듀란 듀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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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2. 역사
3. 멤버
4. 앨범 목록
5. 뮤직 비디오
6. 관련 사이트
7. 빌보드 핫 100 (싱글 차트) 기록
8. 여담


1. 소개


[image] 1983년도 The Fab Five 전성기 시절의 모습[1]
영국의 5인조 뉴웨이브 혹은 뉴 로맨틱스 그룹. 이름의 유래는 1968년작 에로틱 SF 영화 "바바렐라(Barbarella)"의 악당인 듀란 듀란 박사(Dr. Durand Durand)이다. 1980년대, 즉 MTV를 필두로 한 영미권 팝 음악의 황금기 시절에 뛰어난 비쥬얼과 시대를 선도하는 세련된 음악 스타일로 80년대 전세계 젊은이들의 우상으로 자리매김하였다.
1980년대 신스팝의 최전성기를 이끈 그룹으로 꼽힌다. A-ha와 함께 여자들에게 뛰어난 외모로 인해 인기가 많기도 했다. 비틀즈의 The Fab Four 별명을 이어받은 영광의 The Fab Five 시절에 팝계의 최정상까지 올라갔었고 힘든 시기도 겪었으나 꾸준히 앨범을 발표하며 2020년 현재까지 건재하고 있다. 2018년 밴드 결성 40주년을 맞이했으며 새앨범 발매를 준비하고 있는 현재진행형 밴드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게 아니라 살아남은 자가 강한 것이다'라는 명언이 떠오르는 살아있는 전설로서 후배 밴드들에게 좋은 귀감이 되고 있으며 어릴적 듀란듀란에 얽힌 추억을 가진 중년들에게 특별한 감정을 전해주는 밴드이기도 하다. 본 조비와 함께 롱런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image]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새겨진 Duran Duran
[image] 2015년도 Paper Gods 앨범 시절의 모습[2]

2. 역사


'''1) THE FAB FIVE 시절'''
1978년 버밍엄 출신 닉 로즈(키보드), 존 테일러(베이스)가 먼저 결성하였고 여러 차례의 멤버 교체 후에 로저 테일러[3](드럼)을 영입, 그 후 앤디 테일러(기타)와 사이먼 르 본(보컬)을 차례로 영입함으로써 정식 그룹이 완성된다.
[image]1981
1981년 2월에 듀란 듀란의 첫 싱글 앨범 Planet Earth가 영국에서 발매되었다. 영국 차트에서 12위, 호주 차트에서 8위를 기록했다. 당시에 밴드가 추구하던 뉴 로멘틱스 사운드의 좋은 예를 보여주며 Russell Mulcahy 감독이 제작한 Planet Earth 뮤직 비디오에는 뉴 로멘틱스적인 감성이 잘 나타난 패션을 담았다. Girls On Film[4]은 젊은 신인 밴드로서는 노련한 펑키 리듬감을 보여준 곡이며 선정적인 뮤직 비디오를 예상하지 못했던 국내 팬들을 충격에 빠트렸다. [5]
1981년 정규 데뷔 앨범 Duran Duran을 발매하였다. 미국에선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지만 1981년 6월에 영국 차트 3위를 기록하여 118주 동안 차트에 머물렀다. Rio (1982) 앨범의 미국에서 성공 덕분에 데뷔앨범은 1983년에 미국에서 재발매되었는데 Is There Something I Should Know? 싱글이 수록되어있다.
* 앨범 차트: [6] 빌보드 (10위)[7], 영국 (3위)
* 싱글 차트:[8] Planet Earth (영국 12위) Careless Memories (영국 37위) Girls On Film (영국 5위) Is There Something I Should Know?[9] (빌보드 4위, 영국 1위)
[image]1982
1982년 5월에 2집 Rio가 발매되었다. 영국 앨범 차트에서는 2위, 빌보드 앨범 차트는 6위까지 올랐다. 앨범 발매 초기에는 미국에서 반응이 미지근했으나 David Kershenbaum가 프로듀서 및 리믹스한 댄스 버젼들이 호응을 얻기 시작했다. 그리고 MTV에서 그들의 뮤직 비디오를 적극적으로 방송하면서 미국 흥행에 불을 지피게 된다. 이러한 전략적인 홍보 활동으로 Rio 앨범은 '''미국 시장에서 더블 플래티넘을 기록하며 크게 성공해 비틀즈와 롤링 스톤즈 시대에 이은 세컨드 브리티쉬 인베이젼의 선봉장에 서게 된다.'''
Hungry Like The Wolf (빌보드 핫 100 차트 3위, 영국 싱글 차트 5위), Rio (빌보드 핫 100 차트 14위, 영국 싱글 차트 9위), Save A Prayer는 1982년도에 영국 싱글 차트 2위를 기록했으나 미국에서는 싱글로 발매되지 않았다. 1985년도에 스페셜 버젼으로 뒤늦게 싱글이 발매되어 빌보드 핫 100에서 16위까지 올랐다.
듀란듀란이 전세계적인 밴드로 급상승하는데 큰 역할을 했던 1~2집 대표곡들의 뮤직 비디오를 담은 First 11 Videos가 1983년 3월에 발매되어 1984년에 베스트 장편 뮤직 비디오 그래미 상을 수상했다. 2003년에 발표한 NME가 선정한 위대한 음반 100장 중에 Rio 앨범이 65위를 차지했으며 Patrick Nagel의 인상적인 앨범 커버 디자인도 앨범 소장의 가치를 높이고 있다.
* 앨범 차트: 빌보드 (6위), 영국 (2위)
* 싱글 차트: My Own Way (영국 14위) Hungry Like The Wolf (빌보드 3위, 영국 5위) Save A Prayer (빌보드 16위 [10], 영국 2위) Rio (빌보드 14위, 영국 9위)
[image]1983
2집의 대성공으로 바쁜 일정을 소화하면서 밴드는 매우 지친 상태였다. 신곡을 작업하기 위한 세션 도중에 닉 로즈가 쓰러지는 강행군 속에도 창의성은 멈추지 않았고 1983년 11월에 3집 Seven And The Ragged Tiger가 전세계 발매된다. 영국 앨범 차트 1위 빌보드 앨범 차트 8위에 올랐으며 1984년 1월에 플래티넘, 1991년 11월에 더블 플래티넘을 기록했다.
이 앨범으로 듀란 듀란 음악에 입문한 올드 팬들이 많을텐데 1, 2집의 업비트 곡들에 스며있던 풋풋한 분위기를 정제하여 세련미를 지향하는 10대 20대의 취향에 강하게 어필했기 때문일 것이다. 다른 4~5인조 밴드들과 차별화되는 음악적인 주관을 가지고 있으며 시대가 요구하는 눈높이에 맞출수 있는 창작의 역량을 증명한 앨범이다.

