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충대

 


'''補充隊'''
'''Replacement Dep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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舊 제102보충대대 정문(출처)
舊 제306보충대대 정문(출처)
1. 개관
2. 입영할 때의 팁
2.1. 식사
3. 입영장정으로서 보충병 생활
4. 과거의 보충대
5. 특수한 보충대
6. 외국의 보충대
6.1. 일본
6.2. 미국
7. 같이보기


1. 개관


전입해 오는 입영장정(보충병력)을 접수 관리하고, 충원을 필요로 하는 편성부대에 분배/배치하는 부대. 대한민국 국군에는 육군 2곳 이상( , , 1,2,3보충대[1])[2], 해군 1곳(창원시 진해구 해군기초군사교육단), 공군 1곳(진주시 27예비단(공군기본군사훈련단)), 해병대 1곳(포항시 해병대 교육훈련단)이 있다.
육군의 경우 이곳에서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3박 4일 간 머물며 각종 보급품을 수령하고, 사이즈를 조절하며 신체검사, 지능검사, 인성검사 등을 실시한다. 이 곳에 있는 동안 입대한 사람들은 '''장정'''이라고 불리며, 그리고 입대 4일째 되는 날 '''진짜''' 신병교육대로 이동하게 된다. 특이하게 '''월요일 대신 화요일에 입영행사를 했다!'''
해군, 공군, 해병대의 경우는 월요일에 들어가 금요일까지 머물게 되며 육군과 마찬가지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다른 점으로는 여기서의 일주일을 '''임시입소[3]기간'''이라 하며, 신검 결격 사유가 발견되어야 퇴영되는 육군과 달리 해군, 공군, 해병대는 이 기간 동안 '''단순변심'''에 의해서도 귀가할 수 있다![4] 또한 육군도 보급품 받는 3박 4일 (화요일~금요일) 동안엔 자유퇴소 가능이었다는 말이 있었다.
보충역(사회복무요원 등)은 보충대를 거쳐가지 않는다. 서울/경기 지역을 제외한 거의 모든 보충역은 바로 지역 사단 신병교육대로 입소하며, 논산 육군훈련소로 입소하는 보충역들도 입소대대에서 곧바로 훈련병 신병교육연대로 이동한다. 그리고 위에서 설명한 모든 과정을 입소 2일차에 압축시켜 진행하고, 3일차부터 바로 훈련이 시작된다.
육군에선 입대하는 장정들 이외에도 대기병들도 보충대로 온다. 대개 논산 육군훈련소에서 신병교육을 받거나 후반기교육을 수료하고 전방 지역으로 자대배치를 받은 대기병들이 이곳에서 며칠 동안 대기한다. 1군 예하 부대는 102보충대대로, 3군 예하 부대는 306보충대대로 간다. 날짜가 맞으면 대기할 것도 없이 도착 5분 만에 이동하기도 한다.
대기병 입장에서 아직 군복(전투복)으로 환복도 못하고 을 먹고 그대로 취침도 해야 하는 장정들의 모습을 보면 참 안쓰럽다. 한편 장정 입장에서는 훈련소에서 구르고 군기가 바짝 들어 있는 모습을 보고 쫄게 된다.
