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호(1969)

 



'''김민호의 수상 경력 / 역임 직책 / 역대 등번호'''
[ 펼치기 · 접기 ]

'''한국시리즈 우승 반지'''
'''1995'''

'''한국시리즈 우승 코치'''
'''2017'''



'''KBO 한국시리즈'''
'''1995 한국시리즈 MVP'''



''''''OB / 두산 베어스''' 등번호 42번'''
손병희
(1991)

'''김민호
(1993~2003)
'''

방승재
(2004)
''''''두산 베어스''' 등번호 72번'''


'''김민호
(2004~2012)
'''

강성우
(2013~2014)
''''''LG 트윈스''' 등번호 92번'''
최원호
(2011~2012)

'''김민호
(2013~2014)
'''

김동수
(2019~2020)
'''KIA 타이거즈 등번호 72번'''
김용달
(2013~2014)

'''김민호
(2015~2019)
'''

김상훈
(2021~)
'''KIA 타이거즈 등번호 94번'''
정상옥
(2017~2019)

'''김민호
(2020)
'''

정상옥
(2021~)
''''''LG 트윈스''' 등번호 72번'''
김재걸
(2019~2020)

'''김민호
(2021~)
'''

현역


<colbgcolor=#C30452><colcolor=#fff> '''LG 트윈스 No. 72'''
'''김민호
金敏浩 / Min-Ho Kim'''
'''생년월일'''
1969년 3월 19일 (55세)
'''국적'''
[image] 대한민국
'''출신지'''
[image] 울산광역시 북구
'''학력'''
월성초 - 신라중 - [image] 경주고 - [image] 계명대
'''포지션'''
유격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 입단'''
1993년 OB 베어스 신고선수 입단
'''소속 팀'''
[image] [image] '''OB / 두산 베어스 (1993~2003)'''
'''지도자'''
[image] [image] 두산 베어스 1군 주루코치 (2004~2011)
[image] 두산 베어스 2군 수비코치 (2011)
[image] 두산 베어스 1군 작전코치 (2012)
[image] LG 트윈스 2군 수비코치 (2013)
[image] LG 트윈스 1군 수비코치 (2014)
[image] KIA 타이거즈 1군 수비코치 (2015)
[image] KIA 타이거즈 2군 수비코치 (2016)
[image] KIA 타이거즈 1군 수비코치 (2017~2018)
[image] KIA 타이거즈 1군 야수총괄코치 (2019)
[image] KIA 타이거즈 1군 수석코치 (2019)[1]
[image] KIA 타이거즈 잔류군 수비코치 (2020)
[image] LG 트윈스 1군 수비코치 (2021~)
'''가족'''
장남 김성훈, 차남 김성원
'''수상'''
한국시리즈 우승 (1995)
유격수 부문 골든글러브 (1995)
한국시리즈 MVP (1995)
1. 개요
2. 프로 선수 시절
3. 지도자 시절
3.1. 두산 베어스
3.2. LG 트윈스
3.3. KIA 타이거즈
4. 기타
5. 역대 성적

[clearfix]

1. 개요


선수 시절 OB·두산 베어스의 주전 유격수 계보를 이었던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현재는 LG 트윈스의 코치.

2. 프로 선수 시절


[image]
경주고등학교계명대학교를 졸업하고 OB 베어스에 신고선수로 입단했다.
이 시절 그를 픽업한 감독은 윤동균인데, 항명사건 때 신인급 선수인 권명철, 안경현, 김상진, 이종민 등이 줄줄이 짐싸서 서울로 올라갈 때 장원진과 더불어 윤 감독 옆에 남았던 소수의 선수 중 하나이다.
프로 선수 때는 유격수였으며, 정수근이 만개하기 전까지는 발이 빨라 주로 1번을 맡았다.
수비도 꽤 괜찮은 선수였으나, 두산의 팬이 아니라면 아무래도 이종범이나 유지현에게 기억이 밀리는 편. 하지만 이종범과 유지현이 둘 다 방위병 근무를 하던 1995년엔 .288의 타율과 47도루를 기록하며 웬만한 스타 유격수 못지않은 활약을 했다. 이를 바탕으로 그해 팀을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끌며 시리즈 MVP를 차지하고, 골든글러브까지 차지하는 등 선수로서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2]
당시 끝판왕이었던 이종범과 그 2인자급의 유지현이 있어서 그렇지, 유격수로 준수한 타율과 좋은 수비 발빠른 도루, 2020년 현재 김하성이 없는 KBO를 생각해보자. 그 정도 성적이면 당장 골글감이다. 현재 박찬호와 동급의 발과 컨택, 그리고 조금 더 좋은 선구안을 생각하면 된다.
또 하나 추가하자면 93년 OB가 쌍방울 김원형에게 노히트노런을 당했는데, 유일하게 볼넷으로 걸어나가 퍼펙트 게임을 막았다고 한다. 당시 기사
그 밖에 한국시리즈에 유난히 강했으며, 1995년 한국시리즈에선 MVP를 수상하기도 하였다.[3] 다만 그 후의 한국시리즈였던 2000년에는 평범했고 2001년에는 엔트리에 들지 못했다.[4]
2000년까지는 2할 7푼 찍으며 제 몫을 해내던 선수였지만, 2001년부터 타격감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2002년은 주전 유격수임에도 1할대 타율을 찍고 만다. 풀타임을 뛰었다면 1997년 박진만이 기록한 0.185의 기록을 깰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2003년 시즌 중반부터 손시헌이 유격수 주전을 차지하기 시작하자 그 해 말 현역에서 은퇴했다. 2004년에는 두산 현역 선수 중 3번째로 은퇴식을 치렀다. 동명이인인 그분도 소속팀에서 은퇴식을 치렀다.[5]
여담으로 역대 1,000경기 이상 출전한 유격수 중 유격수 출장 비율(1075G/1113G)이 가장 높다.
그리고 흑역사가 있는데, 바로 폭행사건으로 입건한 적이 있다.

