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차별/한국

 




1. 개요
2. 표준어 사용자의 방언 사용자 차별
2.1. 역사적 연원
2.2. 문제점
2.2.1. 지역 감정 조장
2.2.2. 세대 갈등 조장
2.3. 기타
3. 다른 나라에서
4. 표준어의 의의
5. 그 외
6. 관련 문서


1. 개요



표준어와 사투리를 나누는 건 일제강점기 때 생긴 제국주의의 산물이라네요.

정승철 서울대 교수<방언의 발견>#

우리나라는 인종보다는 지역이 중요한 문제가 됩니다. 드라마에 나오는 파출부, 가정부들은 다 충청도 출신이에요. 공장 노동자들은 전라도 사투리를 씁니다. 그런데 이게 너무 자연스러워서 별다른 생각이 들지 않아요. 고정관념이 되어버립니다. 20세기에 이러한 인식을 심어놓은 주요 매개체가 바로 대중문화였습니다. 바로 문화가 가지는 힘입니다.

(중략) <모래시계>(1995년)라는 드라마가 있습니다. 1990년대 중반 방영돼서 빅히트를 기록했죠. 특히 우리 현대사의 깊은 상처인 광주항쟁을 정면으로 다뤄서 화제가 되었어요. 드라마에 보면 최민수, 박상원, 이 두 주인공이 광주에서 같은 고등학교에 다녀요. 그런데 처음부터 끝까지 서울말을 씁니다. 악당만 사투리예요. (웃음) 우리나라 드라마 주인공들은 사투리를 쓰지 않습니다.

<아들과 딸>(1992년)이라는 드라마도 기억나네요. 충청도가 배경이었던 드라마인데 아버지로 나온 백일섭만 사투리를 써요. 자식들인 김희애, 최수종은 모두 표준말입니다. 그런데 아무도 이상하다고 생각 안 해요. 오히려 그게 더 자연스럽습니다. 아까 말씀드린 <모래시계>의 그 유명한 마지막 장면에서 최민수가 "시방 나 떨고 있는감?" 이러면 분위기가 살겠어요? (웃음) 우리가 보는 드라마의 리얼리티는 현실과 다릅니다. 그깟 드라마, 영화 한 편이 대수냐고 하실 분도 있겠지만, 대중문화가 성과 인종, 지역의 정체성에 미치는 영향력을 생각하면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닌 거예요. 특정 지역, 인종이 피해를 보잖아요. 마냥 웃고 즐길 게 아니라 그 안에서 인권 문제를 생각해야 합니다.

김창남, 『인문학이 인권에 답하다』, 「드라마 주인공은 왜 사투리를 쓰지 않을까?」 . 철수와 영희. 80-81 p.

한국의 언어차별에 대해 서술한 문서.
한국에서는 한국어 발음이 어눌한 외국인을 희화하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차별과 수도권-지방간의 표준어-방언 갈등이 둘 다 존재하지만 언론에서는 주로 후자를 다루고 있다.

2. 표준어 사용자의 방언 사용자 차별


어느 국가를 막론하고 표준어라는 것의 필요성을 부정할 사람은 없다. 교육, 방송, 보도, 교과, 외국인 학습의 표준이 될 말 그대로 표준이 되는 언어 자체는 당연히 필요하며, 공적인 대담이나 공적인 토론, 다른 지역 사람끼리 만났을 때는 표준어를 쓰는 것이 권장사항이다. 표준어라는 것 자체가 그런 이유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서로 표현이 다르다면 이해도 어렵거니와 뜻을 오해하고 무례하다고 생각하는 일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가 될 만한 것은 언제, 어디, 누구든지 표준어만 쓰는 것이 옳다고 주장하며, 더 나아가 표준어를 쓰지 않는 사람은 배려심이 없고 교양이 없다는 인식, 그리고 표준어가 필요 없는 곳에서 표준어를 굳이 쓰게 만드는 사회·제도적 압력이다.
또한 지방에서 서울로 상경했음에도 방언을 계속 사용하는 사람을 어떤 상황에서든 병적으로 취급하며 사투리를 질병처럼 고쳐야 할 문제로 보는 것은 옳지 않다.
한국의 언어차별은 방언(Dialect)과 억양(Accent)의 차이를 구분하지 않는 한국인의 경향 때문에 표준어를 구사하더라도 표준 억양이 아니라는 이유로 그 억양을 차별하는 양상도 보이고 있다.

