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구 미국공사관

 





[image] '''서울특별시의 유형문화재'''
131호

'''132호'''

133호
동아일보 사옥
'''미국 공사관'''
사현사 석불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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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말 ~ 20세기 초 즈음의 미국공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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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공사관의 현재 모습#
1. 개요
2. 역사
3. 건물
4. 여담
5. 매체에서
6.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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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서울특별시 중구 정동에 위치한 미국의 옛 공사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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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 대한제국 수교 시기의 성조기
미국 국장

2. 역사


1883년(고종 20년) 조미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하면서 미국은 서양 국가 최초로 조선과 외교관계를 맺었다. 미국 정부는 첫 공사로 루시어스 하워드 푸트를 파견했다. 푸트 공사 일행은 자신들이 머물고 근무할 공사관한성에 설치했다. 처음에는 잠시 박동의 묄렌도르프 집에 두었다가 통역관 윤치호 등에게 새 공사관 부지를 알아보게 했고, 곧 정동에 있는 민계호, 민영교(명성황후의 친족들)의 집을 2,200달러에 사들여 그곳으로 옮겼다. 민계호 집은 건물 125칸, 빈 공간 300칸, 민영교 집은 건물 140칸, 빈 공간 150칸 규모였으며 이외에도 주변 가옥을 몇 채 더 매입해 미국공사관 영역을 조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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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0년대 후반 미국공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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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9년에 아펜젤러가 촬영한 경운궁 수옥헌(맨 왼쪽)과 미국공사관(맨 오른쪽). 맨 왼쪽의 흰 탑이 러시아공사관이다.
서양 외교공관 중 처음으로 생긴 미국공사관의 정동 입주를 계기로, 정동은 한성서양인들의 터전이 되어갔다. 1897년(건양 2년)부터 고종이 인근의 경운궁(지금의 덕수궁)에서 거주했고, 점점 경운궁의 영역을 넓히면서 미국공사관은 경운궁에 둘러싸인 모습이 되었다. 1900년(광무 4년) 즈음에 부분적으로 개수했고, 실내도 고쳐지었다. 그리고 행랑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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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말 ~ 20세기 초 즈음의 미국공사관#
미국공사관 건물은 다른 나라 공사관들과 차이점이 몇 가지 있었다. '''처음부터 단교 때까지 쭉 한옥이었고 자리도 그대로였다는 것이다.''' 이는 미국조선전통을 존중한다는 뜻이 아니었고(...) 본국에서 지원을 적게 해줬기 때문이다. 정동공사관을 마련한 첫 미국공사 푸트는 미국 정부서양식 건물을 짓게 돈을 달라고 요청했다. 그런데 미국 국무부에서는 자금을 주지 않았다. 푸트가 이유로 든 것이 ‘모자가 천장에 닿는다’는 것이었는데 당시 국무장관은 ‘실내에서 모자를 안 쓰는 것이 조선 풍습으로 안다’고 답하며 거절한 것. 표면적인 이유는 저렇지만 미국이 조선에 큰 관심이 없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한옥을 수리해 사용할 수 밖에 없었다.#
한옥 청사에 대해 공사관 직원들의 생각은 저마다 달랐다. 선교사, 의사 출신 호러스 뉴턴 알렌 공사는 자신들의 공사관이 다른 나라 공관보다 초라한 것에 상당한 불만을 가졌고, 이에 대해 자신의 책 《조선의 이모저모(Things Korean)》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다른 열강들은 각자 자신들의 대표자가 살 곳으로 미국공사관보다 훨씬 더 허세부린 건물을 갖고 있었다. 우리는 한때 조선 고관이 살던 진기한 모양의 아름다운 '''방갈로'''를 계속 사용했다. ...(중략)... 광활한 잔디밭이 있고 나무가 우거진 넓은 부지가 있어서 편하고 예술적인 거주지를 만들었지만, '''공사관 건물은 다른 나라가 세운 큰 건물에 비하면 도저히 믿을 수 없을 만큼 초라했다.#'''...(후략)...

