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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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고영태
'''출생'''
1976년 3월 1일(48세)
전라남도 담양군
'''본관'''
제주 고씨
'''신체'''
180cm, 72kg
'''부모'''
아버지 고규석, 어머니 이숙자
'''형제'''
2남 3녀 중 막내
'''학력'''
고려중학교
전남공업고등학교
한국체육대학교
'''병역'''
병역특례[1]
1. 소개
2. 생애
2.1. 초기 이력
2.2. 최순실과의 만남
2.3. 최순실과의 불화
2.4. 공범에서 내부 고발자로
3.1. 국회 청문회에 나온 고영태
3.2. 청문회 이후
3.3. 내부고발자 인가?
3.4. 박근혜 게이트 폭로 기획 의혹
3.5. 정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고영태의 작품인가?
3.6. 인사청탁 비리 의혹
4. 구속
4.1. 재판
5. 기타
6. 수상 기록


1. 소개


전직 펜싱 국가 대표[2]박근혜의 가방을 제작했다고 한다. 최순실이 설립한 회사인 더블루K의 상무이사를 맡았고, 최순실이 주관한 5명 남짓한 비선 모임의 멤버로 차은택(CF 감독), 이성한(부동산 개발업자)과 함께 아무런 공식 직함 없이 국정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최순실과 고영태를 둘 다 잘 아는 여러 관계자들은 "두 사람은 최 씨가 자주 출입하던 강남의 한 유흥업소에서 만난 사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고영태 본인은 자신이 호스트가 아니라 가라오케 영업사장이었다고 주장했다.# 박근혜와 문고리 3인방 같은 최고 권력자마저 최순실을 선생님이라고 칭하는데, 유일하게 최순실의 이름을 부르며 나이조차 뛰어넘어 말을 놓는 사이였을 정도로 친했으며, 2014년 정도를 기점으로 최순실과의 관계가 틀어졌을 때 최순실이 집에 들어와서 선물과 금품 등을 들고 나갔다고 했다. 이와 같은 고영태와 최순실의 행동은 상식적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지만, 소위 말하는 '공사'였다면 나름 납득이 된다. 호빠 세계에서 선수가 여성에게 받은 선물은, 관계가 끝나면 돌려주는 게 일반적이기 때문.
어쨌건 두 사람이 만난 이후 고영태가 차은택을 최순실에 소개했고, 이후 차은택이 이성한을 최순실에게 소개하였다. 한편 노승일도 고영태가 최순실에게 소개해서 최순실과 일하게 되었다.
이처럼 최순실과 각별한 사이었으나 후술한 것처럼 최순실과 사이가 벌어진 이후 이성한과 함께 내부고발자가 되어 박근혜와 최순실의 가장 아픈 곳을 후벼 파고 있다. 사실 고영태가 이를 TV조선에 제보한 것은 이미 2년 전인 2014년 10월부터였으며, 녹취 기록, 최순실이 박근혜에게 줄 옷을 사는 장면, 청와대 직원의 출입 등을 CCTV를 설치해 찍은 것도 고영태이다. 당시 제보를 받았던 TV조선는 아직 풀기엔 위험하다며 묻어놓고 있었고, 이것이 JTBC태블릿 PC건이 터지면서 같이 공개된 것이다.
검찰의 수사에 협조하여 박근혜-최순실-안종범의 공범 관계를 드러내는데 도움을 줬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초반에는 검찰 조사만 받은 후 구속되거나 기소되지는 않았지만, 세관장 인사 청탁 명목으로 뒷돈을 받은 혐의로 법정구속되고 실형을 선고 받는다.

2. 생애



2.1. 초기 이력


1976년경 전라남도 담양군 에서 태어났다. 5·18 때 부친 고규석이 사망하여(5·18 유공자로 국립 묘지 제1 묘역에 안장되어 있다)[3]어린 시절 조부모님과 함께 지내며 불우한 환경 속에서 자라났다.
고려중학교전남공고, 한국체대를 졸업했고, 펜싱 선수로 활동하며 1998 방콕 아시안 게임에서 사브르 단체전 금메달과 개인전 은메달을 땄다. 그러나 메달 획득 후 생활고로 인해 연금을 일시금으로 받았다. 일요시사 단독 취재 결과(모바일)에 따르면, 그런데도 생활이 나아지지 않자 호스트 생활을 시작했다고 한다.
2000년대에는 '고민우'라는 가명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청문회에서는 고민우라는 이름을 쓴 적은 없다고 부정했다. 하지만 후에 노승일 K스포츠재단 부장이 헌재에서 증언한 바로는 최순실이 고민우라는 이름으로 명함을 파서 대기업 출입할 때 쓰라고 말했다고 진술했다.해당 기사[4] 처음에는 광주 시내 일대에서 호스트 생활을 시작했다. 그 후 부산광역시 해운대구에 있는 룸살롱 등에서 활동했다. 2006년경부터는 서울특별시에서 활동한 것으로 보인다. 2007년경까지만 해도 강남구 청담동이나 논현동에 있는 호스트바에 Try(면접) 보러 다녔다고 한다. 한때 화류계에서 잘 나갔던 심마담과 사귀면서 같이 수입명품가방 장사도 했다고 한다. 호스트 시절에는 강남 가라오케 호스트바에서 '영업이사'(호스트바 마담을 꾸며 부르는 말)로 활동하며 베테랑 남창으로 꼽혔다고 한다.
강남 화류계에서 고영태 모르면 간첩일 정도로 일을 잘했다. 손님 관리도 잘해서 손님들 사이에 평판이 굉장히 좋았고 공사치는 악질 호빠 선수에 비해 성실하게 일을 했고 특히 밤일을 잘해서 고영태 한 번 만나보고 싶은 강남 부자집 사모들도 엄청 많았다. 하지만 고영태는 아무나 만나지 않았으며 철저하게 공과 사를 구분하며 손님 관리를 잘한 것으로 유명하다. 또한 어린 여자들보다 사모님이나 연상녀들을 잘 만나고 다녔으며 그들을 다룰 줄 알았다.
2008~2009년경 청담동 구 엠넷 빌딩 인근 P 술집과 프리마호텔 건너편에 있는 T 술집에서 호스트로 일한 것을 마지막으로 2008년 패션 잡화 브랜드 '빌로밀로'를 발매하면서 호스트생활을 청산했다고 하나, 2012년까지 호스트생활을 계속했다는 증언도 있어 확실하지 않다. 최순실을 강남 화류계 생활 중에 만났기 때문에 2008년 이후로 완전히 청산했을 가능성은 낮다.
2009년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돼 2010년 법원에서 벌금 1,500만 원을 선고받았다. 2009년 4월 태국 방콕의 한 클럽에서 처음 만난 사람으로부터 엑스터시를 1정 받아 술과 함께 들이킨 것으로 조사됐다. 당시 재판부는 고 씨가 동종 전과가 없고 잘못을 깊이 반성하는 데다 과거 펜싱 국가대표로서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 국가의 명예를 드높였다며 벌금형을 선고했다. # 기소될 당시 자신의 직업을 가방판매업이라고 기재했다.#

