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할 수 없는 표현

 


1. 개요
2. 대상
3. 종류
3.2. 도착 언어에서 생소한 개념인 경우
3.3. 음성적 정보가 결부된 경우
3.4. 의미나 뉘앙스의 차이에 민감한 경우
4. 언어 표현력 담론
5. 자주 거론되는 예
5.1. 이누이트어
5.2. 한국어
6. 기타


1. 개요


어떤 언어의 표현이 나타낼 수 있는 의미가 무척 고유하여 다른 언어로 번역할 수 없다고 여겨지는 것.
이러한 이야기들 중에서 정말로 엄밀히 검증된 것은 그다지 많지 않고 대부분은 사람들 사이에서의 에 그친다.

2. 대상


대체로 대상이 되는 언어 표현은 단어에 한정된다. 그도 그럴 것이 번역 도착 언어에 해당 표현이 단어로는 존재하지 않더라도 구로 풀어쓰는 것은 어지간해서는 가능하기 때문이다.
주로 단어가 대상이 된다는 면에서 한 단어를 쉽게 만드는 언어가 다소 유리한(?) 경향이 있다. 극단적인 예로 포합어는 한 문장을 (휴지가 없는 음성적) 한 단어로 나타낼 수 있기 때문에 단어를 기준으로 했을 때 번역할 수 없는 표현은 전혀 없다고 볼 수 있다.

3. 종류



3.1. 고유명사


어느 언어에서나 통용되는 불문율. 특수한 케이스로 백설공주처럼 번역되는 경우가 있기는 하다.
외래어 표기법에서는 한자 문화권의 특정 지명들을 제외하면 지명의 일부가 보통명사에서 유래했어도 고유명사로 취급하고 겹말로 적게끔 되어 있다.

'''외래어 표기법 제3절 바다, 섬, 강, 산 등의 표기 원칙'''

제3항: 한자 사용 지역(일본, 중국)의 지명이 하나의 한자로 되어 있는 경우, '강', '산', '호', '섬' 등은 겹쳐 적는다.

- 온타케산(御岳), 주장강(珠江), 도시마섬(利島), 하야카와강(早川), 위산산(玉山)

제4항: 지명이 산맥, 산, 강 등의 뜻이 들어 있는 것은 '산맥', '산', '강' 등을 겹쳐 적는다.

- Rio Grande 리오그란데강, Monte Rosa 몬테로사산, Mont Blanc 몽블랑산. Sierra Madre 시에라마드레산맥


3.2. 도착 언어에서 생소한 개념인 경우


도착 언어 사용권에서 보편적이지 않은 것은 번역하기가 어렵다. 아예 기존 단어가 없는 경우 번역차용의 과정을 거치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 음차가 이루어져 외래어로 굳어진다.
문화적 개념 어휘들은 지역별로 문화가 상이하기에 직접 대응되는 번역어가 없는 경우가 많다. 가령 한국의 추석 음식 송편 같은 것은 명절에 송편을 먹지 않는 다른 나라에서는 번역어가 있을래도 있을 수가 없다. 단지 "명절에 먹는다는 점에서 비슷한 음식에는 ~ 등이 있다" 식으로 맞대응을 시킬 수 있을 뿐이다. 언어순화 운동의 영향으로 '돈부리>덮밥'처럼 새로운 번역어가 출현하는 경우가 간간히 있다.

3.3. 음성적 정보가 결부된 경우


음성적 정보가 결부된 언어유희는 번역의 과정에서 음성이 변화하기 때문에 언어유희를 그대로 가져오기 어렵다. 번역했더니 마찬가지로 언어유희가 가능한 경우는 무척 운이 좋은 것이고 대부분은 주석으로 설명하거나 그냥 지나간다.
역시 운율이라는 요소가 음수율, 각운 등 음성적 정보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번역하기가 어렵다.
영상 매체에서는 대사의 시간이 정해져있기에 번역 더빙의 경우 대사의 길이를 맞추기 위해 표현을 다소 수정하기도 한다. 또한 실사 매체에서는 입 모양과 같이 음성에 따른 영상의 차이가 나타나기에 이를 완벽히 반영하여 번역하기는 어렵다.[1] 자막 역시 시간에 따른 제한은 비교적 덜하나 공간적인 제한이 있어 종종 보다 짧은 표현으로 수정되곤 한다.

