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2000 농구대잔치
1. 개요
전대회 때 시범적으로 열렸던 "프로부"가 폐지되고, 1997-98 농구대잔치와 마찬가지로 "순수 아마추어" 농구팀들만 참가하는 대회로 복귀되면서 '''"아마추어 농구 최고 권위의 대회"'''로서의 지위만 유지하게 되었다.
명색이 "1999-2000" 농구대잔치임에도 불구, 대한농구협회의 여러 행정적인 문제들로 인해 2000년 1월 4일에 개막하게 되었다. 이 후 같은해 11월에 2000 농구대잔치가 열리게 되면서 한해에 농구대잔치가 2번 열리는 촌극이 벌어지게 된다.
공식명칭은 '''"코맥스배 1999-2000 농구대잔치'''"였다.
2. 참가팀
- 대학농구연맹 소속 10개팀 중 8팀(건국대, 단국대 불참)과 상무까지 총 9개팀이 참가하였다.
3. 운영방식
- 예선리그: 9팀이 풀리그를 통해 4위까지 4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한다.
- 4강 플레이오프: 예선리그 1위-4위, 2위-3위간 토너먼트 방식으로 진행했다. (4강전은 단판, 결승전은 3전 2선승제)
4. 대회결과
4.1. 예선리그
※ 승패 동률 시 골득실로 순위 결정.
- 1990년대 만큼은 아니더라도 김주성, 송영진, 정훈, 김동우 등 장신 유망주들이 대거 출현했던 시기라, 아마농구팬, 특히 대학농구 팬들에겐 르네상스 같은 시절이었다.
- 트윈타워(송영진-김주성)의 중앙대는 대회초반 신입생 콤비 김동우-박광재 듀오가 가세한 연세대에 의외의 일격을 당하긴 했지만, 이후 모든 경기에서 승리하며 조 1위로 4강 플레이오프에 오르며 대회 2연패를 향해 순항했다.
- 또다른 트윈타워 김종학-김태완에 용산고 3학년인 입학예정자 양동근이 가세한 전대회 준우승팀 한양대와, 졸업반 듀오 이정래-이규섭이 마지막 불꽃을 태운 고려대가 4강에 올랐다.[1] 반면, 전대회 3위였던 단신군단 상무는 기존의 김병철, 김희선, 박재일 등이 건재한데다 장영재 등 KBL 출신 센터진을 보강했음에도 대학 4강팀 중 3팀에 접전끝에 패하며 예선탈락, 자존심을 구겼다.
- 많은 아마농구팬들의 관심을 모았던 성균관대는 이번에도 아쉬운 성적으로 예선탈락했다. 장신인 낙생 트리오를 가지고도 오직 양궁농구로만 승부보던 박성근식 전략에 대한 지탄이 이어졌다.
- 김주성을 제외하곤 대부분 기대에 비해 실망이 많았던 세대지만, 당시 장신유망주들의 데뷔가 어찌나 센세이셔널했던지 아직까지도 많은 국내농구팬들이 이 시절을 회상하고 있었고, 이에 농구사이트 "점프볼(www.jumpball.co.kr)"에서 당시 농구대잔치 영상을 대거 하이라이트로 제작, 업로드하는 서비스를 제공했다. ("추억의 농구를 이야기합니다~"라는 손대범 기자의 멘트로 시작하는 영상들.)
- 중앙대 vs. 성균관대 중대 트윈타워 vs. 낙생고 트리오
- 연세대 vs 성균관대 서태웅(김동우) vs. 윤대협(정훈)
- 상무 vs. 연세대 불사조군단 vs. 아기독수리들
- 중앙대 vs. 고려대 중대 트윈타워 vs. 이규섭
- 한양대 vs. 경희대 입학예정자 양동근 vs. 자줏빛군단
4.2. 4강 플레이오프
4.3. 대회 결산
- 최종순위: 우승: 중앙대 / 준우승: 연세대 / 3위: 한양대 / 4위: 고려대
- 개인부문 시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