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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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現 한화 이글스 2군 감독.
2. 플레이 스타일
LG 트윈스 이적 후 누적된 팔꿈치 부상과 어깨 수술이 겹쳐 기교파 투수로 스타일을 전환했지만, 현대 시절엔 하체를 잘 이용한 안정된 밸런스에서 나오는 140km/h 초중반대 속구를 던졌던 파워 피쳐였으며, 특히 낙차 큰 커브가 일품이었기 때문에 긁히는 날엔 두자릿수 탈삼진도 기록하곤 했다. 다만 평균 이하의 체력으로 많은 이닝을 소화해 주는 타입은 아니었다. 요약하자면 4, 5선발에 최적화된 투수. 현대시절에는 일요일 투수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3. 선수 경력
인천고등학교와 단국대학교를 졸업하고 1996년 연고 팀 현대 유니콘스의 1차 지명을 받아 입단하였다. 1998년에 팀의 5선발로 뛰며 10승[4] 5패, 평균자책점 3.04를 기록하면서 두각을 나타냈다. 당시 현대는 정민태-정명원-김수경-위재영-최원호로 이어지는 5명 모두 10승 투수라는 무시무시한 선발진을 자랑했다.[5]
1998 시즌 후 12월 방콕 아시안게임 야구대표팀 엔트리에도 이름을 올리며 금메달로 병역 특례까지 받았다. 그러나 다음해인 1999년에는 자주 난조를 보이며 부진했고[6] , 결국 1999년 10월 18일 심재학을 상대로 LG 트윈스로 트레이드되어 은퇴할 때까지 LG에 몸담았다.
이후 2000년 부진, 2001년은 날렸고 다시 2002년에 1군에 복귀하며 하위 선발을 맡았다. 그리고 2002년 포스트시즌의 첫 경기인 현대와의 준플레이오프 1차전에 선발투수로 등판하여 7.2이닝 3실점으로 호투하며 승리투수가 되었다. 하지만 2002년 한국시리즈 6차전 9회말 이승엽에게 동점 3점 홈런을 맞고 강판당한 이상훈을 구원하여 9:9 상황에서 등판했지만, 바로 다음 타석에 나온 당시 KS 때 절정의 타격감을 자랑하고 있었던 마해영에게 통한의 '''끝내기 홈런'''을 맞고 말았다. 결승 홈런을 친 마해영이 그라운드를 돌며 홈인하는 동안, 그는 마운드에 주저앉은 채 눈물을 흘리며 극명한 대조를 나타냈다. 이 홈런으로 패전 투수가 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그 전에는 한국시리즈 3차전 때 사실상의 위장 선발이나 다름없는 전병호와 선발 맞대결에서 완패를 당하며 한국시리즈에서만 2패를 기록하는 등, 2002년 한국시리즈에서 가장 큰 상처를 입은 선수로 기록되었다.
이렇게 최원호는 2002년 LG 트윈스 가을야구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투수가 되었으며, 그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LG는 잃어버린 10년을 보냈다.
이후 2003~2004년은 평범한 하위선발 정도의 모습을 보였으나 2005년 13승 6패를 기록하며 선수생활 최고의 해를 보냈고, 팀의 유일한 10승 투수가 되었다. 당시 부상에서 갓 복귀한 엘승호, 레스 왈론드, 김광삼, 장문석 등의 한숨 나오는 선발진에서 그나마 에이스 노릇을 하며 암흑기 LG 투수진의 버팀목으로 떠올랐다. 다만 2006~2007년 성적은 다시 제자리였다는게 아쉬운 부분.
그리고 2008 시즌 개막을 앞둔 3월 24일 10세 연하의 프로골퍼 한희진과 결혼했는데, 한희진은 전 프로골퍼 한희원의 사촌 동생이어서 그녀의 남편인 손혁과는 사촌 동서지간이 되었다.
2008년 성적은 11경기 출전에 1승 5패, 평균자책점 5.90으로 이미 확연한 하락세였으나[7] , 2008년 시즌 종료 후 LG와 FA 계약을 맺었다?! 사실은, 당시 FA 대어였던 이진영, 정성훈 2명을 데리고 오기 위해서는 당해의 리그 전체 FA 신청자가 8명 이상이어야 했는데, 그 당시 FA 신청자가 7명밖에 안 되어서 LG 프런트가 FA 신청요건이 들어맞던 최원호에게 FA를 신청하도록 종용했다고 한다. FA 계약금과 1년 연봉을 받고 또 다시 계약금을 받고 연봉도 챙겨서 한 7억은 챙긴 것으로 보인다. 그것 때문에 LG의 먹튀 리스트라고 누군가가 만든 것에 포함되기도 했다.
