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수현

 

'''배수현 (Bae Soo-Hyun)'''
'''생년월일'''
1984년 8월 10일[1] (40세)
'''출신지'''
인천광역시 중구
'''투타'''
좌완[2]
'''신체'''
176cm, 62kg[3]
'''혈액형'''
AB형
'''학력'''
인천신흥초등학교
신흥여자중학교
영화여자정보고등학교
인천전문대학[4] 무용과
'''소속사'''
제이알커뮤니케이션
'''데뷔'''
2002년 서울 SK 나이츠 치어리더
'''응원팀'''
'''SK 와이번스''' (2003~)
구미/의정부 KB손해보험 스타즈 (2011~)[5]
'''과거 응원팀'''
서울 SK 나이츠 (2002~2005)
전주 KCC 이지스 (2009~2012)
'''원주 동부-DB 프로미''' (2015~2018)
성남 FC (2019)
'''활동'''
'''2002.11~'''
'''링크'''

1. 개요
2. 활동
3. 장수 치어리더
5. 치어리더로서의 실력과 평가
6. 대단한 자기 관리
6.1. 보디빌딩 수상 경력
7. 방송 출연
8. 여담
9.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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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KBO 리그 SK 와이번스의 치어리더. 고지선, 이하겸 등과 함께 1세대 치어리더이자, '''2021년 현재까지 현역에서 활동중인 유일한 1세대 치어리더다.''' 어렸을 때부터 앓아 온 청력 장애를 딛고 정상급의 치어리더로 우뚝 선 인간 승리자. 30대 중반의 나이에 접어들었음에도 꾸준한 자기 관리를 통해 후배 치어리더들의 귀감이 되고 있는 '''KBO 리그 최장수 치어리더.''' 치어리더계에서 사실상 배수현만큼의 경력이 있는 치어리더는 없고[6] 응원단장 중에서도 배수현만큼 오랫동안 현역을 활동한 사람이 몇 명 없다.[7] 연예계로 따지자면, '''동방신기슈퍼주니어보다도 연차가 높다.'''
1984년 인천광역시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동인천역 인근에서 자라난 인천 토박이. 숭의야구장과 가까운 지역[8]에서 살았던 데다 그의 아버지가 열렬한 야구 팬이어서 아버지와 함께 숭의야구장에서 열린 경기를 자주 봤다고 전해지고 있다.
다만 그녀의 나이를 감안할 때 그가 숭의야구장에서 자주 봤던 경기는 SK 와이번스의 경기가 아니라 삼청태현 중에서도 태평양 돌핀스현대 유니콘스로 추정할 수 있다. 실제로 그녀가 어릴 적 좋아했던 선수들은 김수경박진만현대 유니콘스인천광역시를 연고로 하던 시절 주전 선수들이었다. SK 와이번스로 연고팀이 바뀌고 치어리더로 활동하면서부터는 조웅천김재현의 열렬한 팬이었던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어릴 때부터 춤에 소질이 있었던 덕에 고교 시절부터 교내 댄싱부에서 활동을 했고 인천전문대학 무용과로 진학해 현대무용을 전공했다. 수능 직후인 2002년 11월 서울 SK 나이츠 치어리더로 농구 무대에서 첫 데뷔한 뒤 대학교 1학년 때인 2003년부터 고향 팀인 SK 와이번스의 치어리더로 활동 중인데 시간이 지나다보니 사실상 KBO 리그에서 활동 중인 현역 치어리더 중 '''최장수 치어리더'''가 됐다. 우승 반지도 4 꼈다.
god 해체 이후 솔로 활동을 하던 손호영의 백댄서로 무대에 선 적도 있다고 한다.
프로농구와 프로배구에서는 2017~2018 시즌 기준으로 원주 DB 프로미의정부 KB손해보험 스타즈[9]에서 활동하고 있다.
박기량의 원조급 되는 치어리더 중 1명이다. 2000년대 중반 유명했던 고지선, 김하랑 등의 치어리더들과 함께 큰 인기를 끌었으며 당시 팬카페 회원수가 500명에 육박할 정도로 인기가 있었었다. 또한 청각 장애를 극복한 치어리더라는 점이[10] 팬들 사이에서 퍼지면서 많은 인터뷰도 받고, 9시 뉴스에 출연까지 했다.링크 그녀의 뒤를 이어서 나온 인기 치어리더들처럼 광고를 찍거나 하지는 않았어도, 나름 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치어리더.
2007년부터 2011년까지 SK 와이번스 팀장직을 맡았으나 은퇴하면서 후배에게 물려줬고, 복귀한 이후에는 후배인 오지연 치어리더와 이미래 치어리더에게 팀장직을 넘기고 자신은 팀 고참으로써 사기를 불어넣는 일에 집중하고 있다.

