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 H. 홈스

 


[image]
영문위키
H. H. Holmes(1860~1896)
실명은 허먼 웹스터 머제트(Herman Webster Mudgett).
1. 소개
2. 유년기의 트라우마
3. 범죄의 계획 및 실행
4. 체포
5. 매체에서의 등장


1. 소개


미국연쇄살인범.

2. 유년기의 트라우마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

마태복음 18장 6절

허먼은 1860년 뉴햄프셔 호수 지방의 길맨턴 아카데미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어느 영국인 이민자 부부가 낳은 자식들 중 셋째였다. 그는 잘생기고 예의바르고 튼튼하고 똑똑해 어른들에게 장래가 기대되는 아이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그의 가정 생활은 결코 행복지 못했다. 아버지는 성경을 독실하게 믿는 사람이었고, 특히 잠언 13장 24절의 '매를 들지 못하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하기 때문이다'란 구절[1]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였다. 아버지는 아들을 매우매우 사랑했고, 아버지는 아들에 대한 사랑을 매우 가혹하고 일상적인 매질을 하는 것으로 표현했다.
허먼 머제트는 그 탓인지 점점 폐쇄적인 성격으로 변했고, 학교에서도 다른 아이들을 기피하고 혼자 지내기를 좋아했다. 어린 시절 내내 친구라고는 그보다 연상인 톰이라는 아이 1명뿐이었는데, 그나마도 톰과 버려진 집에서 같이 놀던 중 톰이 2층에서 발을 잘못 디뎌 떨어져 죽었고, 어린 허먼 머제트는 그 장면을 똑똑히 목격했다.
다른 아이들은 이러한 허먼 머제트의 놀리기 쉬운 폐쇄적이고 특이한 성격 때문에 종종 괴롭히곤 했다. 그 중에서도 특히 그에겐 트라우마인 동시에 그의 인생에 전환점이 된 사건이 있었다. 어느 날 아침에 허만보다 나이 많은 상급생들이 마을 의사가 왕진을 나가 사무실을 비운 사이 허먼을 불러냈다. 그리곤 허먼을 발로 차며 강제로 끌고 들어가선 사무실 구석에 자빠뜨린 뒤, 사무실에 있는 인체 해골을 그에게 밀어 넘어뜨렸다. 온 몸 위에 부서진 해골을 뒤집어쓴 허먼은 비명을 질러댔지만, 소년들은 내버려두고 달아났다.
역설적이게도 이 일을 계기로, 허먼은 평생동안 해부학에 관심을 갖게 됐다. 처음엔 개구리도마뱀이었지만 나중엔 토끼, 고양이, 까지 그 대상이 됐다.