The Reflex는 이들의 첫 빌보드 핫 100 1위곡이었으며 1984년 빌보드 연말차트 16위에 올랐다. [11] Union Of The Snake는 빌보드 핫 100 3위, 1984년 빌보드 연말 차트 50위권 안에 들었다. New Moon On Monday 역시 빌보드 핫 100 10위를 기록하고 1984년 빌보드 연말차트 96위를 차지했다. 이 세 히트곡 모두가 1984년 미국에서 제일 크게 히트한 100곡 안에 들었던 것이다.
* 앨범 차트: 빌보드 (8위), 영국 (1위)
* 싱글 차트: The Reflex (빌보드 1위, 영국 1위), New Moon On Monday (빌보드 10위, 영국 9위) Union Of The Snake (빌보드 3위, 영국 3위)
[image]1984
1983년 11월부터 다음해까지 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일본에서의 Sing Blue Silver 투어로 듀란듀란 신드롬을 일으킨다. 북미 투어의 주요 장면들을 편집하여 Sing Blue Silver 다큐멘터리 비디오와 정규 라이브 앨범 Arena를 발매한다.
Arena는 1984년 11월에 발매된 라이브 앨범임에도 불구하고 1985년 2월에 더블 플래티넘을 기록할 정도로 당시에 그들의 인기가 얼마나 뜨거웠는지 짐작할 수 있다. The Wild Boys 싱글은 Arena 앨범에 수록되었으며 미국과 영국 싱글 차트 2위까지 올랐다.
* 앨범 차트: 빌보드 (4위), 영국 (6위)
* 싱글 차트: The Wild Boys (빌보드 2위, 영국 2위)
Duran Duran - Careless Memories
(As The Light Go Down 뮤직 비디오 중에서)
Sing Blue Silver 투어 중에 미국 오클랜드, 캘리포니아 콘서트를 촬영한 뮤직 비디오 As The Lights Go Down은 1984년에 MTV 외에 여러 음악 채널에서 방송되었고 2010년에 정식 뮤비로 발매되었다. 이것을 영화처럼 만든 뮤직 비디오가 Arena (An Absurb Notion)이며 Arena (An Absurb Notion) 제작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The Making Of Arena도 1985년도에 발매되었다.
'''2) 끝없는 비상 (飛上) 뒤에 드리워진 분열의 그림자'''
[image]1985
1985년 5월에는 007 시리즈의 14번째 영화 A View To A Kill 주제가를 발표했고 그 해 7월 13일, 빌보드 핫 100 1위를 차지하는 (2주 연속 1위) 기염을 토하며 인기의 절정에 도달했다. (007 시리즈 사운드트랙 최초 빌보드 차트 1위) 제 43회 황금종려상 주제가상 후보에 올랐으나 라이오넬 리치의 Say you, Say me (영화 백야 주제가 / 빌보드 4주 연속 1위)에 밀려 수상하지 못했다.
당시 듀란듀란은 흥행이 담보된 잘생긴 외모의 할리우드 영화배우 같은 이미지와 007 영화에 어울리는 사운드를 충분히 소화할 수 있는 음악성을 갖고 있었기때문에 영화 제작팀에서 듀란듀란에게 주제가를 맡긴 것은 결과적으로 탁월한 선택이었다.
[image] 1980년대 The Fab 5의 마지막 공연
A View To A Kill이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에 오른 1985년 7월 13일에 Live Aid 공연을 위해 일시적으로 모인 듀란듀란 멤버들, 파워스테이션은 앨범 발매 이후였고 아르카디아는 앨범 발매를 준비 중인 시점이었다. 오랜만에 5인조로 만나 치룬 라이브 에이드 공연은 5인조 활동 공백으로 인해 호흡이 맞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았고 각자의 음악성을 추구하다 만나 서로의 이질감을 확인해야만 했다. 세계 팝계의 정상에 오른 최고의 날, 라이브 에이드 공연을 위해 다시 만났지만 영화 속 운명의 장난처럼 80년대 The Fab Five 시대는 사실상 막을 내리고 있었다.
* 싱글 차트: A View To A Kill (빌보드 1위, 영국 2위)
'''3) SIDE PROJECT (Arcadia VS The Power Station)'''
투어의 피로감으로 다음 듀란듀란 앨범 녹음이 보류된 휴식기에 계속 활동하길 원했던 멤버들은 사이드 프로젝트를 진행하길 원했고 그렇게 밴드는 알카디아 (아르카디아)와 파워 스테이션 두 프로젝트 그룹으로 나뉘게 되었다. [12][13]
[image] The Power Station 정규 M/V 리스트

