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여객
京鄉旅客
지금은 '''폐업'''한 인천광역시 시내버스 회사다. 정식 명칭은 경향여객자동차·경향여객운수.
말년에는 중형버스만 운행하다가 죄다 팔아 치우고 허무하게 사라진 회사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1950년대까지 역사를 파고 들면 의외로 수도권에서 KD 저리가라 할 정도로 대규모 업체였다. 1950~1960년대만 하여도 인천광역시 시내버스는 물론이고 '''서울특별시 시내버스'''[1] 도 운행 했었으며, 심지어는 경기도 파주시·고양시·포천시·연천군(당시는 모두 군 지역)에 영업소를 두고 서울특별시로 나가는 '''시외버스'''를 운행 했었다.
심지어는 금강고속의 전유물이라 생각하는 '''서울특별시~속초시/거진 직행버스''' 노선(!!!)을 이 회사가 운영 했었던 놀라운 과거도 있다.('''심지어 번호판도 강원도 였다!!''') 경향여객의 강원 노선은 흑역사가 존재하는데, 1957년도에 진부령(46번 국도)을 넘던 중 간성 북방 약 2km 지점에서 브레이크 고장으로 인해 버스가 전복되어 30여명의 사상자를 낸 큰 사고가 있었다. 또한 1961년도에는 간성에서 속초로 향하던 직행버스가 7번 국도를 주행하던 중 빙판길에 미끄러져 간성읍 자산천 가교에서 추락하여 12명이 사망하고, 12명이 중경상을 입는 큰 사고들이 있었다.
강원도 노선의 잦은 대형 사고로 유일한 발인 버스에 불안감을 느꼈는지, 당시 지역 사회에서는 경향여객의 속초시/거진 노선의 사업권을 취소해 줄것을 교통부(현, 국토교통부)에다가 건의하였다.#당시 상황에 대한 신문기사다. 시대가 시대다 보니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아마 61년도 이후로 이야기가 없는걸 보면, 강원도 권역의 운송사업은 면허취소 건의가 받아들여 졌거나, 악화되는 여론 때문에 회사가 자진해서 면허를 반납한 걸로 보인다. 간성~속초 노선은 현재 동해상사고속의 1, 1-1번 농어촌 버스의 전신으로 추정되며, 간성, 속초~서울간 노선은 현재 금강고속이 운행하는 노선으로 추정하고 있다. 당시에 노선들은 모두 현재 운영하고 있는 회사에다가 운영권을 넘긴 것으로 보이며, 아직 건실하게 남아 있었더라면 경인권은 물론이고 한강 이북은 이 회사가 전부 독식했을 것이다.
이 회사의 화려한 과거는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서 검색하여 추측하고 있다. 사실 버스회사의 역사를 파고든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자료를 구하기도 어렵고, 정작 버스회사에서도 정확한 역사에 대해 공개하지 않으니 이렇게 추측할 수 밖에..
또한 현재 기억에 남는 운행지역인 인천과는 확연히 다른 운행지역이라 동명의 다른 회사라고 생각 할 수도 있겠지만 이 신문기사에는 경향여객에 대해서 간략하게 요약하고 있으니 참고하길 바란다. 역시 이것도 '뉴스 라이브러리'이다. 과거 신문의 특성을 보면 유독 한자가 많이 작성되어 있는데 강원도나 경기도나 인천이나 경향여객에 대한 한자는 京鄉旅客으로 서울, 경기, 강원 모두 동일한 회사임을 알 수 있다.
1970년대 이후로 인천 시내버스 외, 다른 지역의 사업은 모두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
1955년 이 시기에 창립한 것으로 추정되며, 경기도 인천시 시절부터 인구의 유입과 증가로 인하여 시 권고에 의한 증차, 기존 사업자들의 경영 악화로 인한 폐업등으로 면허 인수와 같은 환경적 요인으로 회사 규모가 커져나갔고, 직할시의 인천이 되기까지 인천 시내버스의 역사를 써 나가던 회사였다. 시내버스 외에도 인천광역시 각지역에서 서울특별시 용산구로 가는 시외버스를 운행하였다.
비교적 최근의 근황으로는, 1998년 9월, 좌석버스 면허·차량을 강인여객 시내버스 면허·차량과 교환 하였다. 이후 1999년 9월, 경인여객 부도때 여느 회사와 똑같이 시내버스 면허 및 차량을 일부 인수 하였다. 또한 소신여객의 월미도 차고지 매각 과정에 따라 경향여객이 월미도에 버스 차고지를 임시로 운용한 이력이 있었으나 주로 15번 같은 노선을 운용하였다.
