ㆎ
1. 개요
ㆍ와 ㅣ를 합용한 낱자이다. ㆍ를 '아래아'라고 부르듯 ㆎ 역시 단모음화된 'ㅐ'를 넣어 '아래애'라고도 부른다.一字中聲之與ㅣ相合者十,'''ㆎ'''ㅢㅚㅐㅟㅔㆉㅒㆌㅖ是也。
중성 1자와 ㅣ가 합쳐져서 10자를 이루는데, ㆎㅢㅚㅐㅟㅔㆉㅒㆌㅖ가 그것이다.
'''《훈민정음》 중성해(20b)'''
《훈민정음》에서는 중성 1자 뒤에 ㅣ가 결합한 j계 하향이중모음의 10개 예 중 하나로 제시된다.[1] 《훈민정음》의 기본자 순서가 (ㆍ, ㅡ, ㅣ), (ㅗ, ㅏ, ㅜ, ㅓ), (ㅛ, ㅑ, ㅠ, ㅕ)[2] 순이기에 이를 따라 기본자 출신 j계 하향이중모음 중 제일 앞에 나온다.[3]
2. 자형
한글의 기본 자모 구성 요소(천지인)인 ㆍ와 ㅣ가 결합한 글자이기 때문에 문자 형성 방식으로서 다소 문제가 있다(백두현 2014: 57-59).[4] 가령 ㆍ와 ㅣ가 자모 구성요소로서 결합하면 'ㅓ'가 되는데,[5] ㆍ와 ㅣ의 음성이 유지된 상태로 이중모음으로 결합하면 ㆎ가 된다.[6] 특히나 《훈민정음》에서는 'ㅓ' 같은 데에 붙은 ㆍ도 점 모양으로 'ㆎ'라고 쓰기 때문에 모음만 있을 때에는 더욱 구별하기 어렵다. 《훈민정음》에서는 자음 초성과 결합했을 때 'ㅓ'는 초성과 아래아가 좌우로, ㆎ는 초성과 아래아가 상하로 배치되어 자형상으로 구별을 주고 있다.
이 때문에 오늘날까지 이 글자가 쓰였다면 천지인 방식의 핸드폰 자판에서 추가적인 고려가 필요했을 것이다.
ㆍ와 ㅡ가 합쳐진 이중모음이 있었다면 'ㅗ'와 혼동되는 유사한 문제가 발생했을 수 있으나 이러한 이중모음은 《훈민정음》을 비롯한 옛 문헌에 일절 나타나지 않는다.[7]
2.1. 함초롬체에서
함초롬돋움에서 ㆎ는 구현이 좀 어색하게 되어 있다. 우선 ㆍ가 너무 작게 나와서 위에서 알 수 있듯ㅣ만 쓴 것과 별 차이가 없다.
그리고 위치에도 문제가 있는데, 자모를 음절 단위로 모아 쓸 때 ㆍ는 ㅡ, ㅗ, ㅜ, ㅛ, ㅠ와 마찬가지로 초성 '''밑'''에 쓰는 글자이고[8] , 여기에 딴이(ㅣ)가 붙은 글자가 ㆎ이니, 'ᄀᆡ'와 같은 경우 ㄱ이 ㆍ 위에 얹혀 있는 모양에 ㅣ가 붙은 자형이어야 한다(왼쪽 그림). 그런데 함초롬체로 'ᄀᆡ'를 쓰면 ㄱ이 마치 '기, 가, 거, 갸, 겨'에서처럼 모음 왼쪽에 놓인 자형으로 나온다. 즉 ㄱ이 ㆍ를 감싸지 못한다(오른쪽 그림).
3. 발음
ㅐ나 ㅔ가 이중모음으로 발음되던 15세기에도 존재했으므로 당대에는 [ᄋᆞㅣ]로 발음했을 것이다.[9] 대략적으로 오늘날의 '어ㅣ'와 유사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ㅐ와 ㅔ가 오늘날의 [ɛ], [e]로 전설음으로 단모음화된 즈음에 이 낱자 역시 단모음화되었을 듯하다. 다만 근대 시기에 ㆍ의 음은 이미 'ㅏ'나 'ㅡ'로 합쳐져 본래의 음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이 되었으므로 비슷한 혼란이 ㆎ에서도 일어나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인지 전설음화된 ㆎ의 음성은 정확히 어디에 대응되었을지 잘 알려져있지 않다. 전설음화되기 전에 전혀 다른 발음인 'ㅓ'와 'ㅏ'가 'ㅔ'와 'ㅐ'에서 [ɛ\]~[e\]의 혼동을 겪는 것을 보면[10] 전설음화되기 전부터 음이 모호한 ㆍ의 전설음화된 발음 ㆎ는 [ɛ]~[e] 언저리를 맴돌았을 가능성이 있다.[11]
4. 용례
15세기에 주로 등장하는 것은 'ᄋᆡ'의 꼴로, 특이처격이나 속격을 나타냈던 '의'의 양성모음 교체형이다. 일반처격 '에'가 '애'와 교체했다면 '의'는 'ᄋᆡ'와 교체한 것이다.
