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자벨 아자니
1. 소개
'''프랑스를 대표하는 국민배우'''이다.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으며, 12세부터 아마추어 극단에서 활동했고, 17세였던 1972년에 프랑스의 국립 극단인 코메디 프랑세즈에 입단해서 몰리에르의 희곡 <아내들의 학교(L'École des femmes)>의 여주인공 아녜스 역할 등으로 평단 내외의 극찬을 받았다. "대리석처럼 매끄럽고 흰 피부"에 짙은 갈색 머리카락과 짙은 푸른색 눈을 가지고 있으며, 연극배우 시절부터 이미 그리스 신화의 님프를 방불케 하는 투명하고 비현실적인 미모로 유명했다. 아자니는 10대 시절부터 영화계에 뜻을 두고 몇몇 영화에 단역이나 조연으로 출연했다. 그러다가 19세였던 1974년에 찍은 거장 프랑수아 트뤼포 감독의 <아델 H. 이야기>(1975)에서의 연기로 아카데미상 여우 주연상 후보[3] 에 오르면서 본격적으로 영화 배우의 길을 걷기 시작했고, 그 후 거장들의 영화에 잇달아 주연으로 발탁되면서 명실공히 프랑스 최고의 미녀 스타 자리에 등극했다.
국립 극단의 간판 배우로 활약했을 정도로 뛰어난 연기력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바칼로레아에 쉽게 합격했을 정도의 수재이지만, 미모가 워낙 압도적이었던 탓에 일단 그쪽부터 주목받는 경우가 많았다. 당시 영화 배우로 데뷔한 그녀를 표지 모델로 발탁한 '타임'지에서도 "19세기 프랑스 화가 장 바티스트 카미유 코로가 그린 초상화를 연상시킬 정도로 사랑스러운 얼굴"이라는 평을 들었을 정도.
신인 시절은 '제 2의 브리짓 바르도'라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4] 대한민국에서는 늦어도 한참 늦은 90년대가 되어서야 비로소 주연작들이 소개되기 시작한 탓에 뜬금없이 동안#s-1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5]
1997년 칸 영화제 심사위원장이었고, 프랑스의 오스카로도 알려진 '''세자르 영화제 최다 여우주연상 수상 배우'''이기도 하다.(여우주연상만 5회 수상)
2. 가수 활동
아자니는 딱 한번 가수로서 활동한 적이 있었다. 원래 세르쥬 갱스부르[6] 가 연인 제인 버킨의 음반을 제작에 들어갔으나 그녀와 헤어졌고, 결국 갱스부르는 버킨과 음색이 흡사한 사람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했는데 그 결과 아자니가 음반을 내고 가수로 데뷔하게 되었다. 아자니는 본격적인 가수 훈련을 받은 적도 없고 음반이라곤 이 곡이 담긴 앨범 하나 뿐이지만, 비교적 좋은 평을 받았다.
이 음반의 정보는 다음과 같다. 싱글 제목에 붙은 링크는 해당 싱글의 뮤직비디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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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ll marine
3. 가족
알제리 출신의 아버지 모하메드 셰리프 아자니와 독일인 어머니 엠마 아우구스타 슈바인버거 사이에서 1남1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남동생 에릭 아자니는 사진작가였는데 2010년 12월 25일 사망했다. 에릭 아자니는 딸인 조에 아자니(1999~)가 있다.
이자벨 아자니의 장남 바르나베 뉘탕(1979~)은 브루노 뉘탕과의 사이에서 태어났다. 다니엘 데이 루이스와의 사이에서 차남 가브리엘 케인 데이 루이스(1995~)를 얻었는데, 가브리엘은 나중에 다니엘 데이 루이스와 레베카 밀러 사이에서 태어난 로난 칼 데이 루이스(1998~)와 카셀 블레이크 데이 루이스(2002~)의 이복형이 된다.
4. 여러가지 일화
젊은 시절의 아자니는 신경이 예민한 데다가 국립극단 배우 출신답게 예술가적인 고집이 있어서 종종 감독이나 제작진과 알력을 빚었다고 한다. 그래서 많은 거장들과 일했으면서도 좋은 역에서 밀려나기도 했는데, 출세작인 <아델 H.의 이야기>에서 볼 수 있듯이 로맨틱하고 고전적이며 매우 아름답지만 어딘가 정상적이지 못하거나 아예 광기에 빠지는 주인공 역할을 많이 맡았다. 압도적인 미모와 더불어 현대극보다는 할리우드 황금기 영화의 주연으로 더 어울린다는 평가를 받았을 정도로 정통파 대배우의 아우라를 가지고 있는데, 정작 영화에서는 광기에 빠지는 여주인공 역할을 자주 맡다 보니 시대에 비해 너무 늦게 태어났다는 이야기도 종종 들었다.
