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세데스-마이바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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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메르세데스-벤츠의 모그룹인 다임러 AG 산하로 나왔던 수공 고급 자동차 브랜드 및 동명의 엔진 제조사. 본래 한 회사로 시작했지만 엔진 제조 부문은 현재 MTU Friedrichshafen으로 이름을 바꾸고 롤스로이스 plc의 소유가 되었으며, 자동차 브랜드는 메르세데스-벤츠의 서브 브랜드가 되어 메르세데스-AMG와 함께 메르세데스-벤츠의 고급 라인업을 담당하고 있다.
2. 엔진 제조 부문
MTU(기업) 문서 참조.
3. 고급 자동차 부문
3.1. Maybach-Motorenbau (1929년 - 1941년)
마이바흐는 또한 고성능, 최고급 자동차를 만들기도 하였다, 1919년부터 메르세데스의 차량을 기반으로 최고급 차량을 제작하기 시작한 마이바흐는 특히 1929년에 12기통 엔진을 탑재한 DS 8 제플린(상단 사진)을 내놓아 명성을 얻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의 영향과 기타 여러가지 이유 때문에 1941년까지 1,800여 대의 차량만을 생산하다가 단종되었다.[2]
3.2. Maybach-Manufaktur (2002년 - 2013년)
회사가 다임러-벤츠에 인수되어 이름을 바꾸고 엔진만 생산하는 동안 한동안 역사 속에 묻혔던 마이바흐 브랜드는 초고급형 력셔리카 시장을 공략할 목적이였던 다임러크라이슬러(DaimlerChrysler)[3] 에 의하여 2002년에 전격적인 부활이 선언되어 '''Maybach-Manufaktur'''이라는 이름으로 60년 만에 새로운 차량을 내놓았다.
부활 후 현대적 기술 & 디자인을 결합한 럭셔리 세단을 생산하여 주목받았는데,[4] 세계적으로 유명한 부자들이 대부분 소유할 정도로 주목을 받았다. 차량 길이에 따라 57과 62라는 모델명을 붙였는데, 이는 각각 전장 5.7/6.2미터라는 뜻. 대한민국에서도 마이바흐의 오너가 상당수 존재하는데, 이건희, 김승연[5] 등 대기업 회장들을 필두로 한류스타 배용준이 마이바흐의 오너로 유명하다.[6]
- Maybach 57
- Maybach 57 S
- Maybach 62
- Maybach 62 S
- Maybach 62 S Landaulet
3대 명차라는 이름답게 판매시 고객 한 사람마다 전담 담당자가 배정되어 오너의 주문과 성향에 맞게 차량을 인도받을 수 있도록 시스템이 구축되었다. 통계적으론 마이바흐 차량 1대당 210개의 가죽조각과 100여개의 원목장식이 들어간다고 하며, 옵션이 매우 다양하여 경우의 수를 따지면 약 200만가지 조합이 나온다고 한다. 즉, 완전히 똑같은 마이바흐는 단 1대도 없는 셈. 자동변속기는 컬럼식이 아닌 일반적인 플로어체인지식으로 나왔다.
그리고 일반 자동차들과는 달리 별도로 전시 공간을 마련하지 않았으며, 러시아, 홍콩, 일본 등지에 있는 아시아 지역 마이바흐 센터는 사전에 예약이 없으면 입장조차 안 될 만큼 VVIP 전략을 사용했다.[9] 대한민국에선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의 전문 컨설턴트가 마이바흐의 구입을 원하는 고객을 전담 관리했다. A/S의 경우 벤츠에 소속된 마이바흐 정비 전문가 12명이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서비스를 했다는데, 1년 중 약 200일은 출장을 다니다보니 '날아다니는 의사(Flying Doctor)'라는 별명으로 불렸다고.
3.2.1. Maybach 62s Landaulet
62s 랜덜렛은 뒷자리 지붕이 소프트탑인 사열차 모델로, 뒷자리 지붕만 열린다. 이 모델은 100만 달러가 넘는 기본 가격으로 당시 세계에서 가장 비싼 세단이었다.