듀란듀란 사운드보다 강한 락을 해보고 싶었던 존 테일러와 앤디 테일러는 듀란듀란 멤버들이 평소부터 좋아하던 로버트 파머, Chic 멤버들과 만나면서 [14] 하드 락, 펑크(Funk), 소울적인 요소가 혼합된 사운드을 담고 있는 The Power Station을 1985년 3월에 발표했다.
로버트 파머의 중후한 보이스 컬러는 밴드의 곡에 고급스러움을 더하고 있으며 소울 감성으로 락 스타일의 곡도 자연스럽게 소화하는 가창력을 보여줘 슈퍼밴드라는 이름에 걸맞는 역할을 해냈다. 존 테일러와 토니 톰슨의 리듬 섹션 궁합은 음색부터 환상적인 조화를 이뤄냈고 앤디 테일러의 와일드한 기타 스타일 또한 파워 스테이션의 에너지가 넘치고 선이 굵은 사운드를 완성하는데 기여했다.
* 앨범 차트: 빌보드 (6위), 영국 (12위)
* 싱글 차트: Some Like It Hot (빌보드 6위, 영국 14위) Get It On (빌보드 9위, 영국 22위) Communication (빌보드 34위, 영국 75위)
[image] Arcadia 정규 M/V 리스트
존과 앤디가 파워 스테이션을 결성하여 활동하게 되자 사이먼, 닉, 로저[15]는 아르카디아를 결성하게 된다. 이렇게 두 밴드는 서로 다른 성격의 스타일로 선의의 경쟁을 펼치게 된다. 파워 스테이션은 외부 멤버를 영입해 화려한 구성을 이뤘다면 아르카디아는 새 멤버 대신에 특급 세션으로 보강하며 파워 스테이션과 경쟁에 균형을 맞췄다.
Alex Sadkin과 밴드 멤버가 공동 프로듀서를 담당한 So Red The Rose 앨범을 1985년 11월에 발표하게 되는데 듀란듀란의 뉴웨이브적인 요소를 계승하여 심화시켰으며 The Promise, Lady Ice 곡에서는 프로그레시브적인 요소까지 확장하는 실험성을 선보였다. 앞서 언급했듯이 아르카디아는 오래전부터 준비해온 결과물이 아니라 파워 스테이션 결성에 따라 급조된 프로젝트였음에 불구하고 좋은 퀄리티의 곡들로 앨범을 채웠다. 이를 통해 듀란듀란 멤버들의 음악 수준과 집중력을 엿볼 수 있다.
* 앨범 차트: 빌보드 (23위), 영국 (30위)
* 싱글 차트: Election Day (빌보드 6위, 영국 7위) Goodbye Is Forever (빌보드 33위) The Promise (영국 37위) The Flame (영국 58위)
'''4) 3인조 체제'''
[image]1986
사이드 프로젝트 이후 다시 앨범을 준비하려던 밴드는 드러머인 로저 테일러의 피로감과 향수병으로 인한 탈퇴와 솔로 프로젝트를 준비하던 기타리스트 앤디 테일러의 지지부진한 합류라는 이중고를 겪었다. 기타와 드럼의 부재에 시달린 밴드는 사이먼 르 봉, 닉 로즈, 존 테일러의 3인조로 정식 멤버를 축소하되 기타리스트 워렌 쿠쿠룰로 (Warren Cuccurullo)[16]와 드러머 스티브 페론 (Steve Ferrone)을 세션으로 영입하여 활동하는 강수를 둔다.

