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최순실 게이트/국정개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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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박근혜와 각별한 사이던 비선실세 최순실과 그 무리들은 외교를 비롯한 여러 국가 정책을 사실상 주도하고 각종 막대한 이권에 개입하며 전횡을 일삼았다. 그 과정에서 청와대를 비롯한 행정부가 조직적으로 개입하였다.
2. 고영태의 연설문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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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과 고영태를 둘 다 잘 아는 복수의 관계자들은 한겨레신문에 "두 사람은 최씨가 자주 출입하던 강남의 한 유흥업소에서 만난 사이"라고 설명했다. 고영태에 의하면 최순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이 대통령의 연설문을 고치는 것이라고 한다. # 박근혜 화법에 일부 기술된 것처럼, 주어는 그동안 자신과 관련된 얘기를 마치 혼이 빠져나간 것마냥 남 얘기하듯 하는 말하기 방식. 즉, 듣는 상대방을 유체이탈을 시키는 화법이 아니라 말하는 본인이 자신과는 아무 상관 없는 이야기인 양 자신과 관련된 얘기를 하는 유체이탈 화법이 논란이 되었기 때문에 고영태 발언이 더 주목을 받고 있다. 이쯤 되어 일각에서는 현 정권을 '''최순실 정권'''이라며 비아냥거리고 있고 실제로 나무위키에서도 그와 연관성이 강한 반발이 일어난 적이 있다.
3. 청와대 핵심 기밀 문서 조직적 유출 및 개입
10월 24일 JTBC 뉴스룸의 단독 보도로 인해 대통령의 연설문과 각종 중요 서류들을 사전에 받아보고 검토했다는 의혹이 강력하게 제기되었고, 이로부터 약 20시간 뒤인 25일 오후 4시경, 이에 대해 박근혜 본인이 일정 부분[1] 시인하고 사과함으로써 '''사실로 드러났다.''' JTBC에 의해 최순실이 버리고 간 태블릿 PC(삼성 갤럭시 탭)에서 대통령의 연설문 파일이 44개 발견되었다는 사실이 보도되어 탄핵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파장이 매우 컸다. 더구나 문서작성자가 최순실의 딸 '유연'으로 표기되어 있어 딸이 개입한 정황도 있다.
JTBC가 태블릿 PC를 입수했다는 사실을 청와대가 시정연설하기 이틀 전 알았고 백방으로 방송을 막아보려 했고 세무조사 협박을 했는데 손석희 사장이 버텼다는 주장이 나왔다. #
2016년 10월 24일 JTBC의 보도에 따르면 박근혜는 대통령 연설 전 최순실에게 완성된 대통령 연설문을 보고하고 수정을 요청했다. # 과거 "그런 일은 봉건제도에도 없는 얘기"라고 잡아뗐던 이원종 대통령비서실장의 말#과 모순된다[2] . 또한 최순실과 박근혜는 단순한 선후배(언니동생) 관계가 아니었다.
이 사건을 최초로 폭로한 JTBC가 해당 자료들을 수집한 과정은 이렇다. 최순실이 독일로 도피하면서 버린 수 개의 사무실 중 하나에 취재진이 취재를 시도했고 조사 중 최순실이 도피 전 개인물품을 버리기 위해 관리인에게 처분을 맡긴 쓰레기들 사이에서 한 태블릿 PC(삼성 갤럭시 탭)을 발견한 것이었다. JTBC의 보도에 따르면 최씨의 태블릿에는 청와대와 관련된 200여 개의 파일이 들어있었으며 방송당일 확인된 기간은 2012년 6월부터 2014년 상반기까지였다. 파일의 내용은 박근혜의 주요 연설부터 수상 소감, 입을 의상[3] , 국무회의 및 청와대 수석회의 발언, 대법원장 면담자료, 오스트레일리아 총리 통화 참고 자료, 중산층 문제와 가계부채 대안 등으로 청와대 정책사안 및 국무회의 등 주요 행정자료, 심지어 '''외교와 경제전략''', '''고위공무원단 인사권'''까지 최씨가 영향을 끼쳤다는 정황이 곳곳에서 발견되었다. ###### 한편 최순실에 문서를 넘길때는 이메일을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 이메일은 계정이 폐쇄된 상태라 확보된 200여 개의 문서외에 추가적인 문서가 더 있었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JTBC 측은 프라이버시등을 이유로 이 부분에 대해서는 검찰의 역할이라고 선을 긋고 확보된 200여 개의 문서에 집중할것이라고 밝혔다. 최순실 컴퓨터 입수 경위
JTBC는 박근혜가 2014년 3월 독일 드레스덴에서 이른바 ‘통일대박론’을 담은 연설을 하기 하루 전에 최순실이 이 연설문을 받아봤다고 보도했다. 당시 연설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지지 성명이 나오는 등 국내외에 반향을 일으킨 내용이어서 극도의 보안 속에 마련된 자료였다고 JTBC는 설명했다. #
또한 최순실이 국무회의와 청와대 비서진 교체 등 민감한 청와대 내부 문서도 발표 전에 받았다고 한다. 문서를 주고받으며 내용을 고친 흔적도 확인됐다. JTBC 뉴스룸 보도에 따르면 2013년 8월 5일에 전격 단행한 청와대 비서진 교체와 관련한 자료를 최씨가 받은 건 하루 전날이었다. JTBC가 단독 입수한 자료 중에는 '국무회의 말씀'이란 제목의 문건도 있었다.
