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세(1959)

 


'''대한민국 국회의원 (서울 용산구)'''
제17~20대
진영

'''제21대
권영세'''

현직

'''역임한 직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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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무총장'''
''당명 변경''

'''초대
권영세'''

2대
서병수



'''대한민국 국회 정보위원장'''
제18대 후반기
정진석

'''제18대 후반기
권영세'''

제19대 전반기
서상기

'''대한민국 국회의원 (서울 영등포구 을)'''
제15·16대
김민석

'''제16~18대
권영세'''

제19·20대
신경민


'''대한민국 제16 ~ 18 · 21대 국회의원
권영세
權寧世 | Kwon Youngse
'''
<colbgcolor=#e61e2b> '''출생'''
1959년 2월 24일 (65세)
서울특별시
'''거주지'''
서울특별시 용산구 이태원동[1][2]
'''본관'''
안동 권씨[3]
'''현직'''
제21대 국회의원
국민의힘 용산구 당협위원장
국민의힘 인재영입위원장
'''소속 위원회'''
행정안전위원회
'''가족'''
배우자 유지혜[4], 슬하 2녀[5]
'''학력'''
서울신석국민학교 (졸업)
대동중학교 (졸업)
배재고등학교 (졸업 / 92회)
서울대학교 (법학 / 학사)
서울대학교 (법학 / 석사)
하버드 대학교 (행정학 / 석사)
'''병역'''
[image] 대한민국 공군 대위 만기전역
'''종교'''
천주교 (세례명: 스테파노)
'''소속 정당'''

'''지역구'''
서울 용산구
'''의원 선수'''
'''4'''
'''의원 대수'''
16, 17, 18, 21
'''경력'''
제25회 사법시험 합격
서울지검 부부장검사
제16대 국회의원(서울 영등포구 을)
제17대 국회의원(서울 영등포구 을)
제18대 국회의원(서울 영등포구 을)
한나라당 서울시당위원장
한나라당 최고위원
제18대 국회 정보위원회 위원장
한나라당 사무총장
새누리당 사무총장
주 중화인민공화국 특명전권대사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
제21대 국회의원(서울 용산구)
'''SNS'''

1. 개요
2. 생애 및 정치 활동
2.1. 제16~18대 국회
2.2. 낙선 후 원외에서
2.3. 8년만의 국회 컴백
2.4. 21대 국회
3. 약력
4. 여담
5. 소속 정당
6. 선거 이력
7.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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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국회의원, 전직 법조인, 외교관.
박근혜 정부에서 주중대사를 지내 범 친박계로 분류되었던 정치인이지만 사실 중도 실용 노선을 주장하는 소장파 정치인으로, 16, 17, 18대 국회에서 당내 개혁을 주도했고, 친박친이의 갈등을 중재했다.
21대 총선에서 미래통합당 소속으로 용산구 국회의원으로 당선되며 4선 의원이 되었다. 21대 국회 기준, 서울 강북 지역에서 유일하게 당선된 보수정당 의원이며, 서울에서 4선 중진에 해당되는 박진과 더불어[6] 국민의힘 내 중진 의원이다.

2. 생애 및 정치 활동


1959년 서울의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배재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였다. 1983년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검사로 근무했다. 법무부, 대검찰청, 서울지검, 독일법무부 파견 등 검사로서 소위 '엘리트 검사'의 길을 걸었으나,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검찰을 떠나게 된다. 검찰을 떠나 하버드 케네디 스쿨과 하버드 로스쿨로 유학을 다녀왔다.

