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수정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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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대한민국의 보물'''
1759호

'''1760호'''

1761호
경복궁 사정전
'''경복궁 수정전'''
경복궁 향원정


[image] '''대한민국 보물 제1760호'''
'''경복궁 수정전'''
景福宮 修政殿


'''소재지'''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종로구 사직로 161 (세종로)
'''분류'''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궁궐·관아/ 궁궐
'''수량'''
1동
'''지정연도'''
2012년 3월 2일
'''제작시기'''
조선시대, 1867년 창건
1. 소개
2. 역사
3. 정문
4. 특징
5. 여담
6. 매체에서의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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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전 사진

1. 소개


景福宮 修政殿
조선시대 궁궐경복궁의 편전 중 하나이다.
위치는 경회루의 바로 남쪽, 근정전의 서쪽에 있으며 남향이다. 내 관청인 궐내각사와 임금이 머무는 내전 사이에 있어 신하들이 만나기 편한 곳이었다.
이름은 ‘정사(政)를 잘 수행(修)한다’는 뜻이다. 현판글씨는 건립 당시 도승지였던 조석원(曺錫元, 1817~ ?)이 썼다.

2. 역사


조선 초기에는 없었고 수정전 언저리에 그 유명한 집현전이 있었다.[1] 수정전 자체는 1867년(고종 4년) 경복궁을 중건할 때 처음 지었으며 사정전과 함께 편전의 용도로 사용되었다.## 때로는 이 곳에서 행사를 거행하고 어진을 잠시 모셔두기도 했다.# 이 때에는 주변에 200칸 가까운 행각들이 있었고 북행각과 수정전 본채가 복도로 연결되었으며 궐내각사에 해당하는 수많은 전각들이 경복궁의 서쪽 대문인 영추문까지 즐비해 있는 등 지금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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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양 측면에 복도가 설치되어있는 수정전
1894년(고종 31년) 1차 갑오개혁 때에는 국사책에도 나오는 그 군국기무처가 들어섰다가 이후 의정부에서 이름이 바뀐 내각의 청사로 기능하였다.# 이 때 수정전과 북행각을 연결하는 복도는 사라지고 대신 좌우에 복도가 새로 생겼으며 가운데와 바깥 행각의 규모를 확장하는 변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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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수정전
전시실로 변한 수정전 내부. 중앙아시아의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일제가 식민 통치 5년 째 되는 걸 기념한답시고 경복궁에서 개최한 조선물산공진회의 전시관으로 활용하면서 내부는 많이 훼손되었고, 주변 행각들과 부속 건물들은 전부 헐려 건물 하나만 남았다. 이후에도 미술품을 전시하는 공간이었고, 해방 이후 1966년부터 1975년까지는 한국민속관[2]으로 기능하였다.
2000년에 보수 공사를 하여 오늘에 이른다.

3. 정문




4. 특징


  • 정면 10칸, 측면 4칸의 1층[3]이다. 장대석을 높게 쌓은 6단의 기단 위에 주춧돌을 놓고 네모난 기둥을 세운 뒤, 겹처마 양식으로 지었다. 공포는 쇠서[4] 2개를 둔 이익공이고 기둥 사이마다 화반을 놓은 뒤 그 위에 운공을 설치하였다. 지붕은 팔작지붕으로 용마루와 내림마루, 추녀마루는 양성바름을 하고 취두와 용두, 6개의 잡상을 설치하여 장식하였으며, 단청은 모로단청[5]으로 칠하여 깔끔하면서도 화려한 모습을 뽐내게 하였다.
  • 출입문은 남쪽 정면 가운데의 2칸이며 나머지는 전부 이다. 모든 칸의 외벽에는 윗부분에 빗살무늬 교창을, 의 아랫부분에는 머름을 두었다.
  • 건물 남쪽 전면에 큰 월대를 두었다. 월대는 4단이고 월대 윗 부분은 박석으로 마감했다. 계단은 월대 정면에 3개, 측면에 2개, 총 5개가 놓여있고 그 중 임금이 다니는 정면의 가운데 계단은 소맷돌을 두어 다른 계단과 차별화시켰다. 가운데 계단과 그 왼편에 있는 계단 사이엔 무늬가 새겨진 댓돌이 있다.
  • 2개의 고주[6]를 세우고 7개의 도리를 설치한 ‘2고주 7량가’ 형식을 띄고 있다.#
  • 기단 양 측면에 나무로 된 이 보이는데 온돌에 불을 지피는 아궁이다. 불을 때면서 나오는 연기를 배출할 굴뚝을 수정전 건물 바로 뒤에 두 개를 놓았는데, 별다른 무늬없이 그냥 벽돌을 길이쌓기하고 그 위에 한옥처럼 기와 지붕을 올린 뒤 으로 구워 만든 배출구를 올렸다.[7]
  • 내부는, 가운데 정면 3칸, 측면 2칸을 대청으로 놓았는데 서쪽으로 치우쳐있으며, 칸을 나누지 않고 한 공간으로 뚫어 넓게 쓸 수 있게 하였다. 천장은 우물 반자[8]로 막고 마루는 우물 마루로 놓았다. 대청을 중심으로 서쪽에는 정면 2칸, 측면 2칸의, 동쪽에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온돌방을 두었으며 온돌방과 대청 주변을 전부 툇간이 둘러싸고 있는데, 남쪽의 툇간은 다른 면의 툇간보다 남, 북 축의 길이가 훨씬 길다.#
  • 대청온돌방을 연결하는 은 세살청판 문 모습으로 되어있다. 온돌방 내부는 완자 장지문으로 공간을 구분하고 있다.#

5. 여담


  • 제574돌 한글날 경축식이 수정전 앞뜰에서 열렸다.[9]

6. 매체에서의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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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 눈물》 159화에 나온 수정전.
궁궐 촬영이 비교적 쉬웠던 2000년대 이전 조선을 배경으로 한 사극에서 배경으로 꽤 나왔다. KBS1 드라마용의 눈물》에서는 세종 재위 기간을 다룰 때 집현전으로 나왔다.

[1] 확실하게 현재 수정전 자리라고 단정할 수 없어 그 언저리라고 표현하였다.[2] 오늘날 국립민속박물관전신.[3] 보통 한옥의 경우 단층(單層)이라 표현한다.[4] 모양의 부재.[5] 끄트머리만 칠하는 단청.[6] 高柱, 이름 그대로 굉장히 높은 기둥을 말한다.[7] 이 배출구는 꼭 처럼 생겼다하여 연가(煙家)라고 부른다.[8] 서까래가 안보이게 천장을 가리고 평평하게 만드는 구조물.[9] 이전에는 광화문광장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경축식을 열었으나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확산을 막고 일부 보수단체들의 반정권 시위를 차단하기 위해 광화문광장을 폐쇄하면서 경복궁에서 소규모로 기념식을 진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