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R EN GREY
1. 개요
'''일본을 대표하는 메탈 밴드 중 하나''' [1]
디르 앙 그레이. 일본의 메탈 밴드. 밴드명의 유래는 DIR는 독일어로 은화, EN은 프랑스어로 ~의, GREY는 영어로 잿빛이라는 뜻을 가지며, 이 단어들을 조합하여 '''잿빛의 은화'''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밴드명을 지을 때 독일어, 프랑스어, 영어로 하자는 의견이 갈리자 내놓은 대안이라고. 밴드 초창기의 정식 표기는 Dir en grey였으나 19번째 싱글인 '''능욕의 비''' 이후부터는 DIR EN GREY의 대문자 표기로 바뀌었다. '''사람의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굉장히 많이 갈리는''' 밴드이기도 하다. 취향에 맞는 사람은 딱 맞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는 사람에겐 최악의 밴드.
1997년 La'Sadies라는 밴드에서 활동하던 쿄, 카오루, 다이, 신야 4명에서 토시야를 영입하여 현재의 라인업으로 결성하였다. 초기 이들의 음악과 외형은 강한 비주얼계 밴드였다. 여담이지만 La'Sadies의 베이스였던 키사키와 안좋게 헤어졌다는 이야기가 있어서 그런지 뼛속까지 키사키빠들은 좀처럼 디르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요시키에 프로듀스에 의한 메이저 데뷔 이전에 이미 이들은 굉장한 인기로 주목받고 있던 상태였다. [2] 요시키 프로듀스로 앨범 하나 한 것은 디르앙그레이 전체 역사에서 보면 그리 큰 부분이 아니다. 인디즈 시절에도 그바닥에서는 유명한 유키야 프로듀스의 싱글로 좋은 성과를 거두었었다. 셀프 프로듀스로 바뀌면서 현재 디르가 뜨거운 감자가 된 것. 당시 비주얼계 씬에서 보기드문 과격하고 강렬한 메탈 사운드로 수많은 고정팬을 확보해갔다. 그 후 EastWestJapan가 주최하는 인디즈 레이블 소르핀스테레에서 데뷔, 메이져 데뷔 앨범인 GAUZE는 YOSHIKI의 프로듀스하에 LA의 One on One 스튜디오에서 녹음을 하였다.
메이저 데뷔 첫 앨범인 GAUZE 발매 후에는 과격하고 강렬한 메탈 사운드로 무장한 싱글 殘~zan~과 감성적인 멜로디의 I'll[3] 등의 싱글들로 오리콘차트 10위권 안에 단숨에 진입할 정도로 인기를 자랑한다. 두번째 앨범인 MACABRE 앨범에서는 과격한 브루털 창법과 함께 묵직하게 내리꽂는 헤비한 사운드, 그리고 아름답게 울려퍼지는 감성적인 멜로디를 혼합시켜 Dir en grey만의 사운드를 정립하기에 다다른다.
세번째 앨범인 鬼葬의 발매 후 더더욱 실험적이고 강렬한 사운드로 Dir en grey라는 밴드의 이름을 높였다. 덧붙여 단순히 화장만 짙게 해 튀어보려는 듯한 초기 비주얼계의 비주얼에서 탈피하여 보여지는 면모 이상의 Show라는 개념으로 과격한 퍼포먼스를 하는 등 들려지는 면으로나 보여지는 면으로나 모든 팬들을 충족시키기에 이른다. 잠시 휴지기 동안에 발매한 미니앨범인 Six Ugly 발매 후 완벽한 서양풍의 스래쉬메틀과 하드코어 사운드로 중무장한, Dir en grey에게 있어 완벽함이라고 표현될 정도로 모든 것이 집대성된 통산 네번째 정규작 VULGAR 앨범 발매 후 이들의 이름은 저 멀리 서양에도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했고, 그들은 비주얼계에서 라우드계라는 독특한 음악씬을 만들어낸다.
그들을 추종하는 후배밴드들이 발돋움하여 라우드계를 정립한 것도 이 때 쯤. 그 후 귀장 앨범 발매 후에는 탈 비주얼을 선언하고 이 때 부터는 일본 풍의 사운드를 완전히 버리고 강렬하고 묵직한 사운드로 팬들을 충족시키기에 이른다. 이 때부터 초기 모습을 좋아하던 팬이 떨어져나가고 점점 컬트적인 존재가 되어갔다. 사운드는 매우 그로테스크해졌지만 단순히 팝 적인 부분, 캐치함이 사라짐으로써 기존의 팬들이 사라지기도 했다. 해외 진출과 서구적인 사운드를 너무 의식한 나머지 극단적으로 변화 한 성향이 크기도 하다[4] .
그러나 다른 라우드계 비주얼 밴드가 메이저 데뷔를 하면서 오히려 예전의 강렬함이 사라지고, 팝성향으로 굳어지는 밴드가 태반이라 강한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더 강렬해지는 디르 앙 그레이의 경우를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5] 잇달아 THE MARROW OF A BONE 앨범과 UROBOROS 앨범 발매 당시에는 아시아권 밴드 최초로 독일의 유명 록 페스티벌인 Rock am Ring을 비롯해 Rock Im Park 등의 유렵에서 무대를 갖기도 했다. 미국 유명 뉴메탈 밴드 콘의 보컬 조나단 데이비스가 이들의 뮤직비디오를 보고 "일본 밴드중 가장 크레이지"라고 평하기도 하였다.
또한 오지 오스본의 페스티벌(Ozzfest) 2013에 참가한 경험도 있다.이 메탈 페스티벌에 헤드라이너로 참가한 슬립낫 보컬인 코리 테일러와 기타의 제임스 루트의 말에 따르면 '''비슷비슷한 메탈 밴드는 개나소나 다 할수 있으나 디르 앙 그레이는 오리지널리티가 있는 밴드다'''라는 뉘앙스의 코멘트를 남기기도 하였다.
디르 앙 그레이는 수명이 짧은 타 비주얼계 밴드들에 비해서 멤버들 간에 단 한순간의 불화가 없는 장수 밴드이기도 하다. 물론 멤버들이 현재는 밴드활동에만 전념하기 때문일지도. 여태 나온 케이스로 봤을 땐(PIERROT이 가장 대표적인 예) 멤버 내에서 솔로활동을 하는 멤버가 나오면 깨지지 않을까 하는 의견도 있긴 있다. 하지만 2013년 이후 솔로 활동의 활발한 전개에도 2015년 5월 7일 카오루의 인터뷰에 의하면 밴드의 스케줄은 몇년 후까지 정해져있고, 인터뷰에서 멤버들이 밴드의 긴 존속을 바라는 멘트가 현재에도 이어지고 있는 것을 보아, 해체설은 현 시점에서 의미가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사실 멤버의 솔로 활동은 밴드의 프로모션 차원에서 이뤄지는 부분도 있고, 복수의 밴드에 재적하거나 솔로 프로젝트를 이어가면서도 긴 활동을 이어나가는 밴드도 적지 않다. [6]
공식 팬클럽은 「a knot 」 [7] 이며 팬은 토리코라고 부른다
2. 멤버 구성
2.1. 쿄(보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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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르 앙 그레이의 모든 곡을 작사하고 있다. 학대나 살인 등을 연상하는 소재와 추상적이고 난해한 가사로 디르 앙 그레이의 세계관을 표현하는 한 축이다. 라이브에선 메인 퍼포머로서 위치. 과거에 자해행위 같은 과격하고 전위적인 퍼포먼스로 악명 아닌 악명을 얻었었다. 초기엔 생목으로 질러대는 보컬이라 음의 기복이 많이 안좋아진 상태였으나, 최근엔 발성이라도 익혔는지 안정된 상태. 과거엔 퍼포먼스에만 지나치게 열중하다보니 공연 중 가사를 날려먹는 경우도 많았다. 근래에 자해행위나 출혈 같은 과격한 퍼포먼스는 거의 봉인되었으나, 그의 퍼포먼스에 열광하던 코어팬 층에선 쇼맨쉽이 지나치게 줄었다는 의견도 있다. 07년도부터 곡 사이 사이 고음의 스캣을 넣거나, 리버브 같은 공간계 사운드를 배경으로 경을 외우는 듯한 솔로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있으며, DVD 에서 "INWARD SCREAM" 이란 크레딧으로 수록되고 있다.
