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춘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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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前 SK 와이번스 소속의 투수. 現 SK 와이번스 2군 투수코치.
SK 와이번스 오피셜 유튜브 채널의 공식 예능 담당이다.
2. 선수 경력
2.1. 아마추어 시절
광주동성고 시절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진출설까지 돌던 대형 유망주였다. 물론 진짜 진출하려는 의사보다는 몸값 올리기의 일환이었다는 게 당시 아마추어 야구팬들의 정론이긴 하지만.[2] 2002년 신인드래프트에서[3] SK 와이번스의 2차 1라운드 '''전체 1순위''' 지명을 받고 입단했다.
2.2. 프로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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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당시 강팀이 아니었던 SK 와이번스에 고졸 신인으로 들어와 9승 7패 평균자책점 4.68을 찍으며 혜성같이 등장했고, 2003 시즌에 10승 6패, 평균자책 4.89로 두 자릿수 승리를 기록하면서 윤길현, 채병용과 함께 SK의 주축 투수로 성장할 것이란 기대를 한몸에 받았으나 2004년에 어깨부상으로 붙박이 선발진에서 광탈했다. 2005년에는 팔꿈치 수술까지 받게 되면서 2006년부터 2년간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하고 팀에 돌아왔으나 이미 구속은 130km/h도 나오지 않을 정도로 처참하게 몰락했다. 오죽하면 네이버 관련 검색어에 제춘모 구속이 있을 정도(…). 게다가 2군에 있으면서 신인 유망주들에게 나쁜 영향을 준다는 루머까지 들리면서 팬들도 사실상 그를 향한 기대는 접어버린 상태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
한때 팀의 대형 유망주이자 여성팬을 몰고 다니는 미남 선수로[4] 하지만 2004년 이후로 1군에 잠깐 올라왔다 털리는 신세가 되며 야구도 못하는데 놀기만 한다는 이유로 솩갤러들에게 심심풀이 땅콩같이 항상 까이는 존재가 되었다. [5] 그래서 그런지 이런 이야기가. 가끔 다른 갤에서 솩갤을 털러 올 때 '''너희 팀 에이스 제춘모화'''라는 저주를 하기도 한다. 2003 시즌에 두자리수 승수를 기록했기 때문에 10승 투수 드린다는 말도 심심치 않게 찾아 볼 수 있다.
그리고 신인인 김태훈에게 몹쓸 짓을 해서 공분을 불러오기도 했다.
2.2.1. 2012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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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5월 12일, 박종훈과 함께 1군에 콜업되었다. 2군에서 나름대로 활약이 좋았고, 투수가 부족한 상황인데다 실제로 '''제춘모나 올려라''' 하는 이야기도 나왔었지만….
구속이 오르지 않음에도 방출되지 않고 2군에 남아 있는 것은 이유가 있는 법. 그런데 2012년 5월 17일, 7년 만에 1군 문학 LG전 선발로 예고되었다! 상대 투수는 정재복이고, 게다가 '''지상파 방송 중계까지 잡혔다'''(…). SK 팬과 LG 팬들도 서로 역레발을 떨었는데, 이 경기에서 '''7이닝 109투구수 3피안타 1피홈런 3볼넷 2탈삼진 1실점 1자책점''' 퀄리티 스타트 플러스로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호투를 펼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팀 타선이 '''정재복에게 6⅔이닝 노히트'''로 압살당하며 스코어 '''1:0'''으로 패하는 바람에 2,552일만의 1군 선발 등판 경기에서 패전 투수가 되고 말았다.
이후 5월 27일 삼성전에서도 0⅔이닝 동안 볼넷 하나만 주고 무실점으로 막으며 홀드를 챙기며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올리는가 싶었으나, 4일 뒤인 5월 31일 넥센전에 선발 등판해 38투구수 4안타 1피홈런 1볼넷으로 4실점하면서 1이닝만에 조기 강판당했다. 하지만 계투로 올라와 사흘밖에 쉬지 못한 상황에서 선발로 나갔던 점, 무엇보다 그 전날(30일) 있었던 이만수 감독의 인터뷰 기사[6] 가 경기 후 언론을 타면서, 패전에 대한 비난은 모두 이만수에게로 향했다.
