맷 윌리엄스/여담

 



1. 개요
2. 대한민국과의 인연
2.1. 외할아버지 버트 그리피스의 친선전 방한
2.2. 1985년 한미대학야구 교류전 방한
3. 야구 관련
3.1. 선수 시절
3.2. 지도자 시절
4. 가족 관련


1. 개요


맷 윌리엄스여담을 다루는 문서.

2. 대한민국과의 인연



2.1. 외할아버지 버트 그리피스의 친선전 방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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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12월 5일, 매일신보 기사.

7일 오전 9시 50분 경성으로 입국 예정이며, 역사에 없던 야구 대전이 열릴 것이라는 내용.
1922년 12월 10일, 매일신보 기사.

전조선군이 23-3으로 패배했다는 소식과 1회부터 9회까지 경기 내용이 소개되었다. 아래 성적란을 보면, 2번 타자에 그리피스의 이름이 눈에 띈다.
맷 윌리엄스의 외할아버지 버트 그리피스는 브루클린 로빈스(現 LA 다저스)와 미네소타 트윈스의 전신이었던 워싱턴 세네터스에서 외야수로 활동했다.
그는 메이저리그 올스타 자격으로 방한하여 1922년 12월 8일에 만철구장(용산 남만주철도주식회사 운동장)[1]에서 전조선군과 맞붙는 친선전에 출전했다. 당시 메이저리그 올스타 멤버에는 케이시 스텡겔, 조지 켈리, 웨이트 호이트 등 명예의 전당 멤버 3명을 주축으로, 메이저리거들이 방한하여 경기를 뛰었다. 여담으로, 당시 숙소는 조선총독부 철도국이 보유하고 있던 조선호텔(現 웨스틴조선호텔)을 이용했다고 전해진다. 1922년 12월 8일 동아일보 기사
사실, 원래 이 경기는 예정에 없던 경기였다. 메이저리그 올스타 감독이었던 헐버트 헌터의 계획은 일본-상하이에 주둔하는 미군-마닐라로 건너가서 마닐라 거주 미국인들과 친선전을 하는 3경기가 원래 계획이었으며, 1923년 초까지 진행 될 예정이었다. 이런 아시아 투어 일정을 알게 된 조선체육회 이원용 이사와 야구인 박석윤이 일본으로 가서 헐버트 헌터 감독과 협상을 했고, 잡음이 있었지만 어찌저찌하여 매일신보와 경성일보, 조선일보를 비롯하여 여러 신문사의 후원을 받아 경성에서 '''한국야구사#s-2 최초의 한반도에서 개최한 외국 팀과 친선 경기'''를 열게 된 것이다.
아무튼 버트 그리피스는 주 포지션이 외야수인데도 이 경기에서는 2번 타자 2루수로 선발 출전하여 5타수 3안타(1홈런) 1볼넷 2도루의 맹활약을 보여줬다. 경기 결과는 당시 수준 차이를 생각하면 당연하게(?) 메이저리그 올스타가 전조선군을 23-3으로 크게 승리했다. 경기가 끝나고 전조선군 선수단은 메이저리그 올스타 일행[2]명월관[3]으로 초대하여 환영회를 즐겼다. 메이저리그 올스타는 환영회를 오후 10시 반에 마치고 다시 조선호텔로 돌아갔고, 다음 날 9일 오전 10시에 남대문정거장[4]에서 봉천행 급행열차에 탑승하여 베이징을 향해 떠났다.
그리고 버트 그리피스의 이 친선전 방한은 운명인지 외손자 맷 윌리엄스에게 인연이 이어졌다. 63년이 흘러 1985년에는 친선전을 위해 방한하게 됐고, 98년이 지난 2020년에는 대한민국의 프로야구단 KIA 타이거즈의 감독으로 취임하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
2020년 10월 18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인터뷰에서 윌리엄스는 외할아버지 버트 그리피스에 대해 기억을 하고 있었다. "당시 외할아버지께서 메이저리그 올스타 자격으로 경기를 치르러 한국을 찾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면서 기자에게 "굉장히 많은 조사를 한 것 같다. 어떻게 알았느냐?"고 웃음과 함께 되물었다.
