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즉동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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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광역시 유성구에 있는 동. 대전광역시의 북쪽 끝자락, 북대전IC보다도 더 북쪽에 위치해 있는 동네이다. 유성구에서는 정말로 북쪽으로 툭 튀어나온 동으로, 동/서/북이 모두 다른 시/구이다.
2. 역사
- 조선시대: 공주군 구즉면
- 1895년: 회덕군 구즉면
- 1914년 - 부군면 통폐합: 대전군 구즉면
- 1935년 - 대전부 분리: 대덕군 구즉면
- 1983년 - 원촌리·문지리·전민리(전민동)의 대전시 중구 편입[2] : 14개리
- 1989년 - 대전직할시 편입: 유성구 구즉동 11개동
- 2010년 - 관평동, 용산동, 탑립동 분리: 8개동
구즉면은 현재는 분리된 전민동, 관평동을 모두 포괄하는 큰 면이었다.[3] 면 단위 지명이 행정동 이름으로 남아있는 사례는 유성구에서 구즉동과 진잠동 외에는 없다.[4] 다른 구까지 넓히면 중구 유천동(유천면)[5] , 대덕구 회덕동(회덕면)[6] 및 신탄진동(신탄진읍), 동구 산내동(산내면), 서구 기성동(기성면)이 있다.
1983~1989년 사이에 유성구가 생기기 전까지 이 일대는 중구가 됐다가 서구가 생겼다가 꽤 변동이 많았지만 구즉동은 정리가 다 끝난 후에 들어와서 구가 바뀐 적은 없다.
2010년 테크노밸리 개발을 기점으로 남쪽 관평동 일대가 구즉동에서 분리되었다.
세종특별자치시 출범 당시 청주시에서 떨어져나간 부용면(현 부강면)의 사례처럼 구즉동의 북쪽 일대도 사실상 금남면과 더 관계가 밀접했기에 편입될 가능성도 있었으나 실제로는 그렇게 되지 않았다.
3. 하위 동 (8동)
관할 법정동은 구룡동·금고동·금탄동·대동·둔곡동·봉산동·송강동·신동이다.
2018년 시점에서 아직까지 도시화된 지역은 송강동, 봉산동 남부에 그친다. 그 이북으로는 오봉산과 불무산이 있어서 고개를 넘어야 한다. 각각 구룡고개, 사태고개로 고개 이름까지 붙어있다. 사실상 서쪽 세종시 금남면에 더 가까운 지역.
인구 역시 대부분이 송강동, 봉산동에 거주하고 있으며 두 동의 인구 비는 약 5:2 정도이다.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의 일원으로 둔곡지구(둔곡동)에는 대형 부지에 연구 인력과 가족을 위한 국제적 수준의 정주환경 및 연구기관 등이 입주할 계획이다. 또한 신동지구(신동)에는 기초과학연구원(IBS)에서 운영예정인 중이온가속기(라온)을 활용하는 연구단이 입주할 계획이다.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가 유치되고 연구인력 및 가족들이 입주하는 시설들이 건설중이기에 향후 구즉동 일대에 거주하는 인구가 늘어날것으로 보인다.
3.1. 송강동
봉산로로 나뉘는 송강동과 봉산동 남부는 사실상 하나의 시가지이다. 인구는 송강동이 조금 더 많아 더 번화하다. 봉산동은 상권이 약간 빈약하여 편의점, 치킨집, 중국집 수준이 전부인 정도. 두 권역 전체도 관평동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하다. 관평동과의 관계는 아래 참조.
3.2. 봉산동
동쪽으로 대덕구 문평동, 남동쪽으로 유성구 관평동, 남쪽으로 송강동, 서쪽으로 구룡동, 북쪽으로 금고동과 접해있다.
봉황이 산다는 동네라는 이름에서 볼 수 있듯이 예전에는 시골이었지만 2000년대 후반에 휴먼시아아파트가 지어지는 등 동네 광경이 달라졌다. 현재 주공아파트 2개 단지가 들어서있고, 곧 그 뒤로 아파트 단지 하나가 더 들어설 예정이다. 2018년 1월 기준 아파트단지 공사가 진행중이며 행복주택으로 지어진다고 한다. 그리하여 남쪽의 주택가, 가운데의 휴먼시아아파트, 북쪽의 시골의 풍경을 띠게 되었다.