부상의 여파인지, 밑천이 바닥난 것인지, 7월 1일 LG전에서 김광현의 어깨 통증으로 인한 자진강판 후 올라와서 3회와 4회를 틀어막으며 잘 버티는가 싶더니, 5회 2사 후 박용택에게 3점 홈런을 맞으면서 패전투수가 되었고 7월 8일 한화전에서는 8회 최진행에게 투런을 맞고 내려간 엄정욱을 대신해 올라와 김태균의 백투백홈런 겸 통산 200홈런 달성의 도우미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이번에도 초점은 SK의 7연패에 맞춰져 모든 비난이 감독에게 향하였다. 이걸 운이 좋다고 해야 할 지.
결국 8경기 18⅓이닝 3패 1홀드 ERA 5.40 20피안타 10사사구 6탈삼진이라는 초라한 성적을 남기고 시즌을 마쳤다.
시즌 후 느낀 게 있는지 2013년 시즌을 철저히 준비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기사가 올라오기도 했다. 5월에 태어날 아이를 위해서라도[7] .
2.2.2. 2013 시즌
단 한 번도 1군에 올라오지 못했고, 7월 28일 2군 경기에 선발로 등판했다가 부상을 입고 강판된 후 그대로 시즌을 마감했다. 시즌 후 그나마 방출은 면하고 재계약에 성공했다.
2.2.3. 2014 시즌
스프링캠프 참가에는 성공했으나 시즌에 들어와선느 9월 7일 두산전에 출전하는데 그쳤고 그나마도 실점하며 평균자책 '''27.00'''을 찍었다.
결국 시즌 종료 후 방출되었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은퇴하지 않고 1군 무대에 한 번 더 도전해 보려는 듯. 하지만 결국 상당히 이른 나이에 선수 은퇴 결정을 내렸다.
3. 지도자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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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후 친정팀 SK 와이번스 2군 투수코치로 새롭게 출발하였으며, 2군 투수코치인 조웅천을 보좌하는 역할을 맡았다.
2015년 8월 21일, NC 다이노스와의 경기에서 공로상을 수상했다. 원클럽맨으로서 해당 구단의 역사에 한 페이지를 남길 가치가 충분한 사례. 이후 9월 20일자로 애리조나 교육리그에 김무관 등과 같이 파견되었다.
2군에 다녀온 투수들이 인터뷰를 할 때 보면 거의 항상 언급이 되고 있다. 선수들 사이에서 하마평은 좋은 듯. 제 2의 이상군이 될지, 정명원이 될 지는 본인의 코칭 능력에 달렸다.
2016년 5월 4일 경기에서 데뷔 첫 승을 거둔 문승원의 시상자 역할로 깜짝 등장했다. 문승원은 제춘모를 보자마자 '''울었다.''' 시즌 전 오키나와 1군 캠프에 합류하지 못하고 2군 캠프로 떨어진 문승원을 잘 다독여 주었다고 한다. 제춘모가 젊은 선수들에게 어떤 존재인지 모두에게 알려준 순간.문승원-제춘모 코치, 눈물로 통한 사연
전병두의 재활을 돕기도 하였으며, 유튜브에 전병두와 찍은 영상을 올리기도 했다.
SK 이적 후 구단의 지시로 투수 전향을 하게 된 강지광의 마음을 다잡느라 애를 먹었다고 한다.
4.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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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마구마구를 하던 시절, 당시 매우 귀했던 엘리트카드가 너무 갖고 싶어서 국내야구 갤러리에 구걸한 적이 있다. 결국 야갤러들이 힘을 모아 엘리트카드를 사줄 거니를 잔뜩 대줬고, 전 포지션을 엘리트로 도배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감사 인사를 썼고, 그게 바로 위 짤방.