비록 세계적으로는 실패했어도, 대한민국에서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과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등 재벌 총수들이 타고 다니는 차로 널리 각인되어 있다. 연예인들 중에서는 양현석, 장동건, 배용준, 이승철, 나훈아 등이 마이바흐의 오너다. 프로듀서 용감한 형제도 마이바흐를 타고 다닌다. 해외에서는 DJ Khaled가 타고 다니는 차로 유명하다.
3.2.2. Maybach 62s Zeppelin
2009년 제네바 국제 모터쇼를 기점으로 100대 한정 생산된 모델. 이름은 위의 구형 체펠린 모델에서 가져왔으며, 57S와 62S를 베이스로 2가지 종류가 나왔다. 내외장에 특별함이 더해진것은 물론이고 스위스의 향수 제조 업체인 지보단(Givaudan)과 공동으로 개발한 Perfume Atomizer이란 자동 방향 장치(옵션사항)를 세계 최초로 자동차에 적용했다. 차량 가격은 6억 원대였으며, 향수 옵션의 경우 약 600만 원의 고가를 자랑했다.
3.2.3. Maybach Exelero
엑셀레로의 다양한 사진은 여기서 보자.
2005년에 공개된 마이바흐의 컨셉트 2인승 고성능 쿠페. '''딱 1대'''만 제작되었다. 독일의 타이어 회사인 풀다 타이어의 의뢰로 풀다의 타이어 시제품을 테스트하는 용도로 제작되었으며, 훗날 풀다측에서 경매에 내놓아서 일반인에게 팔렸다. 구입자는 미국의 힙합 가수인 버드맨(브라이언 윌리엄스)으로 알려졌으나 가격을 지불하지 못해 결국 아프리카의 한 다이아몬드 재벌에게 최종 판매되었다. 가격은 '''96억'''으로 알려져 있다.
5위인 부가티 디보 다음으로, 전 세계에서 4번째로 비싼 차량이다.[12]
러브앤프로듀서 애니메이션 판에서 검은색상의 엑셀레로가 나온다
3.2.4. Maybach-Manufaktur의 몰락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마이바흐는 부활 이후에 세간의 주목과 달리 상당한 판매 부진에 시달렸다. 연간 2,000대 이상(...) 판매[13] 목표로 잡았던 다임러 AG의 생각과 달리 최대 시장인 미국에서조차 1년에 150여대가 겨우 팔리며 위기에 봉착한다.[14] 결국 2010년 즈음부터 단종 이야기가 떠돌더니, 다임러 AG 산하의 벤츠에서 2013년에 S클래스의 풀 체인지 신형 모델(W222)에 마이바흐의 초고급 이미지를 심기로 결정되면서 현재는 모든 모델이 단종됐다.
부활한 마이바흐의 실패와 단종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위에서 설명한 무리수같은 연간 판매량, 요즘의 자동차 업계 트렌드와 다르게 극소수의 소비자층만을 대상으로 잡은 게 주된 원인으로 꼽히는 중이다.