본인의 예술세계가 외적인 부분으로 방해받는 것을 싫어한다. 성격도 타 맴버들 보다 많이 불같은 면이었다. 2집 때 잡지 인터뷰에서 문답잍터뷰를 했는데, 4차원 기믹을 많이 밀기도 했다[8] . 현재는 인터뷰에서도 꽤나 진지해진 편. 성격 자체도 많이 둥글고 유해졌다. 평상시에도 자기 자신을 단순한 밴드 내에서의 보컬리스트라기 보다도 표현자라는 식으로 말하기도 할 정도로 자기 스타일은 확고한 듯[9] . 혼자서 조용히 주로 있는 성격인지 평상시에는 밖에도 거의 안나간다고 한다. 미국 투어 때도 거의 호텔이나 숙박소에서만 틀어박혀 있었다고. 이 때 간단하게 펜과 종이만으로 스케치를 그렸는데, 이 때의 스케치가 싱글 "輪郭"의 자켓으로 쓰였다. 여담이지만 쿄의 영어발음은 아무리 좋게 들어주려고 해도 괴악하기 짝이없다.[10]
라이브에선 멤버들 모두가 인이어 이어폰[11] 을 사용하는데, 2집 MACABRE 투어 도중 음향사고로 돌발성 난청을 앓아 투어가 중단되기도 했다. 지금도 한 쪽 귀의 청력은 현저히 떨어진다고 한다.
2011년도 새 싱글 LOTUS 발매 시 삭발을 했는데, 마치 LOTUS의 의미가 연꽃인지라 팬들은 모두 그가 해탈한 줄 알았다고. 정작 본인은 그냥 하고 싶었던 헤어스타일을 한 거라고. 디르 이전엔 베이시스트를 하기도 했다. 멤버 중 유일하게 술을 즐기지 않는 멤버. 대신 엄청난 애연가. (토크쇼 'BAR BOO'와 2019년 4월 15일 신키바 스튜디오 코스트 라이브 영상에서 담배를 피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과거 인터뷰에선 목관리를 위해서 술은 안마신다고 하는데..
2013년도에는 개인 사진전을 열기도 하였으며 사이드 프로젝트로 SUKEKIYO라는 밴드를 만들기도 했었다. 디르의 활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아티스트가 기괴한 퍼포먼스로 유명했던 마릴린 맨슨이라면, 스케키요의 활동은 BUCK-TICK 풍의 아방가르드 고딕록이다. 실제 쿄가 음악활동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도 고교 시절 벅틱을 접하고 나서부터다.
초기와는 창법이 많이 달라졌는데, 최근 들어서는 아예 인간을 초월하려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하이노트의 고음은 물론이고 이제는 '''휘슬 레지스터'''까지 구사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팬들 역시 저게 인간이 맞는건지(...) 의심할 정도... 실제로 다른 장르의 아티스트들을 포함하여 일본 남성 보컬 중에서는 가히 톱 클래스 수준의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고 한다.
그 와중에서도 독보적이라고 불릴 만한 특징은 바로 '''무리없이 질러대는 브루털 창법'''으로 라이브하는 모습을 보면 분명히 목을 혹사하는 창법인데다가 디르 앙 그레이의 곡들 중에 브루털 창법이 안 들어가는 곡을 세는 게 더 빠를 정도로 많은 곡을 소화해내는데도 '''멀쩡하다!''' 거기다가 디르는 투어를 굉장히 많이 하는 밴드로 정평이 나 있는데, 아무래도 쿄 본인이 라이브를 안정적으로 많이 하기 위해서 브루털 창법만큼은 제대로 익힌 듯 하다. 실제 2005년도 후두염으로 투어가 중단된 적이 있다. 이 때까지만해도 라이브 실력이 과도기스럽다는 평이었는데, 복귀 후부터 상당히 안정적으로 변했다.
여담으로 유일하게 본명을 밝히지 않는 멤버다.[12][13]
한 성격 해 보이고 거친 무대 위 모습과는 다르게 굉장히 내성적이고, 의외로 매우 감수성이 여리고 눈물이 많다고 한다. 데뷔 전 사람들에게 하도 상처를 많이 받아서, 자신이 그런 행동을 타인에게 내보일까봐 굉장히 두렵다고도 인터뷰했다. 또한 부당한 사건이나 약자가 겪는 불행을 매우 싫어한다고..[14] 최근에는 여고생 콘크리트 살인사건에 대해 트위터로 피해자에 대한 애도와 이 부당한 사건에 대해 분노하는 트윗을 올리기도 했다. [15]
2.2. 카오루(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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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드의 리더. 멤버인 DIE 와 함께 밴드의 메인컴포져의 위치로서, 그가 작곡한 곡의 대다수가 타이틀이나 싱글컷되는 사례가 많은 편. [16] 초기엔 대다수의 곡을 작곡하고, 기타 솔로를 맡기도 했으나, 점차 밴드의 합주식 작업을 통한 공동 작곡의 형태가 늘어나면서부터 현재는 비중이 많이 분산된 편.(현재 전곡 밴드 이름으로 작곡자의 표기를 하고 있다.)
코테계 비주얼을 선보이던 초기엔 상당한 미형이었지만 (역시 미형이었던 토시야와 혼동하는 팬이 많을 정도로), 비주얼계에 대한 염증의 영향인지, 현재는 장발과 온몸을 뒤덮는 타투 등 ~~오우 지저스크리스트~~ 라우드계 록 뮤지션의 외견으로 변형. 여러모로 외견 상 신해철을 연상시킨다는 평가이다. Withering To Death 앨범 때까지만 해도 손등과 팔뚝의 문신 두 개로 잇었으나, 후에 온 몸을 덮는 문신으로 팬들을 깜놀시키기도 했다. 덕분인지「TATTOO TRIBAL」 같은 타투 전문 잡지에 표지모델로 게재되거나 인터뷰를 하는 경우도. 근래 밴드가 다시 메이크업을 시작하면서 과거의 미형 외모가 다시 부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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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본판 불변의 법칙. 2016년 발매한 싱글 우타후미의 자켓 촬영에선, 조커를 모티브로 삼은 듯한 자작 메이크업을 선보이기도 했다.
2015년에 도쿄 스포츠와의 인터뷰에서, 2014년 즈음부터 오른손 손가락의 기능장애와 신경마비를 고백해 팬들에게 충격을 주기도. 자신의 힘으로 피크를 잡기 힘들어져, 양면 테이프를 사용해 피크를 잡고 있다고. 다행히 상태가 많이 호전되고 있다고 한다. 현재에 사무소에서 마사지사를 고용, 라이브 출연 전 정기적인 마사지를 받고 있다고 한다.
여담이지만, 데뷔 초창기 때만 하더라도 영락없는 건덕후로써 건프라를 모은 적도 있다고 한다. 현재에도 블로그 등을 보면 간간이 프라모델을 모으는 듯 하다.# 2015년 11월 반다이와의 콜라보레이션 프로젝트가 성사, 35주년을 맞이하는 "건프라EXPO월드투어재팬 2015 WINTER" ( 「ガンプラEXPOワールドツアージャパン 2015 WINTER」)에도에서 멤버인 Toshiya 와 서포터즈로 참가해 자신들이 디자인한 건프라를 선보였다. 2016년에도 "건프라EXPO월드투어재팬 2016 WINTER" ( 「ガンプラEXPOワールドツアージャパン 2016 WINTER」)에도 멤버인 Toshiya 와 서포터즈로 참가해 오리지널 컬러링의 건프라를 전시했다.
2012년도 다이와 함께 영기타 리프메이킹 레슨영상이 발매되었다.#
라이브 영상을 보면 토시야, 카오루, 다이에게 마이크가 놓여있는데 서포팅으로 보컬이나 스크리밍도 한다
https://youtu.be/UJOo__wB1O4
인스타그램 계정이 있고 유튜브 활동과[17] 트위터도 시작했다.[18]
2.3. 다이(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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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에 카오루와 함께 곡들을 작곡했다. [19] 카오루, 토시야와 함께 ESP의 엔도서이기도 하다. 카오루와는 달리 시그네춰의 보급형이 좋은 스펙으로 나오는 편[20] . 쿄와는 달리 사람을 잘 사귄다고 한다. 빨강색을 좋아하는지 머리도 빨강색으로 염색한 경우가 많았고, 사용기타도 빨강색을 쓴다. 손등의 뱀피문신이 트레이드 마크인데, [21] 쿄와 카오루가 야금야금 문신을 늘린 것에 반해 이 이상 문신을 늘리지 않고 있는 것도 특징. 한국내에서 별명은 빙구다이내지 다이빙구.