3.4. 의미나 뉘앙스의 차이에 민감한 경우


번역하려면 번역할 수 있지만 뉘앙스가 변한다는 이유로 번역하지 않고 음차하거나 원어를 그대로 노출하는 경우도 있다. 엄밀한 정의가 중요한 학술 용어는 그런 이유로 한영혼용체가 자주 나타난다. 이러한 경우는 '번역하지 않는' 것이고 '할 수 없다'라고 보기는 어렵기는 하다.
유행어은어의 경우에도 사회의 시류를 번역 과정에서 그대로 반영하기 어렵기 때문에 그대로 번역하기는 어렵다.

4. 언어 표현력 담론


'그 의미를 나타내는 표현이 존재한다' → '그 의미를 더 섬세하게 나타낼 수 있다'→'따라서 이 언어는 이러한 의미를 나타내는 데 우월한 점이 있다'의 결론으로 흘러가는 경우가 많다. 이에 따라 민족주의 성향을 띠기도 한다. 한편 반대로 '다른 언어엔 이 의미를 나타내는 표현이 존재한다' → '이 언어에는 그렇지 않으니 표현력이 떨어진다'라며 자괴감을 갖는 경우도 있다.
어떤 개념에 대한 단어가 기존에 있는 언어보다, 기존에 없어서 외래어로 받아들여야 하는 경우 그 어떤 개념이 더 생소한 것은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 개념이 생소하기 때문이지, 그 개념을 포착하는 감각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예컨대 아래의 예에서 "단풍이 없는 나라에 '단풍'이라는 말이 없다"라는 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그것은 '단풍'이라는 단어가 없는 언어에서는 '단풍' 현상이 별로 없기 때문이지 '단풍'에 대한 감각이 부족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어느날 갑자기 단풍이 자주 보이게 된다면 '단풍'에 해당되는 고유어가 생기거나 외래어가 차용되거나 할 것이다. 기존에 단어가 있어왔기 때문에 인간의 감각도 그에 따라 확장된다는 가설은 사피어 워프 가설(Sapir-Whorf hypothesis)의 연장선으로도 볼 수 있는데, 이 이론은 오늘날에 반박이 많은 편이다.
그런가 하면 어휘의 다양성이라는 것이 언어의 풍부함에 영향을 아주 안 준다고 단언하기도 어려운 면이 있다. 다만 대응되는 기존 단어가 있는 것, 단어는 없지만 구로는 풀어서 쓸 수 있는 것, 혹은 단어가 없어서 외래어로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 등등의 사이에서 언어 사용자의 인식에 어느 정도로 영향을 주는지는 알기 어렵다.

5. 자주 거론되는 예



5.1. 이누이트어



'이누이트의 언어에는 을 뜻하는 단어가 수백 가지나 된다'라는 이야기가 있으나 이것은 사실과 다르다. 1911년 언어학자인 프란츠 보아스가 문화에 따른 언어의 상대주의를 설명하기 위해 눈을 뜻하는 4가지 단어의 예(aput, qana, piqsirpoq, qimuqsuq)[2]를 든 것이 와전된 것이다.

