ㆎ

 



1. 개요
2. 자형
2.1. 함초롬체에서
3. 발음
4. 용례
5. 오늘날
6. 인코딩
7. 기타


1. 개요


一字中聲之與ㅣ相合者十,'''ㆎ'''ㅢㅚㅐㅟㅔㆉㅒㆌㅖ是也。

중성 1자와 ㅣ가 합쳐져서 10자를 이루는데, ㆎㅢㅚㅐㅟㅔㆉㅒㆌㅖ가 그것이다.

'''《훈민정음》 중성해(20b)'''

ㆍ와 ㅣ를 합용한 낱자이다. ㆍ를 '아래아'라고 부르듯 ㆎ 역시 단모음화된 'ㅐ'를 넣어 '아래애'라고도 부른다.
《훈민정음》에서는 중성 1자 뒤에 ㅣ가 결합한 j계 하향이중모음의 10개 예 중 하나로 제시된다.[1] 《훈민정음》의 기본자 순서가 (ㆍ, ㅡ, ㅣ), (ㅗ, ㅏ, ㅜ, ㅓ), (ㅛ, ㅑ, ㅠ, ㅕ)[2] 순이기에 이를 따라 기본자 출신 j계 하향이중모음 중 제일 앞에 나온다.[3]

2. 자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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ㅓ
ㆎ
한글의 기본 자모 구성 요소(천지인)인 ㆍ와 ㅣ가 결합한 글자이기 때문에 문자 형성 방식으로서 다소 문제가 있다(백두현 2014: 57-59).[4] 가령 ㆍ와 ㅣ가 자모 구성요소로서 결합하면 'ㅓ'가 되는데,[5] ㆍ와 ㅣ의 음성이 유지된 상태로 이중모음으로 결합하면 ㆎ가 된다.[6] 특히나 《훈민정음》에서는 'ㅓ' 같은 데에 붙은 ㆍ도 점 모양으로 'ㆎ'라고 쓰기 때문에 모음만 있을 때에는 더욱 구별하기 어렵다. 《훈민정음》에서는 자음 초성과 결합했을 때 'ㅓ'는 초성과 아래아가 좌우로, ㆎ는 초성과 아래아가 상하로 배치되어 자형상으로 구별을 주고 있다.
이 때문에 오늘날까지 이 글자가 쓰였다면 천지인 방식의 핸드폰 자판에서 추가적인 고려가 필요했을 것이다.
ㆍ와 ㅡ가 합쳐진 이중모음이 있었다면 'ㅗ'와 혼동되는 유사한 문제가 발생했을 수 있으나 이러한 이중모음은 《훈민정음》을 비롯한 옛 문헌에 일절 나타나지 않는다.[7]

2.1. 함초롬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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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초롬돋움에서 ㆎ는 구현이 좀 어색하게 되어 있다. 우선 ㆍ가 너무 작게 나와서 위에서 알 수 있듯ㅣ만 쓴 것과 별 차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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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위치에도 문제가 있는데, 자모를 음절 단위로 모아 쓸 때 ㆍ는 ㅡ, ㅗ, ㅜ, ㅛ, ㅠ와 마찬가지로 초성 '''밑'''에 쓰는 글자이고[8], 여기에 딴이(ㅣ)가 붙은 글자가 ㆎ이니, 'ᄀᆡ'와 같은 경우 ㄱ이 ㆍ 위에 얹혀 있는 모양에 ㅣ가 붙은 자형이어야 한다(왼쪽 그림). 그런데 함초롬체로 'ᄀᆡ'를 쓰면 ㄱ이 마치 '기, 가, 거, 갸, 겨'에서처럼 모음 왼쪽에 놓인 자형으로 나온다. 즉 ㄱ이 ㆍ를 감싸지 못한다(오른쪽 그림).