2.1. 역사적 연원


한국에서는 300여 년 전부터 한양 사람들이 지방에서 쓰는 말을 사투리라 부르며[1] 차별하는 경향이 있다는 기록이 존재한다.[2]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정승철 교수에 따르면 1970~80년대에 사투리에 대한 제재가 굉장히 강하게 이뤄졌다고 한다. 당시에는 그게 옳은 것 처럼 여겨졌는데 제재가 사라진 지금까지 지속해서 영향을 미치고있다고 보고 있다.

2.2. 문제점


사투리, 틀린 말이 아니라 다른 말입니다.

스브스뉴스

표준어라는 수도권의 중류 계급이 쓰는 발화 습관들이 한 언어의 표준이 된 것에는 정치적 연원을 제외한 어떤 언어학적으로 필연적인 정당성이 없다. 왜냐하면 사투리나 은어라고 문법성이나 표현력에 하등에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그런 방언이야말로 그를 모어로 삼는 화자 집단의 삶의 양식과 세계관을 가장 잘 반영하는 언어이기 때문이다.
언어의 창조성이 자극 통제로부터 독립적이며 자유로운 인간의 본성 하나라는 것이 놈 촘스키의 결론이며, 이는 '''문법성이란 누군가가 표준으로 정하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 언중의 머릿속에 있는 것을 학자들이 기록해서 법칙성을 찾아내야 하는 성질의 것임을 의미한다.''' 사투리 문법이든, 표준어 문법이든 모든 문법은 동등하게 복잡하고 논리적이며, 표현하고 싶은 어떤 생각도 표현할 수 있도록 무한 집합의 문장을 생성할 수 있다. 만약 어떤 생각이 한 언어 또는 한 사투리에서 표현될 수 있다면 다른 언어나 사투리에서도 표현될 수 있다. 비언어학적 논거를 제외하고는 어떤 문법도 다른 것보다 우월하지 않다.
상기했듯이 표준어의 의의에 맞추어 공적인 대담이나 문서, 여타 매체의 표준이 될 언어는 필요하겠지만 사적인 영역에서 지역민간의 대담, 서면 언어에서까지 표준어를 강요하다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언어는 사회적 문화적 환경에 따라 그 모습을 계속 바꾸어 적응하지만, 태생적으로 표준어라는 것은 정부 차원의 제정이 필요해서 유동적인 언어의 변화 과정을 따라갈 수 없기 때문에 언중과의 끊임없는 마찰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표준어는 1933년1988년 단 두 번만, 그도 엄청난 시간과 돈을 들여서, 개정되었다. 그 반면에 현대 한국어의 변화 속도는 엄청나서 100년 정도 전의 글도 제대로 읽기가 어렵다.[3]
동시대를 살아가는 언중의 머릿속에 들어 있는 문법성보다 표준어 규정을 우선시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언어의 표현력과 다양성은 억압받게 되고, 그럼으로 인해서 역설적이게도 또한 표준어로 선정된 대표 방언 자신의 발달마저 저해될 것이다. 사상적 맥락이 비슷한 언어순화 운동이 비슷한 폐해를 가지고 있다.
표준어 우월주의가 심하면 표준어 체계에 논란이 존재함에도 해당 상황에 표준어 사용을 강요하는 오류를 저지를 수도 있다. 짜장면, 자장면의 예가 대중에 아마도 가장 잘 알려진 사례다. 그나마 짜장면은 표준어 개정 이후로 공감을 많이 산 사례다. 그와 반대로 불필요한 논란만 가중시키는 "괴팍하다"의 사례가 있다. 까다롭고 별난 성격을 두고 괴팍(乖愎)하다고 표현한다. 그런데 이 단어는 과거에는 "괴퍅하다"로 표기되고 발음되는 게 표준 방식이었다. 개정 후로 바뀌었을 뿐이다. 문제는 같은 한자를 쓰는 강퍅(剛愎)과 퍅성(愎性)이라는 다른 단어들은 개정하지 않고 유독 괴퍅하다만 "괴팍하다"로 표준 발음을 바꾸었다는 것. 현재도 이 단어를 사용하는 사람들 사이에 일부는 다른 한자어의 사례를 들어 "괴퍅하다"가 옳다고 주장하며 표준어 우월주의자들도 여기에는 쉽사리 반박을 할 수가 없다. 표준어가 결코 완전무결한 것이 아니며 문제도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 할 수 있다.