대기병들은 대기하는 동안에 별다른 임무는 없으나 주변 청소나 취침시간에 장정들이 잠자는 생활관 근처에서 불침번 근무 정도만 서는 수준. 장정과는 다르게 흡연, 전화 및 PX 이용이 가능하다. 또한 1야수교, 3야수교에서 후반기 교육을 받은 교육생들도 수료한 날 버스 타고 보충대로 와서 대기를 한다.
육군 보충대의 공통된 특징은 나오는 밥이 심각하게 맛이 없다. 1960~1970년대에 지은 시설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어서 매우 지저분하고 낡았다. 하지만 예외로 306보충대는 1989년에 지금의 위치로 주둔하여 자리잡았는데, 시설을 제대로 관리되지 못해서 년식대비 낡아보인다.. 이유는 3박 4일 내지 일주일 내에 갈 병력들이라 별로 투자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라는 듯. 문제는 자 대가 이곳인 기간병들인데, 이들은 복무기간 내내 이 열악한 시설을 참고 견뎌야 한다. 그래서 기간병 생활관만큼은 신막사에 가까운 시설로 부분 보수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밥은 정말 어쩔 수 없다...
306보충대에서 지낼 경우 306보충대가 주공아파트, 현대아파트 등 아파트 단지가 밀집되어 있는 의정부시 용현동 주택가 맞은편에 위치하기 때문에 부대 안에서 아파트 건물이 보이고 밤에는 아파트 불빛이 보여 이제 갓 입대한 장정들과 대기병, 기간병이 피눈물을 흘릴것이다.[5] 특히 의정부시 근처에 사는 사람들, 그것도 용현동이나 민락동에 사는 사람들은 더욱. 하지만 이 광경도 2014년 연말에 306보충대대가 해체함에 따라 사라졌다.
강원도 춘천시에 위치한 102보충대의 경우 입대자들을 위한 행사에, 춘천MBC에서 제작하는 병영생활 프로그램인 신나軍 에서 정기적으로 일주일에 한 번씩 촬영을 나와 입대자들의 인터뷰나 행사 모습 등을 담아서 방영해 준다.
2014년부터 모든 육군 들이 육군훈련소에 입영, 신병 훈련을 진행한다는 계획이 있지만 이는 2010년부터 매년 한 해씩 꾸준히 밀리고 있는 데다, 단시일 내에 실현될 가능성도 높지 않다. 실제로 보충대 폐지도 입소 장소를 '''각 사단 신병교육대로 전환하는 수준'''으로 그친다. 자세한 사항은 육군훈련소 항목 참조.
또한 국방개혁 2020의 일환으로 306보충대대, 102보충대대를 폐지한다는 계획이 있으며, 이런저런 사정으로 미루어졌다가 2014년 12월 31일 부로 306보충대대가 2014년 12월 23일에 마지막 입영식을 마치고 해체되었다. 이들은 306보충대 해체 이전 마지막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12월 26일에 나갔다. 춘천의 102보충대대는 강원도 지역의 교통 사정으로 인해 더 미뤄지는 듯 했다가 국방부에서 2016년 11월 1일 102보충대를 해체하였다.