2.2. 최순실과의 만남


최순실을 처음 만났을 때는 호스트바 시절인 것으로 추측된다. 강남의 한 유흥업소에서 최순실을 만났다고 한다. 이후 최순실의 도움으로 가방회사 '빌로밀로'를 창립한 후, 예능 프로그램이나 드라마 협찬 등을 통해 대중에 '빌로밀로' 브랜드를 널리 알렸다. '빌로밀로'라는 브랜드는 박근혜 대통령이 2013년 초 당선인 신분으로 자주 들고 다녔던 브랜드로 더욱 주목을 받았다.[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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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가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고영태는 이미 최순실과 가까운 사이였으며 20세 연상인 최순실과 서로 ‘반말’을 하는 사이로서 매우 친하게 지냈다고 한다. 이성한 전 미르재단 사무총장 증언에 따르면, 최순실의 진짜 핵심 측근은 고영태라고 하였으며 # 채널A 단독 인터뷰에서는 최순실과 박근혜가 마치 가족처럼 보였다고 말했다 #
2000년대 중반에 ‘사적인 관계’로 시작되었던 최순실과의 인연은 최소한 2014년 이후부터는 사업을 함께 도모하는 사이로 발전한 것으로 보인다. 고원기획(2014년 7~11월), 모스코스(2015년 2~11월), 코어플랜(2015년 8월) 등 최 씨와 고 씨가 연관됐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여러 법인이 1년 동안 집중적으로 만들어졌다. #
그 후 최순실이 설립한 회사인 '더블루K'의 상무이사가 되어 '더블루K'를 관리했다. '더블루K'는 2016년 10월 이후 K스포츠재단의 돈을 빼돌린 창구 역할을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6] K스포츠재단에서 사업을 따내는 방식 등으로 기금을 사유화하려 한 최순실의 계획에 협조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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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한의 폭로 인터뷰를 실은 2016년 10월 25일의 한겨레신문에 따르면, 최순실이 거의 매일 청와대로부터 30㎝ 두께의 ‘대통령 보고자료’를 건네받아 검토했고 국가정책을 결정하는 비선 모임을 운영했는데,# 고영태는 차은택과 함께 이러한 최순실 주도의 국정 제어 비선 모임에 자주 참석했다고 한다. 이성한에 의하면 최순실에게 차은택을 소개한 것도 고영태였다고 한다(이 말은 청문회에서 고영태의 증언으로 재확인). 참고로 이성한은 차은택의 소개로 합류하였다고 한다.

2.3. 최순실과의 불화


최순실이 고영태에게 계속 대우를 잘 해줬다면 관계가 틀어질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2014년 차은택을 최순실에게 소개한 후, 차은택이 최순실과 급속도로 가까워지면서 고영태와 최순실은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7] # 차은택최순실 앞에 나타난 이후 수십 수백억을 굴리고 지인을 장관으로 추천하는 등 온갖 혜택과 비리를 저지른 반면, 고영태는 이렇다할 혜택도 이익도 받지 못한 채 말 그대로 찬밥이 되어 버렸다. 그나마 혜택이라면 박근혜가 열심히 빌로밀로 가방을 들고 다니며 PPL을 해줬다는 정도인데, 결국 공장이 문을 닫은 것으로 보아 PPL의 효과도 신통치는 않았던 모양이다.[8][9] 고영태가 최순실에게 섭섭함을 느꼈을 것은 당연지사.
매일경제신문의 보도에서는 고영태의 사업이 기울고 경제적 곤경이 시작되었지만, 최순실의 도움을 받지 못해서 둘의 사이가 멀어졌을 것이라 분석하기도 했다.
훗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했을 때 최순실과 멀어지게 된 이유를 "정유라의 개를 돌보지 않고 골프를 치러 나갔다가 크게 싸운 것부터 시작했다"고 증언하였는데, 이 발언은 영국에서 특히 화제가 되어, 현지 언론들 중에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관련 헤드라인을 '''Puppy Gate'''로 뽑은 곳도 있었다. 물론 개 문제로 한번 싸운 게 결정적 계기는 아니고, 그전부터 최순실이 모욕적인 말로 아래 직원들을 사람 취급하지 않는 행위를 많이 해와서 사이가 안 좋은 상태였다고 한다.
다만 이렇게 사이가 벌어졌음에도 최순실과 완전히 결별하지는 않았고 최순실이 소유한 독일 현지 법인 '비덱'[10] 대표이사로 등재되기도 했다. 하지만 2016년 10월 20일 등기부에서 이름이 지워졌는데, 그 배경을 놓고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 또한 이 시기를 전후해서 여자친구가 있는 필리핀으로 거처를 옮겼으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본격 발발하자 지인에게 전화를 걸어 "불안해서 못 살겠다. 살려달라."고 울먹이며 말하기도 했다.#[11] 다행스럽게 10월 27일 무사히 국내에 입국하였고, # 입국 이후 참고인 자격으로 검찰 조사에 임했다. 더 큰 의혹이 터져 나올 가능성도 있다. 이후 과정은 후술되는 내용 참조.
고영태와 사이가 멀어진 후에도 최순실이 고영태와 계속 일을 한 이유는, 제한된 인맥으로 많은 일을 벌이다 보니 기존에 알고 있었고 그나마 믿을만한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사이가 매우 안 좋았던 노승일과도 계속 일을 했던 것도 같은 맥락.