3. 발음


ㅐ나 ㅔ가 이중모음으로 발음되던 15세기에도 존재했으므로 당대에는 [ᄋᆞㅣ]로 발음했을 것이다.[9] 대략적으로 오늘날의 '어ㅣ'와 유사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ㅐ와 ㅔ가 오늘날의 [ɛ], [e]로 전설음으로 단모음화된 즈음에 이 낱자 역시 단모음화되었을 듯하다. 다만 근대 시기에 ㆍ의 음은 이미 'ㅏ'나 'ㅡ'로 합쳐져 본래의 음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이 되었으므로 비슷한 혼란이 ㆎ에서도 일어나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인지 전설음화된 ㆎ의 음성은 정확히 어디에 대응되었을지 잘 알려져있지 않다. 전설음화되기 전에 전혀 다른 발음인 'ㅓ'와 'ㅏ'가 'ㅔ'와 'ㅐ'에서 [ɛ\]~[e\]의 혼동을 겪는 것을 보면[10] 전설음화되기 전부터 음이 모호한 ㆍ의 전설음화된 발음 ㆎ는 [ɛ]~[e] 언저리를 맴돌았을 가능성이 있다.[11]

4. 용례


15세기에 주로 등장하는 것은 'ᄋᆡ'의 꼴로, 특이처격이나 속격을 나타냈던 '의'의 양성모음 교체형이다. 일반처격 '에'가 '애'와 교체했다면 '의'는 'ᄋᆡ'와 교체한 것이다.
비슷한 시대에 연결어미 '-ㄹᄊᆡ'도 등장한다.[12] 기원적으로 '-ㄹ ᄉᆞ(의존명사)ᄋᆡ(조사)' 구성에서 왔을 것으로 추측되나 15세기에 관형형 '-ㄹ'의 형태소 분석 표기인 '-ㅭ' 식으로 '-ㅭᄉᆡ'로 표기되지 않기 때문에 15세기에 이미 문법화되었다고 본다.
  • ᄠᆡ: 몸에서 나오는 때의 옛말.[13]
  • 갈ᄃᆡ
  • 말ᄆᆡ삼다: 말미암다.
  • -으ᄆᆡ: -으매
'마두' vs '마디', '나부' vs '나비'처럼 방언과 중앙어에서 /ㅜ/ vs /ㅣ/의 대립을 보이는 것들이 있는데 이들의 고형에서 'ㆎ'가 발견되곤 한다. 'ㆎ'가 어떻게 'ㅜ'까지 갈 수 있었는가에 대해서는 최림식(1997)[14]을 참고할 수 있다.

5. 오늘날


아래아와 마찬가지로 음은 불분명해도 표기상으로는 20세기까지 매우 널리 쓰였다. 개화기의 소설을 보면#[15] 첫 줄부터 바로 나올 정도이다. 이 시기 모음 중에서 현대 한글에 속하지 않는 글자는 거의 ㆍ, ㆎ뿐이다.
아래아가 20세기에 명문화된 규정으로서 폐지가 이루어졌고 ㆎ 역시 이 수순에 따라 다른 글자로 표기가 수정되었다. 아래아가 보통 'ㅏ'로 많이 전환된 만큼 ㆎ 역시 'ㅐ'로 간 것이 제일 일반적이다(대한ᄆᆡ일신보 등). 위의 소설을 봐도 오늘날 'ㅐ'로 적는 것들을 'ㆎ'로 적은 예가 많다.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서도 그냥 일괄적으로 'ㅐ'로 고쳐서 제공할 정도.[16][17] 그런데 ㆍ가 'ㅏ'와 'ㅡ'로 주로 변한 것과는 달리 ㆎ는 ㅢ로는 거의 변하지 않았다.
간혹 의존명사 'ᄃᆡ→데', 연결어미 '-오ᄃᆡ→-으되'와[18] 같이 독자적으로 변한 예도 있다.