문건에는 청와대 비서진 교체 등 정치적으로 민감한 내용이 들어있었다. 청와대는 하루 뒤인 5일 오전 허태열 비서실장을 비롯한 비서진을 대거 교체했다. 김기춘 전 법무부장관이 새 비서실장으로 등용됐다. 정무수석과 민정수석, 미래전략수석, 고용복지수석이 교체됐다. 비서실장을 비롯해 10명의 수석비서관 중 4명이 교체된 전격 인사였다. 청와대가 이를 발표한 것은 이튿날(5일) 오전이었다. 최순실이 청와대 인사 결정을 하루 전에 미리 알았던 것이다. #
JTBC 취재진은 최순실 측이 공개도 안 된 일부 청와대 핵심 문건을 수정한 정황도 포착했다. < 21차 수석비서관회의 >이라는 제목의 문건이다. '어려운 국정상황에도 흔들림없이 민생해결에 전념'이라는 부제도 달려 있다. 곳곳에 밑줄이 쳐져 있고, 내용 순서를 바꾸는 등 수정 흔적이 역력하다.'마무리 말씀'으로 소개된 창조경제의 경우 '미래수석 보고 사항'이라고 언급되어 있다. 해당 문건이 마지막으로 수정된 건 2013년 10월 31일 오전 8시 19분. 실제 대통령 서유럽 순방을 앞두고 개최된 수석비서관 회의가 열린 시간은 오전 10시로 문서가 수정된 직후이다. 회의가 열리기 전에 수정된 것이다. #
JTBC 사회부는 결국 이 자료를 바탕으로 직접 대한민국 검찰청에 고발했으며 입수한 자료를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려놨다.
또 최순실이 가진 땅의 개발계획과 딸의 대학입시 정부기관 보고서를 사전에 보고받았다고 TV조선이 26일 보도했다. ###
청와대 직원들은 자신들이 사용하는 컴퓨터에서 개인 전자우편을 사용할 수 없다. 청와대 안에서 작업한 문서는 이동식저장장치(USB)에 내려받는 것도 불가능하다. 결국 최순실에게 자료가 넘어간 경로는 청와대 공식 전자우편 계정을 통해 최순실의 개인 메일로 전달된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청와대 직원들은 청와대 외부인에게 이메일을 보낼 경우, 이를 모두 총무비서관 산하 전산팀에 소명을 해야 한다.
또 청와대 부속실 안에는 일반 전자우편 전송 등이 가능한 컴퓨터가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박근혜의 최측근 참모가 이 컴퓨터를 이용해 자신의 개인 메일로 최순실에게 보냈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어떤 경우든 모두 청와대 사이버 보안부서에서 메일 전송내역을 확인한다. 이러한 자료 입출입 기록은 삭제도 가능한데, 그것을 결정하는 최종 책임자는 민정수석이다. '''즉, 청와대 자료가 최순실이라는 ‘외부인’에게 지속적으로 전달됐다는 것은 청와대의 ‘조직적 공모’가 아니고선 불가능한 일이며, 이것을 (도저히 이해하기 힘들지만) 박근혜가 몰랐다고 부인해도 중차대한 문제이다.'''# 후술하겠지만 대국민 사과를 통해, 박근혜 자신의 의지 하에 일어난 일임을 스스로 시인했다.