또 현재 고양이를 키우고 있는 집사다!! 애주가 술을 좋아한다.[22]
2012년도 카오루와 함께 영기타 리프메이킹 레슨영상이 발매되었다.#
쿄의 솔로 활동에서 영향을 받았는지 역시 2015년도 솔로프로젝트인 DECAYS를 결성. 멤버로는 MOON CHILD의 카시야마 케이가 참여하였으며, 쿄의 SUKEKIYO와 함께 합동투어도 돌기도 했고, 디르의 공연 전 스케키요와 함께 오프닝 공연을 한 적도 있다.
비주얼계의 루트라고 평해지는 밴드 D'ERLANGER의 기타 CIPHER를 굉장히 존경하고 있다. 실제로 그의 외견이나 플레이스타일, 사용 기타에서 CIPHER 2세라고 과언이 아닐만큼 CIPHER스러움이 묻어난다. 현재는 이젠 상당한 친분을 자랑하는 선후배 관계로 발전. 2012년 9월 23일 BUCK-TICK FEST 에 출연한 D'ERLANGER 무대에 게스트 출연으로 한 무대에 서기도 했다. 2016년 싱글 우타후미 발매기념 니코나마 특별 방송에선, 자신의 생일에 CIPHER에게 받은 기재를 자랑하기도.
역시 마찬가지로 카오루, 토시야와 함께 서포팅 보컬이나 스크리밍을 한다(카오루 문단 링크 참조)
다른 멤버들과는 다르게 sns계정을 운영하지 않는다.
2.4. 토시야(베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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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ERROT의 로디로 시작, 기타리스트로서 GOSICK, D+L 등을 거쳐, 쿄의 권유를 받아 Dir en grey 결성에 참여한다. 초창기엔 181cm의 큰 키에도 불구하고 스키니한 몸매, 여자보다 더 예쁜 외모로 멤버 신야 못지 않던 비주얼 멤버로 인기를 모았다. 이후 목과 허리에 디스크를 앓으면서, 밴드을 이어나가기 위해 트레이닝을 거듭했고. 현재는 남성미 물씬 나는 이케맨 캐릭터가 되었다. https://pin.it/2JrBKCS게다가 아직까지도 동안이다! 미술학교을 다닌 경력이 있어 그림실력이 뛰어나고, 멤버 중에서도 독특하고...(?) 다양한 패션을 선보이는 편이다. 현재 Dirt 100% Natural Dirty 란 개인 브랜드를 런칭하기도.[23] Trickster age 나 STER EDGE 같은 패션지에 정기 연재, 개인 화보 촬영을 하기도 했다.
초기에는 피킹에만 중시한 멜로디컬한 베이스라인을 주로 선보였다. 후기로 가면서부터는 성향이 달라져 리듬을 중요시 하는 플레이 스타일로 바뀌었으며, 현재 슬랩과 핑거링 주법이 주를 이루고 있다. 라이브의 부담으로 디스크를 앓은 이후론 요통을 피하기 위해 베이스를 세워서 연주하는 모습이 주로 눈에 띈다. 여러모로 개성적인 플레이 스타일로 잡지 등에서 회자되는 편. 라이브 퍼포먼스가 멤버 중에서도 화려한 편에 속하는데, 현재는 뜸해졌지만 마이크 스탠드나 베이스를 던지는 등 무대에서 활발히 움직이는 편이다.
활동 중 머리 두상 반쪽은 장발로 기르고 나머지 반쪽은 삭발을 했던 충격적인 일이 있었다. #
라이브에선 헤비쉐입 시그네쳐 베이스를 메인으로 사용하고 있다. 초기 Killer 의 엔도서로서 시그네쳐 모델을 제작해 사용했다. 「MACABRE」부터 「鬼葬〜six Ugly」까지는 Killer-Beelze를 메인으로 사용. 「VULGAR」 무렵부터 ESP의 엔도서가 되었고, 「UROBOROS」 앨범까지 자신이 디자인에 참여한 ESP RU-DRIVE 를 메인으로 사용하였다. 하지만 밴드의 노선이 메탈코어등 점차 더욱 더 빡센 쪽으로 기울어면서 5현 베이스의 사용이 많아졌고, 故IKÜZÖNE를 존경하여, 직접 양해와 조언을 받아 그의 시그네쳐 베이스의 IKÜTÖRONE를 살짝 변형시킨 디자인의 5현 베이스를 새로이 제작해 현재까지 메인으로 사용하고 있다. 2010년 6월호 Bass magazine 에선 IKÜZÖNE와의 대담이 실현되기도. 2020년도 인터뷰를 보면 다시 킬러 베이스를 병행하고 있다고 한다.#cameran이란 카메라 어플에 개인 공식 SNS 계정을 오픈하였다. 그 외에 디르 앙 그레이 공식 인스타 계정에 개인 글을 업로드를 하는 등, SNS에서의 활발한 소통을 보이고 있다.
역시 마찬가지로 라이브에서 카오루, 다이와 함께 서포팅 보컬과 스크리밍을 한다(링크는 카오루 문단 참조) 특히 DIFFERENT SENSE라이브에 목소리가 두드러진다.
2.5. 신야(드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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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 JAPAN의 영향으로 음악을 시작했고, 그로 인해 뮤지션중에서 요시키를 가장 존경한다. 현재는 많이 늙었지만(...) 전성기땐 토시야와 함께 밴드의 비주얼 담당이였다. [24] 비주얼계 시절때 21인치 허리라는 전설이 내려온다. [25] 밴드 내에서 유일하게 비흡연자에 혐연속성이다. 후엔 그의 권유에 따라 밴드 멤버들 전원이 그처럼 동안이 되기 위해 당분간 금연을 했다고도 한다. [26] 밴드의 음악성과는 달리 성격은 초식남 그 자체. 평소에는 딸기같은 이쁜 과일을 즐겨먹고, 취미는 귀여운 캐릭터 인형을 모으는 것과 조용한 곳에서 혼자 독서를 하는것. 타 맴버들과 달리 몸에 문신이 하나도 없다. 아픈데다 무서워보일까봐 꺼린다고. 심지어 팬클럽 회지에 딸기에 크림으로 이쁜 그림을 그린 캐릭터를 올린적이 있었다.(...) 러시아 산 캐릭터, 체브라시카 (チェブラーシカ)에 대한 상7당한 애정을 자랑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27] 본인의 생일엔 체브라시카가 직접 찾아와 축하를 하기도. 귀여워.. 고통을 테마로 시리어스한 세계관을 그려나가는 디르 앙 그레이의 멤버로서 의외의 면모가 팬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었다.
결국 2015년 9월 12일 일본의 토크쇼, 아라요시 반성회 (有吉反省会) 에도 출연. 록 뮤지션의 이미지가 먼 평범한 사생활을 반성하였다. 쉬는 날에 무엇을 하냐는 질문에 딸기 캐기, 밤 줍기[28] 와 리모델링, 캐릭터 인형 만나러 가기라고 대답해 갭 모에를 불러일으켰다. 뱀을 굉장히 무서워한다. 반성의 의미로 파충류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애완동물 샵에서 일일 아르바이트를 하였다. 뱀에 겁에 질려 사실상 록 뮤지션적인 이미지를 보여주는데는 사실상 실패. [29]
2018년도 LUNATICFEST 인터뷰에선 최근엔 보드게임에 빠져있다고 한다.결국 2015년 9월 12일 일본의 토크쇼, 아라요시 반성회 (有吉反省会) 에도 출연. 록 뮤지션의 이미지가 먼 평범한 사생활을 반성하였다. 쉬는 날에 무엇을 하냐는 질문에 딸기 캐기, 밤 줍기[28] 와 리모델링, 캐릭터 인형 만나러 가기라고 대답해 갭 모에를 불러일으켰다. 뱀을 굉장히 무서워한다. 반성의 의미로 파충류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애완동물 샵에서 일일 아르바이트를 하였다. 뱀에 겁에 질려 사실상 록 뮤지션적인 이미지를 보여주는데는 사실상 실패. [29]
조용한 성격과 얇은 목소리로 커뮤니케이션 장애 (コミュ症) 의 의혹도 받지만, 사실 굉장한 사교성을 보이는 멤버. 드러머 회 같은 동료 뮤지션과의 친목모임에도 자주 모습을 보이고, Dir en grey 외 세션 활동도 상당히 활발히 참여하는 편이다. D의 ASAGI, Versailles 의 Kamijo 와 친분으로 솔로 작업이나 라이브에 참여하는 모습도. 2018년에는 각트의 45번째 생일 기념 콘서트에 게스트로 초청받아 'Dears'를 연주하기도 하였다. 한편 SNS도 적극적으로 사용하면서 이와 같은 동료 뮤지션과의 친분을 공적으로 과시?하고 있다. 더불어 치유계를 사랑하는 초식남적인 면모도.. 인스타그램 개인 계정을 가지고 있다.[30]
3. 밴드의 음악
DIR EN GREY(이하 디르)는 전체적인 음악적인 색깔로는 과격하고 묵직한 메탈 사운드를 내세운다. 세세히 들어가보면 아주 왜색이 짙다고도 할 수 있는 멜로디(일명 뽕끼 다분)를 중심으로, 그로울링과 스크리밍(초기에는 그로울링은 아니었다), 중저음의 중후한 음색의 보컬인 쿄를 중심으로, 트윈기타를 바탕으로 한 리프플레이 주도의 사운드를 보여준다. 리듬파트는 일반적인 스래쉬나, 메탈코어의 드러밍과는 다르게 블래스트 비트보다는 좀 더 스트로크로 잘게 쪼개는 촘촘한 리듬연주를 선보이고 있다.