3. 지도자 시절



3.1. 두산 베어스


[image]
두산 베어스 코치 시절.
2004년부터 두산 베어스에서 수비코치와 주루코치를 맡았다가 2012 시즌이 끝나고 두산 베어스와 재계약에 실패했다.
두산 시절에 있던, 2007년 한국시리즈에서 은근히 당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밴클이 터져서 성질부리는 뜨또를 다시 벤치로 불러들였지만 화가난 뜨또가 김코치를 몸으로 세게 밀쳐내고(....) 빠따를 집어던지는 모습을 보였다.
공수 교대 중엔 관중석의 관중들과 캐치볼을 하기도 하였다.
두산 팬들은 김민호가 나가고 들어온 코치가 하필이면 한화 시절에 삽질로 유명한 김민재인지라 걱정스러운 반응이었다.

3.2. LG 트윈스


[image]
LG 트윈스 코치 시절.
LG 트윈스에서는 능력이 좋았지만 두산과 재계약하지 못한 김민호 코치를 영입해서 2군 코치진을 보강했다.[6][7]
LG 트윈스에서 박종호와 같이 2군 수비코치를 맡아 제 몫을 했으며, 그러다가 2014년 LG 트윈스의 1군 1루, 외야코치가 되었는데 LG 팬들 사이에서 평가가 꽤 좋은편이다. 최태원을 몰아내고 다음년도 3루 작전코치를 해달라고 염원하는 LG 팬들이 많은 편.

3.3. KIA 타이거즈


[image]
그런데 2014년 11월 2일, 김기태 감독의 부름을 받고 KIA 타이거즈로 이적했다.
그 와중에도 김민호만 떠나고 최태원이 '또' 잔류에 성공해서 3루 코치를 맡게 되자, LG 팬들 역시 김민호 코치가 떠나는 게 아쉽다는 반응이다. 더군다나, 후임 1루 코치인 한혁수가 지도자 경력이 짧다는 점도 어느 정도 있고.....
KIA 타이거즈 팬들에게는 위아래 코치라는 별명이 붙었다. 내-외야를 아우르는 수비코치 능력과 김민호 코치 특유의 학습방법이 동영상에 뜨면서 화제가 되었기 때문.
2015 시즌이 어느 정도 진행된 시점에서는 KIA 수비진들의 안정화를 가져다 주면서 투수진의 평균자책점 하락을 동시에 가져온 공로가 인정되면서 능력있는 코치로 팬들의 신뢰를 받았다. 특히 팀 실책 개수가 리그 최소 2위라는 부분이 증명하듯 영건들의 수비능력 상승과 센터라인 부재의 수비 측면에서 해결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데 일조를 했다.
하지만 2016 시즌부터는 뜬금없이 KIA 타이거즈 2군으로 내려가고 김창희가 1군 수비코치로 올라오게 되었는데, 팬들 사이에서는 능력 검증된 1군 수비코치를 2군으로 보내고 무능력한 2군 코치를 1군으로 올려서 자리를 보전해줄 생각을 한다고 프런트를 까고 있다.
결국 시즌 종료 후 다시 1군으로 올라왔고, 김창희 코치가 다시 2군으로 내려갔다.
2017년 수리 불가능 판정을 받을 만큼 심각한 김선빈 위로 뜬공을 고쳤을 뿐더러, 돌글러브로 평가받던 최원준의 내야수비마저 조금씩 교정되기 시작하면서 기아팬들에게 찬사를 받는 중.
그렇지만 수비 시프트가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한 결과가 많다.
게다가 선수단 전체적으로 수비능력이 떨어지고 있다. 근데 이건 사실 기아 선수단 전체의 노화 탓도 있어서 전적으로 김민호 코치 탓으로 돌리기는 어렵다.
2019년 5월 17일, 김기태가 스스로 물러나고 김기태 사단도 모두 2군으로 내려가면서, 김민호 코치는 수석코치로서 박흥식 감독대행을 보좌하게 되었다.
김기태 사단으로 분류되는 인물이었지만 능력에 대해 긍정적인 평이 제법 많았고 2020년에도 KIA의 유니폼을 입으며 수비코치로서 함께 하게 되었다.
그러나 2019년 11월 23일 안타깝게도 장남 김성훈이 불의의 사고로 요절하며 참척의 아픔을 겪게 되었다. 팬들은 아버지로서 이 사실이 믿기지 않고 상심이 크지 않을까 걱정스러운 반응이다. 이로 인해 원래 1군 수비코치로 합류할 예정이었으나 잔류군에서 선수를 지도하는 것으로 결정했다고 한다.

