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환(1965)

 

'''대한민국 국회의원 (서울 노원구 병)'''
제19~20대
안철수[1]

'''제20~21대
김성환'''

현직
'''김성환의 역임 직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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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노원구청장'''
'''민선4기'''

'''민선5-6기'''

'''민선7기'''
10대
이노근

'''11-12대
김성환'''[16]

13대
오승록

'''제9-10대 서울특별시 노원구청장'''
'''대한민국 제20 · 21대 국회의원
김성환
金星煥 | Kim Sunghwan
'''
'''출생'''
1965년 10월 15일 (58세)
전라남도 여천군 삼산면 거문도
(現 전라남도 여수시 삼산면 거문도)
'''거주지'''
서울특별시 노원구 상계2동
중앙하이츠2차아파트
'''본관'''
광산 김씨
'''종교'''
천주교 (세례명: 대건 안드레아)[2]
'''학력'''
서울창서국민학교 (졸업)
중동중학교 (졸업)
한성고등학교 (졸업)
연세대학교 (법학 / 학사)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 (행정학 / 석사)
'''병역'''
[image] 대한민국 육군 일병 소집해제
'''가족'''
배우자, 슬하 2녀
'''신체'''
163cm, B형
'''소속 정당'''

'''지역구'''
서울 노원구 병
'''의원 선수'''
'''2'''
'''의원 대수'''
20, 21
'''소속 위원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현직'''
제21대 국회의원
'''경력'''
신계륜 의원 비서관
제2대 노원구의원
제5대 서울시의원
노무현 대통령후보 복지담당 전문위원
대통령직인수위 전문위원(노무현 정부)
노무현 정부 청와대 정책실 행정관
노무현 정부 청와대 정책조정비서관
한국 미래발전연구원 기획실장
민선 5~6기 노원구청장
제20대 국회의원
제20대 국회 에너지특별위원회 위원
더불어민주당 당대표비서실장
제6회 다산목민대상 본상 수상
지역사회복지대상 우수상 수상
생명존중문화 조성 자살예방사업대상 수상
매니페스토 우수사례 최우수상 수상
지식경영인대상 지방자치단체장부문 대상
생명사랑대상 생명사랑 네트워크 대상
'''SNS'''


1. 개요
2. 생애
2.1. 정치 활동
2.1.1.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2.1.2. 민선 5~6기 노원구청장
2.1.3. 제20대 국회의원
2.1.4. 제21대 국회의원
3. 저서
4. 선거 이력
5.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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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 노원구청장 시절'''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소속 정당은 더불어민주당이며 노원구의원, 서울시의원, 청와대 비서관을 거쳐 노원구청장을 역임했다. '''즉 기초의원, 광역의원, 기초단체장, 국회의원에다가 청와대에서 정책결정 과정까지 두루 경험해본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 2010년 7월부터 약 7년 6개월간 서울 노원구청장에 재임하다가 2018년 재보궐선거를 앞둔 2월 13일 노원구 병 지역구[3] 국회의원 예비후보 등록을 위해 노원구청장 직을 사퇴했다.
노무현 정부에서 일했고,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 전당대회에서 당대표 후보로 당시 문재인 의원을 지지하는 등, 선명한 친노, 친문 성향 정치인으로 분류된다.

2. 생애


1965년 10월 15일, 전라남도 여천군 거문도에서 태어났다. 이후 초등학교 4학년 때 서울로 상경하여 서울 중동중학교, 한성고등학교, 연세대학교 법과대학,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을 졸업하였다. 연애중인 아내의 집이 노원구 상계동이어서 차비를 아끼기 위해 이사온 노원구가 터전이 됐다. 지하철 막차로 아내를 데려다 주고 집인 신촌으로 돌아오는 택시비가 원인인 셈.
최근 자녀들의 초등학교 입학때부터 대학입학까지 13년동안 살았던 집에서 다른 집으로 이사를 했다. 집은 전세다. 묵은 짐을 버리고 옮기려고 하니 만만치가 않았다고...
학생운동에 참여해 전대협 연대사업국장으로 87년 6월항쟁에 관여, 민주화 열기 확산에 기여했으며 나라사랑청년회 창립에 참여했다. 여담으로 학생운동가들과 일상 시민들의 생활정치를 외치던 나라사랑청년회는 커플들이 많이 생겼다고 알려졌는데 우상호 의원이 대표적. 김성환 역시 나라사랑청년회에서 지금의 아내와 만나 프로포즈에 성공한다.