행정동 '구즉동'의 유래가 된 구즉묵마을이 본래 봉산동 주공 아파트 자리에 있었으나 재개발로 이전되었다. 강태분할머니묵집을 시작으로 현재 휴먼시아아파트가 있는 곳 일대에는 묵마을이 형성됐으나 개발이 되는 바람에 강태분할머니묵집은 조금 북쪽으로 옮겨서 현재도 장사를 하고 있으며 다른 묵집들은 남쪽 화암동 북대전IC 근처에서 새로운 묵마을을 형성했다.
이 묵마을이 요즘엔 점점 큰 문제가 되고 있는데, 이 마을에서 때는 참나무 장작의 매연이 지나치게 많은지 송강 관평 일대의 도시로까지 날아와서 미세먼지와 가스로 이루어진 안좋은 연기의 영향을 관계도 없는 주민들까지 받고 있다는 것이다. 옛날이야 워낙 촌구석이어서 주변 모든 게 시골이나 마찬가지였을지 몰라도 지금 시대엔 많은 부분이 도시화가 됐으니 이제 불 지피는 방식을 바꿔야만 하는 부분이므로 하루빨리 개선될 수 있게 구청에 주기적으로 민원을 넣도록 하자. 구청 공식 정보다. 전통 방식 고수고 나발이고 장사한다고 애먼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되는 법이다.
3.3. 금고동
대한송유관공사 충청지사, 폐수종말처리장, 위생매립장이 위치해 있으며, 제2 폐기물처리시설 조성 예정부지로 지정이 된 곳이 있다. 특히, 제2폐기물처리시설 조성 예정부지는 2004년에 지정이 되어 현재는 민가가 전혀 없는 상태이다.
이 지역에 살고 있는 고라니, 꿩 등이 다수 있는 것으로 파악되며, 아직 농사를 짓는 농지가 있어서 사람들이 오고가는 도로가 존재한다.
3.4. 신동
서쪽에 금남면 박산리와 마주하고 있다. 세종시 남동쪽 개발이 끝난다면 세종시 시가지와도 무척 가까워질 예정이다. 도로 거리로 약 4km 정도.
상술한 대로 과학벨트 개발이 진행중이다. 둔곡동과는 달리 이전에 있던 마을 전체가 모두 신시가지로 지정되어 철거되어 2018년 10월 시점에서 거주 인구가 1명도 없다. 보통 이런 동네여도 10명 정도는 인구가 남아있는데 꽤 이례적이다.
기초과학연구원(IBS)에서 2021년에 운영예정인 중이온가속기(라온)을 건설하기 위한 중이온가속기건설구축사업단이 위치해있다. 2021년에 중이온가속기가 완공된다면 기초과학연구원(IBS) 중이온가속기연구단이 신동에 운영될 계획이다.
향후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신동지구가 구축될 예정이다.
3.5. 둔곡동
신동과 마찬가지로 과학벨트 개발이 진행중이어서 거주민이 거의 없다. 둔곡동 개발지구는 북쪽 신동 개발지구와는 분리되어있으나 남쪽으로는 구룡동까지도 이어진다. 구즉세종로가 둔곡터널을 지나 동 최북단을 거치며 그 길을 이용하는 BRT인 대전 버스 1001이 추후에 정차할 계획이 있다.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둔곡지구가 계획되어 있고,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에서 둔곡지구를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에 입주하는 연구인력 및 가족들을 위한 주거시설 및 연구시설 등을 구축할 계획임에 따라 향후 인구가 많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3.6. 구룡동
둔곡동 개발지구가 이어져 서쪽 일대는 개발중이지만, 동쪽의 구룡달전로 170~270 일대는 개발지구로 지정되지 않아 100명 정도의 인구가 거주하고 있다. 그 경계는 딱 구룡 보건진료소 지점.
