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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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修羅
불교 용어로 불교의 팔부신중의 하나인 아수라의 줄임말이다. 아수라가 좋아하는 싸움과 연관지어서 싸움 때문에 막장으로 치달은 사람이나 그런 상황을 묘사할 때 사용한다. 여기서 따온 낱말로 수라장과 불교의 육도윤회 사상에서 말하는 수라도가 있다.
갈 것인가 수라의 길로라는 대사가 유명하다.
1.1. 백석의 시 "수라"
거미들을 보면서 가족 공동체 회복에 대한 소망을 담은 시이다. 일제 강점기 시절 시인 백석이 지었다.
중학교 국어② 천재교육 노미숙 교과서에 비평문과 함께 실려 있다.
1.2. 각종 매체
1.2.1. 사무라이 스피리츠 시리즈
사무라이 스피리츠 잔쿠로 무쌍검부터 아수라 참마전까지 나오는 개념. 외수판에서는 'Slash'. 캐릭터 선택시 수라와 나찰을 고를수 있으며, 그 둘은 각각 기술이 다르다던가, 승리 포즈가 다르다든지 등의 차별화를 두었다. 대체적으로 나찰보다는 덜 거친 편이다.
1.2.2. 슈퍼로봇대전 시리즈의 수라계 사람
수라(슈퍼로봇대전) 문서로.
1.2.3. 북두의 권
수라국에 사는 남자들 중 오로지 투쟁만을 하며 살아오는 자들로서, 어렸을때부터 혹독한 단련을 통해 감정을 버리고 오로지 투쟁만을 위해 존재하는 기계가 된다. 그야말로 약육강식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투사들.
작중 설정으론 이들 수라들은 일정 나이가 되면 투기장에서 혹독한 스파르타식의 비인간적인 훈련을 거듭하며 서로를 쓰러트려가야 한다. 하급 수라들은 이름조차 하사받지 못한채 가면을 쓰고 싸워가야만 한다.[1] 그런식으로 서로 죽여대는 막장 대련을 거듭하며 100승 이상을 거두고도 살아남는다면 그제서야 가면을 벗고 이름을 하사받을 수 있다.[2]
거기다가 이름을 하사받는다고 해도 투기장에서의 싸움이 중단되는것도 아닌지 모래시계의 알프는 122전을 치루고 첫 등장시 155전을 치룬 수라를 쓰러트리는 장면이 나오고 수라국의 군장 중에서 최강으로 묘사되는[3] 카이젤은 무려 1800승을 거뒀다고 언급된다.
이기기 위해 수단 방법 안가리기 때문에 특이한 방식으로 싸우는 수라들이 많다. 땅에서 잠복해서 튀어나왔다가 게처럼 싸우는 시에, 독나방의 인분이 묻은 망토를 이용해 적을 중독시키는 모래시계의 알프, 기다란 쇠사슬을 이용해 싸우는 제브라 등등.. TVA에 등장하는 오리지널 수라들은 더 괴이하게 싸우는데 카멜레온처럼 기어다니고 주변 바위에 의태하는 가멜레오, 전갈 같은 옷을 입고 독침을 쏴대는 갸몬 등등.
참고로 3부에서 등장한 네임드 수라들은 일단 기본부터 B랭크는 먹고 들어간다. 이름없는 수라와 모래시계의 알프가 둘 다 B랭크이며 시에와 교코도 비슷한 레벨로 추정된다. 군장인 카이젤 이상부턴 A랭크를 넘어가는 강자들이다. B랭크야 사실상 잡졸 포지션이니 넘어간다쳐도 카이젤부턴 작중 등장인물들이 맞붙었을땐 그야말로 피튀기는 혈전끝에 가까스로 쓰러트리거나 되려 목숨을 잃었다.[4]
1.2.4. 북두의 권 -심판의 쌍창성 권호열전-의 고수
초/중수는 모히칸이라고 한다. 북두 성지인 나카노 TRF 게임센터에서는 모히칸 졸업시험을 통과하면 수라가 될 수 있다. 졸업한 시점부터 모히칸 대회에는 엔트리 불가.
1.2.5. 네이버 웹툰 쿠베라의 주요 용어 수라
신과 대적하는 종족. 상급수라인 라크샤사 쯤 가면 신과 동격이고 태초에는 실제로 신과 수라가 아닌 아스티카와 나스티카라는 유사한 호칭으로 불렸다. 인간들도 신측, 수라측으로 나뉘어 신의 힘을 빌리는 신성마법과 수라의 힘을 빌리는 마성마법 둘 모두를 구사했다. 그러나 하급수라인 '''마라'''들에게 꾸준히 피해를 입은 인간들이 수라를 저버리고 마성마법을 버리며 현재는 인간들도 수라를 적대한다. 더 자세히는 수라(쿠베라) 문서로.