사생활이 화려한 것으로도 유명한데, 프랑스의 영화 감독 브뤼노 뉘탕과 1976년부터 1981년까지 사귀었으며 둘 사이에 1979년에 태어난 아들 바흐나베 뉘탕이 있다. 1981년 영화 퍼제션을 찍을 때는 감독인 안드레이 줄랍스키와 사귀었고 1983년에 세르쥬 갱스부르하고도 잠깐 사귀었었다. 미국의 배우 워렌 비티와 1986년부터 1987년까지 사귀었고, 영국의 배우 다니엘 데이 루이스와 1989년부터 1994년까지 6년간 열정적으로 사귀었다. 그런데 데이 루이스는 아자니가 자기 아이를 임신한 상태에서 줄리아 로버츠와 불륜에 빠진 끝에 달랑 팩스 한 장으로 이별을 통보해서 악명을 떨쳤다.
아자니는 이듬해인 1995년에 아들 가브리엘 케인 데이 루이스를 낳았지만, 데이 루이스는 혼자 아이를 낳은 아자니에게 아이의 양육비를 줄 생각조차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 이후 프랑스의 작곡가 장 미셸 자르와 2002년부터 사귀기 시작해 약혼까지 했었지만, 2004년에 아자니가 프랑스의 유명 록커인 조니 알리데이의 주치의 스테판 들라쥬와 사랑에 빠지면서 헤어졌다. 들라쥬와는 2004년부터 2008년까지 사귀었다. 이후로 토니노 카카스라는 남자와 사귀고 있다.
아버지는 알제리의 베르베르족인 카빌리 혈통이며, 어머니가 바이에른 주 출신의 독일인이라서 독일어는 모국어인 프랑스어처럼 구사하고, 영어도 유창하다. 프랑스 국적의 프랑스 대표 여배우인데도, 아이러니하게도 프랑스인의 피는 젼혀 섞여있지 않고 오히려 프랑스와 역사적으로 불편한 관계에 있는 나라들의 혈통을 물려받았다. 프랑스의 외국 혈통 셀레브리티 중에서는 역시 알제리 카빌리 혈통을 이어받은 지네딘 지단과 함께 가장 정치적으로 주목받는 인물이다.
정치적으로는 진보이며, 알제리계이지만 강한 반 이슬람 성향을 가지고 있어서.[8] 히잡 반대 시위를 주동하기까지 했다. 인종 차별이나 이민 문제와 관련해서는 차별받는 알제리계 이민 편에 서서 국민전선같은 반이슬람 극우 백인우월주의 단체와 날카로운 대립각을 세웠는데, 특히 알제리계 이민이 살해당한 인종 차별 사건에 분노해서 자기 아버지가 알제리 이민이라는 사실을 공표하고 적극적으로 항의했던 일[9] 때문인지 종종 프랑스의 극우파 정치인들과 대립하거나 정치적인 동기에서 비롯된 공격의 대상이 되곤 했다.[10]
여담이지만 1996년 영화 <디아볼릭>이 대한민국에서 개봉할때 서울 피카디리극장(현 CGV 피카디리 1958)에서 열린 이벤트로 '이자벨 아자니 선발대회'가 있었는데, 최지우가 무명 시절에[11] 이 대회에 나가 상을 받았고 유명해지기 시작했다[12] .