워렌 쿠쿠롤로는 검증된 기타리스트답게 앤디 테일러가 초기에만 잠시 손대고 미처 채우지 못한 공백을 잘 메꿔나가며 새앨범을 녹음해냈고 1986년 11월에 4번째 정규 스튜디오 앨범 Notorious를 발매했다.[17] Chic 출신 기타리스트 Nile Rodgers가 프로듀서를 담당한 앨범답게 펑크 (Funk)의 색채를 강하게 입힌 곡들이 절반 정도를 차지할 정도로 펑크의 비중을 높였고 브라스 섹션을 리듬 파트로 적극 활용한 것이 기존 듀란듀란 사운드와 크게 차별화된 변화였다. 그리고 아르카디아와 파워 스테이션 사운드의 영향을 받은 것도 음악성이 변화하는데 작용하였다.
Notorious는 뉴웨이브 감각을 Funk와 결합시킨 명곡이고 Skin Trade,[18] So Misled, Meet El Presidente는 듀란듀란 스타일의 펑키 사운드인데 앨범 발매 당시 10대가 주류를 이루던 팬들에겐 (아직 다양한 음악을 접한 경험이 적다보니) 쉽게 수용하기 힘든 점이 있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Vertigo는 뉴웨이브 뮤지션들이 즐겨쓰는 Synth 리프 위에 알앤비 감성이 흐르는데 중독성이 있다. American Science는 제목부터 특이하다 생각했는데 예나 지금이나 색다른 곡이다. A Matter Of Feeling은 국내에서 인기 있었던 발라드이며 Andy Taylor의 기타가 녹음된 곡이다.[19]
앨범 발매 직후 두달만에 플래티넘을 기록하였고 싱글 Notorious는 빌보드 핫 100 차트 2위까지 오르며 3인조 축소후 부정적인 영향에 대한 불안감을 일단 불식시켰다. 그러나 10대들의 아이돌 이미지 탈피 시도, 변화된 음악성, 멤버 인원 축소에도 변함없이 열광하는 충성 팬층과 The Fab Five 시절을 그리워하며 아쉬움을 가진 팬층으로 나뉘었고 서서히 전성기가 끝나가기 시작한다.
* 앨범 차트: 빌보드 (12위), 영국 (16위)
* 싱글 차트: Notorious (빌보드 2위, 영국 7위) Skin Trade (빌보드 39위, 영국 22위) Meet El Presidente (빌보드 70위, 영국 24위)
[image]1988
밴드의 진정한 하향세는 1988년 앨범 Big Thing부터 시작된다. 이 앨범의 리드 싱글 I Don't Want Your Love는 빌보드 핫 100에서 4위, 영국 차트 14위, 심지어는 1989년 빌보드 연말 차트 70위권 안에 들기까지 했으나 기존의 듀란 듀란의 성과에 비교하자면 아쉬운 성적이 아닐 수 없었다. 이 곡이 나왔을 당시에 역시 듀란듀란이라는 감탄이 나왔던 All She Wants Is [20]는 기대만큼 빌보드 싱글 차트 상위권에 진입하지 못했다. 다음 싱글 Do You Believe In Shame? 은 더욱 낮은 순위에 랭크되어 Notorious 앨범의 싱글 곡들과 차트 성적에서 비슷한 양상을 보였지만 앨범 판매량에서 플래티넘을 얻지 못하여 하락된 인기의 현실을 맞이해야만 했다.
게다가 시대가 변하여 80년대 말 들어서 같은 시기에 활동했던 동료 밴드들은 하나씩 몰락해가는 시대였다. 듀란듀란은 기존의 뉴 웨이브, 신스팝의 하향세와 아이돌 이미지를 실험적인 아티스트 노선과 하우스 음악과의 장르적인 접목을 실시하며 대응해나갔지만 시대는 이미 힙합, R&B, 뉴 잭 스윙 류의 흑인 음악과 얼터너티브 락의 시대로 막 접어들어가고 있었다.
* 앨범 차트: 빌보드 (24위), 영국 (15위)
* 싱글 차트: I Don't Want Your Love (빌보드 4위, 영국 14위) All She Want Is (빌보드 22위, 영국 9위) Do You Believe In Shame? (빌보드 72위, 영국 30위)
[image]
팝 시장의 본토 미국에서 흥행 성적은 예전보다 못했지만 국내 듀란듀란 팬들에겐 뜻 깊은 앨범이 Big Thing 일 것이다. 앨범 홍보 투어 일정 중에 대한민국이 포함되어 1989년 2월 11일 잠실 실내체육관에서 첫 내한 공연이 있었기 때문이다. 녹화 영상을 보면 한국 소녀 팬들의 뜨거운 함성을 들을 수 있다.
'''5) 두보 전진을 위한 한보 후퇴'''
[image]1990
세션으로 듀란듀란에서 활동하던 기타리스트 워렌 쿠쿠룰로와 드러머 스털링 캠벨은 정식 멤버가 되어 작곡에도 참여한 앨범 Liberty를 1990년 8월에 발표한다. 1990년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는 46위까지 올랐고 판매량 역시 예전 정규 앨범들에 비하면 저조했다. 첫번째 싱글 곡 Violence Of Summer는 영국 싱글 차트 20위, 빌보드 핫 100 차트 64위를 기록했으며 Serious는 영국 싱글 차트 48위를 기록했다. (일본 싱글 차트에서는 6위)
앨범 수록곡들은 듀란듀란의 기대치에 비한다면 히트곡으로 밀어줄만한 곡이 없었고 밴드 이미지 또한 과거에 비해 평범해진 느낌을 전해준다. 사이먼 르본과 존 테일러도 앨범 작업 과정에 미흡한 부분들이 있었음을 회고했다. 게다가 밴드 역사상 처음으로 홍보 투어조차 하지않는 것을 결정할 정도로 관심을 받지 못하였다.
평론가들은 정체성이 모호하다는 이유로 매우 인색한 평가를 내렸다. 하지만 아래에 언급된 곡들을 들어보면 썩어도 준치라는 말이 떠오르는 앨범이 Liberty라 할 수 있다.
First Impression은 듀란듀란 곡을 잘 모르는 하드락 팬들이 들어도 호감을 가질만한 곡이며 (특히 워렌 쿠쿠룰로의 열정적인 기타 솔로가 인상적이다.) Serious 또한 시대의 유행을 타지 않는 준수한 곡이다. 블루지한 느낌이 가미된 Liberty, 전작 Big Thing 앨범의 슬로우한 곡의 분위기를 비트감있게 살린 My Antarctica, 80년대 전성기 시절의 센스가 죽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Venice Drowning 등은 리듬 전개와 악기의 특성을 살려 편곡하는 능력이 프로패셔널함을 느끼게 한다.
리버티 앨범은 실패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다음 앨범 성공의 밑거름이 되는 두보 전진을 위한 한보 후퇴이자 해가 뜨기 전 가장 어두운 밤의 시간이었다.
'''6) 제2의 전성기'''
[image]1993
1993년에 밴드의 큰 전환점인 'The Wedding Album'이 발매 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였다. 영국 4위, 미국 7위로 Rio 다음으로 히트한 앨범이 되었고, 첫 싱글 Ordinary World가 빌보드 싱글차트 3위, 두번째 Come Undone이 7위를 차지 하면서 가장 화려한 컴백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존 테일러는 듀란듀란 생활에 회의를 느끼고 있었으나 이 앨범의 히트로 탈퇴를 미루게 된다.
Liberty (1990) 앨범부터 정식 멤버가 된 워렌 쿠쿠룰로는 Ordinary World, Come Undone의 감성적인 기타 사운드로 앨범이 히트하는데 공헌하며 확실한 존재감을 드러냈고 시너지 효과를 일으켰다. 그리고 이 시기 부터 비로소 진정한 음악성을 가진 밴드로서 인정 받게 되었는데 80년대 음악성까지 긍정적으로 재평가 받게 되는 상황이 연출되게 된다.
[image]
2008년 4월 17일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두 번째 내한공연이 있었다.
2012년 3월 12일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세 번째 내한공연이 있었다.
2015년 'Paper Gods' 앨범이 빌보드 앨범차트 10위로 데뷔하면서 1980년대, 1990년대 2010년대 도합 세 시대에 탑10 앨범을 가지게 되었다.
2018년 새로운 앨범을 작업 중이다.
2020년 베이시스트 존 테일러가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가 완치된 사실을 뒤늦게 알렸다.