2.4. 공범에서 내부 고발자로


전술한 바와 같이 최순실차은택과 가까워지면서 고영태를 멀리하기 시작했으며, 최순실은 고영태가 다른 여자와 같이 있는 것을 보고 크게 싸운 후 자신이 사준 각종 귀금속과 명품들을 도로 가져가기도 했다. 고영태는 고영태 대로 이런 최순실의 태도에 배신감을 느끼고 복수를 위해 최순실의 정체를 언론에 폭로하기 시작했다. 한 가지 특이한 건 이렇게 사이가 나빠졌는데도 두 사람이 결별하지 않고 게이트 발발 직전까지 계속 같이 일을 했다는 것.
이미 박근혜 게이트가 발발하기 2년전인 2014년 12월경 고영태는 최순실과의 관계나 재단관련 문건을 조선일보 측에 제보했으나, 조선일보는 워낙 사안이 황당했고 이게 진짜라 해도 제보자의 신변을 보장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보도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2015년 정부의 정책 실행이 고영태가 가져온 문건대로 실행되는 것을 보고 집중취재에 나섰다고 한다.
고영태와 이성한의 제보에 의한 최초의 미르재단-K스포츠재단의 비리 관련 기사가 2016년 7월 26일 TV조선에서 나왔지만 이때까지도 아직 분위기가 무르익지 않아서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다. 어쨌거나 이 방송이 나간 후 최순실은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는 것을 느끼고 이 있는 독일로 출국하였다. 이 TV조선의 뉴스는 아직도 정윤회가 비선실세라고 착각하고 있었던 한겨레가 그동안 취재방향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노선 수정을 했을 정도로 중요한 국면전환을 가져왔다.
이후 JTBC에서 10월 4일 특별취재팀을 구성하여 고영태-이성한을 연이어 접촉하여 받아낸 인터뷰 기사가 나오면서 드디어 비선실세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국민적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특히 고영태가 '''"최순실이 가장 좋아하는 건 연설문 뜯어 고치는 것이다"'''라는 이야기가 유명해지면서 본격적으로 박근혜 뒤에 가려져 있던 최순실의 존재가 알려졌다. #[12] 그는 이때 "연설문을 고쳐놓고 문제가 생기면 애먼 사람을 불러다 혼낸다"는 말도 했다.
고영태와 이성한의 폭로가 일파만파 퍼지기 시작하자 10월 24일에 박근혜 대통령이 개헌 발언으로 국민의 관심을 돌리려고 하였다. 그런데 바로 그날, JTBC 뉴스룸에서 박근혜 게이트의 결정적인 스모킹 건이 된 '''최순실의 태블릿 PC''' 내용을 공개했고, 이 방송이 엄청난 파장을 불러 일으키면서 이제 이 국정농단 의혹은 더 이상 여론공작으로 덮을 수 없는 수준으로 퍼져나갔다. 결국 다음날인 10월 25일 박근혜 대통령은 부랴부랴 1차 사과(?)를 하였다. 그런데 이날에는 또 한겨레신문이 그동안 이성한에게 취재했던 내용[13]을 창고대방출 하였고[14] TV조선은 최순실 의상실 영상을 공개하여 파장은 더욱 확대되었다.
2016년 11월 3일 동아일보의 보도에 따르면, 최순실이 비밀의상실에서 박근혜 옷 고르는 장면을 몰래 촬영한 자도 고영태였다고 한다. # 2014년경 최순실과의 관계가 잠시 나빠지자 몰래 촬영하여 조선일보에 넘겼다는 것. 청문회에서 고영태는 이 보도가 사실이라고 확인해 주었다.
고영태가 증언한 바에 따르면 최순실박근혜에게 사준 옷은 대통령에게 주는 것이라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싸구려였다고 한다. 실제로 최순실이 수십 개의 가방과 100벌 이상의 옷을 선물했다고 하는데, 추정 금액이 5,000만 원에서 1억여 원 정도에 불과하다. 옷 1벌당 50~100만 원 수준이라는 것. 물론 이 정도로도 뇌물죄는 특정하고도 남지만, 금액 자체는 사건의 경중에 비하면 매우 초라한 금액이라고 할 수 있다. 대통령에게 줄 물건이니 재료가 결코 싸지도 않았을 것이고, 한 사람을 위해 만든 맞춤물건인데도 저 정도니. 최순실이 직원들과 자신에게 인격적인 모욕이나 인사에 대해 참견이 심했고, 이에 대해 불만이 많았다고 증언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고 고영태의 이름이 언론에 나오자, 전국의 화류계 관계자들은 고영태가 왕년의 '고민우'임을 알고 "'''가라오케 호떡(호스트바를 지칭하는 은어)이 정치계 거물이 됐다'''"며 황당해하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고영태와 함께 일했던 전직 접대부의 인터뷰를 해냈다. 보기

3.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관련


사건의 실체가 잘 알려지지 않았던 게이트 초기에는 관련자 중에 가장 힘이 없는 고영태가 최순실과 거래를 하고 혼자 죄를 뒤집어 쓰기 위해 필리핀에서 전격적으로 입국한 것이 아니냐라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나중에 고영태가 귀국한 이유가 그와 정 반대였다는 것이 확인되었는데, 고영태는 힘도 없고 보호받을 곳도 없는 자신이 이 엄청난 게이트의 주동자로 몰려서 희생양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서둘러 귀국해서 해명을 하려고 했던 것이다. #
이유야 어찌 됐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발발 후 본격적인 검찰조사를 받은 최초의 인물이 바로 고영태이다. 게이트 초기에 상당히 유명했었기 때문에 일단 참고인으로 조사받기는 했지만 곧 피의자로 전환될 것으로 예상이 되었다. 이때 기업인들로부터 '갑의 대우'를 받았다는 증언도 나왔다. 그러나 조사 결과 고영태가 취한 이익은 게이트의 핵심인물로 보기에는 정말 시시한 수준이었다. 차은택최순실을 등에 업고 문화계를 쥐락펴락했고 최순실의 미용관련 주치의였던 김영재&박채윤 원장 부부가 막대한 이익을 얻거나 얻으려고 했으며 최순실의 헬스 트레이너에 불과했던 윤전추도 3급 특채로 청와대에 들어갔는데 최순실의 한때 최측근이기도 했던 고영태는 전혀 그런 사익을 취한 것이 드러나지 않았다. 오히려 매일경제 보도에 따르면 “고영태 씨는 사업 운영 중 사무실 월세를 못 낼 정도로 쪼들렸다”고 한다. 실제로 고영태가 만든 빌로밀로 공장은 결국 2년을 못버티고 문을 닫았다.

3.1. 국회 청문회에 나온 고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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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청문회에 출석한 고영태, 앞에 앉은 사람이 차은택.
검찰조사를 받은 후 고영태는 2016년 12월 7일 국회 청문회에서 출석하여, 최순실에 대해서 많은 것을 적극적으로 증언하였다. 물론 그의 적극성은 '''향후 그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여지가 없거나, 적은 부분들에 한해서'''였지만 그의 옆자리에 앉았던 김종 전 차관은 그가 진술하는 모습을 보면서 머리를 싸맸을 정도.
전반적으로 큰 소득이 없었다는 평가를 받은 국정조사 청문회였지만 이 청문회에서 고영태와 노승일 등 내부고발자들의 활약은 무척 돋보였다. 고영태가 청문회에서 진술한 내역만 해도 '대통령 연설문 수정', '대통령에게 옷 제공', '최순실이 세월호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 등에 이르기까지 혐의 입증에 도움이 될 만한 사실들이 상당했다. 이러한 태도 덕인지 황영철 의원이나 하태경 의원은 고영태를 '우리 고영태 증인'이라 불렀고, 손혜원 의원도 고영태에게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 며 추켜세우는 등, 국조에 참여한 국회의원들은 전날 재벌총수 청문회 때나 김기춘에게 질의할 때와는 다르게 많이 누그러진 태도로 고영태를 대했다. 심지어 박근혜 정부 반대성향의 네티즌들까지 그에게 우호적이고 동정하는 반응을 보였을 정도였다.
청문회 마무리 단계인 밤 11시를 넘겨서 하태경 의원이 고영태, 장시호차은택에게 최순실과 카톡으로 대화를 나눈 적이 있느냐고 재질의하였고, 증인들 모두 최순실과 카톡으로, 그리고 문자로도 대화를 나누었다고 증언하였다.
덧붙여 'JTBC에게 최순실의 태블릿 PC를 건네준 것이 사실이냐'는 질문에 '모 언론사에서 밝힌 태블릿 PC의 소유주는 자신이 아니며 자신은 그런 물건을 건네준 적이 없다' 라고 밝히며 '그런 자료를 수집 중이었기에 그러한 PC를 가지고 있었다면 버리지 않았을 것'이라고 증언하면서 '언론사의 기자가 자신의 전화와 자신의 음성을 확인해줬으면 좋겠다'는 증언 요청을 했다.
그러나 고영태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최순실은 태블릿 PC의 기본적이고 기초적인 기능은 사용할 줄 안다. 이메일을 작성하고 보낼 줄도 안다. 그러나 PC의 자료를 USB에 담아서 태블릿으로 옮기는 것은 못 하기에 컴퓨터를 못하는 사람이라고 말한 것이다"'''라고 증언하였다. 이를 들은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의 "그럼 기기의 기본적인 기능은 사용할 줄 아네요?"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하여 "JTBC가 입수한 태블릿 PC가 최순실의 소유물이 아닐 것이다"라는 '''루머가 허위였음을 사실상 인정'''하였다. JTBC 또한 이에 대해서 해명 보도를 했다. 즉, 고영태의 대답이 꼬였을 뿐 JTBC의 주장과 고영태의 주장이 엇갈리지는 않는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JTBC는 고영태에게 태블릿 PC를 받았다고 주장한 적이 없고 '''더블루K 사무실의 책상 위'''라 말했다.[15] JTBC는 이를 사실 관계도 제대로 확인 안 하고 어떻게든 논점을 흐려 국면 전환을 노리는 이완영 의원이 고의적으로 논란을 만들어낸 것이라며 비판했다.
그 외에 2016년 12월 7일 오후 10시를 넘겨서 국회에서 진행 중인 청문회에서 김기춘 전 비서실장의 거짓말이 폭로되었을 때, 증인으로서 인상적인 반응을 보여줘서 호평을 받았다. 그동안 줄곧 "최순실은 모른다. 언론 보도 이후에 알았다. 전혀 들어본 바도 없다"고 주장해온 김기춘에 대해 당시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의원은 시민의 제보를 받았다면서 결정적인 영상 하나를 청문회장에서 공개했고, 이때 박영선 의원이 고영태에게 "'''오늘 누가 제일 거짓말을 많이 한다고 생각하세요?'''"하고 묻자 고영태는 다음과 같이 대답을 하였다.