2.1. 정치 활동


1992년 민주당 신계륜 국회의원의 비서관으로 정치에 입문하였다.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노원구의원에 당선되었고[4] 1998년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로 노원구 지역구의 서울시의원에 당선. 2002년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한나라당 후보에게 3천여표차로 패했지만 노무현 정부가 출범된 뒤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정책조정비서관으로 근무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386세대는 정무·민정 업무에는 탁월한데, 정책 만드는 일을 잘하는 이가 별로 없다. 김성환이 유일한 예외” 라고 할 정도로 신뢰를 받았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노무현 정부 청와대 근무 강도도 가혹하기로 유명한데, 강금실 전 장관 서울시장 캠프나 이해찬 전 총리 대선후보 캠프가 지원을 요청한 시기를 뺀 4년 5개월 동안 청와대 내 정책담당으로 버텨낸 편. 친노, 친문이고 이해찬 대표와도 가깝다.[5]

2.1.1.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직후 치뤄진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노원 병에 출마하려 했으나 민주당이 해당 지역 공천을 차일피일 미루며 더 강한 후보를 찾는 바람에 공식 선거운동 개시일 2일 전에야 공천을 받았다. 노원병은 이전 당선자인 임채정 의원이 재임중 국회의장을 역임했기에 정계 은퇴 수순을 밟는게 일반적인 상황이었다.
이를 노리고 노회찬 후보가 오래전부터 지역 조직을 다져왔기에 한나라당 홍정욱 vs 민주노동당 노회찬으로 오래전에 구도가 확정되었다. 5년동안 지역 활동을 하지 못하다 출마 결심을 하고도 공식 공천을 한동안 받지 못했으니 출발부터 불리했던 셈. 이때 노회찬과의 단일화를 거부했다는 루머가 퍼지기도 했지만 실제로는 노회찬 캠프로부터 어떠한 단일화 제의도 받지 못한 상황이라 완주를 할 수밖에 없었던 것.
당시 홍정욱 후보는 동작을에 공천을 신청하나 실패해서 급하게 노원병에 배정되었다. 오래전부터 출마를 준비해온 노회찬 캠프가 단일화 없이 단독으로 승리할 수 있다는 판단도 허무맹랑한 수준은 아니었다. 당시 서울을 휩쓸어버린 뉴타운 광풍과 여론조사에 쉽게 잡히지 않았어도 민주당에 충성심을 유지한 유권자를 염두에 두지 못했던 것이 오판한 이유라면 이유. 이 결과로 2000여표 차이로 홍정욱 후보가 어부지리로 당선된다.
여담으로 귀향을 준비중인 노무현 전 대통령의 연락을 받기도 했는데, 민주진영 재집권을 위해 사전에 정책을 조사하고 개발할 정책연구소 총괄을 김성환 후보에게 맡기고 싶어했던 것. 김성환은 당시 노원병에 출마의지를 드러낸 상황이라 떨어지면 열심히 돕겠다고 답변했는데 실제로 낙선했다. '낙선을 바라는 바는 아니었지만 이왕 그렇게 되었으니 연구소 설립을 총괄해달라'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연락을 다시 받고 한국미래발전연구원 설립에 착수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국정 경험을 바탕으로 못 다한 복지국가에 대한 공감대를 늘리고자 저술활동을 준비한다.
이 시기 김성환은 미래발전연구원 기획실장을 맡아 진보의 미래 집필 작업을 도왔으며,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후 구술된 내용을 바탕으로 유고집이 될 진보의 미래 편집을 총괄했다.