1.2.6. 데블파이터에서 나오는 데블
루시퍼에게 세뇌당해서 인간세계에서 영향을 주어서 사람들을 움직이지 못하게 만든다.
꽁꽁이 마을에 침략해서 전설의 기사를[5] 자기편을 만들라는 명령을 받고 전설의 기사를 공격하다가 퇴치당하고 세뇌에서 풀린다.
뜸금없이 세츠나의 동료가 되어서 오딘을 공격한다.[6]
1.2.7. 엘소드의 플레이어블 캐릭터 아라(엘소드)의 2차전직
아라(엘소드)/수라 문서로.
1.2.8. 던전 앤 파이터의 직업인 아수라
아수라(던전 앤 파이터) 문서로.
1.2.9. 은혼의 엔딩곡 修羅
애니메이션 은혼 50~62화까지 쓰인 엔딩곡으로, DOES가 불렀다. 자세한 것은 해당 문서로.
1.2.10. 세키로: 섀도우 다이 트와이스
세키로에서 수라는 목적과 명분을 잃어버리고 살육의 재미만을 쫓아 닥치는 대로 죽이는 것에 중독된 광란의 괴물이다.
자세한 건 수라 루트 문단으로.
2. 水刺, 수라상
임금의 식사를 일컫는 말. 밥의 높임말인 진지의 왕실 한정 극존칭어다. 고려 말에 몽골어로 음식을 지칭하는 '슐라'에서 넘어왔다고 한다. 임금에게 올리는 식사를 올려놓는 상을 수라상이라고 한다.
조선시대 궁중에는 임금의 식사를 담당하는 기미나인과 수라상궁이 있었다. 왕이 수라를 드는 것을 "젓수다"라고 하였으며, 기미나인이나 수라상궁은 음식에 독이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항상 임금의 식사 전에 자신이 먼저 한 젓가락씩 먹어본 후, 이상이 없으면 왕에게 "젓수십시오."라고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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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임금은 하루에 총 5번의 수라를 받았다. 이 중 12첩 정식[7] 은 오전 10시와 오후 5시의 두 번이며, 이를 전후로 하여 아침은 초조반상(혹은 일어난 자리에서 바로 먹음을 뜻하는 자릿조반), 점심은 낮것상, 밤에는 야참이라 하여 국수나 미음, 약식 등 간단한 상을 차렸다.
그 양은 엄청나게 많아서 왕 혼자서는 도저히 먹을 수 없는 양이었다. 조선 왕조 최고의 미식/대식가였던 세종대왕조차 반도 못 먹을 듯한 분량을 자랑한다. 이는 '물림상'이라고 해서 일부만 먹은 뒤 남은 반찬은 왕이 식사를 마친 뒤 밥만 새로 퍼서 왕 밑의 신하들이나 궁중 나인들이 먹었기 때문이다. 현대인의 기준에서 좀 이상한 풍습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는 왕이 신임하는 사람에게 왕의 음식을 내려준다는 상징적 의미가 있었다. 그래서 윗사람들은 반찬도 아랫사람들을 생각해서 손을 최대한 깨끗하게 댔다. 조선만 그랬던 것은 아니라 과거 신라 태종 무열왕의 식사 기록에서도 수라상의 엄청난 양에 대한 기록이 나오고,[8] 아랫사람에게 음식을 남겨주는 것은 유럽에서도 비슷한 풍습이 있어 빵을 요리를 담는 그릇으로 쓰고, 왕이 요리를 먹은 뒤 남은 고깃국물 머금은 일회용 식기는 영주가 가난한 영민들에게 베풀었다.
현대인에게 반찬 12가지는 "왕이 먹는 반찬치고는 종류가 좀 적은 것 아닌가?"는 생각이 들 수도 있는데, 이건 현대인이 차려먹는 밥상에 원래 들어가는 반찬은 첩수만 늘었지, 퀄리티가 떨어지기 때문에 드는 착각이다. 즉, 원래 전통 반상은 첩수가 올라가면 양만 느는게 아니라 질도 하나하나가 서양으로 치면 전채요리 급으로 돌변하며, 수라상 급까지 오면 반찬 하나하나가 대단한 수준으로 바뀐다.
현대는 기술의 발달로 농업 생산량 자체가 늘어나서 대량생산을 통해 단가가 낮아졌고 정 부족한 식자재를 수입할 수 있어서 단가를 더욱 낮출 수 있지만 당시 식자재는 농약이고 뭐고 없는 100% 유기농 국산 식자재밖에 없던 시기다. 현대에서도 저런 좋은 재료로 한상 차리려면 돈 꽤나 드는데, 심지어 식자재의 수급과 관리, 조리과정 모두 현대처럼 기계화가 되어있지 않아서 전 과정이 수작업의 연속이였다. 즉 현대 기준으로도 사치스러운 상차림인데 하물며 평균 소득이 더 낮은 그 당시 기준에선 정말 왕의 품격에 걸맞는 상차림이 아닐 수 없는 셈.
