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개요
2. 아래아라는 명칭
3. 발음 추정
4. 소멸
5. 제주어에서
7. 입력법
8. 오늘날의 쓰임
9. 기타
10. 아래아가 포함된 모음
11. 기타


1. 개요


ㆍ는 한글에서 모음을 이루는 3개의 글자 구성요소( ㆍ, ㅡ, ㅣ, "천지인") 중 하나이자 단독으로는 한국어의 단모음을 나타내던 글자이다.
한글이 창제되던 15세기에는 단모음 체계의 뚜렷한 구성 모음으로서 위치가 확고하여 훈민정음에서 창제 원리 풀이에서도 핵심적으로 언급되었으나 16세기, 18세기 두 차례에 걸쳐 음가가 소실되었다. 이후에도 표기상으로 남아있다가 20세기에 폐지되어 대다수 'ㅏ'나 'ㅡ'로 표기가 전환되었다. 오늘날에는 제주어의 모음 표기에만 쓰이고 있다.

2. 아래아라는 명칭


정확한 연원이 연구된 바가 없다. 다만 두 가지 추측이 있는데, 첫째는 한글 반절표에서 ㆍ행이 제일 아래쪽에 위치해서 '아래아'가 되었다는 추측이며, 둘째는 ㅏ가 초성의 오른쪽에 붙는 것에 반해 ㆍ는 초성의 아래쪽에 붙으므로 '아래아'가 되었다는 추측이다.
이 아래아에 맞대응하여 그냥 ㅏ는 '윗아'라고 부르는 때가 있다.

3. 발음 추정


''''''
이름
아래아
분류
단모음
음성
중세
ʌ? ɔ?
추정치는 현대 국어의 '' 소리라는 설이 그나마 유력하다. 중세 한국어에서 아래아를 어떻게 읽었을까는 아직 적실한 증거가 없기에 이에 대한 토론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그래도 어느 정도 추정은 된 상태이다. 훈민정음에서는 혀가 오그라진 정도를 제1기준으로 두고 모음을 설명하고 있는데 아래아는 '''혀가 오그라져 그 소리가 깊다'''(舌縮而聲深)고 언급하고 있다. ㆍ가 舌縮, ㅡ가 舌小縮, ㅣ가 舌不縮 식이다. 아래아는 모음들 중 혀가 가장 깊게 뒤로 당겨진 소리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아래아를 기준으로 ㅏ와 ㅗ는 아래아에서 구장/구축(口張/口蹙)[1]이라고 설명하고 있어 참고할 필요가 있다. 즉 아래아는 ㅏ, ㅗ와 비슷한 음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A]
이상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image]
이 설명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재구성이 존재하는데, 몇가지만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image]
훈민정음의 구분을 대각선으로 이해한 것이다. 구축을 단순히 원순/평순모음 구분이 아니라 실제 조음위치를 다르게 재구하였다.
[image]
훈민정음의 구분을 가장 직관적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현대 국어 모음과 상당히 달라 괴리감이 들 수도 있다. 중고음의 /i/가 치두음 뒤에 오면 한국한자음에서 아래아로 변하는 것을 쉽게 설명할 수 있다[2]. /ɤ/는 조음위치가 /ɣ/와 가깝기 때문에 아래아가 모음 앞에서 ㄱ으로 변하는 현상도 설명할 수 있다.
[image]
첫번째 예와 비슷하게 훈민정음의 구분을 대각선으로 이해한 것이나, 구축을 원/평순모음 구분으로 재구하였다.
[image]
훈민정음의 구분을 위아래로 이해한 것이다. 빨간색이 양성 모음, 파란색이 음성 모음, 녹색 선은 음양 대립, 검은색은 중성 모음이다. 위의 국제음성기호 표기는 모두 정확한 표기가 아니라 대략적인 표기임에 유의.
종합하면 중세 국어의 /ㆍ/는 현대 국어의 /ㅓ/[ʌ]와 비슷한 음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반면 중세 국어의 /ㅓ/는 [ʌ]보다 혀가 덜 오그라지는 [ə]였다고 추측된다. 한마디로 아래아의 음가가 /ㅓ/로 옮겨간 것이다.
이처럼 특정 모음이 이동/소실되면서 다른 모음이 이동하고 그것으로 인해 또 다른 모음이 영향을 받는 것을 '모음추이'라고 한다.# 해당 글에서는 ㆍ의 음가에 대해 15세기 이전부터 있었던 더 복잡한 사정을 확인할 수 있다.