2001년 2월부터 공동 배차의 폐지 이후, 경향여객이 담당한 노선은 다음과 같았다.
오래된 현직 기사분들과 관계자의 증언을 토대로 말하면 청산종결 이전의 경향여객 대표이사(신 모 사장)는 '''브로커 기질'''이 다분한 사람으로써 '''기업 사냥꾼'''이라고 불렸다. 사실상 회사를 운영할 생각 보다는 매입&매각을 통해서 그 차익으로 수익을 내는 형태였다고 한다. 심지어는 어떤 버스그룹의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그 대표이사는 '''회장님의 멘토이자 사업상 각분한 사이라고''' 증언한 적도 있다. 이 정도만 봐도 어떤 사람인지는 눈치는 챘을듯(...)[5]
경향여객은 실질적으로 보면 공배 해제 전후 인천 시내버스에서 15번 버스와의 인연이 깊은 유명한 업체였으나 이후 내려갈 업체는 내려간다 수준에 머무를 정도였다.
또한 적자 반납노선 운영 회사가 아니면서 중형버스를 처음으로 도입한 회사였다. 2001년 2월, BM090 신차를 출고해 두고 시에서 중형버스 투입 허가를 내주지 않아서 십정동 차고지에 34번으로 작업만 다 된 상태로 몇개월동안 방치된 적이 있었다. 중형버스 투입 이유도 '''적자''' 문제였는데, 따지고 보면 애초에 시에서 승인도 안해준 상황인데 차만 뽑아놓고 땡깡 부린거나 마찬가지다. 결국 시에서 승인을 해 주었고.. 이 사건을 계기로 인천 시내버스의 빠른 중형화의 원흉이 되었다.
2001년 11월 20일부터 인천광역시에도 천연가스버스가 운행되었다. 경향여객은 1차 도입분으로 총 10대를 출고하였으며 전차량 대우 BS106. 6번 노선[6] 과 15번 노선에 투입되었다.[7]
위에도 서술했듯이 '''브로커 기질'''이 다분한 대표이사가 결국 경향여객을 야금야금 매각을 시도한다. 2001년 말, 2002년 이쯤에는 마을버스 회사들이 시내버스 회사로 독립을 하려던 시기여서 시내버스 노선의 프리미엄이 상당히 비싸던 시기다. 이때 별 볼일 없던 노선을 프리미엄을 얹어 비싸게 매각해서 꽤나 재미 본 시내버스 회사가 몇몇 존재한다.
경향여객도 이 시기를 놓치지 않고 노선을 매각하였는데..
결국 경향여객은 노선이 하나도 없고 법인만 있는 회사로 전략하게 된다. 이후 2013년(추정)에는 등기상 '청산종결'로 화려한 과거를 뒤로한채 결국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이는 바꿔 말하면 '''버스 회사가 노선도 차량도 없이 10년동안이나 잔존법인으로 생존해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경향여객 대표이사는 경향여객 노선을 모두 매각하면서, 브로커 기질이 다시 발동되어서 2003년 9월 중 송도버스를 인수한다.[8] 그리고 다시 2006년 12월경에 선진네트웍스에 송도버스를 매각하고, 택시회사 국일운수를 인수. 2012년경에 다시 재매각하여 지금은 행방이 묘연했었으나, 2016년을 기준으로 강화선진버스 공동 대표이사로 등재 된 것이 확인되었다.
2003년 송도버스가 경향여객에 인수되는 도중에 원래 근무하던 기사분들이 정리되는 사태가 있었는데, 그때 기사분들은 대부분 용일여객의 신규 광역버스 노선으로 많이 이직하였다.
1. 소개
지금은 '''폐업'''한 인천광역시 시내버스 회사다. 정식 명칭은 경향여객자동차·경향여객운수.
2. 변천사
2.1. 화려한 과거
말년에는 중형버스만 운행하다가 죄다 팔아 치우고 허무하게 사라진 회사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1950년대까지 역사를 파고 들면 의외로 수도권에서 KD 저리가라 할 정도로 대규모 업체였다. 1950~1960년대만 하여도 인천광역시 시내버스는 물론이고 '''서울특별시 시내버스'''[1] 도 운행 했었으며, 심지어는 경기도 파주시·고양시·포천시·연천군(당시는 모두 군 지역)에 영업소를 두고 서울특별시로 나가는 '''시외버스'''를 운행 했었다.
