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래여자중학교
1. 개요
부산광역시 금정구 구서동에 위치한 여자 중학교로 형제학교인 동래여자고등학교와 더불어 부산에서 가장 유명하고 오래된 사립학교이자 부산지역에서는 그야말로 사립학교의 대명사로 통하는 학교이다.
2. 역사
그 시초는 1895년[1] 에 개신교 선교단체인 호주장로교 선교회[2] 가 초량동에서 설립한 '''부산 최초'''의 사립학교이자 미션스쿨인 일신여학교이며 한강 이남 최초(!)의 사립 여성 중등교육기관이기도 하다. 1925년에 동래구 복천동으로 이전하였으나 1940년에 신사참배 거부로 인하여 일제에 의하여 폐교되었다. 일신여학교가 폐교되었을때 대한예수교장로회 경남노회(지금의 마산창신중고등학교 재단) 에서 이 학교를 인수하기를 희망했으나, 호주선교회는 개신교 선교라는 건학이념은 포기하더라도 학교를 더 잘 운영할 수 있을것이라 생각되는 당시 부산 최대 재력가 중에 하나인 오태환에게 학교를 넘기게 되었고[3] , 1940년에 오태환이 설립한 구산학원(이후 동래학원으로 개명) 재단에서 동래고등여학교라는 이름으로 재개교 하였다. 1951년에 학제 변경으로 6년제 동래고등여학교에서 동래여자고등학교와 동래여자중학교로 분리 되었으며 1987년에 현 위치로 이전하였다.
2.1. 초량동 부산진일신여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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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동구 좌천동 768-1번지. 동래여자고등학교의 시초가 되는 부산진일신여학교가 처음 설립된 곳이다. 1919년 3월 11일에 부산에서 제일 먼저 3.1운동을 일으킨 곳이며 1925년에 동래구 복천동으로 이전하기 전까지 사용하였다. 1946년에는 일신여학교의 방계후신이었던 금성중고등학교가 대한예수교장로회 경남노회에 의하여 여기서 처음 설립되었으며, 고신대학교의 전신인 고려신학교도 1946년에 이곳에서 설립되었다. 현재는 부산광역시 지정문화재 제55호로 등록되어 있으며 부산장로회 신학교가 자리하고 있다.
사실 초량동 부산진일신여학교의 건물은 사진에 있는 보존된 건물 1채 외에도 더 있었다고 하며 그 건물은 1987년에 복천동의 동래여자중고등학교 구 건물들(동래일신여학교 건물들)이 모두 철거된 이후에도 한동안 금성중학교 건물로 남아있었고# 1989년 기준으로 80년은 족히 되었던 오래된 목조건물인것을 생각하면 보존 상태도 양호한 편이었으나, 1989년 10월 16일에 현재의 금성중학교 콘크리트 건물을 신축하기 위해 철거해 버렸다.(...)
2.2. 복천동 구 교사
철거 직전의 사진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동 500-1로 일신여학교 시절인 1925년에 조성되어 1987년까지 62년간 사용하였는데 1950년 6.25 전쟁때 징발되어 1950년 8월 15일부터 1951년 9월까지 1년간 육군종합학교로 쓰이기도 했고# 장태완 전 수도경비사령관도 이곳에서 임관하였다. 지금은 해체된 306 보충대의 시초인 제2보충대 5중대 또한 1952년 2월에 여기서 처음으로 창설되었다. 1987년에 동래여자중고등학교가 현 위치로 이전되면서 당시 시대가 시대이다보니(...) 그냥 철거되고 우성베스토피아 아파트 용지로 써먹히는 신세가 되었으며 이곳이 육군종합학교나 보충대로 쓰였다는 사실조차도 남기지 못하고 잊혀지고 말았지만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매우 역사적 가치가 높았던 곳이기에 철거되지 않고 지금까지 남아있었다면 매우 귀중한 근대 문화유산이 되었을 것이다. 다만 일신관이라고 하여 이 건물의 외형을 본따서 만든 건물이 현재의 교정 내에 있다.[4]
3. 상징
3.1. 교표
방패 모양에 ㄷㅗㅇ중 라고 적혀있으며, 동래학원 계열 학교들의 공통적인 교표 양식이라고 할 수 있다.