보도 이후 한나절이 꼬박 지나도록 청와대는 아무런 입장을 표명하지 않았다. 그 동안 여러 의혹이 터질 때마다 근거없는 의혹이라느니 유언비어라느니 일축하면서 때로는 유언비어 유포라며 법적처벌까지 운운하던 태도와는 대조적이다. 게다가 검찰에 고발까지 넘어간 상황이니, 사법부 또한 어떤 식으로든 답을 내놓아야만 하는 상황에 몰렸다. 더군다나 스캔들이 명쾌하게 해소되지 못한 채 증폭되면서 온 국민과 매스컴의 이목이 쏠려있는 상태에서, 청와대도 사법부도 여론이 납득할만 답을 내놓을 수 있을지 주목되는 상황이었다.
실제로 10월 27일 최순실의 컴퓨터 기록에 있는 광주 민주화 운동 초고에 존재하였던 5·18 민주화 운동의 역사적 의미와 상징성을 강조한 문구들이 대통령 5.18 기념사 연설문에는 아예 빠진 것에 대해 비선 실세 최순실이 의도적으로 제외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야당측 의원에 의해 제기되기도 하였다.기사
차은택과 최순실은 박근혜 정부 국정과제인 문화융성 사업의 틀을 짰는데 이것의 예산이 1조원이 넘어간다. 곳곳에서 공사까지 진행되고 있는데 세부계획조차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짠 예산이 실제 1조 원대가 넘는 사업으로 집행될 뻔했다. #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자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에서 박근혜가 7시간 동안 반응이 없었던 것이 최순실과 연관이 있는 게 아니냐는 뼈 있는 농담이 퍼지고 있다. 대한민국과 독일의 시차가 7시간인데, 사건이 발생한 8시 50분은 독일 시간으로 새벽 2시가 다 된 시간이라 그 시간에는 최순실이 잠을 자고 있을 때라서, 최순실이 잠에서 깨어나기 전까지 박근혜가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못한 게 아니냐는 것이 그 내용. 황교안 현 국무총리는 사실무근이라며 관련성을 일축했다.
심지어 박근혜 정권의 대표 경제정책 중 하나인 초이노믹스를 가지고 '''최경환이 아닌 최순실 작품이 아닌가''' 하는 추측까지 벌어지고 있다. 최순실이 쓰던 태블릿에 가계부채 A,B라는 폴더가 있었다고 한다. 초이노믹스가 대출규제 완화로 현금을 돌게 만든다는 말을 내걸었는데 실제로는 강남 땅값이 올랐다는 부분을 생각해본다면 석연치 않은 부분이다. 평소같으면 아무리 경제정책이 이상해도 그건 아니라고 하겠으나 국민의 신뢰가 땅에 떨어진 이 시점에서는 이런 해석도 아니라고만은 할 수 없는 안타까운 시점. YTN '가계부채 1300조...초이노믹스는 최순실 노믹스?' 2016년 10월 29일
'''언론의 추가적인 폭로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타임라인 문서 참조.'''
4. 남북관계 및 안보관련 사안 개입
최순실은 안보관련 사안도 보고받았으며, 박근혜의 안보 관련 결정에도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기사 . 민주당 측에서는 박근혜 정부가 부쩍 강조했던 북한붕괴론, 그리고 기존 정부와의 정책과 일관성을 벗어난 개성공단 문제나, THAAD 배치 문제와 같은 사안에 대해서도 최순실의 입김이 있었다고 보았다. 기사
F-35선정이나 THAAD 배치와 같이 고가 무기 배치나 선정문제에서도 최순실이 개입했다는 설이 나왔다. 최순실은 록히드 마틴 에 고용된 무기 로비스트인 린다 김과 오랜기간 친분을 유지했으며, 공교롭게도 F-35와 사드 모두 록히드 마틴이 제작하는 무기.[4] 국방부는 이를 부인하였다. 기사 그리고 F-35의 경우에는 애초에 공군이 원하던 기종이었고 역대 공군 참모총장들이 F-15SE에 반대하는 입장을 표명하기도 했다. 밀리터리 관련 잡지에서도 F-35를 대체적으로 선호하는 경향을 보였고, 실제로 F-35의 큰 단점은 엔진이 하나만 있다는 것뿐이고, 나머지는 다 소소한 아쉬움밖에 없었다. 이거는 참고 기사. 역대 공군총장 17명 "차기전투기 F-15SE 안 돼" 다른건 몰라도 F-35는 최순실이 도입하라고 압박해서 도입하기로 했을 가능성은 높지 않은 편.