2005년 해외 진출 이후로 서양 메탈씬의 조류를 더욱 더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2007년 The Marrow of Bone, 2008년 UROBOROS까지는 메탈코어적인 어프로치를 많이 보여주었으나, 2011년 DUM SPIRO SPERO부터는 좀 더 난해하고 정형화에서 탈피한 곡 구성을 전면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90년대말의 일본내 밴드붐, 비주얼계 황금기 속에서 데뷔한 디르는 굉장히 빠른 시간안에 스타덤에 오르게되는데(엑스재팬의 요시키가 데뷔앨범을 프로듀스해줬다던지), 뭐 그냥 이 때는 사실 평범한 제이락풍의 음악에, 과격하고 기괴한, 엽기적인 비주얼 이미지를 가진 특이한 밴드에 불과했다. 여러모로 완성되지못한 미숙한 구석이 많았지만, 그 당시부터 멤버 개개인에 대한 인기는 높아서 자신들만의 확고한 팬층을 구축하게 된다. (99년 메이저 데뷔전, 98년에 무도관 단독 공연 등)
그렇게 초창기 Gauze, Macabre, Kisou, 3장의 앨범 이후, 2003년 Vulgar를 발표하면서 변화의 조짐을 보여주기 시작하는데, 그 후로 디르는 다양한 헤비뮤직의 특징들을 받아들이면서 자신들만의 스타일을 구축해나가려 애쓴다. 애초에 디르는 테크니컬한 연주력을 내세우는 밴드는 못 됐고, 장점이라곤 여타 비슷한 밴드들에 비해 좀 더 우월한 송라이팅이 주무기였다.
UK풍이나 아메리칸 스타일을 지향하는 밴드들 안에서도, 일본밴드들의 장점을 꼽자면 송라이팅과 멜로디메이킹을 쉽게 들수 있는데(Ellegarden이라든가 뭐 그 외 다수), 그들과 다르게 이러한 쪽 계열들은 뽕끼가 다분했다. 그것이 장점이라면 장점, 단점이라면 단점이었다. 이후 디르는 가요풍의 멜로디로 공략하는 곡에 머무르지 않고 Vulgar에서부터 Withering to death까지는 얼터너티브 메탈, 뉴 메탈적인 접근을 많은 부분 받아들이면서, 변화를 꾀하게 된다. 이 시점에서 벌써 데뷔작 Gauze하고는 많이 다른 음악을 선보이게 되었다.
초기에서부터 간헐적으로 나오긴했지만 보컬 kyo의, 지금 스크리밍을 하는건지 그로울링하는건지 알수없는 괴성이 보컬파트에서 증가하는게 계속 가속화되기도 했다. 사실상 가수로서 노래를 포기한 듯한 전위적인 퍼포먼스의 성향이 짙어지면서, 이를 반영하듯 본인 파트의 표기도 Vocal→Prophet→AVERAGEvoice→Voice로 변경하기도 했다. 이 밴드를 얘기하면서 보컬 kyo에 대한 언급을 따로 안할 수가 없는게, 이 보컬리스트를 카리스마로 느낄 수 있는지 아닌지에 따라 디르에 대해 호의적으로 느낄 수 있는지 아닌지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전반적인 음악스타일이 계속 변화되었다고는 해도, 밴드가 내세우는 이미지는 절망, 절규, 인간에 대한 고뇌와 분노, 탄식 등으로 정의할 수 있으며, 이 모습은 변하지 않아왔다. 밴드의 음악성이 급변했던 이유도 보컬을 가장 잘 내보일 수 있는 구성과 곡의 폭발력에 대한 거듭된 실험이었던 것이다.
팬들의 지탄을 받아왔던 원곡의 형태를 찾아볼수없는 라이브상태, 무대 위 가학적이고 과격하지만 많이 봐와서 식상한 자해퍼포먼스, 전달력은 별로 없긴한데 상당히 무거운 가사, 뭘 전달하려고 하는지 이해하기 난해한 역겨운 영상들의 향연인 MV들까지, 디르를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의 중심에는 보컬 kyo가 있다.
2010년 무도관 라이브인 UROBOROS를 통해 Kyo는 절정의 기량을 과시한다. 과거 많은 논란이 있었던 퍼포먼스 위주의 라이브를 버리고, 원곡의 재현에 충실한 라이브를 보여준다(인터뷰에서도 밝혔듯, 2006년 부터의 북미,유럽투어의 영향으로 인한 태도 변화). 그로울링과 스크리밍을 넘나들며, 아주 높은 음역대의 발라드 곡들(High F#6)까지 하이노트의 싱잉을 무리없이 선보여준다. 이후 무리한 투어 일정으로 인해 2011~12년까지는 고질적인 악성 성대결절로 밴드활동이 중단되기도 했다.
전 곡의 가사는 보컬 Kyo가 전담하며, 일본 내에서만 활동하던 당시와, 2005년 이후의 해외활동 이후로 가사의 세계관이나 표현 방식이 많이 변화했다. 전체적으로 염세적, 절망적인 정서 속의 고뇌와 절규 등이 메인 테마이며, 비관적이고 음울하며 때론 엽기적인 표현까지도 종종 등장하는 가사들을 선보인다.
이 후 일본 내의 비주얼계에서 음울하고 그로테스크한 세계관, 과격한 퍼포먼스. 메탈/코어류의 음악색을 표방하는 밴드에겐 선구자적인 위치에 있다고도 평해진다. Sadie[31] , Grieva[32] 등 인터뷰에서 디르 앙 그레이의 영향을 받았다고 공언하는 밴드도 다수 존재한다.
이들의 라이브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편. 바로 라이브 시의 사운드 세팅이 문제로 많이 제기 되는 편이다. 앨범에서야 기타가 세대 네대가 한꺼번에 들어가는 경우도 있고 서라운드 세팅도 빵빵하게 돌아가기 때문에 듣기에 큰 무리가 없다 치더라도, 라이브 시에는 카오루 파트와 다이파트의 라이브파트 하나씩만 나온다. 특히나 서로 다른 리프를 연주할 때에는 그 문제가 확연하게 드러나는 편. 앨범에 비해 사운드의 괴리감이 확연하게 드러날 정도로 라이브에선 사운드가 비어버린다는 게 문제로 많이 지적되고 있긴 하다. 하지만 라이브 횟수가 늘면서 부터는 본인들의 노하우가 많이 쌓여 초기의 괴리감은 많이 사라졌다.
그런데 2011년도 Waken 라이브에서는 음향도 제대로 안잡혔고, 그 환경에서 멤버들 간의 호흡도 제대로 안맞아 역대 최악의 공연이 되었다[33] . 그것도 새 앨범 발매 후 간만에 하는 라이브였기에 팬들에게도 다소의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2010년 핀란드의 심포닉 메탈밴드 아포칼립티카의 공연에 게스트에 참여해 미국팬들을 깜놀시키기도[34] .