5. 출연작
5.1. 영화
- 질 자콥: 칸느 영화제 대표 (2010) / 본인
- 맘무스 (2010) / 카메오 츨연
- 스커트 데이 (2008) / 소니아
- 프랑수아 트뤼포 - 열정 넘치는 삶 (2004) / 본인
- 므슈 이브라임 (2003) / 카메오 츨연
- 즐거운 여행 (2003) / 비비안 덴버스[13]
- 아돌프 (2002) / 엘레오노르
- 파파라치 (1998) / 본인
- 디아볼릭 (1996) / 미아[14]
- 시몽 시네마의 101의 밤 (1995) / 카메오 츨연
- 여왕 마고 (1994) / 마고
- 중독된 사랑 (1993) / 페넬로페
- 까미유 끌로델 (1988) / 까미유 끌로델[15]
- 사막탈출(Ishtar) (1987) / 쉬라[16]
- 서브웨이 (1985) / 헬레나
- 데들리 런 (1983) / 마리
- 킬링 오브 섬머 (1983) / 앨리안[17]
- 안토니에타 (1982) / 클라라
- 올 파이어드 업 (1981) /폴린느[18]
- 사랑 만들기 (1981) / 이자벨[19]
- 퍼제션 (1981) / 안나, 헬렌[20]
- 4중주 (1981) / 주연[21]
- 브론테 자매 (1979) / 에밀리 브론테
- 노스페라투(1979) (1979) / 루시 하커. 베르너 헤어초크의 영화.[22]
- 드라이버 (1978) / 드라이버의 애인[23]
- 비올레트&프랑수아 (1977) / 비올레트 클롯 [24]
- 테넌트 (1976) / 스텔라 -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컬트 호러 영화
- 바로코 (1976) / 로르 [25]
- 아델 H 이야기 (1975) / 아델 위고 - 프랑수아 트뤼포 감독의 영화[26]
- 라 지플르 (1974) / 이자벨[27]
- 멋진 여름의 포스티느 (1972) / 카미유[28]
- 작은 석탄장수 (1970) / 로즈.[29]
5.2. 음반
- Pull Marine
5.3. 기타
- 신동방견문록 (1995) / 내레이터
- 연예인 매니저로 살아남기(2016) \본인
6. 둘러보기
- 북두의 권의 히로인 유리아의 모티브이다.
[1] 배우. 까미유 클로델의 감독이었던 브루노 뉘탕이 아버지이며, 둘은 결혼하지 않고 연인관계로만 지냈다.[2] 모델.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아들. 밑에 일화에서 서술하겠지만, 가브리엘을 임신했을 때 줄리아 로버츠로 인해 이별통보를 받았다.[3] 해당 분야의 사상 최연소 후보이기도 했는데, 이 기록은 30년 넘게 깨지지 않았다.[4] 과장되고 단순한 표현을 선호하는 보도 매체의 특성상 본질과는 동떨어진 비교이지만, 초대형 신인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된다.[5] 심지어 하이랜더 증후군이란 루머도 나돌았지만, 이 부분은 다소 과장된 면이 있다. 흔히 40대에 찍었다고 알려진 여왕 마고는 정확히는 이자벨 아자니가 만 38세일 때 개봉된 영화다.[6] 샤를로트 갱스부르의 아버지이다. 당시 연인이던 제인 버킨은 샤를로트의 어머니.[7] 노래 자체는 상당한 명곡인데 뮤직비디오는 기획한 사람의 정신세계를 의심하게 만든다. 아무 의미 없이 이 뮤직비디오 내내 이자벨 아자니가 주구장창 신사용 정장 포장만 뜯고 있다. 그러니까 맨 처음 10초만 보면 이 뮤직비디오의 모든 내용을 알 수 있다. 그 짓만 반복하기 때문.[8] .21세기 들어 IS로 대표되는 이슬람 근본주의가 하도 악명을 떨치다 보니, 동서를 막론하고 아자니처럼 진보 성향인 사람들 사이에서도 반 이슬람주의가 늘고 있다.자세한 내용은 프랑스-알제리 관계 참조[9] 프랑스 국내에서의 알제리 이민의 위상을 감안하면, 일본 국민배우가 자기가 실은 자이니치였다고 '공표'하고 자이니치 차별에 항의하는 것보다 훨씬 더 충격도가 높은 행위다.[10] 일례로 1980년대 중반 프랑스인들의 후천성 면역 결핍 증후군(AIDS)에 대한 공포가 극에 달했던 시절 "아자니가 AIDS에 걸려 지방의 병원에서 사망했다"라는 가짜뉴스가 타블로이드지 등을 통해 걷잡을 수 없이 퍼졌고, 아자니는 할 수 없이 TV에 직접 출연해서 자신은 멀쩡하게 살아 있으며 AIDS에 걸리지도 않았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해프닝까지 있었다. (아자니 본인은 이런 행동은 AIDS 환자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면서 고뇌했다고 한다.) 