4. 소멸


16세기 이후 ㆍ의 고유 음가가 희미해지면서, 중세 한국어에서 아래아가 어두에 붙어 있던 단어는 ㅏ, 초성 이외 어중 어미에 붙어있던 단어는 ㅡ 나 ㅜ 등 으로 음이 흡수되었다. 정확히는 16세기 이후 1차 음가 소실이 일어나 어두가 아닌 부분의 ㆍ는 모두 ㅡ 나 ㅜ 로 바뀌었고, 18세기경 2차 음가 소실이 일어나 어두의 ㆍ가 ㅏ로 바뀌었다. 한 예로 현재의 "가르치다"는 중세국어로는 "ᄀᆞᄅᆞ치다" 였으나 16세기 이후에는 "ᄀᆞ르치다"로, 18세기에는 "가르치다"로 바뀌었다. 18세기 이후로는 구어로서 고유 음가를 잃긴 했어도, 문어로서는 여전히 계속해서 아래아가 쓰였다.
1912년 조선총독부에서 "보통학교용 언문철자법"을 발표하면서, 고유어의 아래아는 공식적인 표기상으로도 폐지되었다. 한자어의 아래아는 그대로 남았다. 조선총독부 마음대로 아래아를 폐지한 것은 아니고 당대에 주시경을 비롯하여 아래아를 폐지하자는 주장이 있었다. 단, 대한제국 최후의 맞춤법 관련 논의였던 국문연구의정안(맞춤법/역사)에서는 아래아 폐지라는 결론에까지 이르진 못하였다. 1933년 조선어학회가 "한글 맞춤법 통일안"에서 한자어의 아래아도 표기상으로 폐지하면서, 아래아는 한국어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15세기에 철저히 지켜졌던 모음조화 규칙 속에서 양성모음 ㆍ는 와 쌍을 이루었다. 그러나 ㆍ가 사라지면서 음성모음 ㅡ는 자기 쌍이 사라져버렸고 이는 모음조화가 동요되어 가는 데 일조하였다.

5. 제주어에서


제주어에는 [ɒ][3]라는 또다른 형태로 아래아 발음이 남아 있다고 한다. 이 발음은 '''ㅏ보다 혀를 좀 더 아래로 낮추고, 그 상태에서 뒤로 끌어당긴 다음, 입술을 약간 둥글게 해서''' 발음하는 후설 원순 저모음이지만 표준어와 가장 이질적인 방언이다. 중세 국어의 /ㅓ/[ə]가 현대 국어의 /ㅓ/[ʌ]로 저설화된 것을 감안하면, /ㆍ/ 역시 [ʌ]에서 [ɒ]로 저설화되었다고 유추 가능하다. "[ə]>[ʌ]"와는 달리 "[ʌ]>[ɒ]"에서는 평순 모음이 원순 모음화되었다는 점이 특이하다.
사람에 따라 아래아를 후설 원순 중저모음인 [ɔ]로 발음하는 경우도 있다. 젊은 세대의 경우 같은 원순 모음이되 표준어의 /ㅗ/[o]와 비슷하게 발음하기도 한다. 애초에 방언은 규범화되어 있지 않아 음이 표준어만큼 고정되어 있지 않다.[4] 경우에 따라 몇몇 제주도민들은 /ㆍ/를 평순모음 [ʌ]으로 발음하는 경우도 볼 수 있는데, 실례로 "어, 그래"를 의미하는 "ᄋᆞ, 기여"에서 아래아를 원순모음 [ɒ]가 아니라, 조선 초기 발음인 평순모음 [ʌ](ㅓ)로 발음한다. 이처럼 아래아 발음이 불분명해지는 현상은 제주어 자체의 소멸과도 무관치 않다.
그 외에 제주도 지명 중 아래아가 남아 있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제주도의 음식 중 '''ᄆᆞᆷ국'''이 있다. 이곳에서는 몸국으로 문서가 생성되어있다. 이처럼 온라인 등에서는 아래아를 쓰기가 곤란한 연유로 ㅗ로 대신해서 쓰는 경우가 많다.
제주도 외에도 많은 지역 방언에 '''ㆍ'''의 후대형이면서 현대 한글의 모음으로 표기할 수 없는 발음이 남아있다.[5]