6. 인코딩


종류
글자
유니코드
HTML
한글 호환 자모 영역
ㆎ
U+318E
ㆎ
한글 자모 영역
ᅟᆡ
U+11A1
ᆡ
한양 사용자 정의 영역

U+F863

호환용 자모로도 실려있다. Noto Sans CJK 폰트 기준으로 대부분 초중종성용과 홑자모용의 생김새가 거의 똑같은데(ᆄ/ㆇ) 이 글자는 ᆡ(중성용)과 ㆎ(홑자모용)이 사뭇 다르게 생겼다. 앞서 자형 문단에서 언급한 'ㅓ'와의 혼동을 고려했는지 ㆍ가 훨씬 더 밑에 위치해있다.

7. 기타


ㆍ와 ㅣ의 순서가 바뀌어 ㅣㆍ로 되면 ᆝ가 된다. 순서가 바뀌었으니 j계 상향이중모음인데 ㅑㅕㅛㅠ 식으로 재출 방식으로 만들어지지 않은 것이 특이하며,[19] 그래서인지 《훈민정음》에서도 합자해에서 여담 비슷하게 언급하고 있다. 자세한 것은 문서 참고.
ᅟᆜ 문서에서도 보듯 ㆍ는 과거 발음이 이중모음 'ᅟᆜ'이었을 것이라는 주장까지 나올 정도였는데,[20] 만약 그 가설이 맞았다면 15세기의 ㆎ는 ㅣㅡㅣ 3중 연쇄라는 다소 희한한 발음이었을 것이다.