5.2. 한국어


영어에서는 '노랗다'가 'yellow'뿐인데 한국어에서는 '노르스름하다', '누리끼리하다' 등등의 여러 표현이 존재한다는 이야기이다. 물론, 오해와 다르게 영어도 동일히 yellow도 여러 면으로 나누어 색을 구분하지만, 거의 창작 수준의 가까운 한국어의 의성어 등의 응용은 따라하기가 어렵다.[3] 더 나아가 이런 것을 번역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노벨문학상을 타기가 어렵다는 이야기가 여기저기에서 많이 돌아다닌다.
의 경우, '고소한 맛'을 영어로 번역하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다. 한국어의 '고소하다'는 견과류나 육류의 은근한 지방맛감칠맛의 결합, 굽거나 볶은 곡식에서 느껴지는 불맛 등을 뭉뚱그리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영어에서는 이런 경우 고소한 맛이 나는 원재료나 향을 형용사화하여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nutty, meaty, toasty, earthy처럼. 만약 짭짤하고 고소한 맛이라면 savory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낢이사는이야기에서는 '은근하다'가 영어로는 참 떠올리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4] 한국어에서 '은근하다'라는 단어는 여러 개념을 포괄하는데, '삼가 행동하는', '서로 아닌 것 같지만 깊은 사이인', '은밀하게 행동하는' 등의 용법이 있다. 낢 작가는 이 중 3번째의 의미로 해당 표현을 형용사나 부사, 의태어로 즐겨 사용하는 편이다. 여기에 가장 가까운 영어 표현으로는 동사 slink가 있다.
영어로 표현할 수 없는 15가지 한국어 표현과 같은 글도 있다. '띠동갑',[5] '촌수'[6]와 같은 문화적 요소의 단어도 있고 '답정너', '엄친아'와 같은 유행어도 있다.
역시 맥락에 따라 다른 언어, 특히 영어로 옮기기 어려운 때가 있다. 단독주택 형태는 'house'로, 한 가구로서의 집은 'home'으로 번역할 수 있으나, 문제는 '다세대 주택의 한 가구용 공간 하나'를 뜻하는 말이 영어에 없다. 굳이 본다면 'unit'으로 지칭할 수는 있으나, 이는 '단위' 정도의 느낌이라서 우리가 일상적으로 아파트의 몇몇 부분을 가리키며 '이 집, 저 집' 할 때의 그 개념과는 조금 다르다. 'household'는 '가구'로 추상명사이기 때문에 '집'이 갖는 객관적이고 구체적인 뉘앙스와는 거리가 있다. 이 때문에 다세대 주택이 일반적인 한국의 거주 문화를 영어로 설명할 때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때가 많고, 그 오해를 피하자니 마땅한 단어가 없어서 설명을 하지 못한다. 이는 영미권, 더 나아가서 전통적인 영국의 생활문화는 기본적으로 단독주택을 단위로 살았기 때문이다. 한국도 마찬가지이기는 하나, 한국은 한국 전쟁 이후 모든 것을 0에서 시작함으로써 '집'의 개념이 자연스레 확장될 수 있었다. 하지만 영미권 국가들은 미국만 봐도 알 수 있듯, 여전히 단독주택이 중심이며, 다세대 주택의 가구는 '호실(room)'로 부르기에 이미 그 뉘앙스상 '집'의 부속품 정도로 취급받으며, 별 맥락이 없으면 말 그대로 집의 '방(room)'으로 오해하기 쉽다. 한국의 80년대에 많이 지어진 3~4세대짜리 벽돌형 양식은 호실 번호가 없는 때가 많아서 더더욱 영어로 옮기기 힘들다.