6. 로마자 표기?


현행 한글 맞춤법에 사용하지 않는 글자이기 때문에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에는 이 글자를 어떻게 표기한다는 규정은 나와 있지 않다. 단 예일 표기법을 기반으로 중세 국어를 표기할 때 ㆍ는 o로, ㅗ는 wo로 표기한다. ㅜ(u)와 ㅡ(eu)의 관계, ㅗ(o)가 ㆍ의 원순 형태임을 생각하면 로마자 전사 시 'eo'라는 표기를 ㆍ가 차지했을 수도 있다.

7. 입력법


아래아 한글에서는 글자판을 옛글자로 바꾸거나, 보통 한글 자판에서 ㅏ 키를 두 번 빠르게 연달아 누르거나 ㅌ → 한자 키 → 5번째 행에서 아래아를 입력할 수 있다.
천지인 자판에서는 모음 구성요소로서 아래아가 등장하여 ㅣ, ㅡ와 함께 여러 모음을 만들 수 있다. 그러나 모음 구성요소로서 사용된 것이기 때문에 그냥 아래아와 자음이 결합한 것은 입력할 수 없으며 아래아가 이중모음 중 하나로 쓰인 같은 것도 입력이 불가능하다. 아울러 아래아만 재출로 쓰인 후대의 표기 합자가 불가능하다. 단, 'ㅕ'나 'ㅛ'를 입력하기 위한 중간 과정을 위해 단독 ᆢ는 화면에 표시가 된다.[6]

8. 오늘날의 쓰임


예스러운 느낌을 주기 때문인지, 음식점 등에서는 원래 아래아가 들어가는 발음이 아닌데도 아래아를 써서 가게 이름을 짓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아래아 한글의 '한글'이나[7] 원래는 아래아였고 맛밤의 '맛'은 원래부터 아래아가 아니라 ㅏ를 쓰던 단어이다. 참 크래커의 '참'은 아래아를 쓰던 것이 맞다.
업체 상호명 등에 아래아를 적는 경우도 있다. 물론 이런 경우 전산망(사업자등록, 지역정보 등)에 아래아가 조합된 글자를 그대로 쓸 수는 없으므로 ㅏ로 대체해서 등록한다. 이 예시와 같은 경우 간판에는 \''''ᄒᆞᆫ'''미르약국'으로 되어 있지만 실제 전산망에는 \''''한'''미르약국'으로 등록되어 있다.
가운뎃점(·)을 입력하기 귀찮아하는 사람들에게는 가운뎃점 대용으로 쓰인다. 실제로 법령 등에서도 전각이라 크기가 커서 더 보기 좋은지 아래아를 가운뎃점용으로 곧잘 쓴다. ᆢ는 말줄임표 대신으로 쓰기도 한다.

9. 기타


아래아가 쓰인 글을 현대에 읽을 때에는 /ㅏ/로 읽는 경우가 많다. 가령 'ㅐ, ㅔ'가 들어간 중세국어 문장을 읽을 때 '아ㅣ', '어ㅣ'라고 읽지 않는 것과 비슷한 것이다.[8]
19세기 말~20세기 초 훈민정음 원문이 발견되기 이전에 주시경중고음의 [i]가 한국 한자음에서 아래아로 표기되는 현상에 집중하여, 아래아의 중세 한국어 시기의 발음이 ㅣ와 ㅡ의 이중모음(ᅟᆜ)일 것이라고 잘못 추측했다. 지석영도 이를 적극 받아들여 신정국문에서 "ㆍ는 기원적으로 이중모음이면서도 자형이 규칙에 어긋나니 폐지하고, 이중모음임을 명확히 드러내는 [9]를 새로 만들어 쓰자"라는 파격적인 주장을 하게 되었다. 해당 이중모음은 훈민정음에서 ''라고 버젓이 언급되어있었으니 이는 당시에 접근할 수 있던 문헌의 한계로 인한 오판이었다. 20세기 표기에 산재해있던 ㆍ였기에 "ᆖ 창제"라는 주장까지 나올 수 있었으니[10] 잘못된 추측이기는 해도 문자사에 족적을 남긴 가설인 셈이다.

