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실레우스

 




1. 개요


바실레우스(Βασιλεύς, 복 바실레이스βασιλεῖς)는 고대 그리스어에서 , 중세 그리스어에서 황제를 가리키는 낱말이다. 바실레오스라고도 한다. 여성형은 바실리사(βασίλισσα) 혹은 바실리나(βασιλίννα)이다.
현대 그리스어로는 바실리아스(βασιλιάς, 복 바실리아데스βασιλιάδες)이다. 인명으로 쓰일 때는 바실리오스(Βασίλειος)나 바실리스(Βασίλης)로 쓰이며 이는 러시아어 인명인 바실리(Васи́лий)의 어원이기도 하다.

2. 발음


유구한 역사를 가진 단어다보니 발음도 시대에 따라 바뀌었다. 고대 미케네 선문자에서는 qa-si-re-u라는 4음절로 표기되고, *gʷasileus 와 같은 식으로 발음되었을것으로 추측된다. 기원전 4세기부터 중세 초기까지 쓰였던 코이네 그리스어로는 바실레우스(βa.siˈleɸs\)라고 발음했고, 서기 5세기쯤부터 15세기까지 동로마 제국 시대에 쓰인 중세 그리스어에서는 철자는 그대로 쓰고 발음만 바실렙스(va.siˈlefs\)로 바뀌었다. 19세기 그리스 독립 이후 카사레부사 그리스어로도 바실렙스라고 하다가 디모티키 그리스어에서 입말인 바실리아스로 바뀌었다.

3. 고대 그리스


고대 그리스에서는 왕(王)을 뜻하는 말로써, 호메로스의 서사시에서는 세습되는 공동체의 지도자인, 과두 정치에 있어서 같은 직무와 군대에서 다른 어떤 사람들보다 고귀한 혈통임을 나타내는 용어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본래는 와낙스(Wanax, ϝάναξ)[1]라는 말이 왕을 뜻했었다 하나, 이후 좀 더 후대로 가면서 바실레우스에 밀려 사장된 것으로 보인다.
고대 크레타에 존재했던 문명인 미노아문명에서는 wanax라는 왕이 중앙에 위치하고 섬의 각 지방을 *gʷasileus라는 이들이 통치했다고 되어있는데, 이후 미노아문명이 붕괴하면서 이들이 왕의 위치를 차지한것으로도 추측된다. 고전기의 아테네에서는 제사에 관계된 직무를 담당한 아르콘을 가리키기도 했다.
BC 4세기에는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의 대왕을 가리킬 때 메가스 바실레우스라고 했고, 그리스어를 쓰는 왕국이었던 마케도니아 왕국이나 에피루스 왕국의 왕들도 바실레우스라고 불렀다. 그래서 페르시아를 정복한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왕, 그리고 알렉산드로스 사후 디아도코이 전쟁을 거쳐 건국된 헬레니즘 제국들인 셀레우코스 왕조,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왕들도 모두 바실레우스였다.
그 외에 아르메니아 왕국, 폰토스 왕국, 페르가몬 왕국, 보스포로스 왕국, 박트리아 왕국, 카파도키아 왕국, 비티니아 왕국, 하스몬 왕조, 헤로데 왕조 등 헬레니즘 시대에 서아시아 지역에 들어섰던 수많은 왕국들이 군주의 칭호로 바실레우스를 썼다. 군주가 다른 제국이나 연맹체에 속해 있을 때는 스트라테고스, 사트라페스, 티라노스, 아르콘, 헤게몬 등으로 불리다가 독립 왕국을 세울 만한 명분이나 실력을 갖췄다고 생각되면 바실레우스를 칭하는 식이었다. 헬레니즘 국가는 아니었지만 그리스어를 공용어로 썼던 이란아르사케스 왕조 파르티아도 이란식 칭호인 왕중왕을 그리스어로 쓴 바실레우스 바실레온을 군주의 칭호로 사용했다.