2011년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에, (밴드 내에서 마지막 작업이 될지도 모른다는 마음으로 작업했다는)DUM SPIRO SPERO를 발매한 후, 2014년 12월 10일 9집, ARCHE 발매를 했다.
2015년 6월 27일 LUNA SEA에 의해 주최된 LUNATIC FEST.에 참여했다. SUGIZO와 「ARCHE」 수록곡인 「空谷の跫音」 콜라보레이션이 성사, 호평을 얻었다.
2016년 2월 무도관에서 열린 Arche 콘서트 공연 실황이 발매되었는데 상위 논란이 됐던 라이브 실력을 말끔히 잠재우다시피한 역대급의 퍼포먼스로 팬들의 찬사를 받았다. 특히 kyo는 나이를 거꾸로 먹었는지, 안정된 고음처리와 무대장악력 으로 레전드급의 공연을 펼쳤다. 이후 행보가 기대되는 상황.
7월 27일, 싱글『詩踏み』(UTAFUMI) 를 발매했다. LUNATIC FEST.에서 호평을 얻었던 SUGIZO와 「空谷の跫音」 콜라보레이션이 음원화되어 수록되었다.
2016년에 들어서는 「TOUR16-17 FROM DEPRESSION TO [mode of ]」 의 타이틀로 전작 앨범을 기조로 투어를 개최하고 있다. 사실 이미 2014년에서 「TOUR14 PSYCHONNECT -mode of "GAUZE"?-」 에서 전작에 대한 재해석, 원점회귀를 표방하는 투어가 개최된 적이 있긴 하다. 2017년에 활동 20주년을 맞이하는 차원에서 베스트앨범 기획과 함께 진행되는 것으로 보인다. 6월 3일부터는 전작 「TOUR16-17 FROM DEPRESSION TO [mode of VULGAR]」을 시작으로, 9월 8일부터 「TOUR16-17 FROM DEPRESSION TO [mode of DUM SPIRO SPERO]」, 10월 28일에 「TOUR16-17 FROM DEPRESSION TO [mode of 鬼葬]」, 2017년에 들어서는 1월 13일부터 「TOUR16-17 FROM DEPRESSION TO [mode of UROBOROS]」, 4월 5일부터 「TOUR16-17 FROM DEPRESSION TO [mode of THE MARROW OF A BONE]」 개최하였다. 7월 15일엔 「TOUR16-17 FROM DEPRESSION TO [mode of MACABRE]」 개최되었다.
2017년에 활동 20주년을 맞이하면서, 새로운 프로젝트 「ANDROGYNOS」가 발표되었는데, 그 내용은 종교전쟁라 칭해질 정도 팬들 간의 극심한 대립각을 내보이던 PIERROT과의 합동 이벤트 라이브. 이례적인 콜라보레이션 프로젝트의 발표에 양 팬덤은 흥분 상태. 7월 7일과 8일 요코하마 아레나에서 2일 간 개최되었다. 또 D'ERLANGER 트리뷰트 앨범 Stairway to Heaven(2017. 9.13)에 참여하였다.[35]
2018년 4월 25일 싱글 人間を被る를 발매하고 『TOUR18 真世界』 투어를 진행, 6월 23일 LUNATIC FEST에 참여했다. 8월 2일부터『TOUR18 WEARING HUMAN SKIN』일본 투어를 개최하였고 9월 26일 10집,『The Insulated World』를 발매했다. 10월 6일부터『TOUR18 WEARING HUMAN SKIN』 유럽 투어를 개최, 12월 19일 『TOUR18 FOLLOWERS』 으로 나고야와 오사카 팬클럽 한정으로 투어를 개최하였다.
2019년 3월 15일부터 『TOUR19 The Insulated World』 일본 투어를 개최하였고 8월 7일 LIVE COLLECTION Blu-ray & DVD 『FROM DEPRESSION TO [mode of 16-17]』를 발매, 9월 18일 싱글『The World of Mercy』를 발매하였다.[36] 9월 15일부터 11월 20일 까지「TOUR19 This Way to Self-Destruction」 일본 투어를 진행하였고 12월 5일부터 「TOUR19 This Way to Self-Destruction」아메리카 투어를 개최하였다.
2020년 1월 25일부터 「TOUR19 This Way to Self-Destruction」의 유럽 투어를 진행하였고 1월 29일 발매된 BUCK-TICK 트리뷰트 앨범 「PARADE III ~RESPECTIVE TRACKS OF BUCK-TICK~」에 참여하였다.[37] 3월 27일부터「TOUR20 疎外」투어가, 「The Insulated World -The Screams of Alienation-」이 피아 아레나 MM에서 7월 23일과 24일 양일 개최예정에 있었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로 인해 몇몇 공연이 취소되고 연기되자 쿄의 제안으로 유튜브 라이브로 3월29일 토요일 14:30분 부터 20:30분까지「The World You Live In」다큐멘터리와 공연을 실시했다. 3만명 이상이 실시간으로 방송에 참여하였다.[38]
현재 소외 투외가 모두 중지되었고「DIR EN GREY AUDIO LIVESTREAM 5 DAYS」로 멤버들이 짠 셋리대로 유튜브 라이브 방송을 통해 오디오 스트리밍을 했다.
LIVE ACHIEVE & SPECIAL TALK 와 「落ちに事のある空」디지털 싱글 공개를 앞두고 있다.
4. 극우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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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셉에 민감한 부분이 있기도 하다. 구 일본군이라든지 나치 등의 옷을 입기도 하기도 한데 멤버들이 나치를 우호적으론 생각하지는 않는 듯 하다.[39] 곡 내에서도 the GazettE와 같이 대놓고 극우컨셉의 곡도 없다.[40] 2020년도엔 오히려 극우나 네오나치들이 싫어할만한 뮤비를 발표했다.#
근데 토시야의 시그너쳐 베이스를 보면 욱일기를 연상시키는 베이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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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 시그너쳐 베이스(위에 있는 베이스)
단 이것은 디르문제보다는 ESP의 문제일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도 있으나, ESP는 시그네춰를 제작할 때 회사 쪽에서 정하는 게 아니라 사용자 쪽에서 대부분을 정하고있다. 위의 멤버 목록의 토시야항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저 베이스는 '''토시야가 직접 디자인했다'''(보디타입 제외). 본인은 인터뷰 당시(2010년 6월호 BASS MAGAZINE) 욱일기 자체의 의미보다는 방사선 형의 이미지가 좋아서 따온 것이라고 하여 이를 극우라고 확정짓기에도 애매하다. 어쨌든 이를 디르 측이나 ESP도 인식을 했는지 이 외에도 다양한 디자인으로 바리에이션을 만들고 상품전개를 하고 있다.
DRAIN AWAY 뮤직비디오도 문제가 있다. 당시 기타리스트 카오루가 입었던 의상에 욱일기가 그려져 있다. 배경에도 욱일기가 보이는데, 단순히 욱일기만 넣었다고 군국주의라고 하기엔 애매한 부분들이 많다.[41][42]
일본인들의 정서를 가만 들여다보면 의외로 욱일기와 극우가 교집합을 가지긴 하지만, 별 관계는 없는 경우도 많다. 즉, 다시말해 극우가 선동의 상징물로 욱일기를 사용하는 것은 100%지만 반대 인식으로 욱일기 그 자체에서 극우감정을 느끼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는 거다. 개념있는 일본인들이라고 해도 "외국에선 전범의 부산물로 싫어하더라" 정도의 인식이라[43] . 극우들은 그냥 욱일기를 이용해서 선동을 잘 할 뿐이다.
5. 밴드의 비주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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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GE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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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 3집 鬼葬(2002) 시절
[44]
Dir en grey의 비주얼은 굉장히 무섭다. 보컬리스트인 쿄와 기타리스트인 카오루가 가장 좋아하는 뮤지션이기도 한 마릴린 맨슨에게서 영향을 받은 듯한 어둡고 괴기한 분장분장을 주로 했다. 데뷔 초기 뮤직 스테이션에서 殘~zan~을 연주했었는데, 당시 천장에 시체를 매단 무대연출이 시청자항의를 받아서[45] 한동안 방송출연정지가 된 경우도 있었다.[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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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중간 비주얼의 성향을 바꾼 모습. 소위 이 쪽 계열에서 말하는 판다 스모키 메이크업를 대표하는 그룹이 되었다.
