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기 지하철 계획

 


1. 개요
2. 역사
3. 구간


1. 개요


서울 지하철 운행 구간을 착공 및 개통시기 별로 이르는 말로 운영주체는 서울교통공사(구 서울메트로)이다. 대체로 서울 지하철이 처음으로 착공된 1970년부터 3 ~ 4호선이 동시 개통된 1985년까지 건설된 지하철이 이에 해당된다.
서울특별시 계획이므로, 엄밀히 말해서 구 서울메트로 구간만 가리키는 말이지만, 서울 지하철 1호선 중 1기 지하철 건설 기간에 전철화된 한국철도 구간도 1기 지하철에 포함하는 경우도 있다. 보통은 1 ~ 3기 지하철 계획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고 보는 편.
일상적으로 1기 지하철이라 하면 단순히 서울 지하철 1 ~ 4호선을 묶어서 말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엄밀히 따지면 이 중 일부만이 1기 지하철이고 나머지는 2기 지하철 구간이다.[1]

2. 역사


김현옥 서울특별시장 재임(1966년~1970년) 시절 일본 기술진들과 함께 서울 지하철 1 ~ 5호선 계획을 짜게 된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이때 서울은 단핵도시였기 때문에 도심과 교외 사이 수송만을 고려해 10개 방향으로 뻗도록 선정했다. 노선 계획 확정 당시 기사 이때 미국의 방식을 많이 참고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예를 들어 서울 지하철 1호선 종각역~신설동역 구간을 당시 서울 지하철 5호선과 공용하면서 쌍섬식 승강장으로 계획했었다. 이후 양택식 서울특별시장(1970 ~1974)[2] 시절에, 실행되면서 쌍섬식 승강장을 염두에 두고 지었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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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최초 노선안이었다. 최초 노선구간은 이러했다.
'''1호선 - 서울역 ~ 청량리 (수도권 전철 ~ 수원/인천 ~ 서울역, 청량리 ~ 성북)'''[4]
2호선 - 김포공항 ~ 답십리/말죽거리[5]
3호선 - 연신내 ~ 수유[6]
4호선 - 독산 ~ 방이(초기에는 대림동 ~ 포이동. ∩자 선형)[7][8]
5호선 - 가좌 ~ 성남[9][10]
그러나 개통 당일에 하필 육영수가 저격당하면서 양택식 시장이 사임하고[11] 후에 구자춘 시장(1974~1978)이 취임하면서 이미 개통된 1호선을 제외한 2 ~ 5호선 기획을 파기시킨 후 강남 ~ 영등포 ~ 도심 '''3핵도시론'''에 입각, 이를 연결하는 당시로서는 세계 최장거리 순환선인 서울 지하철 2호선을 계획하고, 3호선은 불광동 ~ 서울역 ~ 사당, 4호선은 미아동 ~ 동대문 ~ 보광동 ~ 영동을 잇는 형태, 즉 지금 3호선과 4호선을 반씩 섞어놓은 듯한 형태를 가지게 된다.[12] 그리고 추후에 서울을 X자로 관통하는 현재 서울 지하철 3호선, 서울 지하철 4호선을 계획하게 된다. 1 - 5호선 연결은 구자춘 시장 취임 이후에도 계획이 존재하긴 했지만[13], 종로 지하에 예상못했던 지장물이 많아서 폐기시켰다는 썰이 있다. 이때 흔적이 신설동역 지하 3층 유령승강장이다. 그 외에 용두 ~ 신답 구간에서 왼쪽으로 갈라지는 복선터널을 만들려던 노반이 남아 있다.[14] 참고.[15] 이후 5호선은 특이하게도 서쪽 김포공항 ~ 구로구 구간과 동쪽 천호동 ~ 성남시 구간으로 추진이 되었는데[16], 어느 순간 소리소문없이 사라졌다. 참고로 잠실역에서 잠실나루역 방면 지상으로 나오기전에 빈 공간이 나오는데 아마도 5호선 중정비 연결선로 같은 용도로 계획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아울러 2호선 신도림역도 원래는 5호선 분기역으로 기획했다가 백지화되어서 지금의 기지입출고선 및 신정지선 분기역으로 수정되었다.[17]