'''"저한테 어려운 결정을 주신 것 같은데, (피식) 네, 어… 뭐 굳이 제가 제 입으로 얘기 안 해도 지금 방송을 보고 있는 국민 여러분들이 다 알고 있을 거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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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국회 청문회 출석 시 국회식당에서 여성 기자들과 함께 식사를 했다.[16] 다만 사진은 아무리 봐도 식사 중이 아니라 커피 마시는 중이다.
12월 8일, JTBC 보도로 인해 JTBC 기자를 만났는데 '취재진을 만나지 않았다'라고 대답을 한 위증 의혹이 있어 주가가 하락했다. 다만 JTBC 기자를 만나지 않았다라고 해서 고영태에게 딱히 이득이 되는 부분이 있는지 의문이라[17] 좀 더 지켜봐야 할 듯. 위증이 아니라는 시각도 있다. ### 청문회를 처음부터 끝까지 본 사람들 증언으로는 그런 소리는 하지 않았다는 게 중론이다.[18]
추가로 청문회에서 직접적인 부인 발언을 한 적이 없을 뿐, '최순실이 연설문 고치는 것이 취미'라는 보도에 대하여태블릿 보도 직후인 10월 31일에 그런 인터뷰를 한 적이 없다고 주장한 적이 있다.[19] 게다가 청문회에서 이야기한 바가 있는데 연설문 고치는 게 취미라거나 수시로 한다고 한 적은 없고, 다만 연설문을 PC로 고치는 걸 봤다라고 이야기했다고 증언하였다. # 저 인터뷰의 기사
한편, 고영태가 최순실보다 장시호를 먼저 알았을 가능성이 있다는 증언이 나왔다.# 하지만 후속보도가 없고 딱히 두 사람이 박근혜 게이트 관련해서 일을 꾸민 것도 없기 때문에 이 의혹은 묻혀지는 분위기.
2016년 12월 17일 새누리당 의원이 박헌영 전 K스포츠재단 과장에게 위증교사를 했다는 충격적인 기사가 발표되었다. 기사가 발표된 건 17일이지만 언론사와 인터뷰를 한 건 4차 청문회가 열리기 이틀 전인 13일이었고, 고영태는 새누리당의 한 의원이 고영태가 태블릿을 들고 다녔으며 충전기를 구해오라고 했다는 증언을 유도할 것이라고 주장했고 실제로 그대로 맞아떨어졌다. 중앙일보 측에서도 이것이 진짜인가 확인하고서 기사를 터트린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이만희 의원은 사실무근이라며 반박 후 명예훼손으로 고소한다고 한다. 하지만 고영태는 이만희 언급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특정성 성립이 불가능해 그냥 액션이라고 봐야할 듯. 그리고 이만희 의원뿐만 아니라 이완영 의원도 최순실 측 증인과 접근해 위증교사를 했다는 정황이 포착되었다. 고영태의 짐작으로는 원래 질문을 할 것 같은 의원은 이완영 의원이었던 듯. 결국 추후 위증교사 의혹과 관련해 증인과 참고인을 모아 따로 청문회를 열 것인지 결정한다고 한다.

3.2. 청문회 이후


2017년 1월 13일, 고영태의 소재 파악이 안 되고 있다고 한다. 헌법재판소에서는 경찰에 그의 행방을 탐색해달라는 요청을 했으며 소식이 전해지자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조만간 마티즈에서 보게 되는 거 아니냐."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때맞춰 최순실이 "차은택과 고영태가 몸통이다." 라며 노골적인 덮어씌우기를 시도하려는 듯한 모습을 보이며 이러한 우려는 더욱 더 가중되고 있는 상황.#
일단 더불어민주당 손혜원 의원은 더 이상 고영태는 "사생활을 침입받는 일은 하기 싫어한다" 며 밝혔다. 손혜원 “고영태, 더 이상 세상에 나서기 싫어해…사생활 침해 받는 일 안 하겠다더라”
1월 16일 주진우 기자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고영태와 연락했으며 무사하다고 전했다. 하지만 고영태는 현재 신변 위협 때문에 집을 떠나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한 상태라고 한다. 고영태의 행방과는 별개로, 일부 언론의 악의적인 보도로 인해 고영태 본인을 비롯해서 고영태의 가족들도 언론 보도를 보지 않는다고 한다.
이런 와중에 고영태는 2월 6일 최순실의 형사 재판에 출석할 의사를 밝혔으며 실제로 출석하여 증언을 했다. 대체로 최순실에게 불리한 내용을 많이 증언하였기 때문에 재판정에 나온 최순실과 날카롭게 대립했는데, 심지어 최순실은 격앙된 나머지 고영태에게 신용불량자+마약전과자라는 막말도 던졌다.
헌법재판소는 고영태가 법정에서 모습을 드러낼 때 출석요구서를 전달할 예정이라고 했으며 고영태는 9일 열리는 헌재 증인 신문에 출석하겠다는 뜻을 내비쳤으나 결국 헌법재판소에는 출석하지 않았다.
탄핵이 인용되면서 고영태의 이야기도 자츰 조용해지는 가운데, 4월 12일 새벽 우병우의 구속이 기각된 상황에서 갑작스러운 체포소식이 들려왔다. 주진우 기자와 고영태의 변호인 김용민 변호사의 말에 따르면 검찰의 조사에 꼬박꼬박 나가고 체포 전날까지도 검찰에 나갈 날을 상의하던 고영태를 도주 우려를 빌미로 문까지 부수고 들어가 체포했다고 한다. 허나 검찰 측에서는 체포영장을 발부받은 상태에서 고영태의 집에 찾아갔지만 1시반 30분 동안 문을 열어주지 않아 어쩔 수 없이 강제집행한 것이라고.

3.3. 내부고발자 인가?