초기에는 일반적인 코테계비주얼을 선보였는데, 자신들이 아이돌 취급을 받는 것을 굉장히 싫어한다고 하여 비주얼의 성향을 바꾼 것이라고. 인터뷰 때의 내용을 보면 비주얼의 성향을 바꾸게 된 계기도 비주얼밴드가 단순히 외모로만 승부하려는 허접밴드라는 인식을 바꾸기 위해서라고 했다. 좀 더 본인들의 음악에 맞추어 음악=퍼포먼스의 공식을 내세우려고 했던 점. 그러나 그들의 바람과는 달리 오히려 늘어나는 건 자신들이 비주얼이라는 이유만으로 음악성이 폄하당한다는 씁쓸한 사실과 늘어만가는 아이돌 극성팬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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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 인해서 2005년 무렵 밴드가 본격적인 유럽/북미 진출을 이루게되면서, 짙은 화장을 줄여나가는 듯 탈 비주얼 노선을 본격적으로 걷게 되었다. 2009년 12월 WEEKLY플레이보이에서 인터뷰에서 리더의 카오루는, "내면의 표현을 중시하게 되면서, 짙은 화장을 해버리면 어떤 기분으로 연주해도 똑같이 보여버리는 기분이 들었다." "곡에 대한 마음이 깊어지면서, 화려한 외견으론 곡에게 져버리는 기분이 들었다."라고 토로하며 메이크업을 그만 둔 이유를 토로했다. 2016년 7월 27일 롤링스톤에서 인터뷰에선 「VULGAR」 발매 시점 즈음부터 비주얼계에 대한 강한 회의감이 있었다고 토로하기도. 화려한 비주얼에 음악이 외면받는 현실에서 멤버 사이의 고뇌도 컸던 듯하다. 그들만의 비주얼만을 쫒아 음악이 제대로 들리지 않았던 극성팬들이 떨어져 나가 지금은 예전에 비해 팬의 수가 1/3이 줄어들었다고.(요출전) 그러나 멤버들은 오히려 극성팬들이 떨어져나간 지금이 더 좋다고 한다. 음악색에서 비주얼적 느낌을 없애고 더 진지한 음악을 하게 된 후로 낸 두 앨범(Withering to Death, Uroboros)은 영미권에 정식 발매되었고, 폭발적으로 반응이 좋았으며, 평론가들의 호평도 잇따랐다. 그래서 그 후로 미국 투어를 세 번이나 가졌을 정도다. 초기 때부터의 골수 극성팬들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그들을 추종한다. 그럭저럭 괜찮게 보던 가벼운 팬이 떨어져나가고 스스로 컬트화가 된 예이다. 결과적으로 코어팬층이 결집하고, 새로이 메탈이나 해외 리스너를 새로이 팬으로 이끌면서 팬층의 저변을 확대하는 계기가 되었다.
여담으로 얼마나 아이돌 취급을 싫어했냐 하면 이런 일이 있다. 소싯적 보컬리스트 쿄의 쌩얼을 보면 굉장히 귀엽게 생긴 미소년의 얼굴이었다. 그래서 팬들이 가끔씩 그에게 귀엽다고 했는데, 오히려 쿄는 그런 팬들에게 격분하며 다시 한번 더 자신에게 그런 말을 하면 '''죽여버린다며''' 폭언을 내뱉었고, "쿄쨩"이라는 칭호와 "카와이"(귀엽다)라는 형용사를 "금기어"로 지정하였다.
아무리 탈 비주얼을 선언했다지만, 지금도 그로테스크한 연출은 별 다를 바 없다.
2010년대에 들어서는, 봉인되었던 메이크업도 활발히 선보이는 중이다. 비주얼계에 대한 해외의 관심이 일본 내에서도 화제가 되는 한편, 기존의 비주얼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줄어드는 배경이 작용한듯 하다. 2011년 「DIFFERENT SENSE」좀비 메이크업을 피로한 이후로, 부정기적으로 메이크업을 하게되었고. 2014년 「SUSTAIN THE UNTRUTH」이후로는 다시 메이크업을 본격적으로 선보이는 중이다. 드러머의 신야의 경우엔, 메이크업을 다시 하게되어 좋다는 코멘트를 인터뷰에서 하기도. 사실 밴드가 탈비주얼계의 노메이크업 노선을 걸을 때 탈퇴를 고민하기도 했다고. 2016년 7월 27일 우타후미 「詩踏み」발매와 함께 공개된 롤링스톤과의 인터뷰에선 카오루는 "결국 비주얼계 출신이기에 그걸로 좋은 느낌이다."하면서 비주얼계에 대한 심경의 변화를 토로했다. 비주얼계에 대한 회의가 세월과 함께 많이 불식된 것으로 보인다. 해당 싱글의 자켓에선 스스로 한 메이크업을 선보이기도.
6. 내한관련
2000년에 다이와 카오루가 페니실린의 하쿠에이와 내한해 인터뷰를 했었고,[47]
2002년도 귀장 투어때 한국에 내한을 온 적도 있었는데, 그 때 팬들이 공연장에서 플랜카드와 야광봉을 흔들어대는 바람에 기분나빠서 "락을 공부하세요"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는 일화도 있다. 그 후 2010 펜타포트이전까지 내한하지 않았다.
물론 내한을 오지 않는 이유가 당시 Dir en grey의 내한공연 계약당시 한국의 뭐같은 정치 및 사회적인 성향에 맞춰 그들의 분장과 과격한 퍼포먼스를 금지시켰는데, 워낙에 자부심이 강했던지라 거기에 반응해서 오지 않는다는 설도 있고 공항에서부터 극성팬들의 손길에 상처받았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물론 이외에도 현재 일본에서도 인지도와 인기가 낮은 인디즈의 비주얼락 밴드들이 클럽공연 규모로 심심찮게 내한하고 있기는 하지만, 국내에서 코어/메탈류의 공연은 잘 안팔리기 때문에 섭외가 안되는 경우도 많다. 실제 국내에서 메탈류의 페스티벌을 한 적은 있지만, 실적은 좋지 못한 편. 그래서인지 최근 국내 록 페스티벌에서 코어/메탈류의 밴드를 찾는 건 힘들다.
하지만 2010년 7월 25일, 인천 펜타포트 페스티벌의 출연진으로 한국에서 성황리에 공연을 마쳤다. 그러나 음악 스타일이 워낙에 마이너한 스타일인지라 사람들의 반응은 호불호가 많이 갈렸다[48] . 거기다 장비를 빠뜨린 스텝진의 실수로 공연이 딜레이되고, 제대로 세팅도 안된 괴악한 사운드로 공연을 시작해 빈축을 사기도[49] ...그러나 공연을 하면 할 수록 점점 사운드가 좋아져 최다 라이브의 관록을 보여주기도 했다. 결국 이래저래 말많았던 라이브 중 하나가 되었다[50][51] [52] .
7. 뮤직 비디오
보컬인 쿄의 특유의 예술세계를 반영한 디르의 뮤직비디오는 매우 그로테스크하기로 악명이 높다. 뮤비의 괴기함과 잔인함은 왠만한 B급 슬래셔 무비를 뺨치며, 특히 Obscure 무삭제 뮤비, Agitated Screams of Maggots 뮤비, Revelation Of Mankind 일반 뮤비의 잔인함은 정말 상상하기도 힘들다. 그리고 최근 발표된 人間を被る 의 일반 뮤비 역시 잔인하다.
원래 밴드초기의 뮤비 속엔 이런 면은 없었고 오히려 비주얼계 특유의 고딕적인 멋이 두드려졌다[53] . 잔인한 것도 최대한 선을 지켰으나, 2005년에 밴드가 최고의 문제작인 Obscure를 내고 탈비주얼화를 선언하면서 saku 시리즈[54] 부터 본격적으로 뮤비의 내용이 급작스럽게 과격해졌다.
물론 뮤직 비디오 한정. 2집 MACABRE 때 부터는 무대 퍼포먼스부터 막나가기 시작했다.[55] 쿄의 기본 분장은 일단 피떡칠과 피칠갑의 의상으로 시작하고, 무대 위에서 자해를 하는[56] 등 현재의 뮤비와 별 다를 바 없다.혐짤주의1혐짤주의2
대신 그로테스크함을 최대한 내세우는 현재의 뮤직비디오와는 달리 또 반대로 현재 무대 퍼포먼스는 오히려 일반적인 아방가르드 행위예술적인 분장과 몸짓으로 바뀌고 피칠갑 퍼포먼스는 안하는 등 상황이 반대로 흘러가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재밌는 부분. 밴드의 변화를 데뷔 때부터 줄곧 봐오던 충성심 높은 팬들은 이러한 변화를 굉장히 흥미롭다고 평가 하고 있다.