3. 멤버


'''1) 현재 멤버'''
'''사이먼 르 봉'''
'''Simon Le Bon'''
'''이름'''
사이먼 존 찰스 르 봉 (Simon John Charles Le Bon)
'''국적'''
[image] 영국
'''출생'''
1958년 10월 27일
잉글랜드 하트퍼드셔주 부쉬

'''신체'''
188cm
'''직업'''
싱어송라이터, 작곡가
'''종교'''
무종교
'''소속'''
듀란 듀란
'''결혼'''
야스민 르 봉 (1985 ~ 현재)
'''가족'''
딸 앰버 르 봉[21] (1989년)
'''사진'''
포토 갤러리
프랑스계 영국인[22]이며, 밴드의 중심 보컬을 맡고 있다. 엘비스 프레슬리같은 외모와 엄청난 덩치[23]를 자랑하며, 결정적으로 '''라이브 실력이 상당하다.'''[24] 올해 62살이지만, 전혀 그렇게 안보인다. 남자판 뱅글스의 Susanna Hoffs라고 보아도 될 듯.[25] 엄청난 미중년...아니 미노년이다.
'''존 테일러'''
'''John Taylor'''
'''이름'''
존 테일러 (Nigel John Taylor)
'''국적'''
[image] 영국
'''출생'''
1960년 6월 20일
영국 워릭셔주 솔리헐

'''신체'''
188cm | 70kg | B형
'''직업'''
베이시스트, 작곡가
'''악기'''
'''베이스 기타'''
'''종교'''
무종교[26]
'''소속'''
듀란 듀란
'''결혼'''
아만다 드 카드네 (1991 ~ 1995)
젤라 내쉬[27] (1999 ~ 현재)

'''가족'''
딸 애틀랜타 누 (1992년)
'''사진'''
포토 갤러리
베이시스트. 외모때문에 저평가받은 인물 1순위로 꼽힌다. 수려한 외모[28] 때문에 베이스 실력이 빛에 가린 경향이 있다. 생각보다 잘 연주하는 정도가 아니라 천재성이 엿보이는 베이시스트라 할 수 있다. 듀란듀란과 파워스테이션의 앨범을 진지하게 들어보면 베이스 라인과 리듬을 만드는 감각이 비범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베이시스트 지망생들은 존 테일러의 음악을 꼭 들어보시길 바란다.
'''닉 로즈'''
'''Nick Rhodes'''
'''이름'''
니콜라스 제임스 베이츠 (Nicholas James Bates)
'''국적'''
[image] 영국
'''출생'''
1962년 6월 8일
영국 버밍업 모슬리

'''직업'''
음악가, 프로듀서
'''악기'''
'''건반 악기|키보드'''
'''종교'''
무종교
'''소속'''
듀란 듀란
'''활동시기'''
1978 ~ 현재
'''사진'''
포토 갤러리
존 테일러와 함께 듀란듀란 창단 멤버이다. 40년이 넘는 세월동안 키보디스트의 자리를 지키고 있으며 듀란듀란 사운드의 성격을 뉴웨이브로 승화시켰다. 젊은 시절엔 시크한 멋의 외모로 독자적인 팬층이 두터웠는데 도도하고 차가운 느낌의 미모가 매력적이었다. 외모에서 풍기는 이미지처럼 성격도 이성적인 타입인 것 같다.
'''로저 테일러'''
'''Roger Taylor'''
'''이름'''
로저 앤드류 테일러 (Roger Andrew Taylor)
'''국적'''
[image] 영국
'''출생'''
1960년 4월 26일
영국 버밍엄

'''직업'''
'''드러머''', 작곡가
'''악기'''
드럼
'''종교'''
무종교
'''소속'''
듀란 듀란
'''활동시기'''
《1979–1986》《1994–1995》《2001 ~ 현재》
'''사진'''
포토 갤러리
퀸의 로저 테일러가 아니다(...) 듀란듀란의 로저 테일러도 나름 유명한 인물이다. 라이브 연주시 진지한 표정으로 박진감 있게 드러밍하는 모습이 매력적이다. 80년대 Fab 5 전성기를 누리면서 쉴 틈 없는 바쁜 일정에 지쳐 음악계를 오랜 세월 떠났었지만 2001년 다시 듀란듀란에 복귀하여 어느덧 내년이면 20년을 멤버들과 함께 하고 있다.
이외 라일락 타임 리더로 활동중인 스테판 더피도 극 초기 멤버였다. 다만 EMI와 계약하기도 전에 빠져나가서 Fab 5에 속하진 않는다.