10. 아래아가 포함된 모음


ㆍ가 이중모음으로서 결합한 모음으로는 , , , , , 등이 있다. 옛한글 자모 참고.
익히 잘 알려져 있다시피 모음의 글자 구성요소로서는 ㅣ, ㅡ를 제외한 모든 모음이 아래아를 포함하고 있다. 훈민정음의 제자 원리 설명에 의거하자면 ㅗ, ㅏ만 ㆍ가 들어갈 법하지만 ㅜ, ㅓ에도 아래아가 들어가고 있다.[A] 또한 j계 상향이중모음에도 모두 ㆍ가 한 번 더 들어가고 있다.

11. 기타


하도낙서(河圖洛書) 식 숫자 배치에 따르면 하늘(天) - 5에 해당된다.[11] 오행으로는 생(生)[12] ()에 해당한다.[13]

[1] 참고로 구축(口蹙)의 경우 이에 해당하는 'ㅗ, ㅜ'를 보았을 때 딱 떠오르는 자질이 원순성인 만큼 '구축' 역시 "오므린다"로 해석하는 게 일반적이다(다만 '구장'을 그에 맞대응되는 '평순모음'으로 둘 수 있을지는 다소 애매하다). 다만 한자의 의미로 보았을 땐 다소 논란이 있다. 蹙의 '축'이란 독음은 "촉박하다"(子六切), "차다", "가깝다"(七六切)의 뜻이며, "줄이다", "오므라들다", "작다", "곤궁하다"의 독음은 척(倉歷切,音戚)이기 때문. 이 때문에 구축이라는 음가에 따라 "촉급하게 발음하는 음가"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이 경우 구축에 해당되는 모음인 'ㅗ, ㅜ'가 어떤 음성적 요소로 인해 "촉급하다"로 해석될 수 있을지를 설명하기 어렵다.[A] A B 비슷한 대응이 ㅡ에 대해서 ㅜ, ㅓ에 대해서 이루어진다. ㅡ이면서 구장이면 ㅓ, ㅡ이면서 구축이면 ㅜ라고 설명한다. 그런데 자형상으로는 ㅜ, ㅓ도 ㅗ, ㅏ와 마찬가지로 ㆍ가 들어가는데 이에 대해서 《훈민정음》에서는 "ㆍ = 하늘 = 양(陽)으로서 양이 음(陰)까지 모두 거느리기 때문이다"(ㆍ之貫於八聲者,猶陽之統隂而周流萬物也/ 呑(ㆍ)之為字貫八聲維天之用徧流行 <결>)라고 해명(?)하고 있다. 즉 'ㅜ, ㅓ'는 사실 음을 뜻하는 ㅡ를 기초로 제자해야 맞지만 양이 음을 포괄할 수 있으므로 양에 해당하는 ㆍ로 제자하겠다는 뜻이다. 실제로는 '아래아의 모양이 작은 점 모양이라서 여기저기 배치하기 편리하다'라는 디자인상의 이유가 컸을 것으로 추측된다.[2] 후기 중고음부터 /ɿ/로 변했다고 추측된다. (四: 중세한국어 한자음 ᄉᆞ, 일본어 한자음 し, 표준 중국어 sì) 여담으로 훈몽자회에서는 '思'의 모음이 ㆍ라고 언급하였다.[3] 헝가리어의 A가 이 발음이다.[4] 재미있게도 북한에서는 /ㅓ/를 [ɔ\]로 원순음에 가깝게 발음하는 경우가 많아 비슷하다.[5] 신동립의 잡기노트-아래아 "ㆍ"는 살아있다[6] 일부 키보드 앱에서는 으로 뜨기도 한다. [7] '한글'이라는 명칭을 처음 언급했다고 추정되는 주시경부터가 아래아 폐지론자였기 때문에 처음 출현할 때부터 아래아가 쓰이지 않았다. 다만 그렇기 때문에 주시경이 어떤 의도로 '한글'이라는 명칭을 지었는지는 아직도 확실하지는 않다. 'ᄒᆞ다'가 아닌 '하다'가 "크다", "많다"라는 의미를 지니기에 "큰 글", "위대한 글"이라는 의미에서 지었다는 주장도 세간에 널리 퍼져있다. 