2.1.2. 민선 5~6기 노원구청장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현직 구청장인 한나라당 이노근 후보를 꺾고 노원구청장에 당선되면서 정계복귀에 성공한다.[6] 노원구를 무난하게 잘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아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노원구청장에 재선하였다.
노원구청장 임기중에 정미홍에게 종북 기초자치단체장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결국 김성환측은 이에 분노하여 정미홍을 고소하여 손해배상을 청구하라고 했다고.
노원구청장 재선중에 2015년 2월 8일 새정치민주연합 제1회 전당대회에서 문재인 후보를 구청장중 최초로 지지 선언한다. 선거법 검토 결과 문제가 없다는 회신을 받은 노무현 정부 출신 구청장들은 연이어 문재인 후보를 지지한다. "당대표로 기호 1번 문재인 후보를 지지한다"는 메세지를 대의원들에게 보내고 지지선언이 잇따르게 한 역할을 주도했다.
[image]
박지원 후보는 크게 반발했는데, 평소 호남향우회를 기반으로 자유롭게 선거 활동을 할수 있었던 장점이 약화된 셈.
위기감을 느낀 박지원 후보는 여론조사 무응답 비율을 넣고 합산해야 한다며 경선불복 의사를 드러냈는데, 이 역시 역효과를 일으켰다는 지적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5.35%의 득표율을 얻은 문재인 후보는 41.78%의 득표율을 얻은 박지원 후보를 가까스로 물리친다.
노원구청장이 된 후 실시한 정책 중 상당수는 서울시장 박원순 시장이 채용하고, 이것을 문재인 정부가 확대한 것들이 많은데, 이는 다음과 같다.
'''자살예방사업'''
김성환 구청장의 취임 전 노원구 인구 10만명당 자살율은 29.3명으로 OECD 평균 11.2명보다 3배 가량 많았다. 당시 서울시 평균이 25명이었는데 상위 7번째 수준. 노무현 정권 시절 노무현 대통령이 자살 예방 대책을 세울 것을 지시했는데 올라온 보건복지부 보고서는 '자살 방지 응급센터' 였다.
노원구청은 자살시도자와 유가족간 정보를 공유하는 방식으로 사전 관리 시스템을 수립한다. 자살시도자는 병원에. 자살은 전염되기 마련이기에 유가족 정보는 경찰서에 보관되는데 개인정보 보호법으로 인해 통합관리가 되지 않았던 것. 개인동의하에 응급실이 있는 병원. 응급환자를 수송하는 소방서. 자살정보를 가지고 있는 경찰서와 구청이 당사자 동의를 전제로 정보를 공유하기 시작했고 노원구에 사는 독거노인들을 교육받은 통장들이 찾아가 테스트를 통해 우울증 주의군과 관리군을 분류한다. 실업자는 고용안정 센터에 의뢰하고, 학생들은 교육청과 협의하여 정신건강 테스트를 확인한다.
그 결과 2016년 기준으로 노원구 자살 피해자는 121명. 2009년 180명에 비해 60명 가까이 줄어들었다. 요즘은 일본에서도 견학을 오는 수준.[7]
'''찾아가는 복지'''
구청에 있기 마련인 유휴인력을 주민센터로 보내서 복지부하를 줄이고 통장들을 찾아다니는 일선 '복지 도우미'로 임명했다. 통장들이 가정을 방문하며 복지 제도 홍보및 수요를 파악해 동사무소에 알리는 역할을 맡은 것. 기존 통장 활동비 정도로 업무 부하가 심한게 아니냐는 반발이 있었지만 자리가 잡힌 결과 지역에 공헌한다는 자부심으로 원만히 해결이 된 편.
2014년 송파 세 모녀 자살 사건이 터지자 이 행정 정책은 주목을 받게 되었는데 무려 박근혜가 찾아가는 복지 서비스를 강화하라고 국무회의에서 지시하게 된다.[8] 박원순 서울시장은 27개 구청장들이 지역에서 성공하는 정책을 서울시 전반에 확산시키고 싶어했는데 노원구청 정책 채용율이 높은 편이다. '찾아가는 복지' 서비스는 시범사업을 거쳐 2015년 '찾아가는 동사무소 사업'으로 확대 실시되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1997년 외환 위기 이후로 확산된 파견직 근로형태는 지방정부에도 확산되었다. 부자감세+총액인건비제 영향으로 용역회사에 외주를 주는 빈도가 늘어난 것. 용역회사가 떼어가는 임금이 만만치 않아 임금 감소 효과는 적고 최저임금에 묶인 직원 불만은 폭증하는 문제가 발생했다.
이에 노원구청은 2011년에 200명 이상의 비정규직 근로자를 무기계약직 등으로 채용하기로 발표했다기사 이 조치로 직원 임금은 평균 13% 올랐고 구청 예산은 15% 절감했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적극적으로 호응했는데, 2012년 3월에 '서울시 공공부문 1차 비정규직 고용개선 대책'을 발표해 1천명 이상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한다. 이 정책을 문재인 대선후보 캠프도 채용해 '상시업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정책으로 대한민국에 반영된다.
'''생활임금제'''
2012년 기준으로 최저임금은 대한민국 평균임금의 38% 수준이다. OECD가 권고하는 50% 수준에 크게 못미치는 상황으로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속도인 저출산을 불러오는 대표적인 원인 중 하나. 생활임금제는 최저임금이 사실상 최고임금인 상황에서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권고하는 임금제도이다.
부천시가 가장 먼저 받아들였으나 조례검토가 늦어져 노원구성북구가 가장 먼저 실천했다. 이 과정에서 생활임금제 책정 기준과 공공조달사업에 참여하는 민간업체 적용 논의들이 정리되고 서울시가 채용한다.
생활임금제 논의는 최저임금제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근거로 활용되었고 문재인, 유승민, 심상정 후보는 2020년까지. 안철수, 홍준표 후보는 2022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 시대를 실현하겠다고 약속한다.
'''치매 국가 책임제'''
2016년 10월 27일 문재인 대선후보는 노원구 치매지원 센터를 방문, 주민-관계자들과 간담회를 열었다.기사
노무현 정부가 노인 치매에 큰 관심을 보였기에 이를 승계하는 김성환 구청장도 노원구 치매 지원센터를 모범적인 시설로 운영한 결과 대선 공약 1호인 '치매 국가 책임제' 를 선언하는 장소로 적절했던 것.
'''노원 에너지 제로 주택'''
2013년 녹색성장 공모는 대구시, 세종시, 노원구가 응모했는데 의외로 노원구가 선정되었다. 3중창, 열 회수용 환기장치등 단열.기밀용 신 기자재 개발과 재생에너지 기술 채택, 냉난방, 온수, 조명,환기에 화석 연료를 사용하지 않고 단열과 재생에너지만 활용한 것이 선정된 이유이다.
에너지 제로 주택 완공식에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해 현장에서 “노원구는 잘 하는 것이 많다”고 칭찬하기도 했다기사
새정치민주연합 2.5 전당대회 시절엔 당대표 선거에 출마하는 문재인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노무현 정부 시민사회수석, 대통령비서실장을 지낸 문재인 대통령과는 정책기획관으로 호흡을 맞췄으며 비서실장이 주재하는 '1일 상황점검회의’ 고정멤버로 참여한 인연이 있다.

