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범주의와 기술주의

 


1. 개요
2. 정의
2.1. 규범주의
2.2. 기술주의
3. 규범주의 대 기술주의
4. 욕설과의 관계?
5. 규범주의의 원인 및 한국어와의 관계
6. 관련 문서


1. 개요


規範主義와 記述主義
prescriptivism and descriptivism
언어를 사용하는 입장에서 \''''옳고 그름을 규정할 것이냐''''와 \''''쓰이고 안 쓰이고를 기술할 것이냐''''로 나누는 입장 차이. 사전지도로 비유하자면 규범주의는 지도(사전)에 길(언어 정책)을 그려 넣고 행인(언중)들에게 그 길을 따르라고 지시하는 것이고, 기술주의는 사람들이 어떤 길로 다니는지를 관찰하고 그것을 지도에 기술하는 것이다. 낙관주의와 비관주의와 비슷해 보일 수도 있다.

2. 정의



2.1. 규범주의


  • 바르고 그른 사용법이 있고,
  • 이를 규정해야 하며,
  • 언중들은 이대로 따라야 한다.
이러한 입장을 '규범주의'라고 한다.
한국어에서 부사 '그닥'으로 예를 들면 '그닥'은 사전에서 등재하고 있지 않으니 사전에서 등재하고 있는 표준어인 '그다지'만 써야 한다는 것이고, 불완전 동사로 예를 들면 이런 동사는 완전하게 활용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세종대왕동국정운, 외국의 철자 검토(spelling check) 문화, 언어 사대주의도 이러한 예로 볼 수 있다.
규범주의는 언어의 기능적, 도구적 측면에 집중한다. 언어는 옷처럼 인간이 살아가면서 쓰는 도구라는 것.

2.2. 기술주의


  • 바르고 그른 사용법은 없고,
  • 언어의 규칙은 당위적으로 규정한 언어 정책이 아닌 사용자들 간의 소통요구 및 인지능력으로 말미암아 사회적으로 생성되며,
  • 언어는 시대를 따라 쉴 새 없이 변화하고,
  • 언어 정책은 언중들 간의 언어습관을 규정하지 말고 기록해야 한다.
이러한 입장을 '기술주의'라고 한다.
다시 '그닥'으로 예를 들면 '''사전에서 '그닥'이 없으니까 언중이 '그닥'을 쓰지 말아야 하는 게 아니라 언중이 '그닥'을 쓰니까 사전에 '그닥'을 등재해야 한다'''는 것이고, 불완전 동사로 예를 들면 언중이 다시 완전하게 활용하니 완전 동사로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깡총깡총'과 '설겆이'로 예를 들면 '깡충깡충'을 더 많이 쓰더라도 '깡총깡총'과 '설겆이'도 같이 쓰기는 하니까 '깡총깡총'과 '설겆이'를 버리는건 잘못이라는 주장이다. 우리말샘도 이러한 예로 보인다.
규범상으로 아직 바르고 적은 언중들이 아직도 잘 쓰는 표현을 많은 언중들은 시간이 지나다 보면 그른 표현으로 생각하기도 하는데, 이는 일종의 과도교정 현상이라 할 수 있다. "명복을 비는 글은 마침표를 쓰면 안 된다."가 이런 사례이다. 기술주의 관점에서는 어떤 표현의 사용 빈도가 설령 손에 꼽힐 정도여도 그른 표현으로 볼 수 없다.
기술주의는 언어의 존재론적 측면에 집중한다. 언어가 각 사람의 머릿속에, 그리고 그 사람들의 합의 속에 존재한다는 것.

