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문호/2008년
*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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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베이징 올림픽 최종 예선과 2008 베이징 올림픽 본선에 진출한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여러 악재에도 남자 구기종목 최초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한데 성공한 대표팀이다.
제24회 아시아선수권 대회 및 베이징 올림픽 아시아 예선에 참가한 대표팀 성적은 김경문호/2007년 문서 참조.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직행 진출권을 획득하는 데는 실패했지만, 베이징 올림픽부터 신설된 대륙별 플레이오프 덕에 다시 한 번 기회가 주어졌다. 대륙별 플레이오프 대표팀을 새로 꾸리는 과정 중에는 선동열 수석 코치가 사퇴하여 조계현 코치가 투수 코치로, 두산의 김광수 수석 코치가 수석 코치로 대신 들어오게 되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처음으로 도입된 제도로서, 각 지역별 예선에서 직행티켓을 얻지는 못했지만 뛰어난 성적을 거둔 8개의 팀을 대상으로 3장의 티켓을 가지고 3월 초에 풀리그를 치렀다.
베이징 올림픽 대륙별 플레이오프에 참가한 대표팀 성적은 김경문호/2008년/베이징 올림픽 대륙별 플레이오프 문서 참조.
8년 만에 올림픽으로 대표팀을 이끈 김경문#s-1 감독은 귀국한 후에 사임의사를 표명했다. 사임의사 직후에 KBO는 김경문 감독에게 선수 선발 전권을 부여하겠다고 발표했다.
김경문 감독의 말과 이후 KBO에서 행한 조처를 본다면 선수 선발에 있어서 전권을 부여받지 못했던 것이 사퇴 의사 표명의 일차적인 요인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이외에도 대륙별 플레이오프 대표팀 선수들이 소속팀으로 돌아간 후 SK 김성근 감독이 김광현의 관리를 문제로 김경문 감독을 비난하자 이에 김경문 감독과 대표팀 코칭스태프들이 분개한 사건도 있었고, 김경문 감독 자신이 소속 팀과의 계약이 마지막 해였기에 좀 더 소속팀에 집중하기 위한 것 등등의 요소가 합쳐진 것으로 보인다.
어찌하였건 김경문#s-1 감독은 올림픽 때까지 계속 대표팀을 맡게 되었고, KBO는 2008년 시즌을 준비기간을 포함해 무려 시즌을 25일 동안이나 중단하는 일정을 짜고 포상금 액수를 결정하는 등의 일을 했다. 또한 네덜란드 대표팀과 쿠바 대표팀의 올림픽 대비 훈련지를 한국으로 정하게끔 협상하고 평가전 일정을 합의했다.
엔트리 발표는 총 5차에 걸쳐서 이루어졌다. 4월 28일, 5월 26일, 6월 25일 정식예비엔트리 60인 선정, 7월 7일. 그리고 7월 14일 최종 엔트리가 발표되었다. 엔트리 발표가 여러번 이루어진 것은 선수들을 독려하기 위함이었겠지만, 이에 대해 불필요한 전시행정이라는 불만의 목소리도 있었다.
무엇보다 최종 엔트리 발표는 팬들 각자의 최고선수들에 대한 생각 차이와, '병역 특례'라는 문제가 걸려 있었기에 극심한 논란을 불러왔다. 가장 논란이 되었던 선발은 당시 성적이 그리 좋지 못하던 송승준, 임태훈, 이대호의 발탁과 손민한, 윤석민, 김태균의 탈락이었다. 이 중에서도 김경문 감독의 소속팀 선수인 임태훈의 선발과 당시 선발로서 최고의 피칭을 보여주던 윤석민의 탈락에 대해서 숱한 비난의 목소리가 나왔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올림픽 직전의 일들은 이렇게 마무리되었고 마지막 최종 엔트리는 다음과 같다. 소속팀은 2008년 당시 기준. 당시 군대 미필 선수는 비고란에 미필로 표기.
실상 군필자라고 해도 외야수 이종욱(상무 전역) 빼면 죄다 면제거나 병역특례. 아마추어는 단 한 명도 없다.
