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수(타자)/선수 경력
1. 프로 경력
입단 전에는 텍사스 레인저스의 구애를 받고 총액 100만 달러를 제시받았으나 이를 거부하고, 2009년 삼성 라이온즈의 1차 지명을 받아 계약금 2억 8천만 원, 연봉 2천만 원의 조건으로 입단했다. 김상수는 입단이 확정되자마자 삼성 라이온즈로서는 이례적일 정도로 많은 언플을 받았는데, 특히 선수에 대한 평가가 박하기로 유명했던 김응용 당시 삼성 라이온즈 사장으로부터 '''(고교 시절의) 이종범보다 낫다'''라는 말을 들었을 정도였다.
여담으로, 김상수가 경북고등학교 2학년이던 2007년, 엠엘비파크의 한 유저가 박진만 이후의 삼성의 차기 주전 유격수가 김상수가 될 것이라는 예측글을 올린 적이 있었다. 당시에는 다른 사람들이 모두 허황된 소리라고 일축했었으나[1] 결국 사실이 됐다.
1.1. 2009 시즌
삼성 라이온즈의 선동열 감독은 시즌 시작 전에 김상수를 1번 타자에 주전 2루수로 기용할 것이라는 선언을 하게 되고, 실제로 시범경기서 타율 0.348(2위), 안타 16개(공동 1위), 도루 8개(1위)로 맹활약하며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 본 시즌에서는 4월 초반 팀 타선이 전체적으로 침체된 상황에서 빠른 발과 고감도 타격을 선보이며 '''2루타 머신''', '''제 2의 이종범''' 등의 수식어를 들으며 맹활약하였다. 아마 김상수 커리어상 월간 기록이 가장 좋을 때였다고 봐도 될 정도로 미친 듯이 활약했다.
하지만 5월 들어서 몸쪽 변화구의 약점이 드러나고 또한 체력 문제까지 겹치는 등 신인의 한계가 드러나며 부진한 성적을 기록하기 시작한다. 게다가, 김상수 입단 전 원래의 2루수 주전으로, 성적이 영 시원치 않아서 영원한 1할 타자라는 비아냥을 듣던 신명철은 포텐셜이 폭발하며 3할대 타율을 찍기 시작, 시즌 시작 전 김상수의 자리로 내정되어 있었던 주전 2루수와 1번 타자 자리를 모두를 꿰차게 된다.
그리고 6월 중순, 지승민과 함께 A형 간염에 걸려 전력에서 이탈했다. 그리고 김상수가 1군 엔트리에서 빠지자, 신명철도 다시 1할을 찍기 시작. 다행히 7월 김상수가 복귀하자 신명철의 타율은 3할으로 복귀하였다.
8월 30일 SK 와이번스와의 홈 경기에서 2대0으로 뒤진 7회말 1사 1, 3루 찬스에서 1루주자였던 박석민을 대신해 대주자로 투입되었으나, 선발 투수였던 게리 글로버의 집중 견제를 받다가, 결국 추격에 찬 물을 끼얹는 견제사를 당하였다. 그 후 안타가 나오면서 이 견제사는 너무 뼈아팠다.
최종 성적은 타율 0.244 OPS 0.631 59안타 17타점 18도루.
시즌 초반에는 맹활약으로 신인왕이 무난할 거라는 예측이 있었으나, A형 간염에 걸린 후 경기감이 떨어지며 신인왕에 오르지 못했다. 결국 2009 시즌 신인왕은 세이브 타이틀을 차지했던 두산 베어스의 이용찬이 가져갔다.
일각에선 김상수의 1군 엔트리 등재 여부에 따라 신명철의 활약도가 극과 극을 달린다는 점에서, 김상수의 팀내 가장 중요한 역할은 '''신명철의 부스터''' 라는 의견을 제기하였다. 일명 상수로이드.
또한, 시즌 시작 전 선동열 감독의 인터뷰로 김상수의 주전 등극이 예상되자, 삼성 라이온즈 응원단 측에서는 만년 쩌리 백업 선수 강봉규의 응원가를 용도 변경하여 김상수의 응원가로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강봉규도 신명철이랑 함께 포텐이 터졌다!'''