현재 검찰에서 박근혜가 2014년 남북관계 관련 기자회견에서 말한 "통일은 대박입니다." 발언이 최순실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한 것이라고 잠정 결론 내렸다. 이 발언이 냉각된 남북 관계에 긴장하고 있던 국민과 타 국가들에 큰 영향을 미쳤던 점을 생각하면, 이 또한 중요한 사안이다. 링크
5. 대한민국의 국제적 신뢰도 저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검찰 수사로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미중일 정상, 유엔과 나토 국제기구 수장들과의 통화내용 등 민감한 외교 문서까지 최순실의 손에 들어간 것으로 드러났다. JTBC 뉴스룸에서 보도한 '최순실 파일' 때문에 그간 대통령의 외교일정과 회담 내용에 대한 우리 측의 구체적 계획이 세어나간 것까지는 알려져있었으나[5] 검찰의 수사결과 다른 정상들의 통화내용까지 일개 민간인에게 세어나갔다는 것이 공식 확인 되었다. 이로써 대한민국은 국제적 신뢰도의 추락 및 외교 파트너로 기피대상에 오르는 것을 걱정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국정농단 사건을 뛰어넘어 심각한 '''국제문제'''로 비화 될 우려까지 있다. 우려 하는대로 APEC 정상회담에 대리참석 한 황교안 총리가 대화에 끼어들지 못하는 듯 한 사진이 찍히기도 했다.
6. 한국 공식행사의 무속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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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갤러가 찾아낸 최순실 파일속 오방낭 [6]
박근혜가 새누리당 대선 후보였던 2012년 11월, 정수장학회 문제 해결을 위해 1억 5000만원 상당의 굿판을 벌였다는 의혹이 불거지기도 했다. # 최순실의 영향을 받은 박근혜는 오방낭이나 무속적 의례, 특이한 심령적 언어 등 주술적인 요소를 공식 행사에 포함시켰다. #
이름하여 '오방낭' 복주머니 제막식. 오행사상에 기초한 오방낭은 흑, 백, 청, 홍, 황의 다섯 가지 색을 뜻하는데, 예로부터 '우주의 기운'을 상징하는 부적인 것으로 전해진다. #
2013년 2월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 당시 비선 실세 최순실 씨가 직접 개입한 것으로 드러난 ‘희망이 열리는 나무’(오방낭 복주머니) 제막식 행사가 당초에는 국보 1호 숭례문 전체를 오방색 천으로 감싸는 대형 행사로 기획됐다는 증언이 나왔다.
취임식 행사 총감독을 맡았던 윤호진 씨는 26일 동아일보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최 씨 PC에서 발견된 ‘오방낭’ 프로그램은 대통령 취임식 한복을 디자인했던 김영석 씨가 기획했던 것”이라며 “김 씨는 당초 화재로 불탔다가 복원된 숭례문 전체를 대형 오방색 천으로 감싼 뒤 제막하는 행사를 하겠다고 고집했다”고 밝혔다.
윤 씨는 “아직 복원공사가 완벽히 끝나지 않아 소방방재 시설도 갖춰지지 않은 숭례문에 천을 씌울 경우 화재 위험이 있어 반대했다”고 말했다.
오방낭은 청, 황, 적, 백, 흑의 오색 비단을 사용해 음양오행의 원리에 따라 만든 전통 주머니다. 우주와 인간을 이어주는 기운을 가져 복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공개된 최순실의 PC에서 ‘오방낭’ 초안 사진이 담긴 파일이 발견되면서 대통령 취임 행사에 최 씨가 직접 개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취임식 행사 준비에 참가한 한 문화계 인사는 “당시 한복 디자이너인 김영석 씨에 대해 왜 다들 어려워하는지 이유를 잘 몰랐다”며 “나중에 알고 보니 최 씨라는 든든한 실세 때문인 것 같다”고 했다. 김 씨는 최순실로부터 주문을 받아 박근혜가 대통령 취임식 때 입을 340만 원짜리 한복을 제작하기도 했다. 김 씨는 이후 CF 감독인 차은택과 함께 문화융성위원회 전문위원으로 활동했고 미르재단의 이사로도 이름을 올렸다. 김 씨는 또한 2014년 8월 최순실의 남편이었던 정윤회와 함께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팬클럽이 주최한 독도콘서트에도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문화계에서는 비선 실세들이 ‘오방낭’에 집착한 것에 대해서도 흥미로운 해석을 내놓고 있다. 한 인사는 “최 씨가 박 대통령의 해외 순방 등 중요 행사 때마다 입을 옷 색깔도 직접 골라줬다고 한다”며 “최 씨와 김 씨가 오방낭 행사를 직접 챙긴 것은 취임식을 ‘거대한 굿판’으로 만들려 했다는 의혹도 제기된다”고 말했다. #
7. 국정을 주도한 비선모임
최순실과 가까웠던 이성한 전 미르재단 사무총장에 따르면 ‘비선실세’ 최순실이 거의 매일 청와대로부터 30㎝ 두께의 ‘대통령 보고자료’를 건네받아 국정 전반을 논의하는 ‘비선 모임’을 운영했다고 한다.