봉산동과 구룡동, 그리고 세종시 금남면 달전리까지 이어지는 구룡달전로는 100년 전에도 그 선형을 알 수 있는 오래된 길이다. 상술했듯이 구룡달전로 70~170 일대의 고갯길은 '구룡고개'로 이름까지 붙어있을 정도.
3.7. 대동, 금탄동
서쪽 신동과는 매방산으로 분리되어있고 동쪽 금강변을 끼고 형성된 들에 마을이 위치해있다.
두 동을 대금로가 가로지른다. 외곽버스 73번이 이 길을 따라가며 금탄동을 종점으로 하고 있다.
세종시 부강면, 청주시 현도면과는 금강으로 막혀있고 2019년 시점에서 길은 없다. 단, 부강면으로는 위성 지도상으로 도로를 만드려는 듯한 모습이 보이기도.
4. 인근 지역
남쪽 대덕대로 너머는 관평동이다. 관평동과의 관계는 후술.
서쪽으로는 세종시 금남면과 접한다. 근래에 구즉세종로가 개통되어 세종시와의 교통이 편리해졌다.
북쪽 금강을 사이에 두고 세종시 부강면, 청주시 현도면과 마주하고 있으나 금강을 지나는 다리는 '''단 한 개도 없다'''. 도보교조차 없다. 그냥 이웃한 남남. 유성구에서는 유일하게 청주시와 맞닿아있는 동이기도 하다.
4.1. 신탄진
동쪽 갑천 너머는 대덕구이다. 구즉동과 관평동의 경계인 대덕대로를 통해 주로 왕래한다. 북부 대덕구의 중심지인 신탄진까지는 강을 건너서도 조금 더 가야 한다. 과거 구즉동은 행정구역은 유성구이지만 갑천 너머 대덕구 신탄진과 가까워 과거 신탄진 생활권으로 취급하기도 했다.
동쪽 신탄진과는 가깝기는 해도 자연 경계 갑천이 존재하기 때문에 행정구역이 나누어진 역사가 매우 오래되었다. 심지어 신라 시대에도 이 사이로 행정구역이 나누어져있었을 정도. 위 지도는 다소 불확실한 면이 있으나 고려시대부터는 확실히 구즉동 일대는 비풍군, 신탄진은 회덕군으로 갈려있었다. 이후 1895년에 옛 비풍군 일대가 회덕군으로 넘어오면서 1895~1989년까지 군 단위에서는 같은 행정구역을 유지하였다. 그래도 면 단위에서는 거의 항상 갈려있었던 편. 대전직할시 출범으로 유성구/대덕구로 다른 행정구역에 속하게 되었다.
4.2. 관평동
앞서 말했듯이 원래는 행정동이 같았다가 2010년에 관평동이 분리되어나갔다. 지금도 거의 맞닿아있기는 한데 송강동, 봉산동과 맞닿은 쪽의 관평동 일대는 공장이어서 미래로사거리를 마주보고 점으로 이어진 형세를 하고 있다. 그 사이에 롯데마트 대덕점이 있어서 관평동, 구즉동 사람들이 많이들 이용하고 있다.
신탄진에 대한 의존도는 남쪽 관평동 일대에 테크노밸리가 들어서면서 크게 낮아졌다. 구즉동 자체만으로는 상권이 크지 않기도 해서 상당부분을 관평동에 의존하고 있다. 단적인 예로 패스트푸드라고는 롯데리아와 최근에 생긴 맘스터치 각각 1개 점포만 있는 송강동과 달리, 관평동에는 롯데리아만 해도 두 곳에 써브웨이, 버거킹까지 있다. 카페도 테크노밸리는 온갖 프랜차이즈들이 다 들어와있는데 반해 구즉동은 사실상 전무하다.
5. 주요 시설
5.1. 관공서/공공기관
- 기초과학연구원 중이온가속기건설구축사업단(신동) : 기초과학연구원이 도입하는 중이온가속기 라온이 2021년에 운영됨에 따라서 현재 신동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일원에 건설중이다. 2021년에 공사가 완료되면 IBS 연구단이 신동에 설립될 예정이다.