2. 입영할 때의 팁


보호대라고 면으로 된 보호대를 실제로 파는 경우가 있긴한데 가격이 훨씬 생리대쪽이 싸게 먹힌다.
챙겨갈만한 물품들
  • 기능성 깔창 2~3벌: 군생활하면서 행군이나 훈련 작업하다가 깔창은 필히 닳아버리기 때문에 여분을 챙기는 것이 좋다. 빨아 놓고 말리는 중에 누가 훔쳐가는 경우도 있다. 다만 에어 깔창이라고 뒤꿈치에 나이키 에어맥스의 그것이 달려있는 물건이 있는데 오히려 물집만 더 잘생기고 불편하다.
  • 라이트 펜 2개: 야간에 편지 쓰는 것뿐만 아니라, 자대에 가서 숙영할 때 또는 야간 근무 준비할 때 매우 유용하다. 빛의 세기가 매우 적당하기 때문이다. 단, 공군기본군사훈련단은 라이트펜 반입 금지. 걸리면 비행으로 처벌받는다.
  • 연고나 감기약 같은 개인용 상비약: 신교대에 입소하면 조교가 거둬가지만, 압수가 아니라 주인 명의로 대리 보관하는 것일 뿐이니 필요할 때마다 꺼내서 사용하게 해준다. 무엇보다 신교대의 군의관들은 업무량이 엄청나게 많아서 10명 중 9명이 불친절한데, 이러한 걸로 의무지대에 찾아오면 인상을 구기는 게 일쑤이니 챙겨가는 것이 좋다. 단, 공군과 해군은 제외. 보충대가 교육사령부 안에 있고 의무부대도 전대급으로 편성되기 때문에 약 잘 나오는 건 물론, 군의관들도 육군에 비해 친절한 편이다.
  • 1000원 지폐 10장: 자대에 가면 카드로 해결 못 하는 금전적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건조기나 자판기 비용 등.
  • : 각개전투나 사격훈련할 때 무릎이나 팔뒷굼치에 붙이면 덜아프다. 그리고 실제로도 현역병들도 종종 이용한다.
또한 보충대 앞에서 '''노점상들이 파는 물건은 절대로 사지 말고, 입영 1~2일 전에 집근처 마트에 가서 필요한 물품을 구매하는 것이 좋다.''' 집 근처 할인 마트보다 비싼 건 물론이고, 막상 구매해도 필요없거나 잘 망가지는 물건이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공군에서는 공식 웹툰 'CQ'를 통해 이를 알리기도 했다. 공군은 730대 기수부터 비타민 반입도 안 된다.
물집 패드는 붙여봤자 효과도 없고, 여기서 판매하는 손목시계는 엄청 잘 떨어져 훈련 몇 번 하다보면 망가지는 경우가 대다수다. 그렇다고 안 사갈 수도 없는 것이 훈련 등을 나가면 시간을 확인하기 곤란해서 꼭 필요하다. 어차피 2년 가까이되는 군생활 내내 쓸것이므로 지샥같이 튼튼한 걸로 사자. 노점상에서 파는지 '''슉'''과는 비교가 안 된다. 만약 입소 직전에 PX를 이용할 기회가 있다면 여기서 사도 좋다. 지샥 중에서도 머드맨 라인업이라 흙바닥에서 수시로 구르는 훈련병 입장에선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물건이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은 덤이다.
'''전화 카드는 절대로, 필히 구매하지 말아야 한다!''' 훈련소에서는 콜렉트콜로, 자대에서는 핸드폰으로 통화하기 때문에 '''전화 카드는 전혀 쓸모가 없다.''' 사실 잡상인들도 요샌 전화카드 아무도 안쓰는거 알아서 팔지도 않는다.

2.1. 식사


'''입대 전 보충대 근처 식당에서는 절대 식사하지 말자'''. 일단 제대로 된 식사도 아니고, 요리라고 하기에 부끄러울 정도니 집 밥을 먹는 게 '''훨씬 낫다.'''
그야말로 돈낭비의 진수가 뭔지 보여준다. 혹여나 부모님이 자식놈 군대가는데 밥 한끼 사먹인다고 보충대 주변에서 먹자고 하는 위키니트가 있다면 절대 만류하자. 농담삼아 영국 식민지라고 불리는 곳일 정도다. 보충대 주변 식당은 한달에 2-3일 빡세게 돈벌기 위한 목적으로 지어진 곳이 대부분이라 맛도 없고 더럽게 비싸다.
전곡이나 연천 근처의 음식점에서 파는 부대찌개가 대략 7천~1만 원 정도인데, 여기는 못해도 2만 원 이상이다. 손님은 또 입대일만 되면 엄청나게 많다. 어떤 식당은 아예 버스회사랑 손잡아서 손님들을 식당에 내려주고 명물이랍시고 음식을 먹이는데 부모 입장에서는 군대가는 자식에게 안 먹일 수도 없고 자식은 배도 고프고 마지막 밥이니 먹는 게 당연하니 안 먹을 수도 없고 난감한 상황. 그러니 꼭 '''도시락을 싸가도록 하자.''' 입영하고 나서 항상 생각나는 게 집밥 생각이다. 왜 그때 많이 먹어두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가장 많이 하므로 침울한 기분이라도 집밥 맛있는 걸로 많이 먹고 입영하는 것이 좋다.

