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룡

 

黃龍
2. 역사적 지명
2.1. 원삼국시대 고구려의 주변 국가
2.2. 고구려(高句麗)를 지칭하는 용어
2.3. 북연(北燕)을 지칭한 용어
2.4. 평안남도 서남단에 위치하는 지명
2.5. 요나라(遼) 때 두었던 부명(府名)
3. 인명
4. 한국의 지대지 무유도 시험 미사일
5. 대중매체에서의 황룡
5.1. 게임
5.2. 만화
5.3. 애니메이션
5.4. 기타


1. 노란색



[image]
평안남도 강서군 강서대묘의 널방 천장 벽화 모사도 중 일부
황룡(黃龍). 다른말로 금룡(金龍)으로 불리는 경우도 있다. 누런 용은 고대 중국에서는 황제의 상징이었다.

오방색에 따라 동서남북의 가운데 있는 중앙은 노란 또는 누런 빛(土)으로 상징했는데, 군주의 상징인 용과 중앙을 가리키는 노란 또는 누런 빛을 결합함은 필연. 이에 따라 중국인들은 용을 존엄한 군주의 상징으로 크게 존중했다.
이런 점에 착안해 도가에서 네 방위를 가리키는 사신만 있고 중 즉 중앙이 허전하다는 이유를 들어 황룡이 사신을 거느린다는 식으로 끼워맞추려는 사람도 있으나, 근거는 희박하다.[1] 황룡이 황제[2]의 또다른 모습이라는 것도 이유 중 하나인 듯.
애초에 오행사상의 관점에서 중앙의 '토'에 해당하는 생물은 기본적으로는 인간이다. 실제로 오방의 수호신을 적용할 때 가운데에는 기린을 넣으며, 황룡은 사방에 용을 다 깔아놨을 때 주로 사용되지만 혼용되기도 한다. 당나라 구양순이 칙명을 받들어 편찬한 유서인 예문유취(藝文類聚) 98권에서 서응도에서 말하길 황룡은 사룡의 장이라고 기록하고 있다.(瑞應圖曰. 黃龍者. 四龍之長)(출처)
전한(前漢) 및 오(吳)나라의 연호(年號), 그리고 수(隋)나라 때의 병함(兵艦) 이름으로 쓰이기도 했다.
우리나라 역사와 관련해서는 신라 진흥왕조 553년 원래 궁전인 월성(月城)의 동쪽에 새로운 궁궐을 지으려 했는데 그 곳에서 황룡이 나타났고, 이에 궁궐 만들기는 포기하고 대신 거대한 사찰로 고쳐 짓게 하였고, 절의 이름을 황룡사라고 하게 되었다.
삼국사기의 기록에 따르면, 3년, 봄 3월, 황룡이 골령(鶻嶺)에 나타났다. 가을 7월, 골령 남쪽에서 상서로운구름이 나타났는데 그 빛이 푸르고 붉었다.(고구려본기) 5년 여름 4월, 왕궁의 문기둥에 벼락이 쳐 황룡이 그 문에서 날아갔다.(백제본기)
고려는 태조 왕건의 할머니인 원창왕후 저민의가 서해 용왕의 딸이며 황룡이라는 전설이 있다. 그래서 고려 왕실도 용의 피가 흐른다고.
조선시대 군영에서 쓰던 '''대오방기'''에는 동서남북에 사신을, 가운데에는 나는 뱀을 그린 등사기*를 놓았다. 그밖에 도교류 주문에는 中央戊己五十土(중앙무기오십토) 黃帝將軍(황제장군) 句陳騰蛇(구진등사)라는 존재가 나타나기도 한다.