2. 활동



2.1. 2000년대


고등학교 치어리더 댄스부에서 활동하다가 2002년 10월 본인이 직접 전화를 걸어[11] SK 와이번스 치어리더 오디션을 보게 되었다. 당시 SK에는 박기량의 원조급 되는 고지선이 활동하고 있었고, 실제로 배수현도 고지선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12] 뛰어난 춤 실력 덕에 SK 와이번스 치어리더 오디션에 바로 합격하게 되었고, 인천전문대학 무용과에 입학하며 본격적인 성인 커리어를 시작했다.
SK 와이번스 치어리더팀에 합격하였으나, 합격하던 무렵 이미 야구 시즌이 종료된 탓에 무대에 설 수 없었고, 대신 서울 SK 나이츠 치어리더팀에 합류하여 프로농구에서 먼저 데뷔했다.
그렇게 2003년 3월 드디어 SK 와이번스 치어리더로 데뷔, 고지선과 함께 뛰며 커리어를 보내게 되었다. 실제로 고지선에게 활동 초반기에 많이 배우고 영향도 받았다고 한다. 2003 시즌 데뷔 2년, 야구 응원 첫 해에(!) 한국시리즈 응원도 해봤다. 물론 흥행 자체가 실패해서 묻혔지만....
[image]
2004년의 모습
인지도가 많이 묻혔다고 생각할수도 있는데, 실제 그렇지 않았다. 한 때 배수현의 팬카페에는 250명이 넘는 회원이 있었을 정도로 배수현의 인기가 굉장히 높았다. 시즌이 늘어가면서 배수현의 인기도 많이 올라갔고, 2006년 쯤에 절정을 찍었다. 그 후로는 조금씩 감소. 고지선이 SK를 떠나고 그나마 인기가 있었던 치어리더라고 볼 수 있다.
2007년, 드디어 한국시리즈 첫 우승을 맛보고, SK 왕조의 4년을 직접 경험했다. 2009년 한국시리즈 7차전에서 나지완의 끝내기 홈런으로 SK가 패배하자 눈물을 글썽거리며 잠실야구장 응원석에 가만히 서 있던 모습은 지금도 회자된다.

2.2. 2010년대


2010년대에 들어선 이후에는 배수현도 고참급이 되어 2000년대만큼의 인기를 얻는데는 실패했으나, 그래도 SK 팬들에게 상징적인 존재가 되어 여전히 인기를 자랑했다. 2010~2011년까지 SK 팀장직을 맡다가, 은퇴 후 복귀한 이후에는 이지연 치어리더에게 넘겼다.
복귀한 이후에는 서른이 넘은 나이 탓에 본격적인 노쇠화가 시작되어 실력이 예전보다는 많이 하락했다. 물론 신입 치어리더들이나 3~4년 경력자들하고는 여전히 비교가 되지 않지만... 본인도 30이 넘은 이후에는 팀내 후배들에게 주요 안무나 격한 팬서비스등을 맡기고[13] 있다.

