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태(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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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重泰
1940년 7월 28일 ~
1. 개요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본관은 선산(善山).
1940년 경상북도 의성군 안계면 용기리[1] 에서 태어났다. 의성안계초등학교, 경북중학교, 경북고등학교(40회)를 졸업하였다. 서울대학교 정치학과에 재학 중이던 시기 6.3 항쟁을 주도했다. 서울대에서 '''민족주의 비교 연구회'''를 결성하고 학생운동에 전념했다. 시기상으로 한국 학생운동의 1세대쯤 되는 인물이다.
1964년 1차 인민혁명당 사건에 연루되어 제적되었다. 6.3 항쟁을 인혁당 인물들이 배후 조종했다는 혐의였다. 그리고 민족주의 비교 연구회가 이적단체라는 이유로 학생운동가들이 대량 검거된 민비연 사건에도 연루 되었고, 동백림 사건에도 연루되었다. 대체로 민비연이 재야 사회운동의 상부 조직으로부터 지시를 받아 국가 변란을 획책했다는 혐의로 잡혀 들어갔다. 물론 대부분 조작수사에 의한 것이었다. 박정희 정권 초기부터 1967년까지 5차례 투옥되었다. 1967년 출소 후 당시 윤보선이 이끌던 신민당에 잠시 운영위원으로 몸담았다.
그러나 곧 2차 민비연 사건이 터지고, 동백림 사건과 엮이기 시작하면서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다. 그러나 당시 정권에서는 눈엣가시인 김중태를 처리하기 곤란했는지, 여권과 비행기표를 쥐어서 미국으로 강제 출국시킨다. 하지만 이승만처럼 귀국을 금지하지는 않았다[2] . 이후 일리노이 주립대에서 수학하고, 뉴스쿨 대학교 대학원 철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일민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중구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평화민주당 정대철 후보에 밀려서 낙선하였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일국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송파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당 김종완 후보에 밀려서 낙선하였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대구광역시 수성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자유민주연합 박구일 후보에 밀려서 낙선하였다.
2012년 제18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였다. 그리고 새누리당에서 대한민국대통합위원회 부위원장을 역임하였다. 해당 직책을 맡던 중 문재인 당시 민주통합당 대통령 후보를 향해 "낙선한 문 후보가 봉하마을 부엉이 바위에 찾아가 부엉이 귀신을 따라 저 세상에 갈까 걱정된다"고 발언하였다. #
그 외에도 찬조연설 중 이런 발언도 했다(...) 다시 말하지만 박정희가 아닌 박근혜 후보 지지연설의 일부다. #
환빠에 준한 행각도 했다. 2004년 행보가 대표적인데, 대한민국 국회에에 고구려, 백제, 신라의 정통성을 다룬 "대륙의 삼국"(...) 연재. EBS 일요초청강연 "우리말로 풀어 본 우리역사"를 주제로 강연 등의 행각이다. '미륵불과 재림예수', 홍익인간 국민운동 협의회 의장 등의 행각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한강에 사는 물고기들은 누구 덕에 사는지도 모르고 살아갑니다. 말 못하는 물고기들이라서 덕이 지극한 지덕지세(至德之世)의 덕화(德化)를 모릅니다만, 기억력이 있는 우리 인간들로서 태백산에서 나는 석탄으로 연탄을 만들어 사용하고, 산림보호와 조림녹화의 기치 아래 장작 아궁이를 연탄아궁이로 개량하고, 심지어 산간의 사찰에까지 연탄 사용을 강제 의무화시켜 산림을 보호한 박정희 대통령 은혜에 한번쯤은 감사드릴 줄 알아야 인간된 도리가 아니겠습니까?
박근혜 후보는 근검절약 청렴결백의 대명사인 박정희 DNA를 유전 받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박근혜 후보의 집에는 40년 전쯤 만들어진 금성사 선풍기를 아직도 사용하고 있다 합니다.아무리 더운 여름날에도 자기 전 잠시만 켜고는 전기 아낀다고 바로 끈다고 합니다.
일각에서는 "변절한 학생운동가" 정도로 취급하곤 하지만, 애초부터 김중태 본인은 1960년대부터 일관적으로 정권에 비판적인 민족주의자였고, 당시 학생운동 내부에서도 공산주의에 대한 비판적인 입장을 표명한 적이 많았기 때문에, 독재 정권이 물러간 뒤 제자리를 찾았다고 평하는 이들도 있다. 다만 자신을 '박근혜를 용서, 지지한 인혁당 사건의 피해자'로 포장하는 과정에서 구속과 출국에 그친 자신과 달리 정작 사법살인의 희생자인 2차 사건 피해자인 것처럼 행세했다는 점은 비극.
당시 중앙정보부장이었던 김형욱이 민족주의비교연구회 사건의 조사과정에 참여하여 관련자 김중태를 신문하다가 겪은 일이 참으로 가관이다.
실제로 실향민 출신이었던 김형욱은 이내 안색이 붉어지더니 옆에 있던 집기를 김씨에게 내던지고는 휙 나가버렸다. #김형욱 :''자네가 그 악명 높은 김중태야? 경상도 사람이 왜 경상도 대통령을 반대하냐?"
김중태 : "이북 사람이 김일성이나 지지할 것이지, 왜 남쪽으로 내려왔냐?"
여담으로 과거 EBS가 시대극을 방영하던 시절 명동백작의 후속작이었던 지금도 마로니에는에서 김지하, 김승옥과 함께 주연급 인물로 출연하였다. 최철호 분. #
2. 선거이력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1] 선산 김씨 집성촌이다. 출처는 민족주의비교연구회 사건 2차 발표문[2] 김중태 본인에겐 새옹지마인 것이 이 때 미국으로 나가지 않고 국내에 계속 있었다면 아마도 2차 인혁당 사건에 연루돼 죽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인혁당 관련자들이 대부분 김중태와 알고 지내던 대구 사람들이었기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