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건 안드레아, 정하상 바오로와 101위 동료 순교자

 

'''언어별 명칭'''
<lightgray> 라틴어
Martyres Corea CIII
<lightgray> 영어
Korean Martyrs
Andrew Kim Taegon, Paul Chong Hasang and 101 Companions[1]
<lightgray> 프랑스어
103 martyrs de Corée
<lightgray> 독일어
103 Koreanische Märtyrer und Märtyrerinnen
<lightgray> 이탈리아어
Martiri Coreani
<lightgray> 스페인어
Mártires Coreanos
'''한국 가톨릭 교회의 순교자'''
'''김대건 안드레아, 정하상 바오로와 101위 동료 순교자''' (1984년 5월 6일 시성)
윤지충 바오로와 123위 동료 순교자 (2014년 8월 16일 시복)
[image]
103위 순교 성인화[2], 문학진, 1976년 ~ 1977년, 천주교 서울대교구 혜화동 성당

1. 개요
2. 연혁
2.1. 시복
2.2. 시성
2.2.1. 기적 심사 면제
2.2.2. 성인명 변경
2.2.3. 시성식 장소
3. 103위 성인
4. 참고 사이트


1. 개요


'김대건 안드레아, 정하상 바오로와 101위 동료 순교자'는 조선 왕조가 가톨릭을 탄압한 기해박해(1839년), 병오박해(1846년), 병인박해(1866년) 때 순교한 103위의 성인이다. 한국인 93인과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프랑스인 성직자 10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1984년 5월 3일에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5월 6일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시성식을 거행했으며, 축일은 9월 20일이다.
성인명이 길기 때문에 줄여서 '''한국 103위 순교성인'''(韓國103位殉敎聖人)이라고도 칭하며, 이것도 이 문서로 리다이렉트된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103위 성인의 탄생 이야기>(2009년, 푸른역사, 천주교 수원교구 윤민구 도미니코 신부 저)를 참고하기 바란다.

2. 연혁



2.1. 시복


기해박해 순교자 70위와 병오박해 순교자 9위는 1925년 7월 5일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시복되었으며, 병인박해 순교자 24위는 1968년 10월 6일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시복되었다. 1925년, 1968년 2차례의 시복은 모두 기적 심사 면제령이 내려졌으며, 시복식로마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거행되었다.
[image]
1925년 79위 시복화. 프랑스인 화가 쥬스타니안이 그렸다고 전해진다. 지금도 명동대성당 좌측벽에 있는 소제대에서 볼 수 있다. 위의 성인화와 달리 앵베르 주교가 중앙에 있고 모방 신부와 샤스탕 신부가 양 옆에 있다는 특징이 있다. 그 옆에 영대를 매고 꿇어앉는 이가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참고로 채색 버전은 이들 위에 있는 예수가 빠저 있다. 그 이유에 대해 아시는 분이 이에 대해서 첨언해주길 바람.
[image]
1968년 시복식에서는 행사 때 사용하기 위해 성인들의 모습을 담은 상본을 이탈리아인 화가가 그렸는데, 한국에 대한 정보가 부족해 상투촌마게처럼 표현하는 등 일본인과 유사한 모습으로 그리는 바람에, 상본이 공개되자 시복식에 참석한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을 비롯한 한국 순례단이 매우 당황했다고 한다. 그 때문인지, 시복식이 끝난 후 상본을 한국으로 가져가야 함에도 한국 순례단은 상본을 수령하지 않았다. 나중에 시성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교황청을 방문한 한국 관계자로부터 자초지종을 들은 당시 관계자는, 자신이 본의 아니게 실수해 한국의 신자들을 실망시켰다며 미안함과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2.2. 시성


한국 가톨릭은 1968년 시복식 이후 기해·병오박해 79위 순교 복자와 병인박해 24위 순교 복자의 시성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1978년 4월 13일 한국 103위 순교 복자에 대한 시성 청원이 시성성에 접수되어 교황 바오로 6세의 윤허를 받아 본격적인 시성 절차가 진행되었다. 이 과정에서 다른 시성 사례에서는 찾기 힘든 우대가 여러 차례 있었다. 또한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의 역할도 상당히 컸는데, 다른 사람들은 한참을 기다려야 만날 수 있는 시성성 고위 관료와 교황청 관계자들이 김수환 추기경이 로마에 왔다는 소식에[3] '멀리서 오셨으니 김수환 추기경께서 편한 시간에 저희가 일정을 맞춰드려야 한다'며 편의를 제공했고 김수환 추기경은 요한 바오로 2세를 알현해 한국 천주교가 원하는 바를 교황에게 직접 말하기도 했다.