3. 장수 치어리더


2013년 잠시 치어리더 현직을 떠났지만 1년 만에 야구장에 다시 돌아와 현재까지 현역으로 활동했다. 무엇보다 그녀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의 연고팀을 처음 데뷔했던 해부터 계속 응원하고 있기 때문에 SK 와이번스의 치어리더 중에서도 가장 열정적인 모습을 보이는 치어리더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4. 청각장애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알려져 있는 배수현의 특징은 바로 그녀가 청각장애를 앓고 있다는 것이다. 본인은 이 수식어를 싫어해서 그냥 귀가 조금 안 들리는 정도로 웃어 넘기고는 했지만, 2007년 7월 인터뷰에서 밝힌 바로는 왼쪽 귀로는 거의 들을 수 없고 오른쪽 귀도 많이 나빠졌다고 한다. 오른쪽 귀는 다행히도 더 나빠지지 않았다고 한다. 원래 초등학교 2학년 때 선생님이 말하는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 초반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점점 그게 심해져 4년이 지난 초6때는 뒤에서 누군가 부르는 소리를 잘 듣지 못할만큼 청각을 잃었다. 이 때 병원에서 신경성 난청으로 인한 청각장애 2급 진단을 받았고, 다른 친구들이 자신을 무시하는 줄 알고 그녀에게 말을 걸어주지 않아 친구가 많이 없었다고 한다.
춤을 어려서부터 추기 시작했으나 청력이 나빠지며 더 추기 어려워졌다. 2003년 치어리더 팀에 들어와서도 청력은 그녀의 콤플렉스가 되었는데, 연습할 때는 음악소리를 최대한으로 틀고, 음악을 미리 들어본 뒤 그 박자를 외워 안무를 춘다고 한다.[14] 그럼에도 율동에 대한 감각이나 안무 소화력은 다른 치어리더보다 더 좋다. 춤 쪽으로는 타고난 천재인 셈.

5. 치어리더로서의 실력과 평가


'''댄싱퀸.'''
치어리더라는 직업이 거의 대중들에게는 부각되지 않았던 2000년대에 야구 팬을 중심으로 꾸준히 인기를 끌었던 치어리더이다. 만약 배수현이 10년만 늦게 태어났거나, 아니면 시대를 잘 만났다면 박기량과 비슷해졌을 거라는 팬들도 많다.
2000년대 후반까지 배수현에게 붙는 칭호 중 가장 흔했던 건 “청각 장애를 극복한 치어리더” 였다. 2000년대 후반까지 진행된 인터뷰들을 보면 대부분 이런 타이틀이 붙어있다. 배수현 본인은 청각 장애라는 사실에만 자신이 부각되는 것을 원치 않아했고 그 결과 현재는 청각 장애에 대한 언급이 많이 나오지 않는다. 2016년부터는 머슬퀸과 보디빌딩에 본격적으로 나오기 때문에 머슬퀸 하는 치어리더로 더 많이 불리는 듯 하다.
춤 실력은 가히 치어리더 역사상 최고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보통 길거리에서 캐스팅되는 치어리더의 특성상 치어리더를 하기 전 경력은 그냥 본인 혼자 춤추거나 학교에서 애들끼리 춤춘 게 전부인 경우가 많은데, 배수현은 학창시절부터 댄스팀에서 전문적으로 춤을 배웠으며 성인이 된 이후에는 무용을 전공했다. 또한 이후에도 가수들 백댄서 및 안무가로 여러번 참여한 경력이 있어 다른 치어리더들과는 스펙면에서 비교가 불가능한 수준이다. 이미 고교 시절부터 인천에서는 춤실력으로 유명했고 보통 다른 치어리더들은 2개월 이상 하는 무대적응과 안무를 배수현을 일주일만에 끝내고 바로 경기에 투입되었고 4개월 후에는 댄스브레이크를 도맡게 되었다고 한다. 큰 키를 이용해 엄청나게 큰 동작으로 관중들을 사로잡고, 특히 전성기 시절인 2005~2007년에는 박자를 가지고 거의 노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 시기 배수현의 댄스 실력을 따라갈 다른 치어리더들은 거의 없다시피 했고, 현재까지도 박기량 정도를 제외하고는 거의 없다. 2000년대 중반 한창 날아다니던 시절에는 댄스 브레이크와 솔로 댄스등을 도맡았고, 엄청난 동작의 크기와 몸놀림, 그리고 팀 내에서도 엄청나게 큰 키 탓에 다른 치어리더들을 가리기도 했다.
다만 2013년 복귀한 이후에는 30의 나이 탓에 노쇠화가 진행되며 예전보다는 많이 기량이 낮아졌다. 여전히 춤에 관록이 있고 높은 안무소화력은 여전하지만, 여타에 고령 치어리더들이 그렇듯 과거보다 체력도 많이 떨어졌고 무엇보다 파워를 많이 잃었다. 현재는 본인도 그걸 아는 지 과거에 비하면 조금 더 부드러운 느낌으로 가고 있는 듯 하다.
춤을 정박으로 추지 않는 걸로 유명하다. 무엇보다 배수현의 스타일 자체가 정식 안무에 여러 자신만의 잔동작을 추가시키는 스타일이다 보니, 춤을 보다 보면 상당하 엇박이 심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20대 때는 이게 훨씬 심했는데, 30대가넘은 이후에는 그래도 많이 줄어들었다. 아래에 있는 위아래는 거의 정박으로 췄다. 본인도 그걸 고치려고 노력하는 듯.
또한 즉흥적으로 안무를 바꾸는 것에 꽤 능하다. 특히 팝송으로 춤을 출 때는 추는 중간에 안무를 즉흥적으로 만들어 추기도 한다.