일부 네티즌들은 고영태에게 까방권을 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오고 있다. 심지어는 ''''국민호빠'''', ''''정의의 호빠맨''''라는 애칭까지 붙여지기도 했다. 물론 이와 반대되는 의견도 있는데, '''고영태의 폭로는 최순실로부터 이익을 얻지 못하자 앙심을 품고 뒤통수를 친 것'''에 불과하며 어쨌거나 고영태도 최순실 일당의 불법행위에 협조를 한 것은 맞기 때문에 까방권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고영태가 가장 먼저 접촉하였고, 그래서 미르재단, K스포츠 문제를 가장 먼저 취재하고 가장 장기간 추적해서 세상에 알린 TV조선의 이진동 사회 부장은 그의 자서전에서 "국정조사 청문회를 전후한 시기에 뒤늦게 접하다보면 그렇게 보일지는 모르겠으나, 전 과정을 아는 내 입장에서 볼 땐 그들은 침몰하고 있는 최순실에서 단지 먼저 등 돌렸을 뿐이다.내부 고발의 전제는 자발성인데, 그들이 자발적으로 했다고 인정하긴 어렵다." 혹평하였다.
고영태는 2014년 10월 이진동 기자와 처음 접촉 할 때만 해도 "어떤 여자가 제 여자친구만 있는 집에 들어와 현금 1억 원과 명품시계를 가져갔는데, 찾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해서요."라며 단지 최순실이 가져간 돈과 선물을 찾길 원할 뿐이었다. 이후 이진동의 부탁으로 의상실에 CCTV를 설치하여 최순실 영상을 제공하였는데, 이것이 그나마 최대 공로였다. 이후 사건이 점점 커져가니 아래에 나오는 '고영태 기획설'에서 나오는 것 처럼 사건이 터져서 최순실이 날라가면 K스포츠를 먹는 것으로 작전을 바꾼다.
진정한 의미의 제보를 한 적도 없고, 검찰에 어떤 핵심적인 물증을 제공하지도 않았다. 다만 이진동 기자와 계속 만나는 과정에서 자신에게 필요한 만큼 조금씩 정보를 흘렸을 뿐이다. 얼마나 거짓말을 했는지 이진동 기자는 거의 최후의 순간 까지도 고영태가 K스포츠에서 일하는지 몰랐다. 정말 내부 고발자라면 최순실이 박근혜에게 지시하여 전경련의 돈으로 K스포츠를 만들었다는 큰 그림과, 이에 수반되는 물적증거를 제공 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정보들은 고영태에게 전혀 나온 바가 없다. 어디까지나 K스포츠에서 일하는 노승일 과장이나 정현식 전 사무총장이 양심고백 한 것이다. 또한 미르재단 전 사무총장 이성한노승일과장의 어마어마한 증언은 고영태에게 들었다는 전문 증거이며, 정작 고영태는 이를 기자들에게 말하지 않았다. 특히 JTBC의 최대의 특종인 '최순실의 취미는 박근혜 연설문을 고치는 것' 발언 역시 이성한이 고영태에게 들었다는 것이다. 한겨례의 최대의 특종인 '이것 통념을 깨트리는 것인데 최순실이 지시하면 박근혜가 이를 따르는 것이다. 3인방이 이정도 두께의 청와대 문서를 최순실에게 가져 간다.' 역시 이성한이 고영태에 들었다는 전문증거이다.
고영태는 TV조선은 물론, 한겨례, JTBC와 연달아 접촉하면서 소극적으로 끌려가다시피 취재에 응하거나, 뻔뻔한 거짓말을 일삼기를 반복하였다. 고영태가 원하는 바는 초기에는 김종 문체부 차관이나 차은택 감독에 비해 최순실의 총애가 밀린다고 생각하여 자신의 위치를 되찾는 것이였고, 신문에 연일 최순실 게이트가 빵빵 터지자 최순실등이 날아가면 K스포츠를 먹는 것으로 목표를 바꾼다. 딱 거기에 필요한 만큼만 정보를 제공한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태블릿 PC 사건이 터지자 의인으로 변신하여 의인 행세를 한기 시작하였다.
참고로 이성한 미르재단 전 사무총장 역시, 자신이 원하는 바는 미르재단의 정상화 및 자신의 사무총장 복귀이다. 이는 이진동 기자의 자사전과 한겨례의 취재에도 반복적으로 나온다. 이성한은 자신이 언론과 취재 했다는 것을 최순실 쪽에 흘리며 자신의 입을 막을려면 미르재단 사무총장으로 다시 임명해달라고 딜을 걸었다. 고영태와 이성한의 의도와 역할은 딱 여기까지이다.
한편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진행되면서 친박근혜 성향의 언론과 친박단체들은 고영태의 통화 녹취록을 바탕으로 고영태가 미르재단K스포츠재단을 장악하기 위해 기획폭로를 했다는 주장을 제기하는데, 엄밀히 말해 고영태가 '기획'한 것은 아니다. 고영태는 그정도로 똑똑한 사람이 아니다(...) 위의 문단처럼 언론과 취재한 것을 최순실 쪽에 알리면서 다시 요직으로 복귀하도록 이중스파이 역할을 한 것이다.
다만 그 이중스파이 역할 도중에 TV조선, 한겨례, JTBC측에 슬쩍 슬쩍 단서를 흘렸고, 이를 바탕으로 언론사들의 발품을 팔아 어마어마한 특종을 터트린 것이다. 이에 대한 판단은 각자의 몫이며, 다만 결과적으로 그가 준 정보가 공익제보에 해당된다는 사실과 고영태 역시 불법행위에 협조를 하고 본인도 더 큰 이익을 취하려 했다는 사실 둘 다 변하지 않는다.
참고로 자신이 파멸할 것을 알면서도 내부 고발을 한 박관천 경정이나 여명숙 전 문화창조융합본부장, 유진룡 전 문체부 장관, 정현식 전 K스포츠 사무총장 같은 의인들을 생각해 볼 때, 고영태와 이성한에게 내부고발자라는 이름을 붙여주기는 좀 망설여 진다.
또 한 명의 내부고발자인 이성한(미르재단) 사무총장의 문서도 참고할 것.

3.4. 박근혜 게이트 폭로 기획 의혹


박근혜친박의 편에서 게이트를 보도해 온 MBC연합뉴스는 2월 중순, 고영태의 박근혜 게이트의 본질은 고영태의 기획이라는 식으로 보도하면서 사건이 흐름이 전환되었다는 식으로 여론을 호도하기 시작했다. 연합뉴스
검찰이 고영태의 측근의 컴퓨터에서 발견한 녹음파일에서 고영태의 측근들이 최순실을 이용해 이득을 취하려 한 정황이 드러났다. 공개된 녹음파일에는 고영태 측근들의 대화 내용과 고영태 자신이 재단을 장악하기 위해 사무총장을 쫒아내야 된다고 스스로 말한 내용들이 들어있었다. # 이후 추가로 재단을 장악하기 위해 '''최순실 게이트 폭로를 처음부터 기획'''했다는 요지의 녹취록이 공개되어 파문이 일고 있다. #

<고영태> "내가 제일 좋은 그림은 뭐냐면, 이렇게 틀을 딱딱 몇 개 짜놓은 다음에 빵 터져서 날아가면 이게 다 우리 거니까, 난 그 그림을 짜고 있는 거지…"[20]

'''연합뉴스 단독보도 내용'''