2.2.1. 기적 심사 면제


일반적으로 성인이 되기 위해서는 최소한 2가지의 기적 사례 보고가 요구된다. 복자로 인정되는데 하나, 성인으로 인정되는데 또 하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일단 순교는 기적으로 간주되기에, 순교자는 1건의 기적 사례만 보고되더라도 시성을 받는 것이 이론상 가능하다.
다만 순교자가 시복되면서 기적 심사를 면제받았더라도 시성되기 위해서는 기적 심사를 받아야 한다. 실제로 1982년 한국천주교주교회의에서 기적 관면을 시성성에 요청했지만, 시복 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기적 심사가 필요하다는 답변을 받았다. 그렇지만 1983년 시성성 장관 피에트로 팔라치니 추기경(Pietro Palazzini, 1912년 5월 19일 ~ 2000년 10월 11일)의 조언에 따라[4] 한국 주교단이 기적 관면 청원서가 아니라 기적 '''심사''' 관면 청원서를 교황청에 제출했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이를 받아들여 기적 심사를 면제함에 따라 기적 사례의 보고 없이 성인으로 인정받을 수 있게 되었다. 이는 선교사가 아니라 평신도 중심으로 자체적으로 신앙이 퍼져나간 소위 '신앙의 기적'이 높게 평가되었기 때문이다.[5]

2.2.2. 성인명 변경


당초 한국 103위 순교복자의 시성 청원서 제목에는 기해박해 때 순교한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사제들의 이름이 선두에 있었다.
이에 대해 한국 주교단은 한국의 성인들이 아니라 프랑스의 성인들을 연상시킨다 하여 시성 청원서 제목을 '복자 김대건 안드레아와 102위 동료 한국 순교자들'로 변경해줄 것을 청원했다. 한국인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를 기림과 동시에, 정하상 바오로를 통해 한국 천주교에서 평신도의 비중이 컸음을 나타내려는 의도였다.
이에 대해 시성성에서 나왔던 반대 의견으로는 비록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사제들이 프랑스인일지라도 조선 땅에서 순교했으므로 한국의 성인이기에 제목을 바꾸지 않아도 되며, 이미 정한 제목을 바꾸었을 때 파리외방전교회의 입장 등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 등이 있었다.
하지만 최종적으로는 한국 주교단의 청원이 받아들여져 축일 명칭을 '김대건 안드레아, 정하상 바오로와 101위 동료 순교자'로 결정했음을 시성성이 통보했다.

2.2.3. 시성식 장소


어떤 의미에서는 기적 심사 면제나 성인명 변경보다도 더 큰 파격이었다. 시성식교황이 직접 주재하는 것이어서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만 거행'''하는 것이 수세기 동안 이어진 원칙이었는데, 아비뇽 유수 때를 제외하고 '''이 원칙이 깨진 첫 번째 사례가 바로 한국 103위 순교복자 시성'''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한국 가톨릭에서는 "교황 방한에 맞춰 시성식을 한국에서 열 수 없겠느냐"고 교황청 시성성에 청원했지만, 한국 103위 순교 복자 시성에 매우 협조적인 태도를 보여준 시성성도 시성식 장소에 대해서만큼은 '성 베드로 대성당 이외의 장소에서 시성식이 열릴 경우 다른 지역 교회들과의 형평성 문제 때문에 그 상징성이 퇴색할 수 있다'며 완강한 입장을 견지했다.
[image]
[image]
그런데 시성성의 입장과 상관없이 교황이 한국 방문 때 시성식을 열겠다고 친히 결정하면서 '한국에서 거행된 시성식은 어디까지나 1984년 교황 방한 때의 부대 행사이지 주된 행사가 아니고, 시성성의 동의 없이 교황의 의지로 관철한 극히 예외적인 사례이므로 이는 시성식이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거행되어야 한다는 원칙에 대한 변경이 아니며, 다른 나라 가톨릭교회가 한국 가톨릭을 전례로 들어 자국에서 시성식을 거행해달라고 요청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구조가 정립되었다. 실제로 시성성 장관 피에트로 팔라치니 추기경과 차관 트라이안 크리샨 대주교(Traian Crișan, 1918년 5월 21일 ~ 1990년 11월 6일), 차관보 파비얀 페라야 주교(Fabijan Veraja, 1923년 1월 20일 ~ 2014년 10월 28일)는 한국에서 열린 시성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3. 103위 성인


