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부심

 

1. 개요
2. 예시
3. 같이 보기
4. 기타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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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나라 위왕은 송옥을 아주 총애했는데, 송옥에 관한 추문이 날마다 들려왔다. 어느 날 그가 송옥에게 물었다. "선생은 몸가짐을 조심해야겠소. 그렇지 않다면 왜 관리나 백성들이 모두 선생의 나쁜 점을 말하겠소?"

송옥은 급히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맞습니다. 그런 일이 있었지요. 임금님께서는 저의 죄를 나그러이 보아주시고 제 말도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어떤 가수가 서울에서 노래를 불렀답니다. 처음에 그가 부른 노래는 '하리파인'이라는 노래였는데 따라 부른 사람이 몇 천 명이나 되었지요. 그 다음 부른 노래는 '양릉채미'라는 노래였는데 이번에는 따라 부른 사람이 겨우 수백 명이었답니다. 그가 마침내 '양춘백설'이라는 어려운 노래를 부르자 이해하는 사람은 거의 없고, 따라 부른 사람도 여남은 명에 지나지 않았답니다. 마침내 그가 곡조가 변하는 어려운 노래를 부르자 사람들은 어안이 벙벙했지요. 결국 따라 부른 사람이 몇 명밖에 안 됐답니다. '''곡조가 고상할수록 따라 부르는 사람도 점점 줄어드나 봅니다.'''[1]

-「문선(文選)」 中, '곡고화과(曲高和寡)'의 고사.

마이너부심은 부심의 일종으로 비주류를 만들거나 즐기면서 자부심을 가지는 행위를 말한다. 스노비즘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
마이너부심을 가지게 되면 주류 문화, 제품, 컨텐츠 등을 즐기는 사람들을 개성이 없는 공장 양산 인간, 남들이 하면 다 따라하는 사람 취급을 하며 예술성이나 작품성은 대중성과 무조건 반비례하다고 믿는 근거 없는 속설의 신봉자가 되기도 한다.
이들은 자신이 즐기는 문화들이 마이너인 이유는 일정 수준 이상의 안목이 필요하므로 자연스럽게 마이너가 되는 것이고 이것들을 알아보고 즐기는 자신 역시 높은 안목을 가지고 있다고 마인드 컨트롤을 한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자신이 즐기는 문화는 주류는 아니지만 수준이 높다며 다른 문화를 즐기는 사람들을 비하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마이너부심의 대상이 된 문화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기는커녕 혐오감만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마이너부심의 대상이 된 문화를 즐기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괜히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욕 먹인다며 기피대상이 된다. 물론 가끔 가다 특정 문화를 즐기는 팬덤 전체가 마이너부심에 젖는 경우도 있는데, 이럴 경우는 해당 문화 자체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마이너한 장르를 다루는 커뮤니티 내에서도 마이너부심을 부리는 사례가 관찰되고는 한다. 최상단의 첨부되어 있는 짤에 나온 영국의 밴드 뮤즈를 예로 들자면 2010년 당시 뮤즈는 한국에서 그리 유명한 밴드는 아니었지만 록 음악을 즐기는 사람들 사이에선 결코 마이너하지 않았다. 이런 사람들에게 그 분야에서 상당히 유명한 뮤즈, Sum 41, 린킨 파크, 니켈백 등의 노래를 듣는다고 말을 할 경우 '개나 소나 다 아는거 ㅉㅉ'라는 반응이 나오고는 한다. 그러면서 다른 밴드들을 언급하며 '이 정도는 들어줘야지'의 우월주의를 드러낸다.
대중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물건을 향유하고 팬이 된 사람이라면 시간이 흐름에 따라 대중에게 잘 알려지고 더욱 많은 사람들이 취미를 같이 함으로서 바뀌는 분위기에 대해서 올드비로서 회상이나 '그때가 좋았는데'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법이다. 그러나 이걸 넘어서서 자기는 이게 한미한 취급할 때부터 즐겨 왔으니 니들은 알지도 못하면서 말하지도 말라고 올드비 유세를 떤다던가, 쓸데없이 새로 들어온 뉴비에 대해서 선생질이나 참견질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것도 일종의 마이너부심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에게 어떤 문화를 소개하고 싶으면 그 문화의 장점과 특색을 소개하면 되는 것이지, 비교 대상인 기존 문화의 질이 현저히 떨어지지 않는 이상 기존 문화를 끌고 와서 비하를 하는 순간 사람들은 거부감을 가지게 된다. 가령 아래의 예시들도 단순히 'X라는 래퍼의 음악은 이러이러해서 좋아.' 'X라는 영화는 인기는 없지만 이러이러한 점에서 숨겨진 명작이라고 생각해' 라고 한다면 별 문제 없다.
또한 위의 고사에서도 알 수 있듯이 곡조가 고상할수록 따라 부르는 사람이 적은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문제는 그 역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남의 호응을 못 받을수록 그 대상이 고상하다는 주장은 후건 긍정의 오류로서, 자기 잘못과 남의 비난을 호도하는 궤변이다. 그 대상이 고상한 것이 호응을 받지 못하는 유일한 이유는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이 고상하다는 것인지도 사실 주관적인 것일 뿐이지 객관적인 것이 전혀 아니다.