3.4. LG 트윈스 2기


11월 26일 LG 트윈스에 코치로 부임할 예정이라는 기사가 나왔다. 보직은 1군 수비코치이다.

4. 기타


첫째 아들 김성훈이 남양주 리틀야구단을 거쳐 경기고를 나왔는데, 사상 첫 3연타석 홈런을 친 적이 있다고 한다. 두산 팬들은 유망주라고 기대했었고[8], 이후 타격부진으로 고교 3학년 때 투수로 전향했다. 그리고 2017년 신인드래프트에서 한화 이글스에 2차 2라운드 지명을 받아 한화 이글스 선수가 되었다. 그러나 2019년 11월 23일 실족사로 첫째 아들을 먼저 하늘로 떠나보냈다. 둘째 아들 김성원은 현재 오버워치 프로게이머로 활동 중이다.[9].
코치로서는 선수들이 놀이와 훈련을 겸할 수 있도록 다채롭고 흥미로운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KIA 시절 '위아래'라는 별명이 붙게 된 '방망이 따라 글러브 움직이기'나 홈에 타이어 갖다 대고 타이어 중앙으로 송구하기 등 특이한 훈련들을 선보이는 등 훈련 집중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노력을 끊지 않고 있다.

2017년 골든 글러브 시상식에서 신혼여행을 떠난 안치홍을 대신하여 무대에 올라 수상 소감을 전했다. 참고로 본인의 커리어하이 시즌인 95년도에 유격수 골든글러브에 선정됐는데 허리 부상으로 입원 중이었던 터라 아내가 대신 받아서 아쉬웠는데, 대리수상으로도 나와서 영광이라는 소감을 전했다. 95년 당시 대리 수상 사진 17년 사진

5. 역대 성적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1993
OB 베어스
113
272
.239
65
8
2
0
21
28
12
17
.283
.280
1994
126
426
.275
117
13
0
8
34
57
17
43
.362
.340
1995
113
400
.288
115
24
3
2
30
'''79'''
(3위)
'''47'''
(2위)
42
.378
.353
1996
15
59
.271
16
5
0
0
6
8
2
3
.356
.302
1997
122
467
.238
111
13
'''5'''
(5위)
6
34
75
'''46'''
(3위)
52
.325
.314
1998
112
371
.226
84
16
4
1
19
36
22
26
.299
.276
연도
두산 베어스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1999
132
458
.273
125
17
6
3
46
70
'''37'''
(4위)
40
.356
.329
2000
99
288
.250
72
9
2
3
32
40
'''23'''
(5위)
26
.326
.311
2001
109
306
.216
66
17
2
4
29
42
14
38
.324
.299
2002
95
160
.156
25
3
1
2
11
14
7
15
.225
.223
2003
77
193
.218
42
7
0
0
15
23
5
15
.254
.268
<color=#373a3c> '''KBO 리그
통산'''(11시즌)
1113
3400
.246
838
132
25
29
277
472
232
317
.326
.308
[1] 5월 17일부로 보직변경[2] 1995년 유지현과 이종범이 모두 방위병 복무를 했는데 소속팀 성적과 골든글러브에 영향을 줬다.[3] 2차전에서 대불상수가 밀어내기 볼넷으로 패전을 뒤집어썼는데 볼넷을 허용한 마지막 타자가 김민호였다.[4] 오히려 2000년은 2차전에서 수비실책을 했다. 다만 홍성흔이 송구실책을 했던 것 인지라 김민호의 잘못은 아니다.[5] 심지어 1995년 한국시리즈에서 맞대결까지 했다.[6] 이 무렵 계형철신경식도 영입했고, 경헌호가 은퇴하면서 2군 코치를 맡게 되었다.[7] 여러가지로 보면 김기태 감독의 인맥인 듯하다. 국대시절 이 둘은 코치로서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우승도 경험했다.[8] 경기고는 두산 베어스의 지역 연고 학교이다.[9] 현역 시절 아버지의 등번호 42번에서 따온 doosan42가 김성원 선수의 트위치 아이디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