'''성인'''
'''신분'''
'''출생'''
'''사망'''
'''나이'''
'''순교 사적'''
'''비고'''
001
성 김대건(金大建) 안드레아
신부, 순교자
1821.08.21.
1846.09.16.
26세
군문 효수형
[6]
[ 펼치기 · 접기 ]
<colbgcolor=#aa6a7a>002
성 정하상(丁夏祥) 바오로
신학생, 순교자
1795.
1839.09.22.
45세
참수형
[7]
003
성 이호영(李――) 베드로
회장, 순교자
1803.
1838.11.25.
36세
옥사
[8]
004
성 정국보(丁――) 프로타시오
상인, 순교자
1799.
1839.05.20.
41세
옥사

005
성녀 김아기(金阿只) 아가타
과부, 순교자
1787.
1839.05.24.
53세
참수형

006
성녀 박아기(朴阿只) 안나
부인, 순교자
1783.
57세
참수형

007
성녀 이소사(李召史) 아가타
과부, 순교자
1784.
56세
참수형
[9]
008
성녀 김업이(金業伊) 막달레나
과부, 순교자
1774.
66세
참수형

009
성 이광헌(李光獻) 아우구스티노
회장, 순교자
1787.
53세
참수형
[10]
010
성녀 한아기(韓阿只) 바르바라
과부, 순교자
1792.
48세
참수형

011
성녀 박희순(朴喜順) 루치아
동정 궁녀, 순교자
1801.
39세
참수형
[11]
012
성 남명혁(南明赫) 다미아노
회장, 순교자
1802.
38세
참수형
[12]
013
성 권득인(權得仁) 베드로
상인, 순교자
1805.
35세
참수형

014
성 장성집(張――) 요셉
순교자
1786.
1839.05.26.
54세
옥사

015
성녀 김(金) 바르바라
과부, 순교자
1805.
1839.05.27.
35세
옥사

016
성녀 이(李) 바르바라
동정 순교자
1825.
15세
옥사

017
성녀 김노사(金老沙) 로사
동정 순교자
1784.
1839.07.20.
56세
참수형

018
성녀 김성임(金成任) 마르타
과부, 순교자
1790.
50세
참수형

019
성녀 이매임(李梅任) 데레사
부인, 순교자
1788.
52세
참수형

020
성녀 김장금(金長金) 안나
과부, 순교자
1789.
51세
참수형

021
성 이광렬(李光烈) 요한
동정 순교자
1795.
45세
참수형
[13]
022
성녀 이영희(李英喜) 막달레나
동정 순교자
1809.
31세
참수형

023
성녀 김누시아(金累時阿) 루치아
동정 순교자
1818.
22세
참수형

024
성녀 원귀임(元貴任) 마리아
동정 순교자
1818.
22세
참수형

025
성녀 박큰아기(朴大阿只) 마리아
부인, 순교자
1786.
1839.09.03.
54세
참수형
[14]
026
성녀 권희(權喜) 바르바라
부인, 순교자
1794.
46세
참수형
[15]
027
성 박후재(朴厚載) 요한
상인, 순교자
1799.
41세
참수형

028
성녀 이정희(李貞喜) 바르바라
과부, 순교자
1799.
41세
참수형

029
성녀 이연희(李連熙) 마리아
부인, 순교자
1804.
36세
참수형
[16]
030
성녀 김효주(金孝珠) 아녜스
동정 순교자
1816.
24세
참수형
[17]
031
성 최경환(崔京煥) 프란치스코
회장, 순교자
1805.
1839.09.12.
35세
옥사

032
성 앵베르 라우렌시오
(Imbert Laurent)
주교, 순교자
1796.03.23.
1839.09.21.
43세
군문 효수형
[18]
033
모방 베드로
(Maubant Pierre)[19]
신부, 순교자
1803.09.20.
35세
군문 효수형
[20]
034
성 샤스탕 야고보
(Chastan Jacques)
신부, 순교자
1803.10.07.
35세
군문 효수형
[21]
035
성 유진길(劉進吉) 아우구스티노
역관, 순교자
1791.
1839.09.22.
49세
참수형
[22]
036
성녀 허계임(許季任) 막달레나
부인, 순교자
1773.
1839.09.26.
67세
참수형

037
성 남이관(南履灌) 세바스티아노
회장, 순교자
1780.
60세
참수형

038
성녀 김유리대(金琉璃代) 율리에타
궁녀, 순교자
1784.
56세
참수형

039
성녀 전경협(全敬俠) 아가타
궁녀, 순교자
1787.
51세
참수형

040
성 조신철(趙信喆) 가롤로
복사, 순교자
1795.
45세
참수형
[23]
041
성 김제준(金濟俊) 이냐시오
회장, 순교자
1796.
44세
참수형
[24]
042
성녀 박봉손(朴鳳孫) 막달레나
과부, 순교자
1796.
44세
참수형