1.2. 2010 시즌
시즌 극초반 대주자로 나와 도루를 하다 손가락 부상을 당해 실질적인 1군 합류는 5월 초반부터였다. 하지만 합류하자마자 박진만의 급격한 노쇠와 부상으로 공백이 된 주전 유격수 자리를 차지했다. 수비에 있어서는 민첩함과 센스를 갖춘데다가 어린 선수답지 않은 노련한 플레이를 보여주어 삼빠들을 설레게 하고 있다. 타격은 기대치에 비해 많이 부족한 모습을 보였는데, 타격 센스는 나쁘지 않으나, 작은 체구의 문제로 장타력이 떨어져 안타가 될 타구도 땅볼이 되는게 문제. 하지만 2009 시즌에 비해 출루율이 비약적으로 상승했으며, 여전히 기복이 심해서 못할 때는 정말 바닥까지 칠정도로 못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잘할 때는 루키시즌에 겪었던 몸쪽 변화구 약점같은 것도 전혀 문제가 안될정도로 잘하는 모습을 보이며 뭇 삼성팬들의 가슴을 설레게 만들고있다. 양준혁이 은퇴를 선언하고 나서 몇몇 타자들에게 특타를 실시한 적이 있는데, 그 일주일간의 김상수의 성적은 끝내기 안타를 포함하여 참 아름다웠다.
최종 성적은 타율 0.245 OPS 0.634 69안타 22타점 30도루.
2010 포스트 시즌 들어서 미친 듯한 활약을 펴기 시작했는데, 두산 베어스와의 플레이오프에서 본인의 첫 포스트시즌 임에도, 안정적인 수비[2] 는 물론이고 공격에서도 포텐이 터진듯한 완벽한 모습을 보여 팀의 시리즈 3승 2패 승리를 이끌었다. 시리즈 MVP는 1, 4차전에서 결승타를 쳐 MVP를 차지한 박한이에게 돌아갔으나, 많은 야구 관계자들 및 팬들이 김상수를 숨은 MVP로 꼽았다.
김상수는 2010년 플레이오프에서 19타수 9안타 2볼넷 2사구(死球) 1도루 5타점 5득점, 타율&장타율 .474, 출루율 .565를 기록했다. 특히 2010년 10월 13일에 있었던 마지막 5차전에서 5타수 4안타 2타점 이라는 큰 활약을 보이며 11회 연장접전끝에 팀이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는데 큰 힘을 보탰다.
포스트시즌에 보여준 대활약으로 벌써부터 삼빠들은 류중일-박진만을 이을 차세대 국가대표급 삼성 유격수 라인으로 김상수를 올리는 등 한층 업그레이드된 삼레발을 떨었고, 관계자들도 꽤 기대하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한국시리즈에 들어서자, SK 와이번스는 플레이오프에서 타선의 중심이었던, 김상수와 박한이를 봉쇄하는데 주력하였고, 결국 한국시리즈에선 타율 0.077로 완전히 봉쇄당하며 부진하였다.
그리고, 한국시리즈에서 시리즈 전적 4패로 일방적인 패배를 당하고 난 뒤, 준우승 트로피 시상을 해야하는데, 갑작스럽게 트로피를 김상수 혼자 나와서 받자 팬들은, 고참들이 지들이 쪽팔리니까 팀 막내한테 모든 걸 다 떠맡긴다면서 분노하기도 하였다.
종합하면 2010년 한국시리즈에서 13타수 1안타 1볼넷 1사구(死球) 타율&장타율 .077, 출루율 .200을 기록했고, 2010년 포스트시즌에서 32타수 10안타 3볼넷 3사구(死球) 5타점 5득점, 타율&장타율 .313, 출루율 .421를 기록했다.
시즌 후 박진만이 팀을 떠나자, 등번호 7번을 차지했다.
1.3. 2011 시즌
개막 이후로 주전 유격수로 활약중이다. 수비 능력은 흠잡을 때 없이 완벽하지만, 타력이 낮아 걱정하는 팬이 많다. 5월 3일 기준으로 .224 .277 .290의 비율 스탯을 기록하고 있으며 홈런은 0개, 도루는 1개다. 조동찬이 극심한 부진을 겪다가 부상으로 2군에 갔기 때문에 한동안 유격수 자리를 빼앗길 이유는 전혀 없지만, 타격이 적어도 2010 시즌 수준으로 올라오지 않는다면 장기적으로 봤을 때 타자로서의 기대는 포기해야 할 정도다. 하지만 아직 경기를 많이 치룬 상황이 아니고 그나마 타율이 1할대에서 오르고 있는 중이니 성급한 판단은 금물.