6. 대단한 자기 관리


치어리더 외에도 그녀가 이름을 알린 것은 타고난 자기 관리 능력 때문이다. 그녀가 치어리더로서는 결코 적지 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노출이 있는 옷을 자주 입는 치어리더로 활동하는 비결로는 운동이 꼽힌다. 그는 국내 보디빌딩 대회에서도 출전해 상위급 성적을 내기도 했다. 그녀의 운동 장면은 색명호 성님께서 직접 기사로 쓰셨다.

6.1. 보디빌딩 수상 경력


  • 2015년 : 머슬매니아 유니버스 세계대회 선발전 모델 여자부문 2위
  • 2015년 : WBC 피트니스 썸머 챔피언십 모델 여자부문 1위
  • 2015년 : IFBB[15] 코리아 그랑프리 비키니오픈 부문 1위
  • 2017년 : 김준호 클래식’ 비키니 부문 +168 1위, 오버럴 1위

7. 방송 출연



8. 여담


  • 경기가 없거나 그녀가 응원에 참여하지 않는 날[16]에는 헬스클럽에서 헬스 트레이너로도 일하고 있다. 나중에 치어리더를 은퇴하게 된다면 이후로는 트레이너로 전업할 예정이라고. 본래는 남동구 간석동 소재의 헬스클럽에서 일했으나, 아무래도 남편과 같이 일했던 곳이기 때문인지(...) 이혼한 후에는 직장을 옮겼다.[17] 치어리더가 아닌 트레이너로서의 그녀를 보고 싶다면 그곳으로 운동을 다녀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이다.
  • 후배 치어리더들에게는 사실상 보스 같은 존재다. 많은 후배 치어리더들이 배수현을 개인적으로 존경한다고 밝힌 바 있다.[18]
  • 현재 치어리더계에서는 이 분 만큼의 경력을 쌓은 치어리더는 없다. 벌써 경력 18년 차. 그리고 이 분, SK가 파란색 CI를 사용하던 시절에 데뷔했다! 배수현은 1,2,3세대에 걸친 치어리더 세대교체를 전부 경험하기도 했다.[19]
  • 박기량김연정에 대해 치어리더의 선입견을 깨줘서 고마운 마음을 전한 바 있다.
  • 과거에는 뛰어난 춤 실력 덕분에 댄스 브레이크와 솔로 무대를 도맡아했다. 지금은 후배들에게 양보했다고.
  • 치어리더계 원클럽 치어리더의 전설 중 1명이다. 겨울 팀은 여러차례 이적했으나 야구만큼은 한 번도 SK 외에 팀에 가지 않았다. SK쌍방울 선수단을 인계받아 신규 창단한 게 2000년이고, 고작 3년 뒤에 배수현이 데뷔했기 때문에 사실상 SK 와이번스의 역사 거의 대부분을 함께하고 지켜봐온 인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21년 기준으로 SK에 배수현보다 짬이 높은 치어리더는 없다. 선수단 내 현역 멤버로 범위를 넓혀봐도 김강민 단 한 명뿐이다. 다만 코칭스태프에서는 몇 명 있다.[20] 프런트에서도 옛 쌍방울에서 넘어온 진상봉 스카우트팀 리더나 2001년 SK에 입사한 류선규 단장 정도를 제외하면 없다. 2021년 SK 와이번스가 신세계그룹에 매각됨에따라 2021시즌은 신세계 야구단 치어리더로 활동하게 되었다.[21]