내용은 대부분 오컬트, 고어, 학대와 살인같은 강력범죄 등으로 이루어져 있고, 이에 따라 뮤비에선 여성의 맨몸이나 피라던지, 내장 같은 신체기관, 배설물 같은 오물, 성적 혹은 영적인 암시, 구더기나 바퀴벌레 같은 온갖 벌레 등이 아무것도 아닌 듯이 나온다. 그냥 사람이 혐오하는 건 죄다 나온다 생각하는게 편하며, 디르앙 그레이의 팬이나 믹스트림 뮤직 마니아가 아닌 이상 일반인들은 그냥 노래만 즐기는게 좋을 것이다.
만약 정 보고 싶으면 유튜브에 디르 앙 그레이 이름만 치면 쫙 깔려나오므로(...) 보고 싶은 사람은 그걸로 편안히(...) 감상하도록 하자. 다만 심약자나 그로테스크한 연출을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Obscure 무삭제 뮤비, Agitated Screams of Maggots 뮤비, Revelation Of Mankind 일반 뮤비, 人間を被る무편집 뮤비는 절대 보지 않는게 정신건강상 이롭다.
급기야 Different Sense 뮤비에서는 '''야애니, 그것도 촉수물'''까지 동원하는 패기를 선보였다!
대신 일반적인 음악 팬에 한해서의 평가와는 달리 익스트림 메탈이나 메탈코어와 같은 과격한 음악에서는 의외로 많이 나오는 연출로 이런 문화/음악을 즐기는 사람들은 의외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뮤직비디오 안에 숨겨진 비판적인 내용 등을 해석하려는 사람들이 있는 등 마니아 층에서의 인기는 확고히 좋은 편. 오히려 이런 음악/문화를 즐긴다면 한번 쯤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특히 残의 리메이크 버전[57] 과 같이 브레이크 다운과 데스코어를 결합한 뮤직 비디오는 그야말로 궁극체.
디르 앙 그레이 이외에도 서양의 블랙 메탈 뮤직 비디오 등도 심각한 것들은 대놓고 막나간다. 바포메트가 여자를 강간하여 악마의 새끼를 낳는다거나 데스 메탈 밴드의 뮤직 비디오에서 대놓고 인간으로 회를 뜨는 등의 뮤직비디오가 존재하는 등 이 쪽 문화에선 크게 희한하다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대신 디르 앙 그레이의 경우는 일본 B급 문화 특유의 분위기가 녹아들어가고 있어서 분위기 자체는 상당히 다르다. 서양 음악들이 대놓고 인간의 무의식적 잔혹성 등을 까놓는 반면 디르 앙 그레이를 비롯한 일본 밴드들은 우회적인 표현이 많아서 한 번에 감이 안오는 것이 특징. 내용과 메시지 전달력에 대해서는 서양 밴드들에 비해서 난해하다는 평을 많이 받고 있다.
무슨 그렇다고 정신나간 뮤비만 찍는 것도 아니다. 발라드 넘버에선 왕년의 비주얼밴드 이력을 과시하는 듯한 화려한 영상미의 뮤비도 많다. 대표적으로 LOTUS나 Ranunculus.
8. 디스코그래피
8.1. 싱글
8.2. 정규앨범
8.3. 미니앨범
8.4. 베스트앨범
8.5. 그 외 앨범
[1] 공식 사이트. 영어, 일본어, 중국어가 지원된다. https://direngrey.co.jp/lang_en/ 트위터 각각 일본, 웹 https://twitter.com/DIRENGREY_JP?s=20 https://twitter.com/DIRENGREY_web?s=20 인스타 https://www.instagram.com/direngrey_official/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direngreyofficial/ [2] 실제로 인디밴드 최초로 부도칸 라이브 원맨공연 매진이라는 기록을 세웠다.[3] I'll은 인디즈 시절에 높은 성적을 거둔 싱글. 98년작. 메이저 데뷔 싱글은 99년 1월 흔들림(ゆらめき)/잔(残-ZAN-)/아크로언덕(アクロの丘) 3개 동시발매이다.[4] 사람에 따라선 프로듀싱이 듣기 괴로울 정도로 괴악하게 변했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5] 물론 또 메탈만 줄창지게 들어왔던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안 들릴 수도 있겠지만.[6] 디르 앙 그레이는 멤버들의 솔로활동이라고 해봐야 보컬리스트 쿄의 시화집 발매 뿐. 그 이외의 각 멤버들의 솔로활동은 거의 없었으나, 2010년대 이후로 멤버들의 개인 활동이 두드러지고 있다. 2013년 Kyo가 자신의 솔로프로젝트인 sukekiyo를 시동하였고일본 위키 2015 Die 의 Decays가, X Japan 의 Toshi 솔로 프로젝트나 Versailles 의 Kamijo 등의 드럼세션을 이어가던 Shinya 는2017년 Seraph 시동 등 음악적으로 솔로 프로젝트를 적극적으로 전개하고 있는 추세이다. 그 외 카오루는 친분이 있는 밴드 downy 의 아오키 유타카 솔로 앨범에 참가하였고, Toshiya 의 경우엔 자신의 패션 브랜드 DIRT 100% Natural Dirty 를 런칭했다. [7] 주소 https://direngrey.co.jp/fc/ 하지만 일본 거주자만 가입 할 수 있기때문에... 일본에 가서 살거나 대행을 알아봐야 한다. [8] 좋아하는 음식은? 이라는 질문에 "볼펜"(...)이라고 대답한다거나 대답의 노코멘트를 "쿄, 인터뷰 중 의문의 행방불명"이라고 하거나. [9] 밴드 프로필에서 자기 포지션을 Vocals가 아닌 Prophet 혹은 Voice로 표기한 적도 있다.[10] 팬들도 그만두라고 할 정도. 실제로 UROBOROS 앨범에서 Glass Skin과 Dozing Green을 영어로 레코딩했었는데, 이같은 반응이 나왔다. 그 어느 외국어와 비교해봐도 도통 어느나라 말인지 못알아먹겠다는 평이 대다수. 쿄의 보컬 스타일 상 일본어 가사도 알아먹기 힘들 편. 사실상 쿄의 라이브가 샤우트나 그로울 보이스로 점철된 과격하고 전위적인 퍼포먼스로 경도되면서, 사실상 가사 전달을 포기한 측면도. 괜히 파트 표기가 보컬이 아닌 VOICE가 .. 근래 들어 쿄의 가창력이 안정되고, 밴드 자체도 미디엄 템포 계의 그루비한 곡조로 돌아가게 되면서 가사 전달력도 향상되었다. [11] 라이브에서 사용하는 모니터용 이어폰이다. 터널형보다도 귀에 깊숙히 들어가는지라 모니터용 앰프보다도 모니터하기 좋다는 장점이 있다. 대신 반대로 음향사고로 하울링이 일어나면 귀가 다칠 수도 있는 양날의 검. 멤버 전원이 또 이를 사용하는 밴드로는 린킨 파크가 있다.[12] 성씨는 니시무라가 맞는데 유스케,히로노리,토오루라는 이름은 가명일 가능성이 높다고한다.게다가 모 사이트에선 검열삭제(관리자 삭제)하기도...[13] 쿄가 발매한 시화집에서는 西村 亨(니시무라 토오루)로 쓴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이마저도 본명이 아닌 필명일 가능성이 높다.[14] 그래서 고어한 영화는 좋아하지만 동물이나 약한 노인이 학대받는 영화는 잘 보지 못한다고 한다.[15] 쿄의 트위터 계정 https://twitter.com/kyo_official?s=20 인스타 https://www.instagram.com/kyo_official/ [16] 카오루가 작곡한 대표적인 곡 몇 가지를 꼽자면 秒「」深 (Byou Shin), 蜜と唾, 殘-Zan-, Child Prey정도. 