다만 주변인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한국/한민족의 글자"인데 한문와 겹칠 것을 우려해 '文'만 순우리말로 적어 '한글'이라고 했다는 주장이 더 유력하다.[8] 비슷하게 일본에서도 'ゐ'와 'ゑ'와 같이 오늘날에 쓰이지 않는 글자에 대하면(각각 'い'와 'え'에 합쳐졌다.), 과거 이 글자들이 독자적인 발음을 갖고 있던 시기의 발음을 재현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 경우가 아니면, 원래 발음인 /ウィ/와 /ウェ/가 아니고 현대에 합쳐진 발음인 /イ/와 /エ/로 발음한다.[9] 'ᆜ'가 아니라 'ᆖ'인 것은 j계 상향이중모음은 모두 재출의 방식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ㅡ에 [j\]가 결합한 것 역시 재출의 방식으로 만들어져야 했다고 추측했기 때문이다. 사실 훈민정음의 ᆜ가 좀 규칙에서 어긋난 예이기에 훈민정음 원본을 보지 않은 상태에서 ㅣㅡ 합음에 대해서만 특별히 ᆜ를 창제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다만 지석영은 해당 음을 세종대왕이 해당 음에 대응하는 글자로 ᆖ가 아니라 를 창제한 이유로 ᆖ는 한자 ''을 두 번 쓴 것과 비슷해서 피했을 것이라는 다소 무리한 주장을 폈다. 더 자세한 내용은 문서 참고.[10] 예나 지금이나 는 중앙어에서 쓰이지 않고 지역어에서만 등장한다. 세종대왕조차도 지역어만을 위한 표기를 만드는 데에는 조심스러워 합자해에서 여담으로 언급했을 정도였는데, 근대 시기에 이를 위해 새로운 자모를 창제하자고 주장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심지어 당대에 많이 쓰이던 를 ᆖ로 대체하자는 주장조차도 "별로 안 쓰는 발음이니 굳이 번거롭게 창제할 필요 없다"라고 부결될 정도였다.[11] ㅗ(1), ㅜ(2), ㅏ(3), ㅓ(4), ㆍ(5), ㅠ(6), ㅛ(7), ㅕ(8), ㅑ(9), ㅡ(10) 식이다. 짝수는 (地)이고 홀수는 하늘이다. 사람이라서 숫자나 하늘/땅을 가릴 수 없다고 하고 있다. 훈민정음 모음 기본자는 11자라서 5*2 안에 다 넣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12] 1~5까지는 생(生)이라고 하고 6~10은 성(成)이라고 했다.[13] ㅗ初生於天,天一生水之位也。ㅏ次之,天三生木之位也。ㅜ初生於地,地二生火之位也。ㅓ次之,地四生金之位也。ㅛ𠕅生於天,天七成火之數也。ㅑ次之,天九成金之數也。ㅠ𠕅生於地,地六成水之數也。ㅕ次之,地八成木之數也。水火未離乎氣,隂陽交合之初,故闔。木金隂陽之㝎質,故闢。ㆍ天五生𡈽之位也。ㅡ地十成𡈽之數也。ㅣ獨無位數者,盖以人則無極之真,二五之精,妙合而凝,固未可以㝎位成數論也。是則中聲之中,亦自有隂陽五行方位之數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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