최순실 측은 해당 녹음파일을 법정에서 공개해 달라고 검찰 측에 요구했다.
그간 대통령은 무고하며 특정 세력의 음모에 모함당하고 있다고 줄기차게 주장했던 친박성향의 언론들과 박근혜 탄핵 반대 집회 참가자들은 신이 나서 이 녹취록이 그 증거라고 떠들기 시작했으며 친박 집회에서 고영태를 구속하라거나 모든 일은 남창 고영태가 꾸민 일이라는 구호들이 등장했다.
그런데 고영태는 2월 8일에서 9일 사이에 시사인과의 인터뷰#에서 '''"이미 검찰과 특검에 설명을 다 했고 최순실이 정현식 전 사무총장을 자른다는 것을 듣고 사적으로 통화한 건일 뿐이며 그런 계획을 실행한 적도 없다"'''라고 하며 선을 그었다. 그리고 '''"만약 내가 정말 그랬다면, 지금쯤 최순실과 나란히 수갑을 차고 있을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해당 녹취록을 소유한 검찰과 특검도 이런 의혹 제기 때문에 고영태를 재수사할 이유는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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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별다른 돌파구가 없는 친박세력들은 여전히 고영태의 기획폭로설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으며, 직무 정지상태에 있는 박근혜 대통령을 단독 인터뷰하기도 했던 ‘정규재TV’는 2월 16일 유튜브 채널을 통해 고영태 전 더블루K 이사 측근의 녹음 파일을 공개하고 “고영태 일당이 K스포츠재단을 장악하기 위해 음모를 꾸몄고 박근혜와 최순실의 무고함이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자세한 내용은 항목 참고.
대통령측 대리인과 탄핵 반대 집회 측에서는 이 사건을 고영태 게이트로 정의하며 고영태 녹취록에 관한 대규모 증거 신청과 증인 신청을 요구했는데, 정작 녹취록을 들어보니까 재단을 최순실을 장악하고 있다는 증거가 될 만한 발언이 많이 있었다. 이에 국회 탄핵 소추 위원단 측에서도 29개 녹취록을 증거신청했고, 헌재에서 이 요청을 받아들였다.# 이때 대통령 대리인 측은 2,000개가 넘는 녹음 파일 전체를 모두 공개하기를 요구했지만, 헌재 측에서는 그 2천 개의 파일 대부분이 탄핵 심판과는 상관없으며 29개의 녹취록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판단하여 대통령 대리인 측의 요청을 기각했다.[21][22]

3.5. 정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고영태의 작품인가?


고영태가 류상영 박헌영 등과 재단의 장악을 꿈꾸는 발언을 한 것 자체는 사실이다. 문제는 대통령이라는 막강한 배경을 가진 재단을 장악하려면 상당히 정교한 계획이 필요할 텐데, 딱히 이들이 그런 구체적인 모의를 했다는 증거가 없으며, 이들이 재단 장악을 실행했다는 증거도 전혀 없다. 녹취록에는 아무런 뒷배경이 없이 그냥 재단을 장악하고 싶다는 희망사항만 드러나 있다. 이건 그냥 대기업 이사가 "아, 나도 회장 되고 싶다..." 라고 말한 것과 동급이다.
녹취록에서 드러난 발언의 본질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 류상영 더블루K 부장의 통화 내용인데, 그는 자신이 당시 실세였던 김종 차관이나 차은택이 아니라 힘없는 고영태 쪽 사람이라는 현실에 자주 불만을 표시하였다.

우리는 영태 포지션에 들어가 있는 거고 우리가 만약에 반대로 벨(김종) 포지션에 들어가 있었으면 엄청났겠지.

차라리 차은택이 나을 수도 있고 그렇지? 근데 우리는 영태 포지션이기 때문에―

'''류상영/더블루K 부장'''

당시 류상영, 박헌영 등 고영태 쪽 사람들은 자신들이 재단에서 비주류라는 현실에 불만을 품고 있었으며, 재단 장악 발언은 이런 현실에 대한 푸념 또는 상호 위로 수준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좀 더 쉽게 표현하면 이 재단에서 자신들이 차은택 김종 계열에게 밀리고 있으며 일을 해도 제대로 인정받지 못받고 있기 때문에 자신들이 알고 있는 재단의 비밀사항을 폭로하든지 해서 이런 상황을 뒤집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표출한 것. 물론 이런 음모는 애초에 시도조차 되지 않았다.
설령 이들이 나름의 계획을 세웠다고 가정하더라도 이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본질과는 아무 상관없는 곁다리 수준의 스캔들에 불과하다. 고영태 세력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건 미르재단K스포츠재단의 실제 주인이 박근혜최순실이었다는 사실에는 아무런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만약 이런 사실을 뒤집으려고 한다면 안종범의 수첩, 정호성의 통화 녹취 등의 물증과 관련자들의 일관된 진술 등 차고 넘치는 온갖 증거들을 모조리 부인할 수 있어야 하며, 추가적으로 고영태 일당이 재단 장악을 시도라도 했다는 증거를 내놓아야 할 것이다.
검찰, 특검, 헌재 등의 국가기관들과 제대로 된 언론들이 '고영태의 재단장악설'에 전혀 신경쓰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비록 검찰이 고영태를 긴급 체포하고 압수수색까지 하는 등 본격적으로 고영태 수사에 돌입했으나, 그런다고 해서 검찰이 고영태에게 '만악의 근원' 따위의 낙인을 붙일 가능성은 없다고 봐도 된다. 만일 진짜로 고영태가 이 모든 일을 기획했다면 검찰은 탄핵 정국이 시작되자마자 가장 먼저 고영태를 구속했을 것이다.

3.6. 인사청탁 비리 의혹


검찰 특수본은 고 씨가 인천 본부 세관 소속 이모 사무관으로부터 인사청탁을 받고 2,000만 원을 받은 혐의(알선수재)를 포착했으며, 이 사무관이 자신의 친한 선배 김모 씨를 인천본부세관장으로 승진시켜달라고 청탁하면서 돈을 건넨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김모 씨는 2016년 1월 인천본부세관장으로 취임했다가 의혹이 불거지자 1년 만에 사표를 냈다.
또, 불법 인터넷 사설 경마업체에 2억 원을 투자해 운영한 것으로 확인됐다.#