2. 예시


  • (멜론, 엠넷닷컴 등의 사이트에서 1위를 한 래퍼 A를 보며) A는 대중성은 있을지 몰라도 음악성이 없어! 언더에서 활동하는 X야 말로 진정한 래퍼지.
  • (해외에선 흥행했지만 한국에선 별로 알려지지 않은 게임 X의 리뷰) 하긴 우리나라 사람들 수준이야 A 같은 빠르고 간단한 게임이나 좋아하지 X 같은 명작을 알아보겠나?[2]
  • (한 웹툰의 댓글) 이 만화의 순위가 낮은 이유는 연령대가 어린 독자들이 많은 사이트 특징상 전체적인 수준이 낮아서 그럽니다. A 같은 일본 배틀물을 채용한 소년만화가 조회수 1위인게 그 예죠.[3]
  • (특정 한 게임에서 채용률이 낮은 캐릭터, 빌드, 전략 등을 사용하며) 저는 몇 년 전부터 이거 하나만 팠습니다. 애정이 남다르지요. 남들이 구리다고 쓰레기라고 욕할 때도 이거만 고집했습니다. 강하거나 멋진게 방송에 나오면 그때그때 갈아타는 철새들이랑 달라요. 다만 가끔씩 이러한 빌드가 숨겨진 꿀빌드라서, 알려져 너프의 대상이 될까봐 사람들이 몰리는 걸 싫어하는 경우도 있다.[4]
  •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 X의 관객 수가 적은 것을 보고) A 같은 감성팔이나 해대는 영화가 관객수 1위 먹는게 한국 영화계의 현실입니다. X에서 전하고자 하는 철학적인 내용이 이 나라의 수준 낮은 관객들이 이해하기엔 너무 심오한거 같네요.[5]
  • (X 브랜드의 인식이나 저명성이 낮지만 매니아들이 선호하는 제품을 평가하며) 잘 모르는 일반인들은 대기업 브랜드인 A사나 B사 제품 아무거나 쓰지만 정말 이 분야 좋아하는 사람들은 X를 알지요. 그런 클론들이랑 달라요.[6]
  • (자신이 평소 즐겨입던 비인기 브랜드 XX의 의류를 연예인 혹은 배우가 입고 드라마, 영화 등에 출연했을 경우) 아 XX는 나만 아는건데 이제 개나 소나 다 사겠네.
  • (자신이 응원하던 작품 X나 X 작가가 미디어 믹스로 인기가 높아지거나 방향성이 바뀌었을 때) 미디어 믹스 후에 들어온 메뚜기떼 때문에 X(작품)이 저질스러운 인기 영합 노선이 됐다. 원래 X(작가)가 이만큼 큰 것은 나 같은 팬들 덕분인데 돈 좀 벌었다고 키워준 올드팬들을 모른 척한다. 미디어 믹스 같은 것 하지 말고 영원히 안 팔리는 채로 있었어야 했다.
  • (자신이 좋아하는 유명하지 않던 가수가 유명해졌을 때) 나만 알던 가수인데 이렇게 유명해지니 아쉽네요.[7]
  • (안 팔리는 예술을 하면서) 훗, 원래 고상한 예술이 대중의 선택을 받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법이죠.[8]
  • 학창 시절 본조비 노래를 불렀다가 선배들한테 빠따를 맞았다는 박완규. 락부심 문서에도 언급된 일화이다. 그래도 앞 사례들은 피식 웃고 말 일이지만, 이 경우는 빼박 학폭이며 성인이면 범죄로 처벌될 일이다.

3. 같이 보기



4. 기타



[1] 현대에는 '곡조가 고상할수록...'으로 알려져 있지만 원문에는 옛 음계인 상조, 우조, 치조가 나오는 등 고음임을 암시하는 부분이 명확히 있다.[2] 흑백논리,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 부적절한 결론의 오류를 범했다. 사람의 취향이 대중적인 게임과 마이너한 게임을 둘 다 좋아할 수도 있고 싫어할 수도 있고 한 쪽만 좋아할 수도 있고 다양한데 한 국가의 국민들이 전부 같은 취향을 갖고 있을 거라 생각한 오류를 범한 것이다. 당장 이 주장이 오류라는 것을 증명하는 예시만 해도 원래 대중성 있는 블룬스 타워 디펜스 시리즈가 영미권에서 인지도가 높지만 한국에서 인지도가 낮은 사례가 있다.[3] 대표적인 예가 송곳, 칼부림, 지옥, 몽홀이 있다. 다만 몽홀을 제외한 앞의 세 작품은 좋은 평가를 받는다.[4] 보통 마이너부심의 대상이 되는 캐릭터가 약캐면 동정의 시선을 부내지만 무상성 캐릭터, 강캐, 사기캐면 기만자 고인물이라 욕먹기 십상이다.[5] 대중문화는 대중들의 실시간으로 변하는 다양한 취향에 의존하여 흥행을 예측하기 어려우므로, 평론가가 감성팔이가 싫다 하더라도 이를 본 사람이 영화를 본 이유 하나하나를 자세히 알아보지 않고 싸잡아 수준이 낮다고 한 것은 그 자신이 미성숙한 평론을 하였다는 증거다. 누군가는 쓰레기 영화라 부르는 것에 다른 사람은 위로를 얻을 수도 있다.[6] 마케팅의 결과는 잠재고객들의 시시각각 변하는 취향에 의존하기 때문에 거액을 들여도 결과가 나쁠 수 있다. 이는 아무리 질 좋은 제품이라도 한 번 마이너해져서 고객들이 잘 찾지 않을 수 있는 원인이다. 광고업계가 왜 수천만 원 이상 마케팅 비용을 들이겠는가?[7] 이쪽은 비아냥거리는 사족만 붙이지 않는다면 그냥 아쉽다고 여겨질 정도의 온건한 반응이다.[8] 상식적인 예술가라면 예술에만 올인하지 않고 부업을 마련해 미련을 갖지 않고 새 작품을 묵묵히 만들지만, 본 예시의 예술가는 작품에 쏟아야 할 귀중한 시간을 잠재독자를 비아냥거리는 데에 낭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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