2.1. 제16~18대 국회


김민석 의원이 제3회 지방선거 서울특별시장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국회의원직을 사퇴하여 치러진 2002년 8월 8일 재보궐 선거에서 이회창 총재에게 발탁되어 한나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재야출신 명망가 장기표 새천년민주당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며 정치에 입문하였다.
초선 시절 "21세기는 투쟁적 민주주의를 이끌던 사람보다는 민주주의를 생활화하고 제도화할 수 있는 각 분야의 전문가가 필요하다"면서 '젊은 전문가 대 과거의 민주투사' 구도로 이끌겠다는 소회를 밝힌 바 있다.
권영세는 2004년 17대 총선에서 당시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을 뚫고 그것도 수도권에서 재선에 성공하였다. 이후 야당의원으로서 정부, 여당의 저격수로 활약하였는데, 이전의 예와는 달리 과장 없이 철저히 팩트에 입각한 공격으로 '업그레이드 된 신형 저격수'라는 닉네임을 얻을 정도로 나름 활약을 하게 된다. 국정원 X파일, 오일게이트도 본인의 작품들이었다. 2006년 지방선거 서울시당 공천심사위원장을 맡아 지방선거 대승을 견인하였다. 당시 한나라당 소장 중도개혁파 모임인 '미래모임'의 대표주자로서 2006년 전당대회를 앞두고 임태희, 남경필 등과 경선 끝에 승리하여 소장파 대표로 출마하였으나 지도부 입성에는 실패하였다. 이후 임명직 최고위원으로 활동하였다.
2007년 이명박박근혜 후보 간의 치열한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서는 맹형규, 임태희, 권영진 등과 중립모임을 창설하여 당이 선거과정에서 소위 친이, 친박간 과열경쟁으로 분열되는 것을 막아내기 위한 활동을 하였다. 경선 직전 대통령의 형 이상득 전 의원이 정치적 장래를 보장하겠다며 이명박 후보를 지지해 줄 것을 부탁하였지만 단호하게 거절하였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2008년 18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통합민주당 이경숙 후보를 꺾고 3선의 고지를 밟았고, 2009년 치뤄진 한나라당 서울시당 위원장 선거에서 서울의 일부 중도파 위원장들이 시당위원장으로 추대하려 하였으나 서울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친이계 의원, 위원장들이 전여옥 의원을 내세워 경선을 요구하여 경선을 치루게 되나 일반적 예상과는 달리 낙승을 하였다.
16, 17, 18대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면서 전 한나라당 최고위원 사무총장, 새누리당 사무총장을 역임하였고 외교·통일 분야 뿐만 아니라 경제·교육·문화 등 다방면으로 전문성을 갖춰 통일외교통상위원회, 과학기술통신위원회, 정무위원회 등 다양한 상임위에서 정치 활동을 하였다. 자신의 전문 분야를 넘어 "사회적으로 소외 받는 계층들이나 사회적인 보호를 필요로 하는 집단들에 대해 초점을 맞춰 입법 활동을 해나가고 싶다"며 기획재정위원회로 상임위를 옮겨 다양한 정책 활동을 하기도 하였다.
2011년 12월 박근혜 비대위원회의 사무총장으로 임명되어 당의 쇄신과 2012년 공천을 주도하였다. 당시 언론의 예상을 깨고 2012년 총선 승리를 견인하였으나 정작 본인은 소위 '사무총장의 저주'를 넘지 못하고 신경민 후보에게 낙선하여 4선의 문턱에서 좌절되었다.

2.2. 낙선 후 원외에서


18대 대선을 앞두고는 2012년 9월부터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선대위 상황실장으로 대선을 지휘하여 박근혜 후보의 승리를 견인하였다. 2013년 초 주중대사로 임명되어 2015년 3월까지 재직하였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대통령비서실장, 국가정보원장 및 각 부처 장관의 하마평에 꾸준히 올랐으나 실제로 임명되지는 않았다. 이후 2016년 20대 총선에 다시 영등포구 을에 출마하지만 이번에도 신경민 후보에 밀려 낙선한다.

2.3. 8년만의 국회 컴백


2020년 21대 총선에서 영등포구 을에서 용산구로 지역구를 바꾸어 도전장을 내밀었다. 당내 경선을 통과한 뒤, 박원순 시정에서 행정1부시장을 지낸 강태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맞붙어서 신승하였다. 용산구는 그래도 서울 한강 이북 지역에선 보수세가 상대적으로 강한 지역이라고 평가받지만, 2016년에는 더불어민주당으로 당을 옮긴 진영 의원이 당선되었으며 2018년 지방선거에선 구청장은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내리 3선을 하고 시의원도 더불어민주당에서만 2명이 당선되어 과거에 비해 보수세가 많이 약해졌다고 평가받고 있었다. 때문에 통합당 입장에선 값진 승리라고 할 수 있다. 이로서 서울에서 보수 성향이 강한 강남 3구가 아닌 다른 지역에서 당선된 유일한 미래통합당 소속 의원이 되었다.
2020년 5월 8일 미래통합당 원내대표 경선에 조해진 의원과 러닝메이트로 출마했으나 주호영-이종배 의원 조에 밀려 원내대표 경선에서 낙선했다. 하지만 언론에 의해 친박 VS 비박 구도로 갈라치기가 되다보니 친박 프레임으로 손해를 본 부분도 있었고[7], 19대, 20대에서의 낙선으로 8년 동안 공백기가 있다 보니 주호영 의원과 달리 초재선 의원들과 교류할 기회가 별로 없었던 것도 패인으로 작용하였다. #

2.4. 21대 국회


김창룡 경찰청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고소 사실 유출 등 박원순 성추행 사건과 단국대 대자보 사건 등에 대해 질의하였다. "(여권이 사용하는) '피해 호소인' 표현은 피해가 입증 안 됐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일종의 2차 피해"라며 "두 용어의 차이가 뭐가 있다고 생각하느냐"고 질의했는데 "(2차 피해 여부는) 제가 평가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고 답하자, "경찰청장이 아무것도 평가 안 하고 중립적으로 있으려면 뭐 하려고 (청문회에) 부르느냐"고 쏘아붙이기도 했다. ###