043
성녀 홍금주(洪今珠) 페르페투아
과부, 순교자
1804.
36세
참수형

044
성녀 김효임(金孝任) 골롬바
동정 순교자
1814.
26세
참수형
[25]
045
성녀 김(金) 루치아
과부, 순교자
1769.
1839.07.
71세
옥사

046
성녀 이(李) 가타리나
과부, 순교자
1783.
1839.09.
57세
옥사

047
성녀 조(趙) 막달레나
동정 순교자
1807.
33세
옥사

048
성 유대철(劉大喆)[26] 베드로
소년, 순교자
1827.
1839.10.31.
13세
교살
[27]
049
성녀 유(柳) 체칠리아
과부, 순교자
1761.
1839.11.23.
79세
옥사
[28]
050
성 최창흡(崔昌洽) 베드로
회장, 순교자
1787.
1839.12.29.
53세
참수형

051
성녀 조증이(趙曾伊) 바르바라
부인, 순교자
1782.
58세
참수형

052
성녀 한영이(韓榮伊) 막달레나
과부, 순교자
1784.
56세
참수형

053
성녀 현경련(玄敬連) 베네딕타
회장, 순교자
1794.
46세
참수형
[29]
054
성녀 정정혜(丁情惠) 엘리사벳
동정 순교자
1797.
43세
참수형
[30]
055
성녀 고순이(高順伊) 바르바라
부인, 순교자
1798.
42세
참수형

056
성녀 이영덕(李榮德) 막달레나
동정 순교자
1812.
28세
참수형

057
성녀 김(金) 데레사
과부, 순교자
1796.
1840.01.09.
44세
교수형

058
성녀 이(李) 아가타
동정 순교자
1823.
17세
교수형
[31]
059
성 민극가(閔克可) 스테파노
회장, 순교자
1787.
1840.01.30.
53세
교수형

060
성 정화경(鄭――) 안드레아
회장, 순교자
1807.
1840.01.23.
33세
교수형

061
성 허(許) 바오로
군인, 순교자
1795.
1840.01.30.
45세
옥사

062
성 박종원(朴宗源) 아우구스티노
회장, 순교자
1792.
1840.01.31.
48세
참수형

063
성 홍병주(洪秉周) 베드로
회장, 순교자
1798.
42세
참수형

064
성녀 손소벽(孫小碧) 막달레나
부인, 순교자
1801.
39세
참수형

065
성녀 이경이(李瓊伊) 아가타
부인, 순교자
1813.
27세
참수형

066
성녀 이인덕(李仁德) 마리아
동정 순교자
1818.
22세
참수형

067
성녀 권진이(權珍伊) 아가타
부인, 순교자
1819.
21세
참수형

068
성 홍영주(洪永周) 바오로
회장, 순교자
1801.
1840.02.01.
39세
참수형

069
성 이문우(李文祐) 요한
신학생, 순교자
1809.
31세
참수형

070
성녀 최영이(崔榮伊) 바르바라
부인, 순교자
1818.
22세
참수형
[32]
<:>{{{#FFF 071

성 김성우(金星禹) 안토니오
회장, 순교자
1795.
1841.04.29.
47세
교수형

}}}}}}
[ 펼치기 · 접기 ]
<colbgcolor=#8a6699>072
성 현석문(玄錫文) 가롤로
회장, 순교자
1797.
1846.09.19.
50세
군문 효수형
[33]
073
성 남경문(南景文) 베드로
회장, 순교자
1796.
1846.09.20.
51세
교수형

074
성 한이형(韓履亨) 라우렌시오
회장, 순교자
1799.
48세
교수형

075
성녀 우술임(禹述任) 수산나
과부, 순교자
1803.
44세
교수형

076
성 임치백(林致百) 요셉
포졸, 순교자
1804.
43세
교수형

077
성녀 김임이(金任伊) 데레사
동정 순교자
1811.
36세
교수형

078
성녀 이간난(李干蘭) 아가타
동정 순교자
1814.
33세
교수형

<:>{{{#FFF 079

성녀 정철염(鄭鐵艶) 가타리나
부인, 순교자
1817.
30세
교수형

}}}}}}
[ 펼치기 · 접기 ]
<colbgcolor=#66998a>080
성 유정률(劉正律) 베드로
회장, 순교자
1837.
1866.02.17.
30세
장살