또한 계속해서 신형 모델을 내놓으며 여러 사용자층에게 어필하려는 의지를 내보이는 롤스로이스, 벤틀리와 달리 마이바흐는 모델 개수도 너무 부족했고, 사용자층도 한정되어 있었다. 롤스로이스는 팬텀보다 작고 저렴한 고스트를 내놓았고, 뒤이어 고스트를 기반으로 한 오너 드리븐 쿠페인 레이스를 내놓았다. 벤틀리도 점진적으로 모델의 개수를 늘리고 신형 모델을 내놓았지만 마이바흐는 크게 보면 단지 두 가지 모델, 57과 62밖에 없었으며, 그렇다고 계속해서 모델 개선을 한 것이 아니라 2011년에 소폭 페이스리프트를 거친 것 외에는 정말 '''아무 변화 없이''' 10년 넘게 똑같은 차만 팔았기 때문에 고객들에게 어필하지 못했다. 처음 출시되었을 때야 현대적인 디자인에 더 호화로운 편의사양을 자랑했지만, 마이바흐는 10년 넘게 거기서 발전을 거의 하지 않으면서 결국 구닥다리 디자인과 구닥다리 편의 사양을 지닌 차가 되어 버린 것. 즉, '''구형'''이라는 인식이 퍼졌다. 인테리어는 더 심각했는데, 마이바흐 출시 시기의 S클래스인 W220의 인테리어를 갖다 붙인 수준이었다.[15] 대시보드와 에어컨은 완전히 같았는데, 제펠린 모델에는 대시보드에 카본을 갖다붙이는 노력을 하고도 꿋꿋이 대시보드 디자인을 안 바꾸었다. 안 그래도 낡아보이던 디자인은 내부로 들어가면 가격이 절반도 안 되는 최신 S클래스보다 훨씬 못 한 디자인을 보여 주었다. 물론 롤스로이스도 거의 바꾸지 않았으나, 애초부터 롤스로이스 팬텀의 인테리어는 트렌드에서 아예 벗어나 1930년대 고급차의 내부를 연상케하는 디자인을 아주 적절하게 활용한 것이었기 때문에 다른 고급차와 비교해 봐도 모습이 완전히 달라 낡아보인다는 느낌은 거의 들지 않았다. 반면에 마이바흐는 90년대 디자인의 W220의 인테리어를 그대로 들고 옴으로서 필연적으로 처음부터 낡아 보였으며, W220보다 훨씬 차체가 큰 마이바흐에 억지로 이 디자인을 이식하면서 가뜩이나 낡아 보이던 디자인이 더 못생겨졌고 기반이 되었던 S클래스가 2005년 W221이 되며 내부가 역변하면서 더욱 비교되었다. 당장 에어컨 송풍구만 봐도 롤스로이스는 클래식카에서나 볼 법한 원형의 금속 송풍구를 사용함으로서 차별성과 품격을 둘 다 잡은 반면, 마이바흐는 90년대에 만들어진 아무 자동차에서나 볼 수 있던 못생긴 플라스틱 송풍구를 사용했다.
게다가 전 세계적으로 젊은 부유층이 늘어나면서 스포츠성이 강한 벤틀리같이 오너 드리븐 고급차량의 중요성이 늘어났지만, 마이바흐의 모든 모델은 철저하게 운전기사가 운전하는 쇼퍼 드리븐 성격이었다. 똑같은 수공 고급 승용차라도, 틈새 시장을 벤틀리가 노려서 제대로 찔러 버린 것.
마지막으로 마이바흐 브랜드 자체가 인지도와 차별화가 부족했다. '''롤스로이스'''와 벤틀리는 역사적으로 여러 훌륭한 모델을 출시하며 전세계에서 유명세를 떨친데 비해, 마이바흐는 1941년에 명맥이 끊기면서 전 세계에 위용을 떨칠 기회도, 브랜드를 사람들에게 각인시킬 기회도 놓쳐 버린 것이다. 게다가 독일의 BMW를 모기업으로 두고 있지만 영국 굿우드에서 생산되는 롤스로이스나, 마찬가지로 독일 폭스바겐을 모기업으로 두고 있지만 영국 크루에서 생산되는 벤틀리와 달리, 마이바흐는 벤츠와 같은 공장에서 생산되었다. 플랫폼 자체도 W220 S클래스였고, 심지어 마이바흐 출시 후 단 2년 만에 W221 S클래스가 나와 버렸다. 따라서 브랜드의 차별화에 실패했다. 이를 두고 탑기어(잡지)에서는,
면서, 대놓고 마이바흐를 깠다.[16] 쉽게 말하자면 '''근본도 없이 가격만 비싼 차'''라는 평.''Mercedes-Benz decided to reactivate a brand that nobody under the age of 90 outside Stuttgart remembered, slathering an ersatz reject Hyundai luxury body over an ageing S-Class platform and hoping that various oligarchs, rap stars and Paris Hilton wouldn't notice that it was actually an elaborate con. They didn't. But we did.''