- 이름이 꽤 특이한 편이라 제춘모바일, 제춘모텔, 봄털성님 등의 별명이 있었다.
- 키가 상당히 크고 다리도 길쭉한 체형이어서 고등학생 시절에는 고향 광주광역시에서 청바지 모델을 하기도 했다. 지금이야 유머러스하고 말 많은 형(...) 이미지가 됐지만 현역 시절에는 구단에서 꽃미남 스타로 밀어준 적도 있다. 특히 '얼짱' 열풍이 불었던 2004년 쯤에는 송은범과 함께 구단 공인 얼짱 역할을 하기도 했다.
- SK 퓨처스 파크에서 키우는 풍산개 강비의 공동 견주 중 한 명이다. 다른 견주 한 명은 최창호 코치. 2020년 강비가 새끼 7남매를 낳자 수컷 1마리를 입양하고 이름을 '가오(...)'라고 지었다. 중간의 '가'는 제춘모 슬하 딸들의 가운데 돌림자라고 한다.
4.1. 마이 춘모 텔레비전
- 2016 시즌을 앞둔 스프링캠프 현지에서 구단 SNS를 통해 마이 춘모 텔레비전이라는 짤막한 영상물을 연재하였다. 별 내용은 없지만 반가운 얼굴들을 만날 수 있어서 팬들의 호응을 얻었다. 거기에 제춘모 코치의 의외의 진행 능력과 걸쭉한 사투리까지 엿볼 수 있다. 정영일, 문광은, 박종훈, 헥터 고메즈, 김찬호, 박진만, 박정배, 김성현, 최정, 김동엽, 김광현, 이명기, 최승준, 전유수, 박민호, 서진용, 전병두 등이 출연했다. SK 와이번스 공식 유튜브 계정에서 전편을 볼수 있다. 그리고 2017년 시즌 2까지 방송하게 되면서 그의 입담을 다시 볼 수 있게 되었다. 마춘텔 시즌 2 티저 영상
5. 연도별 주요 성적
6. 관련 문서
[1] 신생 창단 팀 2차 1순위 우선 지명권 3장 중 SK가 가장 먼저 호명한 선수였다. 그 다음에 부른 선수는 윤길현. 3번으로 지명한 박창근은 2004 시즌 후 방출되었다.[2]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진출만이 아닌 대학 진학 이야기까지 나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쪽에 더 설득력이 있다.[3] 1982년생이지만 학창시절 1년을 유급하는 바람에 2002년 신인으로 지명됐다. 다만 2001년 신인으로 입단한 1982년생과는 친구로 지낸다.[4] SK 프런트에서도 제대하자마자 전광판의 홍보 영상에 등장시키는 등 잘생긴 선수로 띄워주면서 팔아먹으려고 갖은 노력을 했다. 당시 드라마 꽃보다 남자 주제가가 흐르는 가운데 전광판에 뜬 문구는 ''''춘모와 떠나는 맛있는 소풍!''''(…). 부상 등으로 스타가 될 기회를 놓친 심수창과 비슷한 유형의 선수다.[5] 본인도 이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다고 한다.[6] "작년에 2군에서 가슴과 어깨쪽 근육이 찢어진 적이 있었던 모양이다. 아프다고 해서 선발 로테이션을 어떻게 돌릴지 고민이다" 즉 선수의 부상을 알았으면서도 선발로 내보낸 것. 거기다 '모양이다'라며 이제서야 그 사실을 알게 된 것처럼 말을 했지만, 그 '작년' SK의 2군 감독은 다름아닌 이만수 본인이었다(…). 본의 아니게 '''2군 감독 시절 선수에는 별 관심 없었음'''을 인증해버린 셈.[7] 자녀는 딸이라고 한다.[8] 다만 프로야구 선수는 법률로 따지자면 개인사업자이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 C.J. 윌슨과 존 엘웨이도 선수 생활 도중 부업으로 자동차 딜러를 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