이때, 일본은 애당초에 목표를 금메달로 잡고서 그러한 목표를 만방에 퍼뜨리고 다녔고 한국 대표팀을 자극하는 발언을 했다. 日호시노 감독, 본격적인 한국 긁기 신경전 시작했다
7월 31일 KBO 시즌은 중단되었고, 8월 3일 올스타전이 열렸다. 이후 대표팀은 4일 네덜란드, 5일 쿠바 1차전, 6일 쿠바 2차전 등 올림픽을 대비하여 3번의 평가전을 가졌다. 김경문호/2008년/평가전 항목 참조.
모든 평가전을 마치고 8월 10일, 베이징을 향해 출국했다.
승부치기까지 가는 졸전 끝에 1:0 신승을 거두었다.
2008 베이징 올림픽/야구/준결승 1경기 항목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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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008 베이징 올림픽 최종 예선과 2008 베이징 올림픽 본선에 진출한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여러 악재에도 남자 구기종목 최초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한데 성공한 대표팀이다.
2. 베이징 올림픽 출전권 획득까지의 과정
2.1. 2007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
제24회 아시아선수권 대회 및 베이징 올림픽 아시아 예선에 참가한 대표팀 성적은 김경문호/2007년 문서 참조.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직행 진출권을 획득하는 데는 실패했지만, 베이징 올림픽부터 신설된 대륙별 플레이오프 덕에 다시 한 번 기회가 주어졌다. 대륙별 플레이오프 대표팀을 새로 꾸리는 과정 중에는 선동열 수석 코치가 사퇴하여 조계현 코치가 투수 코치로, 두산의 김광수 수석 코치가 수석 코치로 대신 들어오게 되었다.
2.2. 2008 베이징 올림픽 대륙별 플레이오프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처음으로 도입된 제도로서, 각 지역별 예선에서 직행티켓을 얻지는 못했지만 뛰어난 성적을 거둔 8개의 팀을 대상으로 3장의 티켓을 가지고 3월 초에 풀리그를 치렀다.
베이징 올림픽 대륙별 플레이오프에 참가한 대표팀 성적은 김경문호/2008년/베이징 올림픽 대륙별 플레이오프 문서 참조.
3. 베이징 올림픽 이전의 일들
8년 만에 올림픽으로 대표팀을 이끈 김경문#s-1 감독은 귀국한 후에 사임의사를 표명했다. 사임의사 직후에 KBO는 김경문 감독에게 선수 선발 전권을 부여하겠다고 발표했다.
김경문 감독의 말과 이후 KBO에서 행한 조처를 본다면 선수 선발에 있어서 전권을 부여받지 못했던 것이 사퇴 의사 표명의 일차적인 요인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이외에도 대륙별 플레이오프 대표팀 선수들이 소속팀으로 돌아간 후 SK 김성근 감독이 김광현의 관리를 문제로 김경문 감독을 비난하자 이에 김경문 감독과 대표팀 코칭스태프들이 분개한 사건도 있었고, 김경문 감독 자신이 소속 팀과의 계약이 마지막 해였기에 좀 더 소속팀에 집중하기 위한 것 등등의 요소가 합쳐진 것으로 보인다.
어찌하였건 김경문#s-1 감독은 올림픽 때까지 계속 대표팀을 맡게 되었고, KBO는 2008년 시즌을 준비기간을 포함해 무려 시즌을 25일 동안이나 중단하는 일정을 짜고 포상금 액수를 결정하는 등의 일을 했다. 또한 네덜란드 대표팀과 쿠바 대표팀의 올림픽 대비 훈련지를 한국으로 정하게끔 협상하고 평가전 일정을 합의했다.
3.1. 엔트리 발표와 잡음
엔트리 발표는 총 5차에 걸쳐서 이루어졌다. 4월 28일, 5월 26일, 6월 25일 정식예비엔트리 60인 선정, 7월 7일. 그리고 7월 14일 최종 엔트리가 발표되었다. 엔트리 발표가 여러번 이루어진 것은 선수들을 독려하기 위함이었겠지만, 이에 대해 불필요한 전시행정이라는 불만의 목소리도 있었다.