[1] 중성 기본자는 아래에서 보듯 천지인 삼재(三才) + 직접 파생자 8성으로 11자이나 ㅣ에는 ㅣ가 또 붙은 ퟄ 같은 것은 상정하지 않아 1개 더 적다.[2] ㆍ, ㅡ, ㅣ로부터 직접 파생된 ㅗ, ㅏ, ㅜ, ㅓ, ㅛ, ㅑ, ㅠ, ㅕ를 《훈민정음》에서는 "8성"(八聲)으로 묶어 부른다.[3] 중성해에서 나오는 합용자 중에서 제일 처음 나오는 것은 아니다. 구축-구장 순으로 합용된 'ㅘ, ㆇ, ㅝ, ㆊ'가 먼저 소개된 후 'ㆎ'를 필두로 한 j계 하향이중모음이 제시되기 때문이다. 이후 구축-구장식 합용자에도 j계 하향이중모음인 'ㅙ, ㅞ, ㆈ, ㆋ'를 소개하므로 이러한 순서가 타당하기는 하다.[4] 백두현(2014), 훈민정음 해례의 제자론(制字論)에 대한 비판적 고찰. 어문학, 123, 39-66.[5] 사실 'ㅜ, ㅓ' 같은 음성모음은 《훈민정음》 내에서도 "ㅡ와 소리가 유사하지만 구축(口蹙)/구장(口張)이다"ㅜ與ㅡ同而口蹙, ㅓ與ㅡ同而口張라고 언급하고 있어 자형상 ㅡ가 들어갔으면 들어갔지 ㆍ가 들어가야 할 이유가 별로 없다. 그럼에도 ㆍ를 넣어서 글자를 만든 이유는 아마 '크기가 작은 점 모양이라서 여기저기 배치하기 편리하다'라는 디자인상의 이유가 컸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훈민정음》에서는 "ㆍ = 하늘 = 양(陽)으로서 양이 음(陰)까지 모두 거느리기 때문이다"ㆍ之貫於八聲者,猶陽之統隂而周流萬物也/ 呑(ㆍ)之為字貫八聲維天之用徧流行 <결>라고 해명(?)하고 있다. 즉 'ㅜ, ㅓ'는 사실 음을 뜻하는 ㅡ를 기초로 제자해야 맞지만 양이 음을 포괄할 수 있으므로 양에 해당하는 ㆍ로 제자하겠다는 뜻이다.[6] ᆟ 같은 경우 자형상으로도 ㅓ에 ㆍ가 문자 구성요소로서 또 결합한(재출) 방식은 'ㅕ'로 아래아가 상하로 나란히 적히기 때문에 이중모음으로 결합한 ᆟ와 구별이 된다.[7] 사실 ㅣ가 뒤따르는 경우만 특히 많은 것이기는 하다. 《훈민정음》에서는 j계 하향이중모음으로서 ㅣ가 뒤따르는 것만 이렇게 많은 이유에 대해서 "ㅣ가 깊음/얕음[深淺\]/열림/닫힘[闔闢\]에 무관하게 잘 결합할 수 있는 것은 ㅣ에서 혀가 펴지고 소리가 얕아서 입을 열기 편해서이다."ㅣ於深淺闔闢之聲,並能相隨者,以其舌展聲淺而便於開口也。라고 설명하고 있다. 철학적으로는 (ㅣ가 사람에 해당되므로) "사람이 모든 자연물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亦可見人之參贊開物而無所不通也。라고 덧붙였다. 그런데 그런 설명이 무색하게 현대 한국어에서는 j계 하향이중모음이 'ㅢ' 외엔 남아있지 않으며 그마저도 발음이 붕괴되고 있다. [8] ㅣ, ㅏ, ㅓ, ㅑ, ㅕ는 초성 오른쪽에 쓴다.[9] 《훈민정음》에는 두 글자가 합쳐져있으면서 단일한 음소로 읽는 다중문자류의 모음자가 존재하지 않는다. 반대로 두 음소이지만 한 글자로 합쳐져있는 'ㅕ, ㅑ, ㅠ, ㅛ' 같은 것은 있었다.[10] ㅔ와 ㅐ의 구별이 무너지는 것은 오늘날에 특히 두드러지는 현상이지만, 전설음화가 막 일어난 참인 18세기에도 간혹 표기 오류가 나타난다. '어ㅣ', '아ㅣ'로 발음하던 것에 비하자면 '에'와 '애'는 분명 비슷한 발음이기 때문이다.[11] 우리말샘 '내리다' 표제어에서는 19세기에 ('내리다'에서) 등장하는 'ㆎ'가 'ㅐ'와 음이 같다고 기술하고 있다.#[12] 나랏〮말〯ᄊᆞ미〮 中듀ᇰ國귁〮에〮달아〮 文문字ᄍᆞᆼ〮와〮로〮서르ᄉᆞᄆᆞᆺ디〮아니〮ᄒᆞᆯᄊᆡ〮 (《훈민정음》 언해)[13] "시간"을 나타내는 '때'는 'ᄣᅢ'로 이미 'ㅐ'였다.[14] 최림식(1997), 체언 어간말 모음 'ㆎ'의 방언 분화. 어문학, 315-338.[15] 1908년 이해조가 번안한 "철세계"라는 소설이다.[16] # '매일일쳔삼백여석'에서 '백'은 원문에서 'ᄇᆡᆨ'이다.[17] (ㆍ → ㅏ) (ㆎ → ㅐ) (ㅅ계 합용병서 → 각자병서) 식의 변환이 이루어진다. 이는 옛한글을 지원하지 않는 데이터베이스를 위한 변환일 뿐, 각 단어들의 오늘날 후계형식으로 변환하는 것은 아니다.[18] '-(으)되'의 '-으-'는 오늘날에는 여타 매개모음과 동일하게 처리하지만 다른 매개모음과는 기원이 다르다. 실제로도 모든 받침 용언 뒤가 아니라 '-었, 겠-', '있다', '없다' 뒤에만 나타나 결합 조건이 다르다.[19] 그래서 18세기에 재출 방식을 적용한 ᆢ가 새로 창제되었다.[20] 지석영이 그러한 가설을 바탕으로 신정국문을 발표했으며 주시경 역시 초기에 그 가설을 지지하였다. 지석영도 아마 주시경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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