'''게다가 이 분류법은 밥, 국, 찌개나 전골, 김치류, 장류 같은 기본 메뉴들은 첩 수에서 빠지며, 사이드 메뉴만 쳐서 계산한다.''' 근데 이 반찬 분량과는 별개로 밥의 양은 막걸리 떠먹을 듯한 국그릇 스케일의 그릇에 꽈악 채웠다. 수라상의 경지에 와도 밥상의 주인은 원칙적으로 '''밥'''이지만, 수라상 수준은 커녕 7첩 수준만 와도 밥상의 주인인 밥이 묻힐 정도다. 이 반상이란 게 딱 보면 3첩 조차도 어지간히 부유한 양반이 아니면 못 해먹을 상차림이다. 사실 3첩은 서민 밥상, 5첩은 경제능력이 좀 되는 평민 밥상으로 부류되는데 5첩이 경제력 되는 평민 밥상인건 경우에 따라선 가능했겠으나 3첩이 서민 밥상인건 불가능에 가까웠을것이다. 3첩은 국과 김치가 기본 반찬인데 당시엔 하루하루 먹고사는것도 힘든게 서민들이엇다. 출처 이게 '''겨우 3첩이다.''' 5첩만 와도 코스 요리 수준이며 7첩을 넘어가면 호화스러움이 안드로메다로 떠나기 시작한다.
당시 고기가 부족해서 3첩, 5첩상이 소박해 보이는 것일 뿐, 만약 당시에 고기가 지금처럼 흔했다면 5첩상만 와도 스테이크가 국이나 김치처럼 기본반찬으로 날아다니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조선시대 왕의 업무량은 정말 무지막지한 수준이었기 때문에 이 정도로 먹지 않으면 버틸 수가 없었다고 한다. 단, 한민족의 식사량 문서에 나와있듯 일반 백성들도 대식하는 습관이 있었으므로 호화로운 것이 맞지만 그리 특별할 건 없었다. 격무에 시달렸다고 해도 업무상의 격무지 운동선수나 군인처럼 몸을 많이 움직여야 하는 일도 아니었고.
수라상 차림의 기본 이념은 '조선 팔도'에서 올라온 음식을 담는다는 것으로, 이는 왕이 식사중에도 나라를 살핀다는 의미 역시 담고 있다. 무슨 말인가 하면 각 지역의 특산물인 진상품으로, 그것도 재료가 겹치지 않도록 반찬을 만들었는데, 해당 반찬이 양이 줄거나 빠지거나 바뀜으로 해당 특산물이 나는 지역에 뭔가 문제(대표적으로 흉년)가 발생함을 왕에게 알리고 또한 살핀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나라에 큰 흉년이 들거나 자연재해, 전쟁 등으로 나라 살림이 어려울 때는 임금이 자발적으로 수라상의 반찬 가짓수를 줄이는 감선(減膳), 혹은 고기를 올리지 않는 철선(撤膳)을 했다. 극단적일 때는 말 그대로 죽 한 그릇만 올리기도 했다. 이는 신하들에게도 암묵적인 압박이었다. 이 말은 ''''나라가 어려워 나도 이렇게 먹는데 니들은 호화로운 밥이 넘어가냐?''''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임금이 아예 수라 자체를 거부하면? 그 때는 궁궐과 조정 전체가 발칵 뒤집힐 정도의 대형 사고. 그래서 조선 임금의 단식은 일종의 파업이자 시위이기도 했다. 비단 임금뿐 아니라 임금의 어머니인 대비, 할머니인 대왕대비도 아들이나 손자에게 시위할게 있으면 곡기를 끊고 버틴다. 다른 왕족도 마찬가지.
수라상은 크게 3개의 상을 쓴다. 주된 상인 대원반에는 흰수라(백미밥)와 국, 각종 장류와 김치, 반찬, 토구[9] 를 올렸고 곁반에는 팥수라(팥밥과는 다르다. 팥을 넣은 게 아니라 팥을 끓인 물로 밥을 지어 색을 입힌 것이다.), 곰국, 기타 별식 등을 올렸다. 마지막으로 책상반에는 찜과 조치(찌개), 전골류를 올렸다. 물론 임금도 사람인지라 세부적인 반찬들의 종류는 임금의 개인적인 취향에 따라 바뀌기도 하였다. 가령 세종의 경우 고기 반찬이 항상 빠지지 않은 반면, 영조와 정조는 서너 가지의 채소 반찬으로 단촐하게 차린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연산군은 정력에 좋다고 한 민물장어와 말고기 육회를 즐겨먹었으며, 대한제국 때 고종과 순종은 서양 요리를 먹기도 했다.