심지어는 금강고속의 전유물이라 생각하는 '''서울특별시~속초시/거진 직행버스''' 노선(!!!)을 이 회사가 운영 했었던 놀라운 과거도 있다.('''심지어 번호판도 강원도 였다!!''') 경향여객의 강원 노선은 흑역사가 존재하는데, 1957년도에 진부령(46번 국도)을 넘던 중 간성 북방 약 2km 지점에서 브레이크 고장으로 인해 버스가 전복되어 30여명의 사상자를 낸 큰 사고가 있었다. 또한 1961년도에는 간성에서 속초로 향하던 직행버스가 7번 국도를 주행하던 중 빙판길에 미끄러져 간성읍 자산천 가교에서 추락하여 12명이 사망하고, 12명이 중경상을 입는 큰 사고들이 있었다.
강원도 노선의 잦은 대형 사고로 유일한 발인 버스에 불안감을 느꼈는지, 당시 지역 사회에서는 경향여객의 속초시/거진 노선의 사업권을 취소해 줄것을 교통부(현, 국토교통부)에다가 건의하였다.#당시 상황에 대한 신문기사다. 시대가 시대다 보니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아마 61년도 이후로 이야기가 없는걸 보면, 강원도 권역의 운송사업은 면허취소 건의가 받아들여 졌거나, 악화되는 여론 때문에 회사가 자진해서 면허를 반납한 걸로 보인다. 간성~속초 노선은 현재 동해상사고속의 1, 1-1번 농어촌 버스의 전신으로 추정되며, 간성, 속초~서울간 노선은 현재 금강고속이 운행하는 노선으로 추정하고 있다. 당시에 노선들은 모두 현재 운영하고 있는 회사에다가 운영권을 넘긴 것으로 보이며, 아직 건실하게 남아 있었더라면 경인권은 물론이고 한강 이북은 이 회사가 전부 독식했을 것이다.
이 회사의 화려한 과거는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서 검색하여 추측하고 있다. 사실 버스회사의 역사를 파고든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자료를 구하기도 어렵고, 정작 버스회사에서도 정확한 역사에 대해 공개하지 않으니 이렇게 추측할 수 밖에..
또한 현재 기억에 남는 운행지역인 인천과는 확연히 다른 운행지역이라 동명의 다른 회사라고 생각 할 수도 있겠지만 이 신문기사에는 경향여객에 대해서 간략하게 요약하고 있으니 참고하길 바란다. 역시 이것도 '뉴스 라이브러리'이다. 과거 신문의 특성을 보면 유독 한자가 많이 작성되어 있는데 강원도나 경기도나 인천이나 경향여객에 대한 한자는 京鄉旅客으로 서울, 경기, 강원 모두 동일한 회사임을 알 수 있다.
1970년대 이후로 인천 시내버스 외, 다른 지역의 사업은 모두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
2.2. 인천 시내버스
1955년 이 시기에 창립한 것으로 추정되며, 경기도 인천시 시절부터 인구의 유입과 증가로 인하여 시 권고에 의한 증차, 기존 사업자들의 경영 악화로 인한 폐업등으로 면허 인수와 같은 환경적 요인으로 회사 규모가 커져나갔고, 직할시의 인천이 되기까지 인천 시내버스의 역사를 써 나가던 회사였다. 시내버스 외에도 인천광역시 각지역에서 서울특별시 용산구로 가는 시외버스를 운행하였다.
비교적 최근의 근황으로는, 1998년 9월, 좌석버스 면허·차량을 강인여객 시내버스 면허·차량과 교환 하였다. 이후 1999년 9월, 경인여객 부도때 여느 회사와 똑같이 시내버스 면허 및 차량을 일부 인수 하였다. 또한 소신여객의 월미도 차고지 매각 과정에 따라 경향여객이 월미도에 버스 차고지를 임시로 운용한 이력이 있었으나 주로 15번 같은 노선을 운용하였다.
2001년 2월부터 공동 배차의 폐지 이후, 경향여객이 담당한 노선은 다음과 같았다.