4. 구속


K스포츠재단 장악 음모와 별도로 그간 고영태가 알려진 것 이상으로 호가호위(狐假虎威)로 많은 이권을 챙겼다는 의혹이 계속 제기되었는데, 2017년 4월 11일 검찰은 고영태를 체포하고 자택에 대한 압수수색도 진행하였다. 이후 이어서 검찰은 법원에 구속영장을 청구했고 법원이 이를 받아들여 명령서를 발부했다.MK스포츠
고영태의 변호인 김용민 변호사는 체포가 부당하다며 법원에 체포적부심청구하였으나 김규화 서울중앙지법 형사32단독 판사는 4월 13일 이를 기각했고, 검찰은 곧바로 고영태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고영태의 영장실질심사를 맡은 권순호 부장판사는 4월 15일 오전 3시경 "주요 혐의 사실이 소명되고 도망과 증거 인멸의 염려가 있다"며, 고영태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따라서 늦어도 5월 초에는 기소될 것으로 예상된다.
고영태의 갑작스러운 체포에 대해 정치 보복이라는 논란이 있지만 이는 주진우 기자나 김용민 변호사 등 고영태를 변호하는 측의 입장이고 검찰 측에서는 영장을 신청한 것은 어느 순간부터 고영태가 수사기관의 연락에 일절 응하지 않아 도주 및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고 판단되어서라고 하며, 검찰출석 일정을 조율 중이었다는 김용민 변호사의 주장도 사실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체포한 혐의는 알선수재, 사기 및 금품수수 혐의로 국정농단과는 다른 수사팀이 맡는다고 한다.
이후 7월 28일 안민석더불어민주당 의원 33명이 고영태의 보석허가 탄원서를 냈으나 법원에서는 증거인멸 및 도주 우려가 있다 하여 기각하였다.
2달 후 9월 18일 고영태는 재판을 받으면서 "가족이 불안해하고, 아내가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며 다시 보석 청구를 했는데, 분명 당시 '''여자친구 집'''에서 체포되었다고 보도됐는데 고영태 본인이 ''''아내'라고 언급'''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충공깽을 선사했다. 채널 A의 취재에 따르면 고영태의 변호인은 이에 대해 "기혼 여부는 가능하면 말하고 싶지 않다"고 대답하여 사실혼 관계일 가능성이 제기되는 중. 뉴스
10월 27일 보석으로 석방되었다. 석방 후 주진우 기자와 '인증샷'을 남기기도 했다.
재판을 받는 와중에 이명박의 아들인 이시형의 마약 투약 의혹을 제기한 것이 허위사실 적시로 인한 명예훼손으로 인정되어, 박헌영과 함께 5000만 원 배상 판결을 선고받았다.
세관장 인사 청탁 명목으로 뒷돈을 받은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된다. 추징금 2200만 원 납부도 같이 선고받는다. 고영태는 불복하여 항소하였다.#
이후 항소심에서 1심보다 오히려 형량이 6개월 늘어난 징역 1년 6월형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고씨가 범행을 부인하면서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고있다면서 1년 6월형을 선고했다.
상고를 하면서 재판은 결국 대법원까지 가게되었다. 상고심에서 대법원은 징역 1년 6월형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하였다.[23]

4.1. 재판




5.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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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편으로 연예계까지 불똥이 튀기도 했다. 고영태가 유명 탤런트인 사촌동생을 통해 한 연예인 야구단에 입단한 뒤 인맥을 쌓았다는 보도가 나왔기 때문. # 더군다나, 이 야구단은 장동건, 황정민, 김승우 등 유명 배우들이 소속돼 인기를 끈 야구단이다. 한편 고영태의 사촌동생으로 지목된 고주원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 부인하면서 단순한 아는 사이라고 해명하였다. #
맨 왼쪽 인물이 고영태, 그리고 왼쪽으로부터 3번째 인물이 배우 박해진이다. 이 사진 때문에 박해진이 고영태와 친분 있는 것 아니냐 고영태가 호빠 의혹이 있으니 박해진도 호빠 출신 아니냐 등 각종 의혹이 꼬리를 물어 곤욕을 치루기도 했는데, 박해진 측은 고영태와는 사적으로 아는 사이가 아니며 사진은 지인들과 함께 갔다 우연히 찍힌 사진이라고 주장하였다. 또한 근거없는 악성루머는 강력 대응하겠단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 위에도 나와 있지만 5.18 민주화운동 유가족이다. 그의 아버지 고규석(당시 40세)은 5.18 당시 담양에 살고 있었는데, 하필이면 1980년 5월 21일 볼일이 있어 동행자 3명과 함께 광주로 가려다가 광주로 들어서는 고속도로에서 계엄군들에게 걸려 총에 맞아 살해당했다. 아무것도 안 했고 그저 지나가려고 했다는 이유만으로. [24] 그와 같이 갔던 임은택(당시 27세)도 함께 살해당했으며, 그나마 나머지 2명은 간신히 도망쳐서 이 이야기가 전해질 수 있었다.[25] 그리고 그의 시신은 열흘이 지나서야 광주교도소 뒤편에서 암매장된 시신들 더미 속에서 발견되었다. 이미 부패가 심해서[26] 입은 옷과 결혼반지로 겨우 신원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고영태 본인은 그때 겨우 5살이었던지라,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고은의 시집 '만인보(萬人譜)'에도 등장해서(사실 만인보는 모든 5.18희생자들의 사연(유가족 포함)을 다루고 있다), 언론에서 만인보가 조명을 받기도 했는데, 작가 고은은 고영태의 부모를 다룬 해당 시들을 어떻게 썼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헌데, 이 와중에 거의 모든 언론들(신문과 방송을 가리지 않는다)은 해당 시들의 제목이 ‘단상 3353 고규석’, ‘단상 3355 이숙자’라고 소개하는 황당한 오보를 양산했다. 두 시의 제목은 그냥 <고규석>, <이숙자>이다. 시집을 직접 서점이나 도서관에 찾아가 구해서 보거나, 하다못해 인터넷 서점에서 목차를 검색해보는 간단한 수고조차 안 한 듯하다.
한 블로거가 ‘만인보 단상’이라는 제목으로 만인보의 모든 시들을 리뷰하면서 일부씩 올렸는데, 최초 보도가 해당 블로그의 해당 리뷰글복붙(...) 했고 거의 모든 언론들은 이걸 또 그냥 복붙했던 것이다. 심지어 시간이 1,2년이 지난 후에도 시 제목이 '단상 3353'이라고 나오는 오보는 수정되지 않고 계속 나왔으며, 심지어 본문을 인용한 기사의 경우도 해당 블로그에서 그대로 베낀 듯하다. 중간 생략한 부분이 완전 똑같다.
미디어오늘관련 기사는 이 부분을 지적하면서, '특정 언론사의 문제도 아니고 사회면이니 연예면이니 분야의 문제도 아니다. 그냥 다, 모두, 여기저기서 베껴 쓴다.' '특정한 목적을 띠고 고의적으로 작성된 기사가 유포하는 잘못된 정보들이 어떻게 대중의 의식을 조작하고 댓글들을 양산하는지 생각해보자. (중략)언론사에서 뉴스 어뷰징만 담당하는 ‘기자 아닌 기자’들이 존재하는 사회,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취재’ 없이, ‘사실 확인’ 없이 기사들을 작성하는 기자들, 우리 언론의 ‘하향평준화’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하고 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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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청문회 증인석에 앉았을 때, 위치가 왼쪽에는 김기춘 청와대 전 비서실장, 오른쪽에는 조원동 전 청와대 경제수석을 거느리고, 배후에는 김재열 제일기획 사장으로 뒷바람을 막게 한 채 중앙에 자리를 잡고 있는 형국이라 출세했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6. 수상 기록