3. 규범주의 대 기술주의


'''현대 주류 언어학계의 절대 대다수는 기술주의를 주장한다.''' 규범주의적 논리에 따른 논문은 그 수가 극미할뿐더러 있다 하여도 학계에서 학술적인 가치가 있는 논문으로 인정되지 않으며, 규범주의를 주장하는 언어학계 내 학파는 사실상 전무하다.
규범주의자들은 국가 등의 권력이 언어 규범을 정하지 않으면 소통상 혼란이 빚어질 것이라고 주장하며 규범주의적 정책을 정당화하지만 실제로는 영어처럼 일관적으로 언어 규칙을 제정하는 집단이 없어도 잘 굴러가는 언어들은 매우 많다. 영어에서도 대모음추이 같은 언어 변화가 일어났으나 소통의 혼란이 빚어지지는 않았다. 소통되는 권역에 따라 언어 분화가 더 잘 나타날 수 있다고 재반론할 수도 있으나(광동어표준중국어 사이가 그렇긴 하다) 영어처럼 오대양 육대주에서 다 쓰이는 언어조차 지역별로 다른 언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분화되지는 않았다. 그동안에 규범주의 논리대로 흘렀으면 단일 규범기관이 없는 영어는 현재는 수많은 소언어로 분화되어 있어야 하나 실상은 안 그래 있고, 나라별로 다른 영어 표현 정도일 뿐이다. 곧, 언중들 나름의 규범이 있는 셈. 여러 나라 사람들끼리 교류하면서 본의이든 아니든 분화를 조금이나마 막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또한, 사투리의 존재를 생각해도 된다. 거짓짝도 참고. 또한, 이런 규범에도 양면성이 있다. 규범은 일단 규칙성이 세든 여리든 깔끔하며 이해하기 쉬워야 하는데, 안 그러면 오히려 혼란이 빚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자세한 건 <국립국어원/비판 및 논란> 문서와 <대한민국 표준어/비판> 문서, <표준국어대사전> 문서를 참고할 것.
규범에 따르지 않으면 언어가 (불규칙 활용 같은 몇몇 예외들처럼) 불규칙으로 발달하는 것을 우려할 수도 있고 경제성이나 정확성을 따지면 퇴화로 볼(언어를 배우는 사람에겐 더욱 어려워질) 수도 있으나 이 모든 현상은 (그것이 규범문법의 입장에서 '규칙적'이건 '불규칙적'이건) 현대 언어학적으로 인간의 인지능력에 기반한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그 나름대로 규칙성이 있다. 즉, 외부적으로 규칙을 도입하여 그것을 강제하지 않아도 인간 언어는 저절로 본래의 규칙성을 띠게 되는 것이다. 반대로 불규칙으로 쓰이다가 규칙으로 쓰이게 되기도 한다(<역형성> 문서도 참고). 물론 그 나름 규칙이 보다 널리 쓰인다고 일반적 규칙이 그른 것은 아니다.
국어를 배우는 사람, 특히 외국인에게 배우기 쉽게 배려하는 뜻으로, 곧 진입장벽을 낮추고자 규범주의를 밀어줄 수도 있겠지만, 기술주의 관점에서는 그럴 의무까지는 없다. 국어를 규범주의적으로/쉽게 배운 외국인은 의사소통의 현장에 들어서면 오히려 더디게 적응하거나 자신이 배운 정보들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어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한 예로는 한국어를 외국인들에게 가르칠 때 많은 교사들과 교재들이 ''와 ''가 다른 모음이라고 가르치는 것을 들 수 있는데, 이 두 모음은 규범상으로 다른 모음이나, 기술주의적 관점에서는 현대 한국인들 대다수'ㅐ'와 'ㅔ'의 구별을 사실상으로 아니 함을 고려하면 외국인 학습자에게 이를 다르게 발음하라 가르치는 것은 그르지는 않으나 불필요한 학습을 시키는 것이다.
언어가 변화하다 보면 사극에서 언어 고증/사실 반영 오류로 이어지기 마련인데, 기술주의 관점에서는 언어 반영 오류가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다. 기술주의 관점에서는 현재 안 쓰이는 옛말도 그른 말은 아니지만, 옛말을 작품에 그냥 쓰면 수용자 관점에서는 작품 이해를 거부하는 것이 될 수 있다.

4. 욕설과의 관계?


언어의 용법에 옳고 그름이 없다는 기술주의에 따르자는 건 욕설이나 지역드립 같은 혐오 표현까지 용인하자는 것이냐는 의견이 있지만 전혀 무관한 얘기다. 왜냐면 그러한 표현들은 '''문법적(규범적)으로 그르기 때문에''' 쓰지 말자는 게 아니고 '''그렇게 쓰는 것이 윤리적으로 나쁘기 때문에''' 쓰지 말자는 얘기다. 욕설 같은 혐오 표현을 쓰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의 언행이 윤리적으로 비판될 문제이지, 그런 욕설을 사전에서 내리거나 사전에 올리지 않는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달리 말해, '아무개 표현은 '''비윤리적이니까''' 쓰지 말자'고 주장하는 것과 '아무개 표현은 '''비문법적이니까(비규범적이니까)''' 쓰지 말자'고 주장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인 것. 기술주의 관점으로 인정하되 윤리적 관점으로는 제재한다고 할 수도 있다. 한 예로, '따위'는 규범상으로 남이나 무엇을 낮잡아 볼 때 쓸 수도 있지만 그렇게 쓰는 건 비윤리적이니까 나열의 뜻으로만 쓰자는 셈.
언어의 역사성'민주화'의 의미 변화. 지도에 비유하면 사람들이 어떤 길로 자주 다니나 그곳에 덫이 있으니 가지 말라는 표시를 하는 셈이 되고, 상품에 비유하면 많은 사람들이 어떤 콘텐츠를 불법으로 이용하나 윤리적으로 절도와 비슷하니 그러지 말라는 셈이 된다. 프로그램에 비유하면 버그나 취약점을 수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5. 규범주의의 원인 및 한국어와의 관계