4. 앨범 목록


* 정규 스튜디오 앨범
1981 Duran Duran
1982 Rio
1983 Seven and the Ragged Tiger
1986 Notorious
1988 Big Thing
1990 Liberty
1993 Duran Duran (The Wedding Album)[29]
1995 Thank You
1997 Medazzaland
2000 Pop Trash
2004 Astronaut
2007 Red Carpet Massacre
2010 All You Need Is Now
2015 Paper Gods

5. 뮤직 비디오


* 정규 뮤직비디오 소개 및 감상 - 발매일 순서대로 정리 (PC) (모바일)
* 정규 뮤직비디오 감상 - 곡명 순서대로 정리 (PC) (모바일)

6. 관련 사이트


* 공식 홈페이지 - http://www.duranduran.com
* 국내 팬 사이트 - MEET EL DURAN DURAN (FANSITE IN KOREA) https://duranduran.co.kr
* 국내 팬 커뮤니티 - 네이버 카페 https://cafe.naver.com/duran 다음 카페 http://cafe.daum.net/duran
* 듀란듀란 위키 - https://duranduran.fandom.com

7. 빌보드 핫 100 (싱글 차트) 기록


  • 1위 - The Reflex (1984) / A View to a Kill (1985) [30]
  • 2위 - The Wild Boys (1984)[31] / Notorious (1986)
  • 3위~10위 - Hungry Like the Wolf (1982)[32] / Is There Something I Should Know?, Union of the Snake (1983) / New Moon on Monday (1984) / I Don't Want Your Love (1988) / Ordinary World, Come Undone (1993)
  • 11위~20위 - Rio (1982), Save a Prayer (1985)[33]

8. 여담


  • 음악 실력도 실력이지만, 밴드 구성원들의 무척 잘생긴 외모로 한때는 소녀팬들 엄청 끌고다닌 것으로 유명하다. 베이스 존 테일러는 각진 만화같은 잘생김, 키보드 닉 로즈는 차가운 잘생김, 보컬 사이먼은 야성적이고 엘비스 프레슬리를 연상시키는 잘 생김, 로저 테일러의 부드러운 잘생김, 앤디 테일러의 앳되고 친근한 느낌의 잘생김 등등. [34] 심지어는 얼굴 때문에 실력이 덜 평가받는 느낌이 있다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 사실 그들의 여러 노래를 들어 보면 연주 실력이 상당함을 알 수 있다.