김재박 감독이 2009 시즌 중반 이후 포스트시즌 진출 탈락이 거의 확정되었음에도 유망주를 기용하지 않고 최원호 등 노장들만 주야장천 기용한 것 때문에 골수 LG 팬인 최훈 작가가 대놓고 디스하기도 했다. 결국 감독이 육성을 중시하던 박종훈으로 바뀌면서 2010 시즌에는 1군에 올라오지 못하고 2군에서 던지다가 시즌 종료 후 은퇴했다.
4. 지도자 경력
4.1. LG 트윈스 시절
고향 팀 SK 와이번스로 간다는 소문이 있었지만, LG에 남아 재활 코치가 되었다.
감독이 김기태로 바뀐 2012년에는 2군 투수코치를 맡았으나, 시즌이 끝난 후 사직하고 2013년 1월 최원호 피칭연구소를 개원했다. 박명환도 2013 시즌 들어가기전 훈련을 여기서 받고 있는 중이라고. 그리고 LG의 전설의 사이버투수 김유선도 들린다고 한다. 2013년 말부터 2014년 6월까지 정재복도 여기서 훈련을 하다가 넥센 히어로즈에 입단하였다. 세 사람 모두 최원호와는 LG시절 팀 선후배 사이다.[8]
4.2. 한화 이글스 시절
4.2.1. 2020년
2020년을 앞두고 한화 이글스의 퓨처스 감독을 맡게 되었다.
시즌 중 한용덕 감독이 성적부진으로 자진사퇴를 하면서 감독대행을 맡으면서 본격적인 KBO 지도자 커리어의 시험대에 오르게 된다.
4.2.2. 2021년
20시즌 종료 이후 마무리 캠프 지도까지 끝낸 뒤 카를로스 수베로 감독의 선임과 함께 2군 퓨처스 감독으로 복귀했다. 함께 1군으로 올라왔던 정경배 코치 역시 다시 2군으로 복귀하게 되었다.
5. 해설위원 경력
2014년 XTM의 야구 해설위원을 맡게 되었다. 해설자로서의 전반적인 평은 나쁘지 않은 편. 피칭연구소장답게 나름의 야구 분석론을 갖고 있고 목소리도 듣기 좋다. 스타 플레이어 출신 해설자들에 비하면 겸손하다는 것이 장점이며, 또 만담만 하는 어설픈 선수 출신들에 비하면 깊이가 있다. 최고의 해설을 꼽을 때는 생각만큼 자주 거론되지 않지만 불호여론이 거의 없는 무난하면서도 좋은 해설자.
2015 시즌부터는 KBO 중계권 계약이 끝난 XTM 대신 SBS Sports로 옮겼다. 이적 후에는 주로 이종열 해설과 함께 파트너를 이뤄 3인 중계체제로 나왔고 지상파에서는 이순철과 공동 해설을 하기도 했다. 2015 WBSC 프리미어 12 기간에는 조별예선 잔여경기와 8강전동안 이종열과 공동 해설을 맡았다. 사실 이순철-이종열-최원호 세 사람은 한때 한 팀의 감독(이순철)과 선후배 선수 관계로 몇년간 생활한 적이 있어서 어느 정도 서로 익숙함은 있다. 단, 이종열과 최원호의 관계는 야구관에 있어서 썩 맞지는 않는데, 이로 인해 더 재미있는 공동 해설 케미를 이뤄 시청자들에게는 오히려 재미를 주고 있다. 두 사람의 관계는 이종열 항목 참조.
2015년 4월 1일 홍성흔의 통산 600볼넷 기록이 달성되자 저 기록의 상당수는 본인이 헌납한 것이라며 자학이라는 소리를 했다. 그런데 SBS의 기록원이 찾아본 결과 홍성흔을 상대로 한 볼넷은 단 한 개 뿐이었다.
2015년 7월 27일 SBS Sports의 야구 프로그램 주간야구에서 최 해설위원 혼자서 5위 후보를 KIA 타이거즈라고 말했다가 비웃음을 당했다. 그 때 당시 기아는 승패마진 -6을 기록하여 5위와 4경기 반 차로 7위를 기록하고 있었기 때문. 그런데 그 뒤로 귀신같이 6연승하여 5할을 사수하자 KIA팬들이 그를 찬양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9][10]
6. 여담
- 1998년 10승을 기록하여 1998년 방콕 아시안 게임 대표팀 엔트리에 뽑혀 병역 특례를 받았는데 그 후 급격히 하락세를 타며 2005년 13승을 기록한 걸 제외하면 매년마다 기대치에 준하지 못하는 아쉬운 성적을 냈다. 애시당초 파워피처도 아닌 맞춰잡는 스타일이라 구위가 별로였고...
