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표론
1. 개요
'''이회창을 뽑으면 이회창이 되지만, 이인제를 뽑으면 김대중이 됩니다'''
제15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회창 후보측의 홍보 문구[1]
死票論. 선거철마다 반복적으로 나오게 되는 주장으로, 한 마디로 말하자면 '''군소정당에 표를 주면 그 표는 죽은 표다'''라는 뜻이다. 차악론과도 일맥 상통하는 주장. '''최악의 후보가 당선되는 것을 막기 위해, 그나마 최악보다 나은 차악 후보에게 표를 줘라'''라고 주장한다.'''정의당 지지는 다음 선거에서 하셔도 괜찮다.'''[2]
제19대 대통령 선거 당시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2. 상세
사표론은 대부분 여야를 막론하고 주장되며, 유사한 정치성향 사이에 있는 정당들 중 세력이 큰 정당이 주장하게 된다. 즉 어차피 세가 미미한 정당에 표를 주어봐야 당선 가능성도 없을 뿐만 아니라, 당선 가능성이 있는 우리마저 표가 분산되어 낙선할 가능성이 있으니 될 만한 우리에게 표를 몰아달라는 얘기다.
이는 소선거구제 및 결선투표제 or 선호투표제가 없는 선거제도 하에서 실제로 발생하는 현상이기 때문에 유권자들에게는 상당히 설득력 있는 주장처럼 받아들여지는 경향이 있으며, 그로 인하여 상기 선거제도 하에서는 항상 군소정당이 사표론에 의한 유권자의 사표방지 심리 때문에 막대한 피해를 본다. 야권연대를 하는 이유중 하나도 이것.
대표적으로 1997년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가 이인제에게 써먹었다. 이회창은 외환위기와 두 아들의 병역비리로 지지율이 폭락, 야당의 김대중과 경선에 불복해 여당을 탈당한 이인제에게 크게 밀려난 상황[3] 에서 위에 나와있듯이 노골적으로 사표론을 밀어서 지지율을 회복했다.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후보측에서도 이회창에 비해선 덜하지만 역시 사표론을 주장한 결과, 진보정당인 국민승리 21 권영길 후보의 득표력이 저하되었다. 이는 2002년 대선에서도 그대로 재연되어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후보측이 사표론을 적극 주장하였고 그 결과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의 득표력이 다시 한번 크게 타격을 받았다.[4]
그래서 군소정당에서는 사표론을 증오할 수밖에 없는데, 실제로는 소선거구제 및 결선투표제가 없는 상황에서 사표에 의해 당락이 바뀌는 경우가 엄존하는 것은 사실이다. 더불어 이렇게 당선된 후보는 그를 지지한 국민의 숫자보다 지지하지 않은 숫자의 국민 수가 더 많은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문제가 된다. 그러므로 이것은 가치 판단의 문제라기보다는 하나의 선거 전략으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은 민주노동당에 대하여 사표론을 주장했는데, 정작 민주노동당의 후신인 통합진보당은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진보신당에 대하여 사표론을 주장했다. 당할 때는 비판하지만 유효할 때는 사용하는 전략인 것이다.
한편으로는 사표론이 정당을 가리지 않는 경우도 있다. 노회찬의 경우 이제까지 총 6번의 선거에서 낙선한 3번의 선거가 사표론이 제기될 정도로 연관이 있는데,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의 서울특별시장 선거에서는 민주당 한명숙 후보와 진보신당 노회찬 후보가 모두 출마했는데 민주당 한명숙 후보가 한나라당 오세훈 후보에게 근소한 차이로 패배했고 이에 일부 민주당 지지자들이 사표론을 언급하며 노회찬 후보를 비난했다. 여기까지는 군소정당인 진보신당이 사표론으로 비난을 받는 입장이나,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와 2014년 상반기 재보궐선거에서는 바로 그 노회찬이 사표론을 주장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서울 노원구 병에서 한나라당 홍정욱에게 2,000여표차로 패배했는데, '''통합민주당 김성환 후보가 가져간 표만 13,000여표였던 것.''' 이 때 단일화를 거부한 것은 김성환 후보와 통합민주당이었기에, 서울시장 선거에서 노회찬에게 사표론을 제기하는 것은 말도 안된다는 주장이 많았다. 2014년 상반기 재보궐 선거에서는 서울 동작구 을에서 새누리당 나경원 후보에게 929표 차이로 낙선했는데, 이 때 노동당 김종철 후보가 1,076표를 얻었다. 표 차이가 크지 않아서 노회찬 입장에서는 상당히 아쉬울 수밖에 없는 선거였다.