이 전 총장은 인터뷰에서 “최씨는 주로 자신의 논현동 사무실에서 각계의 다양한 전문가를 만나 대통령의 향후 스케줄이나 국가적 정책 사안을 논의했다”며 “이 전 총장은 비선 모임의 참석자와 관련해 “적을 때는 2명, 많을 때는 5명까지 모였다. 나도 몇번 참여한 적이 있다”며 “모임에 오는 사람은 회의 성격에 따라 조금씩 바뀌었지만 차은택씨는 거의 항상 있었고 고영태씨도 자주 참석했다”고 하였다. K스포츠 관계자는 “이곳에서 회의할 때 대부분 (차은택의 절친한 후배로 알려진 그래픽디자이너) 김성현 미르재단 사무부총장이 와 있었다. 그 곳에서 (차은택과 가까운 플레이그라운드커뮤니케이션즈 대표) 김홍탁도 만났다”다고 하였다.
건물 인근 가게를 하는 ㄷ씨는 이른바 청와대 ‘문고리 3인방’ 중 한명의 얼굴사진을 지목하며 “이 사람이 왔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 차관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하늘에 맹세코 사실이 아니다. 이름을 빼줬으면 좋겠다”며 강하게 부인했다.
이 전 총장은 최순실의 사무실 책상 위에는 항상 30㎝가량 두께의 ‘대통령 보고자료’가 놓여 있었다고 증언했다. 그는 “자료는 주로 청와대 수석들이 대통령한테 보고한 것들로 거의 매일 밤 청와대의 정호성 제1부속실장이 사무실로 들고 왔다”고 이름을 분명히 밝혔다. 정호성 제1부속실장은 이른바 ‘문고리 3인방’으로 불리는 비서관 가운데 한 명이다. 그는 “최순실씨는 모임에서 별다른 설명 없이 이 자료를 던져주고 읽어보게 하고는 ‘이건 이렇게, 저건 저렇게 하라’고 지시를 내렸다”며 “최씨의 말을 듣고 우리가 사업 계획서를 작성해 올리면 그게 나중에 토씨 하나 바뀌지 않고 그대로 청와대 문건이 돼 거꾸로 우리한테 전달됐다”고 말했다.
그는 비선 모임의 논의 주제와 관련해서는 “한 10%는 미르, 케이스포츠 재단과 관련한 일이지만 나머지 90%는 개성공단 폐쇄 등 정부 정책과 관련된 게 대부분으로 최순실은 이를 ‘박근혜 대통령의 관심사항’이라고 표현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 모임에서는 인사 문제도 논의됐는데 장관을 만들고 안 만들고가 결정됐다”'''고 밝혔다. #
비선모임은 주로 논현동에 있는 한 건물에서 했다고 한다. #
종래 박근혜가 유독 대면보고를 잘 받지 않는 성향이 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었으나, # 그것도 실은 최순실한테 서면보고가 올라가야 했기 때문이 아니냐는 의혹마저 제기되었다. #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와 ‘개성공단 전면 중단’ 등 중대한 통일·외교·안보정책에도 최순실이 개입한 정황이 나타났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열리면서, 전문가들은 물론 정부 당국자들조차 의아하게 여긴 해당 정책 결정 과정의 미스터리가 풀리는 양상이다.
북한의 4차 핵실험 직후인 2016년 1월 7일 박근혜정부는 첫 대응으로 확성기 방송을 통한 대북심리전 재개를 꺼내들었다. 당시 복수의 정부 당국자들은 의사결정 과정에 의문을 보였는데 한 당국자는 “이날 오전만 해도 대북 방송 재개 분위기가 아니었는데 오후 들어 갑자기 바뀌었다”고 전했다. 다른 당국자는 “청와대 안보실 공식 조직에서 결정되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문고리 실세’가 개입된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결정이라는 추정만 무성했다.