- 6번 : (→ A방향) 동춘동종점 - 연수구청 - 청량초교 - 동춘1동주민센터 - 송도유원지 - 옥련동 - 용현시장 - 숭의로터리 - 동인천역 - 송림오거리 - 제물포역 - 도화역 - 주안역 - 간석오거리 - 인천터미널 - 문학경기장 - 선학역 - 인천여고 - 청학중학교 - 청량초교 - 동춘1동주민센터 - 동춘동종점 (← B방향) [2][3]
- 15번 : 월미도 - 인천역 - 신포시장 - 동인천역 - 도원역 - 제물포남부역 - 구.시민회관사거리 - 석바위 - 주원고개 - 간석시장 - 상인천중학교 - 만수시장 - 아주아파트 - 수현부락
- 34번 : 동춘동종점 - 연수구청 - 남동공단 - 인천종합터미널 - 소구월 - 모래내시장 - 간석사거리 - 간석시장 - 간석오거리역 - 부평삼거리 - 백운역 - 부평역 - 부평시장 - 부평구청 - 갈산역 - 삼산동
- 35번 : 동춘동 - 남동공단 - 인천종합터미널 - 신세계백화점 - 제물포여자중학교 - 석바위시장 - 홈플러스간석점 - 십정사거리 - 백운공원 - 부평역 - 부평시장로터리 - 부흥오거리 - 신복사거리 - 청천동 - 효성동
오래된 현직 기사분들과 관계자의 증언을 토대로 말하면 청산종결 이전의 경향여객 대표이사(신 모 사장)는 '''브로커 기질'''이 다분한 사람으로써 '''기업 사냥꾼'''이라고 불렸다. 사실상 회사를 운영할 생각 보다는 매입&매각을 통해서 그 차익으로 수익을 내는 형태였다고 한다. 심지어는 어떤 버스그룹의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그 대표이사는 '''회장님의 멘토이자 사업상 각분한 사이라고''' 증언한 적도 있다. 이 정도만 봐도 어떤 사람인지는 눈치는 챘을듯(...)[5]
경향여객은 실질적으로 보면 공배 해제 전후 인천 시내버스에서 15번 버스와의 인연이 깊은 유명한 업체였으나 이후 내려갈 업체는 내려간다 수준에 머무를 정도였다.
2.3. 중형버스 도입의 선두주자
또한 적자 반납노선 운영 회사가 아니면서 중형버스를 처음으로 도입한 회사였다. 2001년 2월, BM090 신차를 출고해 두고 시에서 중형버스 투입 허가를 내주지 않아서 십정동 차고지에 34번으로 작업만 다 된 상태로 몇개월동안 방치된 적이 있었다. 중형버스 투입 이유도 '''적자''' 문제였는데, 따지고 보면 애초에 시에서 승인도 안해준 상황인데 차만 뽑아놓고 땡깡 부린거나 마찬가지다. 결국 시에서 승인을 해 주었고.. 이 사건을 계기로 인천 시내버스의 빠른 중형화의 원흉이 되었다.
2.4. 천연가스버스 1차 도입
2001년 11월 20일부터 인천광역시에도 천연가스버스가 운행되었다. 경향여객은 1차 도입분으로 총 10대를 출고하였으며 전차량 대우 BS106. 6번 노선[6] 과 15번 노선에 투입되었다.[7]
2.5. 노선 매각, 그리고 폐업
위에도 서술했듯이 '''브로커 기질'''이 다분한 대표이사가 결국 경향여객을 야금야금 매각을 시도한다. 2001년 말, 2002년 이쯤에는 마을버스 회사들이 시내버스 회사로 독립을 하려던 시기여서 시내버스 노선의 프리미엄이 상당히 비싸던 시기다. 이때 별 볼일 없던 노선을 프리미엄을 얹어 비싸게 매각해서 꽤나 재미 본 시내버스 회사가 몇몇 존재한다.
경향여객도 이 시기를 놓치지 않고 노선을 매각하였는데..
- 2001년 12월 35번 노선을 대연수교통(현 도영운수)에 매각.
- 2002년 1월 34번 노선을 신화여객에 매각.
- 2003년 1월 20일, 6번 A방향 노선을 스위트버스(현 대인교통)에 매각
- 2004년 1월, 6번 B방향 노선을 인천버스(현 원진운수)에 매각
- 2003년 12월 28일, 15번 노선을 세원교통 가좌지점(현 시영운수)에 매각)
결국 경향여객은 노선이 하나도 없고 법인만 있는 회사로 전략하게 된다. 이후 2013년(추정)에는 등기상 '청산종결'로 화려한 과거를 뒤로한채 결국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이는 바꿔 말하면 '''버스 회사가 노선도 차량도 없이 10년동안이나 잔존법인으로 생존해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3. 그 후
경향여객 대표이사는 경향여객 노선을 모두 매각하면서, 브로커 기질이 다시 발동되어서 2003년 9월 중 송도버스를 인수한다.[8] 그리고 다시 2006년 12월경에 선진네트웍스에 송도버스를 매각하고, 택시회사 국일운수를 인수. 2012년경에 다시 재매각하여 지금은 행방이 묘연했었으나, 2016년을 기준으로 강화선진버스 공동 대표이사로 등재 된 것이 확인되었다.