- 한국가스기술공사(봉산동): 한국가스공사의 자회사로 구 보덕초등학교 건물에 들어섰다.
- 구즉동 동사무소(봉산동)
- 북부 여성가족원(송강동)
- 송강 사회복지관(송강동)
- 송강 근린공원(송강동)
- 송강 체육관(송강동)
- 구즉 국민체육센터(송강동)
- 구즉 도서관(송강동)
5.2. 교육
초등학교 3개, 중학교 2개가 있다.
송강동에는 고등학교가 없어서 송강동 사는 고등학생들은 관평동의 중일고등학교나 조금 더 멀리는 용산동의 용산고등학교로 가기도 한다.
5.2.1. 초등학교
5.2.2. 중학교
5.3. 주거
- 대전도시공사/ 송강마을 1단지 - 1994년 7월 입주
- (주) 한주개발/ 송강마을 2단지 - 1994년 10월 입주
- 계룡건설,태영건설 /한솔아파트 -1995년 3월 입주
- 신호개발,뉴서울주택,태영- 청솔아파트 1995년 7월 입주
- (주)한양/ 청솔아파트(511동~514동) - 1996년 11월 입주.
- 삼성물산,미도파,경남기업 / 송강 그린 아파트 - 1996년 10월 입주.
- (주) 벽산건설,중앙건설 송강 한마을 아파트 - 1999년 4월 입주.
6. 교통
급행2번, 마을5번, 301번, 802번의 기점지가 봉산동에 세종 661번, 691번의 종점이 송강동에 위치해 있다.
6.1. 시내버스
6.1.1. 광역(BRT)
6.1.2. 급행
6.1.3. 간선
6.1.4. 세종시 마을
6.1.5. 외곽
6.1.6. 대전시 마을
7. 도로
세종시로 진출하는 도로가 여러 놓여있는데 그 중 구즉세종로가 가장 빠른 루트로, 봉산동 가운데에 있는 진출로를 통해 진입한 다음 세종시 방향으로 가면 세종시 시내로 10분이면 간다.
그 외에도 세종시 금남면 방향으로 뻗어나가는 금남구즉로와 구룡달전로가 이곳에서 시작한다. 금남구즉로는 관내 구즉동 북부 여러 마을을 지나 세종시 금남면의 북쪽으로 뻗어있고 구룡달전로는 구룡동을 지나 금남면 남동부를 관통하여 금남구즉로와 합쳐진다.
7.1. 시가지 내
- 구즉로
- 와룡로 - 와룡로136번길
- 송강로
- 봉산로
- 봉산북로: 봉산북로이지만 노은로-노은남로와 같은 작명과는 달리 봉산로와는 아무 관련 없다. 차라리 '북봉산로'가 더 나았을 듯하다.
- 대금로
- 국제과학로
- 둔곡길
- 구룡길
7.2. 연결로
- 대덕대로(32번 지방도) (경계)
- 불무로: 구즉세종로 이전까지는 동내에서 대덕구로 통하는 유일한 길이었다. 그러나 불무로가 있는 일대가 그다지 개발된 곳이 아니어서 이 길을 통해 대덕구로 넘어가는 일은 많지 않다.
- 금남구즉로
- 구룡달전로
- 구즉세종로
8. 관련 문서
[1] 2020년 9월 주민등록인구[2] 유성읍이 대전시에 편입되는 시기와 같다.[3] 단, 북서쪽의 신동은 구한말까지는 명탄면 관할이었다.[4] 탄동면을 계승한 '탄동'도 1989년 대전직할시 출범 때 설치되었으나, 이후 신성동과 노은동에 분할 편입돼 사라졌다.[5] 단, 면명 이전에 해당 법정리 자체가 유천리였다. 따라서 엄밀히 말하면 면명이 아닌 법정리명을 그대로 법정동명으로 계승한 것.[6] 단, 1914년 이전에는 면보다도 더 큰 군현 급이었다. 이는 진잠동도 마찬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