비슷한 시대에 연결어미 '-ㄹᄊᆡ'도 등장한다.[12] 기원적으로 '-ㄹ ᄉᆞ(의존명사)ᄋᆡ(조사)' 구성에서 왔을 것으로 추측되나 15세기에 관형형 '-ㄹ'의 형태소 분석 표기인 '-ㅭ' 식으로 '-ㅭᄉᆡ'로 표기되지 않기 때문에 15세기에 이미 문법화되었다고 본다.
'마두' vs '마디', '나부' vs '나비'처럼 방언과 중앙어에서 /ㅜ/ vs /ㅣ/의 대립을 보이는 것들이 있는데 이들의 고형에서 'ㆎ'가 발견되곤 한다. 'ㆎ'가 어떻게 'ㅜ'까지 갈 수 있었는가에 대해서는 최림식(1997)[14] 을 참고할 수 있다.
5. 오늘날
아래아와 마찬가지로 음은 불분명해도 표기상으로는 20세기까지 매우 널리 쓰였다. 개화기의 소설을 보면#[15] 첫 줄부터 바로 나올 정도이다. 이 시기 모음 중에서 현대 한글에 속하지 않는 글자는 거의 ㆍ, ㆎ뿐이다.
아래아가 20세기에 명문화된 규정으로서 폐지가 이루어졌고 ㆎ 역시 이 수순에 따라 다른 글자로 표기가 수정되었다. 아래아가 보통 'ㅏ'로 많이 전환된 만큼 ㆎ 역시 'ㅐ'로 간 것이 제일 일반적이다(대한ᄆᆡ일신보 등). 위의 소설을 봐도 오늘날 'ㅐ'로 적는 것들을 'ㆎ'로 적은 예가 많다.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서도 그냥 일괄적으로 'ㅐ'로 고쳐서 제공할 정도.[16][17] 그런데 ㆍ가 'ㅏ'와 'ㅡ'로 주로 변한 것과는 달리 ㆎ는 ㅢ로는 거의 변하지 않았다.
간혹 의존명사 'ᄃᆡ→데', 연결어미 '-오ᄃᆡ→-으되'와[18] 같이 독자적으로 변한 예도 있다.
6. 인코딩
호환용 자모로도 실려있다. Noto Sans CJK 폰트 기준으로 대부분 초중종성용과 홑자모용의 생김새가 거의 똑같은데(ᆄ/ㆇ) 이 글자는 ᆡ(중성용)과 ㆎ(홑자모용)이 사뭇 다르게 생겼다. 앞서 자형 문단에서 언급한 'ㅓ'와의 혼동을 고려했는지 ㆍ가 훨씬 더 밑에 위치해있다.
7. 기타
ㆍ와 ㅣ의 순서가 바뀌어 ㅣㆍ로 되면 ᆝ가 된다. 순서가 바뀌었으니 j계 상향이중모음인데 ㅑㅕㅛㅠ 식으로 재출 방식으로 만들어지지 않은 것이 특이하며,[19] 그래서인지 《훈민정음》에서도 합자해에서 여담 비슷하게 언급하고 있다. 자세한 것은 문서 참고.
ᅟᆜ 문서에서도 보듯 ㆍ는 과거 발음이 이중모음 'ᅟᆜ'이었을 것이라는 주장까지 나올 정도였는데,[20] 만약 그 가설이 맞았다면 15세기의 ㆎ는 ㅣㅡㅣ 3중 연쇄라는 다소 희한한 발음이었을 것이다.