2. 역사적 지명



2.1. 원삼국시대 고구려의 주변 국가


27년(8) 봄 정월에 왕태자 해명(解明)이 옛 도읍에 있었는데, 힘이 있고 매우 용감하였다. '''황룡국'''(黃龍國)의 왕이 이 말을 듣고 사신을 보내 강한 활을 선물하였다. 해명이 그 사신을 마주하여 그것을 당겨 부러뜨리고 말하기를 “내가 힘 센 것이 아니라 활이 굳세지 못할 뿐이다.” 하였다. '''황룡국'''왕이 부끄럽게 여겼다. 왕이 이를 듣고 화를 내며 '''황룡국'''왕에게 알려 말하기를 “해명이 자식으로서 효도를 하지 않았으니 과인을 위해서 그를 죽여주기를 청합니다.”고 하였다.

'''《삼국사기》권제13 고구려본기 제1, 유리왕 27년'''

3월에 '''황룡국'''왕이 사신을 보내 태자와 만나기를 청하였다. 태자가 가려고 하니 건의하는 자가 있어 말하기를 “지금 이웃나라가 이유도 없이 만나기를 청하니 그 뜻을 헤아릴 수 없습니다.”라 하였다. 태자가 말하기를 “하늘이 나를 죽이려고 하지 않는데 '''황룡국'''왕이 나를 어떻게 하겠느냐?”하고 마침내 갔다. '''황룡국'''왕이 처음에 모략을 꾸며 죽이려고 하였으나 만나서는 감히 해치지 못하고 예를 갖추어 보냈다.

'''《삼국사기》권제13 고구려본기 제1, 유리왕 27년'''

28년(9) 봄 3월에 왕이 사람을 보내 해명에게 말하기를 “나는 도읍을 옮겨서 백성을 편안하게 하고 나라를 튼튼하게 하고자 하였다. 너는 나를 따르지 않고 힘 센 것을 믿고 이웃나라와 원한을 맺으니, 자식의 도리가 이럴 수 있느냐?”하고, 칼을 주어 스스로 목숨을 끊게 하였다. 태자가 곧 자살하려고 하자 혹자는 말리며 말하기를 “대왕의 장자가 이미 죽어 태자께서 마땅히 뒤를 이어야 하는데, 이제 사자가 한 번 온 것으로 자살한다면, 그것이 속임수가 아닌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하였다. 태자는 말하기를 “지난번에 '''황룡국'''왕이 강한 활을 보냈을 때, 나는 그것이 우리 나라를 가볍게 여기는 것이 아닌지 의심되어 활을 당겨 부러뜨려 보복하였던 것인데, 뜻밖에 부왕으로부터 책망을 듣게 되었네. 지금 부왕께서 나를 불효하다고 하여 칼을 주어 스스로 목숨을 끊게 하니 아버지의 명령을 어떻게 피할 수 있겠는가?”고 하였다. 마침내 여진(礪津)의 동쪽 들판으로 가서 창을 땅에 꽂고 말을 타고 달려 찔려 죽었다. 그때 나이가 21세였다. 태자의 예로써 동쪽 들(東原)에 장사지내고 사당을 세우고 그 땅을 일컬어 창원(槍原)이라 하였다.

'''《삼국사기》권제13 고구려본기 제1, 유리왕 28년'''


2.2. 고구려(高句麗)를 지칭하는 용어


  • 북위 효문제가 보낸 대고구려조서(對高句麗詔書)에는 고구려를 ‘황룡’이라고 표현한 문장이 있다. 또한 ‘황룡’은 광개토왕비와 문무왕릉비에도 등장한다. 광개토대왕비는 고구려를 뜻하며, 문무왕릉비에서는 국가나 지역이 아니라 상서로움을 의미한다.