4. 고대 로마


이후 그리스 본토와 중동의 왕국들 대부분이 로마 공화국에게 정복되어 바실레우스 호칭은 잠시 사라졌지만, 로마 공화정이 무너지고 제정 체제로 넘어가자 로마 제국 동부의 주민들이 로마의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들을 바실레우스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로마인들은 공식적으로는 아우구스투스는 군주가 아니며 단지 공화정의 '최고존엄(Augustus)'일 뿐이라고 주장했고, 옥타비아누스는 자신이 공화정 파괴자라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서 옛날 로마 7왕 시절의 Rex(왕)라는 칭호만 피하고 최고존엄(아우구스투스), 총사령관(임페라토르) 등의 호칭만 가졌다. 하지만 이는 결국 눈 가리고 아웅하는 수준에 불과했고, 그리스어를 쓰던 제국 동부 주민들도 이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냥 왕이라는 뜻의 바실레우스라고 부른 것이다. 아우구스투스 시절부터 유대교 랍비[2]가 로마 황제를 그냥 바실레우스라 호칭하는 사례가 발견된다. 그리스어는 제국 동방 지역에서 수백 년 동안 공용어였기 때문에 로마 황제를 바실레우스라고 부르는 관습이 빠르게 퍼졌다.
군소 왕국들이 난립하여 수많은 바실레우스들이 있었던 헬레니즘 시대와 달리 로마 제국 시대에는 바실레우스라고 불리는 군주가 로마 황제 외에는 없었기 때문에 단순히 여느 왕국의 왕을 가리키는 말일 뿐이었던 바실레우스가 (서양) 세계 최강대국 로마 제국의 황제를 가리키는 말로 변하여 그 격이 매우 높아졌다. 로마 다음 가는 제국이자 강대국이었던 이란의 아르사케스 왕조가 바실레우스 바실레온이란 칭호를 쓰긴 했지만, 서기 3세기에 망하고 그리스 문화를 적대시한 사산 왕조로 대체된 이후에는 이란에서 그리스어를 거의 쓰지 않았기 때문에 이후 수백 년 동안 바실레우스는 로마 제국의 황제만을 가리키는 말로 굳어졌다.