3. 입영장정으로서 보충병 생활


아무튼 이 어정쩡한 3박 4일의 생활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자면, 밑도 끝도 없이 지루한 멍때리기의 연속이다. 일생 동안 생각없던 사람도 여기서 보내는 첫날에는 죽을 때까지 해볼 생각 다 해보게 될 정도이며 그리움이 막 사무친다. 특히 휴대폰 거둬들이고 박스 하나 딱 던져주면서 "여러분들이 입고 있는 옷들과 소지품들을 모두 이 박스에 담습니다."라는 소리가 나올 때 그리움과 참담함은 아주 절정에 다다른다. 그야말로 박스에 들어가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신체검사나 보급품 수령, 식사 등을 제외하면 입대장정들을 하루 종일 아무것도 없는 생활관(내무반)에 가둬 놓고 아무것도 시키지 않는다. 뒤집어 말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감옥이나 다름없다. 게다가 가장 힘든 것은 화장실을 맘대로 보내 주지 않는데서 기인하는 소변 참기. 특히 과민성 방광을 앓고 있을 경우 그 괴로움은 배가될 것이다. 가뜩이나 소변 욕구가 자주 발생하는데 입영 스트레스까지 추가된다. 거기에다가 드럽게 맛 없는 밥과 곳곳의 노후된 시설들까지 더해진다.
더 괴로운 것은 그날 밤 잠자리에 들 때인데, 그때 느끼는 감정은 평생 기억에 남을 정도다. 아마 그 이유는 아침에 일어날 때까지만 해도 민간인이었는데, 잠자리에 드니 군인이라는 사실 때문일 것이다. 옆에 있는 사람들끼리 입영 첫날 밤의 괴로움을 말할 때 이 소리가 꼭 나온다. 그리고 결정타로 다음 날 새벽 6시(동계에는 6시 반)에 울려퍼지는 웬 듣도 보도 못한 나팔소리가......
훈련소 조교와 매우 흡사한 매무새를 한 '구대장'이라는 병사들이 통제하지만, 뭐 그냥 식사 이동이나 신체검사 시 이동, 각종 이동 시의 인솔 말고는 딱히 서로 볼 일이 없다. 어쨌든 빈 몸으로 들어온 혈기 넘치는 사내들이 수십 명씩 모여서 할 일이 아무것도 없다 보니까 다들 금방 친해진다. 덕분에 끼리끼리 수다에 꽃을 피우고, 입대 직후의 무개념 상태인지라 우당탕탕 낄낄낄 요란하게 놀기도 한다. 그러면 곧 구대장이 달려와 으름장과 얼차려로 진압하다.
워낙에 할 일이 없고 심심하다 보니 "차라리 그냥 훈련이나 작업이라도 했음 좋겠다." 따위의 망언을 일삼는 녀석들이 있기도 하지만, 며칠 후 훈련소로 이동하게 되면 그런 생각이 싹 달아난다.
전화 이용, PX 이용, 흡연은 금지이며[6], 때때로 숨겨둔 담배[7]로 숨어서 흡연하거나, 식사시간의 타이밍을 이용하여 전화사용하는 용자들도 있긴 하다. 물론 걸리면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모 보충대에서는 생활관 복도 한복판에서 앉았다 일어났다를 하며 "담배를! 피우지! 않겠습니다!"라고 외치는 쪽팔리고 힘든 벌을 받게 했다.