3. 범죄의 계획 및 실행


뉴햄프셔는 명석한 두뇌를 가진 허먼 머제트의 야심을 채우기엔 작은 곳이었다. 그는 버몬트로 가 1년간 대학생활을 한 뒤 미시간 대학교편입학했고, 1884년 꿈에 그리던 의사 면허를 얻었다. 이때부터 그는 꿈꿔오던 완전범죄로 돈벌이를 할 궁리를 했다.
수법은 간단했다. 가공의 인물을 내세워 생명보험을 들고선, 시체 하나를 구해 그 시체가 피보험자라고 우기곤 보험금을 타는 방식이었다. 당연히 그 계획이 성공하려면 시체가 필요했지만, 당시 사회에 쌓이고 넘치던 게 무연고자 시체였기에 구하는 건 별로 어렵지 않았다.
1886년, 허먼 머제트는 시카고로 이사했다. 이 무렵부터 그는 실명 대신 가명인 헨리 하워드 홈스를 썼고, 이후 그의 악명은 실명이 아닌 이 가명으로 떨치게 된다. 어렸을 적엔 상상도 못할 만큼 밝고 쾌활한 성격으로 사람들의 호감을 산 홈스는, 잉글우드 교외의 고급 주택가에서 한 과부 약제사 홀튼의 조수로서 일을 시작했다. 약국은 홀튼의 소유였다.
국내엔 홀튼이 노부인이며, 실종됐다고 알려져 있으나 사실이 아니다. 홀튼은 홈스와 나이 차도 1살 정도밖에 안 되며 실종되지도 않았다. 약국 인수 과정에서 홈스의 뻔뻔한 배째라식 사기에 그녀가 포기했던 것이며, 홈스는 그녀에겐 전혀 손을 대지 않았다. 물론 죽이기 싫어서 놔둔 게 아니라. 일반적으로 생각해 봐도 홀튼이 죽으면 자신이 잡힐 게 뻔했기 때문이다. 과학수사 같은 게 없었던 전근대 및 근대에 용의자를 특정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2] 지인 조사 및 사건 현장 추리였다. 어쨌든 약국을 인수한 이때부터 그는 더 이상 일개 조수가 아니었다. 1887년의 시카고 도시 인명록엔, 잉글우드에 위치한 그 약국의 새 주인은 'H.H. 홈스 박사'라 기록돼 있었다.
[image]
오래지 않아 약국의 매상 덕에, 홈스는 약국 건너편에 새로 멋진 집을 장만했다. 홈스는 자신의 집을 이라고 불렀다. 여기저기서 사기친 것과 자기가 직접 장사해서 번 돈을 합친 것이었다.
겉보기엔 보통의 저택에 불과했지만, '성' 내부엔 100개가 넘는 방들이 비밀 통로와 가짜 벽들로 치밀하게 연결되어 있었고, 환기구에 각종 함정들도 곳곳에 감춰져 있었다. 벽은 석면으로 채워 방음장치를 해놓았으며, 문엔 구멍을 뚫어놓아 홈스가 안전하게 엿볼 수 있게 해놓았다. 게다가 많은 방들에 피해자들을 제거하기 위한 가스 파이프가 연결되어 있었으며, 홈스는 자신의 전용 방에서 가스 파이프가 연결된 방 어디든 맘대로 독가스를 들씌울 수 있게 조절할 수도 있었다. 건물의 2층과 3층엔 지하실로 바로 이어지는 낙하장치도 설치되어 있었고, 지하실엔 홈스의 연구실이 있었다. 이 연구실에는 해부용 탁자와 각종 수술 도구들, 그리고 사람이 들어가기에 충분한 크기의 아궁이가 설치되어 있었다.
홈스는 성으로 이사한 후 얼마 안 돼, '코너'란 이름의 시계 수리공을 첫 손님으로 맞았다. 코너에겐 사랑하는 아내 줄리아와 딸 펄이 있었고, 홈스는 코너가 약국의 한 구석에 시계 점포를 차릴 수 있도록 아량을 베풀었다. 하지만 잘생기고 매력적인 성격의 홈스는 코너의 아내 줄리아를 연인으로 삼아 자신의 아이까지 임신시키고 말았다. 화가 난 코너는 그 즉시 시카고를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나 홈스는 아이를 자신이 직접 낙태시키고, 그 과정에서 줄리아를 죽였다. 아버지인 코너 대신 어머니와 함께 있길 택했던 어린 펄 역시 죽였다.
1893년에 시카고 엑스포가 열리자, 넘쳐나는 관광객들로 도시 내 숙박시설이 턱없이 모자라게 되고, 돈벌이에 재능이 뛰어난 홈스는 이 기회를 살려, 그의 집을 호텔로서 관광객들에게 제공했다. 덕분에 숙소를 찾느라 헤매던 많은 관광객들이 그의 집에 묵었지만, 문제는 보험사기도 슬슬 의심을 받을 시점이 됐고 약국 매상도 무한정 오르진 않는데 욕심은 끝이 없던 홈스가 새로운 돈벌이를 찾아냈다는 점에 있었다. 그것은 바로 관광객들을 죽여 시체를 의과대학 및 병원에 팔고 그 돈으로 부자가 되는 것이었다. 물론 다 죽이면 쉽게 발각되니 살아서 아무것도 모르고 나간 자들도 많았으나 당연히 '''홈스가 죽이기로 작정한 사람들만큼은 두 번 다시 그 집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그리고 이 기간 동안 시카고의 의과대학에선 그에게 정기적으로 많은 시체와 해골을 공급받았고, 대가로 홈스에게 많은 돈을 지급했다. '''대학은 괜찮은 표본을 얻기 무척 어려웠기에, 이런 고마운 공급자에게 별다른 의문을 제기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 3년 동안 계속 사람들이 수십~수백 명씩 실종되자 경찰도 이상하게 여겼고, 그들 중 상당수가 홈스가 숙박하던 호텔에 있었음을 알고 홈스를 용의자로 특정하고 감시하기 시작한다.

4. 체포


몇 년째 시체로 보험사기를 치고 태운 해골을 팔면서 꼬리 1번 안 잡히고 평온하게 삶을 즐기던 그였지만, 결국 공범이었던 벤 피첼을 죽인 일로 체포됐다.[3] 평소처럼 시체로 보험사기를 치려 했지만, 적어도 수십 명이 홈스의 호텔에 방문한 뒤 생사조차 알 수 없게 됐기에 경찰도 조사에 나섰고, 홈스와 공범 피첼을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감시 중이었는데, 벤 피첼 가족이 살해되자 홈스의 짓임을 확신한 경찰이 바로 들이닥친 것. 홈스는 범행이 발각되자마자 바로 구속됐고, 경찰이 그의 호텔 전체를 뜯어 조사한 끝에 몇 년간 감춰졌던 끔찍한 진실이 드러나면서 미국 전체에 큰 충격을 줬다. 많은 유골은 물론, 각종 살인 도구와 시체처리 흔적 등이 공개된 것. 홈스는 그 뒤 재판을 받았고 유죄가 확정돼 신속하게 법정최고형인 사형에 처해졌다.
재판에서 사형이 확정된 사탄[4]은 27건의 살인을 자백하고 인정했지만, 경찰은 '''그가 죽인 사람이 최소 50명은 될 것이라 추정'''했다.[5] 그는 사형당하기 직전에 피해자들의 유족들이 보복할 것을 우려해 자신의 관을 시멘트로 감싸서 10m 깊이의 땅 속에 묻어달라고 요청했으며, 법정에서도 보복 가능성이 우려되긴 했는지 이를 들어줬다. 그리고 1896년 사형 판결이 확정돼 교수형에 처해졌다.[6]
스케일도 크고, '성'이라는 소름끼치는 집 때문인지, 19세기 인물임에도 미국에선 잭 더 리퍼만큼 아직도 회자되는 대표적인 연쇄살인범이다. 보험사기와 시체매매로 마련한 돈은 유죄가 확정된 뒤 당연히 유가족들을 위한 피해 배상에 쓰였지만, 워낙 희생자가 많아서 배상을 제대로 받았는진 알 수 없다.
한편, 홈스가 범행을 저지른 호텔은 1938년에 철거됐으며, 현재 그 자리엔 우체국이 대신 세워졌다. 굳이 정확히 따지면 호텔이 있던 부지는 우체국 옆의 주차장이다.