2.3. 북연(北燕)을 지칭한 용어


  • 송서, 남제서 뿐만 아니라 북위의 최홍이 편찬한 십육국춘추에서도 북연을 황룡국이라고 부른다.
    • (원가)15년(438) 여름 4월 황룡국 사신이 (공물을) 바쳤다.” 북연(北燕)을 지칭하여 황룡이라고도 표현한 사실이 있다.
    • (탁발) 도(燾)가 서쪽으로는 농우(隴右)를 평정하고 동쪽으로는 황룡(黃龍)을 멸하였다. 해동(海東)의 여러 나라가 함께 조공하였다.
    • 황룡국주가 우리나라(宋)의 정삭(正朔)을 받았다.
    • “이에 앞서 선비(鮮卑) 모용보(慕容寶)가 중산(中山)을 다스렸는데 삭로(索虜)에게 패하여 동쪽의 황룡(黃龍)으로 달아났다. 의희(義熙) 초에 보(寶)의 아우 희(熙)가 그 부하 풍발(馮跋)에게 살해되었다. 발(跋)은 자립하여 군주가되었다. 스스로 연왕(燕王)이라고 불렀다. 황룡성(黃龍城)을 다스렸는데 그런 까닭에 황룡국(黃龍國)이라 부른다.” 라고 연(燕)나라를 황룡국이라 불렀다는 내용이 송서에 등장한다. 고구려와 연은 동일하게 새의 깃털을 머리에 꽃는 조우관 형식이 매우 비슷하다. 또한 국가가 인접해 있다. 장비가 스스로를 "연인(燕人) 익덕이다"라고 했듯이 이미 나라가 망했어도 그 지역 명칭으로 쓴 경우다.

2.4. 평안남도 서남단에 위치하는 지명


  • 고려사에서 용강(龍岡)은 평안남도 서남단에 위치하는 지명으로 고려시대에는 황룡성(黃龍城) 또는 군악(軍岳)이라 하고 영(令)을 두었으며, 후에 용강이라고 고쳐 현령(縣令)으로 하였다. 이는 전승되는 과정에서 평양 일대에 전해져오는 기자전승을 참고한듯 싶다.[3]

2.5. 요나라(遼) 때 두었던 부명(府名)


  • 용주(龍州) 황룡부(黃龍府)는 본래 발해(渤海)의 부여부(扶餘府)[4]이다. 요나라 태조 야율아보기가 발해를 평정하고 돌아와 이곳에 이르러 죽었는데, 황룡이 보이자 이름을 고쳤다.

3. 인명


  • 명(明)나라 때 요동(遼東) 사람 이름
  • 일본 마쓰다이라 요리히로(松平賴寬)의 호(號)이다.

4. 한국의 지대지 무유도 시험 미사일


[image]
  • 한국의 지대지 무유도 시험 미사일이다.
모습을 보면 알겠지만 사실 어네스트 존의 무단 복제품이다. 그리고 최초로 국산화한 군사용 로켓인데, 비록 전력화는 되지 않았지만 여기서 개발한 기술들로 NHK-1 백곰을 완성했다.