보충대도 엄연히 군대인지라 불침번 근무가 있다. 여기에서 졸더라도 대충 혼나지만 사단 신교대대나 자대에서 그랬다가는... 그리고 이 모든 것의 마지막은 결국 자대 배치로 마무리된다. 물론 운전병 지원자는 사전에 면허증만 보여 주면 된다. 일반적인 현역의 경우 컴퓨터 랜덤 추첨을 통해 결정되는데, 몇몇 보충대의 경우 이 과정을 모두 장정들에게 공개한다. 이 추첨 결과는 추첨 종료 후 각자 대기하는 내무실에서 통보되는데, 여기서 모두의 희비가 엇갈리기 시작한다. 306보충대는 재미있게도 추첨 직후 예시로 몇몇 장정의 배치를 보여준다. "누구누구는 몇 사단으로 배치되셨습니다~" 이런 식으로. 그런데 이들이 배속된 사단의 숫자가 3, 8과 같이 익숙한 경우에는 너나 할 것없이 모두가 한 목소리로 그 장정의 미래를 축복해 주는 훈훈한 광경이 연출된다. "백골! 백골!" "오뚜기! 오뚜기!" 이렇게 외쳐대면서. 102보충대는 역시 컴퓨터 추첨이며, 각 생활관마다 배치된 TV로 장정들이 어디로 갈지를 말해준다. 2사단이나 27사단 같은 메이커 부대로 가는 애들한테 묵념. 단 상근예비역은 당연히 주소지를 위수지역에 포함하는 사단으로 가게 된다.
그리고 자대로 배치가 되면 각자 버스를 타게 된다. 민간의 전세 관광버스를 타고 가는 경우도 있으나 대체로 도착지 신교대가 속한 사단의 보급수송대대에서 "XX 육 XXXX" 번호판이 달린 군 소속 버스들이 온다. 이들은 각 사단 예하 신병교육대로 보내진다. 다만 306보충대에서 5사단 신교대로 배치받을 경우에는 버스를 타지 않고 기차로 이동한 적도 있는데, 의정부역에서 대광리행 기차를 타게 되며, 한탄강을 건너기 전 38선이라는 안내석이 차창 밖으로 보이면 그제서야 자신이 전방부대에 배치받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며칠 전 까지 민간인이었던 이들이 어리버리한 모습으로 의정부역에서 앉아 번호를 시연하며 굴욕을 느끼게 되고 사흘 전까지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던 여자 모습에 눈이 돌아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다만, 기차 이동 시 중간에 홍익회 판매원이 지나갈 때 음식 사먹는 것이 가능한데 보충대 간부가 인솔하기는 하지만 보충대 입장에서는 이미 보충대를 떠났고 곧 신교대에서 고생할 병사들이라 크게 터치하지 않는다. 다만 꽃마차로 바뀐 이후로 홍익회 판매원이 사라졌고 꽃마차로 바뀐 시점에서는 5사단으로 배치되는 장정들도 민간의 전세 관광버스로 이동하는 형태로 바뀌었다.[8]

