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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河舜鳳
1941년 10월 8일 (83세) ~
1. 개요
2. 선거 이력
3. 소속 정당
4. 저서
5. 수상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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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전 언론인, 정치인이다. 호는 목림(牧林)이다. 1941년 경상남도 진주부(현 진주시)에서 태어났다.
진주고등학교,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을 졸업하였다. 이후 ROTC로 군 복무를 수행하였다. 이후 MBC에 입사한뒤 뉴스데스크 앵커를 맡기도 했다.
사실 나무위키에서는 이렇게 간단하게 앵커 시절을 서술하지만, 1970년대 뉴스데스크(또는 뉴스의 현장)의 간판은 하순봉이었고, 이 이미지가 정치인 생활에 있어서 큰 장점으로 작용했다. 나무위키 서술이 이렇게 짧은 이유는 1970년대 뉴스데스크 방송자료를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1]
1981년부터 뉴스데스크의 평일 및 주말 진행자가 각각 이득렬차인태로 고정되었고[2], 하순봉은 정계에 진출했다. 이른바 최초의 뉴스데스크 앵커 출신 정치인. [3]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전국구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1983년 민주정의당 원내부총무에 임명되었다. 1984년부터 1986년까지 국무총리비서실장을 역임하였다. 1986년부터 1988년까지 한국방송광고공사 사장을 역임하였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경상남도 진주시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통일민주당 조만후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자유당 공천에 탈락하자 민주자유당을 탈당하고 같은 선거구에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민주자유당 조만후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이 때 무소속 당선자 21명 중 전국 최다득표(75,270표)와 전국 최다득표율(60.7%)을 기록했다. 당선 직후 민주자유당에 복당하였다. 1993년부터 1994년까지 민주자유당 대변인을 역임하였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한국당 후보로 경상남도 진주시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부터 1997년까지 신한국당 수석부총무를 역임하였다.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신한국당 대통령 후보 선출 전당대회에서 이회창 후보의 특별보좌관을 역임하였다. 이후 양정규, 신경식과 더불어 이회창계에 속하였다.
1998년부터 1999년까지 한나라당 원내총무를 역임하였다. 1999년부터 2000년까지 한나라당 사무총장을 역임하였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경상남도 진주시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02년 12월 20일 이회창이 은퇴 기자회견을 했을 때 울먹이던 모습이 화제가 되었다.#
이후 한나라당, 새누리당, 자유한국당, 미래통합당 상임고문을 각각 역임하면서 2008년 일자리방송 회장 겸 <일자리뉴스> 앵커로 방송계에 복귀했고, 2010~2017년까지 경남일보 회장을 지냈다.

2. 선거 이력


연도
선거 종류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1981
제11대 국회의원 선거 (전국구 59번)

-
'''당선'''
[4]
1988
제13대 국회의원 선거 (경남 진주)

42,165 (40.26%)
낙선 (2위)

1992
제14대 국회의원 선거 (경남 진주)

'''75,270 (60.68%)'''
'''당선 (1위)'''
[5]
1996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경남 진주 을)

'''50,981 (64.77%)'''
'''당선 (1위)'''

2000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경남 진주)

'''79,057 (52.18%)'''
'''당선 (1위)'''


3. 소속 정당


'''소속'''
'''기간'''
'''비고'''

1981 - 1990
창당
정계 입문

1990 - 1992
합당[6]

1992
총선 공천 탈락 불복으로 인한 탈당

1992 - 1995
복당

1995 - 1997
당명 변경

1997 - 2012
합당[7]
정계 은퇴

2012 - 2017
당명 변경

2017 - 2020
당명 변경

2020
합당[8]

2020 -
당명 변경

4. 저서


  • 에나이야기: 하순봉 칼럼 - 교음사. 1987.
  • 한국귀신 나와라: 하순봉 칼럼 - 한웅커뮤니케이션. 1991.
  • 명심보감이 다시 필요한 세상: 하순봉 칼럼 - 하여가. 1994.
  • 그래도 희망은 있다: 하순봉 칼럼집 - 아트포럼. 1998.
  • 하순봉 회고록: 나는 지금 동트는 새벽에 서 있다 - 연장통. 2010.
  • 하순봉 칼럼집: 나의 작은 대한민국 - 이하 동일.

5. 수상경력


  • 황조근정훈장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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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러나 40주년 뉴스데스크 특집 방송 '만나면 좋은 친구'에서는 '80년대 이득렬이 있었다면 70년대 하순봉 앵커가 있었다'고 확실히 언급한다. [2] 주말 방영분은 1981년부터 1984년까지, 1989년, 1991년부터 1993년까지는 MBC 뉴스센터라는 타이틀로 진행되었다. 사실 1981년부터 1984년까지의 MBC 뉴스센터는 뉴스라고 하기보다는 시사교양 프로그램에 가까웠지만, 2011년 방영된 40주년 특집 뉴스데스크에서 시사교양 시절의 뉴스센터도 뉴스데스크 역사의 일부로 소개하였다. 고로 차인태를 뉴스데스크 앵커로 보아도 무리는 아니다.[3] 하순봉에 이어서 뉴스데스크의 간판이 된 이득렬도, 1998년 뉴스데스크를 진행한 박영선도, 이명박 정부 당시 활약한 신경민도 모두 민주당계 정당에 입당하였다. 반면 강성구16대 대선 당시 후단협으로 있다가 한나라당으로 갔으며, 엄기영은 의외로 처음부터 한나라당으로 갔다가 강원도지사 선거에서 전임 문화방송 사장이었던 민주당 최문순에게 완패.[4] 순번이 59번으로 매우 후순위임에도 승계가 아닌 바로 당선이다. 이는 11대 총선 당시 선거법상 제1당에게 전국구 의석의 2/3인 61석을 몰아주었기 때문. 당연히 전두환의 독재를 위한 술책이지만[5] 1992.6.2 민주자유당 복당[6]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과 신설 합당, 이른바 3당 합당[7] 통합민주당과 신설 합당[8] 새로운보수당, 미래를향한전진4.0과 신설 합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