당초 서울 지하철 3호선, 서울 지하철 4호선은 사철로 지으려고 했었으나, 1978년 기업과 재벌의 부동산 소유 제한을 골자로 하는 8.8 조치 시행으로 인해 기업이 사철처럼 감시를 할 수가 없었다. 이로 인해 기업 투자가 위축되어 전체 출자금 300억 중 92억만 모이자 결국 참여했던 기업들조차 서울시 지하철건설 주식회사에서 나란히 탈퇴하게 된다. 그 후 서울시지하철건설본부가 출범하여 결국 서울 지하철공사(舊 서울메트로, 現 서울교통공사) 운영구간으로 편입하게 된다. 참고로 당시 사철의 지분을 거의 가지고 있던 대기업이 바로 '''행운의 골드스타'''(...)

3. 구간



[1] 다만, 수도권 전철 3호선 경우, 구파발역 ~ 양재역이 1기, 양재역 ~ 수서역2기, 수서역 ~ 오금역3기이다. 즉, 3호선은 모두 속하는 유일한 노선.[2] 철도청장을 지낸 경력이 있어 철도청 협조를 많이 얻을 수 있었다고 한다.[3] 그래서 종로구간 정거장 구조가 유독 간략했었다.[4] 유일하게 실현된 노선이며 이미 철도청구간인 수도권 전철과 직결운행을 염두했었다.[5] 답십리에 분기선이 있었던 이유는 아마도 군자차량기지 때문으로 추정된다. 군자기지는 첨부터 여러 노선의 열차를 검수할 목적이였다. 공교롭게도 '''1호선 시청역과 환승도 동일하게 존재했다.'''[6] 현재 3호선과 4호선 강북구간 직결로 생각하면 된다.[7] 한강을 두 번 건너는 ∩자 형의 노선이였으나 기획중 연장변경이 생겨서 기괴한 선형으로 되었다.[8] 1호선 서울역과 환승연계가 기획되었으며, '''1호선과 4호선연결선로도 원래 여기서 나온 것이었다.'''[9] 종로구간은 1호선과 혼용할 기획이었다. 특이사항은 '''1~4호선은 좌측통행이었지만 5호선은 우측통행'''으로 기획 했었다. 신설동역 유령승강장과 통행전환 꽈배기굴이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또한 검수도 군자기지에서 검수할 기획이었다.[10] 5호선도 천호까지 기획했었는데 당시 성남시민들을 배려한다는 명목으로(?) 성남까지 연장 떡밥(...)을 쳤던거~... 실상은 상술한 광주대단지사건에 잘 나와 있다.[11] 기념행사 총괄 담당을 했었는데 보안취약으로 인해 터진 걸로 판단하여 책임하에 사퇴를 했고 그때 경호원 쪽도 줄줄이 사퇴했다. 그리고 기념행사 후 박정희 대통령과 함께 개통식을 거행하려 했으나 대통령은 끝내 개통식에 참석하지 못했고 국내 최초인 만큼 축제분위기여야 할 1호선 개통식은 침울한 분위기에서 조촐하게 개통식을 거행했다. 공교롭게도 개통식이 치뤄진 오후에 비가 내렸다고(...)[12] 이 계획에선 3호선과 4호선 환승역이 없었다. 3호선 강남구간이 4호선이었고, 4호선 강남구간이 3호선이었다. 즉, ) ( 형태의 노선이었다는 것.[13] 출처. 76년도에 나온 계획으로 2호선이 순환선으로 바뀌어 있으나, 3호선과 4호선이 여전히 그대로이다.[14] 신설동 ~ 답십리를 잇는 구간 흔적이며, 현재의 본선은 차량기지 입출고선 용도였다.[15] 여담으로 서울 버스 370이 서대문역 ~ 종로 ~ 답십리역 구간을 대신 달리고 있다.[16] 1981년경 천호동 ~ 성남시 구간은 6호선으로 분리되었다.[17] 2기 지하철 계획 문서에서 볼 수 있듯이 5호선 시점이 신도림역이었다[18] 신정지선은 본선 완공 후 나중에 기획되어서 제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