이외 많은 곡들이 있다. [17] 인스타 https://www.instagram.com/kaoru_crooo/ 유튜브https://www.youtube.com/channel/UCgOWUuy0xbn0Tf0gikV-bBA [18] 사실 트위터는 2010년부터 했지만 플텍계정이었고 이번에 새로 만든 계정은 공개공식계정이다 https://twitter.com/kaorugeee?s=09 플텍계정도 헤더가 바뀐걸로 봐서 아직 사용하는 듯 하다(?)[19] 304號室, 白死の櫻, 理由, Mr.NEWSMAN 등등 다이가 작곡한 노래의 경우 대부분 멜로디컬하다.[20] ESP 하위브랜드인 에드워즈 제품을 두고 봤을 때이다. 오리지널 ESP에서는 둘 다 똑같이 EMG픽업과 던컨 픽업을 쓰는데 에드워즈에선 다이의 시그네춰엔 패시브 픽업으로 정품이 달려 나오지만, 카오루의 부품은 ESP 자체제작인지라 부품교체를 하지 않는 이상은 소리가 병맛이라는 평을 많이 듣는다. 대신 패시브를 사용하는 모델에선 카오루시그네춰나 나 다이시그네춰나 돈값을 하는 편이다.[21] 참고로 데란저의 사이퍼 역시 손등에 뱀피문신이 있다. [22] 가방과 잡지 전설이 내려오고 있으며 유튜브 바부 방송에서도 술에 취해 귀여운(?) 면모들을 보여준다 처음부터 벌개져 있는데 뒤로 갈수록 귀여워진다 [23] 트위터 https://twitter.com/dirt_jp?s=20 인스타 https://www.instagram.com/dirt_official/ 사이트 http://dirt-jp-shop.com/ [24] 멤버들이랑 티격태격하는 모먼트들이 매우 귀엽다 토시야가 제일 신야를 과격하게 가지고 놀았었다 [25] 그런데 신야는 육식을 좋아하며 의외로 많이 먹는다 당시 햄버거와 감자튀김 많이 드시고 저처럼 되세요 라던 글이 있었다.. [26] 신야가 매우 마르고 연약해보여도 밴드에서 제일 튼튼하고 건강하고 동안이다[27] 2016년 8월 20일 출연한 音流에서 고백한 바에 따르면, 1000 종류 이상의 굿즈를 소유하고 있다고 한다.[28] 나중에 먹을려고 다 삶아놨으나, 정작에 어떻게 까먹는질 몰라 다 버렸다.(...)[29] 이 다음날 힐링하러 체브라시카를 보러 갔다고 한다 [30] https://www.instagram.com/shinya_official/[31] 보컬을 맡고있는 마오는 데뷔 초창기에 대놓고 디르의 보컬인 쿄를 제일 존경하며 그의 창법을 따라잡기 위해 노력중이라고 발언한 적이 있다. 그래서인지 Sadie의 음악을 얼핏 들어보면 초창기 디르 앙 그레이의 풍색이 느껴지기도 한다. 컨셉적인 면에서도 디르 앙 그레이의 오마주가 자주 눈에 뜨인다[32] "좋았던 과거 시대의 계승자, 古き良き時代の継承者"를 캐치 프레이즈로 디르 앙 그레이의 초창기 의상 - 음악적 컨셉을 오마주하면서 주목. 물론 디르 팬들에겐 파쿠리밴드라고 오질나게 욕먹는 중. 몇 곡은 디르의 특정 악곡을 그대로 따라하면서 표절의혹이 일기도 했다. [33] 곡 중간 중간 멤버들이 박자를 놓치거나 키를 못잡는 모습이 종종 보였다.[34] 함께 참여한 보컬은 Tipe Johnson. 원곡의 피쳐링은 Gojira.[35] Easy Make, Easy Mark https://youtu.be/iUn1A7wnfT0 [36] The World of Mercy는 10분이 넘어가는 노래로 화제를 몰았다.https://youtu.be/DcNbAQNk7y4 [37] NATIONAL MEDIA BOYS https://youtu.be/8_-i0Hf_iVw [38] 현재 다큐는 비공개 동영상으로 전환된 상태이며 라이브는 이 링크를 통해 확인 할 수 있다. https://youtu.be/zTnQLSK80TQ [39] 구 일본군 컨셉은 말리스 미제르도 선보인적 있고, 욱일기까지 흔들어댔다(N.P.S.N.G.S). 물론 곡은 극우와는 별 상관없고, 이 곡에서 노래하시는 분은 극우를 혐오한다. 무대에서 욱일기까지 흔들었는데, 넷 우익들에게 테러협박까지 받을 정도니 아이러니.[40] 물론 가젯토도 결성 초기 곡에서나 그런 컨셉이 보여졌지 2000년대 중후반에 들어서부터는 그런 색채는 전무하다.[41] 비주얼계를 한창 표방하던 때까지만 해도 뮤직비디오도, 가사도 주제가 명확하지 않은 곡들이 많이 있었다. 덕분에 단순히 그로테스크함을 표현만 하는 알맹이 없는 연출이라고 까이던 때도 있었다.[42] 특히 전쟁 당시의 쇼와 시대 컨셉을 내세운 밴드 중에서는 곡의 메시지와 상관없이 그냥 그 시대의 소품식으로 뮤비에서 쓰는 경우도 있다. 저 뮤직비디오의 내용도 태평양 전쟁의 징집으로 헤어지게 되는 연인의 비극이다. 이런 식의 컨셉의 가장 대표적인 밴드가 스트로베리송 오케스트라(ストロベリーソングオーケストラ). 밴드의 곡과 뮤직비디오 컨셉 자체는 괴담, 공포인데, 그와는 상관없이 멤버들이 제복 위에 완장을 두른다든가 욱일기가 나온다던가 하는 식으로. [43] 일본의 좌익진영에서의 태도가 딱 이렇다. 그냥 한국/중국인들이 싫어하니까라는 이유. 이는 일본이 나치독일에 붙은 가해자라서 입장차이가 있다는 것도 알아야한다. 같은 물건이라도 피해자 입장에서 보는 것은 악몽이나 트라우마 형식이지만, 가해자입장에선 보는 각도가 다르기 때문. 물론 그렇다고 일본의 좌익진영이나 아나키즘진영이 계산적으로 외국에 호의를 보이는 사람들은 아니다. 계산적으로 "어쩔 수 없으니/네들이 그렇게 생각하니 잘못인정할게"식의 태도는 중도우익진영이다. [44] 데뷔 초창기 시절의 사진이다. 탈 비주얼 후와 비교해보면 여러모로 충격적이다.[45] TV를 보던 어린아이가 울음을 터뜨렸다고 한다.[46] 2집 발매 후 방송 출연 정지가 풀려 가끔 방송에 출연하기는 하지만, 거의 발라드곡 연주로 대부분의 본격적인 활동은 공연과 투어활동으로 굳어지게 되었다.[47] 다이가 인터뷰에서 라이브에~와주세요~!를 했었다. [48] 펜타포트 마지막 날 강한 음악을 하던 밴드는 디르 밖에 없었다. 당일의 공연 분위기와 맞지 않아 초반부터 관객들이 많이 빠져나가기도 했다. 라인업과 함께 타임 테이블이 역대 펜타포트 사상 최악이었다는 평이 많으니 이건 어쩔 수 없는 일.[49] 덕분에 그 기다림을 참지 못하고 서브 스테이지의 뜨거운 감자의 공연을 보러간 사람들이 많았다. 결국 뜨거운 감자의 공연은 밴드 사상 유례없는 대성황을 이루었다.[50] 베이시스트인 토시야가 본인의 블로그에 관련 사과글을 올리기도 했다.[51] 그러나 굳이 디르 뿐만이 아니더라도 음향문제에 말이 많았던 밴드는 한두 팀이 아니었다.[52] 한국 공연을 만회하고 싶다는 등 의견을 보이긴 하였으나 일본으로 날아가는 게 더 빠를 듯 하다...[53] 프로듀서였던 요시키의 입김이라는 얘기도 있다. 사실상 그 쪽 뮤직비디오도 잘 보면 과격한 곡의 뮤비는 의외로 잔인성과 싸이코틱함을 내포하고 있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멤버가 어둡고 무서운 분장을 한 상태로 의사 가운을 입고 매드 사이언티스트틱한 연기를 보여준다거나.[54] saku - 고동 - Revelation of Mankind의 3연작 뮤비 시리즈[55] 태양의 벽 PV, 라이브(활동당시)는 제외. 이쪽은 아예 소프트하다못해 순수하다.#[56] 위에도 나와있듯 마릴린 맨슨의 영향. 코안을 세게 긁어서 인위적으로 코피를 나오게 했다.[57] 싱글 激しさとこの胸の中で絡みついた灼熱の闇의 B 사이드 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