5. 대중매체에서의 황룡



5.1. 게임


[image]
[image]
[image]
한국의 역사관련 온라인 게임중 가장 유명하고 오래된 게임중 하나인 천하제일상 거상에서는 2002년 첫 오픈때 화룡과 함께 최강의 보스몬스터로 나왔으며 조선의 한라산 정상에 가면 볼수있다. 비주얼도 디자인도 매우 위엄넘치고 멋지다. 온라인 게임 초기에서 세월이 지날때마다 게임이 업데이트가 되며 레벨제한이 오르고 훨씬 강한 무기들이랑 좋은 갑옷들이 나오고 그에 상응하는 훨씬 더 강한 몹들이 나오는건 명약관화이니 지금은 황룡과 화룡 모두 그냥 뒷전으로 밀려난 약체몹이 되었다. 그래도 2002년, 2003년의 거상 초창기부터 플레이했던 유저들에게는 화룡과 함께 거상 최초의 최강보스몹으로써 기억에 남는 몹이다.[5] 지금은 화룡과 함께 어느정도 레벨이 오른 초보들의 레벨업을 위한 경험치용 몹역할을 하게 되었는데 화룡의 기본공격력이 더 강하고 체력도 더 높아서 화룡을 더 강한줄 아는 사람들이 많지만 기본공격밖에 없는 화룡과 달리 황룡은 연옥술이라는 강력한 특수공격스킬이 있고[6] 전투중 플레이어가 마음놓고 있을때 갑자기 연옥술을 발동하여 아군을 즉사시키거나 HP를 대폭 깎아놓을때가 잦은지라 알고보면 이쪽이 화룡보다 훨씬더 성가신 상대.
진삼국무쌍 4에서는 위, 오, 촉 3국 이외의 기타 세력의 시나리오인 192년 상산전에서 클론무장으로 나오는데, 중앙의 진채에서 부대를 이끌고 부장으로 이대목을 두고 있다. 진삼국무쌍 4 맹장전에서 외전 모드의 시나리오인 187년의 구성 토벌전에서는 북동쪽에 있는 진채 안에 있고 곽석의 부장으로 나온다. 진 난무서를 얻는 조건에 구성 토벌전에서 시작시 5분 안에 구성을 제외한 모든 무장을 쓰러뜨려야 하기 때문에 해당되는 무장 중 한 명에 해당된다.
페르소나 3에선 4성수를 전부 합성해서 만들 수 있다. 법황 커뮤니티 맥스를 찍어야 해금되는 페르소나, 3에서는 자력기가 회복계열기술과 상태불량취권뿐이라 커뮤맥스 페르소나치고는 영 별로였지만, 페르소나4에서는 일반해금에 청룡에서 전격부스터 하나만 넘겨주면 알아서 지오 계열 ,회복 계열(메시아라이저도 배운다),컨센,마술의 소양까지 다 배우는 최강급 페르소나 중 하나. 자세한 것은 황룡(여신전생 시리즈) 참고.
바람의 나라에서는 사신수보다 한 급 높은 존재로 등장한다.
게임 로맨싱 사가 3에서 4속성 마귀족의 아비스 게이트가 존재하는 던전에서는 보물상자에서 각 속성의 방어구[7]가 등장하며 4마귀족을 모두 봉인한 후 진행할 수 있는 제5의 아비스 게이트가 존재하는 황경성에서 최상위 성능의 방어구인 황룡의 갑옷을 얻을 수 있다.
  • 슈퍼로봇대전, OG 시리즈에 나온 응룡황이 응룡과 황룡을 합친 것이다. 실제 작중에서도 응룡황을 사신의 장이라고 한다.
암왕제군의 선인으로서의 모습이 황룡이다.

5.2. 만화


* 레진코믹스 천지해에 등장하는 황룡들 천지해/등장인물

5.3. 애니메이션


  • 사무라이 디퍼 쿄우에서는 주인공의 검술이 사성수 관련 기술이며 궁극기가 황룡이 튀어나와주신다.

5.4. 기타


  • 참고로 터닝메카드의 메카니멀인 마스터의 차체부분인 마스터는 황룡이 아니라 기린이다
[1] 다만, 경복궁 같은 궁궐에서는 황룡=>사신=>12지신 순으로 장식을 해놓기는 했다. 경복궁의 경우 황룡은 근정전 천장을 장식하고 사신은 높은 단을, 12지신은 낮은 단의 조각을 장식하고 있다.[2] 중국의 세속 군주 칭호 皇제가 아니라 '''중국 신화'''에 나오는 삼황오제의 일원인 '''黃제 헌원씨'''를 가리킨다. 이름에도 보다시피 황색이 들어갔다는게 포인트.[3] 학계에서는 기자조선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다.[4] 오늘날 길림성 농안~장춘 일대.[5] 2002년과 2003년 초중반. 거상의 첫오픈때와 초창기에는 힘꽤나 쓰는 플레이어들이 여럿이서 파티해서 덤벼도 못 이길만큼 강했었다.[6] 상대의 주변을 불바다로 만드는 스킬.[7] 창룡의 갑옷(타프턴산, 단 중보스 전투를 거쳐야 한다), 백호의 갑옷(피드나 마왕전), 주조의 갑옷(화술요새), 현무의 갑옷(해저궁)


분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