메르세데스-벤츠는 슈투트가르트 밖에서는 90대 노인들 외에는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브랜드를 되살려 놓고, 낡아 빠진 S클래스 세단의 플랫폼 위에 현대자동차 짝퉁처럼 생긴 차체를 얹어 놓은 후 수많은 졸부들과 래퍼들, 그리고 패리스 힐튼으로 하여금 이게 사실은 정교한 사기라는걸 눈치채지 못하길 바란 듯하다. 그들을 속이는 데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우리 눈은 못 속인다.
3.3. Mercedes-Maybach (2014년 - )
더 고급스러운 벤츠를 원하는 소비자들을 공략하기 위해 마이바흐를 벤츠의 서브 브랜드로 활용하기로 결정한 벤츠는 2014년 W222 S클래스의 전장 확대 모델인 마이바흐 S500 4MATIC, S600을 메르세데스-마이바흐로 브랜드를 런칭하였다.[17] 그릴의 경우 2019년식 모델 부터 마이바흐의 상징인 세로그릴이 들어간다.
미국에서의 판매가격을 비교해보면, 마이바흐 S650과 벤틀리 플라잉스퍼의 기본가격이 20만달러 정도로 비슷한 편이다. 그리고 롤스로이스는 모든 라인업의 기본가격이 30만달러 이상이라 가격대가 크게 높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전 마이바흐의 수제 차량이라는 인식과 달리, 이제는 그저 공장에서 찍어 나오는 길다란 S클래스'라는 인식으로 바뀌며 비판받기도 했다. 그와 별개로 판매량은 높지만, 같은 플랫폼이기는 했어도 이래저래 바꾸러 노력한 이전 마이바흐 57/62에 비해 똑같은 S클래스에 길이 좀 늘리고 로고와 문짝만 바꾸어서 내놓다 보니 격이 굉장히 떨어진 것은 사실이다.
2016년 Pebble Beach Concours d'Elegance에서 길이가 6m에 달하는 컨셉트 카 쿠페를 공개했다. LA모터쇼를 통해 S클래스 카브리올레 기반의 Maybach S650 Cabriolet을 공개했다. 2017년 2월초 메르세데스-벤츠 G클래스를 기반으로 한 오프로드 사열차 마이바흐 G 650 Landaulet을 출시했다.
4. 사건사고
한 건설사 사장이 2007년 중고로 5억 3,000만 원에 구입한 마이바흐 57이 2년 후인 2009년 정차 중에 갑자기 워셔액이 뿜어져 나오고 시동이 꺼졌다. 심지어 에어백까지 갑자기 터지는 황당한 사고가 났고 차량은 수리를 하게 된다. 수리기간은 약 1년이었으며 수리 후에도 차주는 새 차를 내놓으라 요구했고, 이를 [18] 거절당했다. 차량 수입사에서는 수리 기간동안 2억 7,000만 원짜리 벤츠 S600을 렌트해 주겠다고 제안했으나 차주는 이를 거절하고 '''롤스로이스 팬텀을 요구했다.'''[19] 물론 수입사는 거절했고, 이는 소송전으로 가게 된다. 1심에서는 9,300만 원 지급, 항소심에서는 '''464만 원 지급'''이라는 판결이 나오게 된다. 수리 기간동안 렌트 서비스를 해주더라도 별도로 렌트비를 지급하지 않는 것은 수입사 품질보증서에도 있던 내용이었으며[20] 무엇보다 롤스로이스 렌트비는 하루 260만 원, 수리 기간인 1년이면 약 6억 원이었다. 렌트비가 차주의 마이바흐 차 값을 뛰어넘었고, 차주는 패소했다. #
그런데 이 판결이 뒤집혔다. 상고심에서 렌트비 5억 원, 감가상각, 수리비 모두 인정해준 것이다. 기사 결국 차주는 '''6억'''이 넘는 돈을 배상받았다. 대법원은 수입사의 품질보증서는 아예 무시했고, 어찌되었건 마이바흐 대신 그보다 훨씬 낮은 급인 S600을 렌트받는 것은 마이바흐를 완전 대체하지 못 할것을 수입사도 예견하고 있었으며 수리가 미루어진 것은 수입사 때문이었기에 [21] 결국 차주가 이겼다.
