 철저하게 잊혀졌다. 자세한 건 알베르 카뮈 항목 참고할 것.
까뮈는 위에 언급한 대로 카빌리족이 프랑스에 충성을 다함에도 프랑스가 외면하여 비참하게 산악지대에서 어렵게 산다고 기자 시절 신문으로 보도하였다가 기자에서 잘린 적이 있다. 이 덕분에 프랑스에서 카빌리족을 좀 신경쓰기도 한 계기가 된 바 있다. 어찌보면 까뮈가 카빌리족에겐 은인이 될 지도 모르지만, '''현재 알제리 카빌리족들도 까뮈를 모른다.''' 하긴 프랑스도 하르키로 들어온 카빌리족에 대한 냉대와 알제리에서 벌인 학살을 생각하면 알제리도 프랑스도 다 이가 갈릴 정도로 싫어할 만하다.
프랑스로서도 워낙에 자원이 많은 알제리를 놓칠 수도 없기에, 2000년대 와서 일부 프랑스군이 저지른 학살도 인정하며 달래는 분위기다. 하지만 2005년 5월 프랑스는 이런 와중에 자신들이 북아프리카의 발전에 기여했다고 홀로 자축하는 헛소리 발언을 정부요인들이 했다. 그러자 알제리 사르 알 부지드 광장에서 알제리 국가를 부르고 프랑스 국기를 불태우는 시위가 일어났고 프랑스계 천주교 신부와 신도들이 살해당하기도 했다. 이 곳은 프랑스 식민지 시대에는 잔 다르크 광장이라고 불렀던 곳인데 1945년 6월에 알제리 국기를 들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총에 맞아 살해된 12살 아이 사르 알 부지드의 이름을 따서, 독립한 뒤에 이름이 바뀌었다. 이 아이의 죽음이 알제리 독립운동이 시작된 계기가 되었으므로, 알제리가 독립하자 그의 이름을 딴 광장을 만들고 동상을 세워 기리고 있다. 이렇듯 지금도 반프랑스 감정이 매우 강하게 자리잡고 있다는 걸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하긴 그럴만한 게 프랑스는 식민지배 시절 알제리인이 이슬람을 포기하지 않으면 시민권도 주지 않았고, 무슬림이라면 평생에 한번은 꼭 해봐야 한다는 메카 순례도 금지했고, 투표권에도 제한을 두었다. 또 얼마 안 되는 프랑스 본토인이 알제리의 알짜배기 땅들을 싹쓸이하고 그러면서도 대중교육이나 일반 알제리인들을 위한 경제정책에 신경조차 안 써서 소수 기득권계층을 제외한 나머지 무슬림들은 문맹으로 살아야 했던 데다가 제대로 된 일자리도 구하기 힘들었고, 그래서 절대 다수가 빈민층들으로 살아야 했다. 이 정도로 차별을 했으니 사과 몇 마디로 넘어갈 리가 없다.
장마리 르펜 같은 프랑스 극우 백인우월주의자들은 알제리인을 그리 욕하고 허구한 날 비하하면서 알제리는 프랑스 땅이란 망언을 한다. 이러니 알제리에서 프랑스를 도저히 좋게 봐줄 리가 있나.
거기에 프랑스 대통령이었던 프랑수아 올랑드도 똑같다. 알제리를 방문하고 무사히 살아돌아와 다행이라고 말을 하지 않나, 식민지배가 악랄한 건 사실이지만 사과할 마음은 없다라고 당당하게 망언을 하며 알제리 여론과 정계를 격분하게 하고 있다. 오죽하면 프랑스 내 기업인들이 "좀 닥쳐, 왜 겉으로 내색하지 못해 발광하냐?"라고 으르렁거릴 정도.
이 때문에 프랑스에 대한 반감은 단순히 축구 경기 말고도 많다. 알제리 극우파들은 프랑스어를 배제하고 제2언어로 차라리 영어(영국식 영어)를 배우자고 주장할 정도이다(당연히 제1언어는 아랍어이다.). 알제리 노인들은 아랍어를 잘 모르고 프랑스어를 아는 이들이 아직도 많을 정도로 프랑스의 프랑스어 강요 및 아랍어 탄압은 똑같았다고 한다. 그런데 요즘 알제리 젊은이들은 아랍어와 같이 프랑스어나 스페인어러시아어 같이 가까운 유럽 나라 언어들을 하는 경우도 늘어나서 알제리 정부는 자원개발이나 여러 문제를 프랑스 말고도 스페인이나 벨기에[1], 러시아와도 협력하자고 하면서 프랑스를 최대한 약올리려고까지 한다. 게다가 친러국가라서 러시아와 가까운 관계이기도 한다.

3. 관련 문서


[1] 이쪽은 프랑스계 국가지만, 네덜란드어를 쓰는 지역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