2.2.1. 지역 감정 조장


"사투리 고쳐달라" 논란…표준어 우월 인식, 언제부터?
또한 극심한 수도권 편중화 현상, 계급화 현상과 같은 사회적 계급화에 표준어 우월주의가 미시권력적 도구로 쓰이면서 정치적 차별을 가속화되는 문제점도 일어나고 있다. 예를 들면 "지방 출신인 것도 억울한데 사투리 쓴다고 까냐?", "저소득층 출신인 것도 억울한데 말투 다르다고 까냐?"[4] 같은 상황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표준어, 또는 그와 가장 가까운 서울말이 소위 '''벼슬'''인 세상이 온 것. 이를 보여주는 사례 하나로 제주도 방언의 소멸을 들 수 있다.
이 중에서도 표준어 우월주의와 4.3 사건에 따른 레드 컴플렉스, 그리고 그에 따른 군부독재정권의 정책적 차별이 결합된 결과, 제주도 방언은 여타 국내 방언보다 아주 강력하게 배척받았다. 수업 중에 사투리를 사용하면 그 이유 하나만으로 학생은 앞으로 불려나와 교사에게 '''인격적 모멸'''을 당하면서 구타당했고, 교사의 경우는 장학관으로부터 경고를 받았을 정도이다. 뿐만 아니라 앞서 언급된 4.3 사건을 구실로 제주도 전체가 빨갱이 섬으로 낙인찍혀 제주 출신이라면 덮어놓고 빨갱이 소리를 듣기도 했으니 차별을 피하기 위해선 사투리를 버리고 최대한 표준어만 사용하려 노력하는 수밖에 없었다.[5] 이 당시 정부의 선동이 그 시절 국내에 마구잡이로 창궐해 있었던 매카시즘 성향과 맞물려 국민들의 뇌리에 아주 잘 박혀들었기 때문인지, 2020년대 현재조차도 여전히 제주 출신이라고 하면 앞뒤 안 가리고 빨갱이 새끼들이라고 욕하는 몰상식한 작자들이 드물지만 간간히 존재한다. 간단히 말해, "지방 출신인 것도 억울한데 사투리 쓴다고 까는 것으로도 모자라 빨갱이/촌뜨기 낙인까지 찍냐?"는 항의인 것. 그나마 다행히도 이러한 경향은 독재정권이 철폐되고 민주화가 이룩된 이후 서서히 바뀌기 시작해 제주 사투리 보전을 위한 노력을 국가적으로 실행하는 중이다.
다른 사례로 전라도 사투리, 즉 서남 방언도 있다. 이 쪽은 호남소외론과 같은 호남 차별에서 기인한 것이다. 방송에서 서남 방언을 쓰는 캐릭터는 가난하거나, 학력이 부족하거나 폭력적인 캐릭터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았다.
지방에서 서울로 이주한 사람들의 경우, 서울말 표현이 자기 말에 스며드는 것을 느낀 사람이 있을 것이다. 이는 서울말이 아닌 표현이
1. 쉽게 이해받지 못하거나
2. 덜 세련된 표현이라는 인식을 받거나
3. 덜 지적으로 보이는 인상을 사거나
4. 극도로 타자화당하거나
5. 넷 중 둘 이상이 결합되어 나타났기 때문이다.
사실 표준어 우월주의의 폐해는 서울과 수도권도 그 영향에서 자유롭지 않은데, 서울 방언을 기반으로 제정된 표준어가 막강한 권력을 가지다보니 정작 표준어의 기반이 된 지역의 고유 방언이 멸실되어 가고 있다는 의미다. 심지어 일선 교사들도 경기 방언이나 서울 사투리를 잘 몰라서 이를 표준어가 아닌, 틀린 말이라고 잘못 가르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일례로 80년대에 드라마 서울뚝배기가 인기를 끌었을 당시, 국민학생들 사이에서 '''~했걸랑요'''가 유행어가 되자, 일선 교사가 '''무식한 사람들이 하는 말을 따라하지 말라'''고 훈계를 했을 정도다. 그렇지만 "~했걸랑요"는 무식한 사람들의 말이 아니라 경기도 사투리였다. 경기 방언은 표준어와 대동소이하기에 이게 원래 표준어였다고 착각하기 쉽고, 게다가 대다수가 이런 말을 쓰기 때문에 굳이 교정할 필요를 느끼지 않으므로, 직업상 표준어 교육을 중시할 수밖에 없는 일부 국어 교사나 공무원시험 강사가 이에 대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지금은 그나마 인식이 바뀌어서 사투리를 대놓고 비하할 수는 없는 분위기가 되었지만, 경기 방언이나 서울 사투리는 사투리라는 인식이 없어서 존중해야 할 향토 문화라는 인식이 여전히 부족하다.