2003년 송도버스가 경향여객에 인수되는 도중에 원래 근무하던 기사분들이 정리되는 사태가 있었는데, 그때 기사분들은 대부분 용일여객의 신규 광역버스 노선으로 많이 이직하였다.
4. 여담
- 공동배차 시절에 경향여객은 '전면 행선판' 부분이 올 검정으로 되어 있어서 이것으로 회사를 구분했었다. 일명 대머리라고 불리던 2피스 앞유리의 BS106 차량은[9] 그냥 신문지가 되었던 광고지가 되었던 썬팅이 되었건 아무렇게나 붙이고 다녔다.
- 전차량 대우버스를 운행하였다.
- 연식 관계없이 2001년 기준으로 디젤차량 BS106들은 모두 매각되었다.[10] 매각된 동네들도 다양한데 서울, 안양 및 지방에도 팔려나갔다. 그리고는 BS106 CNG 10대를 제외하고 BM090, BS090 CNG로 교체되었다.
- 인천 70바 14xx, 15xx대의 번호판을 사용하였으며[11] 좌석버스는 인천 70바 52xx대 번호판을 사용하였는데 1996년 기준으로 총 20대를 보유하고 있었다. 2대는 1997년에 감차로 말소되었고 남은 18대는 1998년 9월 강인여객에 매각하면서 인천 70바 50xx대 번호판으로 전환되어 일찌감치 사라지게 되었다.
- 차고는 인천 미추홀구 주안2동(수봉공원 부근), 인천 부평구 십정동(현재 LG전자 베스트샵 자리)[12] , 인천 서구 가좌4동(가정여중 앞, 가좌녹지 자리)에 위치하고 있었다. 가좌동 차고는 경향여객이 사라지고 원진운수와 대인교통도 한동안 사용하다 철수하였다.
[1] 차고가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에 있었다고 한다.[2] 동춘동에서 출발하여 시내를 돌고 다시 동춘동으로 오는 순환버스이다. 원래는 방향에 따라 노선을 구분하지 않지만, 회사에서 임의로 순환방향에 따라 구분하였다. A방향이 현재의 6-1번이며, B방향이 현재의 6번이다. [3] 굵게 표시된 부분은 각 순환방향별로 2회 정차. 덕분에 방향을 잘 보고 타야했다.[4] 대신여객도 알고보면 경향과 비슷한 방식으로 사라진데다 대신여객이 정리된지 얼마 안되어서 경향여객이 인수되었다.[5] 강화선진버스 문서를 보면 누구인지 실명이 나온다.[6] 특이한것은 이 차량들이 전부 B방향에 투입되었다.[7] 이렇게 투입된 15번출신 차량들의 일부가 나중에 8번에 투입된다.[8] 참고로 당시 송도버스는 당시 대표이사가 모종의 이유로 잠적하였고, 이에 기사분들이 파업하는 사태가 일어나게 된다. 하루만에 경향여객의 대표이사에게 인수되어 파업은 끝. 참고로 파업이 끝난 직후 15번 출신 BS106 가스차량 4대(2308, 2309, 2313, 2314), 디젤차량 1대(2315)가 송도버스 차고지에 한동안 주차되어있다가, 수개월 후 이 차량들은 16번에서 운행하기 시작하였다. 이후 가스차량은 8번으로 이동하였으나 디젤차량은 16번에서 계속 운행하게 된다.(다만 16번의 해당 디젤차량은 잘 보이지 않았었다.) 참고로 이 가스차량이 인천 최후의 초기형 가스차량.[9] 좌석버스 차량이 이에 해당된다.[10] 이때 심지어 1년도 안된 차까지 팔려 나갔다.[11] 15xx의 경우는 15번을 인수한 시영운수가 이 번호판을 사용중이다.[12] 다만 공식적인 차고지는 이쪽이었던듯. 후문 위쪽에 불편신고엽서함에 나온 차고지가 이 주소로 되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