2.1.3. 제20대 국회의원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후 이명박이 유출하다 검찰이 회수한 국정원 문건에서 블랙리스트 자치단체장으로 감시당했던 사실이 밝혀졌다.기사 '야권 지자체장 제압문건'에서 민주당 지자체장 31명의 행적을 기록하고, 가용수단을 총동원해서 국익·정책 엇박자 행보를 적극 견제·차단하라는 보고가 주 내용이었다. 기획재정부를 이용한 예산삭감, 감사원 직무감사, 한나라당 정치인들과 연계한 공세를 길들이기 수단으로 제시하고 있는데 국정원 본래 업무가 국내정치 개입이 아닌 국가안전인걸 생각하면..
이에 블랙리스트에 오른 민주당 지자체장 중 11명은 이명박을 검찰에 고발한다.
당시 발언: "대한민국에서는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나는 것이 상식처럼 받아들여졌던 '비상식적인' 시대가 있었다. 특히 국내 정치에 개입하는 사례들이 너무 많았다" "지방자치장들의 일거수일투족까지 다 감시하고 견제하고, 그것을 일종의 블랙리스트화 삼아 정치적으로 탄압했다는 것은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또 다른 사례다"기사
안철수의 사퇴로 촉발된 노원구 병 재보선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단독 공천신청하였다. 반문 세력과 연합한 안철수 의원은 문재인 대통령이 18대 대선에서 국회의원직을 사퇴하지 않았기에 패배했다는 주장에 동조한 것이다. 정작 상계동이 정치적 고향이라던 안철수를 찍은 노원병 주민들은 날벼락을 맞은 셈.
2010년 지방선거에서 기초단체장에 출마했던 노무현 정권 출신 구청장 상당수[9]가 3선 불출마를 선언하는 와중에 김성환 구청장도 3선 도전 대신 보궐선거 출마의지를 일찍 드러냈다. 8년동안 구청장으로 쌓은 인기를 넘어서는 경쟁자가 없기에 경선으로는 대선주자급 정치인들도 넘어서지 못할 거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해당 지역구가 전락공천 대상으로 선정되지 않는 한 공천이 확정적이었고 황창화 전 노원병 지역위원장의 불출마로 단수공천이 확정되었다. 여수시 거문도에서 상경한 상계동 이주민 1세대이자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의 의원시절 최측근으로서의 경력을 쌓았기에 경선과 본선 모두 무난한 승리가 예상되는 중이며[10] 임채정 전 의원 이후 노원병 선거구에서 계속 패배한 민주당의 입지를 반전시킬 적임자로 평가받는다. 과반을 넘기는 지지율로 노원구 병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당선된 이후 2018년 8월부터 당대표 비서실장에 임명되었다.
2019년 5월 21일 오전 8시 30분께 민주당 목포에서 봉하까지 ‘민주주의의길’ 출정식 행사 말미에 시각장애인들과 어머니들이 이해찬 대표 면담을 위해 기습시위를 펼쳤다. 이해찬 대표는 급하게 당사로 들어갔다. 들어가려는 기습시위 참가자들과 경찰이 엉켜 고성이 오갔다. 몸싸움 와중에 김성환 당대표 비서실장이 수습에 나섰다. # 추후 대화를 약속했고 실제로 그 약속을 지켰다.#