사실 사표론은 선거제도에 따라서 얼마든지 줄이거나 없앨 수도 있다. '''선호투표제나 결선투표제에선 아예 사표론이 발생할 여지가 없다.''' 결선투표제와 중대선거구제도 완전히는 아니지만 사표론이 현저히 줄어든다.[5] 반면에 소선거구제와 병립형 비례대표제는 거대정당에만 유리하고 사표론을 극대화하는 제도이다. 이때문에 소선거구제와 병립형 비례대표제를 채택한 국가들은 하나같이 투표율이 낮은 경향이 있다. 거대정당 위주로 제도권 정치가 재편되고, 새로운 정치세력이 국회에 진출하기 쉽지 않기 때문에 아예 투표를 포기해버리는 것이다.
대한민국에서는 1인 1표제이던 시절의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특히 사표론이 극심하였으나, 이것이 헌법재판소에 의해 위헌 결정을 받고 1인 2표제로 전환, 정당명부 비례대표제가 시행되면서 그 이전보다는 약간 수그러들었다. [6] 그러나 대통령 선거, 지방자치단제창 선거, 국회의원 지역구 선거에서는 여전히 막강한 위력을 발휘한다. 결국 개헌을 통해서 대통령 선거 방식을 바꾸지 않는한 사표론은 계속될 것이다.
2000년대 이후 진보정당들이 연동형 비례대표제(독일식 선거제도) 도입을 줄기차게 외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소선거구제+병립형 비례대표제 환경에선 계속해서 사표론에 피해를 볼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온갖 우여곡절 끝에 2020년 부분적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됐지만, 해당 의석이 전체 의석의 10%인 30석에 불과하기 때문에 효과는 극히 제한적이다. 그마나 미래통합당이 꼼수로 비례용 위성정당 미래한국당을 만들고 이에 의석수가 줄어들 것을 우려한 더불어민주당 측에서도 비례용 위성정당을 만드는 바람에 오히려 위의 제도가 없었던 2016년의 총선에 비해 두 정당의 파이가 압도적으로 커져버리는 아이러니를 낳게 되었다. 게다가 지역구는 여전히 소선거구제라서 사표론은 아직도 그대로다.
사표론은 민주주의 제도가 정착된 국가라면 어디에서나 있지만, 유독 한국에서 선거때마다 사표론이 나오는 이유로 13대 대선의 트라우마 때문이라는 주장이 있다. 6월 혁명으로 신군부 세력을 끌어내고, 민주화의 길로 나아갈 수 있는 그 순간에 표가 갈려버려 다시 신군부 세력이 정권을 잡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던 그때의 기억이 한국인 전반에 강하게 자리매김하고 있기 때문에 모든 선거에서 사표론이 나온다는 것. 실제로 13대 대선으로 인한 정치계의 재편과 사회적 파장을 고려해보면 상당히 일리가 있는 의견이다.
19대 대선에서도 다자 구도가 되었기 때문에 사표론이 나오고 있다. 어대문 항목 참조. 정의당 측에서 '''대세에 따라 찍은 표는 사표다'''라며 더민주를 향해 사표론을 제기하자, 더민주 쪽에서도 지지자들을 단속할 요량으로 정의당 지지는 다음 선거에서 해도 괜찮다는 식으로 사표론을 꺼내기도 했다. 결과는 4-5위 군소후보인 유승민과 심상정이 기존 거대 보수정당(특히 박정희와 박근혜)에 대한 충성심이 강한 콘크리트 보수 노인층[7] 때문에 자생이 힘든 신생 보수정당과, 사표론에 밀려 민주당에 표를 뺏기던 진보정당이라는 악조건 속에서도 소신투표를 하겠다고 결심한 유권자들이 이들에게 표를 줘서 유승민은 6.8%, 심상정도 예상보단 감소했지만 6.2%의 투표율을 기록했다. 홍준표와 안철수 지지자들도 표가 분산 되면 문재인이 될 거라는 걸 알면서도[8] 자신의 성향에 맞는 후보에게 총결집해서 각각 24.0%, 21.4%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두 후보의 지지자들이 알아서 한쪽에 몰아 줬으면 문재인을 이길 지도 모르겠지만,[9] 홍준표 지지자들 입장에서는 안철수가 문재인을 이겨도 자기들이 좌파라며 혐오 하는 호남 정당이 득세 하고 보수표도 못 받은 자유한국당이 파산 하며, 안철수 지지자들 입장에서는 양당 체제에 싫증나서 3번을 지지 하며 문재인보다는 안철수 개인을 지지 하면서도 국정농단 부역자인 자유한국당을 더 싫어 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자유한국당이 후보를 내지 않으면 몰라도 단일화 협상은 안철수가 역풍을 맞으니 불가능 했다. 자유한국당도 아무리 불리한 상황이지만 명색이 거대 정당이고 고정 지지층을 결집시키기 위해서라도 단일화가 없이 무조건 대선 후보를 출마시켜야만 했다.