5. 매체에서의 등장


  • 에릭 라슨의 논픽션 《화이트 시티》에선 H.H. 홈스의 삶과 시카고 박람회의 총감독 대니얼 H.번햄의 삶을 병치시켜가면서, 1893년 당시의 시카고를 잘 보여준다.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으로 영화화될 예정이다. 그리고 2015년 8월 홈스 역을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맡는다는 내용이 보도됐다. 제작에도 참여할 예정이라고 한다. 각본은 영화 헝거 게임: 판엠의 불꽃에도 참여했던 빌리 레이라는 영화인이 맡는다. 영화 제목은 원작과 같은 《The Devil in the White City(화이트 시티)》. 관련 기사
  • 수퍼내추럴》 시즌 2에선 악령으로 등장, 죽어서도 제 버릇을 못 버리고 금발의 젊은 여자들을 골라 감금 및 살해하는 걸 반복하고 있었는데, 조까지 납치하는 등 만행을 계속하다 윈체스터 형제에게 꼬리를 밟히고, 결국 사투 끝에 리타이어한다 여자들을 납치해 감금해뒀던 지하 감옥 천장 테두리에 미리 설치해둔 소금 주머니를 총으로 터뜨려 그대로 영원히 갇히게 만들었다.
  • 셜록》 시즌 4, 2화에서 H.H. 홈스의 모방범이 나온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살인범이라면서 셜록 홈즈에게 먼 친척이냐고 묻는다.
  • 2018년 영국해리 왕자와 결혼한 메건 마클이 홈스의 먼 친척임이 밝혀졌다. 2018년 5월 영국 '채널 4'의 다큐멘터리 에서 밝혀낸 바에 따르면, 홈스의 증증손자(great-great-grandson)는 메건과 팔촌 관계라고 한다. 이 정도면 그냥 생면부지의 남이다. 유교를 중시하는 우리나라에서도 사촌까지만 보고 그 이상은 그냥 남이나 마찬가지인 경우가 많으니.
  • KBS joy차트를 달리는 남자라는 프로그램에서 "사이코패스인가? 소시오패스인가? 최악의 범죄자들(214회, 2020년 12월 12일 방송분)"이라는 주제로 1위에 선정되었다.
  • 히스토리 채널의 다큐멘터리 "American Ripper"에서는 H.H 홈즈의 증손자와 한 CIA 요원이 잭 더 리퍼와 H.H 홈즈의 연관성을 찾아나선다. 총 8화. 끔찍한 장면이 많이 있으니 시청시 주의할 것.
[1] 이는 자식에게 시도 때도 없이 폭력을 퍼부으란 말이 아니라, 잘못했다면 제 자식이라고 감싸지 말고 잘못한 것을 고치도록 가르치라는 말이다. 성경 골로새서엔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지니 낙심할까 하노라 는 말씀도 있다.[2] 사실 20세기가 넘어간 뒤에도 전문적인 과학수사 인력 양성이 제대로 안 돼 범행 현장에 간 형사들이 경험과 감, 추리로 짚어나가는 게 보통인 제3세계 후진국에선 여전히 이 방법이 쓰인다.[3] 당연히 이 과정에서 증거인멸을 위해, 벤 피첼의 세 자녀도 함께 살해했다.[4] 이는 홈스 자신이 법정에서 자칭한 표현이다.[5] 어디까지나 '최소한'이다. 최대 추정치는 자그마치 200명에 달한다.[6] 19세기 말 서양은 이미 재소자에 대한 잔혹한 처형 등에 대해 배격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어 교수형도 고정시설에서 1번에 집행하는 수하식으로 변경된 지 오래였고, 홈스의 교수형도 수하식이라 집행 즉시 바로 죄수가 뇌사상태가 되어 고통이 최소화되도록 되어 있었다. 그러나 사형 집행관이 집행 과정에서 실수하는 바람에 교수대에 결함이 생겨 홈스가 완전히 죽음을 맞이하는데 15분이 걸렸다. 참고로 이때 집행관과 마지막으로 나누었던 대화가 걸작. "홈즈 박사, 준비는 됐나?" "그래, 실수나 하지 말게." 자신의 죄의 무게를 알고 있어 사형집행인이 일부러 시간을 끌면서 고통스럽게 집행하지 않을까 두려워한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