당시 그녀와 친분이 깊었던 제라르 드파르디유는 "중세 때 역병이 돌면 패닉에 빠진 민중은 가장 아름다운 여자를 점찍어서 마녀 사냥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내용의 감동적인 글로 아자니를 위로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11] 다만 완전 무명은 아니었다. 1994년 MBC 공채 탤런트에 합격했고 여러 드라마에서 단역으로 출연하다가 영화 <귀천도>의 여주인공에 캐스팅되었으나, 건강상의 문제로 하차한 상태였다.[12] 최지우보다는 차라리 이유리가 아자니를 더 닮았다는 의견도 있다.[13] 2차 세계대전시의 프랑스 항복을 소재로 한 영화. 제라르 드파르디유와는 세 번째의 공연이 된다.[14] 샤론 스톤과 공동 주연.[15] 아자니가 기획에서 배우 섭외까지 직접 프로듀스했다. <아델 H.의 이야기>주인공 아델 위고와 마찬가지로 광기에 빠져드는 여성 조각가 클로델 역할을 열연해서 전세계 영화 평단의 극찬을 받았고, 슬럼프에 빠졌던 아자니가 국민배우로서 거듭나는 계기가 되었다. 로뎅 역을 맡은 제라르 드파르디유와는 두 번째 공연이 된다.[16] 더스틴 호프먼과 워런 비티의 노래가 압권이었으며 아자니까지 투입된 대작이였으나 흥행은 실패했다. 아자니의 출연작 중 유일한 흥행 실패작이다.[17] 원제는 치명적인 여름(L'été meurtrier). 두 마고상 수상작인 세바스티앙 자프리소의 스릴러를 영화화했으며, 가수이자 배우인 알랭 수숑과 공연했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권에서 크게 히트했다.[18] 원제는 Tout feu, tout flamme. 아버지 역의 이브 몽땅과 공연한 로맨틱 코미디.[19] 원제는 L'année prochaine... si tout va bien. 만화가 역할을 맡은 티에리 레르미트와 공연했다. 아자니의 로맨틱 코미디 중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는 걸작.[20] 안제이 주와프스키의 호러 SF. 1인 2역을 맡아 열연했는데 내용이 워낙 충공깽이라서 프랑스 본국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물의를 빚었다. 컬트 영화 이레이저 헤드를 연상시키는, 생리적으로 혐오감을 주는 장면(크툴루적인 문어 괴물과 아자니가 섹스를 한다)이 특히 충격적이었는데, 이 영화를 촬영한 후 아자니는 정신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아야 했다. 참고로 같은 감독의 1996년작 <샤만카>의 여배우 이오나 페트리도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아자니는 그나마 무사히 영화계에 복귀했으나, 이오나 페트리는 복귀하지 못했다.[21] <전망 좋은 방> 등의 벨 에포크 영화로 유명한 제임스 아이보리 감독의 드라마.[22] 평단에서는 좋은 평을 듣지 못했지만 아자니의 주연 작품 중 세 손가락에 꼽히는 명작이며, 무르나우의 동명 영화의 리메이크이다. 이 영화를 찍을 때 진짜 흡혈귀가 되어서 그렇게 안 늙는다는 설도 있다(….)[23] 할리우드 데뷔작으로, 주인공인 어둠의 드라이버 라이언 오닐 상대로 미스테리어스한 팜므파탈의 역할을 맡았지만 큰 임팩트는 남기지 못했다.[24] 가게에서 훔친 물건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젊은 커플에 관한 영화.[25] 프랑스 국민배우 제라르 드파르디유와 공연. 이때부터 이미 친했다.[26] 빅토르 위고의 딸을 연기했다. 트뤼포의 영화답게 아자니의 주연 작품 중 가장 예술성이 높으며 종종 최고작으로 꼽히는 명작. 진지한 아자니 팬이라면 반드시 보아야 하는 영화 0순위다.[27] 원제인 La Gifle는 따귀를 의미하며, 감독은 라붐(1980)의 클로드 피노토이다. 실질적으로 라붐의 상위호환 하이틴 버전이라고 해도 무방한데, 딸 역할의 아자니와 아버지 역할을 맡은 리노 벤추라의 연기력이 워낙 넘사벽인 데다가 로맨틱 코미디로서도 이쪽이 훨씬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아자니의 DVD/블루레이 수집가라면 십중팔구 소장하고 있는 영화.[28] 16세 틴에이저 시절의 아자니를 감상할 수 있는 영화. 엄청난 미소녀에서 엄청난 미녀로 넘어가는 아련한 시절의 명작.[29] 14세 소녀 시절의 아자니를 감상할 수 있는 어린이 영화. 물론 이미 엄청난 미소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