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향원정

 


[image] '''대한민국의 보물'''
1760호

'''1761호'''

1762호
경복궁 수정전
'''경복궁 향원정'''
창덕궁 금천교
[image] '''대한민국 보물 제1761호'''
'''경복궁 향원정'''
景福宮 香遠亭


'''소재지'''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종로구 사직로 161 (세종로)
'''분류'''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궁궐·관아/ 궁궐
'''수량'''
1동
'''지정연도'''
2012년 3월 2일
'''제작시기'''
조선시대, 1873년 창건
1. 소개
2. 역사
3. 취향교
4. 열상진원
5. 여담
6. 매체에서의 등장

[image]
2007년[1] ~ 2017년의 향원정 모습

1. 소개


景福宮 香遠亭
조선시대 궁궐경복궁후원에 있는 정자이다.
위치는 건청궁의 바로 남쪽, 함화당과 집경당의 북쪽에 있다.
이름은 ‘향기(香)가 멀리(遠) 간다’는 뜻으로 북송 시기 학자 주돈이(周敦頤, 1017 ~ 1073)가 지은 《애련설(愛蓮說)》의, ‘향기가 멀리 갈수록 더욱 맑아진다(香遠益淸)’는 구절에서 유래했다.
현판글씨고종이 직접 썼다.

2. 역사


조선 초기에는 없었다. 1456년(세조 2년)에 경복궁 후원에 지은 취로정(翠露亭)이 향원정 자리에 있었다고 하나 확실하지는 않다.
현재의 향원정은 경복궁 중건 이후에 처음 세웠다. 시기는 1867년(고종 4년)에서 1873년(고종 10년) 사이로 보이나 1873년 건청궁과 같이 지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이후 왕실 가족들이 휴식처로 이용하였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도 살아남아 지금까지 고종 당시의 모습을 유지한다. 2017년부터 2021년까지 보수 공사를 진행하였다.
건물 구조의 특징에 대해서는 링크 참조.

향원정 온돌 발견 내용을 다룬 2019년 11월 20일 자 YTN 뉴스
해체 수리 중이던 2019년 11월에 향원정 바닥에서 온돌 시설이 발견되었다.# 비록 가장자리에만 설치되었지만, 정자에 온돌이 있는 보기 드문 경우라 사람들의 많은 관심을 끌었다.

3. 취향교


景福宮 醉香橋
향원정을 건너는 다리이다. 향원정을 지을 때 같이 세웠으며 향원정의 북쪽, 그러니까 건청궁 쪽 방향에 있었다. 무지개 모양의 나무로 만든 다리였으며 일제강점기 즈음에 일자 형태로 바뀌었다. 6.25 전쟁 때 파괴되었다가 1953년 복원했는데 관람의 편의 등의 이유로 기존의 자리가 아닌 남쪽에 세워졌고, 모습도 예전과는 완전히 달라졌다. 2017년 ~ 2021년 보수 공사 때 취향교도 원래 위치에 복원하였다.
다리 구조의 특징에 대해서는 링크 참조.

4. 열상진원


景福宮 洌上眞源
향원정 서북쪽에 있는 으로, 북악산지하수가 이 곳에서 솟아난다. 샘 주변을 화강석으로 감싸고 뚜껑 역시 같은 화강석이다.
경복궁 창건 당시부터 있었으나 샘을 덮은 뚜껑은 고종 때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만들었다. 이름은 ‘한강(洌上)의 진짜(眞) 근원(源)’이란 뜻이다. 열수는 한강의 다른 말이며 ‘열상’은 ‘열수의 위’, 즉 ‘서울’을 의미하는데 편의상 열상을 열수와 같은 뜻으로 쓴 듯 하다. 비록 강원도 태백시 검룡소가 한강의 진짜 발원지이지만, 왕궁에서 발원한 물이 한강으로 흐르기에 상징적으로 이름 붙인 것이다.#
샘은 총 3층의 계단식이다. 솟아난 물이 두 번 직각으로 꺾여 향원지로 들어가게 하였고, 특히 연못과 만나는 부분은, 동그란 홈에 물이 고이게 하여 향원지 물 높이보다 아래로 흘러들어 갈 수 있게 만들었다. 이는 한 번에 물이 내려올 때 생길 수 있는 연못파동을 최대한 줄여 향원지의 물을 잔잔하게 유지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이렇게 만든 데에는 물고기가 놀라지 않게 하려고 그랬다는 설과 연못에 비친 향원정과 여러 , 나무그림자들을 흔들림없이 보려고 했다는 설이 있다.

5. 여담


  • 1887년 3월 6일 우리나라 최초의 전등경복궁 건청궁에 설치하였을 때 발전기 냉각수를 확보하기 위해 바로 향원정에 발전기를 설치하였다. 그러나 향원정의 수온이 올라가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하기도 했다. 사족으로 이 때 전등을 설치한 회사가 에디슨전기회사였다.
  • 우리나라 최초의 스케이트 공간이기도 하다. 조선을 방문했던 영국인 이사벨라 버드 비숍의 책 ‘조선과 이웃나라들’에 따르면, 1894년 겨울에, 서양 선교사들이 얼어붙은 향원지 연못에서 피겨 스케이팅 시연회를 고종명성황후 앞에서 했는데 고종은 선교사들이 미끄러질 때마다 엄청 웃으면서 즐거워했다고 한다.[2] 명성황후는 이성끼리 서로 손을 잡았다 놨다 하는 것을 못마땅해했으나 얼음판 위에 놓인 의자를 훌쩍 뛰어넘는 곡예를 부릴 때는 어린이처럼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고 한다. 이후에도 몇 번 더 경복궁에서 스케이트를 타게 했으며 1895년 1월에는 아예 두 차례에 걸쳐 스케이트 파티를 열었는데 서울에 살던 대부분의 서양인들이 모였다.
  • 굉장히 아름다운 풍경에다 서울에 있어서 그런지 <대한민국미술전람회> 출품작 중 가장 많이 나온 소재이기도 하다.

6. 매체에서의 등장


궁궐 촬영이 비교적 쉬웠던 2000년대 이전 조선을 배경으로 한 사극에서 후원으로 많이 나왔다. 다만, 향원정을 처음 지은 것은 고종 때인데 임진왜란 전 조선 초 ~ 중기를 다룬 드라마에도 후원으로 나오는 고증오류가 있었다. 200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대부분의 주요 전각들은 거의 세트장을 배경으로 했지만 향원정만큼은 실물이 간간히 나온다. 아마 세트로 재현하기 힘들기 때문에 비용이 더 많이 들더라도[3] 감수했던 것 같다.

[1] 뒤에 보이는 건청궁은 2007년에 복원되었다.[2] 이 때 스케이트를 ‘얼음발굿’ ‘빙예(氷藝)’ ‘빙족희(氷足戱)’ 등으로 불렀다고 한다.[3] 당연하지만 세트장보다 실제 궁궐의 촬영 대여료가 훨씬 비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