- 한 때 프야매 초기에 8코 제한이 있던 시절 몇 안되는 LG 8성 선발이었다.
- 박명환야구TV에서 가끔 이름이 언급된다. LG트윈스 시절 투수조 고참이었다고. 류택현(71년생) - 최원호(73년생) - 오상민(74년생) - 신윤호(75년생) 그리고 투수조장 박명환(77년생) 순이었던 듯...
- 한국야구계의 대표적인 학구파로, 피칭연구소 설립과 대학 강의 등으로 피칭 이론을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전파하고 있으며, 모교 단국대에서는 운동역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이 때문인지 어깨는 쓰면 쓸수록 강해진다는 구시대적 야구관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다. 영상 그도 그럴것이 박사학위 논문 주제부터가 “야구 투구 동작 시 주관절 손상여부에 따른 고관절 움직임의 생체역학적 특성 분석”이다. 즉, 단순한 신념이 아니라 그걸 연구해서 박사학위 논문으로 썼으니 이론을 바탕으로 말하는거다. 그래서인지 한용덕이 사퇴한 뒤 감독대행이 되자 박동님, 야박님이란 별명이 붙었다.
- 서울대학교에서 야구 교양수업을 맡기도 했었다.
- 조카가 KBS의 오디션 서바이벌인 아이돌 리부팅 프로젝트 - 더 유닛의 여자부 출연자 중 한 명인 S.I.S의 세빈이다. [11]
- KIA의 맷 윌리엄스감독이 KBO 1군 감독들에게 인사차 와인을 선물한적이 있었다. 원래 최원호 감독대행이 제일 먼저 받았으나 이후 KT의 이강철 감독이 수원의 명물인 왕갈비세트를 답례품으로 선물한 것을 시작으로 키움의 손혁 감독이 고향 전통주인[12] 한산소곡주와 아내가 직접 고른 전통문양으로 디자인된 와인커버, 안경케이스, 컵받침대를 선물하였고 삼성 허삼영 감독은 감으로 만든 와인, 두산 김태형 감독은 우승 기념으로 만든 자신의 얼굴이 박혀있는 소주, 그리고 다시 자신의 차례가 오자 답례품으로 인삼주를 선물했다.
- 사촌 손윗처남인 손혁 감독과는 야구인 선후배를 넘어 가족이다보니 시즌 중에도 야구장 밖에서 자주 만나는 듯하다. 일주일에 한 번씩 일요일마다 처가집에서 가장 큰 어르신을 모시고 아침식사를 하는 가족 문화가 있어서 그때마다 손혁을 만난다고 한다.
7. 연도별 주요 성적
8. 감독 성적
9. 관련 문서
[1] 1992학번[2] 2020 시즌을 2군 감독으로 시작하였으나 6월 8일부로 1군 감독 대행을 맡아 잔여 시즌 동안은 전상렬 코치가 2군 감독을 맡았다.[3] 2020년 시즌이 끝난 뒤, 2군 감독으로 복귀하였다.[4] 구원승 1승 포함.[5] 이후 17년 뒤인 2015년 삼성 라이온즈가 윤성환-피가로-클로이드-차우찬-장원삼으로 전원 선발 10승이라는 기록을 세우게 된다. 2018년 두산 베어스 역시 조쉬 린드블럼-세스 후랭코프-이용찬-이영하-유희관(구원승 포함)까지 선발 투수 10승을 거두었다. [6] 애초에 99현대의 투수진은 정민태를 빼면 거의 다 부진했다.[7] 그래도 이전에는 4점대 평균자책점을 찍으면서 하위선발로서 역할은 그럭저럭 하던 수준이었는데 08년 성적은 그 것도 아니었다.[8] 현장 복귀한 2020년 이후에는 폐원했다.[9] 당시 유일하게 5위 SK를 맞춘 사람은 안치용.[10] 롯데가 9월 최악의 부진으로 먼저 나가떨어지고 SK의 마지막 경기 승리로 한화도 제외된 이후에도 SK가 5위를 확정짓지 못하고 매직넘버는 기아가 갖고 있었다. [11] 현실이 됐다면 추가합격으로 간신히 붙은 동기 중 비슷한 또래는 3차, 무소속이었던 언니는 전 소속사의 데뷔 동기였던 그룹의 팬덤을 업고 무려 최종 4위를 찍은 걸 감안하면 전폭적인 야구인들 지지를 업는건 그냥 게임 끝이었다...[12] 정확히는 충청남도 서천군[13] 한용덕 감독 경질 이후 감독대행[14] 역대 감독대행 최다 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