덕분에 노무현, 이명박보다 표를 더 많이 받으면서 18대 대선에서 박근혜와 이전의 자기 자신 다음으로 많은 득표를 한 문재인이 득표율만 보면 41.1%가 되었다. 결국, 5자 구도로 경쟁을 했다는 점에서 보았을 때 굉장히 높은 득표율이었다. 17대 대선에서 진보층 상당수가 투표를 포기했던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일각에서는 이 '''사표'''라는 개념은 민주주의 선거제도에 어울리지 않는 개념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에 대한 이유로
- 선거제도 내에서 소수에 속하여 채택되지 않은 의견은 항상, 어쩔 수 없이 나올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에 소속된 정치인을 뽑더라도 그 정치인이 속한 당론에는 동의하지 않는 유권자도 있을 수 있다.
- 소수의 의견도 중요하지만, 채택되지 않은 의견의 속성에는 소수뿐만 아니라 대다수에 의해 반대되는 혹은 옳지 않은이라는 속성 역시 포함되어 있을 수 있다.
- 채택되지 않은 의견이 불가피하게 나오는 것이 곧 사표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으로 연관지을 수 없다.
- 당에 속한 정치인과 당론 모두 동의하게 않아서 다른 당을 찍고 싶지만 선거 구도 상의 이유로 어쩔 수 없이 전략적 투표로써 다른 당을 찍는 유권자도 있다.
- 채택되지 않은 의견의 속성에는 옳은 데도 불구하고 소수라는 이유로 제외라는 속성도 있다.
- 사표에는 위와 같은 유권자들의 속성이 있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인데 사표의 개념을 부정하는 주장은 이를 무시하고 자신들이 내세우는 유권자들의 특성에만 집착한다.
[1] 그리고 선거 결과는 정말 이 말대로 되었다(…).[2] 출처: 중앙일보, 국민일보[3] 김대중과 이인제가 접전을 펼칠 동안 이회창의 지지율은 10%대였다.[4] 다만 이 때는 권영길 후보가 100만표를 얻는 것이 유력했다가, 정몽준 국민통합21 대표의 노무현 후보 지지 철회 파동이 하필이면 투표를 하루 앞두고 터져서 진보 성향 유권자들까지 노무현 지지로 급격히 돌아섰다는 분석도 있었다. 참고로 당시 노무현과 이회창의 득표율차는 2.3%P였으며 만일 정몽준 해프닝이 없었다면 권영길의 득표율이 다소 높고 노무현과 이회창간의 득표율차가 그야말로 초박빙으로 흘렀을 것이다.[5] 한국에선 결선투표제 도입을 많이 주장하지만, 이것도 진영별로 사표론이 나올 가능성이 많다. 잘못하면 후보자 난립으로 결선투표에 보수후보만 2명 혹은 진보후보만 2명 진출하는 결과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2002 프랑스 대선에서 이런 사례가 발생했다.[6] 19대 총선에서 통합진보당의 경우 지역구의원은 야권단일후보, 정당투표는 자신들에게 투표해달라고 홍보했었다.[7] 이들 콘크리트 보수 노인층 입장에서는 박정희에 대한 그리움과 박근혜에 대한 믿음을 버리는 것은 자신의 인생을 부정하는 것과 같기 때문에 더욱 심각하다. 사실 박근혜도 초기에 탈당 해서 한국미래연합을 만들었지만 실패 하고 한나라당에 복당한 걸 보면 보수노년층이 기존 보수 정당을 버리지 않으려는 게 더 맞을 지도 모른다.[8] 물론 여론조사에서 문재인이 압도적인 1위인데도 홍준표나 안철수가 당선될 거라고 희망회로를 돌린 사람들도 존재하긴 했지만.[9] 물론 대선 당시 문재인의 득표율은 문재인의 대항마가 사라진 상황에서 정의당 지지층 상당수가 심상정, 젊은 남성들 상당수가 유승민, 호남 노년층 상당수와 유동층 일부가 안철수에게 소신투표를 한 결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