5. 매체에서
- 명탐정 코난에서 자칭 괴도키드의 라이벌이자 스즈키 소노코(정보라)의 삼촌(큰아버지)인 스즈키 지로키치(정지로)의 개인차량으로 나온다. 기종은 마이바흐 57 세단 모델(코드네임 W240)이며, 지로키치의 개인 경호원이 운전한다.
[1] 전장 5520mm의 대형 세단이며 후술할 62 S 제플린을 이 차의 이름에서 따왔다.[2] 부활한 마이바흐는 3,000여 대로 둘 다 안습한 판매량이다.[3] 다임러 AG의 전신. 1998년에 다임러-벤츠와 미국의 크라이슬러(Chrysler)가 합병하여 만들어진 회사였으며, 2007년에 크라이슬러와 분리됐다.[4] 2003년 출시된 마이바흐 57의 디자인은 2005년 출시된 W221 S클래스의 디자인에 영향을 크게 끼쳤다.[5]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전경련 참석에는 검정색 벤츠 S600을 탄다.[6] 특히 이건희 회장은 한정판으로 나온 제플린과 62 런들렛(Landaulet)을 타고 다녀서 유명했다. 제플린이 나오기 전에는 62를 타고 다녔다고 한다.[7] 격벽의 유리는 개폐할 수 있다. 이 유리는 천장창과 마찬가지로 불투명화 하는것이 가능하며 격벽유리를 가리기 위한 커튼까지 구비되어 있어 뒷좌석 전체를 암실로 만드는것도 가능하다.[8] 이 유닛은 S65 AMG에 달리는 엔진이다. 당시 대한민국에는 S65 AMG가 수입되지 않았으며, 이 엔진은 마이바흐 S 모델을 통해 처음 선보였다. 이 엔진이 달린 57S는 드래그 레이싱으로 CL63 AMG를 이길 정도로 강력한 엔진. 사실 CL(현재의 S클래스 쿠페)이 쿠페 중에서 매우 무겁지만, 57도 만만치 않게 무겁다는 것을 고려해 보면 정말 강력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S65 AMG는 W222 때 벤츠코리아가 AMG 라인업 강화를 선언하면서 2016년 5월에 출시했다.[9] 롤스로이스의 경우 살 사람이 아니더라도 전시 매장에 들어올 수는 있다. 물론 근처에 30cm만 다가가도 만지지 말라고 막는다. 상담 중에는 커튼으로 가린다.[10] 위의 62 세단과 모습 차이가 있다.[11] 여담이지만 일반 마이바흐를 제플린 모습으로 바꿔주는 부품 조합도 있다[12] 출처:전 세계에서 가장 비싼 차량 랭킹.[13] 이게 얼마나 말이 안 되는 목표냐면, 수제작이라는 자동차가 하루에 6대씩은 생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그것도 5억을 훌쩍 넘는 최고급 자동차가. 결국 마이바흐 총 판매량은 10여 년 간 3천여 대에서 끝났다. 참고로 당시 고스트를 출시 하기 전 롤스로이스 전체 판매량이 연간 2~3천대였다.[14] 웃긴것은 이 집도 나름 차이나 머니를 이끌어보려고 최후기형 제플린 오피셜 포토를 중국 배경으로 찍을정도로 중국시장에 공들였지만 결과는 꽝이였다. 중국도 사회적 지위에 따라 차를 구입하는 경향이 과거 한국 이상으로 심한데, 너무 고급스러운 수입차를 타면 사내에서 안 좋은 소리를 듣기 때문이다. 