‘개성공단 전면 중단’ 과정도 비슷했다. 2월 초까지도 청와대와 정부는 ‘개성공단은 대북 제재 수단이 아니다’라는 일관된 태도를 보였다. 또한 2월 10일 ‘개성공단 전면 중단’ 결정은 주무부처인 통일부 쪽의 ‘1년 일시적 중단’ 의견을 묵살한 결과였던 것으로 나타난 바 있다. 개성공단 전면 중단은 형식적으론 2월 10일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이 주재한 국가안전보장회의에서 결정됐지만, 이미 8~9일 박근혜가 결심한 것으로 알려졌었다. 박근혜가 주재한 7일 국가안전보장회의에선 개성공단 관련 논의가 없었다.
이 과정에 최순실이 개입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의심된다. 최순실을 자주 만났던 한 지인은 '''“개성공단이 폐쇄될 무렵 최순실씨가 ‘앞으로 2년 안에 통일이 된다’는 말을 자주했다”'''고 전했다. 박근혜의 개성공단 폐쇄 등 강경 대북정책 이면에 자리잡은 것으로 추정되는 ‘북한붕괴론’ 인식과 일맥상통한다.[8] 박 대통령이 2014년 새해 기자회견에서 처음으로 제시한 ‘통일은 대박’이란 표현도 정부 유관 부처에서 제안한 게 아닌 것으로 전해졌다. 이성한 전 미르재단 사무총장은 최순실이 주도한 비선모임의 논의 주제 가운데 “개성공단 폐쇄 등 정부 정책”이 포함돼 있었다고 증언한 바 있다. #
7.1. 팔선녀 사우나 모임
강남구 압구정동의 여성전용사우나에서 '재벌 사모님'들과 모임을 열었다.# 일반적인 동네 목욕탕은 아니며, 예약제로 운영되는 사교 모임 장소에 가깝다. 법은 목욕탕과는 상관없다.
7.2.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가담한 정계 인사들
최순실/정윤회 또는 정유라 등에 대해 야당이 국회에서 의혹 및 문제제기를 할 때 이 문제를 덮으려하가나 최순실 등을 옹호하는 발언을 한 정치인들. 발언 내용등은 #2014년 #2016년
- 염동열 (19대, 20대 자유한국당 국회의원/ 현 교육문화체육 위원회 자유한국당 간사) - 정유라 선수에대한 의혹 제기에 대해 반박하며 사과를 종용.
- 강은희 (19대 새누리당 국회의원/ 2015년 12월 여성가족부 장관 임명) - 의혹제기에 대해 부정하며 정유라 및 승마협회의 명예회복 촉구.
- 김희정 (19대 새누리당 국회의원/ 2014년 7월 여성가족부 장관 임명) - 정유라 선수를 강력히 옹호하며 의혹제기를 음해로 매도하며 문체부의 조치를 촉구.
- 김진태 (19대, 20대 자유한국당 국회의원) - 야당의 정윤회 비선실세 의혹제기를 거짓 선동으로 매도.
- 김태흠 (19대, 20대 자유한국당 국회의원) - 관련 의혹제기를 불만세력의 문서유출로 왜곡 축소하고 조응천 박관천등을 매도, 야당을 국정농단세력으로 비난.
- 정홍원 (2014년 12월 당시 국무총리) - 비선이나 실세의혹 전면 부인.
- 김기춘 (2014년 7월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 - 비선라인 존재를 맹세코 부인. 비선인사 청와대 출입이나 비서들의 전횡 전면 부인.
- 조현재 (2014년 4월 당시 문화체육부 제1차관) - 정유라 관련 국가대표 선발 의혹 전면부인.
- 황교안 (2014년 12년 당시 법무부 장관, 파면 선고 이후 권한대행직을 수행.) - 정윤회 문건에대해 검찰에서 진상규명하겠다고 했으나 "근거없는 소문"이라고 결론내고 종결함.
- 이은재 (20대 자유한국당 국회의원 교육문화체육위원회) - 야당의 문제제기를 근거없는 의혹제기로 매도.
- 전희경 (20대 자유한국당 국회의원 교육문화체육위원회) - 최순실/차은택 등에 대한 국회의 증인채택에 수사를 이유로 반대.