3.2. 교훈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판단하여 스스로 실천하자
3.3. 교목
- 향나무
3.4. 교화
- 매화
4. 특징
- 동래여자고등학교, 부산예술고등학교, 부산예술중학교와 같은 재단이다. 동래여자고등학교와의 관계는 1951년의 학제 개편으로 인하여 서로 분리되었기에 서로 형제지간이라고 할 수 있으며, 1951년 학제 분리 이전의 동문들은 동래여자중학교와 동래여자고등학교 양쪽에서 동문으로 인정되고 있다.
5. 학교 시설
- 본관 : 위에서 남쪽을 향해 보면 E 자 모양으로 생겼다.
- 운동장 : 부산예술고등학교, 부산예술중학교와 같이 사용한다. 운이 없으면 세 학교가 한 운동장에 낑겨 체육수업을 하는 광경을 볼 수도 있다.
- 다목적 강당 : 국비 지원을 받아서 2015년에 완공되었다. 스포츠 동아리 시간 등에 간간이 사용한다. 1층에 주차장이 있는데 예고 실기시험 등으로 차가 들어오면 운동장에 주차를 시키고 정작 체육 수업은 주차장에서 실시한다.(...) 게다가 난방이 잘 안돼서 춥기도 하고 한때는화장실 변기가 몇 달간 막혀있던 적도 있었다.
- 우창회관 : 강당은 아니고 공연장과 유사한 시설. 부산예술고등학교 명의로 되어 있지만 동래학원 내 모든 학교가 같이 사용한다.[5] 동래여중 합창 대회를 이곳에서 한다.
- 벽연재(예절관) : 동래여자고등학교 명의로 되어 있으나, 재단 내의 학교들이 예절교육용으로 같이 사용한다. 동래여중의 경우는 2학년 학생들이 한 반씩 돌아가며 하루 정도 교육을 받는다.
6. 운동부
더군다나 1995년에 브니엘중의 폐교가 확정되면서 1998년에 브니엘중 여자 테니스부가 폐교로 인하여 알아서 해체 되었고, 브니엘여고 테니스부는 이듬해인 1999년에 터진 브니엘학원 사태를 전후하여 재정난으로 해체되면서 사실상 자폭해버리는 바람에 라이벌이 완전히 사라지게 되어 동래여중고 테니스부는 부산 유일의 중고등학교 여자 테니스부로 완전히 독주를 하게 되나 싶었는데#, 라이벌이 없어져서 이사장이 시시하다고 생각했던 것인지는 몰라도 결국 동래여중고 테니스부 조차도 2002년 5월에 동래여고 정보관 건립이라는 어이없는 구실(...)[6] 로 인하여 재단에 의해서 어이없게 해체될 위기에 놓이고 말았으며, 당연히 부산 유일의 중고등학교 여자 테니스부이자 유서깊은 부산의 명문 테니스부를 해체 하는것에 대한 반발은 상당하였다. 불행중 다행인건지 각계 각층의 구명운동 끝에 동래여자중학교 테니스부의 경우는 해체 된지 2개월 후인 2002년 7월 18일에 경쟁 학교(?)인 구서여자중학교로 인수인계되어 재창단 하였으며, 동래여자고등학교 테니스부는 그보다는 늦은 2003년 3월에 인근 고등학교인 남산고등학교 여자 테니스부로 인수인계 되어 겨우 재창단 하였다.
7. 출신 인물
- 공덕귀 : 일신여학교 시절 졸업, 제4대 윤보선 대통령의 영부인이다.
- 박순천 : 일신여학교 시절 졸업, 정치인
- 박차정 : 일신여학교 시절 졸업, 독립운동가
- 신은정 : 배우.
- 정미영 : 금정구청장.
8. 이용 가능한 대중교통
8.1. 버스
- 금정경찰서 정류장 : 1008번
- 금정문화회관 정류장 : 301번, 금정3-1번
- 금정구청 정류장 : 50번, 148번, 300번, 1002번, 금정5번[A] , 금정5-1번[A] , 11(양산), 12(양산), 58(양산), 59(양산), 61(양산), 1100(양산), 1200(양산), 1300(양산), 1500(양산)
8.2. 도시철도
9. 여담
- 동래학원 산하 학교 답게 부산광역시에서 조경이 가장 잘 되어있는 학교로 유명하다.