  • 88 올림픽 이후 팝스타들의 내한공연이 이어졌는데 듀란듀란은 1989년 이후 여러번 내한 공연을 가진 바 있다. 80년대를 주름잡는 최고의 아이돌 그룹(?)이다보니 이들을 좋아하던 국내 소녀팬들도 꽤 많았고, 그 중에는 아예 락음악에 심취한 이들도 있었다고 한다. 국내 뮤지션 중에서는 소찬휘윤상[35]이 좋아하던 밴드였다고 한다.
  • 빅히트 엔터테이먼트의 대표이자 작곡가 방시혁이 듀란 듀란의 상당한 팬으로 알려져있다.
  • 스피드 그래퍼 오프닝에 이전에 발표한 "Girls on Film"이 쓰이기도 해서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 스타크래프트의 등장인물 사미르 듀란을 연속으로 클릭하면 "듀란이라고요. 듀란, 듀란! (I've told you my name it's Duran, Duran!)"이라는 대사가 있는데, 이 그룹 듀란듀란의 패러디이다. 또 듀란 듀란의 대표곡들의 제목을 패러디한 "제발, 어서 말씀해 주세요. (Please please, tell me now.)"[36], "제가 알아둘 게 있습니까? (Is there something I should know?)"라는 대사도 있다.
  • 자우림의 20세기 소년소녀라는 노래의 가사에는 20세기를 빛낸 비틀즈마돈나 등이 나오는데 "듀란 듀란의 노래" 라는 가사도 나온다.
  • 015B가 2012년에 발표한 디지털 싱글 '80'[37]에서도 "듀란 듀란과 컬처 클럽[38]이 얼마나 멋있었는지 너희들은 모를껄"이란 가사가 나온다.
  • 러시아 락밴드 키노의 리더이자 작곡을 담당한 빅토르 초이의 생전 인터뷰에 따르면 자신은 당시 서구 락밴드들의 영향을 받았다고 했는데 그 중 대표로 제시된 게 듀란 듀란이다.
  • 토르 : 라그나로크에서 브루스 배너가 입고 있는 티셔츠에 듀란 듀란의 Rio 앨범재킷이 그려져 있다.
  • 닥터 후 뉴 시즌 7 8화에서 소련 과학자가 Hungry Like The Wolf를 부르는 장면이 있다.
  • 1994년식 로버 메트로의 특별사양 리오/리오 그란데의 광고는 듀란 듀란의 Rio를 사운드트랙으로 삼았으며, 구매 고객에게 사운드트랙을 나눠 주는 특전도 주어졌다.#
  • 삼립식품이 1980년대에 만든 빵중에 듀란듀란이 있는데 바로 여기서 이름을 딴듯 하다. CM은 킹콩을 패러디했다.
[1] 왼쪽부터 Roger Taylor (드럼), Simon Le Bon (보컬), John Taylor (베이스), Nick Rhodes (키보드), Andy Taylor (기타)[2] 왼쪽부터 Roger Taylor (드럼), John Taylor (베이스), Simon Le Bon (보컬), Nick Rhodes (키보드)[3] 퀸(밴드)의 드러머인 로저 테일러와는 다르다 ![4] BBC, MTV에 방송 금지를 당했던 원작을 수정한 버전이다. Day Version이라고도 부른다.[5] 80년대에는 부모님 방 또는 거실에 비디오 플레이어가 있는 집이 많았기 때문에 걸스 온 필름 비디오는 부모님 몰래 봐야만했다. 이 뮤직 비디오가 Night Version이라 불리우는 무삭제 원작이다. 80년대에 10대 국내 팬들이 성적인 표현이 충만한 나이트 버젼을 접할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나이트 버젼이 실렸던 First 11 Videos (1983)를 통해 Duran Duran 뮤직 비디오를 주로 접했기 때문이다. 수많은 해외 앨범들을 빽판으로 들어야했던 시절인데 하물며 뮤직 비디오를 접할 수 있는 미디어 매체는 극히 한정적이었던 시절이었다. First 11 Videos에 함께 실렸던 Chauffeur 뮤직 비디오 역시 80년대 당시 한국 정서로서는 수용하기 어려운 이질감을 주는 영상으로 문화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유튜브에서는 Girls On Film (Day Version)만 검색되고 있으며 Chauffeur 뮤비는 시청 연령 제한이 걸려 있다.[6] 빌보드 앨범 200 차트를 간략히 빌보드로 표기[7] 1983년 미국에서 재발매된 데뷔앨범이 빌보드 앨범 차트 10위에 올랐다.[8] 빌보드 핫 100 차트를 빌보드로 간략히 표기[9] 1983년 싱글로 발매되었고 1983년 재발매된 데뷔 앨범에 수록[10] 1982년에는 미국 싱글 발매가 없었고 1985년에 스페셜 싱글로 발매되어 빌보드 16위 랭크[11] 그 해 1위가 프린스의 "When Doves Cry", 그 해 2위가 티나 터너의 "What's Love Got to Do with It", 3위가 폴 매카트니마이클 잭슨의 "Say Say Say", 4위가 그 해 아주 크게 히트한 영화 "풋루즈"의 사운드트랙이었던 케니 로긴스의 "Footloose", 5위가 필 콜린스의 "Against All Odds", 6위가 벤 헤일런의 "Jump", 7위가 라이오넬 리치의 "Hello", 8위가 예스의 "Owner Of A Lonely Heart", 9위가 레이 파커 주니어의 "Ghostbusters", 10위가 컬처 클럽의 "Karma Chameleon", 11위가 존 웨이트의 "Missing You", 12위가 라이오넬 리치의 "All Night Long", 13위가 데니스 윌리엄스의 "Let's Hear It For The Boy", 14위가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Dancing In The Dark", 바로 위의 15위가 신디 로퍼의 "Girls Just Want To Have Fun" 이었다. 이를 보면 이 곡이 당시 미국에서 얼마나 크게 히트했는지 알 수 있다. 1980년대 자체가 미국 음악 시장 역사상 제일 살벌하고 복잡하고 변화하고 다양하던 때이지만 1984년은 그 중에서도 제일 치열한 해 중 하나였다. 듀란 듀란의 명성을 보여 주는 부분.[12] 흥행 성적 결과는 앤디 테일러와 존 테일러가 주축이던 슈퍼 밴드 파워 스테이션의 승리였다. 