081
성 베르뇌 시메온
(Berneux Simeon)
주교, 순교자
1814.05.14.
1866.03.07.
52세
참수형
[34]
082
성 브르트니에르 유스토
(Bretenieres Justus)
신부, 순교자
1838.02.28.
28세
참수형
[35]
083
성 도리 베드로 헨리코[36]
(Dorie Pierre Henri)
신부, 순교자
1839.09.23.
27세
참수형
[37]
084
성 볼리외 베르나르도 루도비코
(Beaulieu Bernard Louis)
신부, 순교자
1840.10.08.
26세
참수형
[38]
085
성 남종삼(南鍾三) 세례자요한
승지, 순교자
1817.
50세
참수형

086
성 전장운(全長雲) 세례자요한
상인, 순교자
1811.
1866.03.09.
56세
참수형

087
성 최형(崔炯) 베드로
회장, 순교자
1814.
53세
참수형

088
성 정의배(丁義培) 마르코
회장, 순교자
1795.
1866.03.11.
72세
군문 효수형

089
성 우세영(禹世英) 알렉시오
번역가, 순교자
1845.
22세
군문 효수형

090
성 다블뤼 안토니오
(Daveluy Antoine)
주교, 순교자
1818.03.16.
1866.03.30.
49세
군문 효수형
[39]
091
성 위앵 마르티노 루카
(Huin Martin Luc)
신부, 순교자
1836.10.20.
30세
군문 효수형
[40]
092
성 오매트르 베드로
(Aumaitre Pierre)
신부, 순교자
1837.04.08.
29세
군문 효수형
[41]
093
성 장주기(張周基) 요셉
회장, 순교자
1803.
64세
군문 효수형

094
성 황석두(黃錫斗) 루카
회장, 순교자
1813.
54세
군문 효수형

095
성 손자선(孫――) 토마스
농부, 순교자
1844.
1866.05.18.
23세
교수형

096
성 정문호(鄭――) 바르톨로메오
원님, 순교자
1801.
1866.12.13.
66세
참수형

097
성 조화서(趙――) 베드로
농부, 순교자
1815.
52세
참수형
[42]
098
성 손선지(孫――) 베드로
회장, 순교자
1820.
47세
참수형

099
성 이명서(李――) 베드로
농부, 순교자
1821.
46세
참수형

100
성 한재권(韓――) 요셉
회장, 순교자
1836.
31세
참수형

101
성 정원지(鄭――) 베드로
농부, 순교자
1846.
21세
참수형

102
성 조윤호(趙――) 요셉
농부, 순교자
1848.
1866.12.23.
19세
참수형
[43]
<:>{{{#FFF 103

성 이윤일(李尹一) 요한
회장, 순교자
1823.
1867.01.21.
45세
참수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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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참고 사이트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시복시성 주교특별위원회

[1] Kim Taegon과 Chong Hasang이라는 철자는 '김대건'과 '정하상'의 매큔-라이샤워 표기법 표기 Kim Taegŏn과 Chŏng Hasang에서 반달표(˘)만 제거한 것이다.[2] 사진에서 보이는 기도하고 있는 푸른 도령모를 쓴 소년은 최연소 성인인 유대철 베드로 성인으로 순교 당시 13세였다.[3] 당시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은 시성 문제가 아니라 한국 천주교 200주년 행사 준비 때문에 교황청을 찾았다.[4] 한국 103위 순교자는 시복되면서 이미 기적을 면제받았는데 또 다시 기적을 면제받을 경우 다른 나라 천주교회들과의 형평성에 문제가 있을 수 있으므로, 기적 관면이 아니라 기적 심사 관면을 내세우라고 조언했다. 마침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시복 시성에 있어서 지역 교회의 편의를 최대한 봐주도록 할 것을 골자로 한 지시를 내렸기 때문에 한국 천주교에 유리하게 작용했다.[5] 다만 '소위'라 표현한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자체가 기적으로 인정된 것이 아니라 기적 심사가 면제된 것일 뿐이다. 그래도 이 '신앙의 기적' 자체를 폄하할 수는 없다. 전세계적으로 사제에 의한 선교 없이 보통사람들이 모여서 자체적으로 성경을 공부하여 신자가 되고, 거꾸로 신앙에 대한 공부를 더 하기 위해 직접 사제를 찾아가 사제가 되거나 사제를 모셔온다는 것이 전례가 없었기 때문에 천주교 내부에서도 화제였다.[6] 최초의 한국인 사제, 성 김제준 이냐시오(041)의 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