- 교정에 살구나무가 많다. 5~6월경이면 학생들이나 선생님들이 따가서 간식삼아 먹는다고... 매실나무도 있다. 이쪽은 매실이 익자마자 학교 측에서 매실 따는 작업을 한다.
- 동래학원 내 모든 학교의 특징이지만 교정 내에 큰 연못이 있다. 가끔씩 큰 새가 내려와서 [7] 연못에 사는 물고기를 잡아먹는(!) 광경을 볼 수 있다.
- 이 학교의 시설은 1987년 완공 당시에 당대 최고의 시설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는데 한동안 경부고속도로 구서IC 인근의 랜드마크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 학교의 시설을 설계한 사람은 다름아닌 부산의 대표 건축가 이용흠으로, 벡스코와 APEC 누리마루 하우스, 부산시청, 부산시립미술관, KNN 사옥, 부산은행 본점 신사옥 등등 부산의 수많은 랜드마크 건축물을 만들었다. 이 학교 주변에 있는 금정구청이나 금정문화회관도 이 사람의 작품이며 동래여자중고등학교는 이용흠의 초기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 동래구가 아닌 금정구에 왜 동래여중이 있는가 라고 의아해할 지 모르겠지만 금정구는 1988년에 동래구에서 분리됐다. 이 학교는 1987년에 구서동으로 이전하였는데 이 때만 해도 금정구가 신설되기 이전에 동래구였던 시절이었다.
- 학교 건물 설계 초기에 만들어진 목업에는 일신관 뒤편에 원형 수영장이 있었으나 실제로 학교 건물이 만들어 질 때에는 초기 설계에 있었던 수영장이 빠졌다.
- 실제 학교 위치는 부곡동이지만 교문은 구서동에 있으며 동래교육지원청에서도 구서동 소재 학교로 분류하여 구서동 거주자 위주로 배정하고 있다.
- 현재 교복은 2000년대 초반 부터 쓰이는 것으로 금정구 소재 일반계 중학교 교복 중에서는 가장 최근에 제정된 것이다. (다른 학교들은 1980년대 후반~1990년대에 제정) 그 이전에는 점퍼 스커트 형태의 교복을 썼는데 일명 앞치마로 통하였다. #
- 같은 재단 학교인 부산예술 중•고등학교와 사이가 좋지 않다. 박터지는 점심시간에 상가로 내려간다면 가끔 서로에게 욕설을 하는 상황을 맞닥뜨리게 된다.
[1] 한국 최초의 근대식 교육기관인 배재학당 보다 10년 늦게 설립되었다.[2] 마산의 창신중고등학교도 이 단체에서 설립하였다. 1940년에 신사 참배를 거부하여 일제에 의해 추방되었다가, 해방이후에 다시 한국에 들어와서 1952년에 일신기독병원을 세우기도 했다.[3] 이에 대해서는 약간(?)의 비화가 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경남노회는 일신여학교를 인수하는것에 실패하였으나 일신여학교의 형제학교인 마산의 창신학교는 호주선교회로 부터 물러받게 되었고, 이후에 경남노회 기독교교육학원 산하로 일신여학교의 방계 후신 학교라고 할 수 있는 금성중고등학교와 건국중고등학교라는 개신교 미션스쿨을 만들었지만 이 학교들은 부채로 인하여 학교가 파산(...) 하면서 이들 학교 역시도 일신여학교 처럼 개신교와는 전혀 관련없는 재단으로 넘어가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다만 창신학교의 후신인 창신중고등학교도 다른 재단으로 넘어갔다가 어찌어찌하여 경남노회가 다시 되찾아오는데 성공하면서 일신여학교의 건학이념이 계승되고 있는 학교는 현재로써는 마산 창신중고등학교 뿐이다.[4] 일신관은 우창회관과 함께 부산예술고등학교 명의로 등록되어 있다.[5] 동래여고의 경우는 철쭉홀이 있어 덜 자주 쓰는 편이다.[6] 그 이전에도 부산예중 신설로 인하여 동래여중 테니스 코트를 밀어버리는 일도 있었다. 부산예중 설립 과정은 아는 사람들은 알지만 제대로 골때리는 설립 과정을 보여주었다.[A] A B 장전역 방향만 경유[7] 황새로 추정되지만 천연기념물이라는 카더라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