5월 8일 대구 對LG전에서 선발 박현준를 상대로 2회말에 데뷔 홈런을 터뜨렸다. 가운데로 몰린 슬라이더를 때려 펜스를 넘겼는데, 통산 228경기 610타수만의 홈런. 채상병의 투런 홈런 직후에 나온 백투백 홈런이었는데, 정작 던진 투수 박현준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고 이 광경을 본 후 삼갤 반응은 '''보고도 믿을 수 없다'''. 덤으로 KBO 최초 팀 3,500홈런이기도 하다.
6월 14일 對LG전에서 또다시 선발 박현준를 상대로 3회말 원아웃, 스코어 0:0 상황에서 홈런을 터뜨렸다. 통산 홈런이 단 2개인데 모두가 박현준를 상대로 쳐낸 것. 그리고 박현준은 다음에도 수비 실책 등으로 연달아 5실점을 내주며 패전 투수가 되었다. 이 날의 홈런으로 특이한 기록이 하나 생겼는데, 바로 이 해 박현준에게 홈런을 가장 많이 뽑아낸 선수가 바로 이 김상수라는 것.
시즌 초의 부진에도 불구하고, 5월 말부터 김상수는 타격에 관하여 각성하게 된다. 6월에 들어서는 타격이 일취월장하여 월간 타율이 4할대를 넘어서기에 이르러 7월 1일엔 타율 .288을 기록, 3할을 바라보고 있다. 해설가 허구연에 따르면 조성환의 타격 폼을 따라했으나 올 시즌 포기하였다고 한다. 근데 그러고 나서 타율이 올랐다.
다만 유격수 치고 7월까지의 실책이 20개로 좀 많은 편인데[3] , 안타성인 타구를 처리하다가 실패하는 경우에는 에러를 기록하지 않는 경우가 많음을 고려하면, 넓은 수비범위를 감안해도 다소 아쉬운 부분이다.
결국 실책 22개로 2011년을 마감, 실책왕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김성근 감독의 칭찬에 무색하게 삼성팬들을 울리는 수비를 보여주면서 아쉬움을 자아냈다. 그래도 공격 측면에서는 한층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SK 와이번스와의 2011년 한국시리즈에서 18타수 6안타 1볼넷 2도루, 타율 .333, 장타율 .444, 출루율 .368를 기록하며 전년도 한국시리즈보단 공격력에서 확실히 향상된 모습을 보였고, 팀은 시리즈 전적 4승 1패로 우승했다.
1.4. 2012 시즌
1.5. 2013 시즌
1.6. 2014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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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개의 도루를 기록하며 처음으로 50도루를 돌파하며 도루왕에 오른다. 이는 2014년까지 구단 단일 시즌 최다 도루기록[4][5] 이었으며 구단 최초의 개인 50도루 기록이기도 하다. '''구단 최초의 도루왕'''이 되었으며, 유격수 전 경기 출장도 달성한다. 이러한 활약을 바탕으로 아시안 게임 국가대표에 발탁됐으며 금메달 획득으로 병역 특례까지 받았다.
1.7. 2015 시즌
1.8. 2016 시즌
전지훈련 동안 다소 가벼운 배트를 바꿔 간결한 스윙과 함께 타율을 끌어올리겠다고 공언했으나 예년에 비해 크게 달라진 게 없다. 다만 손가락 상태가 안 좋은 상태에서 계속 주전으로 출장하는 영향도 있고, 같은 팀에 더 심하게 부진한 선수도 있는지라 상대적으로 묻어가는 편.
4월 24일 kt전에서 7회말 안타를 치고 출루한 후 이어 이영욱의 안타로 3루까지 내달리며 슬라이딩을 하다가 왼쪽 발목을 접질렀다. 당일날 검진에서는 인대나 뼈에 이상은 없다고 나왔는데, MRI 촬영 결과 인대 손상을 진단받아 4월 25일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복귀까지는 3~4주 정도 걸린다고.
그 후 아롬 발디리스와 함께 재활을 거쳐 2군 훈련에 합류했으나 5월 25일 2군 경기 중 다시 통증이 재발, 다시 휴식을 거친 후 1주 후 다시 훈련에 합류했다. 작년부터 이리저리 아프던게 결국 터진 셈. 6월 5일 대퇴사두근 통증으로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된 조동찬을 대신해 1군에 복귀했다.