윌리엄스는 "내가 태어나기 전인 1920년대 일이다. 당시 외할아버지는 워싱턴 세네터스에서 뛰고 있었다. 그들이 메이저리그 올스타 팀으로 뽑혀 어디서 투어를 하며 경기를 했다는데, 어디를 갔는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매우 오래 전 외할아버지가 그 팀에서 뛰었다는 이야기는 들었다"고 밝혔다. 이런 대한민국과의 인연에 대해 "정말 그렇다. 대단히 신기하다. 참 인생이란 알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2.2. 1985년 한미대학야구 교류전 방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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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루를 하다가 류중일에게 태그아웃 당하는 당시 사진
도루를 하다가 아웃 된 윌리엄스, 옆에서 서서 지켜보는 류중일
63년이라는 긴 시간이 흘러서 외할아버지 버트 그리피스가 그랬던 것처럼, 맷 윌리엄스도 1985년에 친선전을 참여하기 위해 방한한다.
맷 윌리엄스는 1985년 7월 10일부터 20일까지 미국 국가대표 자격으로 대한민국에 입국하여 한미대학야구 교류전에 참가하였다.[5] 당시 7월 13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한미대학야구 2차전에서 4회말에 솔로포를 기록하고, 도루 시도도 했으나 위의 동아일보 기사 사진과 같이 한양대 포수 김상국의 송구와, 유격수 류중일에게 저지당하기도 했다.[6]
맷 윌리엄스는 방한했을 당시 서울에서 있던 일을 기억하고 있었다. 특히 사이렌 소리를 뚫고 야구장으로 이동하던 순간을 인상깊게 여겼는데, “우리 팀이 이태원에 머물고 있었다. 경기장을 가기 위해 버스를 타야 하는데 사이렌이 울리더라”며 “이동을 못 한다고 해서 택시를 탔다. 다른 차들이 다 옆에 멈춰있어서 택시 기사에게 빨리 가 달라고 했다. 사실 무슨 상황인지 정확히 잘 몰랐다”고 말했다.
미국 국가대표가 묵는 호텔 근처엔 군복을 입은 군인들이 둘러싸고 있었다고 한다. 그는 “호텔에 도착해서 내렸는데 군인들이 서있더라. 다들 기분이 좋지 않은 채 서 있었는데 나에게는 그게 가장 선명한 기억이다”라고 회상했다. 설명대로라면 당시 민방위 훈련이 진행되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기자들에게 설명을 들고 나서는 “우리는 그런 걸 전혀 몰랐다. 그 절차를 완전히 무시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2.3.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시절 김병현의 동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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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에게 맷 윌리엄스라는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역시 김병현의 디백스 시절이 가장 컸다. 2001년 NLCS에서 김병현은 무실점으로 든든하게 뒷문을 지켜주고 있었는데, 2001년 월드 시리즈에서는 유독 부진하며 시리즈를 극적인 상황으로 끌고가는 홈런을 여러 차례 맞았다.
4차전 9회말에 티노 마르티네스에게 동점 투런을 맞고, 10회말에는 11월 1일을 알리는 자정의 종소리가 울리자마자 데릭 지터에게 끝내기 솔로 홈런을 맞으며 경기를 내주게 된다. 이어진 5차전에서도 세이브 상황에 또 등판했으나 스캇 브로셔스에게 동점 투런을 맞으며 이틀 간 똑같은 상황이 반복되자 김병현은 마운드에서 주저 앉고 말았으며, 맷 윌리엄스를 비롯한 내야진이 마운드로 달려가 김병현을 위로해주는 장면이 중계화면에 잡히고, 사진으로도 남으면서 화제가 되었다.