4. 과거의 보충대


  • 제2보충대: 6.25 전쟁 당시였던 1952년에 부산시 동래구 복천동에 있었던 동래여자고등학교를 임시로 빌려서 창설한 보충대로 101보충대의 전신격이다. 1987년에 동래여자고등학교가 이전하면서 현재는 그 흔적을 찾을 수 없고, 그 자리에 우성베스토피아 아파트가 있다.
  • 101보충대: 1958년부터 1989년까지 경기도 의정부 호원동에 위치했던 보충대. 306보충대의 전신으로 망월사역과 가까운곳에 있었으며, 현재 그 흔적은 볼수 없고 그곳에 아파트 단지가 있다.
  • 103보충대: 102보충대대의 전신.
  • 105보충대: 강원도 원주에 위치하던 보충대.
  • 306보충대: 2014년 12월 31일에 해체되었다.
  • 102보충대: 2016년 11월 1일에 해체되었다.

5. 특수한 보충대


  • 논산 육군훈련소 입영심사대도 편제상으로는 보충대다. 아니 102, 306과 아예 똑같은 일을 한다. 다만 분위기는 저들과 미묘하게 다른데, 막사가 신막사인 데다가 보충대 과업이 끝나도 바로 옆에 육교 하나만 건너면 되는[9] 교육연대로 이동한다는 점, 그리고 여기서의 '구대장'(구대장이라고 안 부른다)이 그대로 교육대 조교가 된다는 점 때문에.
  • 해군 (해군기초군사교육단)과 공군 (27예비단)의 보충대가 하는 일은 102, 306과 똑같지만 실질적인 생활 통제는 훈련소 소대장과 훈육 조교[10]가 하고, 보충대가 하는 행정처리는 예비단에 소속된 장병만 한다. 따라서 해/공군에 입대한 입대장병들은 보충대라는 것을 느끼지 못한다.
  • 제1야전군사령부제2작전사령부 그리고 제3야전군사령부의 직할로 각각 1보충대와 2보충대, 3보충대란 곳이 있는데, 군에 처음 입대한 사람들이 가는 (구)102보충대, (구)306보충대는 달리 이곳은 군에서 나갈 사람들이 가는 곳이다. 어떻게 된 사연이냐면, 각 군의 병사들이 현역 복무 부적격자 심의를 받는 동안 속하는 부대가 각 보충대 병역관리심사대이다. 원 소속이 육직, 국직부대인 병사들은 수도방위사령부에 가서 현역 부적합 심의를 받는다. 또한 3군 3보충대는 육군규정의 해당 부분에 부대명칭이 직접 등장하는 아주 드문 곳으로, 군 간부(장교, 준사관, 부사관)의 원소속이 1군이든 2작사든 육직이든 국직이든 복무부적합 판정을 받거나 또는 일반 병사 중 육교 출소자가 복무기간이 남아서 재배치되는 경우, 또는 각 특별한 부대(상무와 같이 조건이 있는)원들 중 그 부대에 더 이상 있어야할 이유가 상실된 인원 재배치 역시 무조건 여기에서 처리한다. 실제로 프로축구 승부조작 사태 당시, 제명된 선수들 중 상무 복무중이었던 선수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3보충대를 거쳐 일반 육군으로 재편제되었다. 그리고 병사 중 항소심 재판 중인 병사도 편한 재판과정을 위해 3보충대 소속이 된다. 그 과정 중에서 항소대기병들은 진급은 되지 않지만 병장짬 찍고 나가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인솔자들도 아예 존댓말을 쓴다. 항소 대기병들은 보통 6개월 이상 3보충대에서 대기하여 초반에는 3보충대 병사들과 선후임관계를 맺었으나 원소속부대의 부조리를 전파하는것이 목격되어 서로 존대를 하는 관계로 변하였다. 전시에는 대량 동원될 예비군들의 입영절차를 여기서 밟는데, 복무 부적격자 심의는 항상 돌아가고 있으므로 전쟁이 터진 당시에 현부심 심사를 받고 있던 입소생들까지 동원해서 예비군 입영절차를 진행한다고 한다. 여기서는 어차피 전시에도 면제인 6급은 못 받고, 여기서 받을 수 있는 최하등급인 5급이 어차피 전시에는 이런 일 하는 역할이라는 점 때문에 그렇게 처리하는 듯한데...

6. 외국의 보충대



6.1. 일본


일본이 일본 제국 시대였을 때 일본 육군이 보충대를 운영했다. 대부분이 사관구 예하의 보충대였는데, 보병, 포병, 공병, 보급병[11], 통신병 보충대로 나눠졌다. 일본 육군은 선박사령부도 운영했는데 선박사령부에서도 예하의 보충대를 운영했다.

6.2.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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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90보충대대 정문(베트남 전쟁 당시 베트남에 있던 미군 보충대)
미군 90보충대대 영상미국 본토뿐만 아니라 미군기지가 주둔하는 미국 외의 다른나라에도 보충대가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유럽전선, 한국전쟁 당시의 한국, 베트남 전쟁 당시의 베트남처럼 미군이 참전한 전쟁터와 가까운 곳에서도 보충대를 운영했다. 이들 보충대는 미국에서 오는 병력들이 전입했다.
  • 한국전쟁 당시에 있던 보충대
    • 8068보충대 : 일본 벳푸에 있던 보충대.
    • 8069보충대 : 일본 사세보에 있던 보충대.
    • 8609보충대 : 한국 부산에 있던 보충대.[12]
  • 베트남 전쟁 당시에 있던 보충대
    • 90보충대대 : 베트남에 있던 보충대