[1] 중성 기본자는 아래에서 보듯 천지인 삼재(三才) + 직접 파생자 8성으로 11자이나 ㅣ에는 ㅣ가 또 붙은 ퟄ 같은 것은 상정하지 않아 1개 더 적다.[2] ㆍ, ㅡ, ㅣ로부터 직접 파생된 ㅗ, ㅏ, ㅜ, ㅓ, ㅛ, ㅑ, ㅠ, ㅕ를 《훈민정음》에서는 "8성"(八聲)으로 묶어 부른다.[3] 중성해에서 나오는 합용자 중에서 제일 처음 나오는 것은 아니다. 구축-구장 순으로 합용된 'ㅘ, ㆇ, ㅝ, ㆊ'가 먼저 소개된 후 'ㆎ'를 필두로 한 j계 하향이중모음이 제시되기 때문이다. 이후 구축-구장식 합용자에도 j계 하향이중모음인 'ㅙ, ㅞ, ㆈ, ㆋ'를 소개하므로 이러한 순서가 타당하기는 하다.[4] 백두현(2014), 훈민정음 해례의 제자론(制字論)에 대한 비판적 고찰. 어문학, 123, 39-66.[5] 사실 'ㅜ, ㅓ' 같은 음성모음은 《훈민정음》 내에서도 "ㅡ와 소리가 유사하지만 구축(口蹙)/구장(口張)이다"ㅜ與ㅡ同而口蹙, ㅓ與ㅡ同而口張라고 언급하고 있어 자형상 ㅡ가 들어갔으면 들어갔지 ㆍ가 들어가야 할 이유가 별로 없다. 그럼에도 ㆍ를 넣어서 글자를 만든 이유는 아마 '크기가 작은 점 모양이라서 여기저기 배치하기 편리하다'라는 디자인상의 이유가 컸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훈민정음》에서는 "ㆍ = 하늘 = 양(陽)으로서 양이 음(陰)까지 모두 거느리기 때문이다"ㆍ之貫於八聲者,猶陽之統隂而周流萬物也/ 呑(ㆍ)之為字貫八聲維天之用徧流行 <결>라고 해명(?)하고 있다. 즉 'ㅜ, ㅓ'는 사실 음을 뜻하는 ㅡ를 기초로 제자해야 맞지만 양이 음을 포괄할 수 있으므로 양에 해당하는 ㆍ로 제자하겠다는 뜻이다.[6] ᆟ 같은 경우 자형상으로도 ㅓ에 ㆍ가 문자 구성요소로서 또 결합한(재출) 방식은 'ㅕ'로 아래아가 상하로 나란히 적히기 때문에 이중모음으로 결합한 ᆟ와 구별이 된다.[7] 사실 ㅣ가 뒤따르는 경우만 특히 많은 것이기는 하다. 《훈민정음》에서는 j계 하향이중모음으로서 ㅣ가 뒤따르는 것만 이렇게 많은 이유에 대해서 "ㅣ가 깊음/얕음[深淺\]/열림/닫힘[闔闢\]에 무관하게 잘 결합할 수 있는 것은 ㅣ에서 혀가 펴지고 소리가 얕아서 입을 열기 편해서이다."ㅣ於深淺闔闢之聲,並能相隨者,以其舌展聲淺而便於開口也。라고 설명하고 있다. 철학적으로는 (ㅣ가 사람에 해당되므로) "사람이 모든 자연물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亦可見人之參贊開物而無所不通也。라고 덧붙였다. 그런데 그런 설명이 무색하게 현대 한국어에서는 j계 하향이중모음이 'ㅢ' 외엔 남아있지 않으며 그마저도 발음이 붕괴되고 있다. [8] ㅣ, ㅏ, ㅓ, ㅑ, ㅕ는 초성 오른쪽에 쓴다.[9] 《훈민정음》에는 두 글자가 합쳐져있으면서 단일한 음소로 읽는 다중문자류의 모음자가 존재하지 않는다. 반대로 두 음소이지만 한 글자로 합쳐져있는 'ㅕ, ㅑ, ㅠ, ㅛ' 같은 것은 있었다.[10] ㅔ와 ㅐ의 구별이 무너지는 것은 오늘날에 특히 두드러지는 현상이지만, 전설음화가 막 일어난 참인 18세기에도 간혹 표기 오류가 나타난다. '어ㅣ', '아ㅣ'로 발음하던 것에 비하자면 '에'와 '애'는 분명 비슷한 발음이기 때문이다.[11] 우리말샘 '내리다' 표제어에서는 19세기에 ('내리다'에서) 등장하는 'ㆎ'가 'ㅐ'와 음이 같다고 기술하고 있다.#[12] 나랏〮말〯ᄊᆞ미〮 中듀ᇰ國귁〮에〮달아〮 文문字ᄍᆞᆼ〮와〮로〮서르ᄉᆞᄆᆞᆺ디〮아니〮ᄒᆞᆯᄊᆡ〮 (《훈민정음》 언해)[13] "시간"을 나타내는 '때'는 'ᄣᅢ'로 이미 'ㅐ'였다.[14] 최림식(1997), 체언 어간말 모음 'ㆎ'의 방언 분화. 어문학, 315-338.[15] 1908년 이해조가 번안한 "철세계"라는 소설이다.[16] # '매일일쳔삼백여석'에서 '백'은 원문에서 'ᄇᆡᆨ'이다.[17] (ㆍ → ㅏ) (ㆎ → ㅐ) (ㅅ계 합용병서 → 각자병서) 식의 변환이 이루어진다. 이는 옛한글을 지원하지 않는 데이터베이스를 위한 변환일 뿐, 각 단어들의 오늘날 후계형식으로 변환하는 것은 아니다.[18] '-(으)되'의 '-으-'는 오늘날에는 여타 매개모음과 동일하게 처리하지만 다른 매개모음과는 기원이 다르다. 실제로도 모든 받침 용언 뒤가 아니라 '-었, 겠-', '있다', '없다' 뒤에만 나타나 결합 조건이 다르다.[19] 그래서 18세기에 재출 방식을 적용한 ᆢ가 새로 창제되었다.[20] 지석영이 그러한 가설을 바탕으로 신정국문을 발표했으며 주시경 역시 초기에 그 가설을 지지하였다. 지석영도 아마 주시경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