2019년 10월 23일, 함평군 기아 챌린저스 필드 마무리캠프에서 만난 두 사람
그리고 시간이 흘러서 2019년 10월 15일, 맷 윌리엄스가 KIA 타이거즈의 감독으로 부임하게 되면서 김병현과의 인연이 화제가 되었다. 결국 둘은 마무리캠프에서 16년 만에 재회하여 이야기를 나눴고, 디백스 시절 지갑을 잃어버려서 맷 윌리엄스에게 500달러를 빌렸던 이야기를 꺼내기도 했다. 그 후 김병현은 2020 시즌 KIA 타이거즈의 스프링캠프 투수 인스트럭터로 합류할 예정이었으나 개인 사정으로 인해 불발되었다.

3. 야구 관련



3.1. 선수 시절


  • 월드 시리즈에서 각자 다른 3팀 소속(SF, CLE, ARI)으로 홈런을 기록한 메이저 리그 유일한 타자라는 진기록을 가지고 있다.
  • 1997 시즌에 골드 글러브와 실버 슬러거로 선정되면서, 양대리그에서 골드 글러브와 실버 슬러거를 동시에 수상한 최초의 3루수가 되었다.
  • 더스티 베이커 감독과는 인연이 깊다. 프로 데뷔 후 헤매고 있을 때, 당시 베이커 타격코치 밑에서 성적이 일취월장 증가했고, 이후 베이커가 자이언츠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야구를 같이했다. 선수 시절 은퇴 직전에는 베이커가 컵스 감독이었는데, 컵스 입단 제의를 받았으나 거절했다. 맷 윌리엄스가 내셔널스 감독에서 경질되고 후임 감독은 베이커가 부임하기도 했다.
  • 1999 시즌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와의 경기에서 박찬호와 난투극이 일어나기 전까지 간 적이 있었다. 그 경기에서 박찬호에게 홈런을 쳤는데, 자제력을 잃은 박찬호가 다음 타석의 윌리엄스에게 힛 바이 피치 보복구를 던져서 어쩌면 이단옆차기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이단옆차기의 대상이 될 뻔 하였다.
  • 페드로 마르티네스하면 떠오르는 전설적인 영상인 1999년 올스타전 장면에 등장한다. 페드로가 제프 배그웰을 삼진으로 잡는 동시에 이반 로드리게스가 도루 저지를 하며 이닝을 끝내던 바로 그 영상. 그 때 도루를 하다가 이반 로드리게스에게 잡힌 선수가 바로 맷 윌리엄스다. 영상


3.2. 지도자 시절


  • 2013년 애리조나 코치 시절 LA 다저스와 난투극[7] 때 다저스 타격코치 마크 맥과이어가 애리조나 감독인 커크 깁슨에게 멱살을 잡으면서 항의하자 윌리엄스가 나서서 말렸는데, 이 불길이 윌리엄스에게 날아오면서 멱살을 잡히자 윌리엄스도 맥과이어의 멱살을 잡으며 설전이 오갔었다.
  • KIA 감독 후보 당시 조계현 단장과 사전 인터뷰를 미국에서 진행했었는데, 1985년 한미대학야구 교류전에서 조계현과 대결했다고 밝혔다. 당시 조계현은 연세대, 윌리엄스는 네바다대 야구부였으며 아마추어 신분으로 대결한 인연이 35년 만에 마침내 한 팀에서 단장과 감독으로 만나게 되었다.
  • 신인 시절과 오클랜드 코치 시절을 제외하면 등번호 9번을 계속 사용했는데, 오클랜드에서 9번은 레지 잭슨의 영구결번이라 사용할 수 없었다고 한다.
  • 선수들을 훈련시킬 때는 항상 야구배트를 소지하고 다닌다.
  • 한국에서 통역은 오승환의 메이저리그 시절 통역을 맡았고, 중계에도 몇 번 잡혔던 구기환(영문명 Eugene Koo) 코치가 맡는다.
  • 나주환의 인터뷰에 따르면 경기장 안에서 묵묵한 모습을 보이는 것과 달리 경기장 밖에서는 선수들에게 장난도 많이 걸고 친해지려고 노력하는 타입이라고 한다.
  • 트레이 힐만처럼 선수들에게 배팅볼을 자주 던져준다고 한다. 구속은 80km/h 중반 정도가 나온다.

3.2.1. 항의




3.2.2. 와인 투어




3.2.3. 야구장 조깅


KBO 리그 입성 이후, 홈구장인 광주-기아 챔피언스 필드에서는 외야 펜스 앞 워닝 트랙을 따라서 뛰지만 원정 경기에는 경기 시작 전인 오후 2시~3시 쯤에 구기환 통역코치와 원정구장 그라운드와 관중석 계단을 달리는 루틴을 가지고 있다. 건강 관리 겸 달리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스트레스를 날릴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한다. 매일 경기장에 가장 먼저 나와 운동하는 모습이 KIA 코칭스태프, 선수단에게 무언의 메시지를 주는 효과를 무시할 수 없을 듯 하다.
창원 NC 파크가 오르기가 제일 편했다고 하고,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 파크는 연식이 있고 가파른 각도 때문에 제일 힘들었다고 한다. 고척 스카이돔은 실내 구장이라 시원하긴 한데, 계단이 가파른 편이어서 힘들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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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월 12일,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 파크에서 검은 반팔티를 입고 나타나 구기환 통역코치와 관중석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한 후, 한화 선수단이 몸을 풀고 있는 그라운드에 나타나서 몇 바퀴 조깅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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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월 23일, 인천SK행복드림구장에서 3루 외야 끝쪽 관중석에서 시작하여 1루 외야 끝까지 달렸다. 잠시 2층 관중석에 올라가서 숨을 고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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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월 1일, 사직 야구장에서도 운동을 했다. 이날 부산의 기온은 32도. 아침부터 발령됐던 폭염주의보는 오전 11시를 기해 폭염경보로 바뀌었지만, 맷 윌리엄스의 열정은 막을 수 없었다.