7. 같이보기



[1] 다만 이곳은 여기서 말하는 '보충대'와는 다른 곳이다. 맨 아래에 자세히 서술.[2] 논산시 육군훈련소 입소대대는 2012년 2월에 폐지되었고 입영심사대에 교육연대 소속 기간병들이 임시로 옮겨 오는 것으로 바뀌었다.[3] 가입소의 순화어[4] 2019년~2020년 기준으로 이제는 육군도 본인이 귀가 의사를 가입소 기간 안에 명확하게 밝힌다면 귀가가 가능하다. 단순히 어깨나 허리 등이 아파서 귀가 하고 싶다 뿐만 아니라 불안증세나 적응문제, 걱정 등의 사유로도 얼마든지 귀가 가능하며, 그냥 집에 가고 싶어서 꼭 가고 싶다고 해도 보내주는 경우도 있다. 물론 당연히 재입대를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고 그 이후 발생하는 개인적인 불이익은 본인이 감당 해야 할 수밖에 없다.(재입대 전까지 발생하는 시간적 손해,재입대 까지 기간이 많이 남을 경우 대학의 군휴학을 일반 휴학으로 전환 해야하는 점 등등) 하지만 몸이든 마음이든 아직 준비가 덜 되었거나 아픈 곳이 있다면 다시 준비해서 들어오는것도 한 방법이고 선택은 당신의 몫이다.[5] 사실 수도권에는 이런 부대가 많다.[6] 다만 흡연의 경우는 기수마다 케바케였던 모양. 306보충대의 일부 기수는 식사 시간을 마친 뒤에만 흡연을 희망해서 거수를 한 인원을 한정으로 연병장 한가운데에서 단체 흡연을 시켜주기도 했는데, 대신 이 때도 구대장이 소지품 검사시에 담배를 전부 다 걷어갔다가 희망하는 인원에 한해 한 개비씩 주고 그걸 피우게 하던 방식이였다.[7] 소지품 검사 때 안 내거나, 집으로 보낼 옷 넣은 박스에 안 넣었거나[8] 경원선 열차를 5사단 병사들 사이에서는 꽃마차라는 별칭으로 불렸는데, 이유는 당시 이 통근열차 도장을 꽃 문양으로 가득 채운 것에 착안해서 휴가나 전역시 집으로 보내준다는 의미로 그렇게 불렸었다.[9] 입영장정 입장에서는 꽤 오래 걷는 걸로 느껴지지만 2주일만 지나도 매일매일 왕복 2시간이 넘는 군장구보에 이건 걷는 것도 아니게 느껴진다. 인터넷에서 흔히 알려진 고속도로 위에 있는 그 육교와는 다른 물건이다. 그건 교육연대와 훈련장을 잇는 다리다.[10] 해군의 경우에는 훈육교관(훈련교관). 해군 기초군사교육단의 훈육요원은 야전교육대의 유격조교를 제외하고는 전원 간부로 구성되어있다. 그 외엔 행정업무를 처리하는 수병이 몇몇 있을뿐인데 그마저도 훈병의 훈육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는다.[11] 일본 제국군에서는 보급병을 치중병이라고 해서 실제 보급병 보충대는 치중병 보충대라고 했었다.[12] 부산 범전동과 연지동 일대이다. 일제강점기 당시에 조선경마협회 소유의 경마장이었다가 2차 대전 말기에 일본군이 주둔지로 사용했다. 1945년 9월 17일 미군이 부지를 인수해 사용하다가 1946년 말에 미 영사관과 UN기구에 사용하도록 넘겼고 6.25 당시에 병참기지로 활용되었다. 물자와 인력이 몰리는 특성 탓에 이곳에 미군이 보충대를 설치한 것이다. 캠프 하이얼리어(Camp Hialeah)라고 불렸다. 한국 사람들은 하이얼리어를 하야리아라고 불렀다. 전후 통신부대가 운용되다가 2006년까지 미군 기지가 있다가 부산시와 협약 끝에 폐쇄했다. 2010년 1월에 부산시 반환. 부산시는 공원을 조성했다. 출처 부산시민공원 자리가 바로 8609보충대가 주둔했던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