그래서 C클래스나 A4가 중국에서만 롱바디(...)를 파는 이유다. 거기다 순수 수입차라 세금도 어마무시해서 내로라하는 부유층도 욕 먹을걸 각오 안하는 이상 함부로 사기 어려웠다.[15] 그런데 W220의 인테리어도 바로 전 모델인 W140에 쓰였던 알루미늄 버튼과 원목으로 만든 고급스러운 장식 대신 싼티나는 플라스틱 부품으로 도배했다고 욕먹던 시절이다(...) 그걸 마이바흐에 그대로 이식해버렸으니...[16] 사실 2000년대 초중반 벤츠가 삽질을 정말 많이 했다. A클래스는 차량 개발 비용만큼 결함 수정비용이 들어갔고도 영 망했으며(그나마 일본에서 인기가 꽤 있었다.) 기껏 인수한 크라이슬러, 닷지는 융화 실패로 매각하고 말았다. 크라이슬러 크로스파이어를 벤츠 SLK 플랫폼으로 만들고 벤츠 스프린터를 배지 엔지니어링해서 닷지 스프린터를 내놓는 등 각종 노력을 했지만 하나같이 결과는 안 좋았다. 맥라렌과 협업해 만든 메르세데스-벤츠 SLR 맥라렌도 5억이 넘는 비싼 가격을 붙여놓고 연간 500대씩 팔릴 걸 기대했지만 당연히 그렇게 팔릴리가 없었고 맥라렌과도 사이가 나빠지며 망했다. 람보르기니 무르시엘라고가 연간 400대 정도 팔렸는데, 무르시엘라고보다 200kg 무겁고 제로백도 0.4초 더 느린 차가, 슈퍼카 브랜드도 아닌 벤츠 로고를 달고 잘 팔릴 리가 없었다. 물론 일반인들 시선에는 벤츠는 프리미엄 브랜드지만 슈퍼카를 사는 고객들에게는 그냥 브랜드 중 하나일 뿐이다. 결국 전술 했듯 이런 벤츠의 똥고집에 뿔난 고든 머레이는 벤츠를 박차고 나가버렸고 그대로 맥라렌-벤츠간 협업도 끝나버렸다.[17] 일반 S클래스와 달리 뒷면의 마이바흐 영문 로고, 휠의 디자인, 뒷문 현상이 다르고, C필러에 마이바흐의 로고가 붙었다.[18] 이 문제는 차량의 심각한 결함같은게 아니라 사제 내비게이션 설치 중 생긴 문제였다. 수리를 마쳤는데도 새 차를 내놓으라는 요구는 무리수.[19] 참고로 차주의 마이바흐 57은 출고가 약 5억 7천만 원, 팬텀은 출고가 약 8억에 가까웠고 둘의 가격차만 해도 벤츠 S63 AMG가 하나 나올 정도로 가격차가 컸고 마이바흐 57은 렌트카 자체가 없던 상황. 벤츠 S600은 약 2억 7,000만 원으로 마이바흐 57보다는 저렴했다. [20] 즉 수입사가 주는 렌트카 타든지 그거 안 받고 뚜벅이가 되든지 해야 한다는 것.[21] 이게 상당히 복잡한데, 사설 내비게이션 설치업체가 사제 내비게이션을 잘못 설치하며 배선이 손상되었다. 이것이 고장의 원인이었고 이에 벤츠 본사는 "사설 업체에서 배선을 건드렸으니 무상수리 즐"을 시전한다. 그러자 수입사는 하라는 수리는 안하고 내비 설치업체의 싸움을 시작했고 차주는 어쩌다가 차를 아예 못 타게 되었다. 그래서 차주는 렌트카를 달라 했는데 수입사는 S클래스를 강요, 차주는 마이바흐 혹은 그 이상의 차량을 요구하다가 결국 차주는 본인 차량을 타고 다니게 된 것이다. 이 소송은 수입사와 차주의 싸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