그래도 규범주의의 원인은 있기 마련인데, 그만큼 언어의 사회성이 세다는 뜻일 수도 있고, 사회적으로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경향이나 교육 방법 따위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사실, 규범주의와 기술주의의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지도에 비유된 것처럼 언어만의 문제가 아니고, 이래저래 얽힌 것들이 많다. 사회 생활 따위는 안 기술하면서 언어 기술주의에 따르자고만 하는 건 핵심을 놓친 주장일 수도 있다.
<경로의존성> 문서에도 관련 내용이 있지만 저차원적 욕구가 많으면 그 욕구가 비슷해 언어의 사회성이 세니 전체주의집단주의처럼 규범이 셀 수 있지만, 고차원적 욕구가 많아질수록 개인주의가 세져 제각각으로 달라지고, 유행 문제도 있어 언어 변화도 그만큼 빠르게 될 수 있다. 경로의존성군중심리와도 유관하다.
대한민국한국어는 전반적으로 규범주의가 강력하게 작용하는 언어이다. 옳고 그름이 언어 사용에 있으며, 이를 판단할 전문적인 주체가 있다고 많은 언중들이 믿고 있다. 한국어의 정서법을 규정하는 국립국어원이 한국어의 어문 정책에 미치는 영향력은 다른 국가의 공용어와 비교할 때 매우 강한 편에 속한다. 일제강점기로 인한 민족주의의 영향도 있고,[1] 60년대 이후로 빨리빨리 발전했는데 그 당시 규범주의적 의식이 아직 남아 있어 그 동안의 한국어에 번역체 문장이 많이 생겼듯이[2] 입시 위주 교육[3] 따위가 남아 있는 문제도 있으며, 그 당시 정책으로 말미암은 서울 공화국 현상과도 유관해 보인다(#). 현재 표준어 대부분이 서울에서 온 말이다. 언어 사대주의 문제도 있는데 한 언어 안에도 사대주의가 있는 것.
그리고 현재는 한국어의 어문 규정들(한글 맞춤법, 표준어 규정, 표준 발음법, 외래어 표기법,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 등)이 법적 근거인 국어기본법에 의거해서 제정되거나 개정되기 때문에 한국어는 기본적으로 규범주의적일 수밖에 없다. 법률부터 개정해야 기술주의를 제대로 추구할 수 있는 상황이다.
적응의 어려움 문제도 있다. 위의 규범주의적 의식도 그렇고, 이는 특히 중장년층 이상 사람들에게서 관찰되는데, 관찰할 줄 알아야 기술하거나 적응할 수 있으나 관찰력이 부족하니 자기 편한 대로 쓰거나 유행이나 규범에 편승하기도 하는 것이다. 변화가 빠를수록 세대 차가 그만큼 벌어지듯이 상대적으로 더 어렵다. 변화가 너무 빨라 슬로시티 운동처럼 느림을 추구하는 사람도 있는데, 어떤 규범주의는 이와 같은 맥락일 수도 있다.
위에도 적힌 언어 관련 논리적 오류 같은 윤리 문제가 많을수록 법이 엄격하게 되듯이 규범주의가 세지기 쉽다. 프로그래밍 언어처럼 정확성이 특히 중요한 부분에서.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 문서와 <윤리학> 문서의 <규범윤리학> 문단도 참고할 만하다. 도구로 따지면 한국 등에서 총기를 금지한 것을 생각할 수 있다.
어문 정책에 규범주의가 강하게 작용하는 언어로는 한국어(한국)와 독일어(독일) 등이 있다. 그 밖의 대부분 언어(국가)는 기술주의적 관점에서 언중에게 의하는 언어 변화를 방관하는(어문 정책으로 어떻게 해볼 수 없다고 보는) 편.
자본주의 같은 돈 문제 또한 생각할 수 있다. 언어 학습 때는 불규칙 활용 등 예외가 많아질수록 가르치기도, 배우기도 상대적으로 어렵게 되는데, 이는 규모의 경제 또는 범위의 경제에서 멀어져 언어 학습 비용 증가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에스페란토 같은 인공어가 생기기도 했다. 사전 내용을 개정할 때도 자원을 써야 되는데, 이는 세금 부담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번역기 같은 프로그램을 기술주의적으로 만들려면 인공지능은 필수이고, CAPTCHA처럼 만들어 언중들의 언어 표현을 그때그때 많이 수집해야 되고, 이때도 유지비 따위가 필요할 것이다. 규범에 따라 쓰는 건 단지 컴퓨터 기술이 낮아서일 수도 있다. '오역' 문서의 '번역기' 문단도 참고할 만하다.

6. 관련 문서


[1] 일제강점기 시절에 한국어가 금지되고 일본어가 강요된 역사도 있고, 일본어의 영향을 많이 받아 변형되어 있던 한국어를 많이 순화시켜 이른바 '민족 정기'를 회복시키려고 정부 차원에서 개입한 것으로 볼 수 있다.[2] '특정 활용 밖의 나머지 활용들은 옳지 않은 활용'이라는 규범주의 특유의 경직성도 번역투가 생겨나는 데 큰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즉, '의역'의 여지를 전혀 두지 않거나 매우 제한적으로 두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오히려 과도교정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문제이다. 한편으로 이런 번역체들을 배척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받아들이는 사람과 배척하는 사람의 갈등은 규범주의 대 규범주의인 셈이다.[3] 문제 제기의 여지가 없는 문제를 출제하고 그에 대답하는 데에 규범화된 어문 규칙이 필수이기 때문이다. 헬리콥터 부모 문제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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