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친왕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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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제국의 황족이며 흥선대원군의 적장자로 고종황제의 친형 흥친왕 이희의 친왕비이다.
흥친왕이 혼인을 두 번 하여 흥친왕비가 2명이다.
2. 홍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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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생애
흥친왕의 첫 부인이다. 선조의 적녀 정명공주와 홍주원 부부의 7대손으로, 혜경궁 홍씨의 숙부이자 홍봉한의 이복동생인 홍용한의 증손녀이다.#
1844년(헌종 10년)에 통덕랑을 지낸 홍병주의 딸로 태어났다. 흥선군의 장남 이재면과 혼인한 후 슬하에 2남 2녀를 두었다. 1887년(고종 24년) 12월 19일에 운현궁에서 세상을 떠났다.
1910년(융희 4년) 8월에 시조카 순종이 남편 이재면을 흥친왕으로 책봉했고 그도 '흥친왕비(興親王妃)'로 추증했다.#
3. 이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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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생애
1883년(고종 20년)에 참봉을 지냈던 이인구의 딸로 태어났다. 1902년(광무 6년)에 무려 38살 연상인 완흥군 이재면과 혼인했다. 완흥군에게는 재혼이었다.
1910년(융희 4년) 8월에 남편 완흥군이 '이희(李熹)'로 개명하고 '흥친왕(興親王)'으로 책봉받으면서 '흥친왕비(興親王妃)'가 되었다. 그리고 불과 2주 뒤에 경술국치로 대한제국 황실이 이왕가로 격하당해 흥친왕이 '이희공(李熹公)'이 되면서 그 역시 '이희공비(李熹公妃)'로 불렸다.
1912년에 남편과 사별한 후, 종친들과 가족들의 도움을 받으며 살았다. 1924년 1월에 일본 정부에게서 훈이등 수보관장을 수여받았고# 1925년 7월에는 전주 이씨 종친 청년회에서 의료구호활동을 할 때 의복 100건을 기부했다.#
6.25 전쟁 초반에는 미처 서울을 벗어나지 못한 채 창덕궁 낙선재를 빠져나와 운현궁으로 피신한 순정효황후[1] 에게 자신이 쓰던 방을 내어주었으며 1.4 후퇴 때에는 부산 구포로 같이 피난가기도 했다.#
1978년 1월 8일에 운현궁에서 9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묘는 경기도 양주군 화도면 마석우리에 있었다. 그러다 2000년대에 양증손자 이청이 화장하여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창현리에 위치한 흥선대원군묘 건너편에 있는 이우[2] 의 묘 자리에 납골 형식으로 모셨다. 낙천군, 은신군, 영선군, 이문용, 이우 부부와 이종[3] 의 납골묘도 함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