2.1.4. 제21대 국회의원


21대 총선에서는 예비후보로 등록하고 단수공천을 확정받으면서, 재선에 도전하였다.
선거 당시 광주 동구·남구 을동명의 무소속 후보가 있지만 이쪽은 낙선하였다. 판도라 165화에 그곳의 판세를 분석하면서 본인의 얼굴이 대신 들어가는 방송사고(?)가 있었다.
결국 이전보다는 줄어든 53.15%의 득표로 44.36%를[11] 받은 이준석을 제치고 당선되었다. 본인이 국회에서 당 대표 비서실장으로 활동하며 지역구 관리에 소홀해진 틈에 상대 이준석 후보가 바닥부터 텃밭을 다진 영향으로 분석된다.[12] 그래도 노원구청장 시절의 좋은 평가가 있었기에 당선된 것으로 보인다. 노원구청장으로 재직할시 김성환의 성과는 노원구를 바꿨다고 평가할 정도였으니.
21대 총선에서 당선되고 나서는 같은 노원구 국회의원이기도 한 우원식과 함께 의정부시까지 연결되는 KTX 수도권 동북부 연장사업에 본격적으로 시동을 거는 중이다. 김성환 본인은 도봉구에 있는 창동역KTX를 끌어오는 데 가장 적극적인데, 비록 창동역은 본인의 선거지역구인 노원구 병이 아닌 도봉구 갑에 속해있는 곳이지만, 본인의 지역구인 상계동과 많이 가까운 곳에 위치해있기 때문에 만약 창동역까지 KTX를 끌어오는 데 성공하면 본인의 지역구 주민들인 상계동 주민들도 KTX를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는 듯. 실제로 창동역까지 KTX가 연장되는 것은 확정이 났지만, 아직 국토교통부에서 의정부시까지 연장하는 데는 제동을 걸고 있어 그 설득작업에 들어갔다고 한다. #