대장금 등 대중매체의 영향으로 수라상을 100% 궁녀들이 차린다고 생각하는데, 실제론 대령숙수라 부르는 '''남자'''요리사들이 수라상을 차렸고, 궁녀들은 숙수들이 퇴근한 야간에 급히 식사가 필요할 때나, 왕실 어른들의 간식 정도만을 만들었다고 한다.[10] 100% 궁녀들이 차렸다는 오해는 일제강점기가 되면서 남자 숙수들은 궁을 떠나 요릿집에 취업하여 궁에 남아있던 궁녀들이 어쩔 수 없이 수라상을 전담하게 되었는데, 이 궁녀들이 해방 이후 궁중한식을 전수하게 되면서 생긴 오류였다고 하며, 칼럼니스트 황교익이 문제에 대해 몇차례 칼럼을 통해 지적한 바 있다.[11][12] 또한 여기에 내시부의 수장인 상선(판내시부사)이 수라상을 담당했는데, 이는 수라상을 비롯한 왕실의 음식 준비를 총감독하는 형태에 가깝다.
3. 이슬람 성지 순례 시의 기부금
메카, 메디나를 방문한 순례객들이 그곳의 빈자들에게 주는 기부금. 이슬람 재단인 와크프와 개인적인 기부로 구성되었으며 오스만 제국 시대에는 핫지마다 술탄이 직접 준비하였다.
4. 실존인물
[1] 작중 처음으로 등장한 이름없는 수라가 이런 케이스. 그러나 이런 이름없는 수라조차 어릴적부터 붉은 상어의 해적단을 전멸시키고 거의 다 죽어간다지만 그 파르코조차 죽음에 이르게 했을 정도의 강자였다.[2] 참고로 이런 막장 사회 구조에서 살아남는 수라의 생존률은 1% 이하라고 한다. 어찌보면 비효율의 극치이지만 샤치의 예도 있듯 군장급 수라에게 100승을 채우지 않더라도 충분할 정도의 강함을 인정받으면 즉석에서 가면도 벗고 이름을 허락받는 특례도 있는 모양.[3] 원작에선 카이젤만이 군장으로 등장했으나 애니판에선 카이젤 이외에도 케인과 갸몬이라는 오리지날 군장들이 등장한다. 그러나 이들은 카이젤만한 강한 인상을 주지 못한채 켄시로에게 허무하게 끔살당하는데 사실 이는 대진운이 안좋은 결과이기도 하다.[4] 당장 샤치만 해도 카이젤을 상대로 늑골을 내주고 팔 하나를 뜯어내고 나서야 겨우 우위를 점했고 나장들 중에서도 최강인 카이오우에겐 쪽도 못쓰고 털린 끝에 죽었다. 한과 효우, 그리고 카이오우와 싸운 켄시로도 처절하게 싸운끝에 가까스로 승리를 거뒀고.[5] 여왕의 말에 의하면 꽁이 정령이 절대로 포기하지 않고 극복하면 나타난다는 전설이 있다.[6] 꽁이마을의 위기가 끝났을 때 새친구로 등록할 가능성이 있다.[7] 최근 연구결과에 따르면 12첩 반상은 대한제국 수립 후 곤룡포, 면류관, 곤복 등을 국왕용에서 황제용으로 승격할 때 함께 승격된 것이고, 대한제국 수립 전에는 9첩 반상을 수라상으로 받았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8] 하루에 쌀이 여섯 말, 술이 여섯 말, 그리고 꿩이 열 마리 분량이었다고 한다. 인간이 혼자서는 물리적으로 먹을 수 없는 양이고, 애초 전제가 하사하기 위해 일부러 많이 차리는 것이고 남아서 버릴 일이 없었다.[9] 생선의 가시나 고기의 뼈 등 음식을 먹은 뒤 생긴 이물질을 담는 그릇을 말한다.[10] 시대와 지역을 막론하고 일반 가정집 주방일은 여자들이 도맡았던건 사실이나, 좀 급이 높은 음식을 제공해야 하는 곳들은 남자들이 주방일을 도맡았다. 주방일이 통념과는 달리 의외로 힘이 드는 일이기 때문.[11] 다만 이 황교익이 좋은 예시가 아닐 수 있다. 현재의 황교익/논란에서 볼 수 있듯 궁중 음식은 친일 음식이라는 주장을 하였기 때문.[12] 궁중 식문화에 대해 연구하려면 조선왕조실록의 해석이 기본이되어야 하는데, 황교익은 이러한 능력이 검증된 바가 없으며 오히려 무지한 태도를 여럿 보여주었다. 애초에 연구를 한다는 사람이 원문을 가지고 이야기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 출판한 서적을 근거로 왈가왈부한다는 것이 수준을 보여주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