펑크 (funk) 성향이면서도 당대 트렌드를 잘 맞춰나간 밴드였고 참여 멤버부터 이미 솔로가수로 이름이 높던 로버트 팔머Chic의 리듬파트를 책임지던 당대 최고 베테랑 드러머 중 하나인 토니 톰슨이라는 거물들을 데려왔다. [13] 다만 알카디아 역시 "Election Day"라는 뉴웨이브 히트곡을 내놓았다. 빌보드 핫 100에서 6위에 들고 1986년 빌보드 연말차트 90위 권에 들었었다.[14] Chic의 드러머 Tony Thompson은 파워 스테이션 멤버가 되었고 베이시스트 Bernard Edwards는 프로듀서와 매니저를 맡았다.[15] 로저 테일러는 아르카디아 앨범 녹음에는 참여했으나 뮤직 비디오에는 등장하지 않는다.[16] 당대의 세션들이 모였던 Missing Persons, Frank Zappa 밴드 출신의 기교파 기타리스트이며 90년에는 코무로 테츠야의 솔로 라이브에도 세션으로 참여했었다.[17] 국내에서는 라이브 앨범 Arena를 스튜디오 앨범과 구분하지 않고 4집이라고 부르는 관행이 있었기 때문에 듀란듀란 올드 팬들은 여전히 Notorious 앨범을 5집이라고 연상하는 분들이 계실 것이다.[18] 국내에서는 Skin Trade가 심의에 걸려 앨범에 수록되지 못했었다[19] 노토리어스 앨범의 기타 파트는 작업 초기에 앤디가 참여한 부분들이 적지 않았다고 전해지지만 그가 어떤 기타 연주의 흔적을 남겼는지 정확하게 알려져있지 않은 편이다.[20] 헤비 메탈 스타일의 신스 리프와 댄서블한 하우스 뮤직 스타일의 리듬을 뼈대로 만들었고 반복적인 후렴구를 잘 만든 수작이다. 워렌 쿠쿠룰로의 기타 또한 곡 분위기에 맞게 잘 녹여냈으며 뮤직 비디오는 Arcadia의 Missing 뮤직 비디오를 연상 시킨다. 두 영상 모두 Dean Chamberlain 감독이 제작한 것이다.[21] 모델이였던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현재 패션 모델로 활동 중이다.[22] Le Bon 성씨는 영국에 정착한 위그노의 후손이다.[23] 키가 188cm로 존 테일러와 같다.[24] 라이브에서 고음처리를 뛰어나게 하고 젊은 시절에는 춤도 아주 잘췄다.[25] 이분도 1980년대 유명했던 밴드 뱅글스의 프런트맨이며, 올해 60살이지만 40대로 보인다. 전성기였던 1980년대 중후반 모습과 현재 모습을 비교해 봐도 그리 차이 나지 않는다.[26] 어린 시절에는 가톨릭 신자였으나 냉담자가 되었다.[27] 7살 연상이다. 패션브랜드 쥬시꾸뛰르 창업자 중 한 명이다.[28] 키가 사이먼 르 봉과 같다.[29] 1981년 데뷔작 'Duran Duran'과 구분하고자 'The Wedding Album'이라고 더 불린다.[30] 로저 무어의 마지막 007 영화인 "A View to a Kill" 의 메인 테마곡이다[31] 국내 격투마니아들에게 익숙한 노래인데, 종합격투기 선수 미르코 크로캅의 입장 음악이기 때문.[32] 사실상 지금의 듀란 듀란을 있게한 노래이다. 이 곡이 1983년 미국에서 아주 큰 인기를 끌며 듀란 듀란이 미국을 점령할 수 있었다. 1983년은 음악사적으로도 아주 중요한 해인데, Off The Wall으로 대성공했지만 남아있었던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을 깨부수고 일반 케이블에 불과했던 MTVNBC, ABC, CBS 버금가는 메이저 방송사로 만들며 비디오 시대까지 연 마이클 잭슨, 또 그 마이클 잭슨이 깨부순 인종차별의 벽 덕분에 프린스 역시 대성공을 할 수 있었던 해이며, 컬처 클럽과 듀란 듀란이 미국 시장 진입 성공과 동시에 미국 시장을 점령했던 해이며, 몇 년 전 부터 미국에서 히트곡을 거둬 오고 있던 The Police가 그 해 미국에서 제일 큰 히트곡인 "Every Breath You Take"를 발표한 해이기도 하다. 홀 앤 오츠는 1981년부터 이어온 최전성기를 계속 유지했으며, 이 외에도 Men at Work, 도나 써머, 데이빗 보위, Eurythmics, 빌리 조엘, 라이오넬 리치 등이 1983년 미국 음악 시장을 점령했다.[33] Save A Prayer는 1982년도에 미국에서는 싱글이 미발매되었고 1985년도에 스페셜 버젼 싱글이 발매되어 빌보드 핫 100 차트 16위 기록.[34] 사실 기타리스트인 앤디 테일러는 초기에 그다지 잘생긴 얼굴은 아니었다. 그래도 방송물 먹고 관리해 나가면서 파워스테이션 시절엔 음악적인 축이자 존 테일러와 함께 비주얼도 담당했는데 혹자는 파워 스테이션이야말로 앤디 테일러의 진정한 테크닉과 댄서블한 그루브를 보여주는 무대라며 듀란에 머물기엔 아까운 인재라는 평도 내린 적이 있을 정도. 딱 하나 아쉬운 점이라면 키가 168cm였는데, 평균보다도 작은데다가 동료들이 188cm의 어마어마한 거구이기에 함께 무대에 선 모습을 보면 거의 아기처럼 보인다(...)[35] 중학교 때 그들의 음악을 들으면서 음악가의 꿈을 키웠다고. 삼촌한테 기타까지 배울 정도로. 활동 초창기에는 베이시스트 존 테일러의 헤어스타일을 따라하기도 했다.[36] 이 대사를 할 때는 원곡의 드럼 소리가 난다. 단, 감염된 듀란 버전에서는 드럼 소리가 나지 않는다.[37] 제목 그대로 80년대 뮤지션들과 음악에 대한 추억을 담은 노래다.[38] Culture Club. 여장남자 컨셉으로 유명했던 '보이 조지(Boy George)'가 이끌었던 밴드. 당시 이들은 "컬처 클럽은 현대음악에 있어서 표절의 가장 진지한 형태이다. 우리는 누구보다도 표절을 잘한다." 발언으로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다. 수많은 노래들을 재해석해서 히트공식에 맞춰서 재조립하는게 이들의 작업방식이었는데, 어디선가 들어본거 같긴 한데 하여튼 노래는 끝내준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레퍼런스와 표절 사이의 모호한 경계를 잘 나타내는 사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