3. 저서


  • 진보의 미래를 위한 대한민국 국가전략 (2010년)
  • 님은 갔지만, 보내지 아니 하였습니다 (2010년) (공저)
  • 10권의 책으로 노무현을 말하다 (2010년) (공저)
  • 나비효과 (2012년)
  • 생각은 세계적으로 행동은 마을에서-나비효과2 (2014년)
  • 공존의시대 (2018년)

4. 선거 이력


연도
선거 종류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1995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서울 노원구의회 상계 9)

'''7,325 (51.62%)'''
'''당선 (1위)'''
'''초선'''
1998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서울특별시의회 노원 4)

'''25,975 (52.53%)'''
'''당선 (1위)'''
'''초선'''
2002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서울특별시의회 노원 4)

25,681 (47.39%)
낙선 (2위)

2008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노원 병)

13,036 (16.26%)
낙선 (3위)

2010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서울 노원구청장)

'''139,714 (53.69%)'''
'''당선 (1위)'''
'''초선'''
2014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서울 노원구청장)

'''164,175 (58.93%)'''
'''당선 (1위)'''
'''재선'''[13]
2018
재보궐선거 (서울 노원 병 국회의원)

'''51,817 (56.43%)'''
'''당선 (1위)'''
'''초선'''[14][15]
2020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노원 병)

'''55,556 (53.15%)'''
'''당선 (1위)'''
'''재선'''
당선 된 경우 모두 과반 이상의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다만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의 경우 당시 현직 구청장이던 이노근과의 1:1 매치였기에 당선자는 반드시 과반득표를 하게 되어 있던 상황이었으며 2018년 재보궐선거의 경우 야당인 자유한국당바른미래당의 상황이 어떠했는지를 감안해 보면 이하생략. 물론 지역구 내 입지가 상당하여 당선 된 것도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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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19대 대통령 선거 출마로 자진 사퇴[2] 상당히 독실한 천주교 신자이며 신기하게도 같은 당 김한정, 송영길 의원과 세례명이 같다.[3] 이 지역구의 20대 총선 승자인 안철수바른미래당 대표가 19대 대선국민의당 후보로 출마하며 의원직을 사퇴했다.[4] 이 때는 기초의원의 정당 공천이 없던 시기였다. 정당 공천이 실시된건 2006년 선거부터.[5] 이해찬이 대선후보로 있을 때도 선거캠프에서 근무했었고, 현재도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비서실장이다.[6] 이 때 민주당 경선에서 누른 후보가 고용진 의원이다. 고 의원은 이후 20대 총선21대 총선에서 김 의원과 똑같이 '''이노근'''을 상대로 승리하며 의회에 입성(노원구 갑).[7] 기사[8] 물론 국무회의에서 노원구를 거론하지는 않았는데 김성환 구청장 정치적 노선이 노선인지라.. 기사[9] 성북구 김영배, 은평구 김우영, 금천구 차성수. 이 중 김영배만이 21대 총선에서 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고(성북구 갑), 나머지 둘은 공천을 받지 못했다. 이 외에도 3선을 이미 달성해 연임제한에 걸려 불출마해야 했던 이해식 강동구청장 또한 21대 총선에서 강동구 을에 도전해 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10] 특히 구청장 재임기간 동안 하도 주민들앞에 자주 출몰해서인지, 2018년 재보궐선거 유세기간에는 몇몇 노인들로부터 '''"(지지하고 있으니까) 적당히 좀 와라."'''라는 핀잔을 들을 정도. (...)[11] 이 수치는 총선에서 보수당 후보가 해당지역구에서 받은 최다 득표수이자 득표율이다.[12] 다만, 지난 재보궐선거 때는 강연재의 출마로 보수층의 표가 분산되었지만, 이번에는 표가 분산되지 않았던 것도 고려해야 한다.[13] 18.2.13 사퇴(노원구 병 선거구 2018년 재보궐선거 출마)[14] 전임자 안철수 제19대 대통령 선거 출마를 이유로 사직[15] 노원구 병에서 첫 당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