무엇보다 최종 엔트리 발표는 팬들 각자의 최고선수들에 대한 생각 차이와, '병역 특례'라는 문제가 걸려 있었기에 극심한 논란을 불러왔다. 가장 논란이 되었던 선발은 당시 성적이 그리 좋지 못하던 송승준, 임태훈, 이대호의 발탁과 손민한, 윤석민, 김태균의 탈락이었다. 이 중에서도 김경문 감독의 소속팀 선수인 임태훈의 선발과 당시 선발로서 최고의 피칭을 보여주던 윤석민의 탈락에 대해서 숱한 비난의 목소리가 나왔다.
- 손민한[3] 과 김태균[4] 의 탈락이 아쉬움의 선에 그친 것과 달리, 임태훈과 윤석민의 선발에 관한 논쟁이 과열된 것은 다른 요인이 많지만, '병역필'과 '미필'의 차이란 점에 근본 원인을 둘 수 있을 것이다.
3.2. 최종 엔트리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올림픽 직전의 일들은 이렇게 마무리되었고 마지막 최종 엔트리는 다음과 같다. 소속팀은 2008년 당시 기준. 당시 군대 미필 선수는 비고란에 미필로 표기.
실상 군필자라고 해도 외야수 이종욱(상무 전역) 빼면 죄다 면제거나 병역특례. 아마추어는 단 한 명도 없다.
이때, 일본은 애당초에 목표를 금메달로 잡고서 그러한 목표를 만방에 퍼뜨리고 다녔고 한국 대표팀을 자극하는 발언을 했다. 日호시노 감독, 본격적인 한국 긁기 신경전 시작했다
3.3. 평가전
7월 31일 KBO 시즌은 중단되었고, 8월 3일 올스타전이 열렸다. 이후 대표팀은 4일 네덜란드, 5일 쿠바 1차전, 6일 쿠바 2차전 등 올림픽을 대비하여 3번의 평가전을 가졌다. 김경문호/2008년/평가전 항목 참조.
모든 평가전을 마치고 8월 10일, 베이징을 향해 출국했다.
4. 베이징 올림픽 본선
4.1. 조별 예선
4.1.1. [image] 미국전 (8월 13일, 우커쑹 야구장): 8:7 승리
- 승: 윤석민(1승), 패: 제프 스티븐(1패)
- 봉중근(4⅓이닝 3실점) - 정대현(2⅔이닝 1실점) - 김광현(1이닝 무실점) - 한기주#s-1(0이닝 3실점) - 윤석민(1이닝 무실점)
4.1.2. [image] 중국전 (8월 14일, 8월 17일, 우커쑹 야구장): 1:0 승리
승부치기까지 가는 졸전 끝에 1:0 신승을 거두었다.
4.1.3. [image] 일본전 (8월 16일, 우커쑹 야구장): 5:3 승리
- 승: 윤석민(2승), 패: 이와세 히토키(1패), 세: 정대현(1세이브)
- 김광현(5⅓이닝 1실점) - 윤석민(2⅔이닝 1실점) - 한기주(0이닝 1실점) - 권혁(⅓이닝 무실점) - 정대현(⅔이닝 무실점)
4.1.4. [image] 대만전 (8월 18일, 우커쑹 야구장): 9:8 승리
- 승: 한기주#s-1(1승), 패: 니 푸더(2패), 세: 윤석민(1세이브)
- 봉중근(4⅓이닝 6실점) - 한기주#s-1(2⅓이닝 2실점) - 권혁(⅔이닝 무실점) - 윤석민(1⅔이닝 무실점)
4.1.5. [image] 쿠바전 (8월 19일, 우커쑹 야구장): 7:4 승리
- 승: 송승준(1승), 패: 비쇼안드리 오델린 (1승 1패), 세: 오승환(1세이브)
- 송승준(6⅓이닝 3실점) - 권혁(⅓이닝 무실점) - 윤석민(1⅓이닝 1실점) - 오승환(1이닝 무실점)
4.1.6. [image] 네덜란드전 (8월 20일, 우커쑹 야구장): 10:0 승리
4.2. 준결승
4.2.1. [image] 일본전 (8월 22일, 우커쑹 야구장): 6:2 승리
2008 베이징 올림픽/야구/준결승 1경기 항목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