3. 약력



4. 여담


  • 직원들에게 얼리아답터로 불릴 만큼 태블릿PC, 카메라 등 IT 전자제품에 관심이 많은 편이라고 한다. RC 헬리콥터, 드론, 프라모델 조립 등을 취미로 즐길 만큼 꽤 수준이 높은 키덜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 가장 즐겨 먹는 음식은 청국장떡만둣국이다. 선거기간에는 '1일 1청국장'을 먹을 정도였다.
  • 천주교 신자이고, 가정에도 충실한 '딸바보'로 알려져 있다.
  • 은 본인 취향에 맞게 크게 비싸지 않은 옷을 직접 코디해 입는다고 한다.
  • 취미는 독서라고 한다. '책벌레'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책을 자주 읽는다고. 2007년 ‘국회도서관 이용 우수회원’으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 21대 국회에서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손자이며, 김현철 동국대 석좌교수의 아들인 김인규 씨가 권영세 당선인의 6급 비서가 되었다. 김 비서는 이전에는 상도동계인 정병국 의원실 인턴으로 국회에 입문했고, 이후 문희상 국회의장실에서 7급 비서와 6급 정무비서를 거쳤다. #
  • 동명이인의 더불어민주당 권영세(1953) [8] 안동시장이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후보에게 입당 의사를 밝히자 "이름이 같은 이분 때문에 제가 한때 뇌물 피의자로 오해를 받아 곤욕을 치렀는데 이제 철새라는 오해까지 받게 생겼다"고 하면서 "개명할 수도 없고 참 (곤란하다)…" 이라하며 불편한 심경을 토로했다.#
  • 재산 공개 내역 중 배우자의 명의로 하프 3대를 보유하고 있어 화제가 되었는데, 배우자의 직업이 하피스트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 2020년 9월 7일, 장인상을 당했다.#

5. 소속 정당


'''소속'''
'''기간'''
'''비고'''

2002 - 2012
정계 입문

2012 - 2013
당명 변경

2013 - 2015
주중대사 취임으로 인한 탈당

2015 - 2017
복당

2017 - 2020
당명 변경

2020
합당[9]

2020 -
당명 변경

6. 선거 이력


연도
선거 종류
선거구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2002
상반기 재보궐선거
서울 영등포 을

'''20,976 (54.91%)'''
'''당선 (1위)'''
'''초선'''
2004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41,432 (43.39%)'''
'''재선'''
2008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38,537 (57.57%)'''
'''3선'''
2012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40,950 (47.39%)
낙선 (2위)

2016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32,341 (37.70%)

2020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용산

'''63,891 (47.80%)'''
'''당선 (1위)'''
'''4선'''[10]
'''역대 선거 벽보'''

7. 둘러보기









[1]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당일에 이태원동의 투표소에서 투표했다는 인증글을 올렸다.출처[2] 같은 용산구 동빙고동에도 집을 소유하고 있으나 전세를 준것으로 파악된다.[3] 34세손 '영(寧)' 항렬이다.[4] 직업은 하피스트이며, 남편의 국회의원 재산 공개로 하프 3대를 보유한 것을 신고하면서 밝혀졌다.#[5] 두 딸 중 차녀의 이름은 권이영으로,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아버지의 선거 유세를 도왔다.# 권 의원이 공식 블로그를 통해 자신이 정치를 처음 시작할 당시 차녀의 나이가 여섯살 정도였다고 언급한 것으로 보아 나이는 대략 1996~1997년생으로 추정된다. 사실이라면 늦둥이인 셈. 참고로 장녀의 이름은 밝혀지지 않았다.[6] 나머지 서울 지역구 국민의힘 의원들은 재선 국회의원인 박성중 빼고는 모두 초선이다.(김웅, 배현진, 유경준, 윤희숙, 태영호)[7] 그런데 권영세에겐 억울한 것이 애초에 권영세는 친박과는 거리가 먼 인사였고, 초선 때부터 '''보수 소장파'''와 가까운 인사였다. 총선 당시에도 친박으로 보기에는 매우 다른 모습을 보였고, 개인적인 친분도 친박인사들보다는 친박이 그렇게 싫어하는 유승민, 정병국친유비박계 인사들이 많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권영세'''나 주호영이나 둘 다 비박계로 봐야한다. 권영세가 친박이라고 분류가 된건 2011년~2012년 박근혜비상대책위원장 체제에서 사무총장으로 있었고#, 18대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 캠프의 종합상황실장으로 있었으며#, 이후 박근혜 정부에서 주중대사로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8] 심지어, 한문이름도 같은 동명이인에다, 둘 다 안동 권씨 34세손이다.[9] 새로운보수당, 미래를향한전진4.0과 신설 합당[10] 8년 만에 원내 복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