5.3. 일본어


일본에서 도이 다케오(土居健郞)는 <아마에의 구조(甘えの構造>(1971)'에서 '甘え'에 해당되는 영어 표현이 없다는 점으로부터 일본인의 특성이 '甘え'에서 비롯된다는 이야기를 했다. 다만 이는 이어령의 <축소 지향의 일본인>(1982)에서 비판받았는데, 한국어에는 '아마에'와 비슷한 '어리광'이라는 표현이 있고 오히려 '응석' 등으로 훨씬 세분화된다는 이유였다. 이어 '서구에 없으니 일본만의 독자적인 특성'이라는 식의 논리는 합리적이지 못하며, 오히려 가장 비슷한 이웃 나라인 한국과 비교했을 때 두드러지는 것이야말로 일본만의 특성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image][7]
원문 紅葉(こうよう 혹은 もみじ)는 그냥 단풍이 아니라 "단풍이 드는 과정"을 뜻하는 단어이다. 이에 해당하는 핀란드어 단어는 ruska다. 이는 주일핀란드대사관이 위같은 주장을 하면서 일본 내에 퍼진 설인데, 사실 ruska와 紅葉은 1:1로 번역되는 단어가 아니다. 紅葉는 주로 명사로 쓰이지만 동사로도 쓰이는 단어인 반면 ruska는 오로지 명사로만 쓰이는 단어이며 이는 한국에서 사용하는 단풍이라는 말과 의미의 차이가 없다. 다만 한국에서는 단풍(丹楓)이라는 한자어로 표현하는 개념(영어의 autumn color나 fall foliage라는 개념과 같다)을 일본은 紅葉이라고 표현하다 보니[8] '단풍'이라는 개념마저 일본 외의 타국에는 없다고 오해해버린 경우에 가깝다.[9] 또한 국립국어원 표준대사전의 정의에 따르면, 단풍은 기후 변화로 식물의 잎이 붉은빛이나 누런빛으로 '''변하는 현상'''. 또는 그렇게 변한 잎을 뜻하는 말이다. 오역으로 인해 단풍에 대한 어휘가 일본과 핀란드에만 있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오해를 산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이는 오역이 아니라 만화 내용 자체가 부정확한 정보를 담고 있기 때문이지 번역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어로 번역하기 곤란한 단어는 木漏れ日(고모레비)라는 단어로, 뜻은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빛'이다.
불교에 영향을 받은 일본 특유의 미의식이자, 일본다도의 중요 개념 중 하나이며 일본학 기본서에도 자주 등장하는 侘びさび(와비사비)도 번역하기 어려운 표현으로 꼽힌다. '와비'는 덜 완벽하고 단순하며 본질적인 것을 가리키고, '사비'는 오래되고 낡은 것을 뜻한다. 즉, 단순함, 질박함, 거침, 꾸밈없음, 친근함 등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뜻한다. 일단 한국어로는 유한적적(幽閒寂寂)으로 번역하는 일이 많으나 잘 쓰지 않는 한자어라서 짧은 시간에 이해하기 힘들다.

6. 기타


번역할 수 없는 표현 중 그 나라의 특색을 나타내거나 낭만적인 의미가 있는 단어를 모아둔 그림책도 있다. 마음도 번역이 되나요라는 책으로 루시드 폴이 번역했다. 한국어로는 눈치가 실려있다.
[1] 스타크래프트 2 자유의 날개 트레일러 영상에서는 한국어 더빙시 입 모양까지 수정하여 화제가 되었다.[2] '땅에 쌓인 눈', '내리고 있는 눈', '바람에 흩날리는 눈', '바람에 흩날려 한 곳에 쌓인 눈'이라는 뜻이다.[3] 한국어와 일본어는 의성의태어가 많은 것으로 유명한 편이다.[4] 작가는 '은근남 카운셀링 센터'를 연재하기도 했던 등 이전부터 '은근하다'라는 표현을 즐겨 사용했었다.[5] 한자 문화권 국가들은 12지를 쓴 경험이 있어 비슷한 개념이 남아있는 경우가 많다. 항목 참조.[6] 영어권에서도 '몇 번째 cousin인지', '거기에다 몇 번이나 removed되었는지' 정도는 따지지만 한국의 촌수와는 셈법이 조금 다르다. 4촌까지는 셈하지 않다가, 5촌부터는 특정 촌수단위의 배수 혹은 조합으로 셈한다고 보면 된다.[7] 만화의 제목은 이토 카츠의 '은의 니나'.[8] 해당 한자어는 중국이나 한국에서는 '색이 붉은 나뭇잎/단풍'을 특별히 지칭하는 용도로만 쓰인다.[9] 중국어에서 楓이라는 한자는 조록나무과의 '풍나무'라는 나무종을 지칭하며, 단풍나무는 축수(槭樹)라는 별도의 한자어로 부른다. 단풍을 표현할 때는 낙엽의 색에 따라 홍엽(紅葉)과 황엽(黃葉)으로 구분한다. 베트남어에서는 단풍이 드는 현상을 thu vàng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한자어 秋黃의 차용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