반면 궁내부 찬의관 겸 외부 고문을 지냈던 윌리엄 프랭클린 샌즈는 만족스러워 했고, 자신의 회고록인 《비외교적 비망록(Undiplomatic Memories)》에 이렇게 써두었다.

'''미국공사관은 서울에서 가장 편한 곳 중 하나이다.''' 다른 공사관, 영사관 건물들은 유럽건축물을 본따 지은 것들로 칙칙하고 어두운 느낌을 주었다. 이밖의 다른 공관들은 한옥을 고쳐 지은 것이었으며, 한옥은 고치기 매우 편리한 구조였다. '''그것은 잘 다듬은 화강암 기초 위에 튼튼하게 세운 건물이었다.''' 벽은 진흙 또는 벽돌이어서 '''기후의 영향을 별로 받지 않았으며''', 육중한 참나무나 밤나무 대들보로 받친 지붕은 수 톤의 흙으로 채워서 높이 올리고 그 위에 기와를 놓아 '''여름의 무더위와 겨울의 강추위가 침범하지 못했다.'''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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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주 대한제국 미국공사관을 방문한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큰딸 앨리스 루스벨트#
1905년(광무 9년) 11월에 일제을사늑약 체결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강탈하여 한국과 미국국교는 끊겼다. 당시 미국일본에 굉장히 우호적이었고 이미 그해 7월에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맺어 일본의 대한제국 합병을 인정했다. 그래서 을사늑약 직후 제일 먼저 공사관을 철수시켰다. 그리고 옛 미국공사관은 태평양 전쟁이 발발한 1941년까지 영사관으로 기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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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주 경성 미국영사관 정문#
8.15 광복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인 1949년에 한국미국재수교했다. 영사관은 주한미국대사관으로 승격했으나 을지로 옛 미쓰이물산 경성지점 건물로 옮겨갔고[1] 정동의 옛 건물은 미국대사관저가 되었다. 이후 대사관에 대한 내용은 주한미국대사관 문서 참조.

주한미국대사관에서 제작한 미국대사관저 하비브하우스 영상#
1976년 5월에는 정동 대사관저 부지 내에 현대건축기법으로 지은 새로운 한옥 관저를 지었다. 1974년 처음 신축 계획할 때 미국 국무부에서는 완전한 서양식 건물로 지으려 했다. 그러나 당시 주한미국대사였던 필립 찰스 하비브 (Philip Charles Habib)가 아주 강력하게 한옥으로 짓기를 주장했다고. 그래서 새 관저의 별칭이 하비브하우스(Habib House)이다. 단, 완공할 때 하비브 대사는 이미 물러나있었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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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전 미국공사관#
이후 기존의 대사관저는 게스트하우스, 영빈관으로 쓰였다. 2001년 4월 6일에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32호로 지정받았고, 2003년부터 2004년에 복원, 수리 공사를 하여 오늘에 이른다.

3. 건물


  • 이미지는 여기에서 볼 수 있다.

4. 여담


  • 1895년(고종 32년) 11월 28일[3]에 친미 · 친러파가 일본의 위협을 받는 고종경복궁에서 구출해 미국공사관으로 데려가려다 실패한 사건이 일어났다. 자세한 내용은 춘생문 사건 문서 참조.

5. 매체에서


  • 2018년 tvN에서 방영한 《미스터 션샤인》에서 주인공 유진 초이(이병헌 분)의 근무지로 나온다. 실외 촬영은 충청북도 청주시에 있는 운보의 집[4]에서, 실내 촬영은 충청남도 논산시에 있는 선샤인랜드의 한성전기회사 세트 2층에서 했다.

6. 같이 보기



[1] 1968년 주한미국대사관세종대로 현재 자리로 옮겨간 후 미국문화원이 되었다가 현재는 그레뱅 뮤지엄으로 쓰이고 있다.[2] 완공 당시 대사는 리처드 스나이더(Richard Lee Sneider).[3] 음력 1895년 10월 12일.[4] 화가 김기창이 살았던 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