6월 5일 드디어 1군에 출장. 첫타석 부터 1타점 적시타를 쳐내며 삼성 팬들은 드디어 김상수가 돌아왔다며 좋아했지만... 7회 귀신같은 송구실책을 범하면서 팀의 역전패에 일조하여 삼성 라이온즈 갤러리에서 신나게 까였다.
그러나, 6월 7일 LG전 1사 만루 '''역전 싹쓸이 3타점 2루타'''를 쳐내며 그날 하루만큼은 삼팬들의 석고대죄를 받아냈다. 참고로, 이 안타가 6월 삼성의 만루 상황에서의 첫 안타다. 그것도 10번째만에...
6월 25일 kt전에서 9회초 2사에 1점차로 리드하는 수비상황에서 이대형의 타구를 실책을 저질렀다. 이후 이대형이 2루 도루하면서 급격히 심창민은 흔들리고 결국 오정복에게 동점 적시타를 허용하면서 4점차 리드가 하루아침에 동점이 되고 말았다. 그 후 10회초에 kt한테 역전을 당해 팀은 13대8로 패를 당해 9위로 추락하게 되었다.이날 김상수는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이날 경기 4타수 무안타를 기록하며 2할 5푼 4리로 떨어졌다.
7월 9일 한화전에서 기어이 '''5타수 무안타'''를 기록하여 타율이 2할 3푼대로 떨어졌다. 그러나 8월 들어 타격감을 찾았는지 아니면 바빕신의 가호가 내린 것인지 타율을 회복하고 있다.
시즌 마지막 경기인 10월8일 문학 sk전에서 정말 오랜만에 1번타자로 출장했다. 특히 이 날은 전병두의 은퇴식이 있는 프로통산 마지막 경기인데 이 날 딱 한 타자만 상대하고 마운드를 내려가기 때문에 김상수가 전병두의 프로통산 마지막 상대타자가 되었다. 결과는 유격수 땅볼 아웃. 공이 너무 좋아서 잘 못 쳤다고 인터뷰해서 호감을 얻어냈다. 사실 김상수가 1,2구는 지켜보다가 4구째부터 스윙해서 5구를 쳤는데, 전력질주하지 않고 아웃당했다.
사실 올해 김상수의 부진은 다소 예고된 감이 있다. 다른 야수 포지션에서는 어느 정도 백업 자원을 확보해 놓은 삼성이 유독 유격수 자리에서는 백업을 구하지 못해 김상수가 계속 출장해야 했고, 그로 인해 쌓여온 피로가 이번 시즌에 터져버린 것이다. 왕조 자리를 지키던 시기에는 리빌딩 차원에서 유망주들이 1군에서 경험치를 쌓도록 한다는 게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던데다, 유격수 출신의 류중일 감독 특유의 유격수 자리는 전문 유격수가 맡아야 한다는 야구지론도 있었기 때문. 류중일 감독의 입장에서는 1군 레귤러라 할 만한 유격수가 김상수밖에 없었고, 김상수는 좋든 싫든 발전하든 말든 받쳐줄 선수가 없으니 계속 경기에 나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왕조 시기의 홈구장이 박진만의 무릎도 갉아먹었던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이었으니...
1.9. 2017 시즌
FA계약으로 KIA 타이거즈로 떠난 최형우의 보상 선수로 강한울이 영입되어 과거처럼 쉬지 못하고 매경기 출전하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16시즌 두 선수의 기록을 살펴보면 경기수, 타율, 2루타, 도루 개수가 거의 비슷하거나 같다. 한편 김상수는 전문 유격수로 지난 시즌 105경기를 유격수로만 출전했지만, 강한울의 경우는 2루수와 유격수가 가능한 자원으로 지난 시즌 유격수 97경기, 2루수 21경기에 3루수로도 2경기 출전한 바 있다.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주장직을 맡게 되었다고 밝혔다. 올시즌 연봉은 전년도와 마찬가지로 3억 1천만원이다.
2월 15일 니혼햄 파이터즈와의 연습경기에서 병살을 기록했다.
2월 16일 한신 타이거즈전와의 연습경기에서 1번타자 유격수로 선발출장하여 2안타를 기록했는데, 그것이 팀 안타의 전부였다.
2월 18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연습경기에서 역시 1번타자 유격수로 선발출장하여 4타수 1안타 1병살을 기록했다.
2월 25일 한화 이글스와의 연습경기에서 1번타자 유격수로 선발출장해 2타수 2안타 1득점을 기록했다.