2.2.2. 세대 갈등 조장


새로운 말을 많이 만들어 사용하는 신세대와 이에 거부감을 느끼는 기성 세대 사이 갈등은 말할 것도 없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기성 세대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현재는 표준어가 아닌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이분들이 쓰시는 언어는 과거에는 어법에 맞는 표준어였지만 현재는 표준어가 아닌 경우가 많다. 네이버에서 옛 신문 기사를 검색하면 나타나는 일제시대 시절이나 해방 직후 기사문들이 좋은 예이다. 예를 들면 하루를 '''하로'''라고 표기하는 등, 모음조화를 철저히 지키는 경향이 있다. 물론 지금은 그 시절 언어를 쓰는 세대가 대부분 사망한 상태이므로 이 정도로 극단적인 차이는 없지만, 그래도 그 영향이 남아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괴팍'''이 맞느냐 '''괴퍅'''이 맞느냐는 논란이 그러한데, 실제로 이게 헷갈려서 오히려 자녀에게 물어보는 노인들도 있을 정도.

의외로 젊은 세대가 노년층 언어에 거부감이나 이질감을 느끼는 경우도 있다. 서울 사투리, 경기 사투리가 많이 등장하는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를 둘러싼 논란이 그러한 예인데, 같은 젊은 세대일지라도 어린 시절 할머니, 할아버지와 많은 시간을 보낸 시청자의 경우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나, 이와는 다른 환경에서 자란 젊은 시청자들은 김수현 작가가 언어 파괴를 일삼는다고 비판한다.
이것이 더 나아가 계층 갈등으로 비화될 가능성도 있다. 특이한 사례이긴 하지만, 말투나 어휘가 요즘 아이와 달리 어딘가 예스러운 아이를 접한 때에 '''할머니, 할아버지 손에 양육된 아이인가보다'''라고 선입견을 가지기도 한다는 것. 다만 이는 선입견을 갖고 아이를 차별하는 어른들이 문제일 뿐이다. 오히려 조부모 손에 큰 아이들은 조부모 세대를 이해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조선시대에 집필된 양아록은 할아버지의 손자 양육 기록서이며, 조부모가 빠진 핵가족은 현대에 와서 생긴 가족제도이다.

2.3. 기타


일베에서 故노무현 전 대통령을 조롱하기위해 그의 말투를 흉내내거나 그들만의 은어를 쓰는데 특히 경상도 지역이 아닌 사람은 이것이 일베 말투인지 아닌지 구분하기가 어려워 멀쩡한 방언을 구사하는데도 일베로 모는 일이 생기고 있다.
영어 같은 외국어를 배울 때 지나칠 정도로 '올바른 발음'을 강조하는 것도 일종의 표준어 우월주의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런데 사실 막상 영어에는 공적 기관에서 정한 표준어가 없는데다가 국가와 사회계층에 따라 사용하는 말도 다 다르다.
한국에서 교육되는 영어 발음은 캘리포니아 영어 중심인데, 이는 지역 특성상 한국인과 같은 동아시아 사람들이 자주 유학 및 이민을 가는 곳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미국 영화 하면 떠오르는 할리우드 역시 캘리포니아에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 때문에 이곳에서 배운 영어 발음이 아닌 다른 발음을 배척하는 '캘리포니아(표현상으로는 '미국식'이지만 실제로는 주로 캘리포니아 억양을 말하는 경우가 많다.) 영어 우월주의'가 생겨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 밖에 주목받는 영어는 뉴욕 등 미국 동부 영어다. 오히려 '''영'''어의 본산인 영국식 영어는 상대적으로 비주류이다.