- 이종배 (20대 자유한국당 국회의원 교육문화체육위원회) - 최순실의 대한 문제제기를 근거없는 정치공세로 호도.
- 곽상도 (20대 자유한국당 국회의원 교육문화체육위원회) - 재벌들의 재단 출연을 사적인 출연으로 호도.
8. 해외 순방 동행 의혹
최순실이 박근혜의 대통령 해외 순방에도 동행했다는 증언이 나왔다.SBS뉴스 증언에 따르면 최순실이 박근혜의 미국 순방에도 동행했으며 그 때문에 주사를 받아 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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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통령 사과문에 의하면 청와대 및 보좌체제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두었다고 했으므로, 보좌체제가 확정되기 이전까지의 첨삭을 인정한 것이 된다. 하지만 사실 이 부분마저 축소 발표했다는 정황이 존재한다. 자세한 것은 사과 부분 참조. 게다가 이후 추가로 보도된 내용에 따르면 아예 대통령 당선 이전 선거캠프시절부터 최순실이 깊게 관여했을 가능성까지 드러났다.[2] 그리고 이 일이 터진 뒤 "내가 알았으면 그런 말 했겠나"고 말하면서도, 기자들에게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냐는 질문을 받고 말문을 닫았다. 하지만 이원종 비서실장이 거짓말을 했다고 할수도 없는게, 이 비서실장이 들어온 2016년 초에 이미 박근혜정부는 최순실, 문고리 3인방, 그리고 우병우의 비선 라인이 장악해버린 상태라 정식 보고라인 자체가 붕괴된 상태였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허수아비 비서실장이라는 말까지 나왔다.[3]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입는 한복도 최씨가 제공해준 것으로 알려졌다. 링크, 링크[4] 록히드 마틴은 1960년대부터 미국 동맹국 수뇌부에 대한 로비와 뇌물로 악명이 높았다. 일본에서 불거진 록히드 사건이 그 단편. 다만 저때 로비와 뇌물은 별 영향을 못미치고 이미지만 깎아먹었다고 한다.[5] 이 또한 안보의 관점에서 결코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 외교적으로 봐도 신중에 신중을 기해 마땅할 외교적 결정들이 비전문가에 의해 놀아났다는 점이 국익에 심각한 손실을 입힌다는 것은 덤이다.[6] 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후, 주식하는 갤러(진짜 주갤러)들은 '실전주식투자 마이너갤'로 피신을 갔다. 주갤이라면 주식은 기본으로 해야하지만 대다수 뉴비들은 주식에 관심이 없다. 디시백과에 의하면, 迂儒들이 주갤로 텔레포팅했고 현 주갤은 주식하는 갤러는 1%로 망한 상태라고.. [7] 그나마 러시아는 남북통일을 통해 경제적인 이익을 얻을 수 있어서 미국과의 관계 등 다른 문제를 해결하면 남북통일에 긍정적으로 돌아설 가능성도 크지만, 중국은 북한이라는 좋은 완충지대를 상실하는 셈일 뿐더러 베트남 통일 이후에 일어난 중국-베트남 전쟁의 트라우마 때문에 한반도의 남북통일 자체에 반대하는 상황이다.[8] 이건(북한붕괴론) 이중으로 헛소리다. 하나는 중국과 러시아가 뒤를 봐주는 이상[7] 북한이 쉽게 스스로 붕괴될 리 없다는 점이고 두번째는 갑작스런 북한의 붕괴는 한국에게 아주 심각한 경제적 재앙이라는 점이다. 북한 경제를 흡수하는데 성공하려면 사실상 나라 하나를 새로 세울 만큼 뼈를 깎는 노력이 뒤따라온다는 게 정설이다. 당장 베트남 통일 당시 북베트남도 남베트남 붕괴 직후 남베트남 영토를 바로 자국에 병탄한 게 아니라 남베트남 영토에 괴뢰국인 남베트남 공화국을 세워 1년 동안 존속시켰으며, 본격적으로 베트남이 통일된 뒤에도 국부인 호찌민의 뜻을 무시한 채 폭주하는 베트남 공산당 때문에 여러 가지 부작용이 일어났다. 예멘은 어설픈 통일 때문에 내전으로 엄청난 혼란에 빠졌으며, 베트남이나 예멘보다 훨씬 성공적이고 평화적인 통일을 이룩한 독일조차도 통일의 부작용 자체는 피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