5. 동로마 제국


동로마 제국이 7세기 이라클리오스(헤라클리우스) 황제 때 공용어를 라틴어에서 그리스어로 바꾸고 이 때부터 황제의 호칭도 임페라토르 아우구스투스 카이사르에서 바실레우스로 바꿨다고 알려져 있으나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그리스어는 기원전 4세기 헬레니즘 시대부터 아나톨리아, 시리아, 메소포타미아, 레반트, 이집트 등 근동 지역의 공용어였다. 로마 공화국의 정복과 로마 제국 수립으로 라틴어가 유입되기는 하였으나 주로 다른 곳에서 징집되어 동방으로 배치된 군인들과 군대 용어에 한정되었고, 서기 7세기 이라클리오스 시대까지 거의 1천 년 동안 이 지역의 제1언어는 항상 그리스어였다. 이라클리오스가 취했다는 조치는 공용어가 아니라 군대 용어를 그리스어로 바꾼 것이고, 이라클리오스 시대에는 제국에 남은 영토 대부분이 그리스어 사용권이었기 때문에 잘 쓰던 라틴어를 어느 날 갑자기 바꾼 게 아니라 그냥 현상의 변화를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다만 군대 용어에 오랫동안 라틴어를 썼기 때문에 그리스어 사용 이후에도 오랫동안 라틴어 단어들의 잔재가 강하게 남기는 했다.
어쨌든 7세기 이후로는 중세 그리스어 바실렙스가 대내외적으로 로마 황제를 대표하는 칭호로 자리잡았다. 다만 바실렙스는 어디까지나 로마 황제를 가리키는 여러 칭호 가운데 대표가 된 것 뿐이고 임페라토르, 아우구스투스 등도 로마 황제를 가리키는 칭호로 계속 남았다. 카이사르는 바실렙스, 임페라토르, 아우구스투스에 비해 한 단계 낮은 칭호로 내려갔다. 동로마 제국은 다른 나라들이 임페라토르, 아우구스투스 등의 칭호를 함부로 쓰는 것에 대해 대단히 신경질적으로 반응했으며, 상황에 따라 신성 로마 제국이나 불가리아 제1제국 등이 쓰는 걸 마지못해 용인하긴 했지만 가능하다면 외교든 전쟁이든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쓰지 못하게 막으려 했다.
10세기 초에는 압토크라토르(αὐτοκράτωρ, 최고지배자 혹은 주권자)라는 칭호가 추가로 도입되었다. 압토크라토르를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스스로 지배하는 자라는 뜻으로, 더 높은 권력자 없이 혼자서 모든 주권과 권력을 가진 군주를 가리키는 말이다. 당시 로마 제국은 제위 계승 문제를 확실히 하기 위해 차기 황제 내정자에게 공동 황제 지위를 부여했는데, 이런 공동 황제들과 최고 통치자 황제의 위상을 확실히 구분하기 위해 덧붙인 것이다. 라틴어 임페라토르에 해당하는 단어라는 해석도 있다. 최종적으로 11세기 이후 로마 황제의 정식 명칭은 '로마인들의 황제이자 주권자'(βασιλεὺς καὶ αὐτοκράτωρ Ῥωμαίων, 바실렙스 케 압토크라토르 로메온, Emperor and Autocrat of the Romans)로 굳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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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8년 이탈리아 예술가 피사넬로가 로마 황제 요안니스 8세의 페라라-피렌체 공의회 참석을 기념해 만든 메달. 테두리에 그리스어로 '요안니스 바실렙스 케 압토크라토르 로메온 오 팔레올로고스' 라고 새겼다.
1453년 로마 제국이 멸망한 뒤 마지막 황제 콘스탄티노스 11세의 조카인 조이 팔레올로기나가 모스크바 대공국이반 3세와 결혼했고, 이반 3세는 이 결혼과 킵차크 한국에서 완전히 독립한 것을 계기로 삼아 압토크라토르를 러시아어로 번역한 사모데르제츠(Самодержецъ)란 칭호를 도입했다. 러시아 제국 시대에는 로마 제국과 비슷한 형식으로 전러시아의 황제이자 주권자(Императоръ и Самодержецъ Всероссійскій, 임페라토르 이 사모데르제츠 브세로시스키)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한편 프랑스 왕국샤를 8세는 조이의 남동생 안드레아스 팔레올로고스로부터 황제 작위를 구입하여 발루아 왕조 프랑스 왕의 작위 목록에 추가했으나 큰 의미는 없었다.
로마 제국을 정복한 후 그 제위를 계승했다고 주장하던 오스만 제국의 황제(파디샤)들은 "로마의 카이사르(Kayser-i Rum)"를 자칭했으나 바실렙스란 호칭은 쓰지 않아서 이후 수백 년 동안 바실렙스가 나오지 않게 되었다. 오스만 제국 내의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주민들(Rumi)은 습관대로 파디샤를 바실렙스라고 부르기도 했지만, 오스만 시기 그리스어 문헌에서 오스만 제국의 군주는 주로 술타노스(σουλτάνος) 혹은 판디사흐(παντισάχ)라고 쓰였다. 술타노스는 보이는 그대로 술탄이고, 판디사흐는 파디샤의 그리스어식 변형인데 그리스어에는 영어의 sh 발음이 없어 현재도 많은 그리스인들이 sh발음을 잘 못한다.

6. 그리스 왕국


1832년 오스만 제국에서 독립한 그리스의 군주가 된 오톤이 군주의 칭호를 카사레부사 표기로 Βασιλεύς της Ελλάδος(바실렙스 티스 엘라도스)라고 정했으나, 다른 국가들은 이 칭호를 황제가 아니라 그리스 왕이라고 번역하였다. 이 영향으로 현대 그리스어(디모티키)에서도 바실리아스는 그냥 왕(king)이고, 황제(emperor)는 동로마 제국 시대 쓰였던 칭호 αυτοκράτωρ를 따서 압토크라토르라고 한다. 다만 바실레우스/바실렙스(βασιλεὺς)는 동로마 제국 황제를 가리키는 일종의 고유명사로 여겨 그대로 바실렙스라고 부른다.
1974년 그리스의 왕정이 완전히 종식되고 그리스 공화국이 되면서 바실레우스 계열의 칭호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1] 이 표현은 아낙사고라스(Ἀναξαγόρας,), 아낙시만드로스(Ἀναξίμανδρος), 아낙시메네스(Ἀναξιμένης) 같은 고대 그리스인의 인명에서 쓰이기도 하였다.[2] 몇몇 골수 유대교-유대인 정통파를 제외하고는 랍비 등 고위층, 지식인 유대인도 그리스어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