9. 관련 문서


[1] 음력 7월 14일.[2] 시구를 던질 때 왼손으로 공을 던진 바 있다.사진[3] 본인의 인스타그램에서 인바디로 증명했다. 62kg에 BMI 20을 역산하면 176cm가 맞다.[4] 2010년 인천대학교와 통합됐다.[5] 바뀌기 전의 팀명은 구미 LIG손해보험 그레이터스.[6] 치어리더라는 직업의 특성상 한 팀에서 최소 5년 이상 활동하는 것도 드문데 무려 15년 이상 활동했다는 것은 그의 노력과 재능이 매우 뛰어나다는 증거로 볼 수 있다. 배수현과 비슷한 커리어를 갖춘 인물이라면 전직 삼성 라이온즈 치어리더로서 13년간 활동했고 현재 삼성의 응원 대행사 놀레벤트의 팀장을 맡고 있는 노숙희 정도가 유일하다.[7] 현역 응원단장계에서도 최연장자급인 김주일이나 조지훈 정도가 배수현에 필적할 만한 베테랑 응원단장이다. 2000년대 중반에 응원단장 커리어를 시작한 홍창화를 뺀 나머지 응원단장들은 모두 2010년대에 응원단장을 시작했다.[8] 동인천역숭의야구장 건너편 도원역은 딱 한 정거장 차이다. 이 구간은 시내버스도 꽤 다니며 도보 이동도 가능할 정도로 가까운 거리다. 실제로 인천 유나이티드 홈 경기가 끝나면 동인천역 인근까지 걸어가서 맛집을 탐방한 뒤 동인천발 급행열차를 타고 귀가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9] KB손해보험의 이윤승 전 응원단장과는 SK 와이번스에서 같이 일한 인연이 있다. 참고로 이윤승도 인천 토박이 출신. 이후 이윤승이 떠나고 2017~18 시즌부터 KB 손해보험 응원단장을 맡게 된 정영석과 같이 일하게 된다.[10] 그러나 본인은 이 수식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11] 춤을 바탕으로 진로를 정하고 한창 고민하고 있던 시기였는데, 당시 SK의 인기 치어리더였던 고지선이 나온 기사에 치어리더팀 전화번호가 적혀 있길래 전화했다고.[12] 숭의야구장에서 야구를 보던 시절에도 고지선을 동경했다고.[13] 댄스배틀, 솔로무대 등.[14] 그래서인지 SK의 앰프 소리가 큰 이유가 배수현을 배려해서 그랬다는 얘기도 많다.[15] 국제보디빌딩연맹[16] 보통 평일에는 트레이너로, 주말에는 치어리더로 활동한다.[17] 이후 서현숙의 유튜브를 통해 강남 서프라이짐에서 일하는 것이 밝혀졌다. #[18] 강윤이 역시 은퇴를 번복하고 복귀할 당시 복귀할 팀으로 SK 와이번스를 택한 것이 배수현 때문이 크다고 밝혔다.[19] 신인 때는 고지선 등의 90년대 인기 선배들과 함께 했고, 전성기 시절에는 같이 활동하던 인기 치어리더들과 인기 배틀을 벌였으며, 중년차가 된 이후에는 박기량, 김연정 등의 후배들이 활약하는 모습을 지켜봤고, 현재는 자신들보다 10~14살 어린 안지현, 서현숙과 함께 활동하고 있다. 말 그대로 한국 치어리더계 역사를 함께 경험한 셈이다.[20] 2021년 현재 2000년에 입단한 조동화 코치와 2001년에 입단한 박재상, 채병용 코치, 2002년에 입단한 제춘모 코치가 해당된다. 현역 도중이나 은퇴 후 잠시 팀을 떠났다가 SK에 돌아온 코치들 중에는 창단 멤버였던 김원형 감독이나 조원우 2군 감독, 이진영 코치, 조웅천 코치, 이대수 코치 등이 배수현보다 먼저 SK에 입단했던 이들이다.[21] 이렇게 되면 배수현의 인생에서 3번째 응원팀이 생기는 셈이다. 어릴 때 팬으로서 현대 유니콘스를 응원했고 치어리더 데뷔를 통해 SK 와이번스의 가족이 됐으며 이제 신세계 야구단의 일원이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