아시안 게임
금메달
1998 방콕
단체전
은메달
1998 방콕
개인전
[1] 1998 방콕 아시안 게임 펜싱 단체전 금메달.전과로 인하여 체육연금 지급은 중지되었다고 알려져 있으나 일시불로 받은 상태이다.그러나 당연히 환수된다. 현재와 법이 달랐는데, 현재로 환산하면 고영태의 연금점수는 아시안 게임 금1,은1로 12점이며 연금 최소한선은 20점,즉 아시안 게임 금메달 2개인데 고영태의 경우는 8점이 모자라 현재 기준으로는 대상이 아니다.[2] 병역특례까지 받았으며 지급받은 연금은 환수된다.[3] '최순실' 최측근 고영태 부친은 '5·18 유공자' ''2016년 10월 31일'' <뉴스1>[4] 두 증언이 사실이라는 가정하에 종합하면 호스트바에서 일할 때 민우라는 예명을 썼고 한동안 쓰지 않다가 최순실이 이야기한 이후에 고민우라고 명함을 파서 활동한 듯하다.[5] 한편 고영태는 빌로밀로의 창립자가 아니라 바지사장에 불과했다는 주장도 있다. 빌로밀로는 2014년 8월에 폐업하였다.[6] 최순실에 따르면, '더블루K'의 '블루'는 '청와대'라고 설명한 것이라고 한다. #[7] 그런데 차은택 또한 게이트 발발 직전에 최순실과 멀어져 버렸기 때문에 세 사람의 권력을 매개로 맺어진 ‘애정’은 결국 비극으로 끝나버렸다.[8] 애초에 박근혜다이애나 스펜서처럼 구매효과를 일으킬 수 있는 인물이 전혀 아니다. 박근혜는 집권기간 내내 "패션외교"를 열심히 펼치고, 옷을 자주 바꿔 입고, 언론에서 지원사격을 하 는 등 이미지 메이킹에 주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주 소비계층의 낮은 선호도로 인해 패션 아이콘으로 부각된 적이 없었다. PPL은 좋아하는 유명인사의 물건을 보면서 자기도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야 효과적인데, 박근혜는 지지율이 깡통이 되기 전부터 의 향수에 많이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에 여성 정치인치고 특이하게 노년 남성 사이에서 인기가 비정상적으로 높았으며, PPL의 타겟이 되는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는 인기가 정말 없었다. 그래서 박근혜가 가방을 열심히 들고 다녀도 PPL의 효과가 별로 없었던 것이다.[9] 다만 빌로밀로는 이렇다 할 PPL 효과를 못 얻었지만, 빌로밀로와 비슷한 모양새의 초고가 브랜드인 호미가의 제품이 많이 팔리기는 했다. 아마도 빌로밀로가 호미가의 디자인을 모방한 것으로 보이는데, 원조 브랜드한테 좋은 일을 해준 셈.[10] 더블루K의 독일 현지 법인이라고 보면 된다. K스포츠재단에 들어온 기업의 후원금을 더블루K로 빼돌린 후에 다시 이 돈을 독일로 옮기려고 비덱을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11] 하필이면 피신한 곳이 필리핀, 섬이 7천 개나 되고 단돈 500불이면 살인 청부를 할 수 있는 곳으로 가다니, 정말 위험한 상황을 자초한 듯. 당시에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 수도 있지 않냐"는 말까지 나왔다.[12] jtbc는 이후 보도에서 10월 5일 심수미 기자가 이성한과 고영태 셋이 편안한 자리에서 들었다고 한다.#)[13] 정호성 비서관이 매일 최순실에게 두께 30cm가량의 국정 보고서를 가져왔다.[14] 그러면서 JTBC보다 한겨레가 먼저 이성한과 접촉했다는 뒤끝 작렬. 최순실-정유라를 찾으러 독일로 갔을 때도 계속하여 JTBC-TV조선보다 먼저 도착했다는 독자들이 아무도 안 궁금 할 만한 기사를 냈다.[15] 2016년 12월 8일 오후 8시 JTBC에서 이 사건에 대해 입장을 밝혔는데, 검찰에서 당시 이번 사건을 취재하고 증거물을 제출한 JTBC 기자가 독일에 출장을 간 것을 토대로 검찰 측에서 해당 기자에게 "태블릿 PC를 독일에서 입수했느냐"고 물었고, 해당 기자는 기밀 유지를 위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를 검찰이 긍정으로 받아들인 것이 오해의 시작이라고 밝혔다.[16] 여기자들과 점심 먹는 고영태…무슨 얘기 했을까 ''2016년 12월 8일'' <중앙일보>[17] 어차피 고영태는 2014년부터 최순실과의 관계가 틀어진 후 조선일보에 뻔질나게 제보하고 다녔고 JTBC의 인터뷰(최순실은 대통령 연설문을 고친다)도 검찰에서는 다 사실로 증언했다. 굳이 안 만났다고 해서 얻을 이득이 명확하지 않다는 뜻.[18] 애초에 JTBC도 어느 한 부분을 가져와서 '이게 위증이다'라고 하지 않았다.[19] "그렇게 얘기한 적 없습니다. 그건 검찰에 다 얘기를 했으니까..."[20] 이 말을 논리적으로 생각해 보면 원래 최순실 것이라는 거고 빵 터져서 날아가야 고영태가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빵 터진 지금도 최순실에게 영향력이 남았기 때문에, 이 말 자체도 박근혜 최순실에게는 매우 불리하다.[21] 나머지 녹취록들은 중국집 배달 주문이나 전화 영어 공부라고 한다.[22] 대통령 대리인 측의 이런 무리한 요구는, 어떻게든 헌재 심리를 지연시키려는 의도가 다분하다고 여러 사람들이 지적한다. 당시 국회 측이 재판의 신속한 심리를 위하여 필요없는 증거나 증인을 배제해서 빠른 심판을 요구했던 것과 달리 대통령 대리인 측에서는 이와는 상관 없거나 출석 요구를 거부하는 사람들을 일부러 다시 계속 증인 신청을 하여 언론과 국민들에게 지탄을 받았다.[23] 구속 기소시 기소된 날짜부터 합산하므로 2019년 10월에 출소했을 것이다.[24] 충격적이겠지만 놀랄 것도 없다. 광주 학살 당시 피해자들의 태반이 시위대나 시민군과는 거리가 먼, 이런 식으로 휘말려 애먼 죽음(또는 부상)을 당한 사람들이니까. 중학생 방광범(13세)은 물놀이하다 머리에 총을 맞아 죽었고, 역시 중학생이던 박기현(15세)은 자전거를 타고 책을 사오는 길에 계엄군에 붙들려 맞아 죽었다. 초등학생 전재수(10세)는 동산에서 놀다가, 여고생 박금희(18세)는 헌혈하고 나오다 총에 맞았고, 그 외 집 앞을 서성이던 만삭 임산부, 아들을 찾으러 나왔다가 총소리에 놀라 하수구에 숨었던 주부 등. 심지어 나가지도 않고 집 안에서 가만히 있었는데 유탄이 창문이나 문을 뚫고 들어와 죽거나 다친 사람도 여럿이며, 군인들끼리 오인사격을 해대서 서로 죽인 뒤 오인전투를 했다는 걸 알고 화풀이로 근처 아무 집이나 쳐들어가 젊은 남자들은 다 끌고나와 죽여버린 사건도 있다.[25] 이게 중요한 이유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었는지조차 자세히 알 수 없는, 목격자도 증언자도 없는 희생자도 많기 때문이다. '어느 날 이후로 행방불명이었는데 간신히 찾고보니 시체가 되어 어디에 묻혀있었다'는 식. 오월의 노래에 인용된 사망자 손옥례도 이런 희생자이다.[26] 남부 지방인 광주에서, 5월 하순 초여름 더위 속에 무려 열흘을 방치된 시신이었다. 상태가 어땠을지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27] 참고로 김기춘 옆의 빈자리는 대표 선서하러 나간 차은택 자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