지난 시즌부터 이어진 발목 통증 때문에 시범경기 동안은 대타로만 출장했으나, 결국 통증이 지속되면서 개막전 엔트리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4월 26일부터 2군 경기에 나오기 시작했고, 28일 1군에 올라왔다.
5월 17일 문학 SK전에서 승부의 쐐기를 박는 시즌 1호 투런포를 치면서 팀의 첫 위닝시리즈와 연승에 큰 기여를 했다.
6월 15일 왼쪽 허벅지 통증 때문에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5월 중순경에도 같은 부위에 통증이 있었는데, 비슷한 시기에 마찬가지로 허벅지 통증이 있던 이원석은 햄스트링 미세 손상 판정을 받으면서 2군으로 내려갔던 것과 달리 김상수는 몇 경기 쉬기만 했었다. 김상수 대신 이날 선발 투수로 내정된 김대우가 등록됐다.(2군에서 머물렀던 동안 주장은 박해민이 맡았다.)
9월 2일 김한수 감독은 김상수가 시즌내 복귀하지 못할 것 같다고 밝혔다. 몸 상태는 많이 좋아졌지만 기술 훈련이 부족한 상태라고. 출장 경기 수 부족으로 FA 취득도 1년 밀리게 됐다.
9월 14일, 1군에 콜업되었고 대신 정병곤이 1군서 말소되었다.
그리고 올라오자마자 바로 솔로포로 부활을 알렸다. 15일에서도 타격감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내년에 올해 못 뛴 경기까지 만회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10월 3일, 대구 넥센전 팀 대선배이자 경북고 선배인 이승엽의 은퇴경기에서 경기가 마무리 되고 은퇴식에서 주장으로서 꽃다발을 전달하면서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1.10. 2018 시즌
1.11. 2019 시즌
이 시즌에 2루수로 전향했다. 수비 부담이 줄어서인지 3에 가까운 WAR, wRC+ 100[6] 을 기록하며 확실히 타격감이 오른 모습을 보였다.
1.12. 2020 시즌
2. 국가대표 경력
2.1. 201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소속팀 감독이던 류중일 감독이 삼성 라이온즈의 주전 유격수였던 김상수를 2013 WBC 대표팀에 전격 합류 시켰다. 대표팀의 막내였고, 경기에 거의 뛰지 못해서 타이중 참사가 터졌음에도 경기 내적으론 까일 일이 없었는데, 경기후 후배와 페이스북을 통해 대화를 나누던 중"(네덜란드에게) 예전엔 발랐는데[7] 이번엔 발렸네 ㅋㅋㅋ"이라는 댓글을 단 것이 발견되면서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2.2. 2014 인천 아시안 게임
2.3. 2015 WBSC 프리미어 12
2.4. 2019 WBSC 프리미어 12
2017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은 2016시즌 부진으로 인해 대표팀은 꿈도 못꿨으며, 2018 자카르타 아시안 게임은 미필 배려로 인해 발탁이 되지 않았다. 그러다 김경문 감독이 새롭게 지휘봉을 잡은 김경문호에 발탁, 프리미어 12에 참가하게 되었다.
주로 박민우의 백업으로 출전했으나 한일전이던 슈퍼 라운드 마지막 경기에서 맹타를 휘두르고 환상적인 수비까지 선보이는 등 존재감을 선보였다. 결승전에서도 2타수 1안타를 기록하고 호수비까지 선보이며 국제무대에서 강함을 보여주었다. 일본 쪽 웹에서도 김하성과 더불어 한국은 키스톤이 강하다는 평가를 내릴 정도.
[1] 당시 삼성 라이온즈 내야진에는 장타 포텐이 있었던 만년 기대주 조동찬이 있었다.[2] 덕분에 박진만은 유격수 자리를 내주고 생애 첫 2루수 자리에 서기도 하였다.[3]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격수 부문 골든글러브에서 이대수에 이어 2위를 차지하였다. 타격으로 보나 실책수로 보나 강정호나 김선빈에게 밀렸지만, 우승 팀 프리미엄이...[4] 종전기록: 빌리 홀-47개(1999)[5] 이듬해인 2015년에 박해민이 60개의 도루를 기록하며 경신한다.[6] 정확히 100.0. 13년 이후 커리어 두번째다. 전성기땐 13년을 제외하면 8~90대를 유지했다.[7] 초등학교때라고 하는 것으로 보아 U-12 대표팀 시절을 말하는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