3. 다른 나라에서




4. 표준어의 의의


만약 한 국가가 표준어 정책을 폐지하면서 동시에 국가적 의사소통을 여전히 이전과 같은 수준으로 기능하게 하는 이상적 상황을 만들기 원한다면, 전국민적 의무교육 과정에서 방언들을 학습시키는 과정이 추가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지역 방언 뿐 아니라 계층 방언까지 파고들면 방언의 수는 무수히 많은데, 그 중 어느 것을 선택해서 가르칠 것이냐 하는 선택의 문제에서 형평성과 차별 논란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게다가 계층 방언 및 지역 방언 중에서도 이용자가 극히 적거나 체계적인 기록이 이루어지지 않은 방언이 많은데, 연구도 안된 방언을 교육한다는 것은 을축갑자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방언 교육 시간을 마련하기 위해 다른 교과 과정을 어떻게든 축소할 수밖에 없는데, 다른 교과 교육과정이 방언 교육보다 가치없는 교육 과정이라 할 수는 없기 때문에 교육시간 확보의 정당성에서부터 이미 흔들린다.
말하자면 방언 교육에는 민주적인 언어정책 수립이라는 대의와 경제적 한계라는 마찰이 존재한다. 따라서 둘 사이의 합의점을 보는 형태로 표준어는 법적·사회적 지위가 조금 후퇴하는 한이 있더라도 여전히 존속할 것이다.
어쨌거나 다른 언어 사용을 열등한 것으로 여기는 것이 잘못임은 틀림 없으므로 표준어 우월주의가 언어적 민주화를 저해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표준어의 제정 자체는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를 메우기 위해 필요한 것이므로 비난만 할 것은 아니다. 실천적 차원에서 표준어를 존속시킨 채 비표준어 표현을 너그럽게 관용하는 식의 타협 방안도 있을 것이다.

5. 그 외


간혹 인터넷에서 잘못된 맞춤법을 쓰고 있다고 지적하면 이 단어를 들어 오히려 맞춤법 오류를 지적한 사람을 공격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맞춤법이란 동일한 언어(표준어 혹은 방언 등)에서의 표기 규범에 관한 문제로 다른 문제이다. 언어의 표기 규범에 관한 논쟁에 관해서는 규범주의와 기술주의를 참고할 수 있다.

6. 관련 문서


[1] 당시에 방언이라는 표현은 사투리를 의미하지 않았다.[2] '한국의 방언과 방언학'(정승철, 2013)[3] 수백년 전의 글도 어제 쓴 글처럼 무리 없이 읽을 수 있는 영어와 비교된다. 1919년의 기미독립선언서와 1781년의 미국 헌법 문장을 현대의 언어와 각각 비교해보면 쉽게 드러난다.[4] 이런 사회적 방언의 격차가 극단화된 곳이 영국이다. 대표적인 예로 우리가 화장실을 가리키는 단어로 많이 아는 Toilet(토일렛)은 하류층 영어고 상류층은 Loo(로) 라고 칭한다. 영국 영어에서는 계층에 따라 억양과 발음도 뚜렷한 차이가 나는 동네다. 상경과 계층이동이 수십년간 활발해온 한국의 경우는 이런 문제에서는 비교적 양호한 편이다.[5] 또는 차선책으로 경상도 사투리를 사용했다. 물론 경상 방언도 표준어에 비하면 인식이 좋지 않은 것은 매한가지였지만, 당시 정권의 수장들이 경상도 출신이라 상대적으로 나은 취급을 받을 수 있었던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