4. 가족 관련


  • 외할아버지 버트 그리피스가 야구선수 출신이다. 브루클린 로빈스(現 LA 다저스)와 미네소타 트윈스의 전신이었던 워싱턴 세네터스에서 외야수로 활동했다. 기록이 궁금하다면 참고.
  • 아버지 아서 윌리엄스는 어렸을 적 사고로 오른쪽 눈이 실명했지만 빠른 공을 던졌던 소프트볼 투수 출신이고, 어머니 사라 윌리엄스는 테니스 선수 출신이다. 아서와 사라는 4명의 아들을 낳았는데, 그 중 맷 윌리엄스가 막내다. 워싱턴 포스트 기사
  • 결혼 관계가 복잡한 편이다. 3번 결혼하여 첫 번째 배우자를 통해 자녀를 3명 낳았고, 현재 세 번째 배우자 사이에 자녀 1명을 낳아서, 자녀는 총 4명이다. 두 번째 배우자 미쉘 존슨과는 아이를 낳지 않았다.
  • 세 번째 배우자와 낳은 자녀 마디 먼로TikTok인스타그램에서 슈퍼스타다. 2020년 아버지날에는 인스타그램에 글을 올려서 아버지에게 감사하다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 지금의 배우자이자 세번째 배우자인 에리카 먼로는 엄청난 자산가이다. 이 때문인지 에리카 먼로와 함께 지내는 미국 자택은 굉장히 호화롭다.
  • 아들 제이크 윌리엄스도 야구선수 출신이다. 2011년 49라운드 전체 1474순위의 하위픽으로 애리조나에 입단했고, 메이저 리그 입성은 실패했다.[8]
[1] 당시에는 동대문야구장도 없던 시절이었다. 동대문야구장의 개장은 1925년이다.[2] 모두가 참석한 것은 아니고, 같이 온 가족 포함 일행과 함께 10여 명 정도가 참석했다고 한다.[3] 1909년, 조선 왕실의 마지막 대령숙수였던 안순환이 현대의 동아일보 사옥 근처에 세운 요정이다. 1918년에 화재로 한 차례 소실되었다가 종로구 돈의동(현재 피커디리 극장 자리)에 다시 세웠다. 경성부의 고위층 인사들이 단골이었으며 6.25 전쟁 때 파괴되었다.[4] 1922년 당시에는 명칭이 '서울역'이 아니라 '남대문정거장'이었다. 그리고 1년 뒤인 1923년부터 '경성역'으로 이름이 바뀌고, 광복 후 1947년에 지금의 명칭인 '서울역'으로 이름이 바뀐다.[5] 당시 연세대 조계현 투수도 국가대표에 선발되었다. 하지만 맷 윌리엄스와 조계현이 직접 맞붙은 기록은 없다고 한다.[6] 맷 윌리엄스가 KIA 감독으로 부임한 뒤, 와인 투어로 선물을 주고받는 2020년 8월에 류중일 LG 감독이 위의 사진들을 맷 윌리엄스에게 보여주며 서로 추억에 잠기기도 했다. 해당 기사[7] 2013년 6월 11일 잭 그레인키가 헤드샷을 맞고 시작된 그 유명한 난투극이다.[8] 드래프트 순위를 보면 알겠지만 미국은 드래프트도 한 팀이 수십명씩 뽑는데, 하위픽은 구단 레전드들이나 코칭스태프들의 가족들을 많이 뽑는다. 하위픽은 메이저리그 진입을 기대하고 뽑는 건 아니고 마이너리그도 어쨌든 숫자를 맞춰서 경기를 해야 하기 때문에 마이너 머릿수 채우기용으로 뽑는 것인데, 어차피 아무나 뽑을거 좋은게 좋은거라고 기왕이면 직원이나 구단 레전드의 가족을 뽑아주는 것. 물론 레전드의 가족이라도 진짜 재능있으면 타티스 주니어, 마이크 야스트램스키처럼 상위 순번에서 타 팀이 채간다. 윌리엄스는 디백스 스타 출신에 2011년 당시 디백스 주루코치로 재직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들도 지명을 받을 수 있었던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